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귀촌은 시대적 화두다. 그러나 막상 도시인이 귀농·귀촌을 하려고 하면 막연하기 그지없는 게 현실이다. 어디서 정보를 얻고 어떻게 준비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막막하다. 당연히 지역과 지자체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평창군은 귀농·귀촌 인구를 위한 다양하고 실제적인 준비들을 진행하고 있다. 평창군농업기술센터 김상래 기술지원과장과 황창윤 귀농·귀촌 담당과의 인터뷰를 통해 평창 귀농·귀촌의 현재, 그리고 귀농·귀촌 인구를 위한 조언을 듣고 준비된 상황을 짚어봤다.
2015년 6월 평창군으로 귀농해 여름 딸기를 재배하고 있는 이철성 ‘아빠랑 딸기랑 아이랑’ 대표는 11브릭스 이상의 당도를 자랑하는 고품질 딸기를 연간 60여 톤 생산하고 있다. 6월부터 국내 유명 백화점에 독점 공급을 시작한 그는 해외 수출도 준비하고 있다. 그 외에도 태아와 임신부, 출산부를 위한 여름 딸기 비영리 공급 사업을 통해 대한민국 여름 딸기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또한 비영리 교육기관인 ‘미션 코리아 스쿨’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을 위한 영어, 수학, 과학 및 예체능 활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등 사회 공헌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는 호주에서 평창군으로 귀농했다. 거리로 따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거리에서 귀농·귀촌한 사람으로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잘 준비된 계획과 나눔의 마음으로 성공적 귀농·귀촌을 이루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귀농·귀촌의 딜레마
최근 일선에서 본격적인 은퇴를 시작한 베이비붐 세대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고향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또한 고도화된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낀 도시인도 삶의 대안으로 귀농·귀촌을 눈여겨보고 있다. 귀농·귀촌에 관한 TV 프로그램은 일정 시청률 이상을 보장하는 분명한 트렌드가 됐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흐름에도 불구하고 귀농·귀촌은 여전히 큰 틀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지기보다는 개인들 각자가 온갖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치르는 복마전에 가깝다. 그래서 고향으로 내려갔다가 빈약한 인프라와 텃세에 실망해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평생을 한자리에서 산 고향 사람들은 고향 사람들대로 도시인들의 ‘뜨내기 기질’에 질려서 스트레스받는 게 현실이다. 귀농·귀촌이 이뤄지는 지역 단체의 적극적인 중개자적, 중재자적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평창의 사례는 눈여겨볼 만하다.
평창군이 사람들에게 각인된 것은 무엇보다도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공이 컸다. KTX도 개통되어 예비 귀농·귀촌인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지역인 평창은 2017년 기준 귀농 가구가 114가구로 강원도 전체 1074가구의 약 10.6% 정도다. 그중 약 75%인 86가구가 1인 가구로 구성되어 있다. 통계를 보면 지난 5년간 귀농인구는 100여 가구 내외, 귀촌 인구는 1200가구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귀농인구의 경우 2016년 대비 2017년 귀농 가구 수가 27% 증가했고, 귀농 가구원 수도 9.5% 증가하는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였다.
정착 지원을 위한 금융 프로그램 제공
평창군도 다른 지역 지자체와 비슷하게 저출산과 초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 확보와 귀농인의 안정적인 정착이 절실한 상황. 그를 지원하기 위해 평창군은 여러 가지 금전적인 지원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우선 ‘귀농 농업 창업 및 주택 구입 지원사업’이 있다. 귀농인이 안정적으로 농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농업 창업 및 주거공간 마련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농지 구입이나 농업용 시설 설치 등의 농업 창업에 3억 원, 주택 구입이나 신축에 7500만 원을 연리 2%, 5년 거치 10년 원금균등 분할상환 조건으로 융자받을 수 있는 사업이다.
지역을 젊게 만들기 위한 ‘귀농인 정착지원금 지원사업’도 시행하고 있다. 이는 청·장년층을 귀농인으로 적극 유치해 미래 농업인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으로 20세 이상 45세 이하의 귀농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1년 차 농업인에게는 월 80만 원, 2년 차에게는 월 50만 원의 정착지원금이 지원된다. 또한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1개소당 500만 원의 주택 수리비가 지원되고 농업기계, 농업용 시설, 농업 자재 등의 구입비 50% 지원하고 있다.
교육과 창업으로 귀농·귀촌 성공 유도
평창군은 귀농인 정착 지원이 때로는 인구 늘리기 정책의 일부가 되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고 소모적인 경쟁 사례가 발생하는 것을 문제로 보고 있었다. 이 점을 유념해 실제적인 귀농인 정착 지원이 될 수 있도록 정책을 펼쳐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그 핵심은 교육과 창업이었다.
김상래 과장은 “귀농·귀촌은 생활의 거주지가 도시에서 농촌으로 변동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귀농·귀촌은 삶의 큰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다. 어쩌면 귀농·귀촌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정도로 나이를 먹은 상당수의 사람들은 세상을 알 만큼 아는 사람들이기에 오히려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 과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농에 대한 관심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고, 더불어 우리 사회의 거대한 ‘트렌드’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귀농인 스스로의 철저한 준비다. 새로운 곳에 둥지를 트는 만큼 극복해야 할 현실의 벽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귀농·귀촌에 대한 기본정보 숙지하라
김 과장은 개인의 귀농·귀촌 준비를 위해 우선 귀농·귀촌 종합센터(www.returnfarm.com)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정보를 확인하도록 권했다. 귀농·귀촌종합센터 홈페이지에서는 온라인 교육은 물론 민간기관 공모교육, 현장실습 교육장, 귀농·귀촌과 관련한 기본 공통교육, 청년교육, 소그룹 강의 등 귀농·귀촌과 관련한 교육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귀농인이 선택한 품목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싶다면 강원도 농업기술원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받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물론 평창군도 준비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평창군은 농업·농촌에 대한 이해 증진과 농업경영 마인드를 함양하고 성공적인 농촌 정착을 돕기 위한 취지로 ‘신규 농업인 기초영농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귀농인의 농촌 정착 환경 조성뿐 아니라 귀농·귀촌인들이 소통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이 되고 있으며, 농촌 정착에 필수적인 인적 네트워크 형성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게 김 과장의 설명이다. 여기서는 소득작목선정 방법, 미래형 농업 마케팅 전략,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관리와 소통 등 다양한 영농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귀농인 현장실습교육’을 마련해 신규 농업인과 지역 선도 농업인이 함께하는 영농 실습 교육 프로그램으로 실질적인 영농 방법과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평창군에서는 현장실습에 소요되는 교육훈련비 귀농인 월 80만 원, 선도농가 월 4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귀농 창업 지원 사업’은 귀농인의 귀농 창업 우수 아이템 발굴 및 소자본 창업 지원으로 귀농인의 소득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사업이다. 귀농 창업 아이디어 발굴과 지적재산권 확보, 농업 기반 조성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귀농 교육 우수 수료자를 대상으로 10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는 중이다.
공유하고 나누다 보면 지혜 터득
귀농·귀촌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지역민의 텃세다. 도시인은 특히 타인에 대한 믿음에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평창군은 매년 ‘평창군 귀농·귀촌 페스티벌’을 진행하고 있다. 1박 2일 코스로 진행되는 귀농·귀촌 페스티벌은 예비 귀농·귀촌인을 초정해 정책 안내, 영농 체험, 선도농가 방문, 평창군 투어 등으로 이뤄진다. 이는 예비 귀농·귀촌인이 지역 주민과 교류할 수 있는 계기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귀농·귀촌인과 지역 주민이 함께하는 공동체 문화 조성을 위해, 귀농·귀촌 화합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귀농·귀촌 화합 프로그램은 귀농·귀촌에 관심이 있는 마을을 대상으로 귀농·귀촌인과 마을주민 간 갈등 해소 및 소통을 위한 갈등 해소 교육을 실시하고 화합 행사를 개최하는 등 마을 여건에 맞는 세부 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귀농해 농촌생활을 꿈꾸는 개개인이 처한 상황과 여건이 다르더라도 자신에게 맞는 농촌형 삶을 선택하고 준비한다면 자연에 몸을 맡기려는 도시민들의 어깨는 한결 가벼워질 것”이라고 말하는 김 과장은 더욱 알차고 다양한 귀농·귀촌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 귀농·귀촌인의 안정적인 정착 기반 마련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뉴스를 보는데 새만금사업이 박차를 가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새만금은 원래 민간주도로 시작되었지만, 긴 시간이 지난 이번 문재인정부에서 공공주도로 진행하게 되어 관련 예산을 편성하고 내부개발이 진행될 것이며 새만금개발공사를 만들어 전담추진체계를 마련해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지난 6월 필자는 새만금 노마드 축제에 다녀왔다.
그날 새만금 방조제를 따라 달리면서 보았던 느낌은 참으로 벅찼는데 바다를 메워 우리의 국토를 이렇게 확장했다는데 감동적이었다.
얼마나 큰 산업 일꾼들의 노력이 있었을지 새만금 홍보관에서 사진으로 영상으로 지켜보며 숙연했다.
방조제를 사이에 두고 이쪽저쪽 바다와 호수의 물빛이 다른 점도 신기했다.
축제장의 광활한 대지를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그러면서 이곳이 일회성의 이벤트가 아닌 후손들에게 길이 남겨줄 문화 인프라가 구축되기를 기대했다.
얼마 전에 종로의 랜드마크인 종로타워 20층 새만금개발청에서 새만금 토크콘서트가 있었다.
새만금투자전시관인 이곳은 투자유치 지원과 수도권 고객, 국내외 투자자들의 접근성과 편의성 제고, 서울에서 새만금을 체험할 수 있게 하고 새만금홍보 등 대외 협력강화를 위해 개관했다.
일본기업대상 투자 설명회, 글로벌금융사와 개도국 공무원 초청행사, 중학생 진로체험프로그램, 일반 방문객 대상으로 새만금홍보를 했다.
새만금은 바다를 메워 서울의 3분의 2에 달하는 넓은 땅을 만들어 우리나라 지도의 모습을 바꾸었고 방조제는 33.9km 길이로 세계에서 가장 길어서 기네스북에 올랐다.
새만금 프로젝트를 산업프로젝트로만 생각하지 않고 문화적인 측면을 더하고자 했고 선진문화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문화까지 함께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담당자의 인터뷰도 있었다.
새만금은 만경평야와 김제평야에서 한자씩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토크콘서트에 참석하신 사무관님의 말을 들어보니 새만금개발은 1991년에 시작되었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찾아보면 이곳은 303년 백제 시대 때부터 개발되었고 ‘벽골제’라는 길이 3km의 제방과 저수지가 있어 깊은 문화적 뿌리로, 개발될 수밖에 없는 여건을 가졌다고 한다.
조선왕조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 일대에서 나오는 곡식이었고 고군산군도는 모두 왕조의 터였다며 새만금이 만들어지고 있는 건 역사적 구조적으로 필연적이고 그래서 새만금지역이 중심지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견해를 들려주었다.
원래 새만금은 민간주도로 이루어지도록 계획되었지만, 문재인정부에서 공공주도로 진행하게 되어 관련 예산을 편성하고 내부개발이 진행될 것이며 새만금개발공사를 만들어 전담추진체계를 마련하게 되었다.
2023년 열리는 세계 잼보리 대회를 이미 유치했고, 앞으로 세계 잼버리 대회를 비롯하여 여러 행사를 많이 유치하고 제3세계 국가를 방문해 대사관이나 민간단체를 이용 새만금을 홍보하며, 국내에서도 학교나 가족 단위로 야영을 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노마드축제 등 각종 축제를 개최하는 새만금을 개발하는 구체적인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토크 콘서트에서 새만금 주제곡을 만든 작곡가 스티브 바라캇의 이 음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여정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았다.
스티븐 바라캇은 캐나다 출신 세계적인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로 캘리포니아 바이브스(KTX 안내방송 배경음)과 럴러바이(유니세프 주제곡) 등을 작곡한 분으로 유니세프에서의 인연으로 새만금 주제곡을 작곡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를 보니 이 음악가가 얼마나 새만금 주제곡을 완성하기까지 애정을 가지고 열정을 다 해 만들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이 기회를 정말 영광스럽게 생각했고 큰 책임도 느꼈다고 했다.
아무리 훌륭한 건물, 혹은 세계 최고의 시설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 도시의 성공은 사람에 달려있다며 새만금 주제곡은 ‘사람‘ 에서 시작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새만금 주제가 마지막 부분 우리 대금연주자의 피날레가 너무나 감동적이고 멋지게 들렸다.
아시아의 허브, 미래의 심장이라는 슬로건의 새만금이 큰 성공을 거두어 우리나라 발전에 한 획을 긋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토크 콘서트를 마쳤다.
무언가 기대한다는 건 가슴 벅차고 즐거운 일이다.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한 어르신이 건강하고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입니다.” 9월 18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치매 국가책임제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이렇게 강조했다. 치매 환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개인과 가족이 떠안았던 고통을 국가가 나눠지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같은 정부의 전폭적인 관심이 치매 치료에 대한 생태계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실제로 의료계 안팎에서는 벌써 정부의 ‘동기부여’가 효과를 내고 있는 듯하다.
먼저 지난 9월 발표된 정부의 ‘치매 국가책임제 추진계획’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전국에 47곳밖에 되지 않았던 치매지원센터의 확대다. 그동안은 서울과 수도권에만 설치가 집중됐지만, 다음 달부터는 전국 252곳에 ‘치매안심센터’가 설립될 예정이다. 센터에서는 치매 환자와 가족들이 상담과 조기 검진부터 관리, 의료·요양 서비스 연계까지 통합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센터에서 받은 상담 내용은 ‘치매노인등록관리시스템’에 등록돼 환자와 가족들이 이사를 하더라도 전국 어디서든 연속적으로 관리된다. 센터 안에는 치매 환자 가족의 정서적 안정을 도울 카페와 인지·신체 활동 프로그램으로 환자의 증세가 악화되는 것을 막을 단기 쉼터도 만들어진다.
기저귀 구매비용도 지원
중증 치매로 인해 이상행동 증상이 심해 가족이나 일반 시설에서 돌보기 어려운 환자는 ‘치매안심요양병원’을 통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현재 전국 34개소에서 1898병상이 치매병동으로 운영되고 있는 공립요양병원은 다음 달부터 79개 병원 3700개 병상으로 확대될 계획이다. 치매안심센터와 치매안심요양병원, 요양시설 등 치매국가책임제 실행을 위해 정부는 올해 추경에서 2023억원을 이미 집행했으며, 내년 예산안에도 3500억원을 배정한 상태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으로 인해 지난 10월부터 중증 치매 환자도 산정 특례 적용을 받게 됐다. 의료비 본인 부담률은 4대 중증질환과 같은 수준인 10%로 경감됐다. 복지부 계산에 따르면 연간 200만원의 자기부담금을 지불했던 입·내원일 수 52일 정도의 환자는 앞으로 77만원만 내면 된다.
그동안 신체기능이 양호하다는 이유로 배제됐던 경증 치매 환자도 장기요양서비스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장기요양 5등급을 확대하거나 6등급을 신설해 경증 치매 노인에게도 장기요양서비스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을 위해 시설의 식재료비나 기저귀 구매비용을 장기요양보험에서 지원할 계획이다.
이외 전국 노인복지관에서 치매 예방을 위한 미술, 음악, 원예 등을 이용한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66세 이후 4년마다 받는 인지기능검사 주기도 2년으로 짧아진다. 치매안심마을 조성 사업과 치매 파트너즈 양성 사업도 확대된다.
한의학계, 치매 분야에 높은 관심
치매 치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의학계도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한방 치매 치료의 과학적 효과를 입증하는 데 애쓰고 있다. 최근 부산시 한의사회는 초기 치매 증상인 경도인지장애로 판정된 환자 200명을 대상으로 6개월간 한방 치료를 실시했다. 그 결과 전체 환자 중 80.5%(161명)이 인지기능개선 효과를 보였고, 환자 중 82%가 치료 재참여를 희망했다.
또 강동경희대학교 한방신경정신과는 ‘한방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치매 예방뿐만 아니라 노년기 생활습관 교정을 통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만들어주는 것이 목표다. 강동경희대학교 한방신경과는 서울시와 함께 ‘어르신 한의학 건강증진사업’을 통해 한방 치매 사업도 진행 중이다.
이런 한의학계의 노력에 화답이라도 하듯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치매 국가책임제에) 한의사도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치매 치료에 대한 관심 증가는 치과계도 예외는 아니다. 대한치과의사협회는 치매 구강건강정책 테스크포스팀을 통해 치매 예방과 관리를 위한 정책 제안서 제작을 결정하는 등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인공지능과 가상현실도 치매 다뤄
최신 IT 기술도 치매 진단과 치료에 나서고 있다. 류호경 한양대 아트앤테크놀로지학과 교수팀은 최근 국내 최초로 가상현실(VR)을 이용해 노화와 치매의 중간단계인 경도인지장애 여부를 판단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기술은 은행 ATM, 대중교통 이용 등과 같이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상황을 가상현실 속에 구현하고, 참가자의 움직임 분석을 통해 치매 증상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방식은 진단 과정에서 거부감이 들지 않는 것이 큰 장점 중 하나로 꼽힌다. 기존 진단 방법은 설문 문항을 시험지처럼 작성하는 방식인데, 질문에 대해 반발하는 환자도 적지 않았다.
암 치료 방법을 제안하는 인공지능 ‘왓슨’과 유사한, 치매를 치료하는 인공지능의 등장도 멀지 않았다.
가천대 길병원은 뇌 질환 진료지침 정밀의료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일종의 뇌 전문 인공지능 의사로 디지털 뇌 영상 빅데이터를 구축해 암 치료에만 적용됐던 개인 맞춤형 정밀의학을 뇌 질환 치료에도 실현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치매의 조기진단이나 치료에도 활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가천대 길병원은 지능형 뇌과학연구센터·뇌과학연구원·가천뇌건강센터를 설립해놓고 기술 개발에 대한 역할 분담과 협업을 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도 조선대학교 치매예측기술국책연구단 등과 함께 딥러닝 기술과 컴퓨팅 인프라, 뇌 영상 빅데이터를 활용해 뇌 영상 분석 인공지능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20여 년 전 댄스스포츠를 한창 즐기며 배울 때 세계적인 프로 선수들은 우리나라 방문을 기피했었다. 어차피 극동에서 벌어지는 아시안 투어에서 일본에는 가지만, 한국은 건너뛰기도 했다. 그러던 프로선수들이 불과 몇 년 전부터 한국에 자주 온다. 한국이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한번 오면 고액의 시범료를 받을 수 있고 온 김에 레슨비를 두둑이 챙겨서 갈 수 있다.
당구의 세계에서도 그렇다. 우리나라는 유럽에서 생겨난 당구의 세계적인 수준에 편승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세계 당구계의 변방이었으나 이제는 4대 천왕이라는 세계 프로 당구계의 거물들이 한국을 자주 찾고 있다. 올해만 해도 LG U+대회와 청주 직지 당구 월드컵 대회 등 세계대회를 두 차례나 치렀다. 그리고 여기저기 동호회에서 초대 받아 시범 몇 차례 보여주면 레슨비가 만만치 않다. 한국 당구 계는 TV나, 관련 업체 등에서도 이들 4대 천왕을 통하여 적극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다.
LG U+대회의 우승 상금은 무려 8천만 원이었다. 대부분의 세계 대회 우승 상금은 1천만 원 내외로 알고 있다. 청주 직지 당구 월드컵 대회의 우승 상금은 1천만 원이었으나 세계적인 선수들이 대거 몰려 와서 경합했다. 전 세계적으로 세계 대회는 일 년에 10개 남짓하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세계대회에서 심판이 국제 공용어인 영어가 아닌 한국말로 “쿠드롱 3점”, “득점”, “안 맞았습니다.” 라고 하는 것을 보니 외국 선수들도 아쉬우면 한국말을 배워야할 판이다. 물론 당구 용어는 뻔하고 득점수는 본인이 몇 점 쳤는지 잘 알고 기록원이 틀림없이 기재하기 때문에 신경 쓸 것은 없다. 전 세계 태권도 사범들이 “준비”, “차렷” 등 우리말로 구령을 하는 것과 비교된다.
우리나라 프로 당구 선수들의 수입은 아직은 경기 상금만으로는 생업으로 삼기에 부족하다. 대회 성적이 좋은 선수는 기업체의 후원을 받고 있거나 그 명성으로 레슨비를 수입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구 신동 조명우 선수의 경우 4대 천왕 중 한 명인 산체스를 키워낸 세계적인 종합스포츠 클럽 FC포르투에 입단하기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런 종합스포츠클럽 시스템이 안 되어 있다. 그러나 인프라는 가장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당구의 본고장 유럽에 가 봐도 우리나라처럼 몇 십 미터 간격으로 당구장이 많지 않다. 당구장을 찾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더구나 당구의 기초 과정을 배울 수 있는 4구 경기는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만 즐기고 있다고 한다. 4구에서 발전하여 3구 경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4구 동호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거기에 재주 있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당구 붐을 타고 왕년에 당구 맛을 봤던 시니어들이 대거 당구 쪽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이다. 재력 있는 시니어들은 골프를 즐겼으나 골프는 날씨와 관계가 많고, 최소 4명의 마음 맞는 동반자를 구해야 하고, 시간이 많이 소비되는 등 난점이 많아 손쉬운 당구가 각광을 받는 것이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당구를 생업으로 삼아 열심히 정진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많아 세계적인 프로당구선수들을 다수 배출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당구 계는 점점 더 세계적인 입지를 굳히게 될 것이다. 댄스 계 초기에 붐이 크게 일면서 젊은 선수들이 댄스에 정진했던 일과 비슷하게 비교된다.
‘누군가를 돕는 것은 스스로를 돕는 것이다’. 취약계층, 사회적 패자들의 자활을 돕고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디자인하는 이종수(63) 한국사회투자재단 이사장 겸 임팩트금융 추진위원회 단장, 남들이 ‘문제없다’를 외칠 때 그는 ‘문제 있다’를 외치며 우리 사회의 궁벽한 문제를 드러내고 찾아낸다. 그리고 해결을 도모한다. 철거민촌 소년이 글로벌 금융인을 거쳐 사회운동가가 되기까지의 진솔한 패자부활전 이야기를 들어봤다.
별명이 소셜 디자이너입니다. 왜 그런 별명이 붙었나요.
“패자부활전을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할까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격차와 갈등을 해소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디자인한다고 해서 언론이 붙여준 별명입니다. 빈곤의 사전 예방, 차단을 위해서는 단순히 퍼주기 식의 복지 지원이 아니라 한 사회 생태계 구성이란 전향적-종합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고기를 주기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젠 고기 잡는 도구를 빌려주는 것까지 함께 필요합니다. 그리고 어장을 만들고 고기를 잘 잡을 수 있는 환경 조성까지 해야 합니다. 취약 계층 자활도 단순한 지원을 넘어 융자의 시대를 지나 이젠 사회투자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런 시스템을 디자인하는 게 제 일입니다. 빈곤도 커다란 흐름 속에서 이해해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착한 금융 2.0은 복지 측면에서 개인 대상 직접 자금 지원이었다. 3.0은 사업 지원, 사업 아이디어 사전 자문과 사후 사업 멘토링까지 종합관리 시스템으로 패키지 지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4.0은 투자 생태계 마련, 즉 사회투자 방식으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기업과 프로젝트를 발굴해 투자하고 이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다. 개인도 종합검진을 미리 하면 중병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이처럼 사회 빈곤, 취약 계층 발생도 사후 대책을 넘어 문제 요인을 사전에 진단, 예방하는 사회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취지다. 이 이사장은 사회투자금융 활동의 선구자로서 늘 앞장서 각 단계마다 진화를 주도해왔다.
사회투자라는 용어가 아직은 낯선데요. 사회와 투자라는 용어가 얼핏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만.
“사회 문제가 점점 많아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합니다. 그러나 그 예산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사회의 문제는 너무 복잡해 주는 복지 방식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습니다. 많은 사회 문제가 경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해결 방식도 전통적인 복지에 금융경영 등과 같이 시장적인 방법을 융합해 해결해야 합니다. 사회투자는 재원의 선순환을 이루면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주는 복지를 넘어 구조와 예방의 사회 인프라를 깔아야 합니다. 말하자면 사회간접자본과 같습니다. 다리, 항만 부두 등을 건설하는 데는 당장 비용이 발생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사회 발전의 근간을 마련하지 않습니까?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대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의 패자부활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이고 예방적인 차원에서 지속가능하게 문제를 풀어가는 사업에도 투자하는 등 다층적 접근을 해야 합니다.”
사회금융기관은 일반 은행과 어떤 점이 다른가요?
“일반 은행이 돈을 빌려줄 때 수익과 담보를 본다면 사회투자를 지원하는 사회 금융기관들은 그 기업과 프로젝트가 어떤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가, 그리고 그것을 추진하는 사람과 기업의 철학을 본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재무적 수치나 성과만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 즉 장애인, 노숙자, 저출산, 고령화, 청년 일자리, 주거 문제, 환경 문제, 자살률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는가를 우선적으로 판단해 투융자를 결정합니다. 돈의 회수 가능성을 본다는 점은 같지요. 공익적 개념이더라도 지속가능하게 사업을 진행하려면 재원의 선순환이 필수이니까요.”
은퇴자들과 매칭 포인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설립한 사회연대은행에서는 시니어브리지라는 프로그램을 수년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은퇴하였거나 은퇴를 앞둔 시니어들이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교육하고 논의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벌써 400명 이상의 시니어들이 교육을 받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전문성을 갖고 사회적 기업에 컨설팅을 하는 등 다양한 경로로 봉사가 가능합니다. 일정 교육을 받고 커뮤니티를 구성,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살다 보면 인생에는 두 가지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돈을 벌어 재무적 성과를 내는 재무적 가치, 사회적 의미를 두고 봉사하는 사회적 가치. 이 중 나이가 들면서 사회적 가치에 점점 더 무게중심을 두게 되더군요.”
당면한 사회 문제 중 심각한 게 양극화인데요. 많은 사람들이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끝났다고들 말합니다.
“부모의 가난이 새로운 연좌제가 되고 있는 것이죠. 요즘은 개천의 용을 보기가 힘듭니다. 개천에선 욕만 나오는 세태이지요. 싹수 있는 지렁이들의 신분상승 희망조차 개천 바닥 아래로 봉인돼버린 것입니다. 어느 나라이든 명문대 인재들이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존재해요. 영국의 이튼스쿨 출신, 미국의 아이비리그 출신 등. 우리 사회의 문제는 갈등과 적대감이지요. 리더들이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제도 개선 등 따뜻한 개천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이사장은 “실업, 저출산, 주거난, 장애인 문제 등이 곪아 터지면 결국 빈곤의 문제로 수렴된다. 이들이 벼랑에서 떨어져 사회적 비용이 더 크게 발생하기 전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이라는 책에서 “가난이 자존심에 미치는 영향은 공동체가 가난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방식에 결정적으로 좌우된다”며 “경제적 능력주의 사고는 가난한 사람을 불운한 게 아니라 실패자로 묘사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체제에선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고, 자선-복지-재분배-동정의 필요성은 갈수록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과연 빈곤을 그들만의 인과응보에 의한 책임으로 볼 것인가.
한 부모가 아이를 서울역으로 데려가 노숙자를 가리키며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는 산교육(?)을 했다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으로 다뤄진 적도 있지요.
“가난의 책임을 개인에게 물을 수만은 없습니다. 현대사회는 복잡해서 여러 가지 사회적인 상황이 개인을 빈곤으로 몰아넣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국민총생산이 성장하는 것만으로는 그 사회가 발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국민총생산이 늘어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소외되고 낙오되는 사람들을 보듬고 함께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장입니다. 이를 위해선 공동체 정신, 커뮤니티 정신이 기본적으로 중요합니다. 피도 눈물도 없이 온통 효율만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인간의 얼굴을 한 따뜻한 자본주의가 실현돼야 합니다.”
개인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사장님도 흙수저 출신의 개천룡이십니다. 어떻게 글로벌 금융인이 되셨는지요?
“사당동 달동네의 철거민촌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교(서강대 경영학과)에 들어갔어요. 민주화운동을 하다 민청학련사건으로 옥살이를 하게 됐습니다. 이게 빨간 줄이 돼 국내 일반 직장에 취업이 안 되는 겁니다. 신원조회를 하지 않는 외국계 기업 직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 친구가 권해줘서 우연히 응시한 미국 은행 체이스맨해튼은행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참, 인생이란 알 수 없더군요.”
민청학련 경력(?)이 인생의 장애물이자, 도약대, 두 가지 역할을 했군요.
“20대 때 세상의 불공평, 부조리에 대한 분노가 질풍노도 같았어요. 독재 정권에 대한 불만이기도 하고, 제 가난에 대한 불만이기도 하고, 화가 꾹꾹 쌓여 폭발 직전이었지요. 처음엔 독방에 수감됐는데 매일 고함을 치고 벽을 쳤어요. 3개월 후 잡범들과 합방을 하면서 비로소 제 마음속 억눌린 화가 풀리더군요.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가난이라고 불만을 가졌던 게 사치였던 겁니다. 비교도 안 되게 별별 힘든 사연이 다 있더군요. 그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자’는 생각을 했지요. 책으로 배운 이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통해서…. 그 결심으로 대학생활 내내 구로동 공단에서 야학을 열심히 했어요.”
그 후에도 초심을 잘 유지하셨나요. 젊은 시절의 결심은 계속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법인데요.
“하하. 웬걸요. 몇 번의 초심 재생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레드카펫 깔린 외국 직장에서 고연봉의 좋은 대우 받고,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7명이나 딸린 해외생활을 하면서 ‘그때 그 마음’이 바래버렸어요. 꿈은 이루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힘들어요. 내 삶은 우연찮게 사건이 ‘사연’을 상기하게 만들어요.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돌아보게 되었지요. 1996년 캄보디아에서 은행을 설립할 때인데요. 가난을 한탄할 틈마저 주지 않는 매정한 세상에 지친 서민들의 우울한 눈동자를 봤어요. 까맣게 잊고 있던, 감옥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과 예전 결심이 떠오른 겁니다. 내 삶을 돌아보게 됐고 사표를 냈지요.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이라고 하지만, 가슴에서 발까지의 결심이 더 힘들더군요. 이후 캄보디아 농촌 빈민을 위한 자활 프로젝트, 인도네시아 농촌 빈민 직업 훈련 프로젝트 등 ‘가슴이 시키는 일’에 연달아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캄보디아 내전 등 내부 문제 때문에 아쉽게도 끝까지 추진하지 못하고 접어야 했다. 비록 성공하진 못했지만 그에겐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이때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에 영감을 받아 귀국해 사회연대은행을 설립하게 된다. 당시 국내에선 개념조차 없는 때라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한국형 사회연대은행을 기초부터 공부해가며 시작해 실행까지 도맡아서 했다.
세계 최대 보험중개사인 에이온코리아 사장으로 계시다 비정부 시민사회 단체인 사회연대은행 대표로 옮기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요.
“10년간 양다리 기간이 있었습니다. 두 곳이 인근 건물이어서 상호 양해 하에 두 곳의 장(長) 역할을 왔다 갔다 병행했지요. 그러다 사회연대은행 운영이 어려워져 직원 급여도 못 주는 상황에 직면했어요. 3개월 월급 못 줄 땐 가시방석이었어요. 웬만한 직장에서 그랬다면 야단이 났을 텐데, 마이너스통장 쓰면서도 견디는 모습을 보며, 나 혼자 편하게 지내도 되나 갈등이 생기고, 인간적으로 모순 상황을 못 견디겠더라고요. 고민 끝에 에이온에 사표를 냈고 마음이 가는 바를 좇고 나니 편해지더군요. 온전한 헌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진정한 이익과 불이익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니 결정이 오히려 쉬웠습니다. 버는 거야 옛날과 비교할 수 없게 줄었지만요. 막상 살아보니 상상했던 것보다는 불편하지 않아요. 밥값 내던 시절은 잊고 빈대가 되고, 기사 딸린 승용차를 타는 대신 대중교통 이용하고…. 많이 벌면 많이 쓰고, 조금 벌면 조금 쓰게 되는 게 사람 사는 이치더군요(웃음).”
사표를 쓴 당일에 스페인 산티아고로 직행, 혼자 도보순례를 하셨다면서요.
“모양만 좋은 ‘데코레이션 나’가 아닌 진짜 ‘내 안의 나’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만나기 힘든 게 나라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살면서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이 나이기도 하고요. 자신만이 답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 사람들 눈에 보이는 나는 내 참모습과 일치하는가.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누어보는 시간이었어요.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나에게 지지 말자고 결심했지요.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지?’ 하는 매일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말씀을 들으니 이사장님의 삶 자체가 끊임없는 패자부활전, 초심 회복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하, 그런가요. 격렬한 희망과 내려놓기, 그것이 제 나름의 인생 지혜입니다. 격렬한 희망이란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고 긍정적 기회로 볼 수 있는 것, 그것이 나를 일으켜 세웁니다. 하나하나 보면 실패였지만 돌아보니 그게 저수지가 됐어요. 감옥에 들어간 일이나, 젊은 시절의 방황이나 해외 돌아다니면서 은행을 설립한 일이나…. 또 하나는 내려놓기입니다. 돈뿐 아니라 일에 대한 욕심도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따라오더군요.”
이 이사장은 인터뷰 중 일어나더니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을 펼쳐 한 대목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읽어주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출발이다. 과거를 지움으로써 현재를, 지금을 버림으로써 미래를 들일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다른 것을 쥘 수 없는 것처럼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다. 내려놓음은 익숙함에 찍는 단정한 마침표다. 나를 타성, 관성, 습성에 젖게 했던 세상의 기준과도 이별이다.
그는 자신이 지은 집에서 80대 노부모를 모시고 산다. 소셜 디자이너란 별칭처럼 ‘남이 디자인해준 집’에서 사는 것은 재미없기 때문이란다. 아버님(86)은 시력을 상실하시고, 어머님(85)은 치매이시지만 그는 이 역시도 문제로 보지 않는다. ‘노인의 문제는 곧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노인 병환, 공양 문제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풀 것인가, 노인들이 어떻게 존엄한 삶을 살게 할 것인가, 양질의 서비스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기회로 받아들인단다. 타고난 소셜 디자이너 이종수 이사장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치매는 우리에게도 현실이 됐다. 문재인 정부가 ‘치매국가책임제’를 실현하기 위해 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예측할 수 있는 좋은 사례를 곁에 두고 있다. 바로 일본이다.
치매 환자인 어머니를 모셨던 A씨는 지난 2012년 황당한 일을 겪었다. 서울 종로의 상가 건물 소유주였던 어머니에게 A씨의 삼촌 B씨가 접근해, 사후에 재산을 모두 자신이 맡는다는 위임장과 유언장을 받아낸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법원의 상속재산처분금지가처분신청을 받아냈지만, B씨는 법원의 결정 직전에 건물을 급히 팔아버렸다.
결국 소송을 벌인 끝에 2015년 법원은 치매로 법률적 의미와 효과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아들을 배제하고 동생에게 모든 재산의 관리 처분 권한을 준 위임장은 무효라며, 건물을 산 매수인에게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말소하라고 판결했다.
유언자 의사 정상 여부 판정
이런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 민법에선 금치산 또는 한정치산 선고, 성년후견 심판 등의 제도로 법률 행위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면 모든 성인은 기본적으로 의사능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속과 같은 법률 행위와 관련해 치매 같은 질환으로 인해 의사능력의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주장하는 자가 입증해야 한다.
이와 같은 문제는 유언장을 작성하는 사람에게도 현실적인 고민이 될 수 있다. 치매가 없거나 사소한 건망증이 나타나는 초기 치매의 경우 일상생활에는 장애가 없지만 병력이 법적 다툼의 소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언을 남겨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답답한 일이다.
일본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일본의 메디컬리서치라는 회사는 최근 ‘의사능력감정(意思能力鑑定)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서비스는 유언 작성 전 작성자의 뇌 대사 기능을 아밀로이드 PET-CT 등의 장비를 이용한 진단과 정신과 전문의의 면담을 통해 의사능력의 유무를 감정하는 서비스다.
회사 측은 “일본은 치매환자 1300만 명 시대가 도래했고, 치매로 인한 상속 분쟁이 2014년 1만2577건에 달했다”며 “치매환자라도 유언장을 작성할 수 없는 것은 아니며 의사능력감정을 통해 의사능력이 인정되면 분쟁의 소지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 국내에서는 분쟁이 발생한 이후에야 의사능력에 대한 의학적 견해를 묻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 종합병원 신경과 전문의는 “법원에서 법적 분쟁으로 인해 소견서 작성을 요청받는 일이 왕왕 있다”며 “의학적으로 의사능력을 감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법적으로 첨예한 경우 소견서 작성이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정앤파트너스의 의사 출신 성용배 변호사는 “국내에서도 유언장 작성자가 자발적으로 인지능력과 관련한 진료나 감정을 받고, 진료기록, 소견서 등 그 근거를 남기는 것은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이는 의사능력의 존부에 대해 있을 수 있는 문제제기의 소지를 불식시킬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치매환자 편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치매환자를 위한 일본 최초의 원격진료 서비스도 얼마 전 시작됐다. 준텐도(順天堂)대학교병원은 지난 7월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위한 원격진료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는 IBM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운영되며, 환자나 보호자는 아이패드를 통해 병원과 치료 정보를 주고받게 된다.
병원 측은 “환자의 내원에 필요한 신체적,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가족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환자를 돕는 간병인을 통한 정보도 의사가 참고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멀리 떨어져 있는 환자에게 효율적인 진료 서비스 제공과 함께 지역 병원과의 연계도 쉬워진다”고 설명했다. 또 병원 측은 원격진료가 활성화돼 자료가 축적되면 치매환자의 빅데이터 분석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1996년 서울대학교병원이 원격치매센터를 설립해 일찌감치 원격진료 서비스에 대한 시도가 있었다. 이어 정부의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통해 수년간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자체를 중심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돼왔다. 그러나 원격진료를 ‘정보통신기술 활용의료’로 명칭을 바꾸고 대상도 축소해, 보건복지부가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한때 홍콩 감독 허안화(1947년~)에 관한 국내 평가는 “여러 장르를 아우르며 실망과 환희를 동시에 안겨주는, 높낮이가 심한 연출자”였다. 그러나 필자는 (1997)과 같은 범작에서도 실망한 적이 없다. 서극, 담가명 등과 함께 1980년대 홍콩 뉴웨이브를 이끌었던 허안화는 진중한 사회파 드라마에서부터 액션, 시대극, 멜로를 아우르며 홍콩과 홍콩인이 처한 현실을 이야기하는 저력을 발휘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모녀의 20년 세월을 그린 (1990), 치매 노인을 둔 가정 이야기를 맏며느리 중심으로 그린 (1995), 매염방의 연기로 영원히 기억될 (2002)만으로도 그가 영화계에 남긴 선물과 성취는 이미 넘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여류라는 수식어를 자랑스럽게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독 중 한 명인 허안화가 마지막 연출작으로 생각했던 (2011)는 평단과 대중의 찬사를 얻었다. 이로 인해 허안화의 은퇴 심경을 번복하게 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처음 소개된 는 제68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제48회 금마장영화제 감독상 등을 받았고 2012년 제84회 아카데미영화제 외국어영화상 부문 홍콩 영화로 선정되었다.
는 단 한 명의 악인도 등장하지 않는, 그래서 절정도 극적 엔딩도 없는 담백한 영화다. 그렇다고 지지부진하고 무의미한 일상 묘사에만 머무는 심심하고 지루한, 소위 예술 영화인 체하는 작품도 아니다. , , 과 마찬가지로 보통 사람의 삶과 인간관계를 깊이 사색할 수 있는, 그러나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 수채화 같은 영화다. 겸손하고 진지한 현실 응시와 표현력이 영화의 미덕임을 확인케 하는 작품인 것이다. 이런 영화를 계속 내놓는 허안화의 뚝심과 이 같은 소재에 제작비를 대는 홍콩 영화계의 인프라가 존경스럽고 부럽다.
는 홍콩의 최고 스타 류더화(유덕화)가 제작을 자처하고 시나리오에 감동받아 주연까지 요청한 작품이다. 홍콩 누아르의 청춘 아이콘에서 진지한 소품에 돈을 대는 제작자로 성숙한 류더화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주윤발, 양조위, 여명, 양가휘 등 홍콩 남성 스타들은 어쩐 일인지 도무지 나이를 먹지 않는데, 특히 1961년생인 류더화는 대학생 역할을 맡아도 빠져들 만큼 늙은 티가 나지 않는다. 에어컨 수리기사로 오인받을 정도로 허름한 잠바와 배낭 차림으로 나오는 에서도, 노총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된 (2012)에서는 조연으로 잠깐 출연하는 등 역할의 크고 작음을 문제 삼지 않는 류더화 같은 스타 제작자가 있어 홍콩 영화계의 미래가 밝아 보인다.
는 시리즈와 등을 제작한 홍콩의 유명 영화 프로듀서 로저 리의 개인사를 바탕으로 했으며, 로저 리가 직접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 혈연으로 맺어진 식구만을 가족으로 여기는 편협한 사고가 고령화 사회의 걸림돌이 될 것임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어머니를 비롯한 온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간 후 혼자 홍콩에 남은 영화 프로듀서 로저 리 (류더화 분)는 잦은 중국 출장 등으로 바쁘게 산다. 그런 그를 돌보는 것은 60여 년 전부터 그의 집에서 일해온 늙은 가정부 타오지에(예더셴 분)뿐. 어느 날 뇌졸중으로 쓰러진 타오지에는 로저의 짐이 될 수 없다며 요양원을 고집한다. 자기 집안 식구를 4대나 모셨으며 자신을 키워주기도 했던 타오지에를 보러 이따금 요양원을 찾는 로저와 양아들 노릇을 해주는 그에게 감사함과 미안함을 느끼는 타오지에와의 이심전심. 그리고 두 사람 눈에 비친 요양원 노인들의 일상.
출장에서 돌아와도 이렇다 할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타오지에가 자신의 식성에 맞춰 요리해주는 각종 해산물 요리와 우설 찜을 먹기만 하는 로저. 그는 먼지 하나 없이 집 안을 쓸고 닦는 타오지에를 늘 제자리에 있는 가스레인지 혹은 청소기 같은 존재로 여기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는 그의 무심한 성격에서 기인했던 것일 뿐, 타오지에가 요양병원에 입원한 후 로저는 따뜻한 본심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관절을 못 쓰게 된 나이에 이르기까지, 결혼도 하지 않고 로저의 가족을 돌봐온 타오지에에겐 로저 가족과의 관계가 전부다. 노인병원에서 잠시 외출 나온 타오지에는 그동안 보관해온 소중한 물건들을 로저에게 보여준다. 그녀가 평생 간직해온 것은 로저와 함께 찍은 옛날 흑백 사진, 로저가 아기 때 입었던 옷과 장난감, 그리고 자신의 첫 월급봉투 등이었다.
자신과 함께 시부모를 봉양해준 타오지에를 병문안하러 온 로저의 어머니는 로저와 단둘이 지내게 되었을 때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무조건 베풀기만 했던 타오지에의 행동과는 대조되는 행위였다. 즉 로저에게 타오지에라는 존재는 어머니보다 더 가까운, 자신을 속속들이 알고 이해해주는 또 다른 어머니였던 것이다. 이는 로저가 누이에게 하는 말에서도 확인된다. “내가 아플 때 타오지에가 나를 돌봐줘 살아났는데, 이제 내가 그녀를 돌볼 수 있어서 다행이야.” 누이는 오빠에게 “어린 시절 유독 오빠만 챙겼던 타오지에가 서운했어. 그러나 나도 타오지에가 키워줬으니 장례식 비용만큼은 내가 부담하게 해줘”라고 말한다.
이처럼 로저의 가족은 타오지에의 헌신에 깊이 감사해하며 그녀의 노후를 책임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특히 로저는 타오지에가 퇴원해서 살 집은 물론 요양병원 비용까지 알아서 준비한다. 형제의 결혼식 피로연에 타오지에를 데려가 함께 가족사진을 찍는다거나, 자신이 제작한 영화 발표회장에 타오지에를 초청해 그녀에게 기쁨과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모자지간이나 다름없는 로저와 타오지에의 관계 못지않게 이 영화에서 비중을 차지하는 장면은 두 사람 눈에 비친 요양병원 노인들과 직원들의 일상이다. 정초 연휴 때도 병원에 남아 있는 노처녀 최 간호사(진해로 분). 아들에게 전 재산을 준 뒤 버림받았음에도 아들만 기다리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에게 화를 내면서도 모시러 오는 딸. 깊은 병에 걸린 딸과 그 딸을 보러 오는 어머니는 병원비 걱정 끝에 말없이 사라진다. 타오지에에게 돈을 빌리곤 하는 노인의 에피소드도 가슴 뭉클하다. 빌린 돈으로 젊은 여자를 사러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로저가 돈 빌려주지 말라고 하자 타오지에는 이렇게 말한다. “할 수 있을 때 하는 게 좋지.”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은 삽화처럼 간간이 등장할 뿐이지만, 관객들이 그들의 전 인생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남긴다. 류더화와 예더센을 제외한 요양원 노인들은 비전문 연기자들이며, 요양병원 묘사는 거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여기에 유머와 페이소스가 곁들여진 소소하면서도 세심한 묘사가 더해진다.
커튼으로 가림막을 한 조그만 방들이 다닥다닥한 한 서민요양병원 스케치는 에서 여주인공 손 여사의 이모와 이모부의 요양원 생활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는 의 자매편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소재와 묘사의 연관이 많아 보이며, 절제된 카메라워크와 단정한 화면구성 또한 그러하다.
1961년생인 류더화와 1947년생인 예더센은 (1985)에서 모자 지간으로 호흡을 맞춘 이래 여러 차례 모자지간으로 출연한 바 있어, 에서의 호흡이 자연스러웠고 각종 연기상으로 그 보답을 받았다. 1992년 공리가 로 여우주연상을 탄 이래, 예더한은 19년 만에 중국어권 여배우로 두 번째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유명 감독과 배우의 우정 출연도 이야깃거리에서 빼놓을 수 없다. 로저가 중국 출장에서 영화 일정을 의논하고 함께 술을 마시는 영화인들로는 , 시리즈의 서극 감독, , 등의 제작자 시남생, , 등으로 유명한 감독이자 배우인 홍금보인데 이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출연했다.
‘글을 잘 쓰는 패션 디자이너’
필자의 후반생 꿈이다.
2012년 퇴직한 후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봤다. 패션 디자인, 패션 모델, 발레와 왈츠 그리고 탱고 배우기, 영어회화, 서유럽 여행하기, 좋은 수필 쓰기, 오페라와 발레 감상하기, 인문학 공부하기 등 많기도 했다. 사람이 살아갈 때 무엇이 중요할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필자는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선생님이 되어 30여 년을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일했다. 퇴직을 했어도 공무원 연금이 나와 최소한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우리나라 노인들의 빈곤은 정말 심각하단다. 절반이 빈곤층이라고 한다. 그래도 필자는 평생 원하던 일을 하고 퇴직 후에는 최소한의 생활까지 보장이 되니 이처럼 다행스런 일이 없다. 지금부터는 필자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인문학 공부는 주로 집에서 한국방송 통신대 강의를 통해 충족한다. 요일별로 국문학과 철학, 역사와 서유럽 문화기행, 패션 일러스트레이션 등의 강의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창 자랄 때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육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의지만 있다면 TV와 인터넷 그리고 서울 각 구의 문화원에서 무료로 혹은 가성비 높은 비용으로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다. TV를 바보상자라면서 멀리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필자는 제자들에게 ‘정보의 바다’라고 표현했다. 인터넷에서 전복을 구하느냐 미역을 건져 올리느냐는 매체를 이용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요즘엔 방송대 강의도 그렇고 교양 프로그램과 양질의 다큐멘터리 등 좋은 콘텐츠가 넘쳐난다. 방송대 강의가 너무 재밌어서 외출을 못할 때도 있을 정도다.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는 의욕에는 세월도 못 당한다. 필자는 퇴직 후 제일 먼저 강남 라사라 학원에 등록했다. 패션디자인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어릴 때 선생님 다음으로 하고 싶었던 것이 패션디자인이었다. 이곳에서 패션디자인 과정 초급 3개월, 중급 3개월을 마치고 서울시 창업스쿨에서 2개월간의 패션디자인 과정을 수료했다. 패션에 대한 열정은 아마 평생 가지고 가게 될 것 같다. 발레는 어려서부터 필자의 로망이었기에 패션디자인 과정을 마친 후 바로 시작했다. 아름다운 선율에 맞춰 발레를 할 때마다 얼마나 큰 행복을 느끼는지 모른다. 발레가 어린 시절의 로망을 실현시켜주는 취미 정도라면 왈츠와 탱고는 능숙하게 아주 멋들어지게 추고 싶다. 운동할 때는 인내심을 요구하지만 왈츠와 탱고를 출 때는 어느새 끝나는 시간이 되곤 한다. 건강을 위해, 바른 자세를 위해, 힐링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춤이라고 생각한다. 스웨덴에서는 팔십이 넘은 노인들도 발레를 한다. 노인분들의 표정이 참 행복해 보인다.
서초문화원에서는 수필을 잘 쓰기 위한 수업을 받고 있으며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에서 기자단으로 활동하며 쓴 글이 96편이 될 정도로 글쓰기가 생활화되어 있다. 틈틈이 압구정역에 있는 무지크 바움에 가는 것도 잊지 않는다. 몇 해 전에는 강남시니어플라자의 모델워킹반에도 등록했다. 주 1회 모델워킹을 연습하고 있다. 2년 동안 패션쇼도 다섯 번 했다. 개성 강한 동료들의 기상천외한 옷차림을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옷차림은 전략이고, 옷 입는 것도 일종의 예술 행위’다. 기왕이면 예쁘게 입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장 훌륭한 액세서리는 젊음이다. 젊은이들을 값싼 옷을 입어도 예쁘지만 나이 들면 옷차림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물기 빠진 피부에 옷차림까지 추레하면 볼품이 없기 때문이다.
녹화가 있는 토요일은 될 수 있으면 여의도로 간다. 서포터즈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5포세대, 혼밥, 실업문제, 4차 산업혁명 등 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다루며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프로그램이다. 메인 브로드캐스터가 강연한 후 미래참여단 서포터즈들이 질문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장에서 녹화에 참여하면 더 생생한 공부가 된다. 20대 젊은이에서 70대 시니어까지 다양한 세대와의 만남도 즐거움 중 하나다. 주 2회는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에서 주관하는 서울 둘레길 걷기에 참여한다. 둘레길 걷기는 주 3회 30분 이상 운동을 해야 하는 시니어들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다.
‘배움이 이어지면 기회가 이어진다’고들 한다. 지금 같아서는 지구촌에서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배움에 대한 열정이 식을 것 같지 않다.
이래도 되는 거야?
삶이 이렇게 재밌어도 되는 거냐고요!
어제는 너무 좋아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올해 4월부터 활동하게 된 온․오프라인 잡지 에 필자 글이 실렸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온라인에만 꾸준히 실렸는데 잡지사에서 정해준 주제 ‘으이구! 주책이야!’에 맞춰 쓴 글 ‘교재를 망가트려 죄송합니다’가 7월호에 실린 것이다. 제시한 주제에 맞춰 처음 써낸 글이었다.
'사람을 사귐에 있어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한다.‘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필자가 가지고 있는 철학이다. 에서 주관한 시니어 헬스 콘서트에 필자와 함께 온 사람들은 대부분 필자 스타일을 좋아하는 여성과 남성들이다. 모두들 성격이 활발하고 적극적인 분들이다. 하는 일도 인터넷 기자, 사회복지사, 공예가, 모델, 시인, 수필가, 교수 등 다양하다. 서초문화원 문화기행 프로그램에서 만난 분도 있고 동대문 제일평화시장 구두매장에서 필자 스타일에 필이 꽂혀 인연을 맺게 된 분도 있다.
평택여고에 재직할 때 필자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사람을 대할 때는 정성껏 대하라. 그 사람이 나와 어떤 인연으로 맺어질지 모른다.” 서둔야학 단톡방, 서민동 단톡방, 서울시 낭송회 시음 단톡방, 왈츠 단톡방, 명견만리 서포터즈 단톡방, 꿈방송 단톡방, 뉴시니어 리더스포럼21 단톡방, 강남시니어프라자 해피미디어단 단톡방, 모델워킹 단톡방, 서리풀 문학회 단톡방, 오페라 동호회 모임,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 친구들 등 단체회원 단톡방만 해도 만만치 않은 인적 네트워크다. 살아보니 사람이 가장 큰 재산이다. 2년 전 메르스 사태로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에서 녹화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하느라 고심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필자가 강남시니어플라자에서 모델워킹하는 동료들과 해피미디어단 회원들을 왕창 모시고 갔다. 담당 PD가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모른다.
필자는 바람잡이 역할을 즐긴다.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에서 행사를 할 때는 담당 PD를 초대해 분위기를 조성했다. 필자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 각자의 재능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시니어 헬스 콘서트에 참석한 분들도 너무 재밌었다고 상기된 표정으로 필자에게 말했다. 다음 행사에도 초대해주기를 바란다면서. 아자아자! 이런 것이 바로 윈윈이다.
날개를 달아준 에 감사해하며 오늘도 필자는 저 푸른 하늘을 향해서 힘차게 날갯짓을 한다. 지금 필자의 삶은 글자 그대로 '브라보 마이 라이프'다. 이런 삶이 수어지교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한 기쁨!
따봉, 원더풀!
부천자생한방병원과 자생의료재단이 ‘농업인 행복버스’ 사업의 하나로 지난 14일 강화군 길상면 강남중학교에서 한방 의료봉사 활동을 펼쳤다. 이날 부천자생한방병원 임직원 20여명은 길상면 마을 주민 250여명을 대상으로 의료상담과 한방치료를 실시했다.
부천자생한방병원 박원상 병원장은 “농업인 행복버스를 통해 의료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농촌 고령 주민 건강을 돌볼 수 있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며 “농촌 의료 인프라 해소를 돕고자 부천자생한방병원도 농업인 행복버스 사업에 더욱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농업인 행복버스는 자생 의료진이 전국을 돌며 의료 봉사활동을 벌이는 농촌 복지서비스로 농협중앙회와 농촌사랑범국민운동본부 등이 주관하고 있다. 자생의료재단은 지난 2013년 원년부터 의료지원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다. 자생의료재단은 앞서 지난 4월 충북 제천을 시작으로 경북 영천, 경기 포천, 전남 완도 등 농어촌 지역을 방문했다.
6성급 크루즈 선이 인천 항구에 들어왔는데 인천에 볼 것이 없어 승객들이 내리지 않는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그나마 이 크루즈 선은 한국에서 인천이 유일한 항구란다. 동남아 관광객을 부른다면서 명동에 할랄 식당이 단 한 군데도 없다는 기사도 있었다.
도대체 그동안 인천 시장들은 무엇을 했는지, 관광공사는 무엇을 한 건지 한심한 일이다. 관계자들이 현장 답사라며 뻔질나게 외국을 다녔으면 우리에게 적용시켜야 하는 것이 있었어야 한다. 사드 보복으로 중국 관광객들이 급감한 지금이 우리 관광 인프라를 점검하고 확충할 때다.
인천은 종이 한 장짜리 관광안내도에 인천 관광 소개랍시고 차이나타운과 자유공원 정도만 소개해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차이나타운은 오전에 문을 열지도 않은 곳이 많아 볼 것도 없다는 얘기가 있다. 내가 봐도 인천은 볼 것이 없는 도시다. 앞으로 내국인 관광을 내다보더라도 이대로는 안 된다.
인천은 우리니라 개항의 역사를 지닌 항구이자 도시다. 당연히 역사가 깊은 곳들이 많다. 이곳들을 잘 다듬고 가꾸어놓으면 볼거리가 될 수 있다. 또 바다와 면해 있어서 풍광도 좋다. 바닷가 횟집만으로 관광 인프라라고 할 수 없다. 그나마 여름철에만 반짝하고 겨울철에는 을씨년스러울 정도다. 도시 환경이나 길도 정비가 안 되어 있다. 대중교통도 불편하다.
자연적인 게 내세울 것이 없다면 인공적으로라도 만들어야 한다. 작은 나라 네덜란드의 쾨켄호프 같은 꽃 정원 하나 없다. 여러 가지 특징이 있는 박물관도 없다. 재원이 없다면 부산의 벽화 마을처럼 서민들이 사는 동네를 꾸며 관광자원화하는 방법도 있다. 지금 조성하고 있는 신도시도 도시화와 함께 관광 면에서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인제의 자작나무숲, 담양의 대나무숲이나 메타세쿼이아 길도 몇십 년을 내다보고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다. 인천에 잘 맞고 인천을 대표할 수 있는 숲이나 관광마을 조성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당대에는 빛을 못 보더라도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행정가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단양에 갔더니 공중화장실은 깨끗한 편인데 좌식 변기는 없고 모두 재래식이었다. 한 해 1500만 명의 외국인들이 몰려오고 더 늘어날 추세인데 이래 가지고는 외국인들을 맞이할 수 없다.
명동의 할랄 식당도 정책적으로 지원해서 할랄 식당을 몇 군데 만들어야 한다. 회교국 관광객들이 하루 다섯 번 메카를 향해 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 장소도 만들어야 한다. 건물 하나면 되는데 생각이 못 미치는 것이다. 이슬람 문자로 관광 안내도 준비해야 한다. 명동 땅값이 비싸서 못한다면 명동 인근 지역이라도 알아봐야 한다. 이슬라믹 국가들은 우리 시니어들이 젊은 시절 땀 흘려 일하며 구축한 인연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이슬라믹 교도들은 기독교도 다음으로 많다. 관광 당국이 지역적으로 특성을 파악하고 대비해야 하는데 이슬라믹 국가 관광객들에 대한 준비가 너무 소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