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자식이 모시는 게 도리 아니겠습니까”
노부모를 함부로 대하는 ‘못난 자식’들이 지면을 채우곤 하는 요즈음, 충북도청의 윤상기(56) 보육지원팀장은 보기 드문 효자다.
윤 팀장은 부인, 두 딸과 함께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94세의 장모를 모시고 산다.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고 치매까지 앓아누워만 계시는 장모를 볼 때마다 그는 눈시울을 붉힌다.
“일어나실 수가 없어 누워계시다 보니 등에 욕창까지 생기셨어요. 얼마나 더 사실지 걱정이네요”지난해 11월 당시 92세의 어머니가 세상을 뜨기 전까지만 해도 윤 팀장의 집에서는 10년이 넘게 두 사돈이 함께 살았다.
그의 어머니 역시 아들과 며느리, 손녀들의 병 시중을 받으며 생활했다. 치매에한쪽 눈까지 실명했으니, 병세가 사돈보다 못한 편은 아니었다. 돌아가시기 7년 전에는 뇌병변까지 얻었다.
몸이 성치 않은 두 사돈의 동거는 너무나 쉽게 성사됐다.
부인이 몸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으니 윤 팀장 자신은 장모의 병수발을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윤 팀장의 어머니와 장모가 동거를 시작했을 때는 성치 않은 몸을 가누기 힘들다 보니 서로에게 화를 내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와 장모의 건강이 더욱 나빠지면서 다툴 기력조차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윤 팀장은 오히려 한없이 가슴이 시렸다.
부인이 초등학교 조리장으로 근무하게 되면서 장모를 보살피는 일은 중학생인 두 딸의 몫이 됐다.
오전에는 요양보호사가 있지만 오후에는 두 딸이 외할머니의 몸을 닦아 드리고 밥도 먹여 드린다. 어머니가 안 계실 때 대소변을 치우는 것도 두 딸의 일이다.
부모는 돌아가실 때까지 자식이 모셔야 한다는 게 윤 팀장의 변함없는 지론이다.
윤 팀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효라는 것은 말이나 책으로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부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모시며 자식 된 도리를 다하는 걸 아들·딸에게 보여주는 것이 참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윤 팀장은 외할머니에게 극진한 두 딸을 볼 때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대견스럽기만 하다.
주변 지인들이 “요양원에 보내시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할 때면 그런 말 하지 말라며 손사래부터 친다.
집에서는 장모에게 지극 정성이고, 직장에서는 노인복지, 다문화가족, 영유야 보육업무를 척척 해 내는 윤 팀장은 동료들 사이에서도 ‘보배’다.
이런 윤 팀장도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어려움을 겪었다.
집에서 돌아가셨다고 병원 의사들이 사망 진단서를 떼어주지 않아 고생하다가 한나절이 지나고 나서야 검안서를 받아 영안실에 모셨다고 한다.
윤 팀장은 이런 경험 덕에 우리사회에 만연한 잘못된 관행과 제도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모님이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라고 말하는 윤 팀장의 눈가에는 금세눈물이 그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