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사소한 일로 마음 상하는 일이 있다. 평소 같으면 쉽게 넘어갔을 행동이나 말 한마디도 고깝게 느껴지는 경우가 그렇다. 부부 사이도 그렇고 친구 사이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가까운 사이에서 발생한다. 지나서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왜 그랬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의 심정은 말도 하기 싫을 정도로 미운 생각이 든다. 그래서 부부 사이에도 그런 다
외출하고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당신 어제 혹 좋은 꿈을 꾸지 않았느냐”고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말한다. 복권에 당첨이라도 된 얼굴이다. “아니 아무 꿈도 꾸지 않았는데 무슨 좋은 일 있어?” 하고 물어보았다. 자꾸 말을 빙빙 돌리기만 하고 통 말할 생각을 안 한다. 표정으로 봐서는 좋은 일이 분명한데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말하라 독촉하면 재
우리 집은 딸과 아들이 애를 둘씩 낳아 손주가 넷이다. 식구가 늘다 보니 가족들과의 소통을 위해 단톡방을 개설하기로 했다. 필요한 소식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사소한 집안일이나 유익한 생활정보까지도 올려놓는다. 그런데 한 달 전 딸애가 사진으로 찍어 올린 톡 내용은 매우 황당하기도 했고, 애들이 어른들에게 한 방 펀치를 날리는 충격을 주었다.
사연은
지금은 베트남이 친숙한 이름이지만 예전에는 월남으로 통칭되었고, 특히 월남전으로 상기되는 우리에게 있어선 ‘베트콩’과 미국 영화 ‘람보’가 더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세계평화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1964년 9월을 시작으로 건군 이후 최초로 해외에 우리 국군이 파병됐다.
주월사 부대를 필두로 맹호, 백마, 청룡, 비둘기, 십자성,
만나고 보니 꽤나 독특한 삶이다. 마치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듯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다. 완벽하게 전문적이고 색다른 인생담. 전생과 현생을 말하는 듯 세대를 넘나드는 사건 전개. “내가 무슨 인터뷰할 게 있어”로 시작했지만 누구보다 특별하고 치열한 역사 드라마를 고스란히 감상한 느낌이랄까? ‘선데이서울’ 전 방송사 출입기자이자 MBC 전 복싱 해설위원
도시락의 추억은 초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가게 한다. 저학년 때는 오전반, 오후반 이부제로 나누어 등교했지만 고학년(4학년 이상)은 도시락을 싸들고 등교를 했다.
지금은 어느 곳을 가도 음식점이 많아 끼니를 건너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젊었을 때는 도시락을 싸들고 학교나 직장을 다녔다. 일반인이 매일 식사를 식당에서 해결하는 일은 경제적으로
일본 사람들의 단체생활은 남다르다. 자기보다 남을 배려하는 친절성도 그렇다. 그 버릇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몸에 뱄음을 느끼는 계기가 있었다. 얼마 전 일본 여행에서 눈으로 직접 본 초등학생 등교 모습에서 그 이유를 발견했다. 마침 일찍 이동해야 하는 여행 일정이어서 학교에 가는 초등학생들을 버스 차창 밖으로 볼 수 있었고 우리나라와 다른 점을 쉽게 발견할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기상청 기상레이더센터에 따르면 낙뢰 발생 횟수는 총 62만 9411건으로, 연평균 12만 5882건에 달했다. 주로 장마철인 7~8월에 대기가 불안정해지면서 낙뢰가 집중되는데, 매년 낙뢰로 추정되는 화재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국민안전처 집계 결과, 해당 기간에 총 354건, 연평균 약 71건의 낙뢰 피해 사고가 발생했으며,
시내 중심가 중앙로역에서 전철을 타려고 계단을 내려가는 중이었다. 오후 4시가 넘었고 날씨는 무더웠다. 무심히 내려가는데 계단 중간지점에 할머니가 백 원짜리 동전 두 개가 담긴 빨간 플라스틱바구니를 앞에 놓고 구걸하고 있다. 고개 숙인 채 챙이 넓은 썬 캡을 쓰고 있다. 웅크리고 앉은 모습이 마치 작은 돌하르방 같다. 내 앞에 가던 아이가 자기 주머니에서
일주일에 한 번, 우리 집으로 영어를 배우러 오는 50세 독신녀 제자가 있다.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심하게 앓아서 두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해 목발로 걷는다. 초등학교까지는 엄마가 업어서 다녔다고 했다. 성장을 하고 덩치가 커지자 어머니의 등에 더 올라탈 수 없었다. 자가용 자동차도 흔하지 않던 시절,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어 그만두었다. 대신 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