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할머니의 따뜻했던 마음

기사입력 2017-01-20 10:16 기사수정 2017-01-24 09:14

▲친할머니의 따뜻했던 마음(박혜경 동년기자)
▲친할머니의 따뜻했던 마음(박혜경 동년기자)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컴퓨터를 켜고 메일을 확인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하룻밤 새 참 많은 소식이 날아와 있다.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하면서 친구들과의 이메일 주고받기는 줄었지만, 간간이 전해오는 외국에 사는 친구의 메일 안부는 고맙고 반갑다.

 

필자에게 필요 없는 광고메일을 삭제하면서 그중 반가운 소식을 만난다.

‘따뜻한 하루’ 라는 곳에서 보내주는 글은 그야말로 따뜻한 내용이다.

어떨 땐 눈물이 나도록 감동적이거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읽다 보면 내 마음도 순수해지는 것 같고 세상은 아름다운 일이 많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해주기도 하는 고마운 소식 글이다.

오늘 받은 내용을 보고 필자는 딱 우리 친할머니를 떠올렸다.

 

살림을 꼼꼼하고 알뜰하게 잘하는 엄마가 있었다. 그 엄마가 요즘 들어 시장에 다녀올 때면 누렇게 시든 파를 사 왔다.

매번 시든 파를 사 오는 엄마에게 딸이 왜 그러는지 물었더니 시장 길의 노점상 할머니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취업 때문에 서울로 가고 혼자 농사를 지었는데 요즘 몸이 아파 밭을 돌보지 못했더니 파가 다 시들었더라고 한다.

그래도 그 파를 팔아보려고 나오신 할머니를 엄마는 모른 체할 수 없어 매일 시든 파를 사 오셨다는 이야기로 따뜻한 마음씨의 엄마가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글을 읽으니 옛날 대전 가양동에서 포도밭을 하셨던 친할머니가 생각난다. 가양동은 당시 대전의 변두리였지만 이제는 고속도로가 지나는 곳으로 대전의 요지가 되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조신한 모습이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상이셨던 우리 친할머니.

친가는 대전 변두리의 시골집으로 왼편에 나무문이 달린 부엌이 있고 부엌 안엔 방 쪽으로 부뚜막과 커다란 가마솥 밑으로 아궁이가 있어 항상 시뻘건 불길이 타고 있었다.

 

아궁이 앞에는 풍구라고 하는 동그란 바람 일으키는 도구도 있어 재미로 아궁이를 향해 손잡이를 돌려 바람을 불어넣는 것도 놀이의 하나였다.

부엌 옆에는 디딤돌을 딛고 올라가는 넓지 않은 툇마루가 있고 왼쪽엔 안방, 그 옆엔 건넌방으로 일자 식 농가모습이다.

 

그 앞으로 수천 평 되는 포도밭이 있어 나이 차가 많지 않은 막내 고모와 친구처럼 포도밭 그늘에서 숨바꼭질도 하고 소꿉놀이도 했던 예쁜 추억이 있다.

포도밭 속은 싱그러운 포도나무 잎사귀로 그늘이 져서 언제나 어두컴컴했다. 막내고모와 같이 탐스러운 포도송이에서 한 알씩 포도 따먹는 재미도 쏠쏠해서 웃음꽃이 그치지 않았다.

 

그때 할머니가 장에서 사 오시는 사과나 채소는 항상 찌그러지고 못생겨서 이상하게 생각되어 여쭤봤더니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과일이나 채소 파는 사람들이 좋은 모양의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있도록 할머니는 일부러 못생기고 안 좋은 과일을 골라 오신다는 것이다.

그땐 할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고 못난 과일이 먹기 싫어 그런 걸 골라 오신 할머니가 바보 같아 보였다.

가난한 채소장수를 배려하는 마음이었던 걸 후에야 알고 할머니의 깊은 마음에 가슴이 따뜻했다.

 

필자는 요즘도 시장이나 마트에서 과일을 고를 땐 어디 흠집이라도 없는지, 좀 더 크고 보기 좋은 걸 고르려고 눈에 불을 켠다.

그러다가 가끔은 못난 과일을 사 오셨던 친할머니를 생각하고 미소를 떠올린다.

오늘 읽은 시든 파를 사 온 엄마의 이야기가 그 옛날 아련한 추억과 함께 할머니를 기억하게 해 주어 참으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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