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퇴근은 공무원이나 회사원 들을 막론하고 ‘칼 퇴근’ 이라는 은어를 사용하며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만큼 정시퇴근이라는 것이 지켜지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번 신문보도 내용을 보면서 필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까지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해 야근을 해 왔는데 갑자기 사장님 한 말씀에 정신이라도 번쩍 나서 업무효율성이 높아져서 정시퇴근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건지 아니면 다음날 근무시간에 이어서 해도 될 오늘 일을 ‘오늘 일은 오늘 마치고 퇴근하자’ 는 관행이 사장님 말 한마디로 무너져 버린 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필자의 직장시절에도 정시퇴근을 강조하는 사장님이 여럿 있었다. 심지어 늦게 퇴근하는 사람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하고 어떤 사장님은 사장의 재실(在室) 싸인 전등을 정시에 끄고 이제 사장이 없으니 퇴근을 해도 좋다는 시그널을 직원들에게 보냈다. 첫날 하루만 직원들이 속았지 사장님이 생쑈를 한다는 소문이 다 돌아 다음날부터 소용이 없었다. 위에서 야근하는 원인은 파악하지 않은 채 우격다짐으로 인기위주의 지시는 반짝 되는 것처럼 보이다가 결국 도로아미타불인 경우가 허다했다. 굳어진 관행을 바꾸기 위해서는 최고 경영자의 확실한 철학이 밑에까지 심어질 때까지 몇 달이고 끝까지 될 때까지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지시처럼 미지근하게 하면 직원들이 사장의 말에 간을 보고 앞으로 영이 제대로 서지 않는다.
제조업체인 모회사의 사주인 사장은 착실한 크리스천이여서 직원들에게 일요일 근무를 절대로 못하게 했다. 당연히 공장은 일요일 생산가동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장기계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기계를 점검하고 수리하는 정비가 필요하다. 이런 일에 종사하는 공무부 직원은 정상적인 조업을 지원하기 위해 평일엔 쉬어도 일요일에는 일을 해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일요일에 일을 하다가 사장님이 떴다는 연락을 받으면 정비공들은 불을 끄고 죄인처럼 기계 밑으로 숨어야 했다. 왜 야근을 하고 휴일 근무를 해야 하는지 현실을 모르는 고집불통인 사장님과 직언을 못하는 중간 간부의 답답함에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했던 경험도 있다.
정시퇴근은 근무지의 상황에 따라 다 다르기 때문에 모든 회사가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는 사실 어려운 문제다. 법을 집행하는 검찰에서도 야간에 범죄 혐의자를 심문하고 고위층의 영장실질심사도 한밤중까지 이어지고 결과 발표도 새벽에 하기도 한다. 하루 당겨서 미리 심사를 시작하거니 아니면 하루 늦게 발표해도 될 것 같은데 심야에 이런 중대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수사기법 상 필요하거나 내일 다시 나와서 수사를 받기보다는 늦더라도 오늘 끝내고 가겠다며 피의자가 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결국 퇴근시간을 무시하고 일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공감대가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것이다. 피의자의 인권문제도 대두되고 공무원 근무시간과는 거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여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전문가가 없는 것으로 봐서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미국의 근로자는 퇴근시간이 되면 일손을 즉각 멈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일하던 연장도 제자리에 갖다놓아야 하고 민원인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퇴근이 늦어지는 것이 우리의 정서에 맞다. 퇴근 시간을 전사적으로 일률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사장님은 부서별, 개인별 업무진단을 철저히 해서 과중한 업무 수행으로 야근하는 자도 없어야 하고 놀고먹는 방관자도 솎아 내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왜 늦게 퇴근하는지에 대한 현실파악과 고민도 없이 정시 퇴근을 대외 경영성과보고서에 기록하기 위해서거나 아니면 직원들의 깜짝 박수만을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또 이를 인위적으로 강제로 이루기 위해 PC를 막거나 심하면 단전단수 같은 극약처방만을 한다면 그것도 모든 부서에까지 확대 한다면 다시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