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한국전쟁이 나던 해 자식 많은 가난한 농사꾼의 9남매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지금의 풍요로움을 느낄 때마다 돌아가신 부모 생각에 마음 한구석 애잔함이 밀려든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로 변한 농촌에서는 극심한 식량부족에 시달렸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포함한 13명의 대가족이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가마솥에 밥을 해야 할 만큼 식량이 필요했
필자의 이민 시기는 1980년대 초반. 이민 가기 전에 이민1세가 살아야 할 삶의 행로가 불보 듯했다. 이미 필자보다 먼저 이민한 언니로부터 기능도 익혀오지 말고 노동력이나 강화하여 오라는 충고를 들었다. 그래서 필자가 한 이민 준비는 연고도 없는 시골에서 밭매기 봉사 두어 달 한 것이었다. 흙과 함께 잔뼈가 굵은 농군의 아내와 함께 이른 아침부터 땅거미
이민을 왜 꿈꿀까? 대부분 이민하는 이유는 단연 자식 때문이라고 부모들은 말한다. 도대체 자식이 뭐길래 자식교육을 위해서라면 내 나라도 등 지는 것일까. 필자는 미국에서 사는 동안 너무나 많은 한인들이 초심의 목적을 잃고 체념하면서 한숨으로 살고,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어린 아이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한인타운에 사는 후배가 전화를 했다. 그녀는 울먹거리
눈에 띄는 증상이나 통증 등으로 우리에게 경고하는 질병들은 어쩌면 요즘 표현법에 빗대면 ‘착한’ 질환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무서운 것은 소리 없이 몸속에 자리 잡고, 시한폭탄처럼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는 질환이 아닐까. 경기도 부천시 세종병원에서 만난 최태현(崔太賢·70)씨도 그랬다. 예고 없이 나타난 증상에 당황했고, 더 큰 증상으로 자라는 두 번째 ‘
바야흐로 당구의 시대다. 예전에도 TV에서 간간이 당구 게임을 보여주기는 했었으나 지금은 아예 당구 전문 채널이 생겨 하루 종일 당구에 관한 방송을 내 보낸다. 이 방송을 보면서 당구도 이제 드디어 빛을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당구장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았다. 할 일 없는 동네 불량배들의 아지트로 인식되거나 담배 연기 자욱한 실내 분위기
필자 가족이 놀러 간 적이 딱 한 번 있다. 5남2녀로 나는 맏딸이다. 엄청난 식구가 놀러 갈 수 있는 차가 있던 것도 아니고, 버스를 타야만 했다. 그 버스도 하루 다섯 차례 다녔다.
필자의 고향은 괴산이다. 그곳에는 쌍곡, 화양동이 있는 휴가지다. 필자 집은 그 곳에서 십 여리 떨어진 곳에 살았다. 사람이 붐비는 휴가철이 되면, 버스에 사람이 꽉 차서
1960년대의 일이니 꽤 오래된 기억이다. 여유로운 어느 주말 오후, 뮌헨 거리를 한가로이 지나가는데, 한 미술관 출입구 주변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필자는 무심코 미술관 벽면을 크게 장식하고 있는 플래카드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1898~1967)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줄담배를 피웠던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금연을 시작하였다. 금단현상이 너무 심하여 수많은 중단위기를 맞았으나, 17년 동안 한 개비도 피우지 않았다. 이제는 담배를 피우고 싶은 유혹을 다 뿌리치고 금연에 성공하였다.
한여름 더위에 가벼운 차림으로 산에 올랐다. 중간에서 친구와 간식을 들면서 쉬고 있었다. “산에서 담배를 피우면 되는 거예요?” 누구인가 소
미국 구인ㆍ구직 정보업체 ‘케리어 캐스트 닷컴(Career Cast.Com)’이 발표한 2016년 ‘미국 최고의 직업 10개’를 보면 IT 관련 업종이 4개나 차지하고 부동의 1위에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랭크됐다. 그만큼 이 시대의 화두는 IT다. 이런 변화가 불과 30년 이내에 일어나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시니어들로서는 숨 가쁠 수밖에 없다.
필자가
몇 시간을 달려왔는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부모님을 따라 청량리역에 내린 시각은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이었다. 청량리역을 나서면서 필자 입에서 나온 일성은 ‘아부지! 하늘에 호롱불이 좍 걸려 삣네요’였다. 그때가 필자 나이 9세이던 1966년 가을이었다.
필자는 경주 인근 작은 산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곳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이었다. 초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