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의 암 수술로 장기 9개를 적출하고도 그 누구보다 건강한 인생2막을 살아가는 이가 있다. ‘생존율 1%’라는 암과의 전투에서서 당당히 승리를 거머쥔 ‘암 정벌자’ 황병만씨. 절망을 희망으로 개척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포기암(give up cancer)을 포기함
1985년 그의 나이 서른셋. 직장암 4기를 선고 받았다. 사랑하는 아내와 곧 태어날 아이를 향한 염원으로 암을 이겨낸 그였다.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온 그에게 또다시 암이 찾아왔다. 이번엔 위암 4기란다. 만약 암에도 7기가 있다면 그는 7기라고 말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생존율 1%. 매우 희박하다고 느꼈을 1이라는 숫자에 그는 자기 자신을 대입했다. 그리고 1%의 가능성을 100% 현실로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어떤 암이든 다 이겨낼 수 있는데 못 고치는 암이 딱 하나 있다. 바로 ‘포기 암(give up cancer)’이다. 나처럼 4기암에도 포기 암을 안 받아들이면 산다. 그러나 1기암에도 포기 암을 받아들이면 죽는 거다. 포기라는 것은 ‘자포자기(自暴自棄)’ 즉 ‘자(自)’, 나 스스로가 빠진 상태를 말한다. 결국 포기는 자기 자신이 하는 것이다.”
한 차례 암을 경험한 그가 다시 암을 겪게 된 것처럼, 피해가려 노력해도 암에 걸릴 수 있다. 왜 암에 걸리느냐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해도 어떻게 암을 이겨내는가는 확실했다.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포기하지 않는 자세. 그것이 전부였다. 뻔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실제 그것을 매 순간 되새기고 의지를 다지는 것은 어렵다.
이 때문에 구심점 역할이 필요하다. 황병만씨의 구심점은 ‘가족’이다. 두 번째 암으로 고통을 겪던 당시 딸 아이 역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겨울 고3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공부도 잘하고 명석했던 딸아이의 미래를 망칠 수 없었던 황씨는 ‘고3 딸을 두고 죽는 게 아빠인가. 아빠도 아니다. 죽을래도 죽을 수가 없다. 죽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나약해질 때면 딸을 떠올렸다.
그럴 때면 그가 살아야 할 이유가 더욱 또렷해졌다.
“포기라는 단어가 떠오르기 전에 구심점을 먼저 떠올려야 한다. 그 순간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들이 가득 차오른다. 포기를 잊고 희망을 품어야 살 수 있다.”
선장을 만나라. 그리고 그를 따르라
황씨에게는 두 명의 선장이 있다. 그의 아내와 주치의인 국립암센터 김영우 박사다. 암에 걸리면 환자와 가족들은 귀가 얇아지고 안 좋은 생각에 휩싸이게 된다. 때문에 그들을 희망의 길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선장’이 필요한 것이다.
“암 환자와 가족은 낫는다 하면 뭐든 먹이고 좋은 곳이라 하면 쫓아가기 바쁘다. 우리 집 선장(아내)은 내 어머니가 청개구리가 좋다고 잡아와도 돌려보냈다. 내 남편은 죽여도 내가 죽이고 살려도 내가 살린다는 강인함으로 다른 것들에 현혹되지 않은 것이다.”
또 한 명의 선장 김영우 박사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병을 못 고칩니다. 같은 암 환자라도 어떤 이는 초기에도 죽고, 어떤 이는 말기에도 사는데 어떻게 의사가 병을 고친다고해야 합니까. 암이라는 것은 환자 본인이 이겨내는 것이고 그와 가족들이 병과 싸워보겠다고 몸부림 칠때 의사는 그저 도와주는것에 불과합니다. 대신 의학 지식은 내가 더많이 알고 있으니 그런 부분에 대해선 내 말을 들어줘야 합니다.”
황씨는 주치의인 김 박사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르고 신뢰한다. 그와는 다르게 보통 암환자들은 의사들도 알지 못하는 인터넷상의허위 정보를 맹신한다. 그는 “인터넷으로 병고치려는 사람은 100% 못 고친다”고 단언한다.
“유익한 것들도 있지만 암 환자를 현혹시키는 정보들이 나돌아 오히려 이게 사람 잡는다. 넘쳐나는 정보 중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있는 이는 주치의뿐이다. 얕은 정보의 홍수에 허덕이지 말고 선장이 이끄는 배에 올라타는 것이 현명하다.”
환자놀이 하지마라, 일반인처럼 살아라
“좋은 공기를 마셔야 한다며 지방으로 요양가는 환자들이 있다. 깨끗한 공기를 달고 사는 것이 치료에 절대적인 도움을 주진 않는다. 오히려 가족과 떨어져 사니 걱정만 느는셈이다. 그보다는 가족과 함께 일상생활을하며 얼굴도 보고 함께 의지를 다지는 편이낫다.”
황씨는 치료를 위해 특별식을 먹는 것 또한추천하지 않는다. 평소 먹던 음식을 먹되 엄선된 재료로 조금 더 신경을 써서 먹는 정도면 충분하다. 갑작스럽게 상황버섯이니 뭐니 해가며 안 먹던 음식을 먹으면 오히려 탈이 난다는 것이다.
그는 몸을 움직일만 하면 직업을 가지라고말한다. “집에 드러누워 환자놀이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상태만 더 악화될 뿐이다.일을 하면 자연스레 몸을 움직이고 사람들도 만나기 때문에 생활에 활력을 더해 줄 수있어 치료에도 큰 도움이 된다.”
황씨는 부동산 일을 병행하며 2009년부터 꾸준히 마라톤 출전을 해오고 있다. 경기에 임하는 순간만큼은 그도, 지켜보는 이들도 그를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반인과 같은 선상에서 출발하고 늘 중간 이상의 성적을 거두며 완주에 성공한다. 그 무엇보다 자신과의 경쟁 속에서 지난날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얻게 되는 희열이 대단하다.
“목표 지점을 통과했을 때 느꼈던 쾌감을 잊을 수가 없어 도전을 이어오고 있다. 달릴 때마다 ‘지난번보다는 1분이라도 더 빨리 1m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야지’라는 목표가 생긴다. 기록을 갱신할 때마다 느끼는 벅찬 감동.조금 더 나아가면 어떠한 환희가 기다리고있을까라는 설렘은 아직도 나를 뛰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제2의 황병만’ 누구나 가능하다
자칭 ‘암 정벌자’ 황병만씨는 ‘암퇴치재단’ 설립을 준비 중이다. 각종 강연과 방송활동 등 암 환우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국립암센터 강의 중 극도로 고통스러운 표정의 환자를 만났다. 그는 자신이 위암으로 위가 절반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낙담했다.
황씨는 “나는 위는 물론이고 현재 8개의 장기가 없는 상태다. 하지만 난 폐도 있고, 간도 있고, 눈도 있고, 코도 있고, 입도 있고, 이렇게 있는 게 훨씬 많다. 나 같은 사람도 사는데 당신이 그런 표정을 짓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웃어보였다.
가끔 “당신이 뭘 알아?”라고 말하는 환자들에게 그는 자신 있게 “누구보다 잘 안다”라고 답한다. 그리고 치열했던 암과의 전투에서 이겨냈기에 ‘암은 이길 수 있다’라고 자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