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이 왔다. 세 손주에게 새 학기 시작이다. 집 앞 초등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정겹게 느껴졌다. 할아버지·할머니는 손주와 함께 새봄이 시작됐다. 며느리와 딸에게 쌍둥이 손녀·손자와 외손자의 일정표를 받아 아내와 함께 살폈다. 초등학교 3학년 진급한 쌍둥이와 2학년이 된 외손자의 일정이 휴대폰에 기록했던 지난해 수준을 훌쩍 넘었다. 컴퓨터에 할아버지·할머니와 손주들의 일정을 정리했다. 한편의 종합 작전도가 완성됐다.
아내는 아침 일찍 가까운 아들집에 먼저 가서 아이들을 깨우고 식사를 준비한다. 식사가 끝날 때쯤 가서 손자와 아침마다 ‘어린이씨름’을 한다. 이 녀석을 잡아보면 기분을 알 수 있다. 요사이 새 학년이 되어 힘이 더 세졌다. 붙들고 부비며 가쁜 숨을 몰아쉰다. 등을 토닥거리면 품안에 안긴다. 어릴 적 따뜻한 할아버지 품에 안겼던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할머니에게 옷을 입혀달라고 눈을 지그시 감고 어리광을 부린다. 손녀는 옷 고르기, 머리 빗기에 시간이 필요하다. 옷에 까다롭던 어릴 때 습관은 많이 달라졌다. 할머니와 오순도순 옷 고르기를 제법 잘 한다.
쌍둥이 손주와 가까운 학교를 같이 간다. 세 손주의 등·하교를 보살피는 나름 이유가 있다. 먼저 복잡한 교통 환경이 마음에 걸린다. 손잡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면 마음이 뿌듯해진다. 교실 현관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놓인다. 아이들과 등·하교를 같이 하면 하루 만보걷기 걱정이 없다.
아이들이 고층 아파트 엘리베이터 이용을 꺼리고 홀로 집에 있기를 싫어한다. 손녀는 기계소리에 예민하다. 학교수업 끝나서 집에 왔다가 방과 후 수업에 다시 가고 다른 공부하러 몇 차례 집을 드나든다. 날마다 그 시각이 다르다. 때맞춰 마중을 나간다. 손주를 기다리는 몇몇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말벗이 되었다. 간식을 챙겨주고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면 아이들의 정서발달에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어느 날 하교 길에서다. 아침에 들고 갔던 우산을 학교에 놓고 왔다. “우산은?” 했더니, “부전자전이야!” 손녀가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니?” “아빠는 책가방도 잃었다고 하던데요!” 이미 제 아빠로부터 얘기를 들었단다. 아들이 학창시절 책가방, 우산을 통째로 놓고 오는 일이 가끔 있었다. 심지어 한발에는 신발을 신고 다른 발은 맨발로 집에 오는 경우도 있었다. ‘부전자전!’ 쌍둥이에게 우산 분실 정도는 다시 묻지 않기로 했다.
딸이 육아휴직이 끝나 복직을 하면서 더욱 바빠졌다. 한주에 두 번 아내와 교대로 한 차례씩 세종시에 가서 외손자를 돌보기로 했다. 서울에서 낮에 출발하여 오후에 아이를 보살펴야 한다. 아이가 저녁식사 후 운동하고 집에 오면 늦은 저녁이 된다. 다음 날이 되어야 서울에 올 수 있다. 한주에 이틀씩 외손자 돌보고, 서울에 남아 있는 사람이 꼬박 쌍둥이를 보살핀다. 일주일에 나흘은 혼자서 쌍둥이와 외손자를 돌보고, 하루는 교대로 쌍둥이를 살핀다.
세종시에 오갈 때는 짬을 내는 방법을 찾는다. 자기 일정을 빠듯하게 조정하고 교통수단 이용을 잘하여야 한다. 자원봉사일이 세종에 가는 날과 겹칠 때는 간식으로 점심식사를 대신한다. 관악문화원 문학공부 날은 아내에게 단독 돌봄을 부탁한다. 아내의 여유시간은 없다. “그래도 공유일과 주말이 있어서 다행이다.”며 웃는다.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아들·딸 가족도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할아버지·할머니 여유시간은 사라졌다. 아내와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손주들과 새봄을 같이 할 예정이다.
유튜브 채널 ‘박막례 할머니 Korea Grandma’. 구독자 수 36만 명 돌파, 인기 동영상 조회 수 200만 뷰를 기록하며(2018년 2월 기준) 남다른 메이크업 비법을 전수하는 71세 뷰티 크리에이터 박막례 씨. 그녀의 메이크업 노하우를 따라가면 긴 영어로 뒤섞인 화장품 이름도, 까다로운 메이크업 테크닉도 애써 알 필요 없다. 내가 좋아하는 느낌대로 자유롭게 표현하면 그뿐. 자신 있게 두드리고 바르다 보면 솜씨는 자연스레 늘고 미모는 물오를 것이다.
도움말 박막례 크리에이터 사진 ‘박막례 할머니 Korea Grandma’ 유튜브 영상 캡처
◇ 메이크업 순서
기초화장품(스킨, 로션 등) → 자외선차단제 → 프라이머 → 메이크업베이스(CC크림, BB크림 등) → 파운데이션 → 컨실러 → 파우더(루즈파우더, 파우더팩트, 노세범파우더 등) → 하이라이터 → 섀딩 → 아이브로우(눈썹) → 아이라이너 → 마스카라 → 치크(블러셔) → 립(립틴트, 립스틱, 립글로스 등)
◇ Step 1 맨들맨들 동안피부 만들기
기초화장품을 충분히 흡수시킨 뒤 베이스메이크업 제품을 발라야 들뜸이나 밀림 현상을 막을 수 있다. 피부가 건조하면 베이스메이크업 전 미스트를 뿌려 수분을 더하는 것이 좋다. 시니어의 경우 피부 노화로 인한 색소침착과 잔주름이 있어 베이스메이크업 단계에 신경 써야 곱고 환한 피부를 연출할 수 있다.
퍼프로 ‘팍팍팍’ 두드려라 베이스메이크업 제품을 손으로 문질러 바르는 것보다 퍼프(puff)로 두드려 사용하면 밀착력이 높아진다. 라텍스, 쿠션, 실리콘 등 다양한 퍼프가 있으니 취향에 맞게 골라 사용해보자. 퍼프에 미스트를 뿌리면 촉촉하게 피부 톤이 정돈된다.
‘프라이머’로 피부를 매끄럽게 늘어난 모공, 잔주름 등으로 피부 표면이 울퉁불퉁하다면 프라이머를 이용해보자. 모공과 주름 사이를 메워 피부 결을 고르게 만들고 파운데이션의 밀착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 Step 2 메이크업으로 초간단 성형하기
메이크업을 잘하면 피부가 좋아 보이는 것 외에도 성형과 다이어트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물론 실제 성형이나 살을 빼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섀딩을 이용해 얼굴 윤곽을 따라 음영을 잘 표현하면 코도 오뚝하고 턱선도 갸름해 보인다.
‘섀딩’으로 오뚝하고 갸름하게 볼륨 없이 푹 꺼진 얼굴 때문에 고민이라면 섀딩을 적극 추천. 이마, 콧대, 광대 등 볼록한 부위는 밝은 톤으로 턱선이나 콧대 양옆 등은 어두운 톤으로 발라 준 뒤 퍼프로 고르게 두드리면 입체적으로 얼굴을 표현할 수 있다.
‘컨실러’로 무결점 커버 컨실러는 기미나 주근깨, 잡티 등을 가려주는 효자 아이템이다. 커버력이 높아 특정 부위에 소량만 사용하는데 눈썹 메이크업에 활용 가능하다. 눈썹을 잘못 그렸거나 문신이 흐릿하게 남아 있는 경우 컨실러를 이용해 가릴 수 있다.
◇ Step 3 블링블링한 마무리
이른바 ‘개기름’이라고도 하는 얼굴 유분은 자칫 관리를 잘못하면 메이크업 제품이 밀리고 색조가 얼룩덜룩 번질 수 있다. 기름기를 잡는 노세범파우더로 마무리한 뒤 하이라이터로 윤기를 더해보자. 여기에 글리터 아이섀도를 바르면 화사함이 배가 된다. 의상과 어울리는 색깔의 립 제품으로 마무리하자.
아이섀도는 다양하게 레이어드 한 가지 색 아이섀도만 바르기보다는 여러 색상을 겹겹이 발라보자. 브러시를 써도 좋지만 손으로 이용하면 더 쉽고 자연스럽게 색을 혼합할 수 있다. 색 조화가 마음에 안 들더라도 스트레스받지 말 것. 닦아내고 다시 하면 그만이니까!
메이크업의 하이라이트 ‘하이라이터’ 얼굴에 유분을 잡으려고 노세범파우더나 매트 타입 제품을 과하게 바르면 피부가 건조하고 푸석해 보인다. 이때 하이라이터를 이용해 이마, 광대, 콧등, 턱 등을 큰 브러시로 가볍게 쓸어주면 자연스럽게 윤기를 더할 수 있다.
◇ mini interview 박막례의 ‘참 쉬운 메이크업’ Q&A
메이크업 제품은 주로 어디서 구입하나요?
요즘 화장품은 어려워서 뭐가 뭔지 몰라요. 그럴 땐 직원 추천을 받기도 해요. 또 백화점이나 길거리(로드숍)나 다를 거 없이 제품이 다 좋은 것 같아요. 들어가서 모르는 거 물어보면 잘 안내해주니까 걱정 말고 한번 가보세요.
어떻게 하면 ‘화장이 잘 먹게’ 할 수 있나요?
그냥 팍팍 두들겨 바르는 것이 내 비밀이여. 잔주름도 팍팍 때리면 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메이크업하기 전에 기초제품을 잘 바르고, 무엇보다 각질제거도 잘해야 들뜨는 게 없어요.
섀딩을 해보니까 어떻던가요?
손녀가 알려줘서 섀딩을 처음 써봤는데 콧대 양옆이랑 턱을 발라주면 코도 오뚝해 보이고 갸름하니 좋더라고요. 잘못 바르면 얼룩덜룩해 보이니까 골고루 두드려서 발라주세요.
시니어들에게 권하고 싶은 립 컬러나 제품은 무엇인가요?
자기가 바르고 싶은 거 발라요. 나도 내가 바르고 싶은 거 바르는 거여. 손녀가 이거 발라봐, 저거 발라봐 해도 난 내가 원하는 거 발라요. 예쁘게 바르고 “음마음마” 여러 번 해봐요.
시니어들이 갖는 메이크업 고정관념은 무엇일까요?
모르겠네요. 고정관념은 우리한테 있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들한테 있는 거겠지.
나만의 메이크업 꿀팁이 있다면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감을 가지면 더 예뻐져요. 이게 내 팁이야. 내 얼굴에 내 맘대로 화장하는데 너무 스트레스받거나 남들 신경 쓰지 마세요. 자신 있게 이것저것 한번 해봐요. 아침에 거울 앞에 앉는 게 재밌어지니까!
◇ 新메이크업 제품 사전 ㉠ to ㉭
㉠ 글리터 : ‘반짝반짝 빛나다(glitter)’라는 뜻으로, 화려한 컬러의 펄 제품
㉡ 노세범 : 피지(sebum)가 없다(no)는 뜻으로, 유분을 잡아주는 제품
㉢ 더마코스메틱 : 피부과학(dermatology)과 화장품(cosmetics)의 합성어로 의사가 만든 또는 의사에게 처방받은 화장품이라는 뜻
㉣ 루즈파우더(loose powder) : 미세한 입자의 가루 파우더, 고체 파우더는 팩트라고 부름
㉤ 매트(mat) : 유분감과 광택이 없는 제품. 지성 피부에 알맞고 색조화장품의 경우 선명한 컬러로 발색되는 것이 특징
㉥ BB크림 : 블레미시 밤(Blemish Balm)의 줄임말로 본래는 피부과 치료 후 피부 재생과 보호를 위해 사용. 자외선 차단과 메이크업베이스 효과로 잡티를 가려주고 피부톤을 정돈해주는 제품
㉦ 섀딩(shading) : 얼굴의 일부를 어둡게 또는 밝게 해 입체감 있고 작아 보이도록 하는 방법 또는 제품. 컨투어링(contouring)이라고도 함
스트로빙(strobing) : 펄이나 글리터 제품 등을 이용해 얼굴을 빛나게 하는 메이크업
CC크림 : ‘Color Corrector’, ‘Complete Combo’ 등의 줄임말로 피부 본연의 색을 살리면서 잡티를 가리는 제품. 자외선 차단과 메이크업베이스 기능을 겸하지만 BB크림보다 커버력이 약함
㉧ 일루미네이터(illuminator) : 얼굴에 빛을 더해주는 리퀴드(액체) 타입의 펄 제품
㉨ 젤아이라이너(jel eyeliner) : 펜슬보다 부드럽고 선명하게 발리는 젤 타입 아이라이너
㉩ 치크(cheek) : 흔히 ‘볼연지’, ‘볼터치’로 부르는 색조 메이크업. 블러셔(blusher)라고도 함
㉪ 컨실러(concealer) : 잡티, 기미, 주근깨, 주름 등 피부 결점을 커버하는 기능성 제품
크리즈(crease) : 눈가 주름, 쌍꺼풀에 아이섀도나 파우더 등 메이크업 제품이 끼인 상태
㉫ 틴트(tint) : 입술표면을 물들여 립스틱이나 립글로스보다 발색과 지속력이 강함
㉬ 프라이머(primer) : BB크림이나 파운데이션 이전 단계에 피부에 밀착력을 높여주고 모공을 가려 피부 결을 매끈하게 정리해주는 제품
㉭ 하이라이터(highlighter) : 이마, 코, 광대, 턱 등을 밝혀 입체감을 더해주는 제품
# 장면 1. 지난주, 파리에 있는 딸네 집에 다녀왔다. 사위가 출근한 후 다섯 살짜리 손녀는 장난감 전자피아노를 연주하며 필자에게 춤을 추라고 졸랐다. 그래서 음악에 맞춰 그동안 몰래 문화센터에서 배운 룸바를 신나게 추고 있는데, 주방에서 돌아온 딸이 그 장면을 봤다. “어? 아빠가 이제 춤을 추실 줄 아네!” 하면서 대학 시절 스윙을 추었던 딸이 필자에게 달려들었다. 둘이서 춤을 추다가 흥이 난 부녀는, 유튜브에 연결해 쇼스타코비치 2번에 맞춰 왈츠까지 췄다. 평소 ‘백설공주’라는 만화영화에서 왕자와 공주의 춤을 즐겨보는 손녀는, 우리의 왈츠가 신기한지 계속 추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이 흘러간 후, 사위와 손자들이 직장과 학교에서 돌아왔다. 저녁을 먹은 후, 갑자기 손녀가 “하비, 엄마랑 또 춤춰봐!” 했다. 사위 앞에서 춤을 추다니 그건 아니었다. “아냐! 하비는 너랑 있을 때만 춤추는 거야.” 그러자 손녀는 울음을 터뜨리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당황한 필자는 “엇, 울지 마. 하비가 춤추면 되잖아!” 그렇게 시집보낸 지 10년 동안 그 흔한 노래방 한 번 같이 안 갔던 사위 앞에서, 방정맞은 자이브와 왈츠까지 추게 되었다. 이왕 망가진 거 더 망가지기로 했다. 딸과 잔디밭으로 나가 차차차까지 췄다. 사위는 필자가 춤추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그동안 외국생활에 지쳐 했던 딸이 활짝 웃는 모습을 오랜만에 본다고 감사를 표했다. 그래서 이 모습을 또 보고 싶으면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말고 우리들끼리의 비밀로 하자는 약속을 받았지만, 귀국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약간 불안하다.
# 장면 2. 신입생 환영회 때의 일이다. 그해 면접 과정과 뒷조사(?)를 통해 알아본 결과, ROTC 오락부장 출신으로 유명했던 신임교수가 같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나이트클럽을 빌려 행사를 진행했는데 3학년 홍보부장이 사회를 봤다. 그런데 그 녀석이 다른 학번들에 비해 말주변이 없어서 분위기가 점점 식어갔다. 참다못한 필자가, 학과장의 사명감을 핑계로 무대에 뛰어올라 마이크를 빼앗았다. 고교 시절 응원단장 경력이 있었던 필자는, 술김에 신나게 사회를 보며 학년별 게임을 유도했다. 그런데 그때 돌발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함께 참석한 신임교수가 무대로 갑자기 뛰어오르더니 필자 마이크를 빼앗았다. “분위기가 지루하니까 지금부터 개인 장기대회를 연다. 내가 먼저 시범을 보인다!” 그는 각종 성대모사와 개다리 춤으로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거기에 자극받은 필자는 그동안 학생들에게 절대 안 보였던, 그야말로 망가지는 각종 개인기를 선보였다. 그해의 신입생 환영회는 교수들의 장기 경연대회장이 되어버렸다! 그 후 홈커밍데이가 되면 졸업생들이 한마디씩 했다. 엄숙한 주례사를 하시는 교수님을 보다가도 그 장면이 생각나면 자꾸 웃음이 터져 나온다고….
# 장면 3. 사돈 부부와 테니스를 쳤다. 사돈끼리의 경기는 항상 긴장감이 감돈다. 이겨도 적당히 이겨야 한다. 접대 고스톱보다 더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동안의 훈련 과정에서 형성된 운동신경과 동물적 본능에 의한 반사신경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필자의 강한 스매시를 안사돈이 발리로, 그것도 너무나 멋지게 맞받아쳤기 때문이다. 필자는 코트에 떨어진 공을 주워 서비스권을 가진 안사돈에게 건네주며 “사람이 아니무니다~”라고 외쳤다. 그 시절, 개그콘서트의 박성호가 갸루상 역할을 하며 유행시킨 말이었다. 사람이 받아칠 정도가 아닌, 그야말로 너무 멋진 발리라고 칭찬한 뜻이었다. 그런데 개콘을 안 보는 안사돈은 가슴에 넣어두었다가 나중에 필자의 딸에게 심각하게 그 뜻을 물어봐, 해명을 하느라 애를 먹었단다. 그러면서 학생들에게나 통하는 유행어를 아무한테나 쓴다고, 딸한테 한마디 들었다.
그러나 오늘도 필자는, 젊은이들의 유행어를 ‘고르곤 졸라’ 쓰며 낄낄거리고 ‘개 웃기며’ 산다! 젊은 시절에는 ‘분위기 좀 탈 줄 안다’고 표현되던 것들이 나이 들어서는 어느새 ‘주책’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정작 우리 인생의 진한 추억들은, 이제 거기에 더 깊이 새겨진다.
예전만큼 들썩이는 설분위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자식들 오면 먹이려고 이런저런 음식을 준비했다. 특히 네가 좋아하는 새우나 굴비도 수산시장에 가서 사오고 소갈비도 인터넷으로 넉넉하게 준비했다. 너희들이 부모님께 세배를 올리고 세뱃돈도 주겠지만 그보다 몇 배 많은 세뱃돈을 손자손녀들에게 주려고 이미 은행에서 새 돈을 준비를 해두었다. 부모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자식 입에 들어가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부모들이란다.
옛날 어른들은 세상에서 보기 좋은 것으로 마른 논에 물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넘어가는 것을 꼽았다.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너는 모르겠지만 천수답 논에 비가오지 않아 벼가 말라 들어가면 농부의 마음은 애간장이 다 탄다. 드디어 한줄기 소낙비가 내린다. 도랑에 물이 콸콸 넘치면서 마른논에 물이 들어간다. 한편의 드라마 같은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농부의 심정은 정말 하늘로 나를 것 같다. 이런 기쁨에 버금가는 것이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모습이다. 자식 키우는 너도 충분히 공감하고 느낄 것이니 설명은 그만 둔다. 세월이 흘러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뭔가를 줄 때 기뻐하는 마음이다.
너를 키울 때 애지중지하고 가정의 온화함을 보여주려고 노력을 했다. 가정은 따뜻함이 첫 번째인데 그러려면 역설적으로 가정에도 위계질서가 있어야 하고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시부모님과 같이 살지는 않아도 순종해야 할 일은 많다. 특히 명절날 찾아뵐 때 며칠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시부모님을 흡족하게 해드려라. 이번 명절날 내가 집히는 데가 있어서 특별히 당부한다.
명절날 시댁에서 출발해 오면 대략 오는 시간이 정해져있었다. 대부분 저녁 무렵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한낮에 ‘엄마, 아빠 우리들 왔어요.’하고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더구나! 반가움보다 덜컥 걱정이 앞섰단다. 나도 모르게 ‘아니 이렇게 빨리!’하는 말이 절로 나오더구나. 반가움보다는 뭔지는 모르지만 시댁과 갈등이 있었구나! 그래서 아침밥만 먹고 나온 낌새를 느꼈다. ‘아버님 길이 하나도 막히지 않아서 금방 왔어요.’하는 사위의 말도 별로 진심 같지 않더구나. 서둘러 집을 나서면 시부모님들이야 체면상 잘 가라고 말은 해도 속으로는 기분이 좋지 않았을 터다.
거듭 말하지만 친정인 우리 집에 너희들이 빨리 오기를 원하지 않는다. 시댁에 있는 시간보다 친정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것도 바라지 않는다. 너는 친정집이 편하겠지만 사위는 처갓집이 편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출가를 했으면 시댁의 풍습도 배우고 시댁 쪽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 와중에 시부모님의 사랑을 더 받기를 진정 바란다.
내 딸이 너를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에게 효도를 하려다가 시댁식구의 눈에 벗어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친정부모에게 잘하려고 하지마라 애비를 기쁘게 하려거든 사돈의 입에서 네 칭찬이 나오도록 해주면 된다. 지난번에도 사돈을 만났을 때 네 칭찬을 하더구나! 부모는 자신의 칭찬보다 자식의 칭찬을 들을 때 더 기쁘단다. 지금까지 내 딸답게 잘해오고 있었다. 네가 내 딸인 것이 또한 나의 자랑이다. 언제나 아프지 말고 건강해라.
8살 손녀가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하더란다. “할머니 이번 설에는 요! 세뱃돈 주지 말고 선물을 사서 주세요.”라고. 손녀의 마음을 헤아려보면 세뱃돈을 받기는 손녀가 받아도 손녀가 갖고 있으면 잃어버린다고 그 돈은 다시 며느리 수중으로 들어가는 메카니즘에 대한 손녀의 반발로 보인다. 손녀에게 “그럼 무슨 선물을 사 줄까?”라고 물었다. 이런 되물음에 미리 준비가 없었는지 손녀는 얼른 대답을 못하더란다. 물론 손녀가 받은 세뱃돈의 몇 배의 돈을 손녀를 위해 며느리가 썼겠지만 손녀의 눈에는 자기가 받은 돈을 직접 되돌려주지 않는데 대한 불만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면 세뱃돈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요즘 아이들은 생각한다. 옛날 우리 때는 일가친척의 어른들에게 세배를 해도 세뱃돈이 없었다, 농촌 자체에 돈이라고 씨가 말랐으니 줄 수가 없었다. 아주 귀하게 서울에 사는 친척어른이 할아버지에게 세배를 하러 왔을 때 우리도 친척 어른에게 세배를 올리면 지금 돈의 가치로 천 원 정도를 줄때가 있었다. 당시로서 세뱃돈을 받는 다는 것은 하늘로 날아갈듯이 기쁜 사건이다. 물론 부모님들도 흔한 일이 아니니까 세뱃돈을 낚아채지도 않았다. 그 돈으로 연필도 사고 과자도 사먹었다. 내년에도 꼭 세뱃돈을 주는 친척어른이 다시 오기를 기다렸던 추억이 있다.
자식들을 키울 때는 세뱃돈을 주고는 이놈들이 어떻게 사용하나 눈여겨봤다. 아이들이 세뱃돈을 많이 받으려고 보통 머리를 굴리는 것이 아니다. 어느 삼촌은 얼마를 줄 것이며 외가 집에 가면 누가 세뱃돈을 얼마나 줄 것인지를 주판알 굴리듯 복잡한 계산을 한다. 세뱃돈을 다 모으면 얼마가 될 것이며 그 돈의 사용처까지 생각해 본다. 그런 희망을 알고부터는 결산해서 희망금액에 부족한 금액만큼은 선심성으로 아버지인 필자가 채워 주기도 했다. 부모로서 자식이 희망한 금액에 미달되어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애처로웠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이나 중, 고등학생의 경우 용돈의 쓰임새가 다르다. 합리적으로 차등해서 세뱃돈을 주었다. 적게 받는 동생이 울상이 되며 부당하다고 따지기도 했다. 그래서 겉으로는 똑 같이 주고 큰놈은 나중에 따로 불러 별도로 봉투를 준적도 있다. 금액의 고하간에 별도로 자신만 배려 받아 특별 대접을 받는 다는 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기분 좋은 일이다.
한번은 형님 집에 아이들을 데리고 세배를 갔는데 형님이 우리아이들한테는 만 원짜리 한 장씩을 주면서 당신의 손자에게는 십만 원 정도를 줬다. 자기 손자 더 주는 것을 뭐라고 탓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세배하는 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차별적으로 더 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지만 형님이 하는 일이라 못 본채 했다. 우리 아이들이 차별대접을 받았다고 입이 한발이나 나왔다. 집에 와서 십 만원을 채워주고 친아버지와 큰아버지이 차이라고 이해 시켰다. 다음해부터 큰집인 형님 댁에 아이들이 가지 않겠다고 토라져있어서 달래느라고 애를 먹었던 추억도 있다.
세뱃돈의 크기도 우리나라 경제력에 따라 많이 커졌다. 천원 오천 원을 세뱃돈으로 주면 단박에 얼굴빛이 변하고 실망한다. 만원이 거의 최하액수의 마지노선이다. 보통 2~3장은 줘야 아이들이 만족해하는 모습을 한다. 세뱃돈 많이 받기 경쟁을 하고 어떤 집 아이는 그 나이또래로서는 만져보기 어려운 거금을 받기도 하는 모양이다.
사실 세배(歲拜)는 어른에게 ‘지난 세월에 감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어른들에게 지난한해 보살펴주신 존경의 의미를 담아서 직접 찾아가서 큰 절을 올리는 풍습이었다. 가난해도 동네 어른 댁에 소고기 한 근이나 고등어 한손 정도는 선물을 했다. 집에 할아버지가 살아계시면 이곳저곳에서 보내오는 선물꾸러미가 제법 쏠쏠했다. 아이들의 세뱃돈을 말하기보다 이웃의 노인들에게 세배를 어떻게 하고 무슨 덕담을 올릴 것인가를 걱정해야할 나이가 되었다.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만나자고 전화를 할 경우, 이 전화를 '콜드 콜(Cold Call)'이라고 한다. 사전에 만나자는 약속을 한 일도 없고 만날 필요가 있는 사람인지 조차 모른다. 누군지도 모르고 왜 만나자는 건지도 모르니 반가울 리 없다. 그래서 높은 사람들은 직접 전화를 받지 않고 비서를 통하게 한다.
사람이 살다 보면 매번 사전 약속을 하고 사람을 만날 수는 없다. 긴급한 일이거나 너무 절차를 밟다 보면 만남 자체가 성사되지도 않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콜드 콜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아들 집 근처에 갈 일이 있었다. 당초 아들네 집에 갈 생각은 안 했는데 그 동네이다 보니 아들 내외와 손녀라도 볼 생각으로 전화를 한 것이다. 아버지가 간다는데 못 오게 할 자식은 없으나 문제는 필자와 같이 간다는 사람이었다. 아들로서는 콜드 콜이 된 셈이다. 결과적으로 아들이 거부하는 바람에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콜드 콜은 ‘부담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뜻한다. ‘만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도 된다. 반가운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기쁘게 전화를 받는다. 본인이 부담을 주는 사람인지, 반가움을 주는 사람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콜드 콜을 거부하는 경우를 보면, 자기 스케줄에 차질을 주기 때문이다. 그 전화 때문에 다른 스케줄에 차질을 가져오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한참 직장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는데 누가 사전 약속도 없이 근처에 온 김에 들렀다며 연락해오면 당혹스럽다. 나갈 수도 없고 결국 못 만난다며 거부 의사를 밝혀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보험회사나 콘도 회사, 부동산 투자 회사처럼 모르는 전화번호가 뜰 때가 많다. 모두 콜드 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마디 답변해 주다 보면 말려들어 결국 보험 상품에 가입하게 된 것도 이미 여러 개다.
오랜만에 걸려오는 동창생 전화도 반가운 전화가 아닐 경우가 많다. 결혼식 청첩이거나 부고의 경우가 많다. 심지어 보험 권유인 경우도 있다. 그래서 요즘은 모르는 전화번호가 뜨면 그냥 끊어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나이가 들다 보니 스케줄이 없는 날들이 많다. 하루가 무료해서 뭔가 일을 만들려고 할 때, 그럴 때 한 통의 전화는 반갑다. 저녁식사도 하고 당구도 치자는 것이다. 그런 전화는 사전 약속이 없었지만, 콜드 콜이 아닌 것이다. 마침 상대방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먼저 전화가 걸려오면 텔레파시가 통한 것처럼 반갑다. 웜 콜(Warm Call)이 되는 것이다.
정이 많은 사람은 그저 생각나는 대로 여기저기 전화번호를 눌러댄다. 여기저기 전화를 하면 안 된다. 무엇을 부탁하는 것도 아니지만, 바쁜데 무슨 말을 하려는지 상대방을 초조하게 만든다. 콜드 콜이 되는 경우가 많다. 용무가 있으면 먼저 문자로 보내야 하는 세상이다.
서울 일부 지역의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정부의 부동산대책은 백약이 무효다. 젊었을 때 입주하여 산천이 세 번 넘게 바뀌도록 이사 한번 안하고 관악구 같은 집에서 산다. 이때쯤 관악에서 사는 아유를 밝힐 때가 되었다. 몇 년 전 사회은퇴를 앞두고 오랜 도시생활을 벗어나 전원생활을 하고 싶은 생각을 하였다. 전원이주 지인들을 살피면서 취향은 맞는지 환경변화는 어떠한지 검토하였다. 취향과 성격에 어울리는지가 제일 큰 문제였다. 전원은 어릴 적 추억일 뿐, 이미 도시민이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젊었을 때 휴가철이나 휴일에 짬짬이 시간을 쪼개서 여행을 즐겼다. ‘아! 아름답다. 또 와야지’ 감격을 먹고 다시 올 것처럼 다짐을 하였으나 같은 곳으로 또 갔던 기억은 거의 없다. 추억은 얼마 지나면 잊어버리고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여행이 더 즐거웠다. 한 곳에서만 꼼작 못하고 살아야 할 아무 이유가 없었다. 전원으로 이주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편리한 도시에서 살면서 쾌적한 전원으로 여행’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전원이 그리울 때는 주말농장을 찾으면 되었다.
서울 어디서든지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관악·북한·청계산은 우리의 전원이다. 수도권 전철 경춘·중앙·경강선을 타면 가는 곳마다 명승지다. 매주 친구들과 서울근교·원거리 산행을 즐기고 있다. 봄꽃·여름녹음·가을단풍·겨울함박눈 따라 학교동창·자원봉사동료·사회평생교육동기들과 산행을 즐긴다. 각자의 신체조건에 맞춰서 산을 찾으면 바로 그곳이 전원이다. 관악전원마을에서 즐겁게 사는 이유다.
첫째, 관악산이 포근히 감싸는 천혜의 자연을 자랑한다.
관악산은 관악구를 포근히 감싸고 있다. 연주대 정상에 오르면 암자가 추녀 밑 제비집처럼 앙증맞게 매달려 있다. 서울둘레길·관악산둘레길이 잘 정비되어서 등산을 하거나 산책하기에 편리하다. 관악산 계곡과 도림천은 여름철 물놀이 천국이다. 잣나무 삼림욕장은 천혜의 치유광장이다. 어디서나 몇 십 분이면 관악산에 연결된다. 아침마다 뒷동산 체육공원에서 건강을 다질 수 있다. 울창한 숲 덕분에 여름철에도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다.
둘째, 관악은 교육특별구다.
집주위에는 초·중·고등학교가 연이어 있고, 가까운 곳에 대학교가 있다. 한곳에서 오래 사는 덕분에 아들과 딸은 전학 한번 없이 교육을 마쳤다. 결혼 후에는 가까운데서 살고 있다. 쌍둥이 손녀와 손자가 아들이 다녔던 초등학교에 다닌다. 아들과 손주는 도시에서 보기 드문 ‘초등학교 부자동문’이 되었다. 앞으로 오래도록 관악에서 더 재미있게 살아야할 이유다. 손주를 정성껏 돌보자. 올바른 시민으로 기르는 인성교육 첫걸음이다.
셋째, 오순도순 분위 좋은 전원마을이다.
관악구청·평생학습관·문화원에서 열리는 사회교육이 활발하고, 도서관 운영은 최고수준을 자랑한다. 청운의 꿈을 키우는 젊은이가 많아 생기가 넘치는 곳이다. 늦었던 사회개발도 경전철 등 지역발전에 불을 댕기고 있다. 골목길·고갯길·사이길 등 도시화가 덜 된 ‘시골길’이 많다. 정이 넘쳐 활기 찬 골목길이 있는가 하면 인적이 뜸해 정을 그리워하는 고갯길도 있다. 도심 같지 않는 포근한 사이길이 있다. 다른 곳에서는 주민 간 통행 문제로 다투는 일이 종종 있으나 이곳은 오히려 이웃과 상생하는 정이 넘치는 곳이다.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 지난날의 은혜에 감사한다. 필자 마음에는 고마운 천사가 있다. 날개 없는 인간의 모습으로 필자에게 왔다. 쌍둥이 손녀·손자가 태어난 뒤 천사를 처음 만났다. 며느리가 산후조리 중,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손녀가 고열과 설사에 시달리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다. 신종플루 때문에 노약자와 영유아가 공포에 떨던 때였다. 동네 병원을 거쳐 대학병원에 갔으나 “치료가 어렵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눈앞이 깜깜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이가 태어난 병원으로 전화를 했다. “신종플루 감염 위험이 있어 보인다, 빨리 데려오라”는 천사의 음성을 들었다. 토요일 오후 병원 응급실. 당직근무 중인 여 의사는 아이 궁둥이에 코를 대고 대변 냄새를 맡았다. 그러더니 “검사 결과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 경험상 세균 감염으로 보이니 바로 치료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그때 필자는 천사의 모습을 보았다. 검사 결과는 다행스럽게도 신종플루가 아니고 장염이었다. 천사 덕분에 치료 시간을 제대로 확보했다.
다섯 달 뒤 외손자가 태어났을 때 집단 감염을 피하려고 산후조리원 대신 필자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게 했다. 녀석이 얼마나 크게 울어대던지 퇴근해서 집에 오면 아내와 딸이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저녁에는 필자가 아기 돌봄이가 되었다. 가슴에 안고 어깨에 머리를 묻게 하면 거짓말처럼 곧 잠이 들었다. 모두들 그 모습을 보며 “외손자와 궁합이 잘 맞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녀석은 외가에 오면 지금도 필자를 꼭 안고 잔다. 무럭무럭 자라서 어느새 초등학교 1학년생이다.
얼마 전에는 쌍둥이 손자에게 충치가 생겼다. 오후 일과 중 빈 시간에 짬을 내서 아이와 함께 병원에 갔다. 필자도 마침 사랑니를 뽑고 치료를 받고 있었다. 손자와 의자를 나란히 하고 앉았다. 마취를 해야 한다는 말에 녀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할아버지가 옆에서 지켜줄 테니 걱정 마라” 하고 안심시켰다. 필자의 치료는 어떻게 하는지 관심도 없이 옆자리 손주 살피기에 바빴다. 치아 갉아내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다. 처음 하는 마취로 감각이 무뎌진 입이 이상해서인지 손자 녀석 눈가에 이슬이 비쳤다. 그래도 의사와 간호사가 “씩씩하다”고 칭찬하자 거울을 보고 씩 웃었다.
치료를 마친 손자가 기특해 보였다. “할아버지, 입이 이상해서 방과 후 영어수업 하기 어려워요.” 방과 후 수업에 빠지지 않았던 녀석이 조그만 목소리로 필자의 표정을 살폈다. 할아버지는 눈치가 빨라야 한다. “나도 함께 치료했으니 집에 가서 게임하면서 같이 놀자!” 했더니 얼굴이 확 펴졌다. “엄마! 마취해도 아프지 않았고, 충치는 영구치가 아닌 유치래요.” 집에 오자마자 제 엄마에게 문자를 보내느라 바빴다.
오늘은 무럭무럭 잘 자라준 세 손주들이 천사다.
올해도 여의도공원에 야외 스케이트장이 열렸다. 아들이 직장 바로 앞 여의도공원에 스케이트장이 만들어졌다며 가보자 해서 손녀를 데리고 갔었다. 어린 손녀는 처음 타는 스케이트가 신기한지 자꾸 넘어지면서도 재미있어 했다. 즐거워하는 손녀를 보는 필자 마음도 흐뭇하고 좋았다.
도시 한가운데에서 스케이트를 즐길 수 있다는 건 참으로 낭만적이고 멋지다. 전에는 잘 몰랐는데 서울시 곳곳에 겨울을 맞이한 시민이나 어린이들을 위한 스케이트장 또는 눈썰매를 탈 수 있는 시설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창경궁 연못에서 스케이트를 즐겼다. 그러나 도심 한복판인 공원 광장에 야외 스케이트장이 만들어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해봤는데 누구의 발상인지 참신하다. 어릴 때 외국 영화에서 아치형 다리 밑에서 원피스를 입은 여자들이 털목도리를 두르고 남자들은 양복 정장을 하고 우아하게 스케이트를 타는 장면을 보았던 게 생각난다. 너무나 로맨틱하고 참 아름다운 장면이라 감탄을 했는데 이제 우리도 도심 복판에서 얼음을 지치는 낭만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스케이트는 한 번 배우면 한동안 타지 않아도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정말 그랬다. 필자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스케이트를 탔다. 대전에 살 때였는데 목척교 아래 넓은 대전천에 겨울이면 둥근 링크가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이 스케이트를 탔다.
교육열이 높아 필자에게 무엇이든 가르쳐주셨던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날렵한 날이 있는 롱스케이트를 들고 처음 개천으로 내려갔던 때가 생각난다. 필자가 웬만큼 익힐 때까지 기다리시다가 대전극장 골목의 일본 음식점에서 따끈한 우동을 사주셨던 것도 기억난다. 정말 그리운 시절이다. 처음 몇 번만 엄마가 따라오셨고 필자가 스케이트를 좀 타게 되었을 때부터는 혼자서 타러 다녔다.
대전천 야외 스케이트장에는 스케이트 날을 갈아주는 아저씨도 있었고 간식으로 어묵이나 코코아를 파는 간이매점도 있어 신나게 스케이트를 타다가 사 먹었던 뜨거운 코코아 한 잔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신나게 울려 퍼지던 음악소리도 여전히 귀에 들리는 듯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이사해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 바로 건너편에 동대문 실내 스케이트장이 있어 틈틈이 친구들과 가서 놀았다. 그 당시 서울에 하나밖에 없는 스케이트장이었다. 여자아이들은 대부분 빨간색이나 흰색의 피겨스케이트를 탔지만 나는 검은색 롱스케이트만 탔다. 스피드를 즐기기엔 롱스케이트가 제격이었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스케이트를 탈 일이 없었다. 다른 재미있는 일이 그것 말고도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가 초등학교 때 학부모 스케이트 대회가 열렸다. 아주 오랜 시간 스케이트를 타보지 않아 걱정했는데 의외로 실력이 줄지 않아 등수 안에 들었다. 신기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때 스케이트나 수영은 한 번 배우면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TV 속에서 빙글빙글 링을 따라 스케이트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어릴 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필자도 당장 타러 나가고 싶은 충동이 든다. 하지만 마음뿐이다. 이제는 혹시라도 넘어져서 다치기라도 하면 안 되는 나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아직은 깊은 겨울이다. 좀 씁쓸하지만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며 대리만족이라도 해야겠다.
노인이 돌아가시면 동네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처럼 지혜의 보고가 사라졌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살아있을 때 노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필자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먼저 살아 본 인생선배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반면교사로 삼는 것을 좋아한다.
올해 86세인 ‘이00’ 할아버지는 필자와 치매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함께 하시는 분이다. 치매환자가 대부분 할아버지보다 나이가 어리다. 형님이 동생들을 케어 하는 형상이다. 이분은 6·25전쟁 때 함경남도에서 피난을 내려왔는데 그때 나이가 19세였다고 한다. 19세라는 한창 때에 피난을 오다보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산처럼 쌓여있다. 명함에 함경남도 중앙도민회 지문위원이라는 직함을 새겨서 다니신다. 치매봉사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이유도 건강관리에 있다며 고향땅을 밟아 보기 전에는 절대로 죽을 수가 없다고 하신다. 고향 사랑이 워낙 크다보니 고향 사람이 큰일을 당하면 부조금이나 축의금으로 몇 십 만원씩을 낸다. 그 바람에 아내의 눈 밖에 나서 매월 600만 원씩 들어오는 건물 가게세의 처분권도 아내 손으로 넘어갔다.
올해를 마감하는 치매센터 월례회에 정신과의사인 센터장이 참석한 가운데 각자 한해를 보내는 소감 한마디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00’ 할아버지가 몸이 늙어감에 대해 안타까운 말씀을 하시는데 손자 손녀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 참 답답하다고 하신다. 손자 손녀를 보면 이름을 부르고 싶은데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아 ‘그래 너 왔구나!’라고만 말해야 할 때 아! 나도 늙어가는구나 혹 나도 치매가 아닌가하고 겁이 덜컥 난다고 말씀하신다. 손자 손녀들이 할아버지가 자기 이름을 잊어버린데 대해 섭섭해 하는 눈치가 보일 때는 미안하다는 말씀도 하신다.
정신과 의사인 센터장이 대답으로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절대 치매가 아니며 그 연세에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 정상이라고 위로의 말씀을 했다. 그리고 그럴 때를 대비해서 끊임없이 메모하고 적어야 하는 점을 강조 했다. 치매전문가이며 정신과 의사가 말씀 하시니 맞는 말이다. 노인의 필수품으로 메모장이 각광받아야 한다.
필자는 ‘이00’ 할아버지께 이렇게 말씀 드렸다. ‘제 어머니도 여럿 자식을 두었는데 급하게 부를 때는 자식들 이름을 바꾸어 부르고는 아차 하고 다시 고쳐 부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손자 손녀에게 할아버지 상태를 미리 말씀해 두면 어떨까요. 즉 “할아버지가 이제 나이가 많아 깜빡 할 때가 있으니 앞으로는 할아버지를 보면 ’할아버지 저 00이가 왔어요’하고 미리 이름을 말하게 하면 해결될 것 같습니다” 하고 말씀 드렸다.
친자식의 이름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데 한 다리가 먼 손자손녀의 이름을 다 기억한다는 것은 노인으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노인과 대화를 나눌 때 어른을 공경한다고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지 말고 기억이 가물거리는 부분에서 추임새처럼 한마디씩 거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