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 26일 발표한 ‘신직업 창직·확산 보고서-누가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는가’에는 창직의 길을 걷고 있는 다양한 사례자들의 이야기가 포커스그룹인터뷰(FGI) 형태로 실렸다. 이중 중장년 창직 그룹의 녹취록을 토대로 그들이 창직을 하게 된 계기 및 과정, 경험자로서 느끼는 문제점 및 희망 사항 등을 정리해봤다. 익명의 참여자들이 개척한 창직 사례는 아름다운길여행가, 메모리얼스토리전문가, 윷놀이전문가, 도시농업관리사, 웨딩쇼퍼 등이다.
창직을 하게 된 계기와 그 과정
△아름다운길여행가=대학 때 법을 전공했는데, 그 시절 계속 등산을 다녔었어요.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모색을 했었죠. 그런 과정이 바탕이 되어 현재의 콘텐츠가 완성된 듯합니다.
△메모리얼스토리전문가= 몇 해 전 부친께서 돌아가시면서 조문객을 맞이했는데, 오시는 분들마다 비슷한 질문들을 계속 하시더라고요. 왜 돌아가셨느냐, 연세가 몇이셨느냐 그런 것들인데, 생각해보니 고인에 대한 정보를 볼 수 있는 곳이 전혀 없는 거예요. 신문을 봐도 ‘누구 부친상’ 이런 식이지, 당사자에 대한 내용은 알 수 없으니까요. 그런 문제에 착안해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가, 운영하던 회사를 폐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창직을 하게 됐습니다. 이전에도 개인 창업자로 일했지만, 시니어가 되어 창직·창업 전선에 뛰어드는 건 차이가 굉장히 컸어요. 예전에는 어떠한 젊음이라는 무기가 있었고, 해당 업종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고, 함께하는 동료들도 있었고 그런 것들이 자본이 됐을 거예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 하려니 그런 자본이 없잖아요. 혼자 해내야 한다는 게 무척 어려웠습니다 .
△윳놀이전문가= 55세에 다소 이른 퇴직을 했어요.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재취업 기회를 노렸지만 정말 하늘에 별 따기더라고요. 청년들과 경쟁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거든요. 그렇게 막막해하던 차에 노사발전재단에서 중장년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이 있어 참여했어요. 원래는 제가 금융기관 출신이다 보니 관련한 쪽으로 컨설팅을 해주셨거든요. 근데 그 일이 싫어서 기껏 회사 나왔는데 또 하긴 싫더라고요. 그러던 중에 제가 하는 강의에 윳놀이로 5분 정도 넣었는데 반응이 좋더라고요. 그렇게 시간이 점점 늘어나서 몇 시간짜리 강의가 된 거죠. 제 경우는 좀 다르지만, 자신의 경험을 창직으로 결합해 이뤄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시니어가 청년층보다 창직에 유리하다고 봐요.
△도시농업관리사= 제가 농협에서 일하다 퇴직했는데, 사람들이 ‘농협에서 일했으니 농사 짓는 거 어떠냐?’고들 많이 했어요. 이건 오해인 게, 제가 행정적인 업무를 한 거지, 농사와는 거리가 멀거든요. 그러다 일단 심심해서 강동구에서 텃밭 분양받아서 작물을 키워보는데, 자꾸 사람들이 이것저것 물어봐요. 근데 저라고 뭐 아는 게 있나요? 집에 와서 책보고 공부해서 가르쳐드리고 했죠. 그러다 제대로 해봐야 겠다 해서 농업기술센터에 가서 교육도 받고, 자격증들도 따고, 관련된 모임에서 회장까지 하다 보니 강의까지 하고, 그게 알려지면서 점점 일이 확장된 셈이에요. 어쨌든 직장 생활과 달리 정년 없이 일할 수 있어 만족합니다.
△웨딩쇼퍼= 아들이 결혼식 당일에 제 차를 가지고 가더라고요. 아니, 주인공이 어떻게 직접 운전을 한다는 거지?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런 서비스가 굉장히 비싸기도 하고 막상 그 내용이 허접하더라는 겁니다. 그럼 이 일을 우리 시니어가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환갑이 넘어 창직 한다고 하면 좋은 얘기 못 듣습니다. 리스가 크기 때문이죠. 가족들도 불안해했고요. 그래서 당장은 주변에 알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낮에는 관련 교육을 듣거나 자격증·공모전 준비를 했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죠. 그렇게 4수만에 육성사업에 선정 돼서 2000만 원을 지원받았어요. 그 후도 주변에도 터놓고 일도 확장해나간 거예요.
현 지원책들의 문제점과 바라는 점
△아름다운길여행가= 혼자서 뭔가를 끌어가는 게 힘들기도 하고 안타까워요. 창직자 사이에 소통 교류의 장이 너무 없습니다. 좀 연계가 됐으면 해요. 관련 협회 쪽에도 문의해봤었는데, 결국 비용 문제가 걸리더군요. 쉽진 않더라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개인 선에서 혼자 해나가다간 지쳐 나가떨어집니다.
△메모리얼스토리전문가= 창직을 준비하며 찾아보니 관련 지원제도가 정말 많더라고요. 그런데 대부분이 청년층 대상이고, 중장년 대상은 한 20%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나마도 홍보가 안 되어 모르는 경우가 꽤 있죠. 저는 소셜 벤처로 해서 예비 창업 패키지 일환으로 5000만 원 정도를 지원 받았는데, 이게 또 대표자 월급으로는 사용이 안 돼요.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직원 하나 명기해놓고 월급을 지급하는 희한한 구조도 생기죠.
△윳놀이전문가= 살펴보면 창직이라는 걸 청년층하고 많이 결부 시키는데 사실 그들은 한계가 있거든요. 뭐냐, 경험이 없잖아요. 그러니 은퇴 세대의 경험 요소를 십분 살려 활용하면 좋은데, 정보의 비대칭성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몰라서 못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고 봐요. 예전에 다른 자리에서 건의한 적이 있는데, 요즘 저출산 문제로 초등학교마다 빈 공간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공간을 활용해서 마치 초등학교 의무교육 받듯 은퇴세대도 관련된 교육을 받도록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도시농업관리사= 우리 분야도 정부 지원 사업들이 적지 않지만, 대부분 단기 지원이에요. 거의 1년이면 끝나버리죠. 중복 지원은 또 안 되는 경우가 많고요. 지속적으로 창직을 이어가고 관리하려면 5년 또는 중장기 사업으로 지속해서 지원해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웨딩쇼퍼=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받는 과정에서 문제점을 발견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조건을 택해야 하는데, 가령 일자리형으로 할 거냐, 혁신형으로 할 거냐, 비영리로 할 거냐, 사회 서비스로 할 거냐 이런 거예요. 제 경우엔 혁신형으로 했지만, 내용적으로는 일자리형에 가까워요. 그런데 일자리형의 경우엔 직원들을 채용하면 4대보험 가입이 의무거든요. 저희 요원들은 전부 프리랜서인데,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거죠. 그래서 혁신형으로 하려 하니 그건 또 채택이 까다롭다고 하더군요. 그런 괴리가 좀 있었고, 또 사실상 창직과 창업은 다르거든요. 어찌 보면 창업을 위해 ‘창직’이라는 걸 구실로 삼을 수밖에 없었죠. 발명가가 사업까지 하긴 어려운 것처럼 둘을 잘 구분해서 현실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봐요.
위 인터뷰를 진행한 최영순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과 이윤경 강남대학교 교수는 보고서를 통해 “중장년층의 창직 과정 역시 애로 사항이나 어려움은 있지만, 청년층과 달리 자신의 경력을 이용하여 프리랜서나 창업을 통해서 자신만의 직업을 구현 하고 있었다”며 “은퇴 이후에 찾은 새로운 직업이기 때문에 창직 경험 자체에서 얻는 자기만족이 높다. 창직의 동기나 창직을 통한 요구 사항들이 청년층과 다르기 때문에 차별화된 지원책을 통해서 본인의 경력을 살린 새로운 일자리 들을 만들기 위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자료 원문=‘신직업 창직·확산 보고서-누가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는가’]
미국은퇴자협회(AARP) 설문조사에 따르면 시니어 여성 3명 중 2명가량이 정기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으며, 이는 노후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인 여성 6643명을 대상으로 한 해당 조사에서, 50세 이상 여성들은 가장 많은 차별을 겪는 부분으로 다름 아닌 ‘연령차별’(Ageism)을 꼽았다(48%). 그밖에 인종·민족·피부색, 체중, 성별, 사회 계층에 대한 차별도 겪고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차별을 장기간 경험할 시 건강상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 연구에 따르면 불안, 우울증, 심리적 고통, 비만, 고혈압 및 약물 남용 등과의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울러 최근 자료에서는 이러한 차별과 아프리카계 및 라틴계 미국인의 인지 능력 저하와도 관련 있다고 보고했다. AARP 조사에서도 정기적으로 차별을 경험한다고 응답한 이들의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현재 정신 건강이 좋지 않다고 평가했다.
고령 근로자에 대한 고정관념
미국에서 직장 내 연령차별은 1967년부터 불법이지만, AARP 조사에 따르면 많은 고령 근로자가 이러한 차별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50세 이상 여성의 약 30%가 나이 때문에 차별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는 고령 근로자의 능력에 대한 오해, 사회 집단 분리, 교육 또는 승진 기회 감소 등 다양한 형태를 보였다.
미네소타대 공중보건대학의 사회노년학자 테티아나 쉬피 교수는 “대부분 여성이 직장에서 연령차별을 경험하며, 이는 가장 사회적인 차별 유형 중 하나다. 고용관리자 및 직원들을 대상으로 편견을 고치기 위한 훈련 등을 진행하지만, 연령에 대한 고정 관념과 차별적 태도는 여전히 공공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직접 목격한 사례에 따르면, 젊은 사람들의 경우 고령 근로자가 기술력이 떨어진다고 여기며, 회사 입장에서도 나이가 많은 직원을 뽑길 꺼린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현실에 반해 다양한 연구에서 고령 근로자에 대한 고정 관념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 직무 수행은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향상되며, 노인들은 충성도, 신뢰성, 리더십 및 조직 기술, 문제 해결 능력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령차별, 우울증ㆍ고혈압 등 심신 건강에 악영향
한편 차별은 여러 심리적 문제와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11월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차별을 자주 겪는 성인은 그렇지 않은 성인보다 정신 장애 진단을 받을 확률이 약 25% 더 높고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겪을 확률이 2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쉬피 교수의 연구는 연령차별과 높은 우울증 비율 및 낮은 삶의 만족도 사이의 연관성을 밝혔다.
쉬피 교수는 “모든 유형의 차별은 매우 직접적인 방식으로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만성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며 “이러한 차별로 인한 스트레스는 고혈압, 심장병 및 만성 질환을 포함한 신체적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심하면 수명까지 단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기적으로 차별을 받는 경우 대처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음 솔루션을 실천해볼 것을 조언했다.
차별에 대처하는 방법
[1] 자기 관리를 실천하라.
연구에 따르면 마음 챙김 명상, 일기 쓰기, 운동 과 같은 활동 은 지속적인 차별이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으로부터 심신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
[2] 강점에 집중하라.
미국 심리학회에 따르면 자신에 대한 핵심 가치, 신념 및 강점에 집중하면 편견의 부정적인 영향을 상쇄할 수 있다. 어려움을 극복하면 더 탄력 있고 미래에 대한 도전에도 능숙하게 대처 가능하다.
[3] 지원을 요청하라.
차별을 경험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거나 지원 그룹에 가입하면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덜 수 있다. 이미 불안이나 우울증을 겪고 있다면 심리학자나 치료사의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야 한다.
[4] 믿음을 바꿔라.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 관념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심리적 고통과 관련이 있다. 인종, 민족 또는 나이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재구성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연령차별과 관련하여 무의식적인 연령 고정 관념을 식별하고 나이가 들어감의 긍정적인 측면에 집중할 것을 권장한다.
[5] 행동을 취하라.
어떤 사람들에게는 차별에 항의하기 위한 조치나 행동을 취하는 것이 카타르시스가 될 수 있다. 여기에는 공식 불만 제기, 법적 조치, 집회 조직 또는 다른 사람을 차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제정하기 위한 공직 출마 등도 포함될 수 있다.
인생이라는 여행길에 오른 우리는 항상 또 다른 여행을 꿈꾼다. ‘한 번쯤 제주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미 살고 있는 곳이 아닌, 나를 환기해줄 수 있는 새로운 환경에 호기심이 향한다. 그러나 무작정 제주행 비행기에 올라탔다간 상상과는 다른 생활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진정한 제주를 느끼고, 다시 일상을 버틸 인내를 얻고 싶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생활 관광의 형태인 ‘한달살기’는 낯선 지역에서 먹거리, 볼거리를 즐기고 현지인과 교류하는 기회를 가지며 그 장소를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특히 환상의 섬이라 불리는 제주도는 국내에서 한달살기에 적합한 지역으로 중장년층에게 주목받고 있다. 언어가 달라 버벅거릴 일도 없고, 갑자기 생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지 않아도 돼서다. 해변의 반짝이는 몽돌들, 아기자기하게 이어진 돌담, 솟아오른 야자나무 등 천혜의 자연이 펼쳐져 있어 해외에 온 것 같은 기분은 덤이다.
‘진짜 나’를 찾기 위한 쉼
51세 이정은 씨는 지난 5월, 큰딸의 권유로 제주 애월읍에서 한달살기를 시작했다. 젊은 시절부터 부산에서 자녀 셋을 키우며 직장 생활을 병행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자신의 삶은 없어지고 아이들의 엄마, 직장인이라는 자격만 남아 있었다. “어느 날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정말 잘 모르겠더라고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죠. 남편,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 지금 바로 읊을 수 있어요. 내가 아니라 타인 속에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주도에 도착한 순간, 머리 아픈 일상과 복잡한 감정들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마음이 안정되니 풀 한 포기, 흙 한 줌이 생생하게 느껴져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는 셈이죠.”
단박에 떠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말 내가 집에 없어도 될까?’ 싶은 마음에서다. 그러나 오히려 자녀들도 서로를 살피고 집안일을 분담하며 책임감을 가질 기회가 됐다. 그때야 이 씨는 모든 게 혼자만의 집착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불안하기도 해요. 그래서 제주 정도의 위치가 좋아요. 떠나온 느낌은 나지만 정말 급한 일이 있다면 육지로 다시 돌아갈 수 있으니까요. 해외는 당장 돌아오려 해도 밟아야 할 절차가 있잖아요.”
그의 제주살이는 한 달짜리지만, 이 시간을 촘촘히 보낸 덕에 앞으로의 일상을 위한 원동력이 생겼다. “제 나이가 되면 내려놓을 용기가 필요해요. 직업, 가족, 인간관계 등 이제껏 일궈놓은 일들이 다 자존심과 직결되는데, 은퇴하면 한 번에 뚝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제주에 와서 내려가기 위한 계단을 하나씩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다치지 않게요.”
새로운 친구와 함께하는 취미
제주도는 골퍼들에게도 사랑받는 지역이다. 골프장 주변으로 펼쳐진 오름과 손에 닿을 듯한 한라산이 안온하기 그지없다. 57세 한효진 씨 역시 골프를 즐기기 위해 제주로 한달살기를 왔다. 골프는 혼자 즐기기엔 한계가 있는지라 제주를 방문한 골퍼들이 모이는 온라인 카페나 커뮤니티를 적극 활용했다.
“골프장 동행을 구하는 글이 올라오면 댓글이 엄청 빨리 달려요. 아무래도 골프는 비슷한 실력을 갖춘 또래와 제일 편하게 칠 수 있을 것 같아서, 올라온 글을 보고 저랑 맞겠다 싶으면 연락하죠. 덕분에 공감대가 잘 맞아서 즐거워요. 한 게임 즐기고 점심도 같이 먹으면서 새로운 사람들이랑 교류하는 재미가 쏠쏠해요.”
여가 시간에는 가까운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고, 카페에 들어가 차 한잔 마시며 공상에 잠긴다. “혼자 오름을 오르다가 다른 사람들과 한두 마디 나누거나, 조용히 비자림을 걸으며 나무 향을 맡는 일은 마음에 안정을 줘요. 해외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는데, 제주는 아무래도 국내라 다시 오면 된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편히 먹게 돼요.”
환상만 품었다간, ‘글쎄’
제주도에서 항상 환상적인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유명인들의 제주 생활이 세간에 아름답게 비춰지다 보니 제주 생활 자체가 인생 후반부의 로망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만일 한달살기, 더 나아가 제주로의 이주를 단순히 불편하고 벗어나고픈 과거로부터의 탈피라고만 생각한다면 해피 엔딩은 장담할 수 없다.
제주도는 섬이기 때문에 마트, 학교, 학원, 편의시설이 모두 제주 도심에 몰려 있다. 특히 외곽으로 조금만 벗어나면 병원을 찾기 힘들다. 큰 사고가 나거나 병에 걸렸을 때 의료 혜택을 이용하려면 50분 이상 이동해야 한다. 따라서 멋진 자연환경만 생각하고 너무 외진 곳으로 들어가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불편한 대중교통, 비싼 난방비, 추가로 붙는 택배비 등도 생활을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로 꼽힌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반복되면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 있다.
제주도는 분명 인생 후반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낭만적인 장소임은 틀림없다. 제주에 살아보기를 계획하고 있다면, 현실을 보고 그에 맞는 생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단점을 감내하는 만큼 그 속살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장성식, 박영순 부부의 제주 한달살기 tip
장성식(55), 박영순(54) 부부는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서 초밥집을 26년째 운영하고 있다. 자영업 특성상 쉬는 날이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마음은 지쳐가고, 체력은 바닥이 났다. 재충전이 필요하다고 느낄 즈음, 우연히 인터넷에서 한달살기를 알게 됐다. 평소 자연 친화적인 삶을 추구하는 편인 데다 나이가 들고 자녀들이 독립하면 도시에 사는 게 맞는지 고민을 많이 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연고도 없는 제주에 무작정 이주하는 것은 위험한 모험이기에 일단 한 달간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계획 과정에서 가장 고심했던 요소는 단연 ‘숙소’다. 구체적으로는 도심을 벗어나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가, 숙소 호스트와의 소통은 원활한가 등을 고려해 서귀포의 ‘아라민박’에 자리 잡았다. 부부는 한달살기를 하면서 어떤 것을 느꼈을까?
성향에 맞는 숙소 찾기는 필수
“사람마다 좋아하는 여행 스타일이 다르고, 지내고 싶어 하는 숙소가 달라요. 저희 부부는 제주 이주를 고려하고 있어서 실제로 제주에 살고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었어요. 또 현지 분들만 알고 계신 좋은 장소나 식당도 공유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죠.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고 숙소를 정해서인지 운명처럼 다정한 분들을 만났어요. 사장님이 여행 관련 정보를 많이 알고 계셔서 그것만 참고해도 한 달이 훌쩍 가버릴 것 같네요.”
‘무조건 관광’의 한계
“유명한 관광지를 쫓아다니기엔 한계가 있어요. 그런 곳은 사람도 많은 데다 입장료도 꽤 비싸죠. 그건 저희가 원하는 온전한 쉼이 아니기도 하고요. 부부끼리 왔지만, 한 달이 짧은 시간은 아니다 보니 처음엔 즐겁게 지내도 갈수록 무료해질지도 모르죠.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충분히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어렵게 낸 시간인데, 의미 없이 흘러간다면 슬프잖아요.”
배차 시간이 긴 대중교통
“서울은 보통 10분 내로 대중교통을 탈 수 있어요. 오히려 자가용이 불편할 때도 있죠. 하지만 제주는 달라요. 자가용이 없으면 바로바로 이동이 힘들고, 대중교통은 항상 시간을 맞춰야 해요. 중간에 환승하게 되면 더 복잡해지죠. 그래서인지 요즘은 자차 탁송도 많이들 하시더라고요.”
부담스러운 식비
“한 달 동안 매일 밥을 사 먹을 수는 없잖아요. 제주도 물가가 만만찮으니까요. 저희는 준비해둔 각종 식재료로 해 먹는 경우가 많아요. 조미료는 숙소에 구비돼 있는지 확인해보고, 소분해서 챙겨오는 게 좋아요. 하루 식비를 일정 금액 정해두는 것도 방법이죠. 게다가 도심에서 벗어날수록 식당이 빨리 문을 닫기 때문에 일정을 잘 조율해야 해요.”
안명홍조, 건망증, 발한, 심하면 우울증과 불안증까지 나타나는 갱년기(폐경기) 증상 때문에 일상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중장년 여성이 적지 않다. 갱년기에는 몸 안의 호르몬이 급격히 변화하며 다양한 증상이 발현되는데, 이를 오래 방치하면 골다공증, 비만, 심혈관질환 등으로 이어져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일반적으로는 합성에스트로겐(E2)을 투여하는 보충요법이 사용되는데, 이는 자궁내막암이나 유방암 등을 유발한다는 보고가 있어 부작용이 적은 치료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자생한방병원에서는 갱년기 증상에 주로 처방하는 JS트로겐의 주요 한약재 ‘황정(층층갈고리둥굴레)’을 연구 논문을 통해 그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 받았다. 자생한방병원 척추관절연구소(소장 하인혁) 박두리 선임연구원 연구팀은 동물실험 연구를 통해 황정의 갱년기 치료 기전과 안전성을 확인했다. 해당 연구논문은 SCI(E)급 저널 ‘Biomedicine & Pharmacotherapy (IF=7.419)’ 7월호에 게재됐다.
부작용 우려 적고, 안정성 높아 효과적
연구팀은 실험 쥐를 대상으로 난소절제 수술을 통해 갱년기와 같이 여성호르몬이 감소한 상태를 재현했다. 이어 쥐들을 황정 투여군과 합성에스트로겐 투여군으로 나눠 갱년기 치료 효과를 분석했다. 각 군에 따라 6주간 황정 추출물 및 합성에스트로겐을 각각 구강 투여했으며 황정 추출물의 경우 3가지 농도(100, 200, 400 mg/kg)로 처리해 이에 따른 변화를 살폈다.
먼저 연구팀은 질의 두께 회복 정도에 대한 분석을 진행했다. 질 표피세포 및 단면의 염색을 실시한 후 여성호르몬이 발현하고 기능하도록 돕는 ‘에스트로겐 수용체 알파(ERα)’와 ‘에스트로겐 수용체 베타(ERβ)’의 발현량을 관찰했다. 황정 투여군의 경우 가장 높은 ERβ 발현량을 보이며 뛰어난 표피 두께 회복 효과를 보였다. 또한 황정은 ERα와 자궁내막 과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인자인 ‘섬유아세포성장인자(Fgf)2’와 ‘Fgf9’을 억제해 부작용 없는 갱년기 치료제로 확인됐다.
반면 합성에스트로겐 투여군은 정상군과 황정 투여군에 비해 자궁내막에서 ERα의 발현량이 두드러지게 높게 나타났다. 다만 ERα 발현량 증가는 자궁내막 과형성과 같은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연구팀은 황정 투여군의 치료 안전성이 합성에스트로겐 투여군 보다 높다고 해석했다. 더불어 연구팀은 각 치료군에 대한 다리뼈 CT(컴퓨터 단층) 촬영, 체중 및 콜레스테롤 측정, 혈중 세로토닌 호르몬 측정 등의 실험도 실시했다. 실험 결과 황정 투여군의 체중이 더 낮았으며, 다리뼈 CT와 여러 골질량 관련 수치에서도 뼈 보호 효과를 나타냈다.
황정은 '향약집성방'이나 '본초강목', '동의보감'에서도 소개되는 한약재로, 비위의 기능을 좋게 하고 풍습을 없에며 오장을 편안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박두리 선임연구원은 “이번 논문은 JS트로겐의 주요 한약재인 황정의 갱년기 개선 효과와 기전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며 “천연 갱년기 치료제로써 호르몬 치료의 부작용 우려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사용이 가능한 만큼 치료법 활용 및 건강기능식품으로의 개발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열사병으로 응급실에 방문한 뒤 사망한 사람 10명 중 절반 이상이 70대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취약 계층이 거주하는 쪽방촌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의사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21일 질병관리청으로부터 받은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5년간 열사병 등 온열질환으로 응급실에 온 뒤 사망한 사람의 절반 이상(50.5%)이 70대 이상이었다”라고 밝혔다.
연령대별로 50대(17.2%), 40대(13.1%)가 그 뒤를 이었다. 20대(4.0%), 30대(4.0%) 등과 비교해보면 연령대가 높을수록 열사병에 취약한 것을 알 수 있다.
온열질환에는 열사병, 열탈진, 열경련, 열실신, 열부종 등이 있는데, 사망 원인 중 ‘열사병(99%)’이 가장 많았다. 열사병은 고온·다습한 환경에 노출될 때 체온조절기능 이상으로 갑자기 발생하는 질병이다.
신 의원은 “기후 위기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살인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앞으로 찜통더위는 더 악화할 것”이라며 “정부는 기후 변화가 온열질환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고령자를 비롯한 사회적 취약계층, 취약지역에 대한 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취약계층 및 고령자가 많이 사는 쪽방촌은 열사병 사망이 많이 일어나는 곳으로, 여름철마다 주의가 요구된다. 쪽방은 5층 미만 저층 건물 안에 방을 쪼개서 사용하는 형태로 면적 1~2평(3.3~6.6㎡) 정도의 좁은 방안에는 냉방 장치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서울 5대 쪽방촌은 동대문 청계천 근처에 있는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 종로3가역 및 익선동 근처에 있는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영등포역 6번 출구 바로 옆에 있는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쪽방촌 서울역 맞은편에 있는 서울 중구 남대문 5가 쪽방촌, 그 옆에 있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이다.
서울시는 현재 5개 쪽방 밀집지 건물 25개 동 복도에 에어컨 56대를 설치하고 있다. 지속적인 수요 조사를 통해 총 150대를 설치할 계획이며 쪽방촌 주민 2453명에게 여름용 침구 3종(홑이불·쿨매트·베개) 세트도 지원한다. 에어컨을 설치한 쪽방촌에는 7∼8월 전기요금도 대당 월 5만 원 한도에서 지원할 계획이다.
질병청의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는 전국 응급실 운영 의료기관(500여 개)의 자발적 참여로 운영되는 표본감시 결과다.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자 발생 추이를 보여준다.
상조회사는 1990년대 초반 일본의 호조회(互助會)를 모델로 하여 부산, 경남 지방부터 시작된 사업입니다. 장례 물품과 기타 서비스를 패키지 상품 형태로 제공하고 있으며, 회원 가입을 통해 매월 일정 금액을 불입하다가 장례가 발생하면 불입한 비용을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상조회사 관련 규제가 없던 시절 돈이 되는 사업이라고 알려지면서 우후죽순으로 상조회사들이 난립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극심한 소비자 피해로 연결되었습니다.
2009년 할부거래법이 개정되면서 상조회사들이 선불식 할부거래업자(사전에 돈을 낸다고 해서 선불식, 매월 일정 금액을 나누어 내는 방식이라 할부거래업)라는 이름으로 제도권에 편입되었고, 500개가 넘던 상조회사들은 점차 정리되어 2022년 현재 75개의 상조회사가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전체 가입자 수는 700만 명이 넘어가고 있으며, 총 선수금은 약 6조 8000억 원 규모입니다. 대표적인 상조회사로는 보람상조, 프리드라이프, 예다함 등이 있습니다.
상조회사 패키지 상품의 세부 내용을 구분해보면 수의·관·유골함 등 고인에게 필요한 장례용품, 상복·장의 차량·생화 제단 등 의전용품, 장례지도사와 접객 관리 도우미 등 인력 서비스로 나눌 수 있습니다.
상조회사의 장점은 정해진 비용 외에 추가 비용 없이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것과, 가입 후 10년이 지나도 최초 금액으로 물가보상 없이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소위 말하는 업셀링(Upselling)으로 고가의 수의나 유골함 등을 추가 판매하여 폭리를 취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10년 전에 비해 80% 이상의 상조회사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보면, 물가보상을 기대하기보다 되려 내가 가입한 상조회사가 문을 닫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더 큰 것이 사실입니다.
근래에는 후불제 상조의 약진이 두드러지는데요. 후불제 상조란 미리 돈을 받지 않고 장례 서비스 제공 후 일시불로 장례비를 지불하는 방식입니다. 선불식 상조회사의 불안한 부분을 해소할 수 있어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영세 업체들이 인터넷 광고를 통한 초저가 마케팅으로 유족들을 유인한 후 각종 추가 비용을 발생시키고 뒷돈과 리베이트로 수입을 보전하고 있어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우리 장례 문화는 급격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조문객 없이 가족 위주의 가족장이 일반화되어가고 있고, 빈소를 차리지 않는 무빈소장도 점점 빈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동안 금기시되던 부고 시 유족의 계좌번호 기재가 이제는 당연한 일이 되었고, 오히려 조문을 하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조회사들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채 오히려 고가의 상품과 끼워팔기, 여전히 근절되지 않은 뒷돈과 리베이트 등으로 시대에 역행하고 있습니다.
상조회사들이 회원들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고인의 마지막 존엄을 지키고 유족이 위로받을 수 있도록 장례 서비스 개발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을 바꿔야지!” 새벽 2시, 야근 후 돌아와 죽어도 농부가 되겠다는 남편의 아우성에 아내는 결단을 내렸다. 그렇게 어제까지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던 남편은 청바지를 입고 밭으로 향했다. 땅에 심은 건 포도나무였지만, 부부는 꿈을 심었노라 말한다. 그들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남편은 뭐든 이뤄진다 하고, 아내는 뭐든 이뤄지지 않아도 괜찮다 한다.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들의 꿈은 자연히, 그리고 자연이 이뤄가리라는 것이다.
테루아(Terroir)는 프랑스어로 ‘땅’을 의미한다. 와인이 만들어진 땅을 가리킬 때 흔히 사용한다. 충주의 와이너리 ‘작은 알자스 레돔 테루아’(이하 작은 알자스)는 소설가 아내 신이현(57)과 농부 남편 도미니크 레몽 에으케(53)의 꿈을 심은 땅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직접 과일을 농사지어 ‘내추럴 와인’을 만든다. 작은 알자스에 도착했을 때, 부부는 ‘웰컴 드링크’처럼 내추럴 와인을 내왔다. 풋사과 시드르였다. ‘폭’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리더니, ‘꼬르르르’ 미세한 탄산이 잔을 타고 미끄러졌다. 그 맛은 어떤가 하니, 마치 와인계의 평양냉면이라고 할까? 깔끔하면서도 은은하게 산뜻함이 감돌았다. 단순히 ‘맛있다’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했다. 걸맞은 단어를 고르던 차, 아내 신이현이 제대로 설명에 나섰다.
“내추럴 와인은 유기농 과일을 수확해 착즙한 뒤 필터링이나 살균 등을 거치지 않고 만든 와인입니다. 흔히 ‘맛있다’고 표현되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려 인위적인 첨가물을 넣지 않고 자연이 준 그대로 발효해서 만든 거예요. 즉 그 과일이 자란 땅이나 한 해의 기후 등에 대한 솔직한 설명과 같죠. 가령 비옥하지 못한 땅에서 나온 와인은 심플한 맛이 나기도 하는데, 그 역시 나름의 개성으로 보는 거예요. 고로 세상에 맛없는 내추럴 와인은 없습니다. 과일이 자라던 땅과 나무, 바람과 햇볕을 느끼고 즐기면 그뿐이죠.”
열매가 좋아하는 날을 기다리며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술, 내추럴 와인을 한잔 마시는 것은 한 움큼의 땅을 먹는 것과 같다고 했다. 와인 맛이 다른 것은 땅이 다르기 때문이고, 땅이 다른 것은 땅마다 스며 있는 농부의 땀방울이 다름일 테다. 더군다나 오롯이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내추럴 와인의 경우엔 가히 그 땅에 농부의 철학이 담겼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미니크는 어떤 농부라 말할 수 있을까? 그는 “땅을 키우는 농부”라 일컬었다.
“농부는 나무만 키우는 게 아니라 땅도 함께 키워야 해요. 일반적으로 포도밭을 한다고 하면 포도가 주렁주렁 많이 열리고, 그것을 수확해 큰돈을 얻는 게 목적이겠죠.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다릅니다. 나무와 땅이 있다면, 우린 땅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지금 당장 열매가 많이 열리는 것보다 땅을 살리는 기쁨이 더 크거든요. 그렇다 보니 농사짓는 방법도 다른 거죠.”
땅을 키우는 차별화된 농법으로 도미니크는 ‘생명역동농법’을 택했다. 생명역동농법이란 한마디로 우주의 기운으로 농사를 짓는 것이다. 식물에 영향을 주는 별자리의 움직임을 기록한 달력을 농사에 적극 반영한다. 꽃식물이나 잎식물, 열매식물 등 각기 다른 식물은 저마다 좋은 기운이 있는 날엔 활짝 생명을 펼치지만, 그렇지 않은 날엔 조용히 웅크리고 움직이지 않는단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도미니크는 씨를 뿌리거나 나무를 옮길 때 항상 별자리 달력을 펼쳐놓고 식물에게 좋은 날을 찾는다. 와인 역시 같은 방법으로 만든다. 가령 포도를 따거나 착즙할 때는 열매에게 좋은 날을 골라 작업한다. 씨를 뿌려 열매를 수확하고 내추럴 와인이 탄생하기까지, 모든 과정에 인간은 ‘돕는 자’의 역할을 할 뿐 그밖의 모든 것은 자연의 힘에 맡긴다. 그 이름처럼 ‘내추럴’(Natural)하게 말이다. 애당초 땅에 그러한 철학을 심을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그들의 삶에도 그러한 양식이 깃들었기에 가능했다. 혹자는 이런 부부를 보고 마치 물 따라 바람 따라 유유자적 산다고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이에 아내 신이현은 “그저 가만히 내버려둔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살아지는 건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가령 농사에서 ‘자연스러운’ 것은 수확을 위해 인간의 손이 가장 덜 가게 하는 거죠. 그런데 그게 가능하려면 실제로는 초반에 아주 많은 손길이 필요해요. 농부의 상당한 노력을 투여해야만 결국 자연스럽게 식물이 자라고 열매 맺는 시간이 찾아오죠. 물론 몸은 고단하고 힘들어요. 그런데도 자연에 맞춰 산다는 게 엄청난 철학이 있어서는 아닌 것 같아요. 그보다는 우리는 그냥 그게 좋더라고요. 자연에 해가 되지 않는 일이 나에게도 즐거움이 되고, 그것을 목표로 삼으니 소소하지만 매 순간 성공하는 듯한 기분도 들고요.”
농업의 꽃 술, 농부의 손으로부터
부부는 매 순간 성공이라 말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정신승리라 하겠다. 물론 그들에게는 그 말이 진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타자로서 일련의 과정을 듣노라면 매 순간 결코 녹록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그 위대한(?) 서막은 그들이 프랑스에서 한국에 오고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익히 알듯 포도농사와 와인 양조라면 프랑스의 여건이 더 나았을 테다. 농사에 관해선 고집스런 도미니크지만, 한국행을 택한 데에는 아내의 의견이 컸다. 사실 도미니크는 농사만 지을 수 있다면 어느 땅이라도 좋다고 했지만 말이다.
“남편이 농부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프랑스 남쪽으로 밭을 보러 다녔어요. 피레네산맥 근처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진 곳이었는데, 비싸지도 않고 환경도 괜찮았죠. 그런데 제게는 너무나 낯설었어요. 남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포도 따는 외로운 동양 할머니로 늙어갈 걸 상상하니 그건 싫더라고요. 마침 한국에 포도 와인은 많지만 사과로 만든 시드르는 없길래, 도미니크에게 한국은 어떠냐고 권했죠. 그렇게 파리의 아파트를 팔고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단순히 남편은 농사를 짓고 싶고, 아내는 한국에 살고 싶어 무작정 삶의 터전을 바꿨다. 한국의 땅값이 얼마인지, 양조장을 짓는 데 얼마가 들지, 생활비는 어떻게 벌지 등등 구체적인 계획도 대책도 없었다. 원대한 꿈만 가득했다.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 망해도 좋다. 적어도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했다는 말은 할 수 있겠지”라며 마음을 다독였다. 그렇게 중고차 한 대를 구입해 새 터를 잡기 위해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농업기술센터에 찾아가 자신들의 처지를 털어놓기도 했고, 공공기관에 도움도 요청했지만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사과연구소도 가보고 포도작목반에도 갔다.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특히 과일을 직접 농사지어 와인을 만들겠다고 하자 반응은 더욱 냉랭했다. 근처에서 과일을 구입해 양조하는 것이 돈과 수고가 덜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의 훈수가 더해질수록 도미니크의 철학은 되레 견고해졌다.
“농업의 꽃은 술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좋은 술은 농부의 손에서 시작됩니다. 때문에 와이너리에서 농사를 짓는 것은 기본이라고 봐요. 농부가 뙤약볕 아래 허리를 구부려 일하는 것은 배를 채우기 위함, 즉 생존을 위한 것이죠. 그러나 농업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술은 휴식과 즐거움을 위한 액체니까요. 우리가 먹는 쌀, 밀 같은 농산물은 생존을 위한 것이지만, 그 농산물로 만든 술은 온전히 즐거움을 위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술을 만드는 일 속에서 가장 인간다운 가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애처롭고도 숭고한 농부의 삶
아쉽지만 첫해 사과 농사는 망했다. 안타깝지만 두 번째 농사도 망했다. 그 후로도 장마, 가뭄, 병충해 등 고난은 계속됐다. 자연의 힘에 맞서기 위해 다른 농부들은 관수를 대고, 비닐을 깔고, 농약을 치기도 했지만, 내추럴 와인을 고집하는 도미니크에겐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자연의 섭리대로 땅을 일궈온 것처럼, 야속할지언정 편법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쓰라린 경험은 고스란히 초보 농부에게 귀한 밑거름이 됐다.
“점점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 같아요. 흉년이든 풍년이든 자연이 주는 것을 우리가 너무 슬퍼할 필요도 없고, 또 너무 기뻐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건데, 그럴수록 나무가 깊게 뿌리 내릴 수 있는 좋은 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땅이 좋고 뿌리가 깊이 나면 나무들도 어려운 환경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거든요. 당장은 좀 힘들더라도 먼 훗날을 위해 그 토대를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온종일 땅과 씨름하는 도미니크를 보고 있노라면 아내는 뭉클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애처로운 마음마저 든다. 남편이야 꿈을 이루느라 그렇다 하지만, 소설가 신이현의 꿈이 ‘농부의 아내’는 아니었을 터. 그러나 한국 생활이 서툰 남편의 뒷바라지는 고스란히 아내의 몫이 됐다. 생명역동농법을 위해 소똥이며 꿀벌이며 안 구해본 것이 없고, 갖가지 서류 준비며 비즈니스며 고객 응대며 자신도 처음 해보는 일들을 해내느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옳고 가치 있는 일임을 알기에 그녀는 오늘도 기꺼이 꿈의 조력자가 된다.
“도미니크가 만약 다른 일을 한다면 이렇게까지 열심히 돕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 사람이 하는 일이 굉장히 뜻깊다는 걸 느꼈고, 때론 그 모습이 감동적이기도 해요. 남편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옆에서 보면 ‘아, 저 사람이 하는 일이 굉장히 숭고하다’는 생각이 들죠. 물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집안에서는 인정을 못 받는 것처럼 저도 바가지를 긁곤 해요. 그러고 나면 또 미안하고, 힘들어도 도와주게 되고. 사실 이 나이에 제게 새로운 꿈이랄 건 없지만, 차차 땅과 일이 안정되면 양조장을 떠나 조용한 곳에 가서 판타지 소설이나 써볼까 상상해봅니다.(웃음)”
포도밭에서 피어나는 예술
부부가 그리는 ‘작은 알자스’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물었다. 이에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했다. 그저 하루하루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만큼 주어진 일을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하자는 마음가짐 정도?
“시골에 산다고 하면 ‘힘들게 어떻게 사느냐’며 촌이 가진 소외감을 떠올리는 이도 있고, 전원주택 짓고 제2의 인생을 여유롭게 사는 모습을 그리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식으로 시골이 주는 어떤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는데, 우리 생각은 달라요. 가령 문화, 예술 이런 걸 왜 도시에서, 갤러리에서만 해야 한다고 여기는지 모르겠어요. 최근 양조장에서 ‘농부 요리사 예술가’라는 작은 축제를 열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거든요. 예술가를 비롯해 마을분들도 오시고 함께 기타 치며 노래도 불렀는데 활기가 넘쳤죠. 그렇게 밭은 수확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얼마든지 예술을 위한 창작의 장으로도 쓰임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렇게 자연을 향유할 때 땅도 더 즐겁지 않을까요?”
작은 알자스의 첫 와인이 출시된 지 이제 5년 차. 아직 농부로서도 사업가로서도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부부는 서두르지 않는다. 와인 사업이 대박 나서 돈방석에 앉는 것이 목표가 아니기에 그렇다. 그저 현재처럼 원하는 방식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그뿐, 수익은 나중 몫이다. 그런데도 주변 이들은 흔히 “대박 나시라! 성공하시라”는 말로 그들을 재촉한다. 이에 그들은 말한다.
“그런 응원은 사실 별 의미 없습니다. 이미 원하는 인생을 사는걸요. 어쩌면 남들 눈에는 불안해 보일지라도 지금이 나쁘지 않거든요. 그러니 제발 그런 걱정은 넣어두셨으면 해요.(웃음) 적어도 우리는 지금 후회 없이 꿈꾸고 있다 말할 수 있으니까요.”
일본의 공적연금 문제는 우리나라 국민연금 이슈와 닮았다. 매년 현역 세대가 내는 연금 보험료율은 오르는데 지난 4월 공적연금 제도가 개편되면서 수령액은 줄었다. 공적연금 기금 고갈 위기론까지 나오자 일본 국민은 노후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 격인 일본의 공적연금(국민연금, 후생연금)은 매달 급여에서 18.3%를 떼어간다. 한국의 두 배다. 그런데 은퇴 후 65세에 국민이 받는 돈은 한국보다 조금 더 많거나 비슷하다. 연금 기금 고갈을 막기 위해 연금 보험료는 매년 올랐는데 연금을 받는 나이는 늦추고 있다.
공적연금 보험료, 14년간 매년 올라
일본에서는 20세 이상이면서 일본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의무적으로 월 1만 6610엔(약 16만 원)의 국민연금을 내야 한다. 직장에 취업하면 후생연금까지 통합해 낸다. 올해 4월 기준으로 65세에 연금을 받기 시작하면 월 28만 4409엔(약 272만 원)을 받는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은 30년에 걸쳐 연금 개혁을 시도했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때인 2004년 가장 큰 개혁이 이뤄졌다. 2003년 13.58%였던 공적연금 보험료율을 2017년까지 14년 동안 매년 0.354%포인트씩 인상하기로 한 것.
연금 지급액은 물가와 임금 변동에 따라 정해지는데 이를 반영하는 기준도 낮췄다. 소득대체율은 은퇴 전 벌어들이는 소득 대비 은퇴 후 받는 연금 수령액의 비율을 의미한다. 보통 안정적인 노후를 위한 소득대체율은 약 65~70% 수준으로 본다. 일본은 개혁 당시 명목소득대체율을 기존 60%에서 2040년까지 50%로 줄이기로 했다.
또한 기초연금 역할을 하는 국민연금 재정은 부족한 부분을 세금으로 최대 절반까지 보조하기로 했다.
이후에는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를 늦추는 정책을 도입했다. 아베 신조 정권 때인 2019년에는 월급을 받는 경우 70세 이후에 연금을 받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연금기구는 올해 4월부터 공적연금을 받는 나이를 65세 이후에서 10년 미루는 ‘75세 플랜’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물가 오르고 연금 줄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의 금리 인상, 원유 가격 상승 등으로 일본의 생활물가도 크게 오르고 있다. 올해 4월부터 이를 반영한 공적연금이 개편되면서 연금 수령액이 전년보다 0.4% 줄었다. 고마무라 고헤이(駒村康平) 게이오대학 교수는 일본 공영방송 NHK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공적연금이 현역 세대가 낸 보험료를 고령자 연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설계된 이상 지급액을 낮추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현 구조에서는 보험료를 높이지 않으면서 지급액도 줄이지 않는 정책을 유지한다면 지금 연금을 받는 사람도, 추후에 연금을 받을 사람도 결국 최종 연금 수령액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일본에서는 현역 시절에 낸 보험료만큼을 노후에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하는 사람이 늘었다. 2019년 일본 금융청이 ‘2000만 엔 부족’이라는 보고서를 내면서 연금이 고갈되고 있다고 분석하자 불안감은 더 커졌다.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노후에 받을 연금을 계산해보는 게 유행하기 시작한 이유다.
NHK에 따르면 국민연금을 40년 동안 전액 낸 사람은 2022년 기준 65세부터 75세 3개월까지 받아야 자신이 낸 만큼 받아갈 수 있고, 후생연금도 같은 기간 낼 경우 65세부터 75세 5개월까지 받아야 한다. 40년 동안 내고 최소 10년을 받아야 우리가 생각하는 ‘본전’에 가까워진다는 의미다.
연금 더 받으려면 일해야
일본 정부는 연금 수급 시기를 늦추는 동시에 고령자가 일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다. 2021년부터는 관련법을 개정해 일본 기업들이 ‘70대 고용 노력 의무’를 다하도록 했다. 이와 관련해 ‘재직 노령연금’ 제도도 손봤다. 재직 노령연금은 60~64세에 일하는 사람의 월 수입액이 28만 엔(약 267만 원) 이상이면 추후 받을 수 있는 연금을 줄이는 제도다. 올해부터는 월수입이 47만 엔(약 449만 원) 이상인 고령 근로자에 한해 수령 연금액을 줄인다. 또한 올해 10월부터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노동자도 후생연금에 가입하기 쉽도록, 501명 이상의 사업소에 근무하는 사람만 가입 가능했던 조건을 101명 이상으로 낮췄다.
또한 후생노동성은 QR코드를 통해 자신이 지금까지 낸 보험료를 바탕으로 몇 살까지 일했을 때 얼마의 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 간단하게 계산할 수 있는 ‘공적연금 시뮬레이터’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몇 세부터 연금을 받는 것이 좋을지 예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보험료를 내는 국민의 관점에서는 본전을 생각하지만, 전문가들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공적연금은 저축이 아닌 ‘보험’의 개념으로 노후 경제 위험을 대비하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미요시 케이(三好圭) 후생노동성 총무과장은 “내가 낸 원금을 다 받지 못하면 손해라는 논의는 의미가 없다”면서 “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공적 구조가 갖추어진 것이라고 이해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득과 재산이 10억 원 이상으로 높은 노인도 사회적 불안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의 사회적 불안 수준은 은퇴 이후 5~10년 혹은 10~15년이 경과 되는 기간까지 계속 상승하다가 이후 하락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달 30일 발간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복지 이슈앤포커스’에는 ‘한국인의 사회적 문제 경험과 인식 조사’ 결과가 게재됐다. 연구책임자는 불평등소득정책연구실 삶의질연구센터 곽윤경 부연구위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해 65~74세 노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국인의 사회적 문제 경험과 인식 조사’를 실시했다. 사회적 불안과 관련해 우리 사회에 대한 인식, 응답자의 경험, 사회적 관계, 응답자 스스로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인구 사회학적 특성 등을 살펴봤다.
사회적 불안이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안전사고나 불신의 경험, 그리고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인식에 근거해 유발되는 불안을 말한다.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성원들이 전반적으로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인의 사회적 불안 수준은 보통 이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의 사회 불안 인지는 5점 만점에 3.49점(표준편차 0.92)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영역별로는 ‘불평등 > 불공정·경쟁 > 불신·무망 > 적응·안전’ 순으로 나타났다.
△사회 불안 인지 : 우리 사회에 대한 불안을 의미함.
△적응·안전 불안 : 급격한 사회 변화를 못 따라가고 생활 안전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느끼는 불안.
△불공정·경쟁 불안 : 우리 사회의 불공정성과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유발되는 불안.
△불신·무망감 불안 : 우리 사회와 중앙정부에 대해 불신하고 희망을 느끼지 못해 발생하는 불안.
△불평등 불안: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불평등 문제로 인해 느끼는 불안.
특히 노인의 은퇴에 따른 사회적 불안 수준을 살펴본 결과, 은퇴한 노인은 적응·안전 불안과 불공정·경쟁 불안이 은퇴하지 않은 노인 혹은 평생 일한 적 없는 노인에 비해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는 은퇴 이후 노인이 스스로 새로운 삶의 패턴에 적응해야 하는 데서 유발된 불안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반면, 평생 일한 적 없는 노인 집단에서는 사회 전반에 대한 불안 인식(사회 불안 인지)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
경제활동 참여 상태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었다. 임시직과 일용직에서 사회 전반에 대한 불안 인식(사회 불안 인지)과 불평등 영역의 불안은 다른 경제활동 참여자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무급가족종사자는 적응·안전 불안과 불신·무망 불안이 다른 경제활동 참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소득 및 재산에 따른 사회적 불안 수준을 살펴본 결과, 사회적 불안은 소득 4분위, 그리고 재산이 2억~10억 원인 집단에서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다가, 소득 5분위 집단과 10억 원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집단에서 다시 높아졌다. 이는 곧 돈을 더 벌고 재산이 늘어난다고 해서 반드시 불안이 감소한다는 뜻이 아니다.
소득 분위가 높은 집단과 재산이 많은 집단이 불안한 이유는, 자산 중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비상시에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한 사회적 위험에 직면할 때, 주변 지인의 도움이나 사회안전망으로 충분히 대비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일 수도 있다.
사회적 안전망이 있다 하더라도 노인은 청년과 달리 신체 건강의 저하 등으로 인해 원래 수준으로 회복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회복하더라도 같은 경제적 수준으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인식이 배경에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곽윤경 부연구위원은 “전기노인(65~74세)은 본인 및 배우자의 은퇴, 건강 변화, 자녀 출가 등 가족 내 그리고 사회에서 역할 축소를 경험하게 되고 이로 인해 자긍심이 낮아지고 삶의 만족도가 저하된다. 이런 다양한 변화와 경험은 이들의 삶에 정서·심리적으로 큰 변화를 유발하여 사회적 불안을 가중한다”라고 분석했다.
이어서 곽 부연구위원은 “이들은 경제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가 이전 세대의 노인과 달리 매우 강하다. 이런 욕구와 의지는 실제로 이들의 경제활동 참여율 상승으로 반영되지만,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노인 다수는 고용의 보장성과 안정성이 낮은 임시직, 비정규직 등 단순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이는 노인의 삶의 질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라고 강조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노인의 사회적 불안이 높은 만큼 정책적 함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측은 “개인이 사전에 노후를 준비할 수 있도록, 생애주기별 맞춤형 노후 설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원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또한 “보편적인 관점에서 노인 관련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되, 사회적 불안이 높은 집단에 대해서는 특화된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노인의 사회적 불안을 사전에 예견, 관리 및 조치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노인의 사회적 불안에 대한 모니터링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사람이 죽으면 정말 끝일까요? 시신만 놓고 본다면 생명은 끝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은 죽어도 다른 사람의 기억에 남아 추억되고, 재산은 상속되며, 쓰던 물건은 어떤 식으로든 유품으로 남습니다.” - ‘당신의 마지막 이사를 도와드립니다’ 中
책 ‘당신의 마지막 이사를 도와드립니다’의 저자 김석중은 국내 1호 유품정리사이자 유품 전문 회사 키퍼스코리아의 대표다. 그는 유품정리사라는 일에 대해 ‘돌아가신 분들의 유품을 정리하는 일을 한다. 고인이 남긴 것을 분류해 남길 것과 버릴 것을 골라 정리한다’라고 표현했다.
‘그런 직업도 있어?’라고 묻는 사람이 여전히 많지만, 김석중 대표가 유품정리사로 일을 한 지도 벌써 15년이 됐다. 15년 전의 어느 날, 그는 20대의 젊은 직원이 갑자기 죽는 일을 겪었다. 이어 우연히 일본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유품 정리 일을 알게 됐고, 그 회사 대표를 찾아가서 유품 정리 일을 배우게 됐다.
책 ‘당신의 마지막 이사를 도와드립니다’에는 김석중 대표가 15년간 유품정리사로서 죽음의 현장에서 일하면서 마주했던 다양한 일과 그 과정에서 느낀 소회가 담겨있다. 특히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아닌 고인에 대한 예우를 갖춰서 일을 하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고 감동을 안겨준다.
김석중 대표는 보통 가족의 의뢰를 받고 고인의 유품을 정리한다. 요즘은 사전 예약도 늘고 있지만, 저자는 고인이 떠난 후 남겨진 물건들을 통해 고인과 처음 만난다. 그래서 그는 ‘현장에 들어가는 순간 마치 영상을 거꾸로 돌린 것처럼 시계가 반대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는다’고 표현했다.
한 사람이 사망하면 집 한 채 분량의 유품이 생기는데, 김석중 대표는 그 물건들을 보면서 고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고인이 각별하게 생각한 물건, 가족들에게 남겨주고 싶었던 물건 등은 물론 취미, 취향, 성격 등이 모두 보인다고 했다.
김석중 대표는 죽음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떠난 사람을 위해, 남은 가족을 위해 ‘마지막 이사’를 돕는다는 생각으로 유품 정리를 한다. 최대한 신중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임하려고 한다.
그러나 감정이 이입 되는 순간들도 있다. 태어난 지 1백일 만에 세상을 떠난 아기를 둔 부모님의 사연에는 눈물짓고, 재산만 노리는 가족을 만나면 화가 나기도 한다. 김석중 대표가 유품정리 일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김석중 대표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아흔을 앞두고 돌아가신 할머니와 60대 후반의 며느리 사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꼽았다. 며느리는 자신도 나이가 많고 너무 슬퍼서 시어머니의 유품 정리를 하지 못해 김 대표에게 의뢰했다.
김석중 대표는 “유품 정리를 마치고 유품을 며느님께 드렸더니 정말 많이 우셨다. 시어머니하고 며느리 사이인데, 정말 정이 깊은 사이라는 게 느껴졌다. 친딸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라면서 “저도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참고 밖에 나와서 혼자서 울었다. 지금도 내가 쓴 책이지만 그 부분을 읽으면 울컥한다”라고 말했다.
김석중 대표는 유품 정리 일을 하면서 장례학과 교수가 되고, 장례지도사까지 됐다. 그리고 돌이켜보니 그는 대학생 때 상조회사와 거래하는 도시락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손해보험회사에서 근무한 적도 있다고. 30년간 장례산업에 몸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장례업이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무섭지 않으세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 김석중 대표는 장례업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느낀다. 그는 “이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반드시 누군가 제대로 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김 대표는 ‘장례’에 대해 ‘영원히 이별해야 하는 가족이 마지막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하게 만들어주는 인문학적 영역’이라고 표현했다.
김석중 대표는 “장례학과 학생은 젊은 세대부터 연세가 많으신 분들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다. 그런데 젊은 학생들은 편견과 선입견이 워낙 심하다 보니 좌절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결코 천시 받는 직업이 아니고, 사람들이 고마움을 느끼는 직업이라는 것을 심어줘야겠다고 생각해서 책에서 장례에 대해 다뤘다”라고 설명했다.
김석중 대표가 책을 통해서 전하는 메시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대비를 해두라는 것’이다. 사람은 언젠가 죽고, 물건은 남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김석중 대표는 사후에 대해 미리 적어두는 ‘엔딩노트’를 작성하고, 가족들과 평소에 얘기를 많이 할 것을 추천했다. ‘치약을 눌러 짜는 것처럼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더 많은 추억을 나누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석중 대표는 “저는 모친, 딸과 함께 3자 통화를 자주 한다. 따로 떨어져 살아도 같이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 딸은 이제 저보다 할머니한테 더 자주 연락한다.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다”라면서 “이런 대화의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손주는 할머니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할머니는 손주가 있으니 외롭지 않고 든든하다고 느끼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죽음이라는 것은 결코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 사망 전부터 이후에 이르기까지 혼자 준비하고 맞이할 수 없으니까 반드시 가족과 함께 논의했으면 하는 것이다. 만약에 가족이 없다고 한다면 가족과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을 자꾸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60대 중반이신 분이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제게 연락을 하신다. 이분이 결혼을 안 하셔서 자녀가 없으시다. 부모님과 형제들도 다 돌아가셔서 가족이 없는 거다. 그나마 제가 있으니까 안심이 된다고 얘기하셨다. 오늘도 그분이 다리 수술을 하러 가시는데, 오늘은 못 가드렸지만 퇴원할 때 가볼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 사람한테는 어떤 누군가의 관심이 제일 절실할 수 있다. 가족이 없는 분들에게는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이다”면서 “우리(유품정리사)가 하는 서비스가 불안해하시는 분들에게 안심을 드릴 수 있는 일이라고 하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존재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