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빌리고 안 갖다줘도 범법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책을 여러사람이
쉽게 빌리고 쉽게 사고 애착이 없는 분들도 있지만 어린시절부터 책에 대한
애착이 많았다. 빌려줘도 꼭 받아서 찾아오는 편이었다.
한국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백과사전,종이신문 조간석간신문을
정독을 하는 선생님이셨던 아버님의 영향으로 계속 책을 모아두고 이동할 때 어린시절 썼던
일기장도 수
대한한방 골병학회 회장 김산, 수석부회장 조상현 공저의 책이다. 건강 서적은 많이 읽었지만, 뼈에 대해 쓴 책은 전문 서적이 아니고 일반인을 위해 쓴 책으로는 처음이다.
“골병(骨病) 들었다”라는 말은 자주 듣는 말이다. 사람들은 “골병들었다!” 하면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정작 크게 놀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통을 동반하는 아주 아픈 병에 ‘골
부고(訃告)문자를 받았습니다. 필자보다 두 살 아래의 후배이자 직장동료이었든 사람의 아들이 죽었다는 알림이었습니다. 죽었다는 아들은 30대 중반의 결혼한지 3년차인 젊은 사람입니다. 교통사고와 같은 사고사인지 알았습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병원 영안실로 향했습니다.
망자의 아버지이자 후배는 울고 또 울어서 얼굴이 퉁퉁 부은 채 슬픔에 겨워 넋을
패션을 강조하면서도 건강이나 상황 대처와 비용절감 패션에 대한 내용을 제안한다.
◇모자와 스카프이야기
1,건강을 위해서
몇 년 전부터 모자를 즐겨 쓰게 되었다. 교통사고 이후에 갑작기 햇빛과 추위에 머리가 민감하여 날이 더울 때는 햇빛 차단으로, 겨울에는 갑작스런 기온강하로 머리가 멍해지는 때에도 매우 도움된다. 그런데 의사들이 시니어들은 저처럼 사고
서울 개포동에서 치킨 집을 운영하는 친구가 있다. 어릴 때부터 한 동네서 자랐고 나이도 같으니 같은 길을 걸어왔다. 그러다가 필자는 1999년 말에 퇴직했고 그때부터 16년간 퇴직자의 길을 걸은 셈이다. 그러나 이 친구는 그 당시 마지막 직장을 퇴직하고 6년을 집에서 놀았다. 내 한 몸 간수하면 그만인 필자와 처지가 다른 것은 처자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
최근 로베르토 베니니(Roberto Benigni)가 연출·주연을 맡은 영화 가 17년 만에 국내 박스오피스에 이름을 올렸다. 재개봉(4월 13일) 9일 만에 5만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 18일 차에 10만 관객을 모으는 등 기분 좋은 흥행성적을 냈다. 이 외에도 , , 등을 다시 스크린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영화는 상영 기간이 끝나고 나면 과거에는
취재를 위해 전화를 걸 때마다 그는 늘 산, 아니면 제주 오름에 있었다. 매일같이 산에 오르고,
등산했던 기록을 정리하면서 일과를 마무리하는 문정남(文政男·75)씨.
이제 그만 올라도 될 텐데, 70대 산사나이는 아침이 되면 또 새로운 산봉우리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선생님, 시내 가까운 산으로 가면 안 될까요?”
한 TV 프로그램에서
6월이면 먼 산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녹음이 짙어가는 산등성이를 넘어가면서 “뻐꾹 뻐꾹”하는 소리가 점점 가늘어질 때까지 부동자세로 그 소리를 가슴에 담는다. 뻐꾸기 소리는 그날의 슬픔을 다시 아프게 살아나게 하지만 유월이 지나면 어디서도 들을 수 없어서 더 그립다.
30년 전 큰오빠가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서 45일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때가
김영희(金英姬) 前 대사
우리 동네에는 우물이 세 개 있었다. 동네 한가운데 마을 공동 우물이 있고 방앗간 집과 우리 집에 우물이 있었다. 1949년 한글날 태어난 나는 6·25전쟁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그런데 우리 집 우물에 던져져 죽을 뻔했다는 얘기는 알고 있다. 농사를 많이 짓고 있는 집에다 큰아들이 국군 장교로 참전 중이어서, 인민군이
민주화를 위해 독재정권에 각을 세웠던 그다. 그의 아버지도 그랬고, 그의 아들도 그랬다. ‘3대가 시위 투쟁 집안’이라는 기사까지 났다. 그랬던 그가 20년 넘게 모은 토기 1582점을 국가에 기증했다. 그것도 모자라 그 이후 모았던 토기들도 다섯 차례 더 기부했다. 토기가 부업이라면 청동 수저 수집은 취미 같은 것이었는데 그것마저 모두 내놓았다.
글 이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