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을 받아들일 때 얻는 것들 나카무라 쓰네코, 오쿠다 히로미·북폴리오
90세까지 정신과 전문의로 활동한 나카무라 쓰네코와 현역 정신과 의사인 50대 오쿠다 히로미는 불안 없이 노년을 맞이하는 방법을 대화 형식으로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일론 머스크 월터 아이작슨·21세기북스
테슬라, 스페이스X, 트위터 등의 CEO 일론 머스크의 공식 전기다.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머스크의 모든 이야기를 담았다.
발학교 권택환의 맨발혁명 권택환·EBS BOOKS
대한민국 맨발학교 교장인 저자는 10년의 노하우를 풀어냈다. 맨발 걷기로 건강이 좋아지는 원리를 소개하며, 누구나 쉽게 맨발 걷기를 실천하도록 돕는다.
50, 이제 결혼합니다 백지성·오르골
일과 공부로 인해 50세에 결혼한 저자가 전하는 ‘만혼 에세이’다. 결혼의 본질 및 독신 문제, 중년 이후 행복한 삶과 결혼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았다.
손주를 돌보고 있거나, 아이를 부모님께 맡기고 있는 사람을 위한 ‘조부모·자녀 육아갈등 소통솔루션 通 하였느냐’ 강연이 열린다.
서초구가족센터와 서초여성가족플라자 방배센터가 오는 12월 13일 화요일 오후 3시, 7시(총 2부)로 나눠 서울교육대학교 에듀웰센터 컨벤션홀에서 서초구민 조부모와 부모를 대상으로 ‘조부모·자녀 육아갈등 소통솔루션 通 하였느냐’ 강연을 시행한다. 본 강연은 세대 간 양육 방법 차이로 인한 가족 간의 갈등 해결을 위해 마련됐다. 마련된 강연 중 1부는 조부모, 2부는 부모(성인 자녀)가 그 대상이다.
강연자로는 부모교육 전문가 임영주 박사가 나선다. 임 박사는 ‘하루 5분 엄마의 말 습관’, ‘우리 아이를 위한 자존감 수업’ 등의 저서가 있으며 세바시, EBS ‘부모’, ‘다큐프라임’ 등에 출연한 바 있다. 임 박사는 갈등으로 인한 아픔을 딛고 서로의 관점에서 소통하는 방법을 전하는 동시에 공통된 육아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참석을 원하는 서초구민이라면 서초구가족센터(02-576-2853)로 문의하면 된다.
자식 농사 끝. 자식의 자식 농사 시작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손주, 잘 키우는 데 힘을 보태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친구처럼 잘 지내던 모녀 사이도 아이를 맡긴 후로는 사사건건 갈등이다. 어려운 고부 사이엔 말 못 할 갈등이 켜켜이 쌓인다. ‘육아’라는 책임 아래, 부모와 조부모 사이 갈등을 줄이고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부모 육아는 맞벌이 부부에게 돌파구다. 외벌이 살림으로는 날로 증가하는 양육비를 감당하기 힘들고, 일을 계속하자니 믿고 맡길 만한 곳을 찾기 어려워서다. 손주를 돌보기로 한 할머니·할아버지라면, 육아에 돌입하기 전 짚을 부분이 있다.
세 번의 ‘사전 미팅’을 갖자
손주 육아의 근본적인 이유는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서’다. 아이를 소위 말하는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선 양육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이 우선이다. 임영주 부모교육연구소 대표는 조부모가 육아를 시작하기 전, 양육 부담을 짊어진 사람들이 모여 최소 세 번의 협상을 하라고 조언한다. 포용할 수 있는 정도의 육아 범위를 정하고, 양육관에 대한 생각을 미리 나누자는 의미다. 한 번의 만남으로는 그 숙제를 모두 매듭지을 수 없다. 두 번, 세 번 세부적인 의견을 제시하며 보완하는 편이 좋다.
협상 과정에서 자녀를 키우던 옛 기억을 되새기다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고, 자녀의 성장기에 나타났던 행동 과잉과 결핍을 예방할 수 있다. 감정이 상하기 시작하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할지도 모른다. 협의가 끝난 후에는 아이를 맡기는 사람과 맡을 사람 사이에 근로계약서를 작성해보자. ‘부모와 자식 간에 계약서라니, 너무 딱딱하고 서운한 절차가 아닐까?’라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엄마에게는 할머니의 노고를 존중할 수단이며, 할머니는 노후의 ‘활동’ 중 하나로 긍지를 가질 수 있다. 아무리 사이좋은 부모 자식 간이라도, 구체적인 조항 없이 시작하면 육아가 희생으로 번지기 십상이니 말이다.
가족 육아도 업무다
계약서에 포함해야 할 항목은 △계약 기간 △근무 장소 △업무 내용 △주 소정 근로 시간 △근무일 및 휴일 △임금 총 6가지다. 계약서는 1년 단위로 갱신하는 것이 좋다. 기한 없는 육아는 의욕과 책임감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조부모는 육아의 조력자로서 가장 기본적인 일만 맡는다. 때맞춰 해야 하는 식사, 약 복용, 낮잠 등을 챙기고, 아이의 청결을 유지하거나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선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혈연으로 맺어진 손주 육아에서는 ‘적정한 양육비 산정’이 더욱 중요하다. 임금은 가정의 상황에 따라 협의를 통해 책정하고, 육아의 대가로 받은 돈은 자신을 위해 쓰자. 아이를 위해 따로 지출해야 할 비용은 영수증을 청구하거나 전용 카드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주의할 점은 육아의 당사자가 ‘손주’라는 사실이다. 아이는 서너 살만 돼도 생각과 욕구가 있다. 게다가 제각기 기질이 다르다. 양육자끼리 합의됐다고 일방적으로 행하기 전에 아이와 의논하고, 아이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어른들의 입장을 전하면 아이는 스스로 판단할 시간을 갖게 된다. “엄마 아빠가 유치원에 꼭 가고 싶었는데 시간이 안 돼서 이번에는 할머니가 가실 거야. 괜찮니?”라거나, “아빠가 내일 행사에 못 가는 대신 오늘 저녁에 같이 놀이터에 가보고 싶다는 거지?” 등의 말로 일정을 명료하게 알리고, 아이가 처한 상황에 공감해주는 것이다.
노후의 자부심이 될 손주
조부모가 육아에 참여하게 되면, 조부모뿐 아니라 다른 구성원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조부모는 ‘육아 베테랑’으로서 인정받고, 건강한 일자리를 가질 기회가 된다. 조부모의 손에 자란 손주는 다양한 세대의 문화를 고루 경험하게 되고, 여러 사람과 교류하면서 사회성이 발달한다. 아이의 부모는 조부모와 양육관이나 육아 고충을 나누며 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 임영주 대표는 “마지못해 아이를 부탁하고, 어쩔 수 없이 황혼육아를 시작하기보다 협의를 통한 자율적 선택이 이뤄져야 한다”며 “기왕 하는 육아, 소통이 바탕이 된다면 할머니·할아버지는 물론 부모와 아이까지 3대가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이도 마찬가지다. 과거 한국 사회는 성역할의 고정관념이 비교적 뚜렷했고, 자녀 돌봄은 주로 여성의 일이라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자녀가 아이를 낳고, 맞벌이 부부 대신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게 되면서 할아버지도 할머니와 함께 손주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위기다. 임 대표는 “아이를 돌보면서 할머니는 예전에 몰랐던 배우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할아버지는 육아가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이었는지 깨닫는다”고 설명했다.
‘2022 브라보 마이 라이프 황혼육아 실태 조사’(55~69세 황혼육아 조부모 302명 대상, 한국리서치)에 따르면, 응답자의 72.2%가 ‘비자발적으로 육아에 참여했다’고 답했다. 시작은 선택이 아니었을지라도 손주의 성장이 노후의 행복 중 하나이자, 자부심이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도움말 임영주 부모교육연구소 대표
부모 교육 및 가족 소통 전문가. 유아교육기관 자문위원, EBS 교육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러 공공기관에서 부모와 아이의 행복, 가족 소통을 주제로 강연하고, ‘임영주 부모교육연구소’를 통해 전화 상담을 진행한다. 저서로는 ‘나는 왜 아이와 말할 때 화가 날까’, ‘아이의 사회성 부모의 말이 결정한다’, ‘엄마, 내 아이를 부탁해’ 등이 있다.
| 언론진흥재단 지원 특별기획 4부작 | 요람에 흔들리는 노후
본지는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저출산 고령화 시대 황혼육아 문제 해법 제시를 위한 특별 기획 '요람에 흔들리는 노후'를 4개월에 걸쳐 연재로 발행합니다. 제1부 '서베이로 본 황혼육아 현주소', 제2부 'K-황혼육아 정책 어디까지 왔나?', 제3부 '독일ㆍ영국 황혼육아 선진 사례', 제4부 '금빛 황혼육아로 가는 길' 순서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해당 기사는 오프라인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온라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 홈페이지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서울특별시교육청 공식 유튜브에 ‘조부모참견시점’이라는 교육 콘텐츠가 올라왔다. 손주 육아를 위해 배움을 마다치 않는 요즘 조부모 세대를 겨냥한 것이다. 기본적인 육아 방법부터 인성 교육, 소통 기술 등을 비롯해 조부모의 심신 건강 솔루션까지, 손주 돌봄 관련 다양한 프로그램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주목받는 황혼육아 프로그램과 더불어 참여자들의 이야기까지 함께 들여다본다.
취재 협조 및 장소 제공=광진구육아종합지원센터
◇황혼육아 그룹 인터뷰 참여자들
ㆍ최영숙(63) 6살, 2살 두 명의 손주를 함께 케어하는 육아 베테랑이다. 노후에 다소 여유로워진 시간을 육아로 힘들어하는 자녀들을 위해 손주 돌봄에 할애하기로 했다.
ㆍ김혜경(74) 손주의 등교 전, 하교 후 부모의 돌봄 공백을 든든하게 채워주고 있다. 오히려 요즘은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손주에게 배우는 점도 많단다.
ㆍ송영희(68) 어린이집, 유치원 등 보육시설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가 우려돼 직접 손주를 돌보게 됐다. 자신 역시 과거 자녀들을 조부모에게 맡겼던 경험이 있다.
ㆍ윤옥경(64) 맞벌이인 아들과 며느리를 돕기 위해 2년 전 황혼육아에 뛰어들었다. 남편 또한 교육에 관심이 많아 함께 손주 육아에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다.
최근 지자체 및 민간 기관 등을 통해 조부모를 위한 교육이 활발하게 생겨나고 있다. 기존에 부모와 아이 대상 프로그램 위주였던 광진구육아종합지원센터의 경우에도 올해 황혼육아 대상자를 위한 특별 수업을 열었다. 송영희 씨와 윤옥경 씨가 참여한 7월 ‘지혜로운 조부모의 육아법’을 시작으로 9월 ‘즐거운 조부모 놀이법’ 등을 펼치며 지역 조부모들에게 유익한 강의로 호평을 얻었다. 프로그램 내용을 살펴보면 ‘손자녀 개월 수에 따른 놀이법’, ‘오감발달 신체 놀이법’ 등 아이들을 위한 부분도 있지만, ‘스트레스 없는 손주 육아 비법’, ‘조부모의 몸과 마음 챙김’ 등 조부모를 배려한 구성도 눈에 띈다.
최영숙 씨가 참여한 ‘손주돌보미 양성교육’의 경우 구 단위로는 유일하게 조부모 교육과 더불어 이수자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형태로 주목받고 있다. 총 25시간 교육을 이수하면 매달 30만 원을 지원받는다. 올해 교육은 총 11과목으로 ‘영아 발달의 이해’를 비롯해 ‘베이비 마사지’, ‘스마트폰 과의존 예방 교육’, ‘아동 인성지도 및 성교육’ 등으로 다채롭게 마련됐다.
김혜경 씨가 참여한 강남구 못골도서관의 ‘황혼육아 마스터 프로젝트’도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조부모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6월부터 9월까지 운영했는데, 도서관이라는 특성에 알맞게 그림책을 활용한 육아 기법을 전수했다. 아울러 창의 미술, 음악 놀이, 오감 놀이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아이뿐만 아니라 조부모의 뇌 건강과 인지력 향상에도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수강생들에게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Topic 1 황혼육아 프로그램 및 정책
Q 황혼육아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유는무엇인가요?
옥경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더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잘 육아할 수 있을까, 공부하는 마음으로 참여했어요. 남편도 함께 수업을 들었는데, 너무나 즐겁고 유익했습니다.
혜경 남편이 치매를 앓고 있어서 손주 돌보는 시간 외에는 남편을 케어했어요. 근래에 남편이 데이케어 센터에 다니면서 내 시간이 좀 생겼어요. 덕분에 도서관에도 가고 거기서 하는 황혼육아 프로그램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영희 저희 아이들도 조부모님 손에 컸어요. 그 영향인지 다들 예의도 바르고 인성도 훌륭하게 잘 큰 것 같아요. 저도 우리 손주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서 이런저런 정보를 보던 중에 강의도 듣게 됐습니다.
Q 황혼육아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영희 조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육아 교육은 참 좋다고 생각해요. 무슨 교육이 있다고 하면 필히 가보고 싶고, 알고 싶어요. 우리 손주를 어떻게 관찰하고 육아를 해야 할지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잖아요. 다만 기간이 조금 짧다고 생각해요. 한두 번으로는 부족해요.
영숙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홍보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주면 사람들도 많이 올 테고, 같은 입장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겠죠. 그리고 EBS 같은 공영채널에서 손주 연령별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줬으면 좋겠어요.
혜경 저희 손주는 초등학생이에요. 요즘 교과서는 옛날과 다르게 수준이 많이 높아졌더라고요. 우리 애 숙제라도 도우려면 내가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하죠. 물어보는 데 모른다고만 하면 대화 자체가 안 되니까요. 육아 교육이 아니더라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지적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교육도 많이 만들어줬으면 해요.
Q 구체적으로 원하는 형태의 프로그램이 더 있다면요?
영희 이론 교육도 좋지만 몸으로 하는 놀이를 알려주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과거 세대가 즐겼던 오자미(헝겊에 콩이나 모래를 넣어 만든 주머니) 던지기 같은 것은 우리 세대도 재밌고, 손주들에게는 새로울 테니 그 나름대로 즐겁잖아요.
옥경 저희 집 애도 요즘 오자미로 촉감 놀이를 하고 있어요. 그게 아이들 발달에 그렇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Q 서울시 육아 조력자 수당에 대해 알고 있나요?
영숙 손자 손녀를 안 봐주려는 조부모들도 있는데, 수당을 준다고 하면 아무래도 자녀를 도우려는 사람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요.
혜경 수당이 얼마인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지원해주는 손주 연령대가 너무 낮은 것 같아요. 아이가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로 올라갈수록 육아 부담은 더욱 커지는데 말이에요.
영희 육아 수당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정부에서 황혼육아를 하는 조부모들을 신경 써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라고 봐요. 더불어 이 정책을 모르는 분들과도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육아하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옥경 수당에 대해서는 처음 들어봤는데요. 생각은 해보지 않았지만 준다고 하면 받아야죠.
Topic 2 우리들의 황혼육아
Q 어떤 방법으로 육아 정보를 얻나요?
옥경 주로 유튜브나 책을 참고해요. 사례도 다양하고 전문가 의견도 많거든요. 공부한 내용을 노트에 적어 요약본을 만들어 자녀들에게 주기도 했어요. 어떻게 해야 우리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항상 그 고민을 하고 있어요.
영희 저는 ‘금쪽같은 내 새끼’를 많이 봐요. 오은영 박사님 말씀은 항상 육아에 도움이 돼요.
Q 내가 하는 육아 방식을 자녀가 틀렸다고 지적한다면?
옥경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지내면 아이들 정서 발달에 큰 보탬이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애들 엄마, 아빠의 의견을 따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요즘 젊은 부부들이 똑똑해서 잘못된 정보로 육아하지도 않고요.
영희 우리 세대의 방식을 고집한다고 아이들이 말을 잘 듣는 게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제가 자녀를 키울 때는 ‘안 돼’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오 박사님이 부정적인 언어는 아이 성향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씀하시는 걸 봤어요.
옥경 맞아요. 내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그 고집에서 갈등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그냥 나도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빨리 고치는 게 서로한테 좋다고 생각해요.
Q 자녀를 육아할 때와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옥경 자녀를 키울 때는 제가 주 양육자여서 그런지 여유가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부 양육자니 부담이 덜하고, 내 생각대로 하는 게 없어서 오히려 편해요. 손주도 너무 예쁘고요. 부모 자식 간 관계도 예전보다 더 좋아졌어요.
혜경 젊을 땐 직장 생활을 했으니 거의 방치하면서 아이들을 키웠어요. 늦게 퇴근해서 제대로 돌봐주지도 못하고. 애들 볼 때마다 미안해요. 손주 육아를 할 때는 제 주관을 고집하기보다 자녀들이 부탁하는 방식대로 해주죠.
영숙 저는 애들을 굉장히 엄하게 키웠어요. 바르게 자라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손주들에게는 부드럽게 하려고 노력하고, 자식들이 손주를 혼내는 것 같으면 오히려 그러지 말라고 말리는 편이에요.
영희 다들 그때는 부모가 처음이었으니까요. 서툴 수밖에 없었죠.
영숙 사회적 분위기도 그랬어요. 우리 세대는 자식들에게 ‘뭐든지 열심히, 최선을 다하라’고 가르쳤어요.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제가 보기엔 손주가 저 나이쯤 되면 해야 하고 밟아야 할 단계가 있는데 말이죠. 자녀들은 아이가 하고 싶다고 의사 표현을 할 때까지 기다리거나, 아이에게 의견을 묻더라고요. 억지로 시키려고 애쓰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난다나요.
옥경 지금은 할아버지들도 손주 돌보는 데 참여를 많이 하잖아요.
영희 맞아요. 우리 손주는 요즘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남편한테 “할비, 할비” 하면서 그렇게 할아버지를 따라다녀요. 그러니까 남편도 손주를 더 예뻐하죠.
Q 손주를 돌보면서 즐거울 때는 언제였나요?
혜경 우리 할머니 항상 고맙다고 편지를 써주더라고요. 뒤쪽에 그림도 열심히 그려가지고. ‘어른돼서 맛있는 것 사드릴게요’라는 문구도 너무 기특했어요. 그걸 코팅해서 아직도 가지고 있죠.
영희 우리 손주가 “할미, 할미” 하면 피곤했던 것도 싹 가셔요. 애 돌볼 맛 난다 싶어요. 물론 체력적으로 한계가 올 때도 있어요. 삶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어떻게 좋은 일만 있겠어요. 그래도 좋은 일이 많으니 행복하게 지내려고 해요.
영숙 저도 같은 맥락인데요. 손주가 제 얼굴을 보고 반갑다며 팔짝팔짝 뛸 때 너무 예뻐요.
옥경 편지는 정말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 언론진흥재단 지원 특별기획 4부작 | 요람에 흔들리는 노후
본지는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저출산 고령화 시대 황혼육아 문제 해법 제시를 위한 특별 기획 '요람에 흔들리는 노후'를 4개월에 걸쳐 연재로 발행합니다. 제1부 '서베이로 본 황혼육아 현주소', 제2부 'K-황혼육아 정책 어디까지 왔나?', 제3부 '독일ㆍ영국 황혼육아 선진 사례', 제4부 '금빛 황혼육아로 가는 길' 순서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해당 기사는 오프라인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온라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 홈페이지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박정숙(52)은 세계스마트시티기구 WeGO의 사무총장이다. 어딘가 낯이 익은 것 같다면 아마 방송인으로 활동한 이력 때문일 것이다. 아침방송을 비롯해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MBC 드라마 ‘대장금’에 중전 역할로 출연하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방송에서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그녀가 돌연 미국 유학길에 올랐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녀를 떠나게 만들었을까. 방송인에서 행정가가 되기까지, 도전과 변화를 거듭한 박정숙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1990년대 대한민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 1993년 대전엑스포 개최라는 굵직한 역사를 썼다. 냉전 시대의 종식을 알리는 동시에 해외 진출의 길이 열렸다. 당시 영국의 팝, 일본의 만화 등 외국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대학생 박정숙의 가슴은 두근두근 뛰었던 것 같다.
어린 박정숙은 아나운서 출신 김연주를 롤모델로 삼았다. 88서울올림픽 당시 ‘우정의 사절단’ 홍보대사를 맡고, 이후 전문 MC의 길을 걷는 그녀의 행보가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박정숙은 1993년 KBS에서 선발한 대전엑스포 홍보대사에 지원해 합격했다. 이후 엑스포와 대한민국을 알리는 외교사절단으로 활약을 펼쳤다.
“당시만 해도 한국이라는 나라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죠. 대학생 홍보대사 선발 과정은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KBS에서 방송됐어요. 지원 조건은 준수한 외모에 외국어 두 가지 이상 할 줄 아는 대학생이었죠. 총 300명 정도 지원했던 걸로 기억해요. 최종 세 명이 뽑혔고, 그중 한 명이 저였죠. 해외에서 온 기라성 같은 친구들이 많았는데, 저는 대학교 2학년 때 EBS에서 학생 리포터를 한 방송 경력이 있어 운 좋게 선발됐어요.”
박정숙은 대전엑스포 홍보대사부터 Wego의 사무총장까지, “가장 트렌디한 조직에서 일할 기회가 계속해서 주어진 것 같다”면서 운이 좋았다고 자평했다.
“엑스포 홍보대사 활동으로 세계를 돌아다녔고, 그 다음에는 아침방송을 10년 동안 했죠. 사실 아침방송이 그전까지는 독립적인 프로그램이 아니었어요. 저는 아침방송이 완전히 꽃을 피울 때 진행자를 맡은 거죠. ‘대장금’도 우연히 한 건데 그 즈음 한류가 꽃피었고요.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의 한국 대표, Wego의 사무총장도 중요한 시점에 맡았다고 생각해요.”
‘대장금’과 한류 전도사
박정숙은 KBS 엑스포 특별 생방송 진행을 잘 소화해낸 덕에 SBS 특채 MC가 됐다. 이후 그녀는 SBS ‘출발 모닝 와이드’, MBC ‘아주 특별한 아침’ 등 아침방송을 10년 넘게 진행했다. 단아하고 편안한 이미지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전문적인 진행 실력을 뽐내 아나운서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당시 그녀의 목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끝내주는 모닝 쇼 호스트’였다. 매일 새벽 세시에 일어나고 진행자로서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자신의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가던 그때, 박정숙을 힘들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MBC ‘토크쇼 임성훈과 함께’의 MC를 맡게 되면서다.
박정숙이 합류하면서 원래 30분짜리였던 프로그램이 2시간짜리 프로로 업그레이드됐다. 그러나 당시 방송환경 탓에 그녀의 이름 석 자를 프로그램 제목에 올릴 수 없었다. 제작진은 그녀를 파격적인 대우로 캐스팅했지만, 박정숙은 여성 MC로서 한계를 느꼈다. 그녀는 방송인으로서 성공했지만,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자괴감만 느끼던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자포자기 심정으로 진행을 하고 있을 때, 박정숙은 이병훈 PD로부터 ‘대장금’ 출연 제의를 받았다. 그녀의 단아한 이미지가 문정왕후 역할에 딱 맞다고 이 PD는 생각했다. 박정숙은 경험 삼아 연기를 하게 됐는데, ‘대장금’은 시청률 50%를 돌파하고 한류 드라마로 등극했다. 드라마의 인기는 그녀가 방송계를 떠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드라마를 잠깐 한 6개월 했나,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저는 그냥 원 오브 뎀(One Of Them), 그 많은 연예인 중 하나가 돼 있었어요. 제가 생각했던 삶의 터전을 스스로 바꿔버린 거죠. 제가 꿈꾸던 MC로서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너무 힘들었고, 연예계를 떠나서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장금’을 안 했다면 유학을 안 갔을 것 같아요.”
2004년은 ‘대장금’이 종영한 때이면서 박정숙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해다. 당시 그녀 나이 34세. 박정숙은 아직 자신이 모르는 것이 많고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느꼈다. 그녀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관계와 미디어를 전공하고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장금’의 파워는 실로 대단했다. 외국에서 박정숙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고, 그녀는 한류를 몸소 느꼈다. 이에 박정숙은 문화 콘텐츠가 국경을 넘어 전달됨으로써 국제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했다. 2007년에는 가수 박진영과 하버드대학교에서 한류에 대한 심포지엄을 열었고, 미국 PBS에서 방영된 김치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는 한류 전도사로 우뚝 섰다.
백신에서 스마트시티로
박정숙은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박정숙은 2008년부터 대학교 강단에 섰다. 2010년에는 TBS 교통방송의 시사 프로그램 ‘박정숙의 오늘’을 통해 5년여 만에 방송 활동을 재개했으며, YTN, EBS 등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현재는 방송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교수 겸 방송인이 된 박정숙. 더불어 그녀는 2008년 다문화 아동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후원 단체 호프키즈를 창단해 10년 넘게 운영했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는 국제기구인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의 한국 대표로도 활동했다. 박정숙은 팬데믹이 올 것을 예상했다고.
“GAVI는 빌 게이츠가 주도적으로 만든 조직이고, 다보스 포럼에서 만들어졌어요. 그걸 보면서 이제 국제기구는 더 이상 UN 같은 국가 중심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나 어젠다(Agenda, 의제)를 통해 움직이겠구나 느꼈어요. 제가 GAVI의 한국 대표를 10년 동안 하면서 한국이 아시아 최초의 백신 공여국이 되었는데, 기뻤죠. 아쉬운 점은 접촉성 전염병에 의해 팬데믹이 올 것이라는 신호가 계속 있었는데 우리의 관심이 부족했다는 거예요. 그런 걸 캐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처럼 박정숙은 방송 활동 덕에 언론과 홍보에 능한 한편, 세계백신면역연합 한국 대표로 활동하면서 이룬 성과를 인정받아 2021년 9월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의 사무총장으로 임명됐다.
WeGO는 정보통신기술(ICT)를 활용해 세계 도시 및 기업 간 스마트시티 협력과 교류를 촉진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서울시가 2010년 9월에 창립한 국제 협의체다. 창립 당시 50개 도시로 출발해 현재는 200개 넘는 도시, 기관, 기업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사무총장이 된 지 6개월이 지난 박정숙은 업무에 적응하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국제기구이다 보니 회의 시간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할 일이 정말 많다고 한다. 더불어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WeGO의 사무총장이 된 그녀는 자긍심과 책임감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
“제 임기는 3년이지만, WeGO가 10년 후에는 스마트시티의 UN 같은 단체가 될 수 있도록 초석을 다져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6개월을 돌아보면, 코로나19로 대면은 못 했지만 스마트 기기로 해외 각국과 자주 소통했어요. 해외의 많은 분들이 스마트시티에 대한 지식 공유라든지 새로운 프로젝트 개발을 위해 저를 찾는데요. 그런 면에서 큰 가능성을 본 6개월이었던 것 같아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서울이 스마트시티로서 굉장히 앞서 있고 전 세계에서 최고라고 하는데 정작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무총장으로서 박정숙의 목표는 ‘스마트시티에 대한 어젠다 세터(Agenda Setter, 의제 설정자)가 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디지털 세상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 편리한 세상을 만들고 싶고, 효율적인 스마트 행정을 많이 해서 WeGo를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모든 게 스마트화됐고, 스마트시티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죠.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6년 전에 만들어지긴 했지만, 너무 준비 없이 갑자기 우리에게 닥쳐버렸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생겨나는 부작용으로 디지털 소외도 있고, 딥페이크, 피싱, 디지털 성범죄 등의 범죄 문제도 있는 거죠. 그래서 WeGO 사무국에서는 윤리, 규범 등이 제대로 체계화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는 정책이 필요하죠.”
워킹맘, 그리고 미래
다른 나라는 여성 리더가 국제기구를 맡는 경우가 많은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다. 박정숙은 “사무총장이 여자라고 하면 그 나라의 이미지를 매우 좋게 본다고 한다. 그래서 더 잘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박정숙은 사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무총장이 될 때 제약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남편 이재영이 국회의원이었기 때문에 편견 어린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박정숙은 2012년 5살 연하의 이재영과 결혼했다. 사실 이재영은 박정숙이 사무총장이 되기 전에 정치계를 떠나 교수도 하고 스타트업도 운영하고 있지만 말이다.
“제 경력이라면 WeGo의 사무총장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남편이 국회의원 출신이니까 누구의 부인이라서 선발됐다는 얘기가 나온 거죠. 저는 또 박정숙이 아닌 이재영의 아내가 된 거예요. 소문낸 그분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싶었지만, 조직의 장으로서 조직에 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 참았죠.”
30년 커리어를 무시당한 기분을 느꼈다는 박정숙은 “심지어 아들을 임신했을 때도 쉬지 않고 일했다”고 강조했다. 2013년 낳은 아들은 벌써 초등학교 3학년이 됐다. 일과 가정을 분리하고 싶지만, 아들과 연락이 안 되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워킹맘의 고충이다. 더불어 학구열이 높은 엄마는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 궁금했다.
“저는 사교육에 너무 매몰되어 있는 우리나라 교육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이를 학원에 많이 보내지 않아요. 다만 영어, 체육, 코딩은 열심히 배우게 하고 있어요. 저는 무엇보다 아이가 자신감 있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어요. 자신감만 있다면 세상이 별로 두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사실은 특별히 사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유학도 서른 넘어서 갔지만 아이비리그에 갔고, 지금 국제기구에서 일하잖아요. 자신감이 있으면 뭐든 할 수 있기 때문에 부모가 자신감을 키워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박정숙의 지난 30년을 돌아보니 혜안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 이전에 세계백신면역연합의 한국 대표를 맡았고, 석사 전공을 보면 스마티시티가 도래할 것을 예견한 것만 같다. 이처럼 시대를 읽는 눈을 가진 박정숙. 그녀는 앞으로의 미래를 내다보며 윗세대는 창직을, 젊은 세대는 창작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와 같은 50대가 세상의 메커니즘을 캐치하고 자신의 경험치를 발휘한다면 최고의 경쟁력을 갖지 않을까 생각해요. 윗세대가 창직을 하는 리드 그룹이 된다면, 젊은 세대는 창작을 해서 새로운 걸 구현해내는 거죠. 메타버스 하면 우리는 어렵게 느끼지만 젊은 세대는 쉽게 만들 수 있거든요. 스마트시티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고 새로운 직업도 정말 많아요. 그런데 젊은 세대가 그냥 대기업에 들어가려고 하고, 공무원이 되려고 공부하는 모습이 안타까운 거예요. 그래서는 앞서가기가 어렵다는 거죠.”
박정숙은 참 솔직하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배움으로 채워나갔다. 그러면서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그 자신감을 놓지 않고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녀는 그 경험이 모여 현재의 여성 리더까지 됐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인품이 훌륭한 사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박정숙. 다음에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지 궁금하다.
바야흐로 'OTT 춘추전국시대'다. 좋아하는 방송을 ‘본방사수’하기 위해 TV 앞에 앉는 것이 특별한 이벤트가 될 정도로, 언제 어디서든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원하는 콘텐츠를 선택해 보는 것이 일상이 됐다. 넷플릭스, 왓챠, 티빙 외 최근 디즈니+와 애플TV+ 등 글로벌 OTT(Over-the-Top, 인터넷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들도 국내 출시를 본격화하면서 OTT 서비스 구독자도 크게 늘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중장년층 역시 OTT를 적극 이용하고 있다. 5060 세대 라이프 스타일 조사 플랫폼인 ‘에이풀’에 따르면 8월 13일~8월 27일까지 50세 이상 264명을 대상으로 ‘5060 세대의 OTT 서비스 이용률’을 조사한 결과, 65%인 10명 중 6명 이상이 OTT 서비스를 이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OTT 서비스 브랜드에 대한 질문에 ‘넷플릭스’가 46%로 1위를 확인됐다. ‘웨이브’,‘티빙’이 14.3%, ‘유튜브 프리미엄’ 11.1%로 뒤를 이었다.
넷플릭스는 현재 가장 유명한 OTT 서비스로서 많은 중장년층의 선택을 받고 있지만, 다양한 플랫폼이 출시돼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자신의 취향에 맞는 OTT를 선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OTT 구독의 가장 큰 기준은 '어떤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가'다.
OTT의 대명사, ‘넷플릭스’
2016년 한국 시장에 진출한 넷플릭스는 가장 오래된 OTT 플랫폼이자 'OTT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넷플릭스의 성공을 이끈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히는 것은 바로 장르 불문 다양한 콘텐츠다. 영화와 드라마는 물론 예능,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를 제공한다.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 역시 넷플릭스에 인기를 더한다. 콘텐츠 투자에 아낌이 없는 넷플릭스는 '킹덤', 'D.P.'에 이어 최근 '오징어 게임', ‘지옥’이 전 세계에서 '잭팟'을 터트렸다.
오리지널 콘텐츠와 전 세계 다양한 국가의 콘텐츠가 넷플릭스의 큰 장점이지만 국내 콘텐츠에서는 약세를 보인다. 특히 영화나 드라마를 제외한 예능 프로그램 등 다채로운 장르의 콘텐츠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아울러 ‘마블’이나 ‘해리포터’ 등 큰 팬덤을 지닌 유명 시리즈들도 넷플릭스엔 없어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콘텐츠는 많지만 정작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콘텐츠는 없어서다.
이 영화가 있다고? ‘왓챠’
상대적으로 큰 규모의 최근 콘텐츠를 다수 보유한 넷플릭스와 달리, 타 플랫폼에 없는 다양한 영화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왓챠의 차별화된 장점이다. 쉽게 보기 어려운 독립영화나 해리포터, 홍콩영화, 2000년대 인기 드라마‧예능 등 매니아 층이 두터운 콘텐츠를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인기 유튜브 콘텐츠 ‘좋좋소’, ‘가짜사나이 시즌2’ 등 인기 유튜브 콘텐츠도 제공하고 있다.
고전 영화 등 쉽게 보기 어려운 콘텐츠를 보유했지만 아쉽게도 최신작은 부족한 실정이다. 큰 규모의 대형 콘텐츠나 최신작보다는 고전 영화나 독립영화, 단편영화 등의 취향을 가진 이용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지상파 방송이 보고 싶다면, ‘웨이브’
2019년 국내 OTT 시장에 뛰어든 웨이브는 SK텔레콤의 옥수수(Oksusu)와 지상파 3사의 푹(POOQ)이 합쳐져 탄생한 서비스로, 지상파 3사와 종합편성채널(JTBC 제외)의 콘텐츠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무한도전·1박2일·런닝맨 등 인기 지상파 예능을 즐기거나 Quick VOD를 통해 실시간 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다만 다양한 콘텐츠로 국내 콘텐츠 트렌드를 이끄는 JTBC와 tvN의 콘텐츠를 보유하지 않았다는 것은 웨이브의 치명적인 단점이다. 또 충성도 높은 시청자층을 보유한 스포츠 채널 역시 서비스하지 않는다.
CJ, JTBC 콘텐츠를 원한다면, ‘티빙’
국내 최장수 OTT 서비스인 티빙은 웨이브에서 볼 수 없는 CJ ENM과 지상파 방송 등 케이블 TV 채널, 그리고 JTBC의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다. tvN, Mnet, On Style, Olive, OCN 등을 포함한 CJ 계열사 채널과 JTBC, EBS, YTN, 연합뉴스 등 38개 채널의 콘텐츠를 실시간 및 다시 보기가 가능하다. CJ 계열 영화의 업로드가 빠르다는 것도 티빙의 큰 장점이다. 최근에는 ‘환승연애’, ‘유미의 세포들’, ‘술꾼 도시 여자들’ 등 오리지널 콘텐츠로 트렌드를 이끌며 눈에 띄는 성과도 내는 중이다. 반면 CJ ENM 콘텐츠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그 외 다른 콘텐츠는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다.
디즈니‧마블 마니아라면, 디즈니+
지난 12일부터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 디즈니+는 LG유플러스와 손잡고 국내에 발을 디뎠다. 넷플릭스가 새로운 콘텐츠 부분에서 우리를 즐겁게 했다면, 디즈니+에는 그동안 우리를 즐겁게 했던 익숙한 콘텐츠가 있다. 디즈니, 픽사, 마블,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디즈니 브랜드’의 각종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을 전부 볼 수 있다. 특히 어벤져스, 스타워즈 등 국내 많은 팬을 보유한 유명 시리즈 물을 보유해 국내 출시 전부터 많은 팬의 기대를 받은 바 있다.
애플 오리지널 콘텐츠만, ‘애플 TV+’
애플TV+는 지난 4일 SK브로드밴드와 손잡고 한국에 진출했다. 언제나 평범함을 거부하는 애플은 이번에도 색다른 행보를 선보였다. 콘텐츠의 양이 인기와 직결되는 것처럼 모든 OTT 플랫폼이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자 애를 쓴다. 하지만 애플TV+는 ‘애플 오리지널 콘텐츠’만으로 운영하겠다는 방침으로 “양보다는 질로 승부보겠다”라는 의사를 내비쳤다. 애플TV+가 한국에 론칭하면서 내세운 한국 오리지널 작품인 ‘닥터브레인’으로 국내 이용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그 외 눈길을 사로잡는 콘텐츠를 찾기는 힘들고 자체 콘텐츠 라인업은 타 플랫폼보다 현저히 적다. 콘텐츠 확보는 애플 TV+의 큰 숙제로 보인다.
이 밖에도 ‘HBO맥스’, ‘아마존프라임비디오’ 등도 한국 진출 시점을 점치고 있어 OTT 서비스의 치열한 경쟁은 앞으로도 지속할 전망이다. 국내 OTT에 이어 글로벌 OTT의 한국 진출도 가속화하면서 소비자들은 여느 때보다 방대한 콘텐츠에 둘러싸이고 있다.
문제는 각 플랫폼마다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가 달라 OTT 플랫폼 다양화로 구독료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탓에 일각에서는 절약 차원에서 모르는 사람과도 계정을 공유하는 이용자들이 많아지고, 최근엔 계정 공유를 안전하게 중개해 주는 업체까지 다수 등장하는 상황이다.
그녀는 일종의 구원이었다.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여러 모임에 끌려다녔던 시절, 자리에 빈 병이 하나둘씩 늘어나면 신입생은 순서대로 일어나 노래를 한 곡씩 뽑아야 했다. 흥이 나는 노래는 잘 몰랐지만, 평소 즐기는 노래가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당신의 의미’를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인연은 인생의 주요한 길목에서 계속 힘이 되어줬다. 어려서는 이 노래의 주인이 누구인지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가수 이자연을 만나기로 했을 때, 혼란스러웠던 시절 힘이 되어주었던 이 노래에 대한 감사 표시는 하고 싶었다. 그간의 도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이자연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발견한 한 가지 특징은 바로 ‘가족’에 대한 것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그 애틋한 마음을 오래 품고 살아서인지, 그녀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 고마운 사람들을 가족에 비유하기를 즐겼다.
형제애로 다져진 나훈아와의 인연
일본에서 활동할 때 NHK 한국어 프로그램 출연의 계기가 된 재일교포 민단에서 활동하던 언론인을 ‘일본 아버지’라고 부른다. ‘일본 엄마’는 두 분이나 계신다. 4년간이나 이어졌던 일본 생활에 힘이 됐던 사람들이다. 아직 생존해 계신 일본 엄마는 여전히 안부를 챙길 정도다.
또 다른 가족 중에는 가요계의 거목 ‘나훈아’가 있다. 그녀는 “아마 전생에 형제였을 것”이라 표현한다.
“1982년 길옥윤 선생님 소개로 한일친선협회 일본 공연에 합류하게 됐어요. 거기서 나훈아 선배님을 처음 알게 되었고요. 무명이었던 제가 두 분께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요. 나중엔 선배님과 반반씩 나눠 공연할 정도가 됐으니까요. 나훈아 선배님과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많은 빚을 지고 있죠.”
일본 공연이 끝나던 1986년 이자연은 나훈아에게 큰 선물을 받았다. 온 국민이 손뼉 치며 불렀던 그 노래 ‘당신의 의미’다. 애초에 이 곡은 나훈아가 1969년 발표했던 ‘내 당신’이 원곡이다. 개사를 거치고 제목까지 바뀌었으니 ‘감히 나훈아의 곡을 개사했다’는 오해도 받았다.
“처음엔 신곡인 줄 알았어요. 나훈아 선배님이 주신 곡이라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죠. 이 곡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개사된 곡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죠. 선배님이 여자 노래로 가사를 바꿨다고 설명해주시더라고요.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아서, 나중엔 ‘내가 더 잘 불렀다’고 농을 할 수도 있었어요.”
실제로 나훈아와의 인연은 그녀가 ‘가족’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사나이 눈물’ 역시 나훈아가 불렀던 곡을 다시 받아 발표한 것이고. ‘서울나그네’는 나훈아가 작곡한 다음 날 이자연에게 곡을 소개했다가 주인이 바뀌었다. 그녀는 당시 상황을 “빼앗다시피 졸라 곡을 얻어왔다”고 표현했다. 이자연의 곡 ‘만남과 이별’, ‘백세시대’, ‘친구야’를 만든 작곡가 박성훈도 나훈아를 통해 알게 된 인연이다.
“남들은 선배님 얼굴 한 번 보려고 티켓 구하느라 분주하고 암표도 사는데 저는 옆에서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어 늘 감사해요. 대한가수협회 회장이 되고 나서 인사드리러 갔을 때는 협회 발전기금까지 주셨으니까요. 선배님의 제자로 데뷔 때부터 계속 도움만 받으며 살고 있어요. 선배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살아요.(웃음)”
잊지 못할 인생의 버팀목, 아버지
그 많은 아빠와 엄마, 오빠와 언니 가운데 지금까지 그녀를 지탱해주는 기둥이 한 사람 있다. 진짜 가족, 바로 아버지다. 그녀가 중학생 신분으로 1973년과 1974년 지역 MBC와 KBS 노래자랑에서 최고상을 연이어 수상하고, 음반 취입까지 이뤄졌을 때 아버지는 한탄했다. 자신의 딸이 딴따라가 돼서도 아니고, 당신이 희망하는 직업을 갖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그저 자식의 재능이 빛나는 분야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이었기에 맘껏 지원해줄 수도, 맘 편히 응원할 수도 없어서 한스러웠다. 반대할 수밖에 없었고, 걱정은 어느 날 현실이 됐다. 성인이 된 이자연의 가수 선언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본격적으로 활동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죠. 늘 무대를 꿈꾸던 소녀였으니 제안을 마다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죠. 1년만 하게 해달라고. 그 후에는 진학을 하든 시집을 가든 아버지 뜻에 따르겠다고 설득했어요.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을 얻어 야간업소를 시작으로 무대를 찾아다녔죠.”
하지만 그 1년이라는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못했다. 딸은 늘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겠다’며 고집스럽게 맹세를 이어갔지만, 부친의 갑작스런 사망이 상황을 변화시켰다. 이자연은 졸지에 소녀 가장이 됐고, 가수 생활로 동생 네 명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전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았어요. 아버진 소년 시절부터 동네에서 노래 잘하기로 유명했는데, 동네의 열성 팬 중에 외할머니도 있었어요. 그래서 아버지를 점찍어놓고 어머니와 결혼시켰어요.(웃음) 아버지는 재능을 펼쳐볼 기회를 갖지 못했지만, 대신 저를 내보내신 것 같아요. 노래할 때 고음에 다다르면 아버지 목소리가 나와요. 어릴 때 듣던 그 목소리 말이에요.”
꼬마 이자연은 일터에 나가는 아버지를 꼬리처럼 따라다녔다. 그 자리에서 노동요처럼 불렸던 ‘황성옛터’나 ‘번지 없는 주막’을 배웠다. 또 아버지가 좋아하던 ‘새타령’이나 ‘릴리리아’ 같은 민요도 함께 불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들을 사이좋은 부녀는 함께 불렀고, 아버지의 노래가 좋았던 소녀는 가수의 꿈을 키웠다. 이 곡들은 이자연이 자신의 노래가 많지 않던 신인 시절 공연의 레퍼토리로 쓰였다.
“콘서트에서 이 곡들을 부를 때는 기타나 아코디언 하나만 놓고 무대를 꾸며요. 조용한 반주 속에 노래하다 보면 하늘에서 아버지가 들어주실 것 같은 기분이 들죠. 그러다 보면 자꾸 눈물도 나고요. 요즘엔 공연 전에 아버지를 향해 ‘파이팅’을 외치며 무대에 오르는 것이 습관이 됐어요.”
MZ세대와 동기동창이 되다
“나 학교를 다녀볼까?” 언니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동생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라에 연이어 국장이 생기며 설 무대가 사라진 언니가 궁핍해졌나 걱정돼서가 아니었다. 네 명의 동생은 가수 언니를 후광 삼아 대학도 나오고 출세를 했는데, 정작 본인은 변함없이 그대로인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 늦은 나이지만 배움을 시작하겠다 선언한 것이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자매는 쉬지 않고 눈물을 훔쳤다.
늦은 나이에 배움의 한을 풀기 위해 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학부생부터 차근차근 제대로 절차를 밟아나가는 이는 찾기 힘들다. 이자연은 정공법을 택했다. EBS 교재를 손에 잡고 방송 수업으로 기초부터 공부했다.
“처음엔 당연히 어려웠죠. 무슨 얘기인지도 모르고. 기초가 전혀 없었으니까요. 그냥 무작정 반복해서 수업을 듣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어요. 나중엔 선생님 농담까지 외워지더라고요. 쉰 살이 넘자 공부를 제대로 못 한 것이 늘 아버지에게 죄스러웠는데, 학교에 들어가니 맘이 놓이더라고요.”
그렇게 2011년 건국대학교 예술문화대학 예술학부에 합격했다. 이자연의 11학번 동기들은 그 면면이 화려하다. BTS의 진과 배우 이종석이 대표적이다. 선배로는 샤이니의 민호, 배우 고경표가 있다. 이자연은 소속사도 없던 신입생 시절의 모습이 강렬한지 아직도 BTS 진을 ‘석진이’라고 부른다.
“처음 학교에 들어갔을 때 신입생 두 사람이 와서 말을 걸어주었어요. 그때 건네준 한마디가 제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그 친구들은 모를 겁니다. 어딘가에서 제 노래를 실컷 불러놓고는 ‘열창했다’며 너스레를 떨 때는 친동생처럼 귀여워요. 아이들이 제게 친근함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제 노래 덕분인지도 모르겠어요. 이렇게 노래가 새로운 인연을 더 깊게 만들어줄 때마다 노래의 힘을 느껴요.”
이후 이자연은 대학원까지 진학해 석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도 그녀답다. ‘TV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대중가요의 특성에 관한 연구 : KBS 를 중심으로’라는 다소 긴 제목의 이 연구는 가요무대에 등장한 곡들을 통해, 시기마다 사랑받은 노래들이 어떤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지 연구했다. KBS의 도움을 받아 30년이 넘는 기간을 모조리 살폈다.
“우리 대중가요는 역사적 큰 사건을 기점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노래가 많아요. 일제강점기에는 고향을 그리워하고, 한국전쟁 때는 가족을 찾는 식이죠. 역사 속에서 우리 가요가 어떻게 사랑받았는지 보면서 대중가요의 사회적 역할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죠.”
가요계 보살피는 어머니로
최초의 여성 대한가수협회장. 그녀를 장식하는 또 다른 수식어다. 2018년 갑자기 공석이 된 회장직을 선출하기 위해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부회장이었던 이자연이 만장일치로 추대됐다. 당시 비대위의 좌장 격이었던 협회 명예회장 남진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또다시 소녀 가장 생활을 시작하느냐고. 그 얘기를 들으니까 오히려 용기가 생겼어요. 그냥 집에서 내 살림하듯이 꾸려나가면 되겠구나 하는 용기가 나더라고요. 내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더 쉬워졌어요. 그래서 겁 없이 정부 기관부터 시작해 다양한 분야의 분들을 만나러 다녔죠. 그렇게 움직이다 보니 하나둘씩 결과물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살림 실력이 좋았던 덕일까. 대한가수협회는 창립 64년 만에 지정기부단체로 지정받는다. 협회 후원 확보에 날개를 단 셈이다. 코로나19로 설 곳이 없어진 후배들을 위한 예산 마련에도 힘썼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으로 ‘전국민 희망콘서트’, ‘전국 TOP 가요쇼’ 같은 무대를 만들었다. 사라진 무대를 직접 되살린 셈이다.
“‘전국민 희망콘서트’는 드라이브스루 형식으로도 진행됐어요. 코로나19 상황에서 팬과 가수가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었죠. 300여 대의 차량이 제천 활주로를 가득 메운 가운데 신나는 리듬에 차들이 들썩거리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어요.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폭발적이었죠. 무대가 그리웠던 가수만큼이나 팬들 역시 우리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이자연은 지난 9월 대한가수협회 제7대 회장으로 연임이 확정됐다. 그녀의 왕성한 활동이 인정받은 것이다. 이제 그녀의 관심은 협회의 새로운 사업 분야인 역사를 담을 그릇에 집중되어 있다.
“얼마 전 이미자 선생님이 이사하시면서 공간 문제로 개인적인 자료를 한 트럭 가까이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땅을 쳤어요. 이런 경우를 흔히 봐요. 스타 선배님이 돌아가시면 남겨진 유품은 모두 개인이 소장해버리고, 나중에 공익적인 목적으로 확보하려고 해도 큰돈이 들죠. 협회 차원의 ‘박물관’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료들을 확보해놓을 수 있는 자료실 정도는 만들고 싶어요.”
가요계에 대한 그녀의 애정과 걱정은 많은 변화를 이뤄낼 것이다. 이렇듯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간 그녀가 인생의 과정에서 보여준 많은 결과와 성과가 증명하기 때문이다. 이자연이 좋아하는 가족에 빗대 표현하자면, 이제 그녀는 가요계에서 어머니 역할을 해나가는 중이다. 트로트라는 고질적인 명칭 문제에서부터, 협회 회원 자격 기준 정리, 신인 전통가요 가수가 넘쳐나고 있는 상황에서 원곡 가수의 권리 보호에 관한 문제까지, 그녀의 관심사는 넓고 깊다. 가요계 구석구석 어머니의 마음이 미치고 있다.
온갖 정치·사회 뉴스와 SNS, 유튜브 등 자극적인 콘텐츠들은 시종일관 현대인을 괴롭힌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유행까지 피로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에 많은 사람에게 현실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잠시 쉬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는 추세다.
이처럼 코로나19 이후 중장년층의 ‘코로나 블루’가 심화되고 있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19’와 ‘우울감(blue)’이 합쳐진 신조어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뜻한다.
삼성생명 인생금융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중노년기 불안심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불안 빈도를 물어보는 질문에서 ‘자주 또는 항상 불안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가 21.9%로 가장 높았다. 이어 50대 19.5%, 60대 이상 10.8% 순이었다. 불안심리를 촉발시키는 요인으로는 ‘노후 생활에 대한 걱정·미래에 대한 불확실성(20.1%)’이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코로나19로 인한 감염 우려(19.2%)’, ‘일자리 상실에 대한 염려(8.7%)’가 뒤를 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사람들에게 힘과 활력을 주는 ‘힐링’을 위한 한 방법으로 ‘멍 때리는’ 행위가 인기를 얻고 있다. 모닥불을 바라보는 ‘불멍’, 물을 바라보는 ‘물멍’, 숲을 바라보는 ‘숲멍’ 등 아무 생각 없이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의 편안함을 느낀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런 흐름은 공중파 방송까지 사로 잡았다. 공중파 EBS는 지난해 9월부터 매주 월~목요일 밤 ‘가만히 10분, 멍TV’를 방영한다. 초승달·폭포·연못 속 물고기 같은 자연, 맥반석 김·호떡 굽기 등 요리, 괘종시계·인형뽑기·턴테이블 등 일상의 흔한 소음이나 모습을 아무런 설명이나 장면 전환 없이 있는 그대로 쭉 보여준다.
여러 유튜브 채널들도 일상 소음을 담아 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ASMR 영상을 우후죽순 업로드하고 있다. 머리 감기, 빗질하기, 귀 파주기, 마사지, 목욕하기, 화장품 바르기, 장난감 가지고 놀기 등 영상 종류도 다양해졌다.
최근 배우 이상이는 예능 프로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물고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뽐내며 직접 집 안에 거대한 어항을 설치한 후 수족관을 찾아가 반려어를 사고, 수초수조를 만드는 등 물멍의 기초 작업 과정을 자세히 보여줬다. 그는 “반려어와 수족관을 하루 2시간씩 그냥 쳐다본다”고 말했다. 물멍을 통해 마음이 정화된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이런 ‘멍 때리기’가 마음을 가라앉히는 명상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멍 때리기로 심장박동수가 안정화하고 뇌에도 휴식을 취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물체를 보면 호흡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명상 효과 같은 것이 나타날 수 있다”며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하나의 반(反)작용으로 멍 때리기가 유행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다만 멍 때리며 휴식을 취한다고 직면한 문제가 사라지진 않는 만큼, 이를 도피처로 삼지 말고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과 멍 때리는 시간의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한다”고 당부했다.
인생 이모작에 성공하고 트로트 가수를 목표로 인생 삼모작을 준비했던 이금수(63) 씨가 마침내 꿈을 이루었다. 고등학교 수학교사, EBS 수학 영역 스타 강사, EBS 입시 프로그램 방송 진행자, 서울진학지도협의회, 서울시교육청 대학지도단을 거쳐 은퇴 후 대진대학교의 입학사정관까지, 교육 분야에서 줄곧 일해온 이금수 씨의 트로트 가수 데뷔 스토리를 들어본다.
인생,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여~
이모작도 버거워하는 중장년들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희망을 주는 사나이 이금수 씨가 인생 삼모작 주인공으로, 마침내 꿈꿨던 가수로 데뷔했다. 이금수 씨의 데뷔 앨범은 최근 트로트 가수 강진의 ‘막걸리 한잔’으로 주가를 올리는 류선우 씨가 작곡과 작사를 맡고, 트로트 업계에서 고급스런 편곡으로 소문이 자자한 장승연 씨가 편곡자로 나섰다. 아내 주현선 씨와 ‘금실은실’이라는 혼성듀오로 2곡을 녹음했고, 부부가 각각 2곡씩 녹음해 총 6곡이 수록돼 있다.
지난해부터 이금수 씨는 1년 가까이 쉬지 않고 트레이닝을 받으며 트로트 창법을 익히고 연마했다. 워낙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남들에게 노래 잘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던 터라 ‘자신감’ 하나만 믿고 여기까지 내달렸단다.
이금수 씨의 솔로곡인 ‘중년고백’은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중후한 이미지를 잘 살렸다는 평이다. 아내 주현선 씨의 솔로곡 ‘우야꼬’는 어쩌면 가수로서 단점이 될 수 있는 경상도 사투리를 그대로 가사로 풀어내 오히려 매력 포인트로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함께 부른 ‘꽃노래’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부부의 마음을 그대로 담은 듯한 노래라 중년부부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이금수 씨 부부는 처음 이 노래를 연습할 때부터 애착이 많이 갔던 곡이라 기대가 각별하다고. 트로트 업계에서 실력자로 통하는 작곡·작사가와 편곡자가 힘을 합쳐서인지 트로트의 구성진 가락에 세련된 사운드가 입혀져 감성을 건드리는 게 일품이다.
TV만 켜면 채널마다 트로트 프로그램이 쏟아지는 요즘, 목소리만 꺾어대는 기교형 가수보다 진심을 담아 정감 넘치고 사람 냄새 나는 곡으로 승부를 던지는 신참내기 가수에게 기대가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 8개월의 보이스 트레이닝 끝에 지난해 연말부터 녹음에 돌입, 올 초 앨범을 발표했다. 특히 이번 트로트 가수로 도전하면서 트레이닝과 앨범 녹음 기간 아내와 줄곧 함께해 부부 사이가 신혼 때보다 더 각별해졌다고 이금수 씨가 환한 웃음을 짓는다.
그렇다면 이금수 씨는 젊은 시절부터 가수가 꿈이었을까? 본인에게 가수의 꿈이 있다는 것은 언제 알았을까? 술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친구, 동료들과 술 한잔에 얼큰해지면 노래를 하고 싶어 꼭 마이크를 잡았단다. 주현선 씨도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해 아이들이 어렸을 땐 잠을 재워놓고 같이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고 온 적도 많다.
“지금 생각하니 아이들에게 미안하네요. 그래도 아내는 그렇게라도 노래를 부르면서 육아 스트레스를 견디지 않았을까요? 올해가 결혼 37주년이니 37년 이상 노래를 불렀습니다. 특히 고등학교에서 수학 교사를 할 당시에는 축구, 테니스 등 운동을 마치고도 동료들과 함께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췄네요.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부르면서 말이죠.”
그는 동료들이 “노래 잘한다”며 치켜세울 때는 기분이 우쭐해서 술값도 많이 계산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EBS에서 강의를 하고 있어 수입이 짭짤하니 술값을 내라는 칭찬 아니었을까? 갑자기 합리적인 의심(?)도 든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 것이, 그런 이야기를 자꾸 들으니 노래가 더 좋아지고 일하면서도 쉬지 않게 노래를 흥얼거리는, 말 그대로 생활 속에 노래가 꼭 박혀버렸다. 이렇게 시작된 노래 사랑은 개포동성당에서 성가대 활동을 하면서 절정을 이루었다. 노래를 좋아하는 신도들끼리 모여 합창을 연습하며 세속의 노래인 ’마법의 성‘을 부르는데 너무 멋있어서 마치 천사들이 하늘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환희의 순간을 맛봤다.
“한번은 성가대 연습을 마치고 성가대 단원끼리 동네 맥줏집에서 한잔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을 정도로 동요를 조그맣게 불렀는데, 호프집 손님들이 맥주를 보내면서 노래를 좀 더 크게 계속 불러달라고 조르기도 했어요. 화음이 정말 훌륭하다고 격려해주면서요.”
37년 결혼 생활을 맞춰온 팀워크로 혼성듀오도 완벽 깔맞춤
인생 이모작에 성공적으로 안착하여 하루하루 심적인 안정을 찾아갈 때쯤이었다. 대진대학교에서 입학사정관 실장을 하면서 인생 삼모작을 생각하게 되었고, 부부가 함께 노년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을 제일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다가 부부가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니 가수에 도전해보면 어떨까 의견을 나누게 됐고, 뜻을 합하게 됐다.
마침 EBS에서 오랜 기간 함께 일했던 지인과 만난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고, 그러자 지인은 자신의 아우가 작곡가라며 소개를 해주었다. 그 아우가 바로 ‘막걸리 한잔’의 작곡·작사가인 류선우 씨였다. 류선우 씨의 테스트를 거쳐 1년 가까운 훈련 기간을 마치고 마침내 신곡 ‘꽃노래’와 ‘중년고백’, ‘우야꼬’로 결실을 맺게 된 것.
처음 테스트를 받으러 간 날이 2020년 4월 19일. 그 전 3개월 정도는 실용음악학원에서 매주 1회씩 원장님에게 지도를 받았다. 류선우 작곡가는 부부의 노래를 처음 듣고 나서, 이금수 씨는 노래를 자주 불러서 익숙하게 느껴지는데, 주현선 씨는 목소리가 노래와 겉도는 등 익숙함이 상대적으로 부족하지만 목소리 자체는 깔끔해서 집중적으로 훈련하면 톤이 좋아질 것 같다며 격려를 해주었다.
이금수 씨는 목소리가 탁성이라 앨범 전체를 솔로로 하는 것이 걱정이었고, 주현선 씨는 노래에 익숙하지 않아 역시 솔로를 하기에 부담이 있었는데,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혼성듀오를 결성해 가수로 데뷔하자고 의기투합했다. 하긴 37년을 혼성듀오로 살아왔던 부부인 만큼 그 어느 팀보다 팀워크만은 탁월하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트로트 가수를 준비하는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인생 이모작이야 30년 넘게 몸담았던 같은 교육 분야로 이동한 것이니 이질감도 없고 그런대로 적응할 수 있었지만, 인생 삼모작으로 목표한 트로트 가수는 완전히 트랙을 달리하는 분야이니 사실 막막함이 더 컸다고.
앨범이 나오기까지 부부는 매일 2시간 정도 수락산 아랫자락에서 노래 연습을 했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그래도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앨범 발매 가수로서 무대에 서서, 부부가 함께 눈을 맞춰가며 노래 한 곡을 부를 때 느껴지는 성취감이 엄청나다고 한다.
야외무대에 서며 관객과 호흡해
지난 4월 26일 부부는 엠스타 TV가 천안 ‘화수목 정원’에서 진행한 ‘유예진의 히트가요쇼’ 녹화에 참가하는 기회를 얻었다. 야외에서 진행하는 녹화 무대에 서니, 앨범을 발매한 가수로 확실한 대접을 받는 것 같아 뿌듯하기 그지없었다. 이를 계기로 ‘금실은실’ 듀오는 무대에서 불러주기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아예 무대를 직접 만들자는 마음으로 유튜브를 통해 라이브 콘서트를 진행하게 됐다.
유튜브 채널이 열리자 많은 분들이 실시간으로 댓글을 남기며 부부 가수와 소통을 했다. 진행자까지 투입된 유튜브 미니 콘서트 무대에 오르니, 비록 방송 프로그램은 아니었지만 나만의 콘서트를 연 듯한 가슴 꽉 찬 시간이었다.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처럼 ‘금실은실’ 부부 가수의 첫 유튜브 콘서트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실시간 조회수는 1000회를 넘었고 ‘좋아요’는 60개를 넘는 등 부부 가수의 첫 콘서트라고는 믿기지 않는 훌륭한 성적이었다.
6월에도 역시 야외 녹화 일정은 물론 유튜브를 통한 2차 라이브 콘서트 계획이 잡혔다며 “부부 가수 ‘금실은실’로 조금씩 알려지면 애초 계획대로 지역 봉사활동을 많이 다니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내비쳤다.
트로트 맛깔나게 부르는 설운도 닮고 싶어
신참내기 트로트 가수로서 롤 모델은 마음속의 영원한 스타, 설운도란다. ‘58년 개띠’로 나이는 똑같지만 가수로 정점에 오른 후에도 꾸준히 노래 연습을 하며 곡을 쓰는 모습에서 배울 점이 정말 많다고 느꼈다.
“부러운 것 하나는, 설운도 씨는 가사를 직접 쓰다 보니 자신만의 감성을 듣는 이에게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 것 같다”며, “아무래도 노래를 배워서 부르다 보면 기교에만 신경을 쓰게 되는데 설운도 씨의 노래를 듣고 가사 전달력이 어떤 것인지 경험하게 됐다며 여전히 배울 것이 많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요즘도 보컬 트레이닝을 꾸준히 받는데, 이 훈련을 통해 가사를 분석하는 것은 물론 마디마디 창법과 트로트 가수들의 전매특허라 할 밀당 기술 등을 꾸준히 연습해 몸에 착 배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요즘 배우는 노래는 ‘사랑반 눈물반’, ‘처녀뱃사공’ 등인데 나만의 노래가 됐다 싶을 때 녹음해서 유튜브에 올릴 생각이다.
트로트 부부 가수 데뷔하니 주위 사람들 반응 뜨거워
“트로트를 한 것이 돈을 벌려고, 유명해지고 싶어서 시작한 게 아니잖아요. 이렇게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게 있어서 늦은 나이에도 목표를 세우고 정진해서 꿈을 이루며 살 수 있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는 세월에 순응하며 사는 것도 좋지만, 적어도 인생의 다음을 걱정하려면 2~3년 고심하며 탄탄히 준비하고 미리 계획한 후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생 이모작과 삼모작의 목표가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아마 실패하기 십상일 것이다. 단지 자신의 재능을 조금 더 사용해 여가생활에 보태고 이웃에 봉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자체로 훌륭하다고 말이다.
그래도 질투와 시기 어린 시선보다 격려와 따뜻한 말 한마디로 힘을 주는 분들이 훨씬 많아 힘이 됐다는 그는, ‘금실은실’의 첫 유튜브 라이브 미니 콘서트 날 주위 분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크게 고무됐다. 그가 SNS 활동을 열심히 하는 ‘6070중년쉼터’ 밴드의 선배들과 동년배, 후배들이 접속을 독려하며 응원해준 것에 크게 감동한 것이다. 이들의 격려와 응원을 장착하고 신인 가수의 패기를 얹어 야외무대와 유튜브 미니 콘서트를 멋지게 소화해,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에서 먼저 섭외 전화를 받는 가수가 되겠다는 각오다.
함께 취미를 공유하고 꿈을 나누며 이루어나가는 부부의 모습은 주위에 귀감이 된다. 결국 인생이란 바로 내 옆의 가장 가까운 가족과 소통하며 건강한 가족과 이웃, 사회를 만들어나가고 꿈을 이루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걱정만 하다 문턱을 넘어보지도 못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걱정만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부딪혀보지도 않았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요. 문턱을 넘을까 말까 걱정만 하면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하루하루 손에 익히고 몸에 체화하는 것. 그렇게 매진하며 살다 인생 마지막에 내가 나를 인정하고 엄지를 치켜세워줄 수 있어야죠.”
20대가 되기 전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바로 학교다.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 선생님과의 관계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영감과 동기를 불어넣은 것처럼. 덕양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여 폐교 위기 학교를 혁신학교의 대명사로 변화시킨 이준원(65) 교장을 만나 참스승으로서의 삶과 교육에 대한 철학을 들어봤다.
지난해 방영된 EBS 다큐멘터리 ‘무엇이 학교를 바꾸는가’는 공교육 혁신 모델 사례로 덕양중학교의 일대기를 다뤘다.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덕양중학교는 교육청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폐교 요청을 받았던 학교다. 폐교 위기의 학교가 8년 만에 어떻게 공교육 혁신 모델로 우뚝 선 것일까? 그 변화의 열쇠는 이준원 교장이 쥐고 있었다. 그가 2020년 정년으로 퇴임하기 전까지 8년의 세월 동안 덕양중학교에는 그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었다. 처음 그가 부임했을 때 덕양중학교는 어떤 상태였을까?
“제가 교장으로 왔을 때 덕양중학교는 매년 교육청으로부터 폐교 압박을 받을 만큼 다 쓰러져가는 학교였습니다. 교육장님이 오셔서 학생 수를 늘려야 한다고 당부하고 가셨죠. 제가 부임하던 해 인근 초등학교 6학년이 12명이었는데, 이마저도 확실치 않았어요. 4명은 다른 곳으로 간다고 했기에 실질적인 중학교 입학 인원이 8명이었죠. 당장 중3 아이들이 졸업하면 전교생이 100명 이하로 떨어질 게 불 보듯 뻔했어요. 그래서 학생을 유치하려고 학군 외에 있는 초등학교 6학년 학부모를 만나 저의 비전을 설명하면서 설득했죠. 발품을 판 덕분에 그해 40명 정도 입학할 수 있었어요.”
그렇다면 왜 덕양중학교였을까? 교장 공모제란 절차로 부임했는데, 굳이 폐교 위기인 학교의 교장이 되려고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초임 시절부터 교직을 마칠 때까지 어려운 학교만 골라 다녔어요. 겉으로만 봐서는 잘 모르지만, 사실 우리 모두 내면의 상처를 안고 살아요. 학생들도 마찬가지고요. 특히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아픈 친구들이 많았죠. 가정 형편이 어렵다거나 부모님이 이혼했다거나 여러 가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을 교사로서 지도하고 보듬고 싶었어요. 좋은 학군에서 자라 학원에서 미리 선행학습을 한 덕분에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 듣는 친구들이 있는 학교에 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학교에는 가고 싶지 않았어요. 스스로 ‘그런 친구들에게 교사로서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물었을 때, 그에 대한 대답을 쉽사리 하지 못했거든요.”
실패한 교사의 고백
오랜 세월 교직에 있었던 그가 생각하는 교사의 역할은 무엇일까?
“학교는 학원이 아니죠. 지식의 전달도 중요하지만 학교는 함께 어울려 살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식의 양을 측정하는 곳이 아니라, 인간답게 존중받고 인간답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좋지 못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손을 잡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어둡고 깜깜한 터널 속에서 헤매고 있는 아이들 앞을 밝게 비추는 한 줄기 빛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그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평교사 시절의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40대 이전에는 실패한 교사였다”고 고백했다.
“사실 마흔 살이 되기 전에는 가면을 쓰고 살았죠. 동료한테 인정받는 선생님, 잘 가르치는 선생님, 친절한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얼굴 표정과 내면의 모습이 너무나도 달랐죠. 마음의 병이 생기는 줄도 모르고 분노나 스트레스를 억누르기만 했어요. 어디 가서 내색도 잘 안 하고 그렇게 다녔는데, 일 년에 한 번씩 축적된 화가 폭발했어요. 그 화는 고스란히 학생과 아내에게 돌아갔어요. 이렇게 제가 불안정하다 보니 아내와 이혼 위기까지 갔고, 어머니와 아내의 갈등은 갈수록 깊어졌어요.”
도저히 이렇게 살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마흔 살을 앞두고 큰 결심을 한다. 치유 상담을 받아보기로 한 것.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한 선택은 그의 앞길을 바꾸는 교두보가 됐다.
“매주 월요일 저녁마다 치유상담연구원으로 달려갔어요. 내면 치유를 통해 저는 다른 사람으로 거듭났죠. 내면 치유란 것이 특별한 게 아니에요. 그냥 다 같이 모여 각자의 상처를 꺼내놓으면서 서로를 보듬는 일이에요. 저 역시 이제껏 남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아픔과 분노, 슬픔을 모두 솔직하게 인정하고 털어내는 일을 그때 했어요. 그 이후론 제 삶이 변했어요. 아내와의 관계도 좋아지고, 학생들과의 관계도 개선되고, 어머니와 아내 사이의 갈등도 눈 녹듯이 사라졌죠. 그때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면 누구나 상처가 있다는 거예요. 이후 삶의 방향이 이때 결정되었을지도 몰라요. 제가 덕양중학교를 택하고, 그 학교에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경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환대
그가 고백했듯이 한때 가면을 쓴 채 가식적으로 아이들을 대했던 그는 내면 치유 이후 놀랍게 변했다. 그의 변화는 앞서 소개한 EBS 다큐멘터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졸업식 날 졸업장을 받으러 단상 위에 올라오는 학생들은 이준원 교장 앞에서 어김없이 눈물을 보였다. 정년 퇴임식에서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모두 울면서 그를 떠나보냈다. 그 울음의 원인은 모두 한 사람이었다. 그를 보내지 못하는 마음이 모두의 속눈썹을 촉촉하게 했다. 그들은 왜 그리도 아쉬워했을까? 그들에게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재임 시절 누군가를 만날 때 교장이란 지위를 앞세우지 않았어요. 학교 내의 직원과 학생, 그리고 학부모를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났어요. 당연히 차별하지 않았고요. 모두 그 마음을 알아주셨던 것 같아요. 8년 동안 덕양중학교에 있었는데, 사실 4년쯤 하고 나서 다른 곳으로 가야 했죠. 가기로 해놓고 날짜만 기다리고 있는데, 교장실에 학부모님들이 찾아오시더군요. 가끔 그렇게 스스럼없이 찾아오시곤 해서, 그날도 어김없이 재밌게 대화를 나눴죠. 그런데 끝에 다들 ‘다른 데 안 가시죠?’라고 말씀하시더군요.(웃음) 부족한 저를 붙잡아주시는 게 정말 감사했어요. 그때 운 좋게 중임이 가능해지면서 한 번 더 열심히 하게 됐죠.”
실제로 그는 학교 내 구성원에게 세심하게 다가갔다. 얼마나 세심한지 교무실에서 일하는 행정실무사의 생일도 챙길 정도였다. 특히 그는 매일 등교 시간에 교문으로 나가서 아이들을 맞았다. 등교하는 학생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아침을 열었다. 8년 내내.
“아이들이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가는 그 순간까지 모두 교육의 연장선이에요. 아이들은 환경과 사람에게 아주 많은 영향을 받죠. 제가 모두를 따뜻하게 대한 것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에요. 제가 만약 배식하는 아주머니를 함부로 대하면, 아주머니도 배식하면서 아이들을 함부로 대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모두를 정성스럽고 따뜻하게 대했어요. 매일 아침 교문에서 아이들과 하이파이브한 것도 그런 차원에서였죠.”
하지만 하이파이브만으로는 아이들이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않았을 터. 그만의 소통법이 궁금했다. 그는 “아이들에게는 지속적인 관심과 환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먼저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죠. 그들의 얘기를 지속적으로 경청했어요. 그 과정에서 그들의 아픔을 헤아리려고 노력했고요. 예를 들어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경험이 있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것이 그 친구에게 가장 큰 상처였더군요. 그 이후 어긋나기 시작했고, 소위 말하는 주먹 좀 쓰고 다니던 친구였어요. 할머니와 살았는데 가정 형편이 어려웠죠. 영하 10℃ 날씨에도 롱 패딩을 못 사서 매일 얇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녔어요. 자존심은 세서 롱 패딩 입고 다니는 애들 보고 이불을 덮고 다닌다며 깔보더군요. 어느 추운 겨울날 교문 앞에서 그를 만나 ‘춥지?’ 하면서 핫팩을 주머니에 넣어줬어요. 날카로웠던 평소의 눈빛이 봄눈처럼 사라지고, 오히려 ‘교장 선생님은요?’ 하고 따뜻하게 묻더군요. 관심이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켜요. 그동안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아이들을 따뜻하게 대하려고 노력했어요.”
진심으로 다가가기
그의 환대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 교사와 학부모에게까지 이어졌다. 그는 교사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고, 매주 목요일 ‘이슬비 사랑 학부모 교실’을 통해 학부모와 소통했다.
“혁신학교가 될 수 있었던 동력 중 하나는 교사들의 자발적인 참여 덕분이었어요. 일종의 집단지성이 만들어졌죠. 교사들의 단점 대신 장점을 발굴하려고 노력했어요. 단점을 찍어서 고치려고 하면 잠깐 바뀌는 척만 할 뿐이에요. 진심으로 변화시키려면 그 사람의 장점을 키워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렇게 모두의 장점이 뭉쳐서 하나의 집단지성을 만들어내는 일을 교장을 하면서 많이 경험했어요. 학부모 모임에서는 가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아픔에 대해 경청하려고 노력했어요. 가정은 또 다른 학교나 다름없어요. 가정에 문제가 있으면 아이의 표정이 아침부터 밝지 않거든요. 놀라운 건 모임을 통해 학부모의 상처나 아픔에 대해 서로 듣고 공감하는 시간만 가졌을 뿐인데, 이후 그 모임에 참가한 학부모의 아이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어요.”
그의 말처럼 아이들에게 가정은 또 다른 학교라고 할 만큼 중요하다. 그렇다면 사춘기 손주를 둔 시니어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면 좋을까? 손주와 같이 사는 그에게 한번 물어봤다.
“잔소리 대신 전폭적으로 사랑하고 지지하되 깜짝 놀라게 반응하는 게 좋아요. 잘했을 때는 ‘진짜 잘했어!’라는 말과 함께 기쁜 표정으로 맞이해주면 좋아해요. 그들이 가진 본연의 감정을 직시하고 공감해주면 돼요. 아이들은 스스로 존중받을 때 말문을 열어요. 그래서 다짜고짜 다그치고 비난하는 것보다는 언어, 표정, 눈빛으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해요.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알게 해줄수록 아이들은 달라져요.”
끝으로 그가 생각하는 참스승의 모습과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봤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따뜻한 환대를 맛본 사람은 그것을 잊지 못해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진심으로 따뜻한 환대를 받아본 아이들은 커서도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줄 아는 어른이 되는 법이죠. 이는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고, 내면으로부터 큰 변화가 있어야 생길 수 있어요. 그래서 늘 아이들의 상처에 귀 기울이며 진심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했어요. 그것이 참스승의 길이라고 생각하면서요. Turn your scars into stars.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속담이에요. 상처를 희망의 별로 바꾸는 일. 아이들의 상처를 보듬어서, 그것을 큰 밑거름으로 만들어주는 일. 참스승의 역할은 그런 것이 아닐까요? 앞으론 제가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순회강연을 할 예정이에요. 제 얘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희망의 별이 되기를 바라면서요.”
폐교 위기의 학교를 정상화하려면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여야 했을까? 8년의 교장 생활은 보람도 있었겠지만, 그 이면에는 고충도 있었다. 용인에서 고양까지의 긴 출근 거리로 인해 8년 내내 주말부부를 감수해야 했다. 교육 현장에서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그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고, 그를 믿고 따라왔던 학생·학부모·교사들이 있었기에 그 일을 해낼 수 있었다. 그가 학교에 있었던 8년 사이 학생 수는 늘어났고, 학습 부진아를 찾아볼 수 없는 학교로 성장했다. 그가 연단에 서면 떠드는 아이들이 없을 정도로 아이들은 그를 존경하고 존중했다.
졸업식에서 이준원 교장을 보고 눈물 흘리던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 처음에는 그 광경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를 만나고 나서 다큐멘터리의 그 장면을 이해하게 됐다. 남의 아픔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 남의 얘기를 경청하고자 하는 마음. 이 모든 것은 진심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진심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오늘도 별처럼 빛나는 진심을 품고 미래 세대를 위한 강연을 하고 있을 그를 응원하며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