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임 농촌진흥청 농촌환경지원과 농업연구사-
김주성씨가 있는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하월천리에 거의 온 것 같은 느낌을 들 때였다. ‘새농어촌건설운동’사업지임을 알리는 커다란 나무 기둥이 마을 어귀 양 옆으로 우뚝 솟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솟대로 장식되어 있는 이 나무 기둥들은 하월천리 주민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김주성씨가 마을 이장으로 있는 동안 나타난 변화들 중 하나다. 지금 김주성씨는 ‘도시로 나간 자녀들이 돌아오는 농촌 마을’을 만들고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 꿈은 화전민이 살던 터를 귀촌지로 매입해 자연휴양·치유의 장소로 살뜰히 가꾸는 데서부터 시작됐다.
◇농촌으로 간 디자이너 =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도시에서 광고, 기획, 생활한복 등 다방면에서 사업을 하면서 갖은 흥망을 경험했다. 그가 귀촌을 결심한 이유는 도시 생활에서 느낀 고단함이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도시보다는 농촌이 미래사회의 대안이라는 생각이었다.
20년 후에는 농촌의 가치가 더욱 인정을 받게 될 것이라 전망하면서 속도와 경쟁에 지친 도시민들에게 활력소가 될 수 있는 자연치유 산림휴양마을을 만들고 싶은 꿈을 품게 됐다. 그가 구상한 것은 현재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단기성 농촌 체험이나 관광이 아닌 장기 농촌 체류 모델로 크게 두 가지 형태였다.
첫째는 명상이나 요가 등의 프로그램과 치유음식이 있는 장기 체류 휴양·치유마을을 만드는 것이고, 둘째는 원격업무가 가능한 회사나 산업을 마을로 유치해 도시에서 하던 일을 하면서 농촌에서 살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지인으로부터 소개를 받아 이곳 양양의 깊은 산골로 자리를 정한 것이 2000년. 그로부터 4년 후인 2004년 10월 이사를 올 때까지 매주 금요일에 양양으로 내려와 월요일 새벽에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생활을 이어갔다. 서울에서 술을 마시다가도
이곳이 그리워지면 택시를 불러서라도 내려오고야 마는 자신을 보면서 귀촌 생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이렇게 제2의 인생을 위한 보금자리를 다듬어 가면서 귀촌 후 사업 계획을 차근차근 구체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귀촌 1막, 깊은 산 중에 자리를 잡다 = 귀촌 후 3~4년 동안은 산 속 터전을 갈고 닦고, 장래 사업을 위해 준비하는 데에 시간을 투자했다. 빈집 세 채를 수리하여 거처할 곳을 마련하고 돌탑을 쌓고, 연못·나무다리를 만드는 등의 일을 모두 손수 감당했다. 펜션 운영을 위한 건물 한 동도 직접 지어 올렸다.
또 주변에는 고사리 300평, 취 300평, 엄나무 450주 등을 심었다. 치유음식의 식자재로, 방문객들에게 주는 선물용으로 미리 준비하는 의미였다. 실제 이 재료들은 현재 마을 식당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데에 활용되고 있다.
농촌 현실에 대해 깨우치고 꿈을 정교하게 다지기 위해 부인과 함께 각종 교육을 받고 선진 사례들을 돌아보는 데에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승용차가 못 들어가고 유무선 전화, 인터넷 사용도 불가능한 깊은 산 중에 정갈하고 아늑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광랜을 설치하고, 버스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길을 냈다. 이처럼 묵묵히 노력한 결과 주민들의 마음이 움직였고 그가 이장직을 맡을 수 있게 된 하나의 계기가 됐다. 결국 2009년 12월, 김주성씨는 마을 총회에서 이장으로 선출됐다.
◇귀촌 2막, 이장이 되다 = 이장 권유를 받고 나서 그는 많은 고민을 했지만, 마을을 깨워 아침을 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이장이 되고 나서 먼저 주민들에게 마을기업 CEO로서의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마을에 필요한 사업들을 적극 유치해 하월천리를 잘사는 마을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동안 마을 행사나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 등에 참여도 했고, 사업정보를 알려주거나 사업계획서를 쓰는 데에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했지만,한계를 느꼈던 터였다. 그러나 주민들의 동의가 전제되어야 했기에 의견을 물었고 주민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음으로 그는 마을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조직을 구성했다. 그 당시 마을 조직은 마을회, 노인회, 부녀회가 전부였다. 김주성씨는 마을을 위해 일할 젊은이들의 조직인 청년회와 마을 내 이견들을 조정할 원로회가 추가적으로 필요하
다고 판단했다. 청년 8명, 그리고 75세 이상 어르신들을 모아 각각 청년회, 원로회를 조직했다. 이장이 된 지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추진한 일이다.
이렇게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고 사업 추진을 위한 조직을 갖춘 후, 그가 가장 먼저 도전한 사업은 강원도 사업인‘새농어촌건설운동’사업이었다. 여기엔 상사업비 5억을 받게 되면 마을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종잣돈을 확보하게 된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의 주도에 따라 주민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끝에 8개월 만에 우수마을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이같은 결과는 강원도에서 12년 새농어촌건설운동 사업을 실시한 역사상 최단기 간의 일이라 한다. 선정하는 측에서도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사업을 추진한 경력이 돼야 수상자 후보로 고려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2~3년은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김주성씨가 목표한 대로 받게 된 상사업비로 부지와 건물을 매입하고, 거기에 농촌진흥청의 향토음식자원화사업을 유치해 탄생하게 된 것이‘농가맛집 달래촌’이다.
농촌진흥청이 지원하는 농가맛집은 전국적으로 64개, 강원도에 6개가 있지만, 달래촌의 가장 큰 차별성은 영농조합법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마을 공동의 일자리를 만들어 소득 창출을 꾀하고자 하는 목적이 담겨 있다.
각종 산나물, 능이버섯, 송이버섯 등을 활용한 약산채 밥상으로 특화한 달래촌은 김주성씨의 아내를 중심으로 예약 현황에 따라 마을 주민들이 배치돼 운영된다.
노동에 대한 대가는 시급으로 지급되고 있다. 달래촌이 행정소재지에서 많이 떨어져 있어 꾸준히 손님이 있는 형태는 아니기 때문에 아직까지 예약제로만 운영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자연휴양·치유마을을 향한 구상 가운데 치유음식을 담당하는 곳으로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아내와 주민들은 전통음식, 산채, 떡 등 다양한 교육과정에 참여하면서 약산채 밥상에 걸맞은 음식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다음 사업 아이템은 달래길이었다. 사람들이 먼 곳까지 방문할 수 있는‘거리’가 마을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총 80km, 13코스를 계획하고 있는 중에 현재 32km가 조성된 상태인데, 길이 완성되는 대로 식생자원 체험, 숲 치유 등 프로그램 운영을 병행할 계획이다.
여기에 추가로 유치한 녹색농촌체험마을 사업을 통해 아토피 치유센터를 만들고, 저수지 수변 공간을 공원으로 정비하고, 귀촌마을을 조성하는 등 자연휴양·치유를 테마로 한 그의 마을에 대한 구상은 무궁무진하다.
이렇게 주민들을 설득해 함께 사업을 추진하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점은 주민들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천(川)을 중심으로 마을이 분열되어 단결이 어려운 상황이었고, 소수 귀농·귀촌인들과 원주민들 간에도 갈등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김주성씨는 새농어촌건설운동을 계기로 사람들을 마을회관으로 자주 모이도록 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단순히 식사를 대접하기도 하고, 교육을 받도록 하기도 했다. 하루에 2~3개씩 교육이 진행되는 일도 있었다. 틈나는 대로 마을 사업에 대해 주민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거나 설득하기도 했다. 자주 만나서 먹고 마시고 시간을 보내야 관계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그의 지론대로 실천한 것이다.
또한 원로회장님을 비롯한 어르신들이 생일을 맞으면 아내가 떡케익을 만들어 생일잔치를 해드리는 식으로, 기회가 될 때 감동을 주고자 했다. 이렇게 70~80년 사신 마을 어르신들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고자 했다.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용한 마을에서 공연한 일을 벌인다는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고비마다 눈에 보이는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지지해 주는 주민들이 늘어갔다.
◇대한민국의 농촌을 바꿔보자 = 하월천리의 브랜드 ‘달래’는 월천(月川)을 한글로 푼 것이기도 하지만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마을, 즉 치유하는 마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마을이 가지고 있는 대표 자원인 산림 자원을 이용해 자연휴양·치유마을을 조성함으로써 마을의 소득원을 창출해 궁극적으로 자녀들이 돌아오고,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는 전문인들이 들어오는 농촌마을 모델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꿈은 이렇게 마을에 머물러 있지 않고 강원도, 대한민국 농촌으로 향해 있다. 이를 위해 30여명의 마을 리더들로 구성된‘비전 양양 21 핵심리더’모임에 참여하면서 선진사례를 꾸준히 학습·토론하고 있으며, SNS 매체인 카카오스토리를 이용하여 전국에 있는 여러 사람과 소통하면서 마을을 적극 알리고 있다. 아울러 마을의 미래를 위해 청년들과 일을 함께 해나가고, 마을에 필요한 외부의 인재들을 유치하는 데에도 힘을 쏟고 있다.
마을 사업에 뛰어든 이후로는 펜션 운영도 접고, 부부가 모두 마을 일을 돌보느라 집을 돌볼 겨를이 없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품었던 꿈을 마을 전체를 통해 실현시키는 일에 몰두에 있는 그에게서는 개인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그에게 더 이상 귀촌인이란 지칭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그가 도시에서 살았음을 인지하게 하는 것은 돋보이는 경영 감각과 다방면의 인적 네트워크 뿐, 그는 달래촌 하월천리에 열렬한 애정을 품은, 정신적인 토박이였다.
귀촌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김주성씨가 귀촌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조언으로 첫 번째 꼽은 것은, ‘자신을 낮춰야한다’는 것이다. 도시에서 어떤 화려한 생활을 했든 농촌에 오면 그 문화에 적응해서 같이 어울릴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농촌에 와 처음부터 서두르기보다는 최소 2~3년 마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고유 전통이 뭔지 보고, 느끼고, 많이 생각하다가 서서히 관계를 맺고 소통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도 했다. 처음 3년은 땅 사고 집 짓고 하면서 금세 세월을 보내지만, 이후 여유를 가지면서 오히려 갈등과 불화를 만들어 이웃과 벽을 세우거나 마을을 떠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두 번째로 그는 귀촌하기 전에 1년 정도 시골살이를 체험해볼 것을 권했다. 직접 부딪히면서 실제 살 수 있겠는지 저울질도 해보고 차근차근 준비해가면서, 어느 정도 자생력이 있다고 판단될 때 땅을 사고 집을 짓는 수순을 밟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귀촌지를 선택하는 것은 사랑하는 이를 만나는 것처럼 신중하게 고르고 정성스럽게 구애해야 한다고도 했다. 지자체의 지원 내용을 기준으로 삼는 것을 경계하는 조언일 터이다. 그가 발을 내딛은 그 길이 아직 끝을 알 수 없는 도정이지만, 손님과 같이 잠시 머물다가는 귀촌인이기보다, 농촌의 주인으로서 다른 귀농·귀촌인들이 와서 행복할 수 있는 농촌을 만드는 초석을 놓는 일에 뜻을 품은, 그런 귀촌인들이 농촌에 참 소중한 존재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 양평 세미원이나 시흥의 관곡지 등 수생식물을 이용한 공원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연차·연잎밥 등 연을 이용한 가공품도 이전보다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그럼에도 연은 여전히 특별하게 느껴지는 작목이다. 차기설 대표는 2004년 제부도 인근으로 귀농해 연꽃농장을 가꾸면서 연을 이용한 각종 가공품을 생산하고 있다.
◇귀농을 결심하다 = IMF 이후, 한창 사오정(사십오세가 정년)이니 오륙도(오십육세까지 직장에 있으면 도둑)니 하는 치열한 경쟁사회에 대한 자조적인 표현들이 회자되는 분위기 속에서, 차 대표는 처음 귀농을 생각하게 됐다. 2004년 초 귀농을 결심하게 되면서 그는 먼저 블루베리, 포도 등을 놓고 무엇을 재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들어갔다.
블루베리는 가공이 쉽지 않은데다가 수확까지 3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에 접근하기 조심스러웠다. 포도는 지역주민들이 선점하고 있는 작목인 만큼 재배하기는 수월할 지라도 주민들과 마찰을 일으킬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결정적으로 연을 재배하게 된 것은 우연히 연꽃농장을 방문했다가 농장주의 연에 대한 자랑을 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작목을 결정할 때에 그가 염두에 둔 기준은 재배하기 쉬운 작목을 한 가지만 재배한다는 것이었다. 농사경험이 전혀 없었던 그이기에, 일반 농업인과 같아질 수 있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농사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1차 생산보다는 2차 가공으로 승부수를 던질 수 있는작목을 선택하고자 했다.
이런 그에게 연은 환경에 민감하지 않아 관리가 쉽고, 병충해도 거의없는 작목이기에 매우 적합한 작목이었다. 처음에 용도에맞는 종자를 잘 선택해 받으면 종자 값을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또 전통적인 연잎차 가공방식이 다른 작물의 가공에 비해 간편하고 자본이 적게 소요되는 것도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본격적인 귀농 준비 = 2004년 가을, 차 대표는 지인이 추천한 지역에 터를 잡았다. 제부도 초입(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에 자리하고 있어 유동인구가 많은 것이 기회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연을 재배작목으로 결정하기는 했지만 문제는 당시 연에 대한 정보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중국판, 미국판 책자를 구해 독학으로 공부했다. 귀농교육이라는 것이 거의 없었을 때이기도 했지만, 교육을 받을 생각조차 못하고 홀로 관련 서적들에 의지해 연구와 실험을 거듭했다.
이때 유동인구가 많다는 지리적 특성을 십분 활용해 연을 심고 가꾸면서 가공을 준비하는 동시에 자기 화분을 함께 판매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수련을 심은 화분을 판매하기도 했다. 이것이 귀농초기 수입이 안정적이지 못한 시기를 버티게 해준 중요한 수입원이 됐다. 연 가공·판매로 경영이 어느 정도 안정화된 지금에도 화분을 찾는 사람들이 있어 계속 구비해 판매하고 있다.
◇연 가공에 도전하다 = 그가 처음 도전한 가공품목은 연잎차였다. 연잎차를 가공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가 차를 마셔
보고 어깨 너머로 가공기술을 배웠다. 기술을 배우면 실험적으로 가공해보고, 그 차를 인사동 찻집에 가져가 시음을 청했다.
처음 찻집 주인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자신이 가공한 차를 차로서 인정해주지 않는 모습을 대하자, 그는‘원가, 수익등을 생각하지 말고 우선 마실 수 있는 차를 만들어보자’라고 결심하고 차를 만들어 시음을 청하기를 반복했다. 이러한 꾸준한 노력으로 찻집주인들이 오히려 조금씩 가공 방법을 알려줬고 1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드디어‘얼마에 차를팔겠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감격적인 순간이었지만 그동안 판매 가격에 대해 특별히 고민해본적이 없었다. 별 계산 없이 입에서 나온 금액이 1만2000원이었다. 최초로 직접 가공한 연잎차를 판매하게 된 순간이었다.
연잎차를 만들고 나니, 자연스레 티백 가공으로 이어졌다. 다음으로는 연의 씨에 해당하는 연자를가공한 환을 만들었다. 연자가 몸에 좋은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7~8월 한시적으로만 생산이 되는데다가 딱딱해서 먹기가 어렵기 때문에 환으로 만들어 파는 것이 좋겠다는 아이디어에 착안했다.
최근에 개발한 상품은 연잎영양밥이다. 개발 기간만 3년이 소요됐는데, 맛·포장단위·포장방법 등을 개발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식과 실험 과정을 거쳤다. 작년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연잎영양밥은 연중 생산이 가능하며, 기호식품인 차에 비해 단번에 소비가 이루어지는 특성으로 인해 여러 가공품 가운데서도 효자 상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는 이처럼 1차 생산물이 아닌 가공품 생산에 주력하고 있으며, 60~70%를 온라인으로 판매한다. 나머지는 오프라인 방문객, 신세계백화점과 각종행사장 납품을 통해 소비되고 있다. 연차는 현재까지는 단골 고객들 위주로 판매되고 있어 연차의 맛과 효능을 알리고 소비층을 확대해나가는 것은 과제로 남아있다.
이렇게 끊임없이 연구·개발에 대한 열정을 늦추지 않는 차 대표는 이젠 연근발효효소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논문 한 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도전한 이 아이템으로 그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한 제9회 벤처농업창업경연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수출을 위한 쉼없는 도전 = 차 대표는 귀농한 지 2년이 지난 2006년이 되어서야 처음 교육을 접했다. 친구의 소개로 시작하게 된 것이 화성시농업기술센터에서 주관한 화성시사이버농업인연구회 활동이었다. 이를 통해 교육이 농업 경영에 도움이 됨은 물론, 각기 다른 작목을 재배하는 동료 농업인들을 만나는 것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로도 각종 교육
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 그는 150시간 과정의 aT농수산마케팅대학에 다니고 있다. 아직 막연한 단계이기는 하지만 수출을 준비하고 있다. 경기 화성 지역에서 연을상업화하여 생산·가공 및 판매하고 있는 유일한 농가로서 자리를 지켜온 저력을 더 멀리 확장시키기 위해 차근차근 길을 닦고 있다.
◇예비 귀농인에 대한 조언 = 차 대표는 현재의 자리에 오기까지 가장 힘들었던것이 농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것이었다고 한다. 주위에서는 자신을 농업인으로 바라보지만 스스로 농업인으로서 한없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농사 경험이 전무한 자신이 과연농업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도 차 대표를 힘들게 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귀농 후 8년이지난 지금 오롯이 자리하고 있는 연꽃농장‘연애(蓮愛)’는 불안과 자성 가운데서 그가 스스로 갈고닦은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그는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환상을 버릴 것,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할 것,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이웃을 많이 사귈 것 등을 주문했다. 농사 경험이 없는 사람이 성인이 되어 농사일을 시작해 안정적인 궤도에 진입하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아니기 때문에 농업, 농촌생활에 대한 환상을 먼저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그는 비록 귀농 초기교육은 받지 않았지만 각종 관련 국내외 서적, 보고서, 논문 등을 있는 대로 찾아 읽으며 연구했다. 수입원이 확보되지 않은 귀농 초기 시절을 지탱할수 있는 전략도 세웠다. 가공기술을 체화하기 위해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기술도 갈고 닦았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하는 자세가 어떠한 것인지를 그가 먼저 보여준 셈이다.
특히 그는 이웃들이 오가며 그가 농사짓는 방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할 때 ‘그럼 좀 가르쳐주세요.’하며 겸손한 자세로 배웠다. 농사일에서는 초보일 수밖에없는 자신을 인정한 것이다. 시골 사람들의 간섭 아닌 간섭을 ‘친절’로 봐야 한다고도 했다. 간혹귀농인들이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하며 주민들과융화하지 못하여 정착에 실패하였다는 사례들을접하곤 하는데, 이처럼 이웃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귀농 정착의 전제 조건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후배 귀농인들에게 당부한 것은귀농 이전에 가졌던 취미생활을 농업에 접목시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첫째, 농사지으면서도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고, 둘째, 그것이 농업과 결합하여 시너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홈페이지, 블로그, 트위터 등 각종 정보매체를 관리·활용하는 데에 열심이어서, 2011년 9월에는‘제3회경기도 농업인 정보화 경진대회’에서‘집나간 연-蓮’포스팅(http://blog.daum.net/inucom/12775950)으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제는 농업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자부심을 가지고 오늘도 일보전진을 위해 쉼 없이 연구하고 도전하는 차 대표이기에, 그의 연애(蓮愛) 이야기가 향긋한 연잎 향기만큼이나 오래도록 지속되리라 기대한다.
귀농귀촌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먼저 사전에 농업관련 기관이나 단체, 농촌지도사, 선배 귀농인을 방문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귀농귀촌 정보는 귀농귀촌 종합센터(www.returmfarm.com, 1544-8572)나 오는 6월 20일부터 22일까지 서울무역전시장에서 사흘간 열리는 귀농귀촌창업박람회를 통해 받아 볼 수 있다.
귀농이 결심되면 가족합의가 필요하다. 농촌으로 내려가고자 할 때 선뜻 응할 가족은 많지 않으므로 일단 가족들과 충분히 의논 한 후 합의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작목선택이 중요한데 자신의 여건과 적성, 기술수준, 자본능력 등에 적합한 작목을 신중하게 선택해야한다.
대상작목을 선택한 후에는 농업기술센터, 농협, 귀농교육기관 등에서 실시하는 귀농자 교육프로그램이나 귀농에 성공한 농가 견학, 현장 체험들을 통해 충분히 영농기술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귀농귀촌교육은 올해 2월부터 전국 36개기관에서 교육비 70~80% 국고지원으로 현장 실습과 맞춤형 귀농귀촌 교육 운영한다.
강원 홍천, 전남 구례에 있는 체류형 농업창업지원센터를 이용해보는 것도 좋다. 이 센터는 예비 귀농인이 실제로 농촌지역에서 일정기간 가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농업·농촌에 대한 이해, 체험, 교육·실습 등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해 농업 창업 인큐베이팅 역할을 하고 있다.
작목선택과 기술을 습득했다면 자녀교육 등 생활여건과 선정된 작목에 적합한 입지조건이나 농업여건 등을 고려해 정착지를 물색하고 결정해야 한다. 정착지가 결정되면 주택과 주택의 규모와 형태, 농지의 매입여부를 결정한 뒤 최소 3~4군데를 골라 비교해 보고 선택하는 것이 좋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귀농귀촌자에게 연리 3%, 5년 거치 10년 상환 조건으로 농업창업 2억원, 주택구입·신축 4000만원 등 최대 2억4000만원까지 융자해 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영농계획을 세워야 한다. 농산물을 생산해 수익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 최소 4개월에서 길게 4~5년정도 걸리므로 초보 귀농인은 가격변동이 적고, 영농기술과 자본이 적게 드는 작목 중심으로 영농계획을 세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
어느덧 수확의 계절이 지나가고 단풍도 남쪽으로 내려가고,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한 들판은 빈 채로 겨울을 맞을 태세다. 태풍도 한반도를 비켜가거나 별 피해 없이 빠져나가 올해도 풍년이라고 한다. 풍년이 지속되다 보니 이제 웬만한 것은 평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어댔듯이, 한여름의 무더위와 긴 장마도 다 견뎌낸 농민의 노고가 고스란히 가을 추수에 담겨 있다. 그뿐이겠는가? 역사와 궤를 같이하면서 오랜 기간 갈고 닦아 온 농업 기술 하나하나가 풍년의 기초가 되고 있다. 우수한 품종개발은 수량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고 병충해와 자연재해도 더 쉽게 제어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기계화 기술은 더욱 편리하게 많은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했다. 사시사철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생산할 수 있게 됐고 적어도 먹을거리만큼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농산물이 풍부해졌다.
그런데 풍년이 들어 먹을거리를 풍성하게 생산하는 농민들에게는 얼마나 혜택이 돌아가는 걸까? 풍년이면 농민들이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을까? 풍년이 들면 농업인의 입장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판매가격의 하락이다. 농산물은 대체로 공급물량이 10% 늘어나면, 가격은 10% 이상 하락한다. 풍년이 들어 생산량이 많을수록 가격이 하락해 농민은 어려워지고, 반대로 일반 국민은 싼 가격으로 농산물을 살 수 있다. 물론, 흉년이 들어야 농가소득이 올라간다는 것은 아니지만, 풍년의 혜택은 생산하는 농업인보다는 일반 국민이 누리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올해 우리나라 국내 총생산액 중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2%다. 2005년 3% 이하로 내려앉은 후 하향 일로에 있지만, 식품분야를 합치면 훨씬 더 큰 산업임이 틀림없다. 내년도 농림축산식품부의 예산은 13.5조원으로, 올해보다 0.1% 증가한 수준에 불과해 국가 전체 예산 증가율 4.6%에 크게 못 미친다고 한다.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8%이나 처음으로 4% 이하로 하락한다. 농업의 생산액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예산(투자)의 감소가 언뜻 합당한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농업에서 생산성 향상은 곧 시장가격의 하락을 가져오기 때문에 물가안정과 소비자의 식료품 구입비용을 낮추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해마다 흉년이 들고 우리 국민이 배고픔에 시달린다면, 그래서 농산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상승한다면, 우리의 생활은 얼마나 피폐해지겠는가? 농업인이 땀 흘려 농사를 지었기에 나머지 국민들이 싼 가격으로 질 높은 농산물을 이용할 수 있다.
이제 농산물을 생산하지 않는 국민은 농사를 짓는 농업인에게 일종의 빚을 지고 있음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농업인이 이룬 풍년의 혜택이 절반은 소비자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시장가격 하락을 무릅쓰고 풍년을 위해 애쓴 보람이 결국 소비자에게 질 좋은 농산물을 싼값에 대량으로 공급해주는 것이 된다.
우리 사회가 배고픔에서 벗어난 이후로 농사를, 또 농산물을 경제적 가치로만 판단해 왔다. 다른 산업에 비하면 이제 돈이 되지 않는 산업, 더는 성장하기 어려운 산업으로 농업을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많지만, 그 중요성은 그 어느 산업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가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농산물을 이용하는 우리 모두가 ‘빚진 자’ 의식을 갖고 농업인들의 애환을 뒤돌아볼 때 농업에 더 큰 희망의 싹이 자랄 것으로 굳게 믿는다.
AI 인체감염예방
조류인플루엔자(AI) 인체감염 예방을 위한 개인위생수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북 고창과 부안에서 발생한 AI와 관련, 시민 불안이 확산하는 가운데 청주시 상당·흥덕보건소가 AI 인체감염 예방을 위한 개인위생수칙 준수를 당부했다.
보건소는 고창과 부안에서 발생한 'H5N8형' AI는 전 세계적으로 사람에게 감염된 사례가 없는 조류독감이지만 조류인플루엔자 AI(H5N1)형은 국외에서 인체감염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병원성 AI(H5N1)는 인체 감염 때 치명률이 약 60%에 달하기 때문에 고병원성 AI 발생 때 인체감염 예방조치가 매우 중요하다.
가금류 등 축산 농가 종사자는 평소 인체감염 예방을 위해 개인위생수칙 준수와 함께 닭이나 오리가 평소보다 많이 죽거나 산란율이 떨어지면 즉시 가축방역기관에 신고(1588-4060)하고, 가금류와 접촉을 삼가야 한다.
일반 시민은 AI 인체감염 발생 국가나 국내여행 때 조류 시장 또는 닭·오리 등 가금류 농장을 방문하거나 먹이를 주는 등의 행동을 피해야 한다.
외출 후 손 씻기, 기침 예절 지키기 등 일반적인 '호흡기질환 감염예방수칙'을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이같은 내용을 접한 네티즌들은 "AI 인체감염예방 수칙 꼭 지켜야겠다" "AI 인체감염예방하려면 손을 깨끗이 씻어야겠다" "AI 인체감염예방, 조심해야겠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시기와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에 귀농·귀촌 열풍이 뜨겁게 불고 있다.
2011년 1만명 수준이던 귀농·귀촌자는 지난해 상반기 1만7745명을 넘어 작년 한 해 동안 3만여 명이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주했을 것으로 정부는 예상하고 있다.
귀농·귀촌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시기와 정부의 적극적 귀농·귀촌 정책이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베이비붐 세대는 6·25 전쟁 직후인 1955~1963년 태어난 이들로 국내 인구의 14.6%인 712만명을 차지하고 있다.
농협경제연구원의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 중 66.3%가 은퇴 후 귀농·귀촌을 희망하고 있다고 답할 정도로 이들의 귀농·귀촌 인구 편입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지난해 상반기 기준 귀농·귀촌자는 50대와 40대가 각각 32%와 24.4%를 차지해 전체 귀농·귀촌자의 절반을 넘어섰다.
이 같은 귀농·귀촌 열풍에 발맞춰 정부도 예산을 크게 늘리고 있다. 올해 귀농·귀촌 예산은 지난해보다 33.2% 늘어난 851억원에 달한다. 이제 농촌은 ‘촌(村)스러운 곳’이 아닌 새로운 희망이 있는 블루오션으로 재평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귀농·귀촌이 생각보다 쉽지 않고 또 결심에 앞서 가족 간의 합의와 작목선택, 그리고 지역 선별 등 실제 귀농에 이르는 단계는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다고 말한다.
자신이 평생 일해 모은 퇴직금이나 가족 생계를 위한 창업자금을 전부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 귀농·귀촌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부와 지자체가 운영하는 농지임대제도나 빈집 임대 제도 등을 이용하면 목돈 없이도 귀농·귀촌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충분하다.
그러나 많은 돈이 들지 않는다고 해서 ‘묻지마식 귀농·귀촌’을 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귀농을 결심했다면 사전에 농업관련기관이나 단체, 농촌지도자, 선배 귀농인을 방문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면서 실제 자신에게 귀농이 필요한지 귀촌이 필요한지 목적과 귀농 결과는 어느 정도를 예상하는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
또 전국 54개 시·군은 모두 80개 사업에 130억원의 예산을 배정하고 이사지원비, 정착금, 농가주택수리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도 1인당 최대 2억4000만원을 저리로 융자해 주기 때문에 지원받을 수 있는 예산은 얼마인지, 필요한 금액과 농업 초기 여유 생활비는 얼마나 소요될지 등을 충분히 계산해야 귀농의 실패를 막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선진국 중에 농어업이 발전 안 된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되려면 농어업이 발전해야 한다. 후진국이 공업화를 하면 중진국이 되지만, 중진국이 농어업을 발전시키지 못하면 선진국 진입이 어렵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아서 연구개발(R&D) 사업을 강화해야 농어업이 발전할 수 있다.”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최근 서울 여의도 잠사회관에서 가진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차기 정부가 중점 추진해야 할 농어업 정책 방향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운 해양수산부 부활 이야기가 나오자 “득과 실이 있겠지만 차기 정부에서 현명하게 판단해 줄 것으로 믿는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서 장관은 농어촌 발전을 위해서는 귀농·귀촌 인구가 증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려면 베이비붐 세대에 대한 귀농·귀촌 정책을 더욱 확실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 실제 매년 1만 명 수준이던 귀농귀촌 인구는 서 장관 취임 이후 2만 명을 넘어서는 등 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이뤄진 농협의 신경분리와 관련해서는 “50년 만에 개혁을 시행했다”면서 “농민이 생산하면 팔아주는 것은 농협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 같은 기조는 “다음 정권에서도 확실히 챙겨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기존 산업과 달리 농정은 사람 간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입장도 나타냈다. 서 장관은 “차관 재임 당시보다 농정에 대한 불신이 더 깊어졌다고 생각해 장관 취임 이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현장을 방문해 소통했다”면서 “정부 정책의 성공 여부는 국민과 소통하고 신뢰를 쌓는 것에서부터 나온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서 장관은 “1964년 일본이 일식 세계화를 시작해 30년이 걸린 것을 우리는 이번 정부에 시작해 조금씩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강조하고 “2009년 한식을 알고 있다는 외국인이 9%에서 지난해말에는 41%로 늘어났고, 이런 점에서 다음 정부에서도 한식 세계화 사업은 더 강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서규용 장관과 일문일답이다.
△차기 정권에서 꼭 이어갈 정책이 있다면.
“MB 정부 출범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 등 어려운 여건에도 지난 4년간 농식품산업의 체질개선, 안전한 농식품의 안정 공급 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 이번 정권에서 기틀을 잡은 농협개혁, 식품산업과 수출농업 육성, 한식세계화, 귀농·귀촌, 농기계임대사업은 농어업·농어촌 발전을 위해 연속성을 가지고 발전시켜 가야 한다.
특히 농협중앙회 사업구조개편으로 50년 만에 농협을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위한 조직으로 개편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했고, 규제대상이던 식품산업을 고부가가치 전략산업으로 전환했다.
한식세계화와 수출농업 육성을 통해 우리 농식품의 글로벌 시장 진출도 본격화해 2007년 38억달러이던 것을 지난해 10월말 기준으로 63억1000만불로 4.6%나 증가시켰다.
또 귀농·귀촌과 농기계 임대도 강화해야 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귀농·귀촌을 지원하는 종합적인 대책을 실시해야 하고 농기계 임대 사업으로 농가부채 발생의 주요 원천을 차단해 농사를 편하게 지을 수 있는 여건을 지속적으로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쉬움이 남는 정책은 무엇인가
“농어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육성하고, 정주여건 개선 등 농어촌에 활력을 불어 넣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좀 더 보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부가가치 산업화를 통해 농어업경쟁력의 기초가 되는 종자·종묘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부가가치가 높은 식품산업을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사람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농업 현장을 책임질 세계적인 수준의 정예 농어업인 양성을 위해 오는 2015년까지 매출액 1억 원 이상의 고소득 경영체를 10만호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젊은 후계농어업경영인을 매년 2500명씩 양성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또 농어촌 활성화를 위해 ‘함께하는 우리 농어촌 운동’을 비롯한 농어촌 활성화 정책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는 이러한 정책적 노력이 확산하여야 할 것으로 본다.”
△농협 변화의 방향성은 어디에 두어야 한다고 보는가
“농협이 농민을 위한 기구로서 제 역할을 다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사업구조 개편의 주된 목적인 경제사업활성화 목표 달성에 매진할 필요가 있다.
오는 2020년까지 중앙회가 조합 출하물량의 50% 이상을 책임 판매함으로써 농민은 판로 걱정 없이 생산에 전념하고, 판매는 농협이 전담하는 구조를 차질 없이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농협은 적기 신규투자로 유통기반시설을 조속히 마련하고, 산지 농협조직을 규모화·전문화하는 등 직거래형 유통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또 경제사업의 경제지주 이관 등 경제사업에 맞는 시스템을 정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정부에서도 농협경제사업평가협의회를 통해 경제사업 추진실적을 지속적으로 점검·평가하는 등 철저하게 사후 관리를 할 계획이다.”
△식량자급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데 이에 대한 대응방안은.
“기상이변으로 증산에는 한계가 있다. 중국의 육류소비 증가와 세계인구 증가에 따른 곡물수요 증가 등으로 식량수급 불안은 더욱 심화할 것이다. 특히 최근 미국·러시아의 가뭄 등으로 주요 곡물 국제가격은 지난해 6월말부터 급등해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가 9월 이후 점차 하향 안정세를 찾았다.
우리나라는 곡물가 급등 전에 연간 수입량 1400만t의 약 90%를 미리 확보해 국내 영향이 나타나기 전에 선제로 축산농가와 곡물업계의 부담을 완화했지만, 앞으로는 동계 작물과 조사료 재배면적을 더욱 확대해 사료곡물의 수입수요를 대체하는 등 국내산 곡물의 생산과 소비 확대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차기 농식품부 장관에게 한 마디
“‘국민통합’과 ‘민생정부’를 표방하는 새 정부 역시 ‘농업인의 땀이 헛되지 않은 희망찬 농어촌 건설’에 정책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경제민주화와 상생·복지·일자리 창출이 시대적인 과제로 드러난 만큼 농어업·농어촌, 식품산업 분야에서 정부 역할의 중요성도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올해에도 국제유가·곡물가 상승과 기후변동성 확대가 예상되기 때문에 농어가의 경영부담을 덜어주고 재해보험을 활용한 경영안정에 힘써주길 당부 드린다. 아울러 시설 현대화와 귀농·귀촌처럼 연속성이 중요한 과제에 대해서는 기존 정책을 보완하며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