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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쾌한 할머니 윤여정, 오스카상 타고 빵 터트려
- 할머니 배우 윤여정이 한국 배우로는 처음으로 오스카 트로피를 품으며, 한국 영화사를 새롭게 썼다.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에서 외손주를 돌보기 위해 미국으로 간 외할머니를 전형적인 할머니에서 벗어나 유쾌하면서도 여운이 남는 연기로 호평받았다. 2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다른 4명의 여우조연상 후보를 제치고 얻은 영예다. '보랏 서브시퀀트 무비필름'의 마리야 바칼로바, '힐빌리의 노래'의 글렌 클로스,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먼, '맹크'의 어맨다 사이프리드가 경쟁자였다. 특히 한국 배우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연기상을 받은 건 한국 영화 102년 역사에서 처음이다. 아시아계 배우로는 두 번째다. 1958년 제1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일본 우메키 미요시가 영화 '사요나라'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뒤로 63년 만이다. 윤여정은 1947년에 태어나, 한양대 재학시절인 1966년 연극배우와 T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잘 해 어머니에게 의사가 되기를 기대받았다. 하지만 이화여고 재학시절 위염으로 인해 결석이 잦아지면서 성적이 떨어지자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일흔이 넘어 처음으로 재미교포 2세가 찍는 미국 독립영화에 도움을 주겠다는 마음으로 출연해 뜻하지 않은 성과를 낸 셈이다. 이날 시상식에서 윤여정은 재치 있는 수상소감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는 무대 오른쪽에 서 있던 시상자 브래드 피트를 향해 “드디어 만났군요. 우리가 오클라호마 털사에서 영화 찍을 때 어디 계셨나요?”라는 농담으로 관객을 웃겼다. 브래드 피트는 영화 ‘미나리’의 공동제작사인 플랜B 대표다. 영화 관계자이지만 촬영 현장에서 만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어 자신을 낯설어할 영미권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한국에서 온 윤여정”이라고 말하며 “유럽 사람들은 제 이름을 ‘여여’라고 하거나 그냥 ‘유정’이라고 부르는데 오늘 밤만은 모두 용서해드리겠다”고 말했다. 또 “아시아에서 자라면서 TV로만 보던 오스카 시상식에 온 게 믿기지 않는다”며 “이제 정신을 좀 가다듬어야겠다”고 덧붙였다. 예상치 못한 윤여정의 농담에 객석에서는 계속 웃음이 터져 나왔다. 또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다른 배우들에게도 예우를 표했다. 그는 “내가 어떻게 글렌 클로스 같은 대배우와 경쟁을 하겠느냐. 그의 훌륭한 연기를 너무 많이 봤다”며 ‘힐빌리의 노래’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글렌 클로스에게 찬사를 보냈다. 이어 “다섯 명의 배우들은 다른 작품에서 모두 승자다”며 “내가 운이 더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카데미 관객들을 빵터트린 수상소감 하이라이트는 미국에 살고 있는 두 아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두 아들이 자꾸 일하러 나가라고 했다”며 “덕분에 엄마가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랬더니 이런 상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윤여정은 미국으로 이민을 간 딸 모니카(한예리) 부부를 돕고, 손주들을 돌보기 위해 한국에서 건너간 외할머니 순자를 연기했다.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전형적인 한국 할머니의 틀에서 벗어났다. 영화에서 외손자 데이빗이 "할머니는 진짜 할머니 같지 않아요"라고 외칠 정도다. 손주를 사랑하지만 손주가 부리는 응석에 끌려다니지도 않는다. 또 손주들에게 화투를 가르치고, 고약한 말도 서슴없이 던진다. 많은 매체들은 윤여정이 "독특한 할머니 순자를 연기했다"고 평가했다. 윤여정의 아카데미 수상에 대해 한 시니어 독자는 “세계에서 한국 할머니의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게 아닌가 싶다”며 “시니어들은 그들에게 맞는 역할이 있다면 잘 수행할 수 있다.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 2021-04-2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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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가 필요한 날, 넷플릭스 일본영화
- 몸과 마음이 물에 젖은 솜처럼 푹 가라앉은 날에는 잔잔한 영화 한 편이 위로될 때가 있다. 그중에서도 일본 영화는 특유의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로 ‘힐링영화’ 목록에 종종 언급되곤 한다. 따뜻한 봄이 찾아왔지만 변함없는 일상에 울적함을 느낀다면 맥주 한 캔과 넷플릭스로 가볍게 기분전환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지친 하루에 위로 한 스푼을 더해주는 일본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카모메 식당 (Kamome Diner, 2006) 가라앉은 기분을 끌어올리는 가장 간단한 방법 중 하나는 맛있는 밥 한 끼로 위장을 든든하게 채우는 것이다. 맛있는 식사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면, ‘카모메 식당’에서 사치에(고바야시 사토미)가 내오는 소박하지만 정성스러운 한 상으로 대리만족을 해보자. 사치에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작은 일식당을 운영하는 평범한 여성이다. 그녀가 선보이는 메뉴는 매실장아찌를 넣은 일본식 주먹밥. 타국의 낯선 메뉴에 식당은 파리만 날리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며 자신에게 집중한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일본문화에 관심이 많은 핀란드 청년 토미(자코 니에미)가 식당의 첫 손님으로 방문하고, 그 뒤 각자의 사연을 지닌 손님들이 하나 둘 이곳을 찾는다. 달그락달그락 요리하고 머리를 맞대며 식사하는 장면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화지만, 지루하기는커녕 그 속에서 오고 가는 인물들의 대화와 공감, 위로가 마음의 허기를 달랜다. 러닝타임 100분 동안 느긋하게 휴식을 취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2.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Rent-a-Cat, 2012) ‘카모메 식당’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에서도 사람과 사회를 향한 그녀만의 따뜻한 시선을 이어간다. 고양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애묘인 사요코(이치카와 미카코)가 외로운 사람들에게 고양이를 빌려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길어진 독거 생활로 대화 나눌 상대 하나 없는 사요코 역시 그녀가 찾는 ‘외로운 사람’ 중 한 명이지만, 그때마다 귀여운 고양이들이 그녀의 곁을 지킨다. 영화는 사요코와 만나는 손님을 하나둘 보여주며 에피소드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죽음을 앞두고 홀로 살아가는 할머니, 가족과 떨어져 타지에서 지내는 중년 남성, 하루 종일 적막한 사무실에 갇혀 일만 하는 회사원 등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사요코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소통하며 자신의 외로움도 조금씩 채워나간다. ‘카모메 식당’에서는 주먹밥이 이웃 간의 정을 나누는 매개체가 되었다면, 이 영화에서는 고양이가 그 역할을 한다. 극적인 서사는 없지만, 군중 속 고독을 느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외로움을 잔잔히 어루만져주는 작품이다. 3. 원더풀 라이프 (Wonderful Life, 1998) 기차역 안 대합실처럼 보이는 곳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기차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듯 보이지만 이곳은 삶과 죽음을 잇는 ‘림보’다. 림보에 머무는 망자들은 일주일 안에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을 고르고, 오직 그 기억만을 간직한 채 천국으로 향해야 한다. ‘원더풀 라이프’는 이 같은 독특한 설정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을 그려내며 삶의 진리를 담담하게 깨닫도록 한다. 선택의 갈림길에 선 망자들은 저마다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고심 끝에 소중한 기억을 고백하는 이들도 있는 반면 선택을 번복하는 인물도 나온다. 하지만 그들이 떠올린 장면은 대부분 인생에 몇 안 되는 엄청난 이벤트가 아닌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다. 옷깃 스치듯 지나 보낸 날들이 돌아섰을 때 평생의 기억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영화는 반복되는 인터뷰 형식을 취하며 계속해서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당신의 인생에 소중한 기억은 무엇인가? 영원히 머물고픈 순간이 존재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해보는 것만으로 우리의 하루는 한층 더 ‘원더풀’해진다.
- 2021-04-1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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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관 풀밭에서 소풍과 낮잠을
- 미술 작품 감상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곰곰 뜯어봐도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추상화 앞에선 머리에 쥐난다. 이게 관람객의 둔감 탓이라고만 할 수 있으랴. 작가 자신도 무슨 짓을 했는지 알 바 없이 휘갈긴 작품도 ‘천지삐까리’다. 작품이 난해하니 미술관에 가봐야 재미가 없다. 미술관들의 따분한 콘셉트에도 식상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여기에 꽤나 재미있는 미술관이 있다.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있는 가나아트파크다. 일영리는 산 좋고 물 좋은 전원이다. 예전부터 교외선을 타고 장흥역(현재는 폐역)에 내려 일영 일대의 산수와 찻집을 즐기는 데이트족들이 넘실거리던 곳이다. 유흥주점과 러브호텔로 불야성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다 2008년 ‘장흥문화예술특구’로 지정되면서 슬쩍 변신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알록달록 치장한 업소들이 난립해 어지럽지만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등 문화 공간 다수가 이 골짜기에 들어서면서 좀 색깔 있는 동네로 부상했다. 처음 문화예술의 공기를 주입한 건 토탈미술관이었다. 토탈미술관을 서울 평창동에 있는 가나아트센터가 인수하고 개조해 2006년에 문을 연 게 가나아트파크다. 가나아트파크는 ‘쉬운 미술관’을 표방한다. 설립자는 가나아트센터의 리더 이호재 씨. 화랑계의 ‘큰손’이자 진취적인 기획자다. 그는 문턱과 눈높이를 낮추고 재미를 부여해 누구나 쉽게 찾아와 미술 체험을 할 수 있는 미술관을 궁리하다 가나아트파크를 열었다. 그의 지향과 방책은 선명했다. 어린이들을 주 타깃으로 삼은 거다. 아이들에게 미술과 미술관도 사이버 게임처럼 아주 신날 수 있다는 걸 경험시키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울러 아이들의 삶에 좁쌀만큼의 작은 크기로라도 미술이라는 소우주가 달라붙을 수 있길 바랐을 테고. 그게 결국은 미술 인구의 확대와 저변의 풍토를 다지는 지름길이라 보았을 테고. 이호재 씨의 이와 같은 궁리와 실천은 평범한 게 아니었다. 머리 잘 돌아가는 미술 사업가들이 많지만 아무도 ‘어린이 중심의 미술관’을 착상하지 못했던 시절에 기염처럼 토해낸 발상이었으니까. 요즘이야 어린이들을 주 고객으로 삼은 사립미술관이 꽤 있지만 예전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국내 최초의 어린이 미술관으로서 가나아트파크가 지닌 위상이 우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구름처럼 몰려오나? 연간 관람객 수가 10만 명 이상이라 하니 순항이다. 하지만 적자를 면치 못한다더라. 이건 사립미술관의 숙명에 가깝다. 무료입장 제도를 운용하는 국공립미술관의 관람객 유인력을 당할 재간이 없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사실 비싸지도 않지만) 사립미술관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아무려나, 가나아트파크는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뜀박질로 흥겹다. 그러라고 놀이터처럼 꾸며놓은 공간과 시설이 많다. 아이들은 다들 부모나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이끌려 이곳에 온다. 그러기에 아이들 못지않게 어른들도 많다. 젊거나 늙숙한 부부와 연인들도 전시실의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너른 정원에서 짧은 피크닉을 즐긴다. 자유로이 마음 보따리를 풀어놓고 쉬기 좋은 미술관이다. 즉 남녀노소가 어울려 체면 차릴 것 없이 일락(逸樂)할 수 있는 곳이다. 정원을 가로질러 본관 건물로 들어간다. 지상 2층과 지하 1층으로 지은 이 건물엔 각각 층고가 다른 6개의 전시실이 있다. ‘카페 오월’과 아트숍도 있다. 1층 전시실 옆댕이엔 아이들의 놀이장인 ‘볼풀 아일랜드’가 있다. 그림 관람을 하는 어른들과 잠시 헤어진 아이들은 이곳에서 맘껏 논다. 아이와 어른을 동시에 배려했다. 이런 기발하고도 친절한 미술관을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을 위한 전시실도 따로 구획해 ‘교과서 속 그림여행’이라는 이름의 상설전을 펼친다. 피카소, 앤디 워홀, 데미안 허스트 등 교과서에 나오는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인기를 끄는 백남준 전시실 2층 5전시실에선 기획전이 펼쳐진다. 젊은 서양화가 허보리의 ‘Love My Hero’전이다.(4월 30일까지) 허보리는 만화가 허영만의 딸이란다. 전시실로 들어서자 탱크 한 대가 눈에 쑥 들어온다. 허보리의 설치 작품이다. 그녀는 은퇴한 가장들의 양복과 넥타이를 잔뜩 수집해 오브제로 삼았다. 천을 잘라 감거나 둘둘 뭉쳐 캐터필러를 비롯한 동체와 포신을 만들었다. 이 괴상한 헝겊 탱크로 어떤 메타포를 전하는가? 쉽다. 삶이라는 전장에서 먹이를 물어오기 위해 탱크처럼 진격하는 생활의 전사(戰士)를 오마주했다. 포신은 맥없이 바닥에 축 늘어졌다. 탱크처럼 밀어붙여도 어찌할 수 없이 돌아오는 생의 피로와 패배를, 무기력과 발기부전을 보여준다. 정육 쇼케이스 안에 총알과 수류탄 따위를 만들어 고깃덩어리처럼 진열한 작품 ‘무장가장’(武裝家長)도 노골적이긴 마찬가지다. 인생의 희로애락 중에서 작가는 ‘애’(哀)를 끄잡아냈다. 삶이 기쁘고 아름답다고? 잉? 그럴 리가! 허보리는 그리 따진다. 혹은 가혹한 삶을 위무한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들을 모은 전시실도 있다. 가장 인기를 끄는 공간이란다. 새와 나무, 꽃을 그린 크레파스화들에서 드러나는 백남준은 어린애다. 세 살짜리 천진이 끼적인 낙서처럼 알량하나 생기롭다. 백남준의 나이 67세에 이 유치한 그림들이 나왔다. 도통하면 애로 돌아간다. 달통하면 쉬워진다. 그에겐 닫힌 게 없어 막힐 것도 없었다. 관조의 눈으로 세사를 넓게 읽었다. 자전거를 탄 모니터들로 이루어진 작품을 보라. 골치 아플 거 없이 쉽고 재미있다. 거기에 무슨 심오한 뜻이 있겠나. 백남준은 남들이 안 하거나 못 하는 걸 찾아 해치우는 재주를 창작의 견인차로 삼았을 뿐이다. 백남준이 괴로워한 유일한 문제는 어쩌면 경제였다. 당신은 왜 TV 모니터로 작품을 일삼는가, 이런 질문에 돌아온 답이 이랬다. “돈이 있어야 예술도 되거든. 집에서 보내주는 돈도 끊겼고, 뭘 해야 돈이 되나 궁리를 하다 하다 TV에 착안한 거라고.” 본동 외에도 가나아트파크엔 다수의 건축물이 있다. 동쪽 끝자락에 있는 아틀리에 두 개는 모텔을 사들여 개조한 건물로 많은 작가들이 입주해 창작활동을 한다. 루브르박물관과 대영박물관 내부 설계를 맡았던 장 미셸 빌모트가 개조 설계를 했다. 도드라지기로는 미술관 중심부에 나란히 선 박스형 건물 세 채. 각기 통째로 파랑과 노랑, 빨강을 입어 매우 강렬하다. 이 미술관은 피카소 작품 1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반가워라, 피카소! 파란색 건물에선 피카소 작품들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피카소의 일상을 담은 사진도 여러 점 내걸려 흥미롭다. 담배를 물고 싱긋 웃고 있으나 뭔가 길들지 않은 포악한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표정의 피카소. 살기등등한 송골매의 눈으로 작업을 하는 피카소. 그는 도발적인 화풍으로 타성에 갇히기를 거부했다. 피카소의 작품은 이제 고전이 됐지만, 치열했던 자유의지는 시대를 관통하는 패션으로 남아 세상의 모든 ‘우물 안 개구리’들을 일깨운다. 노랑 건물엔 섬유작가 토시코 맥아담이 아이들을 위해 만든 그물놀이터 ‘에어 포켓’(Air Pocket)이 있다. 공간을 가득 채운 초대형 뜨개질 작품이다. 이 기이한 구조물엔 구멍이 숭숭 뚫려 아이들이 기어 들어가 놀도록 했다. 거미줄에 매달려 곡예를 하는 거미처럼. 미지의 차원으로 넘어간 듯, 아이들은 신비감으로 도취될 수밖에 없겠다. 미술관의 너른 정원엔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조각 작품이 흔전만전하다. 류인, 문신, 강대철, 최종태, 앙투안 부르델, 조지 시걸, 세자르 발다치니 등의 작품들이 경연을 펼친다. 조각보다 보기에 좋은 풍경은 풀밭에 앉아 소풍의 한때를 지내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정원을 희희낙락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이다. 이 미술관은 풀밭 위의 도시락 식사도, 야유회도, 낮잠 때리기도 허용한다. 분노도 많고 긴장도 많아 남몰래 아픈 그대여, 여기서 쉬어가라! 미술관은 그리 권하고 싶은가 보다. 이렇게 확 열린 미술관, 본 적 있나?
- 2021-04-05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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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아(胎兒)는 천재다!
- 조산사 엄순자(68, 청주 엄조산원) 원장은 40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그간 받아낸 신생아 수가 자그마치 7000여 명에 달한다. 이 바닥에서 그녀를 능가할 고수가 드물다. 세상은 요상하게 돌아가 인명을 경시하는 풍조까지 만연하지만, 출산만큼은 훼손될 수 없는 성역이다. 만약 자비로운 신이 존재한다면 신생아가 출현하는 순간엔 친히 출장을 나와 참견하고 싶어 할 테다. 세상에 태어나는 새 생명은 여하튼 무탈해야 하며, 사랑을 받아야 하며, 축복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고귀한 출산을 조력하는 조산사란 신성한 직업이다. 엄순자 원장이 조산사로 일하기 시작한 건 20대 중반부터다. 아기를 받는 일에 딱히 매력을 느껴 선택한 직업은 아니었다지. 간호대학을 졸업했으니 간호사로 취업하는 게 순서였으나 그녀는 조산사를 택했다. 환자들을 상대하는 간호사보다 산모들을 돕는 조산사 일이 한결 수월할 것 같아 택한 길이었다. 그게 평생의 외길이 될 줄은 몰랐더란다. 또 조산사 일에 그토록 빠르고 깊게 심취하게 될 줄도 몰랐다. 생명의 출산에 간여하며 신비감과 경이로움, 그리고 보람과 성취감으로 자족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일종의 열광적인 몰입을 했던 모양이다. 처음 한동안 그녀는 산부인과 병원에 취직해 조산사 일을 했다. 경험과 실력을 키운 수련기였다. 그러다 28세에 독립해 조산원을 개업했으며 이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조산원은 청주시의 구시가지 대로변에 있다. 번듯한 4층 건물이다. 1991년에 부지를 사들여 지은 집이다. 출산율이 높았던 과거에 누린 조산원의 성업(盛業)을 증명하는 건물이다. 예전엔 조산원이 많았다. 그러나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하나둘 사라져 이제는 눈을 씻고 찾아도 도무지 볼 수 없다. 산부인과 수의 격감과 마찬가지로 조산원의 퇴출이 가속됐던 거다. 대한조산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16개소의 조산원이 남았을 뿐이다. 엄조산원은 충청 지역에 남은 유일한 조산원이다. “산모를 가장 많이 받았던 건 1980년대였다. 한 달에 평균 40여 건, 최대 62건을 받기도 했다. 하루에 7명의 아기를 받아낸 진기록도 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줄어도 너무 줄었다. 월 2, 3건의 일이 있을 뿐이니까. 많아야 5건이더라. 그러나 이 나이에 여전히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게다가 과거와 다르게 여유시간이 충분한 덕분에 산악자전거를 즐길 수 있어 너무 좋다. 예전엔 휴일도 밤낮도 없이 24시간을 대기 상태로 지냈거든.” 분만은 ‘피와의 전쟁’ 조산원 내부를 볼까. 약간의 의료기기들이 보이는 진료실과 둥근 욕조를 설치한 수중분만실, 소파가 놓인 상담실, 그리고 여러 개의 정갈한 방으로 이루어졌다. 진료실만 아니라면 일반 가정집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색이라 편안하고 따사롭다. 그러나 수천 명의 산모들이 이곳에서 격심한 산통을 치르며 출산했을 걸 생각하자니 마치 태풍이 훑고 지난 자리를 바라보는 것처럼 애잔하다. 무참한 진통을 거쳐 마침내 기쁜 순산을 한 산모들의 눈물과 희열이 서린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다. “내과나 외과 의사는 한 사람의 치유를 도모하지만 조산사가 돕는 건 두 생명이다. 산모와 아기, 두 생명을 동시에 조력한다는 점에서 조산사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한결 엄중하다고 느낀다. 귀한 일을 한다는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 베테랑 조산사는 초심자와 어떻게 다른가? “분만은 한마디로 ‘피와의 전쟁’이다. 분만 과정에서 가장 위험한 게 산모의 과도한 출혈이다. 노련한 조산사는 이 출혈을 최소화할 줄 안다. 산모의 상태를 미리 정확하게 판단하고 상황을 예측, 한 템포 빠르게 대처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출혈이 전혀 없는 출산도 가능한가? “출혈은 회음부 열상(裂傷)이나 태반이 떨어진 자리에서 야기된다. 그런데 드물게나마 분만 직후 피 한 방울 안 흘리는 산모들이 있다. 이걸 우리는 ‘자연출산의 꽃’이라 부른다. 이런 출산을 볼 때면 나는 대단한 기쁨을 느낀다. 조산사의 기량과 산모의 훌륭한 의지가 합세해 만들어내는 작품이기 때문이지.” 출혈이 심해 위급한 경우엔 어떤 조처를 하지? “완전한 자연출산을 추구하는 조산원은 산부인과 병원과 달라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지 않다. 의료 시스템에 의지하는 분만은 자연출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출혈이 너무 심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수축제를 주사해 응급조치를 하거나 연계된 산부인과 병원으로 이송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돌발 상황은 없었나? “유능한 조산사는 산모의 배만 보고도 태아의 체중을 정확히 알아내거나 출산일을 오차 없이 예측한다. 이처럼 숙달된 기능을 발휘하기에 돌연한 사고가 발생할 수 없는 거다. 게다가 조산원에 오기 전에 산모들은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검사 등으로 충분한 사전 점검을 한다. 따라서 애초에 문제 발생의 소지가 없다. 매우 드문 경우지만, 산모나 태아의 상태가 아주 좋지 않을 때엔 아예 받지 않는다.” 신조차 실수를 한다지? 가령 당신의 실수로 발생한 사고는 없었는지, 그걸 묻는 거다. “그런 사고가 났다면 지금까지 어떻게 문을 열고 있겠나?(웃음) 전반적인 상태가 좋은 산모들이 조산원을 찾아오고, 상태가 위험해 제왕절개 등이 필요한 산모들은 산부인과로 간다. 조산원에선 사고 가능성 자체가 거의 없다는 얘기다.” 일체의 난폭한 분만을 배제해 조산원은 산부인과와 달리 전적으로 자연출산을 한다. 그게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나그네인 인간의 생태에 알맞아서다. 자연출산이란 가정에서 분만을 했던 그 옛날의 출산 관습을 본으로 삼는 방식이다. 옛적의 마을엔 아기를 잘 받는 할머니들이 하나쯤은 흔히 있었다. 고대부터 존재한 ‘산파’가 쪼르르 달려와 출산을 돕기도 했다. 그러다 산부인과 병원의 출현과 활갯짓으로 풍속이 싹 바뀌었다. 대체로 1970년대부터 대부분의 산모들이 산부인과 의사의 기술과 의료 시스템에 출산을 맡기기 시작했다. 엄순자 원장은 이와 같은 풍습의 정착에 애석함을 느낀다. 자연출산으로 회귀하는 게 섭리에 맞다고 본다. “여러 나라의 조산사들이 모이는 국제학술세미나에 참석해보면, 선진국에선 병원에서의 출산보다 자연출산을 선호하고 지원하는 경향이 뚜렷한 걸 알겠더군. 그러나 우리나라는 다르다. 이미 오래전부터 임산부의 99%가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았으며, 지금도 99%가 그렇게 한다.” 산부인과 출산을 선호하는 이유는? “갖가지 의료 장비와 약물이 완비돼 더 안전하다고들 본다. 촉진제 주사나 무통 주사로, 또는 마취를 통해 한결 편한 분만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거다. ‘하다 하다 안 되면 까짓 것 제왕절개로 낳지 뭐! 괜히 조산원에서 생고생할 게 뭐야?’ 다들 그런 생각을 한다. 조산원보다 저렴한 비용도 고려하는 것 같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는 판단은 합리적인 것 같다. 아닌가? “안전하기는 조산원도 사실상 마찬가지다. 조산원과 산부인과의 가장 다른 점은 조산원은 응급상황 외에는 약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지. 무통 주사나 촉진제가 산모와 아기의 건강에 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조산원에선 흡입분만도 하지 않는다. 일체의 난폭한 분만을 배제한다. 이러한 특장이 자연출산의 미덕이며, 산모는 물론 아기의 인권과 건강한 심신을 보장하는 방법이다. 자연출산의 이러한 지향에 대한 공부와 이해, 철학이 있는 산모들이 조산원을 찾아오는 것이고.” 산모들이 심적 부담을 크게 느끼는 ‘굴욕 3종 세트’라는 게 있더라. “면도를 통한 사전 제모, 관장, 내진, 이 세 가지에 산모들은 심한 수치심과 두려움을 느낀다. 조산원에선 이것들을 하지 않는다. 분만 직전 미리 회음부를 절개해두는 행위도 하지 않는다.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가장 자연스러운 출산을 구사하는 거다.” 아기가 나오자마자 번호표를 매단 바구니에 담아 신생아실로 옮기는 산부인과의 방식은 이해하기 어렵다. “조산원에선 산모와 신생아를 떼어놓지 않는다. 캥거루 케어라고, 분만 직후 아기를 엄마의 배 위에 밀착시켜 스스로 젖꼭지를 찾게 하고, 긴 스킨십을 하게 해준다. 이 과정에는 아빠도 적극적으로 참여시킨다. 이와 같은 가족적 유대 맺기는 출산의 전 과정을 통해 지속되고 강화된다. 산모와 아빠가 함께 물에 들어가 출산하는 수중분만을 통해 이 유대감은 극에 달한다. 수중분만을 하는 케이스는 많지 않지만.” 요즘은 산부인과에서도 ‘자연주의 출산’을 표방한다. “일부 병원에서 그리하지만 여차하면 용이한 분만을 위해 관행적인 의료 시스템을 바로 동원하는 걸로 알고 있다. 조산원의 자연출산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진통이 격하게 오더라도 호흡법으로 고통을 줄여주며, 끊임없이 기다린다. 병원에서처럼 서두르지 않는다는 거!” 그녀는 아기 낳기를 충분히 뜸들이고서야 제대로 밥이 익는 일에다 빗댄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기. 이게 건강한 출산의 비결이란다. “산모의 안전과 건강은 물론, 이상적인 상황에서 아기가 나올 수 있도록 차분히 기다려줄 줄 알아야 건강한 출산이 가능하다. 이 기다림의 과정에서 실로 신비한 경험도 했다. 가령 역아(逆兒, 거꾸로 자리 잡은 태아)의 경우 산부인과에선 제왕절개 수술을 하게 마련이지만, 나는 역아가 스스로 바른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려준다. 한번은 무려 6일간 기다리자 드디어 태아가 자세를 바로잡더라. 참으로 경이로웠다.” 산모도 조산사도 꾹꾹 눌러 견디는 기다림이 있고서야 신생의 환한 아침이 온다. 아프고 서러워도 기다릴 줄 알아야 사랑이라 했던가. ‘전쟁’에 가깝다는 출산의 압박감을 기다림으로 완화해 이윽고 평화로운 지평에 도달하는 이치. 이 기다림의 묘미야말로 삶의 전반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이거 아나? 뱃속의 아기는 천재라는 거!” 정말로? “산부인과에선 산모의 골반이 좁아 아기의 머리가 빠져나오지 못할 경우엔 별수 없이 제왕절개 수술을 한다. 그러나 내 경험에 따르면,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아기가 결국은 자력으로 빠져나오더라. 좁은 골반의 폭에 맞춰 아기 스스로 제 머리통을 길쭉하게 늘려 무사히 빠져나오는 거다. 그러곤 바로 머리 모양이 원상회복된다. 이게 천재가 아니고선 가능치 않은 일이라는 얘기다.(웃음)” 어떤 상황에서도 순산을 거두는 당신도 보통이 아니다.(웃음) “때로 과한 칭찬을 듣곤 했다. ‘원장님에게서 후광이 비쳤어요. 신의 손길을 느꼈어요.’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가슴이 벅차게 뛰더라. 그러나 난관을 견뎌내고 무탈한 출산을 하는 산모보다 내가 더 낫다고 할 수 없다. 아기 역시 위대하다.” 그녀는 자기의 조력으로 2대에 걸쳐 출산을 한 이들을 잊지 못한다. 차후 3대로 이어지는 출산을 돕고 싶다지. 한 20년은 기다려야 이룰 수 있는 꿈이다. 야생처럼 당당한 자연출산의 조력에 도가 튼 사람의 꿈이 이렇게 야무지다.
- 2021-04-05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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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는 습관을 바꾸는 일이구나
- 마지막 소를 실어 보낸 그날 이후 석 달이 지났다. ‘젖소는 내 운명’ 그 40년의 세월에 종지부를 찍은 게 지난 초봄이었다. 수많은 톱니가 맞물려야 돌아가는 목장에서 문제가 생긴 올 2월 초 갑자기 남편이 일을 그만두자고 했다. 생명을 거두는 녹록지 않은 ‘먹고사니즘’의 긴장을 더는 겪고 싶지 않은 데다 10년 전에 다친 다리 상태도 좋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일생을 바쳐온 일이니 느긋하게 그만두자고 맘먹고 있었는데 한순간 결정을 내리는 일이 너무 어려워 몇 날 며칠을 불면으로 새야 했다. 축사와 하고 많은 장비, 꾸준히 이뤄졌던 투자를 버리는 것은 물론 소가 맺어주었던 촘촘한 사회관계를 허무는 일이며 소 없는 인생, 빈 우사를 견디는 허무감은 깊이 생각해볼 겨를도 없었다. 그만둔다고 석삼년은 결심해야 겨우 해치울 일이 그렇게 끝났다. 촌 나이로는 이른 나이에 소를 내려놓는 일은 당사자인 우리나 같은 일을 하는 주변 사람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할 일이었다. 날씨 때문에 하늘 바라보며 조바심칠 일도, 우유가 남아돈대도 가슴앓이 할 일도 없고 목장 관리 때문에 속 썩을 일도 없이 홀가분한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 줄기차게 해대던 목장 식구들 밥에서 놓여난 것은 해방 중의 해방이었다. 목장을 정리하며 들어온 소위 노후자금을 이리저리 나누어 통장에 넣었지만 이자가 바닥이니 원금을 조금씩 잘라먹을 게 눈에 선했다. 산 입에 거미줄 치냐며 만만했던 맘 위로 남모를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돌고 돌아서 돈이라는데 일방통행이 돼버린 돈이 너무 낯설었고 걱정스러웠다. 지난 40년 동안 늘 한 달에 두 번씩 우유 값 정산한 목돈이 들어와서 나가는 사이로 스쳐가던 푼돈들의 얼굴이 또렷해졌다. 자연스레 윤활유처럼 생활을 반들거리게 하던 씀씀이를 주저하며 쩨쩨해(?)지는 중이다. 인생에 계획이란 있기나 한 걸까. 서울 사람이 생면부지 땅에 소 키우러 들어와 40년을 살았는데 소도 안 키우면 이 땅에서 떠나야 하는 게 다음 순서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긴 은퇴를 책임져줄 자금의 어느 부분이 이 땅에 있으니 그건 우리 생애 안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임이 분명했다. 한 곳에 뿌리박고 산 널찍한 시골집 살림에 눈길이 멈췄다. 어떤 장래에 우리가 이사라는 걸 하게 된다면 한숨에 정리해야 할 것들이다. 그 쓸쓸함이 어떨지 미리 겁이 났다. 손때 묻으며 나이 들어간 물건들은 대개는 분리수거라는 이름으로 쓰레기통에 처박힐 운명이니 미리 버리고 비우자며 책부터 손을 댔다. 책 욕심이 유난히 많은 내게 서재 가득 들어찬 책은 한순간 무거운 짐으로 변할 터였다. 마당의 묵은 갈잎을 태우는 속에 먼지가 풀풀 나고 냄새가 나는 책을 한 권씩 던졌다. 차곡차곡한 물건들을 덜어내며 책은 최소한으로 사되 남을 것, 즉 물건은 되도록 사지 않으리라고 새삼 맘을 먹었다. 버리고 비워야 할 것은 물질뿐이 아니었다. 평생을 임무와 도리에 매여 안달한 몸에게 시간을 오롯이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40년 남짓 목장 관리인들 밥을 해준 것도 모자라 유난했던 도시 손님치레들로 삶은 더욱 번잡했다. 며느리는 엄마, 아내, 목장 집 아낙, 심지어는 이름자보다도 앞서 내 노동을 규정하는 명사였다. 아버님은 시골에 사는 자식들이 자랑스럽다 하셨고, 집안 대소사를 한 손에 거머쥐고 막힘없는 시어머니는 따로 살았어도 언제나 고달프고 힘에 부쳤다. 자랑의 얼굴은 연이은 손님치레로 드러났다. 내 생각은 아랑곳없이 ‘어느 날 어느 시 몇 명’ 이런 통보가 날아오곤 했다. 상다리가 휠 정도라야 흡족해하는 분들이 말씀은 언제나 ‘김치에 된장이면’이었다. 승합차도 오고 승용차도 오고 버스가 올 때도 있었다. 발바닥에 불이 날 지경이었으나 이분들을 거스르지 않아야 겉으로라도 평화가 왔다. 나의 사람 됨됨이는 어른들의 만족에 달려 있었다. 누구를 위해 일면식도 없는 서울 사람들의 밥을 차리며 나는 흔들려야 하는가. 무의미하고 동의할 수 없는 노동에 대한, 내색도 못 하는 반감이 꼿꼿하니 여기저기가 자꾸 아팠다. 며느리 도리에 결박당해 젊음 곳곳에 깊은 상처를 남기며 마흔 후반이 지났다. 이런 와중에 잡은 공부라는 지푸라기로 오십 넘어 박사가 되었으니 평생을 모자란 시간에 애걸하고 매달린 셈이다. 영화 한 편을 봐도 평이 좋은 안전한 것을 봐야 시간 낭비가 아니라는 안심을 했다. 그렇게 육십 평생 관계가 얽어맨 도리에 치인 삶, 목적지향형 삶에 복무하느라 닦달했던 시간과의 화해가 필요했다. 모든 노동이 의미로 치환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조급함을 내던지는 중이다. 내 식구만의 밥상을 차리니 한평생 바다를 걸레질하듯 맥 빠지고 지치던 부엌일이 할 만해졌다. 요즘 같은 여름날 텃밭의 펄펄한 채소들을 밥상에 올리니 장에 갈 일이 거의 없다. 냉장고를 뒤적여 요모조모 반찬을 만들며 진정한 부엌의 회복을 꿈꾼다. 내 인생에서 추구했던 의미는 이미 총량을 넘어선 느낌이다. 어느덧 예순셋, 오늘이 제일 젊은 날이라는 자각이 또렷해지니 더 이상 나를 혼내며 괴롭히지 않기로 한다. 미리 앞질러 돈 걱정하지 말 것. 짜장면을 먹으러 가도 귀걸이를 달고 나서는 예쁘고 쾌활한 할머니가 되자. 박사가 된 후 나가는 학교 강의가 아직은 중요한 일이지만 나머지 시간은 무용한 즐거움으로 채우고 싶다. 어찌 의미를 좇는 일만이 삶이랴. 더 이상 효율이라는 이름을 인생에 들이대지 말 것. 심상히 하늘을 바라보는 일도, 노을 녘의 산책도,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도 다 눈부신 인생이려니. ‘은퇴는 무릇 습관을 바꾸는 일이구나.’ 번개처럼 스친 문장 하나로 돈 걱정에 사로잡혔던 맘속이 비로소 환해졌다. 치열하고 빛나게, 남다르게 살고 싶었던 인생의 등성이를 넘어서니 102호도 103호도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란 말을 알겠다. 명주 같은 삶을 살고자 안간힘을 썼던 긴장감에서 벗어나 무명 같은 헐렁함으로 살아보려 걸음마를 뗀다.
- 2021-04-0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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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뉴스] 따스한 햇살을 즐기며 펴보는 신간!
- 싱크 어게인 (애덤 그랜트 저·한국경제신문) 베스트셀러 ‘오리지널스’를 쓴 애덤 그랜트의 신작. 확실한 것도 다시 생각하고, 배운 것도 고의적으로 잊어야 한다는 사고법을 제시하며 급변하는 세계에 필요한 인생 철학을 소개한다.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저·아날로그) 고대 로마의 문인이자 철학자, 정치가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 원문을 새롭게 구성한 책이다. 고전의 지혜로 노년기를 빛나게 만드는 마음가짐과 방법을 전한다. 소금길 (레이너 윈 저·쌤앤파커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중년의 부부가 영국에서 제일 긴 산행로로 배낭여행을 떠나며 벌어지는 일을 담는다. 1000km가 넘는 길을 걷는 동안 자연에 얻은 위로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모두 웃는 장례식 (홍민정 저·별숲) 암에 걸린 할머니가 ‘생전 장례식’을 치르겠다고 선언하며 일어나는 일을 그린 장편 동화다. 잔치 같은 장례식으로 할머니와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나가는 가족들의 모습이 감동을 전한다. 새의 언어 (데이비드 앨런 시블리·윌북) 조류관찰자인 저자가 새에 관련한 크고 작은 궁금증을 직접 그린 200여 종의 일러스트와 함께 흥미롭게 풀어낸다. 길 위의 새들과 함께 살아가는 ‘공존 가이드’도 부록으로 수록했다. 초록빛 식물 자수를 소개합니다 (김여울 외 공저·동양북스) 식물을 수놓을 때 예쁜 스티치만을 한데 모았다. 자수 초보를 위해 도안을 단순화하면서도 13개의 실만으로 풍부한 색감을 표현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상세한 과정 사진도 함께 담았다.
- 2021-04-02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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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카의 기적’ 윤여정이 출연한 넷플릭스 영화
- 그야말로 ‘브라보’한 소식이다. 액티브 시니어를 대표하는 배우 윤여정이 최근 영화 ‘미나리’로 제93회 미국 아카데미(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한국 배우로는 사상 최초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녀가 걸어온 연기 인생과 필모그래피도 재조명되고 있다. 그녀는 여배우들이 나이 들면 반강제로 얻게 되는 ‘국민 엄마’ 타이틀을 떼고, 55년간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수식이 필요 없는 배우로 거듭났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아카데미라는 신대륙으로 새 ‘여정’을 떠나게 된 윤여정을 응원하며, 그녀의 출연작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돈의 맛 (The Taste Of Money, 2012) 1970년대, 고(故)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화녀’와 ‘충녀’로 연예계에 한바탕 센세이션을 일으킨 윤여정은 ‘한국의 팜므파탈’이라는 별명으로 관객들의 머릿속에 각인된다. 그로부터 40여 년 뒤, 그녀는 수십 년 연기 내공을 쌓아 다시 한번 팜므파탈로 변신한다. 영화 ‘돈의 맛’을 통해서다. ‘돈의 맛’은 대한민국을 돈으로 지배하는 재벌가 백씨 가문의 권력을 향한 집착과 욕망을 제목처럼 적나라하게 그린 작품이다. 권력을 손에 쥔 윤회장(김윤식)과 안주인 금옥(윤여정), 비서 영작(김강우), 장녀 나미(김효진)까지 네 사람의 얽히고설킨 관계가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설정만으로 이미 충분히 파격적인 내용이지만, 영화는 윤여정의 무르익은 연기로 한층 더 농밀해진다. 붉은색 립스틱과 무언가를 관통하는 눈빛, 시니컬한 중저음 목소리. 존재만으로 압도하는 금옥을 보고 있으면, ‘윤스테이’ ‘윤식당’ 등 TV에서 접한 윤여정의 정겨운 사장님 이미지가 자동 삭제된다. 31살 연하 배우 김강우와의 수위 높은 베드신도 마다하지 않으며, 원조 팜므파탈의 위력을 입증한다. 2. 고령화 가족 (Boomerang Family, 2013) 사연 없는 집안은 없다고 하지만, 이 집은 많아도 너무 많다. 전과 5범 백수 한모(윤제문), 흥행에 참패한 영화감독 인모(박해일), 이혼이 취미인 미연(공효진)까지 이들은 모두 한솥밥을 먹는 식구다. 영화 ‘고령화 가족’은 나잇값 못 하는 자식들이 어느 날 평화롭던 엄마(윤여정)의 집에 모여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일반적인 가족과는 달리 콩가루 집안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서로를 향한 비난은 기본, 치고박고 싸우는 것은 일상이다. 하지만 그렇게 으르렁대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을 맞대고 함께 밥을 먹는다. 영화는 사고뭉치 세 남매를 사랑으로 품는 엄마의 모습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상기시키지만, 동시에 그간 미디어에서 다뤄온 ‘희생하는 엄마’ 역을 답습한다는 점에서 진부한 면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그간 윤여정이 도회적인 이미지로 스크린에 비춰진 것을 떠올리면, ‘고령화 가족’에서의 수더분하고 모성애 가득한 모습은 그 자체로 색다르게 다가온다. 윤여정이라서, 한층 더 신선해지는 영화다. 3. 죽여주는 여자 (The Bacchus Lady, 2016) ‘죽인다’는 말은 중의적인 뜻이 있다. 무언가를 향해 감탄하는 속된 표현으로 쓰이기도 하고, 문자 그대로 살인 행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영화 ‘죽여주는 여자’의 주인공 소영(윤여정)은 전자일까, 후자일까. 놀랍게도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한다. ‘죽여주는 여자’는 종로 일대에서 나이 든 이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소영이 뇌졸중을 앓고 있는 송노인으로부터 죽여 달라는 부탁을 받으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성적으로 죽이게 잘한다고 소문 난 소영이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영화는 단돈 4만원을 위해 ‘박카스 할머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소영의 일생을 돌아보며 노년기 빈곤, 여성에 대한 성 착취 구조 등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담론을 깊이 있게 던진다. 또 소영의 주변 인물을 통해 트랜스젠더, 장애인, 코피노 등 현실 속에서 소외된 이들에 주목하고, 그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윤여정은 이 작품으로 시니어 배우로서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의 한계를 벗어던지고,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혔다는 평을 받는다. 그녀의 ‘죽여주는’ 연기가 감탄을 자아낸다.
- 2021-03-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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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영주의 화양연화, 모델은 짜릿한 희열
- 쟁쟁한 수천 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오디션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시니어 모델이 있다. 바로 시니어 모델 ‘윤영주’다. 우승한 것도 대단한데, 그녀의 나이는 올해 73세. 최연장자임에도 다른 시니어 모델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고 당당하게 우승을 거머쥐었다. 더욱이 놀라운 건 종갓집 며느리라는 사실. 종갓집과 모델, 한식과 양식만큼이나 거리가 있어 보이는 조합인데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직접 만나서 그간의 여정을 들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녀의 매력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MBN 시니어 모델 오디션 예능 ‘오래 살고 볼일’은 방영 후 화제가 됐다. 오디션에 등장한 시니어 모델들이 인터넷에서 주목을 받았다. 탄탄한 몸매, 동안을 자랑하는 외모, 젊은이에 뒤지지 않는 패션 감각, 모두를 놀라게 할 만큼 대단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시니어 멋쟁이들이 총집합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쟁쟁한 선남선녀들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한 시니어 모델 윤영주는 어떤 사람일까? 일단 그녀가 이 오디션에 참가한 계기를 물어봤다. “사실 접수를 안 하려고 했어요. 이 프로그램 전에 시니어 모델로 활동하면서 회의감이 많이 생겼죠. 생각했던 것과 달랐어요. 불러주는 곳도 많지 않았고, 어느 때는 불합리한 대우를 받기도 했어요. 모델 하면서 자존심이 많이 상하기도 해서 그만두려고 했어요. 마침 그때 이 오디션 공고가 올라왔는데, 접수하지 않으니까 주위에서 많이 권했어요. 다들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해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까짓것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접수했어요. 그때 안 했으면 정말 후회했을 것 같아요.(웃음)” 상금은 가난한 예술가를 위해 그녀는 오디션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아서 심사위원으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동안 외모와 남다른 패션 감각은 확실히 돋보였다. 특히 긴장하는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표정이 한결 부드럽고 여유 있어 보였다. 실제 현장에서는 어땠을까? “연장자라서 그런지 편했어요. 다들 열 살 이상 차이 나다 보니 동생들 같았어요. 대기 시간이 길어 얘기할 시간도 많았고요. 그래서 경쟁을 한 것이 아니라 동생들과 수다 떨면서 재밌게 노는 기분으로 임했죠. 예전에 방송국에서 리포터 활동을 해서 카메라 앞에서의 촬영이 익숙했어요. 그 경험 덕분에 확실히 조금 여유가 있었던 것 같아요.” 우여곡절도 있었다. 늘 상위권을 유지했지만, 와이어 액션을 소화하는 화보 미션에서 탈락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위기 없는 결말이 없는 것처럼 마지막 런웨이 미션을 멋지게 소화하면서 짜릿한 역전승을 이뤄냈다. “우승자를 호명할 때 순간 머리가 하얘졌는데, 기분은 정말 좋았어요. 한편으로는 박윤섭 씨한테 뭔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눈을 못 마주쳤어요. 속으로 그분이 1등이라고 늘 생각했거든요. 전에도 현장에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모델로서 자질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분이에요. 그러고 보면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나이가 많지만 어떻게든 쫓아가려고 했던 걸 많은 분이 좋게 봐주신 것 같기도 하고요.” 어렵게 차지한 우승으로 받은 상금은 어디에 쓸 거냐고 묻자 “상금은 나를 위해서 쓰지 않고 다른 일에 쓰고 싶다”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일단 오디션 동안 제일 고생한 며느리랑 상금을 나누고, 나머지 내 몫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열심히 곡을 만들고 있는 음악 제작자 친구들을 지원하는 일에 쓰고 싶어요. 아들이 음악을 해서 그런지, 그 친구들이 자꾸 마음에 걸려요. 가난한 예술가의 아픔을 곁에서 오랫동안 지켜봐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장점은 자연스러움 화려한 시니어 모델 삶의 이면에는 종갓집 며느리의 삶도 있었다. 그녀는 시니어 모델이 되기 전 종갓집 며느리로서 성실히 살았다. 일 년에 명절을 포함한 13번의 제사를 군말 없이 준비해야만 했다. 다른 요리는 못 해도 제사 음식은 눈 감고도 할 정도란다. 특히 생선 손질은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그렇다면 종갓집 며느리가 어떻게 모델로 변신할 수 있었을까? “제사 규모가 줄어들면서 조금 여유가 생겼어요. 특히 50대에 접어들면서 남들이 은퇴를 준비하듯이 노후를 생각해봤어요. 그러다 문득 미학 공부가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한 15년 동안 미학 공부를 하고 박사 논문까지 썼어요. 음악이나 미술, 철학과 관련된 칼럼도 틈틈이 썼고요. 그런데 어느 날 눈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시력 보호 차원에서 책을 보지 말라는 거예요. 청천벽력이었죠. 좋아하던 책을 못 보니 참 무료했어요. 무엇보다 할머니가 아니라 여자 ‘윤영주’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시니어 모델을 알게 됐어요. 마침 며느리가 모델 출신이었고요.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며느리에게 모델 하고 싶다고 넌지시 말했어요. 그때 시작한 일이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웃음)” 하지만 일회성으로 끝날 일이었다면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를 이 자리까지 이끌게 한 모델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미학이나 철학이 깊은 희열을 맛보게 한다면 모델은 짜릿한 희열이에요. 쇼를 한 번 하는 데 정말 많은 과정을 거쳐요. 메이크업하고 머리 만지는 데 최소한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씩 걸리고, 리허설도 몇 번씩 하고, 전날 와서 옷도 미리 입어보죠. 근데 쇼는 15~30초면 딱 끝나요. 그 순간만큼은 무대가 다 내 것이에요. 그 찰나의 희열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좋아요.” 무대에서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는 모델로서 각자 내세울 수 있는 매력이나 장점도 필요하다. 그녀는 어떠한 장점이 있고, 좋은 모델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궁금했다. “제 입으로 말하기 쑥스럽지만, 주위에서 말하기를 자연스러움이 제 장점이라고 해요. 설명하기 어려운데 남들이 보기에 인위적이지 않은 나만의 멋이 있다고 해요. 예전에 방송국 리포터 할 때도 PD들이 연신 애 엄마 맞냐고 물어봤어요. 쇼나 무대 같은 생방송에 최적화된 체질인 것 같아요. 덧붙여서 좋은 모델이 되기 위해 어디서나 영감을 받으려고 노력해요. 미술, 영화, 음악, 전시 등 가리지 않고 좋은 걸 자주 보고 듣는 것이 모델로서 표현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가족은 바탕 티 없이 밝아 보이는 그녀에게도 아픈 사연이 있었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것이다. 그녀가 기억하는 남편은 선한 사람이었다. “남편은 친오빠랑 친한 친구였어요. 워낙 가족 같은 사이라서 남편이 좋다고 했을 때 친오빠가 사귀자고 하는 것처럼 너무 어색하고 이상해서 피해 다녔어요. 근데 못된 우리 오빠와는 다르게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결혼해서도 날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았던 참 좋은 사람이에요. 돌이켜보면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참 고마운 사람이에요. 만약 지금 같이 있었다면 제일 좋아했을 거예요.” 그녀의 남편은 꽉 막힌 구석도 있는 남자였지만, 아내를 위해서 때로는 화려하고 예쁜 옷을 사줄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늘 예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아내밖에 모르는 바보로 주위 사람들에게 정평이 나 있었다고. 요즘 말로 하면 사랑꾼이라고 할까? 그의 빈자리가 그립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소중하고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메이크업부터 의상, 촬영 스케줄 등을 관리하는 매니저이자 모델 스승인 며느리부터, 화양연화 미션 때 감정을 잡을 수 있도록 슬픈 노래를 정리해서 보내준 아들까지. 화려한 그녀가 더 돋보일 수 있도록 안 보이는 곳에서 묵묵히 지원해주는 가족이 있었다. 그녀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가족은 바탕이죠. 누구나 그렇지만 내가 서 있을 수 있는 바탕과 같아요. 바탕이 없으면 나도 없어요. 특히 며느리와는 절친이에요. 저런 며느리가 없어요. 좋은 며느리를 얻은 건 내게 큰 행운이에요. 며느리와는 별의별 얘기를 다 해요. 가끔 아들 흉도 같이 봐요.(웃음)” 책임감 있는 모델 그녀를 지탱하고 있는 날개 중 하나가 가족이라면, 다른 날개는 바로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다. 그녀는 늘 어제의 나와 다르게 살기를 원했다. “돌이켜보면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건 나로 살지 않기를 원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항상 새로운 나로 살려고 부단히 노력했어요. 책을 읽고, 아름다운 미술 작품을 보고, 좋은 클래식 음악을 듣고자 했던 마음은 지적인 욕심도 있었지만, 하루하루가 다른 새로운 나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모델도 마찬가지고요. 매번 무대에 설 때마다 감회가 달라요. 항상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노력해요.” 인상적이었던 댓글을 들려주며 앞으로 시니어 모델로서의 포부나 계획을 밝혔다. “내가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한 댓글이 하나 있어요. ‘나이 든다는 게 두렵지 않다는 걸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댓글을 읽으면서 책임감을 많이 느꼈어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70대도 이렇게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고 싶어요.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통해서 많은 분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 싶어요.” 방송국 리포터부터 시작해 늦은 나이에 공부를 다시 하고, 정말 남들이 늦었다고 생각할 때 외려 과감하게 모델에 도전해서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첫사랑과의 추억을 꼽을 때는 영락없는 소녀였고, 할머니가 아니라 한 여성으로서 인정받는 모델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말할 때는 당당한 여인이었다. 첫사랑의 어머니가 딸처럼 귀하게 여기고, 며느리가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대하고, 남편이 그녀를 아껴주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당사자가 아니므로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인터뷰를 하면서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화려함에 숨겨진 내면의 미를 잠시 엿볼 수 있었다. 자신의 몫을 기꺼이 남에게 양보할 줄 알고, 욕심 부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묵묵히 정진했다. 일일신 우일신(日日新 又日新)의 자세를 몸소 실천하고, 모델로서 가진 아름다움과 더불어 인간적인 책임감을 느끼며 이 일에 임하고 있었다. 흔히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를 화양연화(花樣年華)라고 일컫는다. 그녀는 첫사랑과의 추억을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로 꼽았지만, 사실 그녀의 진정한 화양연화는 지금부터일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아닌 여자 윤영주로서 앞으로도 아름답고 당당하게 꽃길을 걷기를 바라며 마친다.
- 2021-03-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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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척 바닷가 마을 다이어리
- 예고도 없이 찾아든 바이러스 때문에 온 세상이 멈춘 듯 움츠러들었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감성을 찾아 떠나고 싶을 때다. 여전히 여행은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갑갑한 일상에 갇혀 있는 자신을 가끔씩 끄집어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물결이 비단처럼 고운 바닷가 삼척을 대표하는 항구 정라진(汀羅津)은 말 그대로 비단처럼 잔잔하다. 그 수면 위로 비치는 바닷가 마을이 고요하다. 한때는 동해안 최대 항구이기도 했던 삼척항이다. 지금은 그 시절의 모습은 사라지고 소박한 어촌 마을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강원도 지도에서 가장 아랫녘에 위치한 삼척, 한때는 동해를 대표하는 무역항이었다. 최고의 호황기였던 1970~80년대 수많은 어선이 항구로 몰려들었고, 노가리와 대구, 정어리, 오징어가 풍년이었다. 그 무렵의 삼척항은 몰려든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 우리네 어머니와 할머니는 밤새 잡아온 오징어 손질에 바빴고, 햇볕 좋은 나릿골 마을은 온통 오징어 건조장이었다. 그뿐 아니라 태백산지의 지하자원 덕에 시멘트 공장과 석탄을 원료로 하는 화력발전소까지 들어서서 돈이 넘쳐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도 있었다. 시멘트 공장은 아직 남아 있지만 지금은 옛 영화가 사라진 소박한 풍경이다. 그럼에도 향수 어린 친근한 이름 정라항(汀羅港)은 여전히 어민들에게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정라항은 삼척시에서 2km 정도 거리에 있다. 마을과 가까이 맞닿아 있어 바다를 바라보면서 비릿한 갯내음과 더불어 곰치국이나 싱싱한 활어회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막상 그 거리에 들어서니 조용하다. 가끔씩 통통배의 시동 거는 소리가 들리고, 어선의 깃발이 바람에 살랑대는 모습이 보일 뿐이다. 활기찬 항구의 소란함이 다시 찾아오길 고대한다. 조용한 항구를 뒤로하고 입구의 말랑이슈퍼를 지나 나릿골 마을에 들어서면 시간이 멈춘 듯 한적하다. 그 길로 좁다랗게 비탈진 골목이 미로처럼 쭉 이어진다. 경사가 어찌나 가파른지 눈비 내릴 때는 어떻게 다닐까 걱정될 정도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는 나릿골은 예전엔 층층이 골은 낮지만 물이 풍부해서 습기를 받은 나리꽃이 지천으로 피어났다고 한다. 지금은 나릿골에서 볼 수 없는 꽃이지만,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나리꽃처럼 정감 어린 감성 마을로 변모하는 중이다. 지나가는 담벼락에 듬성듬성 벽화가 그려져 있어 심심치 않다. 몇 년 전부터 정라항 주변 나릿골을 ‘오감이 피어나고 웃음이 번지며 걷고 싶은’ 감성 마을로 조성해 언덕 마을에 표정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동해안 여행자들의 한 달 살기 등을 지원하기 위해 빈집 6채를 사들여 게스트 하우스로 리모델링했다고 한다. 그 골목길을 따라 가파른 언덕을 숨차게 오르면 그 끝에 무엇이 있을까. 나릿골의 작은 집 4채 나릿골의 작은 집 4채를 삼척시로부터 지원받아 교육관 1동, 전시관 및 체험관 2동, 외부 작가가 거주할 작가의 집 1동으로 리모델링한 미술관이 언덕 끝에 기다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유휴시설 활용사업 일환으로 탄생한 문화 공간이다. 나릿골의 좁다란 골목길 걷기도 여행의 색다른 재미지만, 미술관을 편히 가려면 산등성이까지 자동차로 갈 수도 있다. 차량 통행이 어려울 만큼 비좁았던 길이 도시재생사업으로 조금 넓어졌다. 걷기가 용이하지 않을 경우엔 택시나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으니 누구나 가파른 그 언덕 끝까지 오를 수 있다. 골목을 돌고 돌아 오르는 길에는 잘 가꾸어진 작은 카페와 아기자기한 시설들이 소소하게 자리한다. 하지만 정상에 올라오면 작은 공원이 있을 뿐 주변 공터는 한산하고 깔끔하다. 요즘 많이 알려진 다른 벽화 마을처럼 예쁘거나 특이한 카페, 또는 포토존 같은 시설은 보이지 않는다. 원하건대 더 이상 부대시설을 늘리지 말고 지금의 단순함을 유지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전망대에 서서 바라보는 바다, 가슴이 뻥 뚫린다. 하늘과 바다와 바람 속에서 머릿속이 청량해진다. 저 멀리로 정라항의 잔잔한 물결이 비단처럼 살랑거린다. 소박한 도시 삼척과 시멘트 공장을 감싸 안은 봉황산의 능선이 부드럽다. 마을 전체가 미술관처럼 보인다. 산언덕 드문드문 알록달록한 색감의 지붕들 사이로 그들의 애잔한 삶이 엿보이고, 텃밭에는 보송보송 파꽃이 피어났다. 미술관은 조붓한 골목길을 따라 몇 걸음 더 내려가야 한다. 길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서 뉘 집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바닷가 산동네, 그 올망졸망함이 문득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군데군데 빈집들이 보인다. 마실을 간 것일까. 나릿골을 두고 먼 곳으로 떠났을까. 바닷가 마을 사람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위한 ‘정라항 그리go 작은 미술관’. 나릿골의 감성과 바닷가 마을이 만들어낸 멋진 소통의 공간. 1전시관과 2전시관은 하얀 담장을 두고 몇 걸음 떨어져 있으며, 앞면이 모두 투명한 창으로 되어 있어 바다와 마주한다. 그리고 전시 작가가 머물 수 있는 작가의 집이 전시장 아래쪽에 위치한다. 신선한 물빛 감성을 가득 채우는 시간이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더 멋질 것 같은 곳. 바이러스를 피해 방구석만 지키기에는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겨울이었다. 정라진 항구 마을의 정취를 느끼며 향수 어린 그 시절의 그리움에 잠깐 젖어보는 것도 괜찮다. 해풍에 오징어가 말라가는 자연 속의 건강한 풍경으로 수분을 채우고 위로받는 하루, 기꺼이 만들어볼 일이다. 바닷길과 감성 마을 골목을 천천히 올라 다다른 작은 미술관에서 버석하던 일상에 감성을 채우고 에너지를 얻는다. 어디쯤엔가 와 있을 봄, 삼척항 호젓한 산등성이에 올라 바라보는 비단 물결 반짝이는 바다,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한 하루다. 주변 볼거리 여행 중에 잠시 휴식을 주는 곳, 죽서루 동해가 아우르는 지역에서 유일하게 강을 끼고 있는 죽서루(竹西樓). 시간 여행하듯 삼척 읍성 성곽로를 따라가다 보면 나타난다. 누각으로 가까이 다가가면 삼척시 서편으로 오십천(五十川)이 절벽 아래 흐른다. 관동팔경 중에서도 제1경으로 꼽히는 죽서루는 삼척 시내에 있어서 삼척 주변을 여행 중이라면 잠시 들러 쉬어가기 딱 좋다. 죽서루는 송강 정철의 가사에 나오는 터이기도 하다. 평온한 마음의 휴식, 성내동 성당 삼척의 성내동 성당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천주교 발전사에 의미 있는 곳이다. 고딕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으며, 초대 주임 신부로 부임한 진 야고보 신부의 순교 기념비와 기념 건물을 볼 수 있다. 종교적 신념을 지키다 공산군에게 피살된 진 야고보 신부의 족적을 천천히 따라가 보자. 성전을 한 바퀴 돌면서 조용히 묵상의 시간을 가지고 성당 주변 풍경에 잠겨보는 것도 특별하다.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도경리역 삼척에서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에 도경리역이 있다. 거리상으로는 가깝지만 그곳에 가려면 꼬불꼬불한 산길을 달려야 한다. 예전엔 아주 깊은 산골이었을 듯싶다. 삼척시와 동해시의 경계에 위치하는데 두 도시는 이웃 마을처럼 아주 가깝다. 1939년에 지어진 도경리역은 현재 영동선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랜 역사(驛舍)로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98호다. 일제강점기에 자원수탈의 도구로 역사나 터널을 만들었는데 이 역도 그중 하나다.
- 2021-03-1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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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우처럼 연기하고 곰처럼 우직하게 살고파”
- 연출가 겸 작가인 민준호가 자신의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만든 연극 ‘나와 할아버지’가 6년 만에 대학로에 돌아왔다. ‘나와 할아버지’는 전쟁 통에 헤어진 옛사랑을 찾기 위해 할아버지와 함께 여정을 떠나는 청년 ‘준희’의 이야기를 다룬다. 다소 소박한 서사에 반전도 없어 자칫하면 지루하게 느껴질 법한데, 극이 끝나고 나면 관객들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자신의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오열하는 이도 있다. 배우 한갑수는 그게 바로 ‘수필의 힘’이라 말한다. 오랜만에 따뜻한 연극으로 관객을 만나 기쁘다는 그에게 작품과 연기가 주는 의미를 물었다. Q. ‘나와 할아버지’는 어떤 작품인가? 극작가인 주인공이 멜로드라마를 쓰려고 할아버지랑 옛사랑을 찾아 떠나면서 할아버지에 대한 몰랐던 사실들을 하나둘 알게 되고, 진짜 삶에 대해 깨달아가는 내용이에요. 요즘 TV를 보면 세대 갈등으로 비롯된 흉흉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잖아요. ‘나와 할아버지’는 이런 씁쓸한 사회에 잔잔한 울림과 교훈을 줄 수 있는 작품입니다. Q. 작품의 매력을 꼽는다면? 작가 본인 얘기니까 할아버지의 정서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연기의 사소한 디테일을 다 살려요. 예를 들어 손자랑 술 마시면서 전쟁 시절 얘기를 할 때, 할아버지가 술잔을 들었다가 ‘아 맞다!’ 하면서 말을 이어서 하고, 다시 마시려다 말고 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하고 싶은 말이 많으니까 술잔을 들었다 놨다 하는 거죠. 그때 작가는 ‘내가 안 물어봤으면 이런 얘기를 누구한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했대요. 수필이라는 게 사실 대단한 기승전결이 있는 건 아닌데, 이런 소박하고 진솔한 마음이 객석으로 전달되어 감동을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Q. 연기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제가 맡은 역할이 저보다 윗세대다 보니 고향에 계신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어요. 이제는 어머니가 무슨 마음으로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작품을 접한 뒤로 할아버지나 할머니 세대 어르신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정서를 갖고 살아오셨는지 좀 더 깊이 알게 된 것 같아요. 극을 보는 젊은 친구들도 아마 그럴 거예요. Q. 어느덧 연기 인생 35년 차다. 롱런의 비결은? 글쎄요, 사실 숫자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예술이라는 게 처음 하는 사람이 10~20년 한 사람보다 더 잘할 수도 있는 거더라고요. 살리에리도 모차르트를 보면서 질투를 하잖아요. 저도 젊은 친구들 보면서 많이 감탄해요. 그래도 비결이랄 게 있다면 곰처럼 우직하게 걸어온 거? 무대에서는 여우처럼 영리하게 연기해야 하지만, 생활이 힘들 때 미련하게 버틸 수 있는 구석도 있어야 하거든요. 여우라면 진작 떠났겠죠.(웃음) 그래도 좋아하는 일이니까 묵묵히 해온 게 아닐까 싶어요. Q. 활동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연기의 트렌드가 옛날과 많이 달라졌어요. 저희 때는 더 연극적이고 과장될수록 잘하는 연기였는데, 이제는 내추럴하고 자연스러운 게 추세가 됐죠. 트렌드를 좇는 게 어렵지만 고리타분한 배우로 남고 싶지 않아서 계속 노력하게 돼요. 안 그러면 정체되고 매너리즘에 빠질 테니까요. 이번 작품을 비롯해서 젊은 친구들이랑 작업하는 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배우는 계속 배우는 게 숙명인 것 같아요.(웃음) Q. 역할 속 나이가 돼도 무대에 설 것인지? 모든 배우의 꿈이죠. 죽을 때까지 연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젊을 땐 몰랐는데, 나이 들수록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아요. 배우라도 언제나 연기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선택받아야 하는 게 운명인데, 계속해서 무대에 설 수 있다면 그만큼 복된 일도 없죠. 앞으로도 곰처럼 잘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꾸준히 하고 싶어요. 일정 3월 5일~4월 18일 장소 아트원씨어터 3관 연출 민준호 출연 한갑수, 차용학, 정선아, 민준호 등
- 2021-03-08 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