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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도 답사 일번지, 강진의 자연에 흠뻑 빠지다
- 강진은 여행기의 베스트셀러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속 남도의 첫 번째 답사지다. 유배의 땅 강진으로 표현되는 곳, 오롯한 멋과 함께 풍미의 고장 남도답게 먹거리가 풍성하다. 맛과 멋을 찾아 떠나는 남도 여행, 전남의 끝자락인 강진의 자연에 흠뻑 빠져본다. 도심을 떠난 느낌을 단번에 느끼고 싶다면 강진의 백운동별서정원이 만족감을 높일 것이다. 서원의 시초라는 백운동서원이 아니라 백운동정원이다. 담양의 소쇄원, 완도의 부용동과 함께 호남의 3대 정원으로 불린다. 별서정원은 벼슬을 떠나 시골이나 산속에 집을 짓고 자연과 벗하며 살고자 만들어 놓은 정원을 말한다. 그 이름답게 산중에 감추어진 별천지다. 호남 전통 별서정원의 원형이 잘 보전된 곳으로 아름드리 동백나무와 작은 계곡이 안온한 느낌을 자아낸다. 왕대 숲에 불어오는 바람과 월출산의 정기가 마음을 청순하게 한다. 정원이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다산 정약용에 의해서다. 유배 중에 제자들과 함께 월출산을 등산하고 난 뒤 백운동 정원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다산의 제자 가운데 이담로의 6대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곳에서 하루를 지낸 다산은 정원에 흠뻑 빠져들었다. ‘백운동 12경’을 뽑아 그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인 초의선사를 불러 그림을 그리게 한 후 그의 시와 함께 ‘백운첩’으로 남겼다. 정원을 둘러보다 보면 곳곳에 다산의 경(景)을 칭하는 안내판과 시를 볼 수 있다. 백운동정원은 정원 자체의 정취뿐만 아니라 차의 산지이기도 하다. 백운동 옥판봉에서 나는 차라는 뜻의 백운옥판차가 바로 이곳 백운동 정원 왕대밭에서 자라는 차나무에서 생산되었다. 다산이 굳이 다도에 조예가 깊은 초의선사를 불러 백운동 정원을 그리게 한 것은 이곳에서 나는 차의 풍미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리라. 좋은 차가 나오는 차의 산지임을 증명하듯 가까이 월출산 자락에 대규모 녹차 밭이 있다. 정원에서 나와 작은 오솔길을 지나 차밭으로 향한다. 바위산의 웅장함을 그대로 드러낸 월출산과 그 아래 펼쳐진 차밭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비경이다.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크고 안개가 많은 곳에서 재배하는 차가 떫은맛이 적고 강한 향이 난다. 백운옥판차의 명성을 잇듯 좋은 차가 월출산 자락의 정기를 흠뻑 머금고 자란다. 자연 여행을 꿈꾸는 강진의 두 번째 여행지는 강진만 생태공원이다. 갈대숲 우거진 데크길을 2.8km 걷는다. 햇살이 뜨거울 법도 한데 갈대숲이 불어다 준 바람 몇 점에 땀이 식는다. 갯벌 흙이 드러난 곳에서 칠게와 짱뚱어를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름에 짱뚱어는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다. 갯벌 학습장이 따로 없다. 덩치가 비등해 보이는 짱뚱어 두 마리가 등지느러미를 곧추세운 체 으르렁거리며 싸우질 않나 제법 덩치가 큰 짱뚱어 한 마리가 풀쩍 뛰어오른다. 점프는 수컷의 암컷에 대한 구애 행동이다. 갯벌 흙 사이에 짱뚱어 집들이 볼록볼록 솟아있다. 슬금슬금 칠게도 드나들고 짱뚱어도 드나드는 저 집은 과연 누구의 집일까 궁금해진다. 칠게가 원래 집주인, 짱뚱어가 뺏는 경우가 대부분이란다. 게의 날카로운 집게발도 짱뚱어에겐 소용이 없다. 갯벌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다니, 더운 여름날인데도 호기심에 오래도록 갯벌을 바라본다. ◇강진 추천 맛집 청자골종가집 강진의 대표 맛집으로 꼽힌다. 방석만 있는 덩그러니 놓인 방에 착석하면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잘 차려진 상이 상째로 들어온다. ‘이 정도는 돼야 남도의 한정식이지’ 하는 생각을 하며 식탐 삼매경에 돌입. 홍어삼합이 첫 타자, 톡 쏘는 맛이 그리 강하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다. 육회를 한 점 집어먹고 새우 버터구이를 하나 집어 든다. 각종 나물과 찬에 멈추지 않는 손, 따뜻하게 내온 불고기와 녹차 물에 밥을 말아 보리굴비(부세) 살 한 점을 얹는다. 밥도둑이 따로 없다. 강진군 군동면 종합운동장길 106-11 다온식당 가볍게 아침을 먹기 적당한 가정식 백반이다. 조갯국에 계란말이, 부담이 없다. 엄마가 차려주는 집밥이 떠오른다. 강진군 대구면 수동길 17-7
- 2020-06-3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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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끝마을 해남의 미황사, 그리고 달마고도(達磨古道)를 걷다
- 땅끝마을은 그 이름만으로도 아득하게 먼 느낌이다. 그래서 한 번 다녀오고 나면 언제쯤에나 또다시 가보나 늘 그래 왔던 곳이었다. 아주 오래전 무덥던 여름날 어린 아들 손에 유홍준 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한 권 들려서 삐질삐질 땀 흘리며 남도 땅을 누비며 다녔던 날들이 있었다. 그때의 감흥을 다시 얻기는 어렵겠지만 땅끝마을 해남은 언제나 기대를 품게 하는 곳이다. 이 땅의 끄트머리 해남엔 바다를 내다보며 세상을 품은 듯이 장엄하게 우뚝 선 달마산(達摩山)이 있다. 그 장대한 산세에 천년고찰 미황사(美黃寺)를 있게 했다. 신라 경덕왕 8년에 인도에서 경전과 불상을 싣고 온 돌배가 닿은 곳이 이곳 갈두항이다. 이때 경전과 불상을 싣고 앞서가던 소가 누운 곳에 절집 미황사를 창건했다는 설화가 있다. 절 입구부터 위로 올려다보면서 한참을 걸어서 닿은 미황사는 산에 스며있는 절이라는 인상을 준다. 산이 감싸 안은 안온함이 느껴진다. 산을 다듬어서 평지에 지어진 모습이 아니다. 높낮이가 다른 산에 그대로 맞추어 각각 앉혀졌다. 건물마다 비탈길이나 계단으로 오르내려야 하는 높낮이가 있다. 그래서 아래서 올려다보는 절의 처마나 기둥,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며 소리 내는 풍경소리가 남다르다. 비탈진 길을 따라 달마선원 뜰에 올라서 비로소 적요한 세상을 내려다보는 시간, 눈앞에 바다를 펼쳐 놓았고 남도의 들녘에 바람을 담아두었다. 그리고 저 멀리 매일 달라지는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매월당 김시습은 일출은 낙산사, 일몰은 해남 미황사를 꼽았다고 한다. 이번 여행길에는 늘 하고 싶었던 템플스테이 일정이 있다. 비록 하루 머무는 짧은 프로그램이지만 깊은 산사에서 보냈던 그 시간은 깊은 힐링이었다. 방 배정과 함께 사찰 안내와 예절, 예불, 저녁 공양 후 참여했던 남도 문화체험은 해남 여행을 실감시킨다. 구수한 남도 소리를 바로 눈앞에서 들으며 함께 추임새도 넣어보는 시간, 비로소 우리 문화에 다가가 보았던 산사의 밤이었다. 이 모든 것들을 수행하면서 내 머릿속이 정돈되고 살짝 기분 좋은 긴장감에 뿌듯하다. 꾸밈없이 정갈한 텅 빈 방에서 지낸 하룻밤. 새벽녘 정적을 울리는 목탁 소리에 잠을 깼다. 문을 여니 어둠이 가득한 절 마당으로 가만히 오가는 발자국 소리들이 들린다. 조용히 일어나 내다본 산속의 사찰도 세수한 듯 신선하고 상쾌하다. 아침 공양 후 달마 선원의 찻방에서 금강 스님과 함께한 다도 시간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안경 너머로 느껴지는 스님의 눈빛이 엄격한 듯 따뜻하다. 스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차를 두 손에 감싼다. “스님, 은은한 향이....이게 무슨 차인가요?”빙그레 웃으시며 스님이 말씀하신다. “차 이름은‘미황사 차’입니다.”이 무슨 바보 같은 물음이었는지.‘미황사 차’를 마시며 우리가 함께해야 하는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들려주신다. “매일매일 살아있는 숲을 순례하는 마음으로 대했으면 좋겠습니다. 산길을 걸은 후 기운이 충만해지길 바라요. 그리고 이 길이 천 년이 지나도 반가운 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자연을 그대로 두는 길을 만들었습니다.” 중장비나 기계가 아닌 호미와 삽, 괭이와 지게를 이용한 순수 인력으로 있는 그대로의 길을 내었다. 해마다 쌓이는 낙엽이 스며들고 그 길을 걷는 발아래 편안함이 있도록 자연 속의 흙과 돌을 그대로 고집했다. 길 가다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며 걷는 도중에 큼직한 돌들이 쏟아져 내린듯한 너덜길을 몇 번쯤 만난다. 미황사를 둘러싼 뒤편의 달마산에 달마고도(達磨古道) 길이 차분히 열려 있다. 총 17.74km의 4개 코스다. 그중에 한 코스를 걷기로 했다. 달마 고도는 각 4코스가 있다. 총 17.74km / 약 6시간 30분 거리. 제1코스 2.7km 미황사~큰 바람재, / 제2코스 4.37km 큰 바람재~노지랑골,/ 제3코스 5.63km 노지랑 골~몰고리재, / 제4코스 5.03km 몰고리재~인길~미황사 땅끝마을에 명품 둘레길 달마고도(達磨古道). 그 길을 세 시간여 걸었다. 땅끝에서 산길을 걷고 돌길을 걸으며 속세의 고단함도 함께 한다. 태고의 매력 속에서 자연의 기운을 듬뿍 받는다. 힐링 트래킹이다. 걸으며 사색과 명상을 하며 미약하게나마 성찰의 시간이 된다면 더 바랄 게 무엇일지. 달마산의 숲에 난 조붓한 길은 적당히 걷기 좋았고 숲을 이룬 나무 사이로 햇살이 눈 부시다. 이렇게 걷는 행복을 만끽한다. 심신이 정돈되는 느낌이다. 평소에 운동하지 않는 편이다 보니 때로 숨차서 헉헉거리면서도 그리 어렵지 않다. 걸을수록 그 길을 걸어나갈 힘이 생겨난다. 언제라도 찾아와 걸어보고 싶은 길이 또 하나 생겼다. 생각만으로 막연히 멀다 했다. 이젠 언제라도 한반도 끄트머리 땅끝마을 해남으로 훌쩍 떠나볼 만하다. 그곳엔 붉은 동백이 피고 지고 있었고 애끓는 남도 창이 고단한 마음을 달래준다. 푸근한 인심과 맛있는 밥상엔 인정이 넘치던 곳, 지금 거기엔 싱그럽게 일렁이던 청보리가 누렇게 패고 있겠다. *해남 미황사 가는 길 - 자동차로 약 6시간 정도 // *대중교통: 강남고속버스터미널(호남선)출발-해남터미널-미황사행 버스 // * 미황사. 달마고도(達磨古道)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해남군은 신종 코로나19 확산으로 나 홀로 여행자를 위한 한적하고 안전한 걷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6월 27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9시 30분 미황사 일주문 앞에서 트레킹 가이드와 함께 출발한다.) △ 주변에 더 가 볼 곳 & 맛집 *해남 청보리밭 - 두 눈이 시원하다. 황산 연호 보리밭은 바라만 보아도 싱그럽다. 구릉의 높낮이를 그대로 살린 완만한 지형이 자연스럽다. 고두심 주연의 영화 '엄마'의 한 장면이 이 청보리밭에서 연출되어 화제가 된 곳이기도 하다. 지금쯤 보리가 패어 누런 황금 물결이겠다. 전남 해남군 황산면 연호리 482-2 *해남 공룡박물관 - 세계 최초로 익룡, 공룡, 새 발자국이 동일 지층에서 발견된 지역이 바로 해남이다. 그 앞으로 펼쳐진 바다처럼 넓은 호수를 보며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은 마냥 평화롭다. 전남 해남군 황산면 공룡박물관 길 234 *대흥사- 우리 국토의 최남단에 있는 두륜산(頭崙山)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한 대흥사(大興寺)는 땅끝마을 해남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특히 천불전 남쪽의 동국 선원은 1978년 문재인 대통령이 머물며 사법 시험공부를 했다고 해서 유명해진 곳이다. 소박한 방에서 누군가의 큰 꿈을 이루어가던 시간이 거기 있었다. 입구에 있는 100년 전통의 한옥 구조인 '유선관 여관'과 그 뜰의 누렁이가 유명하다. 이제 그 누렁이는 간데없고 근래엔 TV 예능 알쓸신잡의 잡학박사들이 이곳에서 토론을 하던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전남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376 *녹우당(綠雨堂)- 고산 윤선도의 산중신곡의 무대 비자림 숲. 500년 된 은행나무가 입구에서 든든히 지키고 있다. 바람이 불 때 정말 녹우(綠雨) 소리가 날까 귀 기울여 보라. *땅끝마을- 한반도 육지의 남쪽 끝 43.5km 지점에 있는‘땅끝마을’. 마을 입구에 땅끝 표지석이 서 있다. 156m 갈두산 정상에 전망대가 있다.(모노레일 이용 가능) 전남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보리향기 - 음식점도 자그마하고 가족 느낌의 보리밥 정식. 고소하고 찰진 차조밥과 '자줏빛의 작은 새우'라는 뜻의 '자하젓'이 맛깔스럽다. 막걸리 한 잔이 잘 어울리는 남도의 밥상.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158-1 보리향기 *원조장수통닭 - 닭 한 마리로 다양하게 먹는 닭 코스 요리가 있다. 해남군 해남읍 고산로 295 *미황사(美黃寺)에서 하룻밤 템플스테이 하면서 먹은 특별했던 ‘공양’. 단 한 가지도 나무랄 것 없이 모두 맛있다. 채식의 사찰요리여서 먹은 후 속도 편하다. 그리고 미황사 금강스님이 만들어주신 '미황사 차 한 잔'. 이번 여행에서 가장 으뜸의 맛 기억이다.
- 2020-06-0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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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과 함께 나누기 좋은 도서
- ◇ 지혜로운 조부모의 감성 육아법 맑은샘생명학교 저ㆍ맥스미디어 30만 명 이상의 임산부와 조부모에게 영유아 교육을 진행한 각 분야 전문가 8인이 모여 조부만을 위한 육아 대백과를 펴냈다. 젊은 맞벌이 부부가 늘며 조부모가 손주 육아를 맡는 일이 많아졌다. 현실을 들여다보면 할머니와 엄마의 육아 방식 차이에서 오는 갈등과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맡기고 마음놓고 일할 최선책이 조부모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책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서로 ‘어쩔 수 없는’ 심정으로 이겨내기보다는 ‘감사한’ 마음으로 육아를 바라보길 독려하고, 현실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노하우 등을 제시한다. 서두에는 ‘할머니·엄마·아기가 행복해지기 위한 지혜’와 조부모 양육이 아이에게 미치는 좋은 영향력에 대해 언급한다. 전반적으로 출생 후 24개월까지 조부모가 알아야 할 육아 관련 지식 등을 그림을 곁들여 알기 쉽게 보여준다. 더불어 응급 처치법과 베이비 마사지를 비롯해 조부모를 위한 특별 마사지까지 소개한다. ◇ 쉬엄쉬엄 가도 괜찮아요 서정홍 저ㆍ단비 산골 농부가 일하며 나누는 소박한 일상, 산골 어르신들의 삶의 지혜, 자연 속에서 삶을 배우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58편의 시에 담겼다. 청소년 세대에게 보내는 따뜻한 위로와 노년의 슬기를 엿볼 수 있어 조부모와 손주가 함께 읽어도 좋다.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2 유홍준 저ㆍ창비 우리 땅 곳곳을 누벼온 유홍준 명지대학교 교수가 중국 대륙으로 떠났다. 1권은 삼국지의 무대 서안에서부터 만리장성을 지나 명사산에 이르는 여정을 담았다. 2권은 중국 불교미술의 축소판 막고굴 곳곳과 돈황문서의 다난한 역사를 그렸다. ◇ 나의 반려동물도 나처럼 행복할까 데이비드 미치 저ㆍ불광출판사 ‘반려동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서 시작한다. 반려동물이 바라는 진짜 행복, 노년기 반려동물을 평화로운 죽음으로 이끄는 방법 등 반려동물과 함께 성장하고 살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담았다. ◇ 너의 꽃놀이 김미녀 저ㆍ책밥 꽃을 찾아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이들을 위한 꽃놀이 여행 가이드북이다. 계절에 따라 아름다운 꽃이 피는 전국 72개 꽃놀이 장소를 추천한다. 방문하기 좋은 계절, 주차 여부, 인근 카페 등의 정보와 함께 필름에 담은 꽃 사진을 수록했다.
- 2019-05-0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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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千佛千塔 이야기⑤ 영주 부석사(浮石寺)
- 우리나라의 열세 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산사 7곳’ 다섯 번째는 영주 부석사이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건물 중 하나이며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무량수전이 있는 천년고찰 부석사는 당나라 종남산 화엄사에서 지엄에게 불도를 닦던 의상이 670년에 당나라의 침공 소식을 전하고 돌아와, 5년 동안 양양 낙산사를 비롯하여 전국을 다니다가 마침내 수도처로 자리 잡아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창건하였다. 당시에는 현재의 규모는 아니었으며 초가나 토굴을 짓고 화엄세계의 심오한 뜻을 닦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의상의 제자 신림 이후 국가지원 등으로 크게 중흥하여 대사찰의 건립이 이루어졌는데, 부석사에서는 신라 왕을 그려 벽화로 걸어놓고 있을 정도였다. 후삼국 시기에 궁예가 이곳에 이르러 칼을 뽑아 내리쳤는데 그 흔적이 고려 때까지 남아 있었다고 한다. 부석사 무량수전 우측에 위치한 선묘각은 용으로 변하여 의상대사를 도왔던 선묘 낭자의 초상을 봉안한 건물이다. 창건설화를 계승한 융합적 신앙을 보여주는데, 설화의 주인공을 모신 전각을 유지하며 받드는 모습이 익숙하지는 않다. 부석사는 석등(국보 제17호), 무량수전(국보 제18호), 조사당(국보 제19호), 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45호), 조사당벽화(국보 제46호) 등 5점의 국보와 보물 6점을 갖춘 유서 깊은 절집이며, 아미타신앙의 성지이다. 태백산(太白山) 부석사(浮石寺) 부석사 일주문에는 태백산(太白山) 부석사(浮石寺) 현판이 걸려있으며 범종루에는 봉황산(鳳凰山) 부석사(浮石寺) 현판이 걸려 있다. 또한 절 입구에는 소백산과 태백산 설명이 장황하게 쓰여 있다. 결론은 태백산 지역의 마지막 부분이 소백산 지역에 편입되어 있으나 착오 없기 바란다는 말이니, 부석사가 소백산 국립공원이 아닌 태백산 국립공원 지역이라는 것이다. 즉, 부석사는 태백산 국립공원과 소백산 국립공원 사이에 있고 거리상으로는 소백산이 더 가깝지만 지형상 부석사가 자리한 봉황산은 그 뒤편 선달산으로 이어지면서 태백산 줄기에 속한다. 그래서 (소백산이 아니라) 태백산 부석사라는 것이다. 일주문 안쪽에 당간지주가 서 있는 것이 의아하다. 1980년 전후 사천왕문과 일주문을 새로 세웠으며 그전까지는 지금의 사천왕문 자리가 일주문이었다는 설이 있는데, 그래야 일주문 밖에 당간지주를 세우는 논리에 맞는다. 아마 사찰의 영역을 키우고 싶었나 보다. 매표소부터 일주문, 당간지주, 천왕문까지 험난하지는 않지만 꾸준히 이어지는 오르막 지형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천왕문부터 범종루,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까지는 3개의 큰 석축을 올라야 하며, 이 석축들은 다시 작은 경계로 나누어져 불교의 구품만다라를 상징한다고 한다. 즉, 구품만다라의 맨 위에는 극락을 상징하는 안양루와 극락을 주재하는 아마타부처님을 모신 무량수전이 위치한 매우 이상적인 구조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나 되새겼다는 최순우 선생의 답사기는 지금도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명구(名句)가 되었다. 천왕문을 들어서서 범종루를 오르기 전 잠시 평탄해지는 지형의 왼쪽에는 종무소가 위치하고 있다. 앞마당에는 삼층석탑 2기가 나란히 서 있는데 이 석탑들은 원래 이곳이 아니라 인근 옛 절터에서 옮겨왔다는 이건비(移建碑)와 함께 세워져 있다. 삼층석탑 위로는 날아갈 듯 솟아있는 2층 건물 범종각이 보이는데 정면에 마주 보이는 면이 건물의 측면으로 팔작지붕의 합각이 방문객을 향해 날개처럼 펼쳐져 있다. 1층은 누하진입으로 계단을 통해 올라서는 구조이며 2층 누각에는 법고와 목어, 운판이 있다. 범종각은 1층으로 누하진입하여 2층 누마루 중앙 아래로 계단을 올라가게 된다. 그 정면으로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는 장면은 부석사의 하이라이트 안양루와 무량수전으로 안양루(安養樓)의 안양(安養)은 극락을 의미한다. 구품만다라를 올라 극락에 도달하는 마지막 과정을 상징한다. 안양루에 올라서면 국보 제18호 무량수전이며 이곳에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녔다는 무량수불, 아미타여래를 모셨다. 이 소조 아미타여래좌상은 국보 제45호이며 무량수전 앞마당에 있는 석등이 또한 국보 제17호이다. 부석사가 보유한 국보 5점 중 이곳에만 석 점이 모여 있는데, 무심코 뒤돌아보면 멀리 이어지는 높고 낮은 산자락들이 이어지는 풍광의 멋스러움에 대한 감탄과 함께 무량수전 어느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바라보았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무량수전 앞마당에는 석등 하나 있을 뿐, 별다른 치장이나 장엄을 위한 설치물 하나 없다. 그러나 석등은 높이가 3m쯤 되어 마주 서도 우러러 보아야 하며 석등 앞 배례석과 함께 말없이 무겁게 다가오니 과연 국보급 석등답다. 1919년 일제강점기 때 무량수전을 해체, 수리하였는데 이때 무량수전에서 석등까지 땅 밑으로 석룡(石龍)이 묻혀 있었으며 허리가 잘렸다고 한다. 그때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선묘 낭자의 전설이 기억나 사뭇 아쉽기만 하다. 안양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엎드려 모여 있는 경내 여러 건물의 지붕과 멀리 펼쳐진 소백의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스라이 보이는 소백산맥의 산과 들이 마치 정원이라도 되듯 눈앞으로 다가온다. 뛰어난 경관이지만 지금은 안양루 2층에 올라갈 수 없어 아쉽다. 안양루와 마주 보는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 하나로 손꼽히는 국보 건물이다. 비록 봉정사 극락전에 최고의 자리를 내주었지만 어차피 건물의 중수 기록이 앞선다는 것일 뿐 창건 일자가 밝혀진 것은 아니기에 무량수전의 비중이 덜하다고 할 수는 없다. 무량수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주심포 형식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강릉의 객사문 다음으로 심한 배흘림기둥을 갖추었으며 평면의 안허리곡(曲), 기둥의 안쏠림과 귀솟음 등을 적용한 뛰어난 건축물로 고대 불전 형식 연구에 기준이 되는 중요한 건물이다. 무량수전 정면 중앙 칸에 걸린 편액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로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으로 몽진 왔다가 부석사에 들렀을 때 썼다고 한다. 무량수전에는 고려시대에 조성한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을 모셨는데 협시보살 없이 독존으로 동향(東向)하도록 앉힌 점이 특이하며 이는 아미타불이 서방 극락세계의 주인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불상은 우리나라에서 소조불상 중 가장 크고 오래된 작품이며 손 모양(수인)은 석가모니불이 취하는 항마촉지인으로 아미타불이 맞나 의심이 들지만 원융 국사 탑비 비문에 아미타불을 만들어 모셨다는 기록 등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불상을 수리하면서 그리 된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절집을 답사하노라면 ‘실내 촬영금지’에 난감할 때가 많은데 부석사 무량수전은 특히 더 심한 편이다. 심지어 촬영금지 글씨가 안 보이냐고 힐난하거나 감히 부처님을 사진 찍을 수 있냐고 하니, 불상과 부처를 구분하지 못하고 문화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듯싶어 답답했다. 아무튼 무량수전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니 동편 언덕 위에 삼층석탑이 하나 보인다. 금당 앞에 석탑은 당연한데 이 탑은 동쪽에 세워져 있다. 아마도 아마타불이 서편에 앉아 동쪽을 바라보니 그 정면에 탑을 세운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제 다 보았나 하는데 석등 위로 산길이 이어진다. 갑자기 속세를 벗어난 듯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가보니 조사당(祖師堂)이 나타난다. 조사(祖師)는 불교의 한 종(宗)이나 파(派)를 세워서 그 종지(宗旨)를 열어 개창한 승려에게 붙여지는 칭호로 의상대사를 기리는 전각이다. 신라 교종 화엄종 본찰에서 선종의 구산선문이 개창조를 섬기듯 하는 것이 조금은 낯설어 보이지만 의상 직후에는 없었으나 선종이 유행하면서 화엄종도 이를 따라간 것이 아닌가 싶다. 조사당의 왼쪽에는 자인당과 응진전, 단하각 등이 있으며 자인당에 모신 석불 3기 중 좌우 비로자나불은 보물 제220호, 가운데 아미타불은 보물 제1636호이다. 1칸짜리 단하각은 지신(地神)을 모시는 전각이라는 말도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여기까지 둘러본 후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오면서 부석사 오른쪽 산길로 접어드니 그 너머에 원융국사비(경북 유형문화재 제127호)가 있었다. 고려 정종 때 왕사, 문종 때 국사가 된 그는 1053년 세수 90세, 법랍 78세로 입적하자 원융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비를 세워주었다. 원융국사비를 둘러보고 지장전 앞으로 오니 아까 올라갈 때는 범종각에서 비껴간 각도로 보이던 안양루와 무량수전이 이쪽에서는 정확하게 일치하는 모습이다. ‘아’ 하는 가벼운 감탄으로 바라보는데 문득 안양루 공포와 공포 사이 빈 공간에 앉아계신 부처님이 보인다. 현현불이다.
- 2018-09-1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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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이 무르익는 가을, 읽어볼 만한 도서들
- 나의 위대한 생태텃밭 (샐리 진 커닝햄 저ㆍ들녘) 들녘의 59번째 귀농총서. 유기농 텃밭 농부이자 원예 전문가,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샐리 진 커닝햄이 수십 년간 경험한 텃밭 가꾸기 노하우를 담았다. 방대한 이론을 섭렵하며 수많은 실험을 거듭한 저자는 “텃밭 농부가 할 일은 자연이 일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는 ‘화학물질 제로’를 달성해낸 ‘생태텃밭 농법’을 소개한다. 책에는 자연과 함께 텃밭을 가꾸는 구체적인 방법들이 나와 있다. 올해 농촌진흥청이 발표한 ‘동반식물 재배법’과 같이, 함께 심으면 더 잘 자라는 이웃 식물들을 소개한다. 나아가 텃밭 대표 작물 32종의 가족 식물, 이웃 식물 목록을 정리하고, 자세한 재배법과 흔히 발생하는 문제와 해결책까지 다뤘다. 텃밭에 도움이 되는 익충 31종의 생김새와 생활주기, 발견 장소, 유익성, 소환 방법 등을 소개한 것이 특징이다. 더불어 조심해야 할 해충 12종도 방제법과 함께 보여준다. 초보 농부에게 도움이 되는 단계별, 시기별 텃밭 농사 비법도 전수한다. 가장 기초적인 흙 돌보기 단계부터 수확 방법, 다음 농사 준비 단계까지 자세히 담았다. 저자가 직접 자신의 텃밭에서 촬영한 사진들과 그림 자료를 활용해 이해를 돕는다.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옥남 저ㆍ양철북) 강원도 양양 송천 마을에 사는 이옥남 할머니가 1987년부터 2018년까지 쓴 일기 중 151편을 골라 엮었다. 자연과 어우러진 농가의 사계절과 저자의 일상이 정겹게 그려진다. 30년 넘게 현재까지 이어오는 일기 속 평범하고도 소박한 이야기가 잔잔한 위로를 건넨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산사 순례 (유홍준 저ㆍ창비) 올해 6월 우리 산사 7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을 기념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에 실렸던 남한의 산사 20여 곳과 북한의 산사 2곳을 꼽아 소개한다. 가을을 맞아 산을 찾는 등산객들에게 우리 산사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친절한 안내서 역할을 한다. 노년에 대하여 (윌 듀런트 저ㆍ민음사) ‘철학 이야기’, ‘문명 이야기’ 등으로 이름을 알리며 퓰리처상을 받은 역사가 윌 듀런트의 마지막 원고다. 삶과 죽음, 청춘과 노년, 신과 도덕, 전쟁과 정치 등 인생에서 마주하는 20여 가지 문제를 다룬다. 삶의 의미를 탐색하는 동시에 정제된 저자의 사유를 엿볼 수 있다. 실용치즈전서 (배인휴 저ㆍ유한문화사) 배인휴 국립순천대학교 명예교수가 1982년부터 유가공학연구실을 운영하며 모은 치즈 관련 자료와 치즈 산업 현장 경험이 640여 페이지 분량의 책 한 권에 담겼다. 다양한 치즈 제조 과정을 알기 쉽게 정리해 낙농가 농민들과 치즈 입문자들에게도 유용하다.
- 2018-09-1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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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여행 소환, 비엔나와 모차르트
- 최근 방영하는 여행 관련 TV 프로그램 중 ‘꽃보다 할배 리턴즈’(tvN)를 시청했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김용건 등 원로 배우들이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순으로 동유럽을 돌아보는 여정으로 꾸며졌다. 오스트리아 비엔나(빈)의 경우엔 나 또한 두 번 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워낙 좋아하는 도시이기에, TV를 통해 다시 추억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첫 비엔나 여행은 40대 후반 프랑스, 이태리 등 유레일패스 기차여행을 하면서 인상 깊었던 도시 인스부르크와 함께였다. ‘비엔나 숲속의 왈츠’와 ‘모차르트’ 우습게도 ‘비엔나커피’ 정도를 머리에 그리며 떠났는데, 영어가 원활하지 않다 보니 이해가 덜 되어 답답했다. 그러나 언어의 장벽을 넘어, 합스부르크의 영광을 안은 중세 서양 문화의 현장인 비엔나 구시가지 풍경은 마치 심봉사가 광명 찾듯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문외한으로 갔던 첫 번째 비엔나 여행에서의 아쉬움은 이후 미술사, 클래식 음악, 유럽 역사, 인문학을 가까이하는 데 동기부여가 되었다. 강의도 듣고 공부도 하여 2011년 60세 언저리에 다시 한번 비엔나를 찾았다. 두 번째 여행은 독일, 체코 프라하, 비엔나, 잘츠부르크를 포함하는 동유럽의 여정이었다. 18세기 비엔나는 화려한 합스부르크 가문의 도시이기도 했지만 음악의 도시로도 잘 알려졌다. 18세기 고전파 음악가 3인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으로 회자하는데, 특히 잘츠부르크와 비엔나에는 모차르트의 발자취로 가득하다. 덕분에 현재 두 도시의 관광 수익은 지역 경제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지만,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후세인들은 평생 빈곤 속에 살다 죽음을 맞이한 그의 삶을 몹시 안타깝게 여긴다. 고건축물이 가득한 구시가지 가운데 비엔나의 상징인 슈테판 대성당이 있다. 1100년대 건축 이후, 수차례에 걸쳐 개축되며 세계적인 유적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성당의 이름인 ‘슈테판’은 성경 속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 집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하이든과 베토벤이 소년 성가대원으로 활동했던 성당이기도 하다. 모차르트는 슈테판 대성당에서 거행되었던 화려한 결혼식과 시신이 없는 가장 슬픈 장례식의 주인공이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보았듯 모차르트는 ‘레퀴엠’(진혼곡)을 미완성으로 남기고 비명횡사하여 끝내 시신을 찾을 수 없었다. 그의 죽음에는 너무나 많은 가설이 따르지만, 당시 열악한 교통수단으로 어린 나이부터 수많은 순회 연주를 다니며 이름 모를 풍토병에 시달렸고, 성인이 되어서도 폐결핵 등으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죽음을 경험해야만 쓸 수 있는 곡 ‘레퀴엠’을 작곡하면서 실제로 죽음의 경지까지 자신을 몰입시켰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세기의 음악천재는 그렇게 ‘레퀴엠’을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만다.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진 모차르트가 말년에 병마와 빈곤 속에 시달리며 작곡한 ‘클라리넷 5중주 A장조 K581’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곡 중 하나다. 유홍준 명지대학교 석좌교수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나온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TV와 함께 떠난 나의 세 번째 비엔나 여행에서는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이 보였다.
- 2018-08-28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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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나라 문화유산 답사기⑤ 태조 왕건과 나주
-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은 지방호족들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한 화합책으로 혼인정책을 펼쳐 모두 29명의 부인을 두었다. 그중 첫째 정부인 신혜왕후 유씨와 둘째 장화왕후 오씨는 왕건이 즉위하기 이전에 결혼한 부인들인데 그중 장화왕후 오씨가 나주 사람이다. 태조 왕건이 궁예 휘하의 장수 시절, 견훤의 후백제와 자웅을 겨루면서 후백제의 후방 깊숙이 있는 나주를 공격하여 장악하였다. 수차례 들고 나면서 나주를 차지한 왕건은 913년 철원으로 돌아와 백관의 우두머리인 광치나에 오르게 된다. 왕건과 장화왕후 사이에 태어난 무(武, 2대 혜종)가 912년생이니 910년을 전후해서 나주에서 오씨 처녀를 만난 것으로 추측되는데 전남 나주의 완사천(浣紗泉)은 그들이 만난 곳이다. 완사천은 전남 나주 시청 앞 300m 지점, 국도 13호선 주변에 있는데 원래 작은 옹달샘으로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태조 왕건과 장화왕후 오씨의 만남을 기념하는 조형물과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전라남도 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되었다. 태조 왕건이 궁예의 수군장군(水軍將軍)으로 나주에 와서 목포(지금의 나주역 일원)에 배를 정박시키고 물가 위를 바라보니 오색구름이 서려 있어 신기하게 여겨 가보니 아름다운 처녀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왕건이 물 한 그릇을 청하자 처녀는 바가지에 물을 떠 버들잎을 띄워 건넸다. 급히 물을 마시면 체할까 하여 천천히 마시도록 한 것이다. 왕건은 처녀의 총명함에 끌려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니 이분이 곧 장화왕후 오씨 부인이며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무(武)가 후에 고려 2대 왕에 오른 혜종(惠宗)이다. 그런데 고려역사를 조금 더 살펴보면 태조 왕건의 두 번째 부인 장화왕후는 미미한 가문 출신으로 왕비가 되었으며 정비 신혜왕후가 후사가 없어 자신의 소생이 2대 왕 혜종이 되었지만 극렬한 권력투쟁에 시달리다가 즉위 2년 4개월 만에 34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하고 만다. 혜종의 별명이 ‘주름살 임금’이었는데 그의 반대파들이 악의적으로 퍼뜨린 이야기로 추정된다. 유난히 주름살이 많았던 것을 장화왕후의 출신이 미천한 것과 연결 지어 험담하는 것으로 그의 왕위 계승이 부당하다는 주장과 함께 권력에서 밀어내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혜종은 재위 내내 위협에 시달리며 수모를 감수하고 있었으니, 혜종에 대한 험담 수준의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로도 기록될 정도로 위태로운 자리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사’에 왕건이 오씨 처녀와 동침하는 장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태조가 그녀를 불러 동침하였는데, 그녀의 가문이 한미한 탓에 임신시키지 않으려 했다. 이에 정액을 돗자리에 배설하였는데 왕후가 그것을 즉시 흡수하였으므로 임신이 되어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그가 곧 혜종이다. 이에 혜종의 얼굴에 돗자리 무늬가 새겨져 있었으며 사람들은 그를 ‘주름살 임금’이라고 불렀다는 것인데 아무리 실권이 없었다 해도 일국의 국왕에 대해 이렇듯 기록하고 공공연히 불러댈 만큼 무시할 수 있는 것인지는 믿기 어렵다. 결국 혜종의 후사는 왕건이 즉위하여 맞이한 세 번째 왕비 신명순성왕후 유씨 소생 정종과 광종으로 이어져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주는 태조 왕건이 젊은 장수 시절 장화왕후를 만나 인연을 맺은 곳이며 이곳에서 태어난 아들이 2대 임금으로 즉위하였으니, 나주는 고려왕조와 무관하다 할 수 없다. 후에 혜종이 태어난 지역을 흥룡동(興龍洞)이라 하였고 전설 속의 샘을 완사천이라 하였다. 그 부근에 흥룡사(興龍寺)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흥룡사에는 혜종의 소상(塑像)을 모신 혜종사(惠宗祠)가 있었으나 1429년(세종11) 이안관 장득수가 혜종의 소상과 진영을 옥교자에 모시고 서울로 떠났다는 기록(錦城日記)으로 보아 이때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성종 2년(983)에는 전국 12목(牧) 중 하나로서 나주목이 되어 5개 군과 11개 현을 다스렸다. 현종 9년(1018) 8목으로 개편되면서 오늘날 전남 지방에서는 나주만이 유일하게 목으로 남아 중심지역이 되었다. 현종은 거란의 침입을 피해 나주로 피난을 오기도 하였다. 그만큼 왕건의 두 번째 부인 장화왕후의 고향이자 2대 왕 혜종의 탄생지 나주와 고려는 역사적으로 깊은 인연을 가진 곳이다. 이렇게 전라도 도명(道名) 제정 1000년을 맞아 그 첫 순서로 전라도의 큰 고을 나주(羅州)에 대한 문화유산 답사를 간략하나마 마무리한다.
- 2018-08-2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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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나라 문화유산 답사기④ 나주 석장승(石長丞)
- 장승(長丞)은 오래전부터 마을의 입구나 경계에 세워져 수호신으로 모시던 민간신앙 조형물이었다. 그러다 불교가 전래되면서 불교와는 무관하던 장승이 사찰의 경계표시나 지킴이로 변모하여 사찰장승이라는 특이한 형태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사찰장승은 절 입구에 세워 이곳부터 절집이라는 성역 표시와 함께 절을 지키는 수호신이나 호법신 역할을 했다. 경북 상주 남장사, 경남 창녕 관룡사, 전북 남원 실상사, 전남 나주 불회사 등에서 만날 수 있다. 대개 사찰장승은 전형적인 마을 장승과 불교풍의 인왕상이나 사천왕상 이미지가 결합된 경우가 많지만 나주 불회사 석장승은 사찰장승이면서 마을장승을 그대로 옮겨온 경우로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의 친근하면서도 인자한 모습이다. 이 불회사 앞 석장승(石長丞)은 사찰장승이면서도 전형적인 마을장승의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인데, 남장승은 얼굴 조각선이 깊고 뚜렷하며 입 좌우에 치아가 각 1개씩 나와 있고 커다란 주먹코와 길게 꼰 수염이 특징이다. 여장승은 웃음기 띤 온화한 표정으로 절집을 지키는 수호신이 아닌 친숙한 할머니 표정 그대로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즈음하여 북인사동 안국동 로터리 부근에 불회사 석장승을 본뜬 큼직한 돌장승을 세워 한국의 미를 강조하였으나 어찌 된 일인지 소리 소문 없이 철거 되었다. 불회사가 위치한 반대편에는 운흥사가 있었다. 신라 효공왕 때 도선국사가 창건하였으며 조선시대 차(茶)로 유명한 초의선사가 출가한 곳이기도 한데 6·25전쟁 때 전소(全燒)되어 폐사지가 되었으나 최근 절집을 새로 지어 다시 시작하는 듯하다. 그곳 입구에도 석장승(石長丞) 2기가 서 있으니 운흥사터 돌장승(중요민속자료 제12호)이다. 역시 사찰장승으로 분류되며 과거 운흥사가 꽤나 번창했었는지 진입로 밖 멀찍이 2개를 세웠는데 절집이라기보다 동네 중간에 서있는 느낌이다. 여장승은 온화한 면이 없고 웃는 모습이지만 강해 보이며 남장승은 큼직하게 위엄이 있지만 인자한 모습의 노인상이다. 역시 좌우로 치아가 2개 나와 있으며 수염은 턱밑에서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다. 불회사 석장승과 전체적인 모습이나 조각수법이 비슷하다. 우리나라 돌장승은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데 이곳 운흥사터 석장승은 제작연대가 뚜렷하여 돌장승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며, 불회사 석장승도 같은 시기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장승의 당(唐)은 사당가는 길을 뜻하며 주(周)는 꼬불꼬불한 길을 뜻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중국의 당나라와 주나라 장군들을 뜻하는 사대주의 사상이라며 배척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근래 들어서는 지나치게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세우거나, 미신이다 우상숭배다 하며 의도적으로 훼손하고 파괴하는 행위도 벌어지고 한국적이지 않다는 주장이 생각보다 많은 것도 현실인바, 장승에 대한 문화재로서의 평가와 올바른 자리매김이 절실한 실정이다.
- 2018-07-27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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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나라 문화유산 답사기③ 나주 석당간(石幢竿)
- 국내 각지 사찰을 찾아 가보면 절집 밖 멀리, 또는 가까이 일주문 근처, 그러니까 절집으로 들어서기 전쯤에 이제 이곳부터 사찰 영역이다 싶은 곳에서 당간지주(幢竿支柱)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저 2개의 석재 돌기둥이 서 있을 뿐이라 지나치기에 십상이다. 막상 당간지주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설명하는 게 쉽지 않다. 아마도 온전하게 '당(幢)을 붙들어 맨 간(杆)을 세운 지주(支柱)'의 완성체를 본 적이 없고, 늘 지주 2개만 보아서가 아닐까? ‘당간지주’는 '불화를 그린 깃발 당(幢)을 붙들어 맨' '간(杆)'을 세우기 위한 '지주(支柱)'이다. 즉 ‘불·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표시하고 벽사적인 목적으로 만든 당이라는 깃발'을 사찰을 찾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도록 들머리 어딘가에 높이 매달아야겠는데, 그러려니 높다란 장대 같은 깃대가 필요한바 이 깃대가 곧 ‘간’이다. 이 장대처럼 긴 간을 높이 세워 단단하게 고정할 것이 필요한데 바로 그 받침대이자 지지대 역할을 하는 것이 ‘당간지주’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당이나 간은 사라지고 지주만 남아 있으니 우리가 흔히 만나는 돌기둥 2개가 그것이다. 결국 당간지주는 깃대 역할을 하는 당간을 세우기 위한 구조물인데 쇠[鐵]로 된 철당간(鐵幢竿), 돌[石]로 된 석당간(石幢竿), 나무[木]로 된 목당간(木幢竿) 등이 있다. 대부분 나무로 만들었으나 드물게 쇠나 돌로 만든 당간이 남아 있는데, 나주에 돌로 만든 보물 석당간이 있다. 원래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세우는 것인데 이곳에는 절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고 풍수지리상 나주가 떠나가는 배 모양(行舟型)이라 배를 붙들어 매고 나주를 안정시키기 위하여 거대한 돛대를 세운 의미라고 하니 또한 특이한 경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나주목 고적조(羅州牧 古跡條)에 ‘동문 밖에는 석장(石墻)을, 안에는 목장(木墻)을 세웠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1872년의 나주목 지도에도 석장과 목장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즉, 우리가 보는 석당간(석장)외에도 목당간(목장)도 있었다는 것인데 목장이 언제 없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며 현재는 돌당간(석장)만 남아 있다. 그런데 나주에서 내비게이션으로 동점문 석당간을 검색하면 웬일인지 남문 쪽으로 안내하여 제대로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물어물어 찾아가게 된다. 나주시 발행 관광지도 역시 위치 표기가 정확하지 않아 근처에서 맴돌며 고생하고 있으니 조속한 시정이 요구된다.
- 2018-07-19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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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 읽기 좋은 신간들
- 두 발로 만나는 우리 땅 이야기 1·2 (신정일 저ㆍ박하) ‘길 위의 시인’, ‘현대판 김정호’ 등으로 불리는 신정일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이사장이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걸으며 완성한 도보답사기다. 시리즈의 제1권 ‘서울’ 편에는 한반도 5000년 역사 속에서 주요한 위치를 점해온 서울의 역사를 살펴보고 해설사와 함께 곳곳을 답사하는 형태로 구성돼 있다.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등 5대 궁궐과 종묘, 한양도성 성곽길, 한강 등을 따라 걸으며 도심 속 근대 유적을 면밀히 둘러본다. 특히 마지막 8장에서 서울의 지명 속에 숨겨진 역사에 대해 소개한 점이 흥미롭다. 동시에 출간된 제2권 ‘경기도’ 편에서는 1981년 경기도에서 분리된 인천을 포함해 경기 각 지역을 위치와 성격에 따라 8개의 장으로 나눠 설명한다. 지역마다 문화유산을 소개하고, 이곳을 살다간 선조들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아울러 경기도 곳곳에 숨겨진 아름다움과 지역민들의 사연을 담아 그동안 몰랐던 경기도의 매력을 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강과 길의 철학자 신정일 이사장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정말 걷고 싶었다”면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며 우리 땅에 깃든 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애쓰는 그는 우리 시대 또 하나의 희망으로 기억될 것”이라며 이 책을 추천했다. 소심 소심 소심 (인민아 저ㆍ북산) 미술, 서예, 수필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넘나드는 인민아 작가가 삶을 돌아보며 얻은 깨달음과 인생의 단면들을 풀어냈다.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문장으로 채운 글과 작가 특유의 따스한 감성이 묻어나는 문인화가 함께 어우러져 잔잔하면서도 깊은 여운이 느껴진다. 왜 자꾸 죽고 싶다고 하세요, 할아버지 (하다 게이스케 저ㆍ문학사상사) 할아버지의 존엄사를 위해 간병을 시작한 손주의 이야기. 제153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자 NHK 방송에서 화제를 모은 드라마의 원작 소설이다. 세대 간 갈등과 고령화 사회, 청년 실업, 웰다잉 등의 문제를 재치 있게 그려냈다. 나이 든 반려견을 돌보는 중입니다 (권혁필 저ㆍ팜파스) 노령견의 일상 돌봄과 더불어 죽음 준비까지 다뤘다. 각 장의 끝에 실린 저자의 에세이를 통해 반려견을 돌보는 즐거움과 사랑하는 마음, 이별의 과정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동물보호단체, 반려동물문화교실에서 만난 반려견과 보호자의 사연도 함께 담았다. 죽음을 이기는 독서 (클라이브 제임스 저ㆍ민음사) 문화비평가로 잘 알려진 클라이브 제임스가 2010년 백혈병 확진을 받은 후 써낸 다양한 문화비평 중 일부를 엄선해 엮었다. 저자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과 맞서며 책을 읽고, 영화와 드라마를 보며 마지막 순간까지 신랄하고 생명력 넘치는 문장을 탄생시켰다.
- 2018-07-16 1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