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을수록 익숙한 것들이 좋아진다. 자주 가는 음식점에 또 가게 되고, 푸근한 옛 친구가 그립고, 옷도 늘 입던 옷이 좋다. 아니 좋다기보다는 ‘편하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저 편한 옛 습관에 기대는 게 머리를 쉬게 하는 길이니까. 그래서 늙으면 최백호가 부르는 ‘낭만에 대하여’ 같은 노래나 들으며 도라지 위스키 한 잔 앞에 놓고 청승을 떨게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익숙함’이 문제다. ‘익숙하다’는 것은 ‘익었다’는 뜻이고 익으면 ‘굳게’ 되는 것이고 굳으면 곧 ‘죽음’이 아닌가. 마치 강에서 강물과 함께 떠내려가는 물고기는 오직 죽은 물고기이듯이 ‘익숙함’에의 안주는 죽음에 다가가는 길이다. 그런데 우리 몸은 왠지 새로운 것에 잘 적응을 못 한다. 스마트폰 쓰는 법을 배우고도 곧 잊어버리는 것은 ‘익숙하지’ 못해서일까?
지난달 모 신문에 실린 서울대학교 연구부총장인 신희영 박사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신 박사는 의사로서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학교장과 통일의학센터 소장을 겸하고 있다. 그는 오랫동안 북한의 어린이 의료 지원 활동을 해오고 있었는데 최근 남북 관계가 꽁꽁 얼어붙어 버리는 바람에 의료협력 사업이 몇 년째 중단되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충격의 이유는 질병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그의 시각 때문이었다. 남과 북은 문화나 언어만 이질화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질병도 그렇게 되었단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미 바이러스 시대로 진입했는데 북은 아직 세균 시대라는 것이다. 이 말은 갑자기 통일이 되었을 때 북쪽 사람들이 바이러스로 엄청나게 죽을 수 있다는 뜻이다. 마치 잉카문명이 천연두로 어이없게 멸망했듯이.
놀라운 것은 그뿐만 아니다. 북한 어린이들은 100%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는데 그 덕(?)인지 아토피 같은 자가면역 질환이 없단다. 우리 몸의 면역 기능은 늘 외부의 적을 막기 위해 대비하고 있는데 적이 없어 심심해지면 자신의 몸을 적으로 오인해 공격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균에 노출될까 봐 애지중지 청결하게 관리하는 젊은 엄마들이 새겨들어야 할 정보다.
익숙한 것만 쫓다가는 우리 생각도 자가면역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신 박사처럼 색다른 관점과 시각이 우리 머리에 창의적인 자극을 주고, 기생충 같은 이야기 속에서도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새해는 세월의 탁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죽은 물고기가 아니라 신선한 물줄기를 쫓아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싱싱한 한 마리 잉어가 되고 싶다. 모든 익숙함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