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년이 되면 수학여행을 간다고 했다. 일광(日光)에 간다는 연락장이 왔다. 거기에는 소풍 갈 때처럼 준비물이 세세하게 정리되어 적혀 있었고, 학부형 중에 몇 명은 아이들 보다 먼저 여행지에 가서 모든 것을 체크해야 한다고 쓰여 있고, 희망자는 신청해 주기를 정중하게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이웃에게 물어보니 가고 싶으면 신청하라고 격려해 주었다. 우리나라라면
간혹 무심한 상태에 빠져 모든 결정을 우연에 맡길 때가 있다. 관성에 젖어 끊임없이 계획을 세우며 사는 삶이 잠시 한걸음 멈춰서 바라보면 그 또한 스트레스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낄 때 더욱 그렇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치밀한 계획보다 우연이 훨씬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때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를테면 이번에 선택한 영화 가 그런 경우이다.
평소 영
1983년이 되었다. 외국이지만 아이들에게 우리의 설을 느끼게 해 주려고 정성들여 녹두전도 부치고 삼색 나물도 무치고 내 식으로 설음식을 만들었다. 아이들도 신이 나서 만두를 빚었고, 전을 부치는 곁에서 호호 불어가며 먹고 떠들어대었다. 온 식구가 모이는 떠들썩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오붓한 설날 분위기는 부러움 없는 즐거운 풍경이었다. 만두 속이 터져라 꼭
영화감독 꿈꾸던 소녀 음악PD가 되다
인터뷰 이태문 일본 통신원 gounsege@gmail.com
작은 체구에 단단한 관록을 풍기면서 함박웃음으로 맞이해 준 ㈜콘코르디아(CONCORDIA)의 대표 겸 음악 프로듀서 곤도 유키코(近藤由紀子, 67)는 이시카와현(石川縣) 나나오시(七尾市) 출신.
육군비행학교를 나와 육군항공대 조종사로 태평양 전쟁 때 동남
소 다케유키는 1908년에 도쿄에서 태어났다. 1920년, 소 가문의 당주인 사촌형이 아들 없이 사망하자, 15세의 나이로 대마도 번주인 소 가문의 37대 당주자리와 백작 작위를 계승하게 된다.
일본의 음모
일본정부는 소 다케유키와 덕혜옹주를 결혼시켜 일본의 화족에 편입시켜, 조선 왕족으로서의 영향력을 지워 없애려고 했다. 덕혜옹주를 조선인들의 기억에서
다음날 두 아이는 등교했다. 집에 세시정도면 온다고 했으니 기다렸다. 말도 못하고 친구들도 처음 만나니 얼마나 가지가지 호기심을 만나고 올까 기다렸다. 이상하게 큰 아이가 먼저 왔는데 모리모토상이라는 친구를 데리고 들어 왔다. 아주 얌전한 일본인 특유의 깍듯한 차림으로 들어오면서 고개 숙여 인사를 하며 입으로는 ‘오쟈마시마스~’ 라고 크게 말을 했다. 오늘
우리가 일본에 도착해서 전학서류를 전부 내서 학급배정을 받은 것은 3학기 때였다. 우리에게는 2학기 까지는 있었는데 3학기라니... 암튼 그렇다 하니 그대로 따르면 되는 일이라 특별히 힘든 일도 아니라 그러려니 했다.
큰 애는 4학년 2반이었고 작은 애는 2학년 1반이었다. 큰 애 담임은 부끄러움 반에 걱정 반으로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어쩔 줄 모르는
조선호텔 앞에서였다. 막 그곳을 통과하던 필자는 좀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걸친 한 남자가 머리에 갓을 쓰고 있었다. 한 손에 부채를 든 채로 여유 있게 사방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가 일본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화가 났다. 조선의 선비가 쓰는 갓을 청바지 위에 함부로 쓰고도 점령군처럼 안하무인이라니. 필자의 눈에선 퍼런 레이저가 발사
새로운 단어가 방송에서 나온다. 그러면 순식간에 전국 방방 곡곡 모든 사람들이 그 말들을 순식간에 사용하는데 놀라운 속도다.
내가 살고 있을 때 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었다. 난 그 말이 나온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이를 막론하고 그런 의미의 말을 사용할만하면 정확하게 전 국민이 사용하는 거다. 그 전파 속도도 놀랍지만 발음도 의미도 정확
화이트 타이거: 최강 전차군단(White Tiger, Белый Тигр)
러시아의 카렌 샤흐나자로프 감독이 만든 전쟁 영화이다. 주연에 비탈리 키시쳰코, 알렉세이 베르트코프, 블라디미르 일린이라는 사람들이 나오지만 알려진 배우들은 아니다.
배경은 2차 세계 대전이다. 소련이 베를린을 향해 진군해 나가던 시기였다. 소련군은 탱크에서 온몸에 화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