2026.08.10

“수익률만 높이면 될까” 꼭 필요한 기금형 퇴직연금 안전장치

입력 2026-08-10 17:17

호주·영국 기금형 퇴직연금 성패 가른 ‘가입자 보호’

(이미지=AI 생성)
(이미지=AI 생성)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이 500조 원을 넘어선 가운데 정부가 올해 안에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포함한 제도 개편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기금형 퇴직연금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수익률뿐만 아니라 수수료 관리와 수탁법인의 독립성 등 가입자 보호 장치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10일 보험연구원이 발표한 ‘호주·영국의 기금형 퇴직연금 비교와 보험산업의 과제’ 보고서는 두 나라의 운영 사례를 비교하고 국내 제도의 설계 방향과 보험업계의 대응 과제를 제시했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여러 사업장의 적립금을 하나의 기금으로 모아 전문적으로 운용하는 방식이다. 노사정은 기존 계약형과 함께 금융기관 개방형·연합형·공공기관 개방형 등 세 가지 유형을 도입하는 방향에 합의했다.

퇴직연금 가입자가 직접 상품을 선택하고 관리해야 하는 부담을 덜고 장기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제도 도입의 취지다. 다만 금융기관의 참여 방식과 수탁법인의 지배구조, 이해 상충 방지 장치 등은 구체적인 제도 설계가 필요한 부분이다.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은 2020년 255조5000억 원에서 2025년 말 501조4000억 원으로 5년 만에 약 2배 증가했다. 반면 원리금보장형 상품 중심의 운용으로 수익률은 2~3%대에 머물고 있다.

호주는 위축, 영국은 성장…무엇이 달랐나

호주는 1992년 사용자의 퇴직연금 기여 의무화와 함께 기금형 제도를 본격 도입했다. 초기에는 은행·보험회사 등이 운영하는 금융기관형 기금이 시장을 주도했지만, 계열사 상품을 우선 활용하는 수직계열화로 수수료 중첩과 이해 상충 문제가 발생했다.

성과에서도 격차가 나타났다. 2021년 기준 산업형 기금의 10년 평균 수익률은 연 8.6%로 금융기관형 기금(6.8%)보다 1.8%포인트 높았다. 금융기관형 기금의 자산 점유율은 2004년 33.1%에서 2025년 6월 19.6%로 낮아졌다. 반면 비영리 산업형 기금은 같은 시점 36.2%까지 성장했다.

2018~2019년 헤인 왕립위원회 조사에서는 사망한 고객에게 수수료를 부과하고 계열사 상품을 기금에 편입한 사례가 확인됐다. 이후 호주 4대 은행은 퇴직연금 사업을 대부분 매각했고 정부는 수탁자 책임과 상품별 성과평가를 강화했다.

영국은 사전인가제와 비용 통제를 바탕으로 기금형 시장을 키웠다. 여러 기업이 하나의 기금에 참여하는 ‘마스터트러스트’는 2025년 영국 확정기여형 퇴직연금 회원의 92%, 자산의 83%를 차지했다.

영국은 수탁자와 경영진의 적격성, 재정 능력, 내부통제 등을 설립 전에 심사한다. 디폴트 운용상품에는 적립금 대비 0.75%의 총수수료 상한을 적용하고, 투자성과와 비용·서비스를 함께 평가하는 ‘가치 대비 비용(VFM)’ 체계도 도입하고 있다.

연구진은 금융회사의 참여 자체보다 이를 견제할 제도적 장치가 기금형 퇴직연금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분석했다. 호주는 계열사 상품 편입과 중복 수수료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지만, 영국은 수수료 상한과 독립된 수탁이사회를 통해 가입자 보호를 강화했다. 금융회사가 참여하더라도 가입자의 이익을 우선하는 비용·성과 관리와 독립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보험연구원)
(보험연구원)

한국형 기금에 필요한 네 가지 안전장치

연구진은 국내 기금형 퇴직연금의 정착을 위해 수탁법인 사전인가제와 독립적인 지배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시장 진입 단계에서 전문성과 재정 능력을 검증하고, 수탁자 선임과 계열사 거래 등 주요 의사결정에 대한 모회사의 영향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익률과 수수료, 서비스 품질을 함께 비교하는 공시체계도 필요하다. 성과가 낮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기금에는 개선 또는 통합을 유도하고, 기금 대형화를 통해 운용비용을 낮추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어 노사정이 합의한 수탁법인의 독립성과 가입자 이익 우선 원칙을 구체적인 운영·감독 기준으로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험업계도 운용 경쟁력 강화해야

보험업계에는 원리금보장형 중심의 운용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과제가 제시됐다. 연구진은 저비용 운영체계를 구축하고 실적배당형 상품과 대체투자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모회사로부터 독립된 수탁법인 운영체계와 이해 상충 관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금형 퇴직연금이 도입되면 중장년 가입자는 직접 상품을 고르는 대신 전문기관에 노후자산의 운용을 맡길 수 있다. 그러나 전문기관이 운용한다고 해서 높은 수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가입자가 운용수익률과 수수료, 위험 수준을 비교할 수 있는 정보가 충분히 제공돼야 한다.

퇴직연금은 은퇴 이후 생활비를 뒷받침하는 장기 노후자산이다. 기금형의 성과도 단기 수익률이 아니라 수수료를 제외한 장기 수익과 자산의 안정성, 가입자의 선택권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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