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풍요로운 영혼의 에필로그 같은 죽음을 맞이하세요”

기사입력 2016-12-06 15:11 기사수정 2016-12-06 15:11

(브라보마이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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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준비해본 적이 있는가? 언뜻 생각하면 법적인 몇 가지 절차를 제외하면 구체적으로 생각나는 준비가 없다. 평생 모아온 재산만 잘 물려주면 그만인 걸까. 죽음은 경험자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최근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관심받는 분야는 바로 임종학(臨終學), 즉 싸나톨로지(Thanatology)다. 싸나톨로지는 주로 국내 대학의 평생교육원을 통해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이들 대학 중 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을 통해 싸나톨로지에 대해 알아봤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싸나톨로지 과목의 정식 명칭은 ‘죽음교육 전문가’다. 이 강의를 책임지고 있는 신경원(申瓊媛·54) 강사는 싸나톨로지를 이렇게 정의한다.

“싸나톨로지는 통섭학문(統攝學文)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심리학이나 인류학, 신학 등 모든 학문의 관점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일이지요. 자연과학과 인문사회학이 통합된 학문입니다. 종교적 관점도 중요한데 특정 종교를 주제로 하진 않아요. 때문에 여러 종교에서 연구를 위해 오시고, 그 과정에서 역지사지의 마음을 알 수 있기도 하죠. 함께 의견을 나누고 연구하다가 각자의 종교로 돌아가서 그들만의 언어로 해석이 되는 셈이죠.”

싸나톨로지가 중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주체적인 죽음’을 강조했다.

“이끌려가는 죽음이 아니라, 내 죽음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에요. 물론 ‘주체적’이라는 뜻은 자살은 아니에요. 죽음을 거부하고 무서워해서 벌벌 떨다가 시간을 다 보내버리면 내 삶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게 되거든요. 허겁지겁 아프기만 하다가 간다면 얼마나 많은 회한이 남겠어요.”

싸나톨로지를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다루는 사람이 많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의료인이나 종교인, 심리상담가, 시니어 대상의 교육자 등으로 죽음을 곁에서 자주 대하는 직업군들이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호스피스와 다른 부분은 호스피스는 임종을 눈앞에 둔 환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한 실천적 활동이라면, 싸나톨로지는 호스피스 영역을 포함한 이론적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개인적 이유로 이 학문을 공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신 강사는 교육 과정에서, 도외시하고 그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죽음에 대한 관점이 변화하는 것이 느껴지고, 이러한 변화가 삶과 사람의 가치, 진정한 삶을 생각하는 계기로 이어지는 것을 자주 본다고 말했다.

▲신경원 강사가 싸나톨로지 수업 중 명상을 강의하고 있다.(브라보마이라이프)
▲신경원 강사가 싸나톨로지 수업 중 명상을 강의하고 있다.(브라보마이라이프)

싸나톨로지와 관련해선 미국의 교육단체 ADEC(Association for Death Education and Counseling)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싸나토로지협회가 민간자격제도를 운영 중이다. 또 대한웰다잉협회, 각당복지재단 등 웰다잉을 연구하는 다른 몇몇 단체들도 이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강의는 생애주기에 따른 사별이나 동양사상에서 본 죽음, 호스피스와 완화치료, 상실, 임종환자를 위한 음악·철학치료 등 다양하다. 2000년대 초반 웰빙 바람을 타고 유행됐다가, 그 시기에 입양된 동물들이 수명이 다할 시기가 돼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반려동물 상실도 다룬다.

그렇다면 좋은 죽음은 무엇일까? 좋은 죽음과 그 대비법에 대해 신 강사는 이렇게 조언한다.

“주체적인 죽음을 위해서는 나의 의지로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시기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경제력이나 신체적인 상황이 받쳐줄 때 가능한 것이죠. 그렇게 서서히 준비해가면서 내 인생에 몰입하며 즐기는 삶을 사세요. 보통은 자기 이름을 빨간 글씨로 쓰는 것조차 무서워할 정도로 죽음을 외면하려 하잖아요. 그러지 마시고 영혼의 무게를 풍요롭게 해줄, 에필로그와 같은 마지막을 계획해보세요.”



미니 인터뷰 수강생 고원철(65)씨

“우울증 벗어날 수 있는 계기돼”


죽음교육 전문가 과정에서 만난 고원철씨는 사회복지활동을 하는 지인을 통해 이 교육을 알게 됐다고 했다. 원래 대학병원에 교재를 공급하는 사업을 했다는 그는 1986년 겪은 큰 사고가 죽음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났어요. 꽤 큰 사고여서 여섯 시간 만에 겨우 깨어났어요. 그 과정을 겪으면서 죽음이란 것을 체감하게 된 것 같아요.”

그는 죽음에 대해 배우는 과정이 우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정반대라고 단언했다.

“원래 은퇴 후에 농사를 조금 지으면서 지냈는데, 그때 우울증이 왔어요. 그러다 이 수업을 듣게 됐고 긍정적으로 변했어요. 임종을 맞게 된다면 어떨지 예측할 수 있게 되어 막연한 두려움도 사라졌죠.”

그는 매주 배우는 강의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주제로 구성된 것도 마음에 든다고 했다.

“친구들을 만나면 매번 정치 얘기나 비슷한 잡담만 하다가 시간을 허비하잖아요. 이 과정을 듣고 나서는 화제도 다양해지고,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해줄 수 있어서 좋아요.”

마지막으로 고씨는 또래의 시니어들에게 싸나톨로지를 추천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마 비슷한 입장일 거예요. 연로한 부모를 모시거나 가까운 가족의 죽음 혹은 자살을 경험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런 분들이 감상적으로 젖어들지 말고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이런 교육이나 공부로 이겨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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