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역에 내려 역사로 나가는 출구에는 ‘정읍농악대’를 그린 서양화 작품이 걸려 있다. 예로부터 풍류의 고장으로 불리는 정읍을 한눈에 느낄 수 있는 그림. 벚꽃이 잔잔하게 깔린 시내 곳곳에서도 ‘농악’, ‘전통’이란 문구의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 예술혼을 줄기차게 이어가는 곳 정읍. 이곳에 우리악기를 3대째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 이가 있다.
바로
광주에서 양장점을 경영하는 어머니와 함께 새벽에 동대문 원단시장에 도착하여 온종일 원단과 패션 트렌드를 익히던 여고생은 어느 순간 학생들에게 의상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어 있었다. 그런 그녀가 교수가 될 때까지 걸린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어머니는 단 하루도 옷을 만드는 자신의 일을 허투루 대하지 않았고, 50년 동안 직접 옷본을 뜨며 옷을 만드는 현역이다.
최성환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때는 18세기 중반. 유럽 열강들이 해외 식민지를 놓고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1755년 9월 북아메리카에서 전쟁을 시작한 영국과 프랑스가 지중해에서 맞붙은 것이 1756년 5월의 미노르카 해전이다. 이 해전을 계기로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이 개입하면서 유럽 전
세계적 경영컨설팅 업체 ‘머서’가 2016년 2월 발표한 도시별 ‘삶의 질’에서 오스트리아 빈(Wien)이 지난해에 이어 1위를 차지했다. 스위스 취리히, 뉴질랜드 오클랜드, 독일 뮌헨, 캐나다 밴쿠버가 2∼5위를 차지했고 서울은 73위였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는 합스부르크 왕족들이 여전히 살아 있다. 이 도시에 가면 허리 잘록한 드레스를 입고
취재를 위해 전화를 걸 때마다 그는 늘 산, 아니면 제주 오름에 있었다. 매일같이 산에 오르고,
등산했던 기록을 정리하면서 일과를 마무리하는 문정남(文政男·75)씨.
이제 그만 올라도 될 텐데, 70대 산사나이는 아침이 되면 또 새로운 산봉우리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선생님, 시내 가까운 산으로 가면 안 될까요?”
한 TV 프로그램에서
한국인들의 첫 서양 나들이는 일본인들이나 중국인들에 비해 늦었다. 개항이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30년 이상 늦어진 까닭이다. 중국의 개항은 아편전쟁 후인 1842년(남경조약), 일본의 개항은 1854년인 데 비해, 한국은 일본과의 개항조약을 1876년(강화도조약), 미국·영국과는 1882년에 맺었다. 또 일본이나 중국은 서양문물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자발적
“저 매화 화분에 물 주어라[灌盆梅].” 우리의 옛 선비들이 매화를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아끼고 좋아했는지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한마디 말입니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 퇴계 이황(李滉·1501~1570)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이라고 제자 이덕홍(李德弘)이 이란 문집에 전하고 있습니다. 생전 100여 편이 넘는 매화시를 짓기
1908년부터 이화여대 개교기념 축제인 ‘이화잔치’의 주요 행사였던 ‘메이퀸 선발대회’는 1960~1970년대 활기를 띠며 연세대, 한양대 등의 대학가와 일부 여자고등학교까지 퍼졌다. 5월 하면 향긋하게 피어오르는 캠퍼스의 추억, 메이퀸 선발대회를 돌아봤다.
자료 제공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역사관·이대학보사, 연세대학교 박물관, 숙명여자대학교
요즘말로
1992년 1월 8일 시작한 수요집회(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정기 시위)는 2011년 12월 14일 1000회를 맞았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렇다 할 해결책이 나오지 않아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이 여전한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최근 일제강점기 세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를 펴낸 권비영(權丕映·61
뉴욕에 사는 사람들은 맨해튼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웬만해서는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기 어렵다는 말을 흔히 한다. 고층 빌딩이 빼곡한 맨해튼은 아주 삭막해 보이지만 어디와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곳이기 때문이다. 뉴요커들은 브로드웨이 뮤지컬극장, 카네기홀,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이나 현대미술관(MoMA)과 같은 세계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