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언제나 즐겁고 마음 설레게 한다. 가족여행이면 더욱 좋다. 10월의 마지막 주 아들, 며느리, 손녀 손자와 함께 일본 오키나와로 휴가를 떠났다. 가기 전 그쪽 날씨를 검색해보니 우리가 가는 3박 4일 내내 계속 흐리거나 비가 내린다는 예보다. 한 달 전부터 계획하고 예약한 상태라 날씨가 흐리다고 안 갈 순 없었다. 흐리면 흐린 대로 즐거운 게 여행이다. 요즘 우리나라는 햇살이 뜨겁지만 아침저녁으론 좀 추운 날씨다. 그런데 오키나와는 10월의 막바지인데도 한낮의 기온이 30도를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한여름 옷과 카디건을 챙겼다.
9시 반 비행기라 우리 가족은 새벽 6시 좀 지나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공항 주차장에 자리가 없을까봐 우려했지만 마침 빈자리가 있어 주차 걱정 없이 산뜻하게 떠날 수 있었다. 아시아나 항공기로 일본 오키나와 ‘나하’ 공항까지 가는 데는 2시간이 채 안 걸렸다. 오키나와는 제주도처럼 남쪽에 있는 섬이라 본토 사람들이 우리가 제주도로 휴양가듯 찾는 섬이라고 한다. 원래 오키나와는 일본과 중국 사이의 독립적인 섬으로 일본이 아닌 류큐 왕국이었는데, 일본의 침략으로 일본 식민지가 되었다 또한 태평양전쟁 땐 미군이 점령해 지금까지도 곳곳에 미군 기지가 남아 있는 아름답지만 슬픈 섬으로 불리기도 한다.
‘나하’ 공항에 도착하니 하늘이 너무나도 파랗고 깨끗해서 여행 내내 비가 올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일본 기상청의 틀린 예보가 좀 우스워졌다. 공항 밖은 정말 들은 대로 매우 더웠다. 한여름 옷을 입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을 찾아 나가니 도요타 렌터카 회사 사람이 팻말을 들고 있었다. 렌터카 회사로 가는 셔틀버스에는 많은 여행객들이 타고 있었다. 렌터카 회사는 공항 가까운 곳에 있었고 우리 가족은 예약한 대로 7인승 차를 빌렸다. 일본은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 도로도 우리나라와는 달라서 좀 걱정되었지만 아들이 능숙하게 운전해서 다행이었다.
먼저 ‘나하’에서 꼭 사고 싶은 물건이 있다며 목적지를 ‘류보’ 백화점으로 잡았다. 마음에 든다는 예쁜 그릇을 고르고 오키나와 브랜드인 블루씰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여행은 시작되었다. 온통 바다로 둘러싸인 섬인 오키나와 남쪽 ‘나하’ 공항 중부 쪽에 있는 예약 숙소 몬테레이 호텔은 코앞에 바다가 멋지게 펼쳐진 곳에 있었다. 에메랄드빛 바닷물이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눈이 시릴 정도여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호텔은 모든 방이 바다 쪽으로 나 있었고 베란다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결혼식을 주로 한다는 하얀색의 교회당과 수영장 너머로 아름다운 바다가 끝없이 보이는 정말 예쁜 한 폭의 수채화처럼 보였다. 아직 어린 아기가 있어 잠자리가 편해야 한다고 고른 호텔이어서 모든 것이 안락하고 깔끔했다.
하루 한 끼는 호텔에서 제공하는데 뷔페와 일본 가정식 중에서 고르면 되었다. 그런데 숙소로 오는 도로가 엄청 막혔다. 지나다 보니 버스 한 대가 다 타버린 사고가 있었다. 좀 늦은 시각 도착한 우리는 방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내려갔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으니 맛이 있든 없든 귀부인이 된 듯 기분이 매우 좋았다. 아이들도 여행이 즐거운지 재롱을 부리며 늦도록 잠을 안 잤다. 이렇게 오키나와 여행 첫날이 지나갔다.
요즘은 지방에서도 축제가 많이 열리고 전통시장도 많다. 필자는 직업상 지방 행사나 축제를 많이 다니는데 이런 행사를 보면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 있다. 어디를 가나 별 차이가 없고 재미도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행사 관계자들이 관광객보다 더 많은 경우도 있다.
언제부터인가 아내는 두물머리 인근 강변에서 열리는 무슨 마켓이 좋다면서 같이 가자고 채근했다. 뭐가 특별하냐고 물었더니 고구마튀김이 특별해서 꼭 그곳에서 사와야 한단다. ‘아니 얼마나 형편없는 마켓이면 고구마튀김이 특별하지?’ 하며 아내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튀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서 흥미도 없었고 귀찮기도 했다. 그러나 아내는 주기적으로 고구마튀김 이야기를 하면서 압박을 해왔다. 쇼핑의 여왕인 아내가 고구마튀김에 집착하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생각을 바꿨다. 집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데 계속 버티는 건 거의 자폭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토요일, 필자와 아내는 차를 몰았다. 그러나 양평 방향으로 나가는 차량들이 팔당 댐 훨씬 이전부터 밀려 있었다. 구불구불한 구도로로 나가봐도 마찬가지였다. 차를 홱 돌려버리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고 후환을 걱정하며 버티고 또 버텼다. 평소 30~40분이면 될 거리를 두 시간이 더 걸려서 도착했다. 오전인데도 강변의 넓은 주차장에는 차가 빼곡했다. 북한강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강변에는 텐트가 두 줄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런데 처음 마주친 사인 판이 멋졌다. 목재로 만든 사인 판에 정감이 가는 글씨체로 마켓을 소개하는 글이 써져 있었다. 디자인에 예민한 필자의 눈에 당연히 그 사인 판이 들어왔다. 첫 번째 마켓은 풋고추, 애호박, 버섯, 피망 등을 진열해두었는데 디스플레이가 아주 예술적이었다. 나무판에 연두색 페인트를 바르고 가게 이름을 멋지게 쓴 게 보였다. 필자는 첫 번째 가게에서 이미 마음을 빼앗겼다.
산책로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는 텐트 가게가 죽 늘어서 있었다. 농민들이 직접 재배한 각종 농산물, 식품, 도자기, 목공예품, 천연염색 의류, 각종 소품 등 다양한 상품이 판매되고 있었다. 가게마다 특색 있는 이름을 예쁘게 디자인해서 가게 앞에 세워두었고 상품 진열도 아주 예술적이었다. 무엇보다 가게 주인들이 단골을 맞이하듯 친근하게 손님들을 대했다. 아내와 필자는 거의 마지막 가게에서 고구마튀김 세 봉지와 감자튀김 한 봉지를 샀다. 풋고추, 파김치, 토마토, 작은 지갑을 사고 떡볶이, 오뎅, 스테이크 한 조각이 들어간 햄버거도 먹었다. 오랜만에 축제다운 행사를 본 기분이었다.
건축을 전공한 필자는 지속가능한 전원주택단지 모델을 연구 중이다. 이곳 리버마켓에서 전원주택 단지에 디자인해야 할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몇 가지 아이디어를 얻게 됐다. 놀이동산에 온 것처럼 가게마다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고 주인들과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런 필자를 보고 아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필자는 아내에게 익살스럽게 말했다. “다음 장날에 또 오자!”
에어비앤비의 잘나가는 시니어 호스트로 소문난 최형식(崔亨植·64), 박만옥(朴萬玉·56) 부부의 집으로 찾아가는 과정은 물음표의 연속이었다. 관광지와 거리가 먼 서울 강북의 전형적인 아파트 밀집지역. 휑한 지하주차장에 내려서도 그 물음은 계속됐다. 인터폰을 통해 잠긴 철문들을 통과하며 외국 관광객들은 여행 기분을 느낄 수 있었을까? 최씨는 “그게 바로 우리가 넘어야 할 불리한 조건이었다”고 설명한다.
“에어비앤비도 일반적인 숙박업과 다를 바 없어요. 지리적 위치가 중요하죠. 우리 집 주변은 관광지도 없고, 경치가 뛰어나지도 않아요. 그래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나름의 노력이 필요했죠.”
이들 부부는 자신들이 가진 경쟁력 중 하나는 ‘아침밥’이라고 했다. 아내 박만옥씨는 다양한 경험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전 세계 건설현장을 돌며 현장 소장으로 근무했던 남편 덕분에 다양한 식문화 경험도 했고, 부하 직원들을 초대해 식사대접하는 일도 잦았거든요. 그래서 외국인 입맛도 어렵지 않게 맞출 수 있게 됐죠. 워낙 요리에 관심이 많아 한국에 돌아와서 일식, 양식, 한식 공부도 했어요.”
단지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집의 원칙은 아침식사를 오전 7시 시작, 최씨 부부도 함께 식사한다.
“음식을 따뜻하게 차려주고, 함께 식사해요. 함께 밥을 먹으면서 여행에 대한 정보도 나누고 소소한 일상에 대해 이야기해요. 마치 가족을 얻은 기분을 느끼죠.”
출가한 자녀의 빈방을 활용하는 대부분의 시니어들과 달리 최씨 부부의 두 아들은 아직 부부와 함께 살고 있다. 방이 모자랄 땐 두 아들이 한 방을 쓰기도 한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사정할 땐 두 아들 모두 친구 집으로 보내 방을 확보한 적도 있다. 물론 가족의 평범한 생활 모습은 ‘객’들에게 그대로 노출된다.
“미국에서 온 노부부는 가족끼리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무척 좋아했어요. 아이들을 자기 자식처럼 대해주기도 하고요. 다른 나라 가족의 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겐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도 불편해하지 않아요. 집으로 찾아온 외국인들과 스스럼없이 친해지기도 하고 함께 놀러 나가기도 해요.”
최씨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선물은 끊임없이 외국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누군가가 찾아와준다는 것이다. 1997년 이란 테헤란 현장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노후가 우울해질 수도 있었지만, 많은 외국인 친구들과의 만남을 통해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심리치료 효과까지 얻었다.
“일부에선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시작하면 당장 떼돈을 벌 수 있을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돈이 목적이라면 후회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노후에 보람 있는 일을 찾는다면, 에어비앤비도 좋은 후보 중 하나가 될 겁니다.”
직장에 다닐 때였다. 우리 아파트 부녀회장이 필자더러 동 대표에 출마해보라고 권유를 했다. 아파트 동마다 대표가 있고 그 대표들 중에서 전체를 총괄하는 동 대표 회장이 있다. 그동안 필자를 지켜보았는데 경험도 많아 보이고 부지런해서 동 대표 일을 잘할 것 같다고 부연설명까지 했다. 그래서 직장에서 사적인 일을 못하게 해서 할 수 없다고 완곡하게 사양했다.
직장에서야 근무시간 이후에 일어나는 개인적인 일에는 관여하지 않지만 필자에게는 동 대표에 얽힌 안 좋은 기억이 있다. 과거에 직장으로 투서가 날아왔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회사 직원 모씨가 아파트 동 대표 일을 하고 있는데 근무시간에 동 대표 회의를 주제하는 등 근무를 태만히 했으니 처벌하라는 고자질이었다.
모씨를 불러서 사유를 들어보니 아파트 주민의 관리비 절감을 위해 경비를 몇 명 해고하는 과정에서 해고된 경비가 앙심을 품고 여기저기 진정을 하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아파트 관리비 절감을 위해 아파트 출입문에 자동출입자 감시 장치를 붙이고 경비원을 해고하는 일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자동화 설비로 입주민의 관리비 부담은 줄었지만 해고되는 경비는 사생결단을 하고 덤벼들었다. 직책에 충실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구설수나 모함에 빠지게 된다. 그것이 필자가 동 대표를 맡지 않으려는 이유였다.
그러나 퇴직을 하고 나니 더 이상 거절할 명분도 없어지고 돌아가면서 맡는다는 심정으로 출마를 하고 주민투표로 당선되어 2년의 임기 두 번을 잘 마쳤다. 더 이상은 동 대표를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제정되어 있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원래 자리인 주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왔다.
아파트 동 대표의 비리에 관한 사건들이 종종 신문이나 방송에 오르내리곤 한다. 비리를 막으려면 주민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 첫째, 능력 있는 동 대표를 뽑아야 한다. 회계장부를 볼 줄 알고 상식적인 시설물 관리에 눈을 뜬 사람을 뽑아야 한다. 단지 인사성 밝은 좋은 사람으로는 부족하다. 둘째, 관리소장이나 관리소 직원을 적절하게 부릴 줄 알아야 한다. 크고 작은 아파트 유지 보수 건이 생기면 관리소 직원들이 자기 집 일하듯 시장조사를 하고 가격을 흥정하고 한 푼이라도 아낄 수 있도록 지시하고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 적당히 복수경쟁을 하도록 하고 영수증 처리나 하면서 나는 부정비리와는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태도 또한 옳은 자세가 아니다. 미리 시장조사를 해서 예상 비용을 알고 입찰을 보는 것과 무조건 입찰을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셋째, 관리비 절감을 위해 아파트 공동 유지비용 절감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필자는 지하주차장의 노후화된 재래식 안정기 형광등을 LED 등으로 바꿔 전력요금을 대폭 낮췄다. 개인재산인 보일러 같은 시설물을 교체할 때는 희망 세대수를 파악해 업체와 가격경쟁을 협상했다. 공동구매는 가격인하의 결정적 무기가 된다. 넷째, 주민들이 살기에 쾌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근무자들이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관리소 직원이나 경비원 청소부도 고용안정이 최우선이다. 급여를 쥐어짜 다른 아파트보다 적게 주려고 하면 안 된다. 많이는 못 줘도 남들만큼은 줘야 한다.
한 개의 아파트 동만 해도 시골 마을 전체의 세대수와 비슷하다. 주민은 더 많고 더 젊다. 지적 수준도 월등하고 역동적이다. 그러나 반상회를 하면 참여율이 저조하다. 살기 좋은 쾌적한 아파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주민 모두가 참여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최우선이라는 것을 알리고 물러나니 홀가분하다.
60세에 정년퇴직을 해도 몸과 정신은 아직 더 일할 여력이 있습니다. 친구는 직장에서 부장으로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서울 강남의 번듯한 아파트에 삽니다. 120만원의 국민연금으로는 생활비가 부족하지만 오피스텔 두 채에서 임대수입이 나오고 은행예금도 몇 억이 있어 이자 수입도 꽤 됩니다. 돈 나오는 구멍이 여럿이라 살아가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친구도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퇴직한 후라 처음에는 편안한 여생을 보내려고 했습니다. 아침 10시경 느긋하게 일어나 계란 프라이에 토스트 혹은 해동된 인절미 한 조각에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대신합니다. 조간신문을 보고 11시경 아파트 내의 헬스장으로 갑니다. 러닝머신에서 30분 정도 걷고 달리기를 합니다. 몸이 더워지면 역기 들기, 아령 등 기구 운동을 합니다. 거꾸로 매달리기, 윗몸일으키기 등 하체 단련운동도 약 30분 정도 합니다. 몸에서 땀도 나고 컨디션이 최고조에 도달할 때 집으로 와서 간단히 샤워를 하고 점심식사를 합니다. 물론 저녁도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대부분 집에서 먹는 삼식이입니다.
오후에는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도서관에도 가고 주민 자치센터에 풍물놀이 장구반에도 등록을 했습니다. 이런 생활이 6개월 정도는 잘 이어졌습니다. 처음에는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삶의 목적이 없는 세월 죽이기가 싫어졌습니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성과물에 울고 웃던 과거 직장생활이 그리워졌습니다. 마치 자신이 식충(食蟲)이 같고 세월을 허비하는 사람으로 느껴졌습니다. 건강한데도 이렇게 하루하루 늙은이처럼 사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친구는 나이든 사람들이 도서관이나 헬스클럽, 주민 자치센터에 나오는 이유가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부분 시간을 보내려고 온 사람들인 것을 알고 실망했습니다.
친구는 죽음으로 가는 인생 열차에 탑승한 채 시간만 죽일 것이 아니라 도전하는 삶을 살아보기 위해 재취업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귀 기울여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결국 재취업을 포기하고 화물을 실어 나르는 소형 용달차를 구입해서 화물 운송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3년간 경력을 쌓은 후 개인택시 운전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친구는 자신에게 두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하나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운임을 낮춰가면서 남의 일감을 뺐지 않는다는 약속이었고 또 하나는 무리하게 일감을 맡지 않고 하루 한두 번 정도만 운행한다는 다짐이었습니다.
처음 용달차 운전을 하겠다고 아내에게 말하자 아내가 펄쩍 뛰었답니다. 벌써 노망이 들었냐고 하면서 돈은 더 벌어 뭐하려고 그러느냐, 이런 고급 아파트에 살면서 용달차 운전수가 웬 말이며, 늙은 아버지가 용달차 운전한다 하면 자식들 혼삿길을 막는 일인 줄 모르냐는 말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건강한 사람이 그저 세월만 보내는 것이 한심해서 하려는 일이니 이해해달라고 사정해서 결국 아파트 1km 밖 주차장에 용달차를 두고 남들에게는 비밀로 하는 조건으로 일하기로 아내와 합의했다고 합니다.
친구는 늙어도 자기 일이 있다는 것이 즐겁다고 합니다. 내가 물어봤습니다. 이제 돈 그만 벌고 사회봉사활동하는 것이 어떠냐고 했습니다. 친구는 봉사활동 교육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쓰레기나 줍고 허드렛일이나 하는 봉사활동이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합니다. 봉사활동은 좀 더 나이 들면 하겠다고 합니다. 친구는 돈 때문이 아니라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하면서 기쁨을 느끼고 싶다고 합니다. 남들의 눈높이가 아니라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목표를 찾아 도전하는 친구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10월 1, 2, 3일은 연휴였다. 9월 말까지 끝내야 할 프로젝트들이 있었다. 다 끝내지는 못했지만 쉬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여름휴가도 못 가고 매진하다 보니 에너지가 고갈되는 느낌이었다.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진 머릿속도 풀어야 했다. 그래서 9월 중순 추석 전에 휴가 계획을 잡았다. 탁 트인 순천만을 보며 가슴을 펴고 싶었다. 시간이 되면 담양 대나무 숲도 보러 가고 싶었다. 이렇게 아무 준비 없이 여행을 떠난 것은 처음이었다. 젊었을 때는 사전조사도 하고 숙소도 미리 예약하는 등 유난을 떨었는데 이제는 다 피곤하기만 했다.
순천으로 떠나는 날, 연휴가 중국 연휴와 겹쳐 관광객들로 붐비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순천시까지는 무난하게 도착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얼핏 본 전통 초가 민박집에서 하룻밤 묵으려고 순천시에서 순천만 쪽으로 출발했는데 도착해서 전화하니 엉뚱하게도 반대 방향이라는 것이었다. 무려 22km나 더 가야 했다. 순천만 쪽에는 민박, 펜션 등이 이미 다 차버려서 난감한 상황이었다.
초가집 연락처는 집 전화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전화를 받았는데 귀가 안 들리는지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순 전라도 사투리라서 알아듣기도 어려웠다. 낙안읍성으로 오라는데 낙안읍성은 처음 듣는 지명이었다. 게다가 주차장으로 오라며 주차장을 ‘주치장’이라고 발음했다. 상황을 보니 할머니는 ‘펜션’, ‘내비(게이션)’이라는 말은 아예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상호도 없고 세 번째 집이라는데 정말 막막했다. 일단 낙안읍성을 찾아갔다. 정문 옆에 넓은 주차장이 보이길래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주차장에서 한 시간이나 비 맞고 기다리다가 방금 집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으로 초가집 사진을 보여줬더니 그곳에는 초가집이 수십 채나 된다고 했다. 할머니에게 겨우 전해들은 ‘박물관’, ‘교회’ 등을 물어봐도 모른다고 했다.
날은 어두워지고 비까지 내리는 데 암담했다.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파출소 불빛이 보였다. 다시 전화를 걸어 이번에는 경찰관과 직접 통화하게 했다. 그제야 경찰관이 직접 데려다 주겠다며 차 시동을 걸었다. 경찰차는 낙안읍성을 향해 갔다. 교회를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너고 논길을 지나니 낙안읍성 남문(쌍정루)이 보였다. 그리고 옆에 ‘남문주차장’이라는 작은 주차장이 있었다. 주차장이라기보다는 성벽 밑 공터였다.
그렇게 해서 겨우 할머니를 만났다. 얼굴이 검게 타고 주름이 가득한 80대 중반의 전형적인 농촌 할머니였다. 할머니를 따라 낙안읍성 안으로 들어가니 여러 채의 초가집이 밀집되어 있었다. 할머니 집은 과연 남문에서 세 번째 초가집이었다. 민박집이 성 안에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할머니가 싸리나무로 만든 대문을 열 때 시설이 너무 열악하지 않을까 순간 걱정이 되었다. 전형적인 시골집 구조로, 마당이 있는 ‘ㄴ'자 집이었다. 방문을 여는데 도배는 새로 했지만 창문 하나 없는 작은 방이었다. 화장실도 따로 떨어져 있었다. 할머니는 내가 다른 곳으로 갈까봐 몸이 달아 있었다. 주차장에서 한 시간이나 나를 기다리는 동안 전화를 못 받아 다른 손님을 놓쳤다며 투덜거렸다. 그러나 방이 4개나 되는데 손님이라고는 나밖에 없었다. 숙박료는 5만원이라고 했다. 아침에 돈을 줘도 되지만 미리 줬으면 하는 눈치였다. 흔쾌히 5만원을 줬더니 요즘 가짜 돈이 많다며 의심을 했다. 눈도 어둡고 할머니라 피해 사례가 있었던 모양이다. 칼라 복사기로 정교하게 복사한 위조지폐라면 속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설도 열악한데 5만원이나 받는 게 비싼 느낌이었지만 그냥 짐을 풀기로 했다. 그리고 서둘러 근처 음식점으로 나가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비가 와서 날씨가 좀 쌀쌀하다고 했더니 보일러를 틀어줬다. 아침에 일어나니 할머니의 표정이 훨씬 편안해 보였다. 아침 간식을 좀 나눠줬더니 고마워했다. 전날 저녁의 경계심은 다 풀어지고 어머니 같은 따뜻한 표정이 보였다. 잘 자고 간다니까 마당 감나무에서 감을 따더니 가면서 먹으라며 건넸다. 바로 전라도 인심이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주변을 돌아보니 여러 채의 초가집들이 민박집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나름대로 예쁘게 꾸며 놓고 있었다. 마당에 잔디가 깔린 집도 있고 방안에 화장실욕실이 있다는 민박집들도 있었다. 일률적으로 숙박료는 5만원인데 가장 열악한 집을 골랐던 것이다. 할머니에게 도움을 줬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왜구의 노략질에 방어하기 위해 만든 읍성으로 읍성 내에 주민이 직접 살고 있다는 점이 다른 읍성과 다르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잠정 목록에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여러 가지 볼거리도 많은 편이다. 바로 옆 근처에 70년대 유명 잡지였던 ‘뿌리깊은나무’ 박물관이 있다. 잡지와 다른 유물들도 깔끔하게 전시되어 있다.
아파트는 무엇을 보고 선택할까? 교통, 환경, 편익시설 등 기본적인 사항을 판단하고 가격이 적절한가를 생각하는 것은 보통의 방법이다. 재미있는 것은 요즘엔 주차장과 쓰레기 재활용 수거현장을 보면 된다는 말이 있다. 주차장과 쓰레기 재활용 수거현장은 건축물 시설만이 아니라 같이 사는 사람들의 소득과 문화, 주민 상호간의 배려를 같이 엿볼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좋은 아파트를 고를 때 확실한 방법은 살아 보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일이다. 이럴 때 실수요자의 입장에서는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 여러 요소들이 또 다른 관심의 대상이 된다.
아파트는 가격이 싸고 품질이 좋아야 잘 팔린다. 아파트를 품질이 좋고 쾌적하게 잘 지으려면 사업성이 줄어든다. 가격에 반영되지 않은 중요한 사항들이 많다.
새 아파트를 구매할 때 수요자 입장에서는 대지 지분으로 표시되는 크기의 땅값과 함께 건물 값으로는 아파트 바닥 면적 크기를 기준으로 돈을 낸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실수요자들이 아파트를 선택할 때 신경을 덜 쓰는 항목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이 실내 천정 높이이다. 그 외에 꼼꼼하게 챙겨야 할 것으로는 건물 동(棟)간의 간격, 소음, 단지 내 동선의 편리성과 안전성 등이다.
천정 높이를 확인해 보셨나요?
높은 천정은 확 트이고 고급스러운 공간을 연출한다. 층간 소음 문제를 완화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 천정의 높이는 층고와 관련이 있다. 층고를 높이려면 그만큼 건축비가 많이 든다. 고도제한이 있는 경우 천정 높이가 평균치 보다 현저히 낮은 건물이 나타나기도 한다. 에어컨이나 강제 환기시설 등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천정이 높아지기도 한다. 또 층수별로 층고가 달라질 수 있다. 단열이 필요한 곳이나 평면이 바뀌는 곳, 초고층건물에서 중간기계실이 있는 경우는 기계실 높이가 반영된다.
주차장도 크고 넉넉하게 잘 만들면 결국 아파트 가격이 비싸진다. 지하 주차장을 위한 땅파기 공사는 훨씬 많은 돈이 든다. 공급자의 입장에서는 예민한 부분인데 수요자는 소홀히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잘 팔리는 아파트와 살기 좋은 아파트는 큰 차이가 있다. 즉 건설과 개발을 할 때는 실수요자가 아닌 중간에 있는 투자자를 겨냥하는 경우가 많다. 최종 실수요자의 입장을 배려해야 하는데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다. 겉으로 드러난 부동산 가격만으로 부동산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숨어 있는 부동산의 가치를 이해한다는 것은 흥미롭기도 하고, 앞으로의 부동산 트렌드를 예측하고 이해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숨어 있는 부동산 가치를 이해해야
건물은 얼마나 크고 높게 많이 짓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건물의 최종 사용자를 배려할 때 그 품격이 더해지고 결국 땅의 가치도 높아진다. 결국 예전과 달리 건물을 사고자하는 사람은 건물의 최종 판매가격 기준에 직접적으로 포함되지 않은 것들을 더 꼼꼼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공급자도 당장의 눈앞의 이익보다는 수요자를 배려한 설계와 건축을 하여야 한다. 실용성과 예술성도 조화를 이뤄야한다.
부동산은 관련 법규, 건설, 금융, 조세 등이 복합적으로 관련돼 있어 단순한 판단만으로는 해결하기 곤란한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수익성을 무시할 수 없지만 또 수익성만을 강조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수요자에 대한 배려와 함께 공공성과 환경친화성 등 다원적인 목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도 공급자의 철학과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건물을 지을 때 남이 하는 대로 흉내를 내면 성공하기 어렵다. 아이디어는 죽어 가는 땅에도 생명을 불어넣어 줄 수 있고 살기 좋은 내 집을 만든다.
다음 문제들을 풀어보세요
❶ 아파트를 분양 받을 때 공급 면적은 무슨 뜻일까?
❷아파트 전용면적, 공용 면적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❸아파트 발코니 확장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일까?
❹아파트의 층고는 무슨 의미일까?
❺ 아파트의 천정 높이는 어떻게 판단할까?
해설과 답
❶공급 면적은 주거전용 면적과 주거공용 면적을 합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계약하는 면적은 주차장, 기계실, 관리사무소, 주민공동시설, 놀이터, 화단 등 기타 공용 면적까지 포함된 것이다. 다만 발코니, 베란다, 다락방 등은 서비스 면적에 해당한다. 이러한 내용들은 대부분 바닥 면적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❷아파트 전용 면적은 거실, 주방, 화장실 등을 포함한 넓이이다. 주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전용 생활공간을 말한다. 공용 면적은 다른 세대와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이다. 계단, 복도, 엘리베이터 등이 이에 해당된다. 전용률은 건물의 바닥 면적 중 각 세대 등의 사용자가 전용으로 사용하는 부분을 말하고, 전용률이 높다는 것은 실제 사용 면적이 그만큼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❸발코니를 확장하게 되면 거실이나 방을 더 넓게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냉난방 비용 증가와 수납공간 감소 등 단점도 있다.
❹아파트의 층고는 기준층 콘크리트 바닥에서 기준층 위층의 콘크리트 바닥까지의 거리를 말한다.
❺일반 아파트 천정 높이는 평균 2m30㎝이며 최근 높아지는 추세이다. 30층 이상은 초고층아파트로 분류하며, 초고층아파트 층고는 일반아파트 보다 훨씬 높다. 초고층아파트 천정 높이는 일반아파트 보다 10㎝ 정도 높다.
*일반아파트 평균 층고 : 2m60㎝ = 천정 높이(2m30㎝)+천정 속(5㎝)+바닥마감(10㎝)+콘크리트(15㎝)
>> 김정렬(金淨烈) 한국일반행정사협회 전임 교수
국내 최초로 부동산 전문가들로 네트워크를 구성, RE멤버스를 설립하고 부동산써브 대표를 역임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자산신탁, 기업체, 금융기관 등에 부동산 자문을 꾸준히 하고 있다. 저서로는 등이 있다.
대형 마트의 범람. 깨끗한 포장용기에 담긴 식재료, 말끔한 동선, 넓은 주차장에 포인트 적립까지 모든 것이 고객에게 맞춰져 있는 곳이 차고 넘치고 있다. 이는 재래시장의 규모를 줄이거나 사라지게 만들었고 찾아가는 서비스마냥 골목으로, 집 앞으로 다가왔다. 편해지긴 했지만 뭔가 부족하다. 바로 사람 냄새, 그리고 다양함을 선택할 권리다. 는 불필요하게 쉽고 간편해진 장보기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장터 두 곳을 2회에 걸쳐 둘러보기로 한다.
글·사진 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9월 11일, 추석 명절을 앞둔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아침부터 북적북적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뜨거웠던 여름, 잠시 쉬어가던 도시형 농부 시장 ‘마르쉐@(엣)’이 다시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를 맞아 알 굵고 맛도 좋은 유기농, 친환경 사과와 귤이 산지에서 농부와 함께 상경했다. 다양한 농법으로 기른 착한 먹거리가 마르쉐@ 안을 가득 채워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해 보였다. 수·공예품, 도자기 등 시중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아기자기한 물건들도 이곳에서는 한눈에 차고 넘쳤다. 사람들의 웃음이 넘쳐나고 시끌시끌 친구와의 인사도 길어진다. 사는 사람은 생산자의 얼굴을 보며 대화하기에 더욱 믿음이 간다. 이 때문에 마르쉐@ 이용자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중. 누구든지 기꺼이 좋은 마음으로 교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서울 도시 장터의 대표선수 마르쉐@이다.
마르쉐@은 4년 전인 2012년 10월 대학로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한 달에 두 번(두 번째 일요일, 네 번째 토요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과 중구 명동의 ‘명동성당 1898 광장’ 등지에서 장이 선다. 마르쉐@은 현재 마르쉐 친구들을 이끌고 있는 이보은(李保垠·48)씨가 옥상 텃밭을 일구던 중 자연주의 식당 수카라를 운영하는 김수향씨, 다양한 농부와 요리사, 예술가와 함께 만들었다. 마르쉐@의 모든 먹거리에는 슬로푸드 정신이 담겨 있다. 일본의 문화인류학자이자 환경운동가 시마무라 나쓰가 에서 ‘슬로푸드란 입으로 들어오는 음식을 통해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천천히 되묻는 작업이다’라고 한말과 마르쉐@의 생각은 많이 닿아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 직접 거래하는 시장, 그래서 소비자의 질문도 생산자의 대답도 사뭇 진지하다. “살 거면 사지 말이 많냐”는 식의 말다툼을 찾아볼 수 없는 것도 마르쉐@의 매력이다.
매회 평균 참가하는 생산자(혹은 판매자)는 60명 정도다. 이중 농부집단은 30개 정도이고 전국 농부 200여 명의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 서울 경기권의 도시 농부와 전국의 귀농 귀촌인들이 활동 중이다. 건강하고 맑은 마음이 모여 마르쉐@을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
귤이랑 사과랑 싣고 마르쉐@으로 고고~
경북 영주에서 유기농 사과를 재배하는 윤건(尹健·52)씨. 20년 동안 마음의 준비를 하고 6년 전 귀농해 지금은 서울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다. 서울에서도 10년 정도 도시 농업을 했고 생활협동조합 활동을 꾸준히 했다고. 유기농 사과 재배를 위해 영주에서도 산꼭대기에 자리 잡아 사과 농사를 짓고 있다. 마르쉐@에는 사과를 팔러 오는 것 외에도 가족과 친구들 만나는 재미에 빠지지 않고 온다.
윤순자(尹順子·53)씨는 제주에서 갓 나온 친환경 하우스 감귤과 한라봉잼을 가지고 서울을 찾아왔다. 추석을 맞아 제주에서 올라온 알알이 큰 하우스 감귤. 얇은 초록색 귤껍질을 까면 달콤한 과즙이 시원하게 터진다. 거의 매회 마르쉐@에 참여하는 윤순자씨. 10월에는 달콤함이 예술인 레드키위를 들고 올 예정이다.
홍대 도시텃밭 자란다는 4년 전에 마르쉐@서울역으로 시범운영했을 때부터 참여했다. 이곳에서 잘 되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 꾸준히 나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홍대입구 카톨릭회관 옥상과 합정동, 상암동 비빌기지 상자 텃밭도 운영하고 있다. 도시 텃밭에서 자란 농작물을 이용해 페스토 등 가공품을 만들어 마르쉐@에서 판매한다. 10월에는 생강을 수확해 시럽을 만들 계획이다.
※마르쉐@ 어떻게 읽죠? 마르쉐(marche)는 프랑스어로 장터라는 뜻입니다. 거기에 ‘~에서’를 의미하는 영어 전치사 @(at)을 사용한 것이죠. ‘마르쉐@대학로’는 ‘대학로에서 열리는 장터’라는 뜻이고, ‘마르쉐 엣 대학로’라고 읽으면 됩니다.
※마르쉐@ 어디서 열리나요? 상황에 따라 장 서는 곳이 달라집니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을 비롯해, 명동성당 지하 ‘1898 광장’, 어린이 대공원, 양재 시민의 숲, 상암동 석유비출기지(일명 비빌기지)에서 장이 열립니다. 마르쉐@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서 장소를 확인하면 됩니다.
마르쉐@ 홈페이지 marcheat.net
마르쉐@ 페이스북(facebook.com) 검색창에서
마르쉐at 혹은 마르쉐@을 검색하세요.
머지않아 추석이 다가옵니다. 설날이나 추석은 우리민족의 최고의 명절입니다.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뵙고 차례를 지내고 동기간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행복입니다. 명절날은 객지에 나가있는 친구들도 몰려드니 온 동네가 들썩들썩 합니다. 가고 싶은 고향에 가기위한 열차표 예매를 새벽부터 나가서 기다려서 구입한 추억도 갖고 있습니다. 자가용 시대가 도래 하면서 자가용을 타고 가는 사람이 부쩍 늘자 고속도로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고속도로가 대형 주차장을 방불케하여 자동차가 가다 서다를 계속합니다. 대여섯 시간은 기본이고 무려 10시간이나 걸려서 도착하기도 했습니다. 고생담이 명절 뒷날의 추억담이 됩니다. 그러나 이미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자녀들도 결혼하면 고향 찾기가 어려워집니다.
나와 고향이 같은 후배가 올 추석부터는 고향에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부모님 돌아가시고 큰형님 내외분이 고향을 지키고 있는데 이 분들이 연로하시어 찾아오는 동생들을 맞이하기가 힘이 든다는 이유입니다. 게다가 큰형님 직계 가족으로 고향을 찾아오는 아들 딸 손자손녀들만 해도 10여명이나 되는데 동생들 가족까지 다 맞이하기가 벅차다고 큰 형님이 오지 말라고 했다며 이제는 못가겠다고 합니다.
나의 경우도 명절날 내 아들내외와 손자들이 오고 딸 내외와 외손자들도 우리 집으로 옵니다. 이런 식구들을 다 데리고 멀지는 않지만 같은 서울에 사는 형님네 집에 가기는 너무 많아 지금까지는 두세 명 추려서 데리고 갔습니다. 며느리는 곧 친정집에도 가야하는데 내가 큰집에 가서 오지 않으니 친정집에 빨리 가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가 계속됩니다. 우리 집은 명절분위기도 덜 나고 손자손녀들도 할머니 할아버지의 부재를 어리둥절해 합니다.
내가 형님네 집에 차례 지내러 가지 않으면 부모님께 불효를 하는 것 같아 집에 있어도 좌불안석이 될 것 같습니다. 또 내가 가서 형님을 대신해서 어른으로서 조카들에게 훈계해야할 일도 있습니다. 내가 가야 동생 빽(?) 믿고 형님내외분이 어깨를 으쓱할 일도 있습니다. 자식들 하고는 세대차이가 나서 말 못할 이야기를 동시대를 사는 형제끼리는 나누기도 합니다.
가족의 범위를 좁혀서 생각하려는 젊은 세대와 전통적으로 지켜오던 형제와 사촌까지 유지하려는 나이든 세대와의 생각차이가 있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좀 진지하게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명절날 한 가족을 이루고 있는 가장이 어떤 방법으로 조상님 차례 모시러 큰집을 찾아야 하는지 고민 좀 해보려 합니다.
두부는 꾸밈없는 모양새에 맛도 심심하여 어느 요리에나 잘 어울리고 부담 없이 즐기기 좋다. 흔히 만나는 식재료이지만, 제대로 된 두부 맛집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투박한 두부처럼 편안하고 진실한 맛을 자부하는 두부 전문점 ‘황금콩밭’을 찾아갔다.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방마다 고가구들 정겹게 느껴져
서울 마포구 아현동 골목에 있는 ‘황금콩밭’은 오직 가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숨은 매력이 가득한 공간이다. 큰길가에 있는 가게가 아니기 때문에 발견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겉으로만 보고는 평범한 식당이라 생각하고 지나치기 일쑤다. 일단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양쪽 벽면에 있는 고가구에 눈길이 갈 것이다. 그러나 진짜 매력은 바깥채로 넘어가는 계단에 올라서고부터다.
바깥으로 나서면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돼지머리 조각이 있는 돌 절벽과 그 아래에 있는 가마솥 두 개다. 옛날식 가옥 구조를 그대로 살려 절벽을 ‘ㄷ자’로 감싸고 있는 방들도 정겹게 느껴진다. 방마다 고가구와 그림, 책 등이 세월의 옷을 입고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돌 절벽 아래에는 자그마한 굴이 있는데, 직접 담근 탁주를 숙성하는 공간으로 쓰인다.
과거 농진청 관련 일을 하며 전국의 ‘정직한 농사꾼’들을 두루 알게 된 주인장이 주메뉴로 두부를 내세운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고기를 자주 먹지 않는 대신 두부를 즐겼던 식습관도 영향이 있었고, 어릴 적 할머니께서 두부를 만드시던 추억도 있지만, 가장 특별했던 것은 윤태현이라는 그의 이름 ‘태(太)’자가 ‘클 태’가 아닌 ‘콩 태’라는 의미로 쓰인 점이다. 콩처럼 단단한 사람이 되라는 아버지의 뜻이 담긴 이름이다. 그렇게 두부에 뜻을 품고 전국의 두부 맛집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의 두부요리점까지 순례하고 돌아온 그는 100회를 거듭한 연구 끝에 현재의 두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콩·소금·물 단 세 가지만으로 탄생하는 두부는 시간, 온도, 비율 등 만드는 이의 비법과 정성이 그 맛을 결정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13년 8월 문을 연 이래로 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 두부를 만드는 그는 여전히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두부 맛에 완벽을 기하고 있다고 했다. 두부에 사용하는 콩과 소금뿐만 아니라 요리에 쓰이는 각종 채소와 고기, 고춧가루 등도 모두 출처가 분명한 국내산 재료만을 엄선해 맛을 내며 단골에게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새벽 6시께 만들기 시작하는 두부는 오전 11시부터 손님상에 놓인다. 매일 제조하는 두부이지만 가장 맛이 좋을 때 먹으려면 가능한 한 이른 시간에 찾아갈 것을 추천한다. 국내산 재료들로 양념해 담는 김치와 각종 밑반찬도 날마다 준비한다. 고소하고 담백한 두부 본연의 맛을 느끼려면 생두부(1만원)나 두부전(1만2000원), 젓갈을 넣어 맑게 끓인 두부젓국(1만8000원)을 맛보는 게 좋다. 제주산 무항생제 돼지로 만든 보쌈(3만4000원)도 이곳만의 별미인데, 소금에만 살짝 찍어 먹어도 누린내 없이 담백하게 즐길 수 있다. 소백산 청정지역에서 자란 한우를 작게 썰어 조리한 한우바싹불고기(2만5000원)와 매콤한 두부조림(2만원)을 함께 먹으면 다양한 맛과 식감이 어우러져 두 메뉴를 동시에 주문해 먹는 단골이 많다.
다양한 두부요리가 있지만, 무엇보다 아무런 조리과정을 거치지 않은 생두부를 먼저 맛볼 것을 권한다. 처음 한 입은 간장이나 김치 등을 얹지 말고 순수한 두부 본연의 맛을 즐기는 게 좋다. 그것만으로도 입안에서 부드럽게 씹히는 식감과 함께 콩이 지니고 있던 단단한 영양이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보통 두부요리 전문점에 가면 콩비지를 서비스로 나눠주곤 하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광경을 볼 수 없다. 오로지 두부를 만드는 데 최대한의 영양분을 빼내고,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은 콩비지는 아쉬움 없이 버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대개 콩비지를 활용해 음식을 만드는 곳은 화학조미료를 넣어 맛을 내게 되는데,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함이라고 한다.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굴레방로 3 *지하철 5호선 애오개역에서 도보 5분, 2호선 아현역에서 도보 10분 거리. 인근 유료 주차장 이용.
운영시간 11:30~22:00 문의 02-313-2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