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3대 누각을 들라면 황학루(黃鶴樓) 악양루(岳陽樓), 그리고 등왕각(縢王閣)을 든다. 이 중 황학루와 악양루를 노래한 시는 중국 역사상 많이 전해지지만, 특이하게도 등왕각을 노래한 시는 초당(初唐)시대 천재시인 왕발(王勃)의 ‘등왕각서(縢王閣序)’밖에는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이 문장이 너무나 뛰어나, 후대의 그 누구도 감히 시를 지을 엄두를 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등왕각은 강서성(江西省) 남창(南昌)에 있는 누각으로, 당고종(唐高宗) 영휘(永徽) 4년(653)에 고조(高祖) 이연(李淵)의 아들이었던 이원영(李元嬰)이 등왕(縢王)에 봉해진 후 지은 누각이다. 등왕각을 노래한 이 등왕각서에는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당고종 상원(上元) 2년(675) 가을, 25세 약관의 나이로 부친을 만나러 교지(交趾: 베트남 북부)로 가던 왕발이 등왕각을 지나게 되었다.
마침 당시 홍주도독(洪州都督)이었던 염백서(閻伯嶼)가 중양절을 맞아 등왕각에서 연회를 벌였는데, 그는 사위 오자장(吳子章)에게 미리 글을 준비시켜 이날 여러 사람들 앞에서 문장을 선보였다. 그런 뒤 그날 참석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문장을 지어보길 권하였으나, 사람들은 염백서가 사위의 글 자랑을 하려는 뜻을 알아차리고 모두 사양하였다.
그러나 유일하게 왕발이 사양치 않고 종이와 붓을 받아 글을 써 내려가니, 기분이 상한 염백서는 사람을 시켜 글을 알아보게 하였다. 첫 구절인 ‘南昌故郡 洪都新府(남창고군 홍도신부): 옛 남창군(南昌郡)이었던 이곳은 새로이 홍도(洪都)가 되었도다’를 보고는 상투적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이어지는 구절인 ‘星分翼軫(성분익진) 地接衡廬(지접형려): 별자리로는 익(翼) 진(軫)에 해당하는 땅으로, 서쪽으로는 형산(衡山)에 접해 있고, 북쪽으로는 여산(廬山)에 접해 있다’라는 대목을 듣고는 입을 다물지 못하다가, 드디어 천고의 명문인 ‘落霞與孤?齊飛(낙하여고무제비) 秋水共長天一色(추수공장천일색): 저녁 노을은 짝 잃은 기러기와 나란히 날고, 가을 물빛은 맞닿은 하늘과 같은 색이구나 ’라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천재로다!”라고 외치고 말았다 한다.
사륙변려체(四六騈儷體)의 제법 긴 이 명문에는 뛰어나지 않은 부분이 없지만, 지면관계상 몇 부분만 소개한다. 먼저 등왕각을 묘사한 문장 중 ‘飛閣流丹(비각류단) 下臨無地(하임무지): 나는 듯한 누각에 단청빛이 흐르고 아래를 보니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구나’란 구절이 있다. 날아갈듯 처마꼬리 부분이 위로 치켜 올라간 누각을 ‘飛閣’이라 표현하였으며, 누각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을 ‘下臨無地’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압권인 부분은 ‘流丹’이라는 짧은 표현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누각의 단청색이 강물에 비쳐 강물과 함께 흘러간다’는 모습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외에도 연회 당시의 날씨를 표현한 부분인 ‘虹銷雨霽(홍소우제) 彩徹雲衢(채철운구): 무지개 사라지고 비도 개니, 햇살이 구름을 뚫고 영롱한 색채를 드러낸다’는 부분 또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올 가을, 독자분들도 ‘채철운구(彩徹雲衢)’한 날씨에, 고운 단풍색이 강물에 비치는 ‘추수류단(秋水流丹)’을 구경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