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 <계춘할망(2016)>이 할머니와 손녀지간이라는 독특한 관계 설정으로 관객의 관심을 모았다. <집으로(2002)>, <늙은 자전거(2015)>, <오 마이 그랜파(2016)> 등 할머니 또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관계를 그린 몇몇 영화들이 나왔었지만, 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라는 점이 신선함을 주었다. <계춘할망>처럼 할머니와 손녀의 동거 에피소드를 담은 영화 <할머니는 일학년(2012)>은 ‘한글을 모르는 할머니와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손녀의 한글 정복’이라는 흥미로운 주제가 돋보인다.
아들·아버지를 향한 그리움 ‘한글’로 채우다
갑작스러운 아들의 죽음으로 시골에서 손녀 동이를 키우게 된 할머니 오난이는 아들이 남긴 다이어리와 편지를 읽기 위해 한글을 배우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죽기 전에 꼭 아들의 편지를 읽겠다’는 각오로 다문화가족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한글교실에 다니기로 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한글 선생이었던 부녀회장이 병원에 실려 가고 더는 수업을 들을 수 없게 된다. 오난이는 어쩔 수 없이 혼자 한글 공부를 하지만, 선생이 없어 무엇이 맞고 틀렸는지 모르는 채 지나가기 일쑤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본 동이는 그동안 유치원에서 배운 실력으로 할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친다. 글을 읽을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 되어 갈 무렵, 일곱 살밖에 안 된 손녀에게 가르침의 한계가 찾아온다. 할머니보다 한글을 잘 알았지만, 시골로 내려온 뒤로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어 완벽하지 않았던 것. 결국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수밖에 없다고 느낀 오난이는 학교를 찾아가지만 이내 거절을 당한다. 학교 직원에게 아들의 유품을 보여주며 “그동안 아들이 내게 보낸 편지들인데 내가 글을 못 읽어 미안한 마음에 봉투를 뜯어보지도 않았다. 죽기 전에 꼭 읽고 싶다”고 간곡히 부탁한다.
마침내 초등학교 입학 허가를 받은 오난이는 손녀의 핑크색 책가방까지 메고 등교한다. 학교에 다닌 뒤로는 이전과는 반대로 오난이가 동이에게 한글을 가르친다. 아들이 죽기 전까지는 서로 얼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두 사람이기에 처음부터 사이가 원만하지는 않았다. 대화도 없이 서먹하게 하루하루를 지내던 그들은 한글을 배우는 즐거움을 함께 느끼며 점점 더 가까워진다. 그렇게 한글을 익히고 아들의 편지를 열어보는데, 편지봉투 속 아들의 편지는 글이 아닌 사진이었다. 오난이는 “어미가 까막눈인 것을 알았구나”라며, 동이에게 “세상은 많이 안다고 잘 보이는 게 아닌가 보다. 글자도 세상도 마음으로 읽어야지”라고 이야기한다. 서로 한글을 가르쳐 주며 티격태격하는 할머니와 손녀의 모습이 웃음 짓게 하고, 죽은 아들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눈물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