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숭인 지구 도시재생 이야기

기사입력 2017-12-05 15:16 기사수정 2017-12-05 15:16

▲재개발 대신 도시재생 사업을 선택한 창신·숭인동(박혜경 동년기자)
▲재개발 대신 도시재생 사업을 선택한 창신·숭인동(박혜경 동년기자)
얼마 전 필자는 창신·숭인 지구 도시재생을 알아보기 위해 이 동네를 찾았다. 창신동은 필자에게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동네다. 선머슴처럼 천방지축이던 중학생 시절과 꿈 많던 여고 시절을 창신동에 있는 학교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돈암동에서 보문동 신설동을 지나 숭인동까지 버스를 타고 통학했는데 학교 앞에서 내리면 잘 다려 허리 잘록하게 맵시 있게 입었던 흰색 교복이 마구 구겨져서 한동안 돈암동 집에서 창신동 언덕을 걸어 통학하기도 했다.

이 동네는 그렇게 세월이 흘렀는데도 골목마다 아직 친근함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필자가 다니던 학교는 너무 많이 바뀌어 안타까웠다. 담쟁이가 멋졌던 유서 깊은 빨간 벽돌의 아름답던 교정도 없어지고 학교는 강남으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학교가 있던 자리에는 유명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모두 사라져버린 듯 슬펐다.

이렇게 재개발로 큰 아파트 단지가 생겼지만, 근처 동네 분위기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50여 년 전에 있던 한의원 간판도 그 자리에 있었다. 꽤 높은 언덕 위에는 필자 친구 집이 있었는데 그 시절의 분위기가 여전히 느껴졌다. 무허가 집이 많았던 허름한 이 동네는 2000년대에 서울시 뉴타운으로 지정되었는데, 2013년 7개 구역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 속에 뉴타운이 해제되는 역사적인 상황이 벌어졌다고 한다.

재개발되면 깨끗하고 비싼 집에서 살게 될 텐데 왜 반대를 한 것일까? 거기에는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원주민 비율이 많은 이 동네에는 자기 집에서 세를 주어 경제적 효과를 보는 주민이 많았다. 그러나 재개발을 하게 되면 살던 집도 없어지고 새 집에 들어갈 부담금도 내야 하고 세를 받던 경제적 효과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몇십 년 동안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친하게 지내던 주민들과의 이별도 두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뉴타운을 반대했고 이후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지정되어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도시재생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마을 공동체의 활성화와 지속적 관리를 통해 도시환경을 개선하고 지역경쟁력을 확보해 삶의 질을 높이는 사업이다. 창신·숭인 지역 도시재생 사업은 노후주택 개량과 기반시설 정비, 공동시설 확충을 진행하며 이 지역의 특징인 봉제산업 활성화와 지역 명소를 발굴해 관광자원을 조성하고 있다. 아울러 성곽과 같은 역사적 자원과 공공미술, 예술·문화활동 장려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창신·숭인 지역에서 예술활동을 했던 분으로는 박수근 화백, 가수 김광석, 아티스트 백남준 외에도 훌륭한 예술가가 많다.

▲봉제거리임을 알리는 벽화(박혜경 동년기자)
▲봉제거리임을 알리는 벽화(박혜경 동년기자)

지역 주민 모두를 위한 문화, 소통, 창작의 공간으로 예술가와 전문가, 지역 활동가가 함께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창신소통공작소도 있고 봉제박물관도 건립 중이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봉제사업을 해온 분들의 이름과 회사명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명판도 눈길을 끌었다.좁은 골목길을 바쁘게 오가는 오토바이를 보며 활발한 생명력을 느끼기도 했다. 이들의 노고로 우리나라 봉제산업이 한층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백남준 기념관은 그가 살았던 집터를 매입해 그의 삶을 소개하고 있는 곳이다. 옆에 작은 카페도 있어 들러보면 좋다. 기념관으로 가는 골목 바닥에는 '내일,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라고 씌어 있다. 창신·숭인 지구 사람들의 내일도 더 행복하고 아름답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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