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택은 부산일보 편집부 기자로 6년 6개월을 일했다. 등단 시인에 평론도 쓰며 안정적인 삶을 살던 그는 굳이 연극을 하겠다며 1986년 사표를 냈다.
“앞으로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과정들을 예측해봤을 때 인간은 갈수록 개인주의화 되고 대중 속에서 고립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시스템의 노예가 되고 말이죠. 특히 80년 대 중반부터 언론의 분위기가 삼당통합을 위해 여야가 야합을 하면서 변질되기 시작했어요. 여야가 없고 신념 체계도 없고, 과거의 적이 동지가 되고 이런 혼탁한 시대에 기자라든지 문필가 이런 것이 위선적이고 힘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세상에 살 바에는 유랑광대 극단을 만들겠다 해서 이름도 ‘연희단거리패’라고 지은 것입니다. 연희단패거리, ‘패거리가 있어야 되겠구나!’ 하고 연극을 시작했습니다.”
연희단거리패? 이제 패거리도 나쁘지 않다!
그의 입에서 쉽게 ‘패거리’라는 말이 나왔다. 이제까지 그는 연희단이 ‘패거리’로 불리는 것을 불편해 했다
“패거리가 좋지. 원래는 ‘거리패’인데 사람들이 (좀 비꼬면서) ‘패거리’라고 했습니다. 내가 한 때는 그게 싫었어요. 패거리라 그러면 집단적인 위기에서 뭉치고 그러는 것인데 지금은 역설적으로 패거리 의식이 너무 없는 것이 문제잖아요. 패거리를 이루고 있다는 게 힘이 됩니다. 공동체도 힘이 있는 것이죠. 세상으로부터 독립이 될 수 있는. 그래서 앞으로 패거리 의식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웃음).”
차갑고 비정한 어른을 존경하지 않는 세상
30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이윤택이지만 그도 벌써 64세. 일반 직장인이었다면 은퇴를 하고도 남을 나이다. 스스로도 현역 연극인으로서 나이가 많다고 얘기한다. 주위 사람들도 대부분 은퇴해서 활동을 안 한다고.
“지금 내 주위 친구들은 거의 다 명함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요. 명함이라는 것은 소속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명함이 없는 인생은 대단히 자유로워야 하는데 그 반대였습니다. 한 대학교수는 자신이 평생 모은 자료를 모교에 기증한다고 했는데 학교에 보관할 곳이 없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거부했습니다. 그 학교 1기 출신인데도 말입니다. 지금 세상은 대단히 차갑고 비정하고 어른을 존경하지 않는 세상, 공경하지 않는 세상이란 말입니다.”
그런 세상에 현역이고 은퇴가 없어 살아있는 동안은 연극 연출가로 살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하는 이윤택 자신의 선택이 결국을 옳았다고 말았다. 자신이 어떤 조직에 속하지 않고 내 스스로가 패거리를 만들었다는 게 괜찮은 선택이었다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