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다는 소리 숱하게 들었지만

기사입력 2021-01-25 14:21 기사수정 2021-01-25 14:21

[박원식이 만난 귀촌 사람들] 김천시 부항면 산골로 귀농한 허진영 씨

그는 직장 은퇴를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전에 가보지 않은 길에 자신의 전부를 투입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도래한 걸로 간주했다. 그런 그가 귀농을 선택한 건 매력과 환멸이 공존하는 서울이라는 기이한 대도시를 통쾌하게 벗어난 시골에서 삶의 새로운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였다. 구체적으로는, 농업에의 투신이라는 미지의 모험을 통해 자신의 내공을 시험하고 싶었다. 올해로 귀농 7년 차. 허진영(64) 씨의 농장은 그간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정신과 육체의 거의 모든 걸 쏟아 부은 결과가 그렇다.]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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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영 씨는 알아주는 눈이 많은 귀농인이다. 강소농(強小農)의 본으로 지역에 회자된다. 고행에 가까운 게 귀농생활이다. 그러나 그는 진지한 몰입으로 치고 나갔다. 고전과 시행착오로 허우적거리기 쉬운 게 농사이지만 물 위를 뛰어다니는 물방개처럼 활개를 쳤다. 용의주도! 매사 빈틈없는 숙고와 실행을 숭상하는 자질을 어디서 얻어왔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깐깐하게 돌다리를 두드려 물을 건넜으며, 건널 다리가 없을 경우엔 스스로 다리를 고안해 형세를 호전시키는 재능을 발휘해 귀농의 갖가지 난관을 타파했다. 요컨대 그의 머리는 전략적으로 작동한다. 32년간 일했던 ‘삼성맨’ 시절에도 두각을 나타내기를 밥 먹듯이 했다고 한다. 이 영민한 사람의 귀농 사전준비는 전혀 평범한 게 아니었다.

“일단 철저한 준비를 했다. 예컨대 작목 선정을 미리 해뒀는데 장단기 작물을 병행 재배하기로 했다. 귀농 당해에 수확할 수 있는 단기작물로 초석잠이나 복분자, 산딸기를 택해 귀농 1년 전에 미리 심었으며, 최소 이삼 년이 지나야 소득이 발생할 중장기 작물로는 베리 종류나 호두나무 같은 유실수를 선정했다. 이 모든 선택 작물들은 나름의 공부와 분석을 통해 고른 것들이었다.”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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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하게 작목을 선택하더라도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게 농사다.

“실로 그렇더라. 귀농 첫해에 거둔 소득이 예상을 거슬러 형편없이 적었다. 직장생활을 하며 받았던 한 달 치 봉급 수준밖에 되질 않았거든.”

무슨 문제가 있었기에?

“첫 농사였던 만큼 생산량 자체가 미미했다. 게다가 판로가 막연하더군. 고구마, 감자, 고추도 심었지만 수익 발생이 되질 않아 무의미한 걸 알고 다시는 이것들을 재배하지 않기로 했다. 첫해의 성과는 초라했으나 덕분에 공부를 한 셈이고 비전을 세울 수 있었다. 향후의 대책을 수립했으니까.”

실의에 빠지진 않았고?

“쓴맛을 보고서야 한결 정신을 번쩍 차리는 게 사람이지 않던가. 일종의 통과의례로 작은 실패를 했다 여기고 이듬해 농사에 만전을 기했다. 귀농 전에 구상했던 기본 방향을 확고히 다지는 계기이기도 했지.”

어떤 기본 방향?

“첫째는 다양한 작목을 재배해야겠다는 구상이었다. 여기엔 많은 강점이 있다. 우선은 노동력을 분산할 수 있어 탄력적이다. 그리고 자연재해나 병충해, 또는 가격폭락 등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일부 작물들이 흉작이더라도 피해를 덜 본 일부 작물들이 손실을 보완해주니까.”

둘째는?

“소량생산을 추구하기로 했다. 대량생산을 할 경우 흘려야 할 땀 역시 대량일 수밖에 없지만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하기 어렵다. 소량 규모여야 고품질 생산이 가능하고, 이는 고가격 정책의 밑거름이 되는 게 아니겠는가.”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SNS 마케팅이 없으면 승산도 없다

허진영 씨는 귀향으로 귀농을 실현했다. 낳고 자란 산 깊은 벽촌으로 내려가 농사꾼으로 변신한 거다. 자식들 걱정에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을 고향의 홀어머니를 모처럼 살뜰히 봉양하자는 생각도 귀농을 추동했다. 그는 선친이 생시에 농사를 지었던 농토 8000여 평을 다듬고 닦아 ‘산중햇살농장’이라 이름 붙였다. 농장의 반은 호두나무 과수원, 나머지는 갖가지 약용식물들이 생육하는 밭이다. 농장 가운데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면 산이 절반, 하늘이 절반이다. 그 사이를 천천히 흘러가는 뜬구름은 정처 없어 걸릴 게 없으니 자유로운 나그네임을 알 만하다. 숲속 언덕배기에 오두막 하나 슬쩍 짓고 세월아 네월아, 한가하게 노닥거리기 좋은 풍광이다. 하지만 그는 오직 농사에 용무가 많아 농사 외엔 매사 심드렁한 분위기다.

초심자로 농사에 뛰어들었으나 구상도 패기도 짱짱했던 그에게 첫해 농사의 섭섭한 소출은 약진의 발판이었나보다. 이듬해부터 곧바로 흑자를 기록하기 시작했으니까.

“다작물 재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경제성 높은 약용작물이나 핫이슈 작물을 발굴해 도입했다. 인디언감자라고 들어봤나? 북미 원주민, 즉 인디언들의 주식이었던 덩굴식물로 천연 자양강장제라 평가되더라. 이게 국내에 막 들어온 시점에서 종자를 구해 심었는데 결과가 좋았다. 치매에 좋다는 블랙커런트, 항산화 작용이 빼어나며 당뇨에 좋은 코끼리마늘, 오미자, 슈퍼도라지, 토종 보리똥 등도 재배해 재미를 봤다. 귀농 2년 차에 흑자가 나자 자신감이 솟구치더군.”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모든 작물이 효자 노릇? 그렇다면 당신은 작목 선정의 귀재다.

“유행가만 한순간에 사라지는 게 아니다. 유행작물의 수명도 짧고 변덕스럽다. 나는 작목별 손익분기점을 계산해 상황이 나쁜 작물은 과감히 버린다. 신속히 대체작물을 찾아 채워 넣는다. 여기엔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수적이다. 한마디로 농사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우선은 목표치부터 확실하게 설정해야 한다. 귀농 시 나는 은퇴 전 삼성에서 받았던 연봉 수준의 농업소득을 목표로 잡았다. 그리고 그걸 4년 만에 달성했지.”

올해 7년 차다. 2020년의 소득액은 얼마였지?

“매출 2억에 순수익 1억3000만 원 정도다. 이는 매우 드문 경우라 하더라. 이른바 ‘강소농’의 기준 소득액은 연매출 1억이다.”

판정패와 케이오패가 드물지 않은 게 귀농이다. 귀농열차를 타고 내달리는 이들을 보면 그 용기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농림부 자료에 따르면 전체 귀농인의 90%가 실패한다. 현상 유지 케이스는 8~9%, 성공하는 농가는 1%에 불과하다.”

그게 정말 믿을 만한 자료라고? 휴, 귀농은 실로 격렬한 레이스군. 실패 요인 중 가장 핵심적인 건 무엇이라 보나?

“단연 판로 문제다. 피땀 흘려 농산품을 생산하고도 판로가 여의치 않아 고심들을 한다. 공판장이나 백화점, 대형마트 같은 곳에 상품을 줄 경우에도 가격을 후려쳐 실속이 없다. 결국은 직거래가 답이다. 내가 농장을 성장시킨 비결이 직거래망 구축에 있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매개로 한 직거래 마케팅으로 활로를 찾았다. SNS 마케팅은 이제 필수다. 귀농을 해서는 반드시 SNS 마케팅을 해야 한다. 그게 없이는 승산도 없다.”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일 없이 노는 건 불행의 첩경

허진영 씨가 생산한 농산물은 기똥차게 잘 팔려나간다. 대부분 완판을 본다. 인터넷 마케팅 덕분이다. 지인들에게 상처를 줘가며 물건을 팔아치울 필요가 없다. 블로그 덕분이다. 댓글로 쌍방향 소통을 하는 블로그를 통해 막대한 수효의 직거래 고객을 확보한 덕분이다. 사실 농업인들의 블로그 운영은 이미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블로그의 품질은 제각각이다. 허 씨의 블로그는 높은 충실도로 차별화를 꾀했다. 단순하거나 얄팍하게 상품 홍보에만 주력하지 않는다. 귀농일지에 가까우리만치 귀농 경험담을 소상히 고백한다. 귀농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비결을 제시한다. 고난을 이겨내는 결기와 과정을 소박한 글과 사진으로 진솔하게 기록한다. 공감과 신뢰를 자아내는 휴먼 터치로 고객관리에 성공한 셈이다.

“농사꾼들의 화두인 판로 문제를 인터넷 마케팅으로 해결하기 위해 귀농 2년 차부터 블로그를 독학으로 배워 운영했다. 죽기 살기로 블로그에 매달렸다. 전체 노동량의 50%는 농사에, 나머지 50%는 블로그에 쏟았던 거다. 그 결과는 너무도 좋았지. 많을 때는 하루에 7000~8000여 명이 접속한다. 그런 날엔 수백만 원씩 매출이 오르더라.”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이제 순풍을 매단 배처럼 질주를 한다고 보나?

“보람을 느낀다. 귀농 멘토로서도 활동량이 늘어 뿌듯하다. 그런데 일이 너무도 많아 힘겹다. 새벽부터 온갖 노동에 시달리고 밤엔 자정까지 블로그에 매달리다 쓰러져 잔다. 남들은 이런 나를 미쳤다 하더라. 겨울철도 내겐 농한기가 아니다. 산으로 들로 다니며 갈대나 뽕나무 뿌리, 유근피 등을 채취해 상품을 만들거든. 몸 아플 겨를조차 없다. 가끔 이런 생각한다. 이거 정말 내가 미친 거 아냐?(웃음)”

과중한 일에 속박돼 산다는 회의?

“내겐 이미 퇴직 이전에 모아둔 재산이 꽤 있다. 돈벌이 목적의 귀농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퇴직을 하고 놀면 뭐하나, 일 없이 노는 거야말로 불행의 첩경이지 아니한가, 이런 생각으로 농사에 도전했던 것이다. 그게 새로운 삶이기에. 그리고 어느 정도의 성공으로 만족감을 얻기에 이르렀지. 하지만 일의 스케일을 키워 더 많은 성취를 하고 싶다. 아직 갈 길이 먼 거다. 이런 나를 두고 아내는 거의 제정신이 아닌 사람 취급을 한다.(웃음)”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그의 아내는 서울에 산다. 가끔 내려와 남편을 챙겨주고 후다닥 달아난다. 귀농하자는 얘기를 들은 순간에 사색이 됐던 그녀는 길고도 격렬한 논쟁 끝에 당신 혼자 잘해보세요, 그리 선언하고 서울에 남았다. 여행이나 하며 부부가 오붓하게 인생을 즐길 나이에 웬 귀농 고생살이? 아내의 취지는 충분히 합리적이었으나 허진영 씨의 뜻을 꺾을 순 없었다. 그는 아내의 불만을 잠재울 유일한 길은 보란 듯이 사업을 확장하는 데 있다는 생각으로 뛰고 또 뛴다. 귀농의 기수로 줄달음친다. 이는 과욕의 산물? 아니면 진취적 기개?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허진영 씨가 주는 귀농 Tip

•인생의 막다른 길에 접어든다는 결연한 각오가 없으면 귀농하지 마라. 적당주의가 통하지 않는 게 농사다.

•귀농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고 빈틈없이 실천하자.

•농사로 소득을 얻기 쉽지 않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용을 최소화하고 매사 절약해야 한다.

•농사도 기술이고 과학이다. 많은 정보를 섭렵하자.

•SNS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라. 의외의 성과가 빠르게 도출될 수 있으니.

•작목의 경제성을 과장 선전하는 묘목상의 상술에 현혹되지 말자.

•가장 믿을 만한 농사 조언자는 귀농 선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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