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소멸 심각한 일본, “분산된 마을 통폐합” 시나리오 등장

입력 2025-10-21 07:00

거주지 ‘압축’ 예산 줄이고 재난도 대비… 갈등 소지 많아 공감대 형성이 관건

(어도비스톡)
(어도비스톡)

일본 민간 싱크탱크인 미쓰비시종합연구소(三菱総研)가 지난 20일 ‘인구감소 사회에서 지역 회복력 구현’ 보고서를 발표했다.

핵심은 인구가 급감·고령화하는 현실을 전제로, 평시부터 도시·마을의 거주·생활 축을 압축(컴팩트화)해 사회간접자본(SOC) 유지 비용을 억제하고, 잦은 재난에 대비해 복구 경로까지 미리 설계하자는 제언이다. ‘원상복구’를 전제로 한 과거형 복구에서 벗어나, 장래 인구 규모에 맞는 ‘현실적 비전’을 공유하고 그에 연동한 복구계획을 선제 수립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저출산으로 인해 축소되는 인구 규모를 감안해 불필요한 투자를 막자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보고서는 인구감소 시대의 지역 회복력을 세 갈래로 나눠 제안했다. △다음 세대와 외부 인구를 끌어들이는 지역 산업·브랜드의 형성 △인프라·공공시설·주거의 컴팩트한 재배치 △ ‘감소·축소지만 만족’이 가능한 의사결정·운영 체계다. 이번 제언은 이 가운데 지역 시설의 재배치에 초점을 맞춰, ‘거주 생활권의 면적을 줄여 거주지 인구밀도를 높이는’ 실천이 사회간접자본의 지속가능성을 얼마나 끌어올리는지 계량적으로 검증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전략이 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다만 일괄 규제가 아닌 ‘지역의 사정에 맞춘 장기전’이 전제 조건이라고 못 박았다.

정책 시나리오는 세 가지다.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경우 △인구 감소로 무인화된 구역에 신규 유입을 멈추는 ‘완만한 축소’ △단위 면적 1㎢당 25명 미만 거주 지역 등 저밀 구역부터 단계적으로 ‘지역 내 중심지’로의 전입을 유도하는 ‘적극적 축소’다. 연구진은 日 국토성이 인구감소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미래 인구지도 데이터를 바탕으로 각 시나리오를 2070년까지 시뮬레이션하고, 결과를 1인당 토목비(도로·하천 등 사회간접자본 유지비) 추정치로 비교했다. 그 결과, 적극적 축소 촉진은 인구 1만 명 미만 기초자치단체에서 1인당 토목비 예산을 2070년까지 2025년 수준(추정치 0.95배)으로 사실상 유지시키는 효과를 보였다. 중·대규모 자치단체도 대체로 비슷한 안정 효과가 확인됐다. 반면 ‘완만한 축소’만으로는 거주 생활권 면적의 의미 있는 감축이 어려워 인구밀도 하락을 막기 어렵고, 비용 억제 효과도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어떻게 사람들의 생활권을 압축할 것인가’에 대해, 정책보다 먼저 주민의 이해와 수용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생활 편의시설이 부족한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중심지로 이주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이 적지 않았지만, 실제로 옮기려면 정확한 정보와 설득력 있는 이유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30대 이후 세대가 생애 주기에 맞춰 미래의 주거 계획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지방정부와 기업, 지역 커뮤니티가 협력해 ‘이주 상담, 거주지 탐색, 정착 지원’ 등을 꾸준히 제공하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급격한 이전이 가져올 심리적 부담과 지역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천천히, 장기적으로’ 준비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모든 주민이 한꺼번에 옮길 필요는 없으며, 일부만 먼저 움직여도 충분하다는 점도 덧붙였다. 보고서는 한 지역에만 정착하지 않고 두 곳을 오가며 생활하는 다거점 거주 형태도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했다.

또한 도시계획이나 입지적정화계획 같은 제도를 활용해 주민 의견을 꾸준히 공유하고, 변화의 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시각화하는 것이 신뢰를 쌓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보고서의 제안은 일본 정부가 최근 추진 중인 국토·도시정책의 변화, 즉 ‘개발 중심’에서 ‘지속 가능한 관리 중심’으로의 전환 흐름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연구진은 거주지 압축을 만능 해법으로 보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이는 지역 통합, 인프라 유지 기술, 광역 교통망 재편 등과 함께 검토해야 할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라는 것이다.

보고서는 진정한 목표를 ‘지역의 회복력을 높이는 지속 가능한 운영 구조’에 둔다. 즉, 다음 세대가 살아가고 싶어 하는 마을의 형태를 미리 정하고, 그 비전에 따라 공공시설과 주택, 기반시설을 다시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접근은 한국에도 시사점이 크다. 인구 구조가 비슷하게 변화하고 있는 한국 역시 지역 균형발전, 도시재생, 재난 복구를 각각의 과제로 나누기보다, ‘감소의 시대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설계하는 것을 고려할 시기가 됐다.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우리는 이미 ‘지방 대학 구조 조정’ 과정을 통해 충분한 준비와 합의가 없다면 사업이 십수 년 간 지체될 수 있음을 간접 경험한 바 있다. 이번 보고서가 제시한 일본의 ‘인구절벽’과 ‘지역소멸’ 대응 시나리오의 핵심인 ‘선택과 집중, 그리고 사회적 합의’는,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우리 사회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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