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금주

기사입력 2017-12-28 15:28 기사수정 2017-12-28 15:28

가족·친구들과 어울려 ‘송년주’ 한잔 나누기 딱 좋은 시기다. 헌데 나에게 지난 여름부터 금주령이 내렸다. 송년은 커녕 친구들로부터 외면당할 처지에 이르렀다. 친구들과 가끔 소주잔을 기울이는 나에게 ‘송년금주’는 어려운 숙제가 되었다. 술 배운 후 처음 맞는 이 난국을 이겨내고 금주에 성공할 수 있을까, 금주 금단증상은 얼마나 심할까 생각이 깊어갔다.

담배를 끊으면서 금단증상으로 엄청 고생했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다. 군대복무 시절 늦게 배운 담배가 제대 때는 골초가 되었다. 20여 년 전 어느 휴일, 친구와 등산을 마치고 ‘일요담배’를 맛있게 한대 피웠다. 헌데 월요일부터 생담배 타는 냄새 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악취가 코에서 진동하였다. 금연경험자가 ‘금단증상의 한 형태 같다.’고 말하였다. 손 떨림·체중증가·우울 등은 종종 들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담배를 한 대만 피워도 금단증상이 다시 처음처럼 강해진다.’고 하였다. 완전히 끊자 다행히 금단증상의 강도가 점점 낮아졌다. 10년 넘어 금연에 성공하였다.

금주를 시작한지 어느덧 몇 달 지났다. 군대생활 중에 발생한 발톱무좀을 치료하러 피부과 의원에 갔더니 “무좀약을 복용하는 동안에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고 의사가 말하였다. 발톱이 제 기능을 못하면 ‘관절손상이 크다’고 경고하였다. 발의 관절을 보호하고 건강을 유지하려면 이 기회에 완치하여야 한다. 치료를 하면서 금주를 시작하였다. 아직까지는 금단증상이 없어서 다행이다. 송년모임이 매우 허전하게 느껴졌다. 술잔을 돌리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들이 정겹게 보였다.

왁자지껄 떠드는 친구들의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나도 저랬을 텐데!’ 아름다운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학창시절 산행시작 때는 산에서 취사가 허용되었다. 석유버너에 불붙이는 방법을 익히고 코펠까지 준비한 다음에야 등산 패에 낄 수 있었던 옛이야기다. 몇 명이 어울려 각자 쌀·찌개거리·반찬을 가져와 합동취사를 하였다. 버너를 준비하여 밥을 짓고 찌개를 끓이는 담당을 하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고 술을 준비하였다. 한겨울에는 눈을 걷어내고 고기를 구워서 소주 한잔으로 추위를 달랬다.

세월이 지나면서 산에서 취사가 금지되고 정상까지 오르는 본격산행이 시작되었다. 도시락을 푸짐하게 준비하여 산상 뷔페식을 즐겼다. 덩달아 산술의 참맛을 알기 시작하였다. 계곡이나 식당에서 마셨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잔 술에 가슴이 탁 트이곤 하였다. 어려웠던 일을 다 잊을 수 있었다.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고 구름 위를 거닐었다.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고 간이 부풀었다. 발아래에 세상이 조개껍질처럼 엎드렸다. 술을 즐기지 않는 친구도 한모금쯤 입에 댔다. 술 향기에 취하고 흥에 겨웠다.

여기까지는 즐거운 추억이다. 옛날에는 등산복에 배낭 메고 나서면 놀러가는 한량으로 보는 경향이 일부 있었다. 이제는 산행이 단순한 놀이가 아니고 건강을 다지는 필수 운동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지금도 하늘을 날 것 같은 마음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능선 어려운 길을 멀리하고, 쉬운 둘레길을 찾는 횟수가 많아졌다. 대여섯 시간 산행이 두세 시간으로 확 줄었다. 정상까지 오르지 않던 옛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친구들도 막걸리 한잔을 입에 댔다 떼기를 반복하였다.

사회은퇴 후 사회평생교육장, 재능기부 봉사장에서 새로운 친구를 많이 만났다. 그들과는 학창시절의 동창이나 사회생활에서 만났던 동료들과는 또 다른 정을 느끼고 있다. 세상풍진을 털어내고 고향 뒤안길에서 만난 어릴 적 동무 같다. 누구의 손이라도 덥석 붙잡고 싶은 그런 송년이다. 텁텁한 막걸리 한사발이면 딱 좋을 것 같다.

헌데 송년금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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