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식당은 화려한 식당도 아니고 큰길에서 보면 보이지도 않는데 사람들이 골목까지 찾아들어가 먹는다. 오늘은 아줌마 혼자 열심히 김밥을 말고 있었다.
“아저씨는 어디 가셨기에 혼자 일하셔요?”
필자가 물으니 옆에 있던 한 회원이 옆구리를 쿡 찌른다. 마치 드라마에서나 있는 일처럼 어느 날 아저씨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사람의 운명이 참 별것 아닌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도 어느 날 잠자듯 이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 어차피 누구나 한 번은 가는 길이다. 그러므로 좋은 일도 자주 하고 주변 사람에게 더 따뜻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더 중요한 게 있다. 언제 이 세상을 떠나도 여한이 없도록 자신만을 위한 ‘맞춤의 삶’이 필요하다. 봉사와 일, 재능기부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
나이가 들수록 나만을 위해 하고 싶은 게 많아진다.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도 상관하지 말자는 다짐도 해본다. 그동안 예쁜 옷을 보면 가격 때문에 만지작거리기만 하고 못 살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고 모양도 내볼 생각이다. 관절 상태가 안 좋으니 계단이 무서운 날은 택시도 탈 것이다.
필자는 거의 다 쓴 립스틱도 솔로 파서 끝까지 알뜰하게 사용한다. 그런데 어느 날 생각해보니 필자가 세상 떠난 뒤 아들이 필자가 쓰던 화장대 립스틱을 보고 가슴이 미어질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아까운 마음이 들어도 초라해 보이는 물건들은 다 버리려고 한다. 아들 가슴 미어지게 하고 싶지 않아서다.
서랍도 열어보고 옷장도 열어본다. 버릴 것은 버리고, 사람에 대한 미련도 일에 대한 욕심도 없애겠다. 최선을 다하되 결과가 좋지 않아도 아쉬워하지 않겠다. 인생의 시계는 결국 종료된다. 언제 인생이 끝났다는 벨이 울릴지 모른다.
아들 둘을 장가보내고 나니 청지기의 사명이 떠오른다. 자식에게 부모가 필요한 시기는 학교 교육이 끝날 때까지라고 한다. 동감한다. 환갑 이후 다시 세상에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새 인생 살아가려고 매일 남편에게 희망을 주고 위로도 하고 격려도 아끼지 않는다. 그러면서 나만을 위한 삶을 살겠다는 마음도 잃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