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립극장 국악 표가 생겼는데 마침 그 날 다른 일이 있어 갈 수 없게 됐다. 요즘 공연표 가격이 보통 15만 원에서 20만 원이 넘기에 그냥 버리기엔 아까워 친구에게 양도했다. 며칠 후 공연을 보고 온 친구가 엄마를 모시고 다녀왔는데 너무 좋아하셨다며 고맙다고 했다. 그 친구는 요즘 연로하신 엄마의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실천하는 중인데 공연이 보고 싶다는 엄마의 소원을 하나 들어드리게 되어 정말 기쁘다 한다.
엄마에게 엄마의 버킷리스트가 뭐냐고 물었다. 그 친구처럼 엄마의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들어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버킷리스트가 뭐냐?”며 물어보는 엄마에게 하고 싶은 일을 정해서 실천하는 거라 했더니 이제 그런 거 없다며 쓸쓸히 웃는다. 아버지 살아계실 땐 여행도 자주 다니고 드라이브도 즐겼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한다.
엄마의 버킷리스트 하나를 알고 있다. 그녀가 젊었을 때 충청남도 서산 해미읍성 옆의 해미성당을 세우는데 성금을 낸 일이 있다. 성당 입구의 벽에 성금 낸 분들의 이름을 새겼다 한다. 당시 공사가 끝나고 신부님께서 성금 낸 신자들을 초청했는데 엄마는 그때 참석하지 못해서 항상 아쉽다고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그러면서 언제 한 번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항상 다음에, 다음에 하며 미루다가 아직도 모시고 가보지 못했다. 아마 엄마의 버킷리스트가 있다면 해미성당에 가서 새겨진 자신의 이름을 찾아보는 일일 것이다.
며칠 전 서산시 초청으로 지방 축제에 다녀왔다. 첫 번째 코스로 해미읍성을 돌아보았는데 그 읍성은 천주교 박해의 현장이었다. 지금은 깨끗하게 단장되어 사람들이 산책하고 놀러 나오기에 아주 좋았지만, 조선 대원군 시절 통상수교거부정책으로 외국문물을 받아들이지 않고 천주교도 서양문물이라 박해했는데 3000명의 천주교인을 이곳에서 고문하고 죽였다고 한다. 초록으로 물든 아름다운 해미읍성 안에서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해미성당은 읍성에서 5분 거리에 있다고 한다. 이곳에 오니 엄마 생각이 왈칵 떠올랐다. 이날 가볼 순 없었지만, 조만간 엄마 모시고 와 볼 곳이므로 눈여겨 주위를 살펴보았다. 더 나이 드시기 전에 꼭 해미성당에 모시고 가려 한다.
엄마의 버킷리스트 하나를 실천해 드리고 싶어 마음이 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