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유소년 시절엔 나이가 환갑에 가까우면 남자는 사랑채에 나앉아 노인 행세를 하였다. 오늘날은 노인으로 불리는 자체도 싫어하지만, 예전엔 그 반대였다. 늙은이 행세가 수명을 단축하였는지 모른다. 장수의 기준점이 60살이었기에 회갑잔치를 성대히 치렀다. 지리산 산골 마을이었던 고향에서는 논밭 농사를 지으며 살았고 부모의 나이가 환갑에 가까워져 오면 일을 그만 두게 하여 편히 쉬게 했다. 그것을 효도로 여겼고 필자의 삼 형제도 환갑 잔치를 치른 아버지가 더는 일을 하지 않도록 하였다. 옆집에는 아버지와 동년배였던 두 아들을 둔 어른 한 분이 살았다. 부지런한 둘째는 결혼과 함께 신접살림을 차려 따로 살게 되었고 게으른 큰아들과 함께 농사일하며 지냈다. 그 어른은 큰아들이 게으른 탓에 환갑이 지난 나이에도 집안 일을 도맡아 했다. 뒷산에서 무거운 땔감을 하여 지게에 지고 오기도 하고 논밭 농사를 직접 지었다. 그분은 동갑내기였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10년을 더 사셨다. 타고난 운명도 있겠지만, 계속하여 몸을 움직였기 때문에 오래도록 건강을 유지하였지 싶다. 부모님을 편하게 모시려 일을 그만 두게 한 일이 효도가 아니라 더 빨리 늙게 한 불효를 저지른 결과를 초래하였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농사일에 손을 놓은 아버지는 집안 일이나 농사일 외에는 한가한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소일거리가 없었던 시절이라 나날이 무료(無聊)했음이 틀림없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무료한 날을 보내게 되어 마음과 몸이 함께 쉬이 늙어 간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필자의 경험을 예로 주변의 아는 사람들에게 부모님이 집안일을 거들려 할 때는 말리지 말라고 일러 준다. 오히려 간단한 일거리를 만들어 주고 뒷방 늙은이 취급을 하지 않기를 권유한다. 이제는 부모 세대를 이어 우리 스스로가 같은 위치에 서게 되었다. 인생 2막을 활기차게 살려는 시니어들이 늘고 있으나 전체에 차지하는 비율은 낮은 편이다. 뒷방 늙은이가 되어 자식에게 짐이 되는 삶이 아니라 당당하게 살아가려는 자세가 절실하다. 취미가 없다면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취미를 만들 필요가 있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좋아하는 소일거리나 취미활동으로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더디게 늙는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