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정확히 그런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이 살 것이 없어도 왠지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마침 방콕에 재래시장 ‘아시아티크’가 있다기에 들르기로 했다. 작년에 짜뚜짝 시장에서 근사한 실크 원피스를 싼값에 건진 기억이 있지만, 이번에는 꼭 뭘 사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냥 뭐 혹시 독특한 것이라도 있나 구경만 해보자는 거였다.
게다가 공짜 셔틀보트가 있다니 잠깐이나마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며 낭만적인 기분을 느끼고 싶기도 했다. 그곳은 섬이 아니라 택시나 버스로도 갈 수 있지만, 우리는 배를 택했다. 고가전철 BTS를 타고 사판탁신 역에 내리니 부두가 있었다. 셔틀보트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스물 댓 명 정도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배를 타고 야경을 보려는 사람들의 줄이 뱀이 똬리를 틀 듯 길었다.
오갈 때 무료 셔틀 보트를 타는 것은 좋았지만, 생각처럼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우선 차오프라야 강의 색깔이 탁한 고동색이다. 옛날 수상시장을 들렀을 때 악취가 트라우마로 작용했는지 모른다. 그에 비하면 한강은 청정수다. 강에서 눈을 돌리니 멀리 대관람차가 돌아가고 있었다. 아시아티크는 관광객을 겨냥해서 약간의 놀이 기구, 시장, 식당이 뒤섞여 있는 곳이었다.
그 자리는 원래 외국과 티크 나무를 교역했던 항구란다. 그래서 이름을 아시아티크로 명명한 것이다. 우리는 우선 시장을 둘러보았다. 태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특산품과 옷가게로 별로 특이한 것은 없어 심드렁해지기 시작했다. 남대문시장이 약간 정비된 정도였다. 그래도 식당만은 데이트족을 끌만큼 아기자기했다.
그래도 예까지 왔으니 좀 더 돌아보려던 차에 얇은 면치마가 눈에 들어왔다. 슬쩍 보고 지나치려는데 “그거 4백 밧.” 하는 소리가 들렸다. 턱수염을 요상하게 기른 태국인 주인이다. 우리는 치마보다 그의 한국어가 더 신기해 동시에 “어?”하며 돌아보았다.
“나 동대문 시장 장사 작년에. 이거 너무 싸. 한국 못 사.” 우리는 신기해서 그의 말을 되물으며 확인했다. 반갑다는 인사를 마치고 돌아서려는데 “얼마 사?” 하는 거다. 난 그 시장에서는 많이 깎아야 한다는 사전 지식과 안 사도 그만이라는 생각에 망설이다 “2백 밧” 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오케이!” 하는 거다. 우리는 예상외의 대답에 놀라서 얼떨결에 그 치마를 사고 말았다. 치마를 포장하며 그는 우리에게 신신당부했다. “이거 미친 가격. 저기 가게 똑같아. 말하면 안 돼. 작년에 방글라데시 사람 태국 사람 그거로 파이팅!” 하며 양 주먹을 부딪쳤다. 우리는 “예스 오케이” 하며 그를 안심시켰다.
그곳에서 동대문 시장에서 장사하던 태국인을 만나다니. 어설픈 한국어이지만 우리말로 태국인과 대화를 하니 공연히 기뻤다. 그도 아마 한국에 살았던 추억이 있어 미친 가격에도 팔았나 보다. 값을 너무 후려친 것이 미안했지만, 어쨌든 이번에도 하나 건졌다. 이래서 시장은 그냥 지나치면 왠지 손해 본 기분이 드나 보다 하며 즐겁게 돌아왔다. 그런데 자리에 누워 가만히 생각하니 스멀스멀 의심의 기운이 감돈다. ‘혹시 이거 속아서 산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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