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의 시간을 걷다 (김세리 외 공저·열린세상)
5000년에 걸친 동아시아 차 문화의 역사를 향긋하고 산뜻하게 풀어낸다. 고전에서 낭만, 실용의 시대까지 차의 시대별 변천사를 다양한 문헌과 회화로 소개한다.
# 나이 따위, 잊고 살랍니다 (시모주 아키코 저·이터)
왕년에는 아나운서로, 현재는 일본여행작가협회 회장으로 활동 중인 82세 저자의 유쾌한 에세이. 나이에 얽매이지 말고, 하고픈 일을 하며 자유롭게 살아갈 것을 제안한다.
# 황야의 이리 (헤르만 헤세 저·을유문화사)
자아를 찾아 끊임없이 방황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전후 사회에 대한 헤세의 인식이 고스란히 담긴 자전 소설로, 그의 사상과 철학을 엿볼 수 있다.
# 퀸 메릴 (에린 칼슨 저·현암사)
최고의 배우이자 어머니인 메릴 스트립의 삶을 조명한다. 치열한 할리우드 생존기부터, 인생을 바라보는 가치관까지 '철의 여인'의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 노화의 종말 (데이비드 A. 싱클레어 외 공저·부키)
노화는 정상이 아닌 질병이다? 장수 분야 세계 최고 권위자가 노화의 비밀을 밝힌다. 인간을 늙게 하는 한 가지 원인과 획기적인 장수 비법을 공개한다.
# 하루 여행 하루 더 여행 (최갑수 저·보다북스)
여행작가 최갑수가 직접 다녀온 국내 여행지 50곳을 테마별로 소개한다. 모든 코스는 당일치기 또는 1박 일정으로 긴 여행이 어려운 현대인의 맞춤형 여행서다.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2020년은 나의 고교 졸업 50년, 대학 입학 50년이 되는 해다. 고교 졸업 50년 행사와 기념 여행은 코로나의 위험 속에서도 이미 6월에 강행했다. 이보다 앞서 5월에는 대학 동기들이 모교에서 재상봉 행사를 했다. 많이도 달라진 교정을 둘러보며 반세기 전에 맺은 우정을 되새긴 모임은 재미있고 유익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성에 차지 않은 탓일까. 고려대 독문과 70학번 동기들은 전북 군산 고창 일대를 도는 노래여행을 추가로 기획했다. 서울, 서천, 부산에서 각각 모인 여덟 명은 7월 25~26일 1박 2일 동안 호쾌(豪快)하게 술 마시고 창쾌(暢快)하게 노래했다. 동기인 전북대 독어교육과의 이신구 명예교수가 2월에 ‘헤세, 토마스 만 그리고 음악’이라는 책을 낸 이후, 단톡방을 중심으로 음악에 대한 관심과 화제가 풍성해졌다. 그래서 ‘한번 신나게 노래 부르며 놀아보기로’ 의기투합을 한 것이다.
늘 친구들을 도와온 캠퍼스 커플 김한옥(사업)-김영숙 부부가 앞장을 서고, 군산의 뮤직 카페 단골인 이신구 교수가 생각을 더해 노래경연 모임은 이내 결성됐다. 모인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목자(目眥, 눈이 가는 길 또는 눈의 방향)가 불량하다고 내가 늘 지청구하는 부산 사내 윤종기(1등 입학자다), 엄처시하(嚴妻侍下)에 사는 음악광 독일 전문가 배종은(그의 부인이 嚴씨다), 경쟁자 없이 동기회의 회장을 오래 맡고 있는 강국회, 서천에서 활동 중인 연극 연출가 고금석 등이다.
우리가 한바탕 푸지게 논 장소는 군산의 은파호수 옆 ‘Music4u’(뮤직포유) 카페. 토요음악회를 200회나 개최한 곳인데, 이 교수는 이곳에서 문학 강연도 해왔다고 한다. 카페 2층의 널따란 음악당에는 ‘4u’를 발음대로 옮긴 ‘抱裕’(포유) 액자가 걸려 있었다. 서로 너그럽게 안는 여유를 가지라는 뜻인가. 나는 서로 끌어안고 노는 抱遊, 이렇게 쓰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왜 그렇지 않던가. 흥이 나서 노래를 하다 보면 어깨를 겯거나 서로 안고 놀게 되지 않던가.
우리는 누가 무슨 노래를 잘 부르는지 이른바 각자의 18번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아내의 노래, 올챙이 멜로디(Unchained Melody), 엽서 한 장, 모란이 피기까지는, 명태, 메리케인부두 그런 노래들. 나는 이 중 ‘명태’(변훈 작곡)를 50년 전 대학 1학년 때 고금석에게서 배웠다.
고금석은 서예에 입문해 이미 입선도 두어 번 한 사람인데, 산곡(山谷)이라는 호를 쓴다. 내가 얻다 대고 중국 송나라의 서예가 황정견(黃庭堅, 1045~1105)과 같은 호를 쓰느냐고 따졌더니 그의 호가 산곡인 줄 몰랐다, 사는 동네 이름이 산너울이라서 그렇게 지은 것뿐이라고 했다. 괘씸하지만 용서해주기로 했다.
하여간 나는 50년 전 산곡에게 내 레퍼토리 ‘메리케인부두’(남일해 노래)를 떠넘기고 ‘명태’를 내 노래로 만들었다. 앞으로 내가 있는 자리에서는 절대로 ‘명태’를 부르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냈다. 그러나 나는 치사하게 그가 없는 자리에서는 원래 내 노래인 것처럼 두 가지를 다 불렀다. 결국 산곡에게서 노래를 빼앗은 꼴이 돼버렸다.
이번 군산 여행에서 나는 노래를 되돌려준다고 했다. 그리고 50년 전 처음 만났던 때로 돌아가 그는 ‘명태’를, 나는 ‘메리케인부두’를 불렀다. 그가 부르는 ‘명태’는 호소력이 컸다. 오래 연극을 해온 목소리의 울림이 좋은 데다 삶의 곡절과 간난신고(艱難辛苦)가 노래에서 우러나왔다. 그에 비하면 내 노래는 흥은 좀 있으나 스스로 들어봐도 그 이상의 무엇이 없다.
웃고 떠들고 노래한 뒤 호텔에 돌아와 산곡과 나는 침대에 누운 채 ‘명태’를 부르며 둘의 가사를 대조해보았다. 내가 그에게서 배웠는데 왜 내 ‘명태’와 그의 ‘명태’는 다를까. 괄호 안이 그의 가사다.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 지어 찬물(큰물)을 호흡하고 길이나(기다란) 대구리가 클 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며 춤추며 밀려다니다가(뭉치고 펑퍼지고 몰려다니다가) 어떤 어진(착한)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에집트(제집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쐬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그는 ‘명태’를 어떻게 부르게 됐는지 잘 모른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서 노래를 배운 뒤 가사를 찾아서 외우고 익혔다. 말하자면 나는 그동안 교과서처럼 살아왔고 산곡은 열정이 닿는 대로, 마음이 이끄는 데로 움직이며 살아온 게 아닌가 싶다. 이번에 노래를 되바꾸자, 도로 ‘명태’를 가져가라고 한 데 대해서도 그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렇다고 ‘메리케인부두’가 돌려주기 아까워서 그런 게 아닌 건 확실하다.
그런데 나는 이 노래를 어떻게 알았던가. 모르겠다. 1965년 무렵 남일해가 부른 노래라는 것만 알 뿐인데 이 기억도 정확한지 자신이 없다. 2절에 “트위스트 춤을 추는 신나는 그 리듬에”라는 가사가 나오는 걸 보면 1960년대인 건 확실하다. 원곡은 그렇지 않겠지만 나는 이 노래를 한껏 늘어지게 타령조로 부르곤 한다.
다음 날은 고창으로 옮겨 선운사, 미당 시문학관, 인촌 김성수 생가 등을 둘러보았다. 비 내려 수량이 풍부해진 선운사 계곡의 물은 검게 보였다. 참나무의 낙엽에 들어 있는 탄닌 성분이 녹아든 탓이라고 한다. 덕분에 수면에 비치는 풍경은 훨씬 더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마지막 일정으로 점심을 먹을 때, 산곡은 노랫가락을 한자리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경기민요였다. “바람이 물소린가 물소리 바람인가/석벽에 걸린 노송 움츠리고 춤을 추네/백운은 허우적거리며 창천에서 내리더라.” 푸른 하늘에 흰 구름, 그리고 소나무와 바람과 물. 짧은 노래에 한 폭의 그림이 들어 있다. 경기민요의 많은 소절 중에서 가장 시적인 대목이었다.
그렇구나. 산곡은 이미 내가 모르는 곳에 가 있고, 그의 노래는 더 풍부해졌구나. 그러니 굳이 ‘명태’를 되찾아갈 필요가 없겠지. 나는 더 이상 그에게 노래를 되돌려줄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각자 ‘명태’를 깜냥껏 부르고 편한 대로 ‘메리케인부두’를 흥겹게 노래하면 되는 것이었다. 노래가 탄닌이 되어 그와 나, 그리고 우리 모든 벗들의 우정이 수량이 풍부한 냇물처럼 흐르고, 키 크고 잘 자란 나무처럼 여울지면(여울지다=식물의 열매나 꽃, 잎 따위가 몹시 많이 열리다.) 되는 거 아닌가. 노래는 부르는 사람의 것이고, ‘글이 곧 그 사람’이듯 ‘노래도 곧 그 사람’인 것이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테마파크나 박물관 등은 해외여행을 할 때 빠지지 않는 필수 코스다. 물론 현지에서 즐기는 게 제일 좋겠지만, 여의찮을 땐 멀리 가지 않아도 국내에서 하루 만에 그 매력을 엿볼 만한 곳들이 있다. 게다가 현지에서도 보기 힘든 진귀한 아이템들도 마련돼 있어, 그야말로 해외여행 못지않은 알짜여행을 할 수 있다.
CHAPTER 1 한국 속 작은 세계 마을을 만나다
제주에서 물 만난 물의 도시 ‘베니스랜드’
이탈리아 베니스(베네치아)의 아름다움을 재현한 테마파크다. 물의 도시로 알려진 베니스의 풍광이 물 많기로 유명한 제주의 지형과 만나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세계 오지 박물관과 베네치아 갤러리 등에서 전 세계의 귀한 유물들을 관람하거나, 곤돌라(베니스 시내를 운항하는 작은 배)를 타고 베니스 운하를 간접 경험할 수 있다. 23개의 테마 정원이 조성된 ‘아일랜드 가든’과 시원한 물줄기를 내리꽂는 ‘베니스폭포’, 베니스 광장의 가장 오래된 카페를 재현한 ‘플로리안’ 등 이색적인 풍경을 벗 삼아 다채로운 체험을 즐겨보자.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 2575 (입장료 성인 1만2000원)
베니스의 추억을 간직하려면 >> 해외 관광 명소를 방문하고 나면 꼭 들르는 곳이 바로 기념품 가게다. 베니스랜드의 ‘기념품 숍’에서는 베니스와 관련된 각종 상품을 비롯해 세계 오지에서 공수한 독특한 아이템과 제주 특산품들을 구입할 수 있다.
청평 호반 위 아름다운 소행성 ‘쁘띠프랑스’
한국 속 작은 프랑스 마을을 뜻하는 ‘쁘띠프랑스’에서는 프랑스는 물론 유럽의 문화와 정취를 고루 느낄 수 있다. 생텍쥐페리 기념관을 비롯해 어린 왕자 체험존, 유럽 인형의 집, 기뇰극장, 프랑스 전통주택 전시관 등 볼거리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특히 ‘메종 드 오르골’에서 진행하는 오르골 시연과 야외극장 마리오네트 퍼포먼스는 놓치지 말아야 할 관람 포인트. 수백 년 역사가 깃들어 있는 오르골과 희귀 마리오네트 등을 만날 수 있다. 또 마을 곳곳에는 무려 150년 된 목재와 기와, 바닥까지 프랑스에서 가져와 재현한 전통 가옥이 있다. 그밖에 쁘띠프랑스 한홍섭 회장이 100여 차례 유럽을 오가며 직접 공수해온 골동품과 미술품도 다양하게 전시됐다.
경기 가평군 청평면 호반로 1063 (입장료 성인 1만 원)
당일치기가 아쉽다면? >> 즐길 거리 많은 쁘띠프랑스에서의 하루가 아쉽게 느껴진다면, 고급스러운 유럽풍 객실에서 하루 더 머물러도 괜찮다. 2인실부터 최대 10인실까지 다양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객실이 크기별로 마련돼 있다. 숙박 다음 날 아침에는, 맑은 공기를 쐬며 ‘봉쥬르 산책길’을 거닐어도 좋다.
CHAPTER 2 영월에서 오가는 인도와 아프리카
오감으로 즐기는 인도문화체험 ‘인도미술박물관’
1981년부터 인도미술에 매료돼 현지에 머무르며 인도에 관한 주제로 여러 개인전을 개최해온 박여송 관장과 인도 지역 연구가인 남편 백좌흠 교수가 모은 다양한 인도미술품들을 전시한다. 라자스탄 지역의 페인팅과 세밀화를 비롯한 인도 전역의 부처상과 힌두인상, 패널 조각과 탈 등으로 꾸며졌다. 전시품 관람과 더불어 인도 미술 기법, 헤나 보디페인팅, 요가와 만다라, 인도 의상, 인도 음식 체험 등을 통해 인도 문화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강원 영월군 주천면 송학주천로 899-6 (입장료 성인 5000원)
아프리카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영월 아프리카미술박물관’
아프리카 여러 부족의 생활, 의식, 신앙, 축제 등과 관련한 조각, 그림, 생활도구, 장신구 등을 만날 수 있다. 아울러 16개국의 주한 아프리카 대사관이 출품한 아프리카 문화전을 반영구적으로 선보인다. 올해 12월까지는 ‘2020년 박물관 길 위의 인문학’(문화체육관광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스마트한 아프리카 배낭여행’, ‘컬러풀 아프리카’ 등을 진행한다. ‘나만의 비즈팔찌 만들기’와 ‘나만의 아프리카 부족 마스크 만들기’ 등도 체험 가능하다.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진별리 592-3 (입장료 성인 5000원)
CHAPTER 3 세계 문화를 휘리릭, 헤이리 한 바퀴
콜라의 이국적 매력이 콸콸 ‘잇츠콜라박물관’
세계 각국 유명 작가들이 참여한 콜라 디자인과 관련 장식품, 생활용품 등을 모았다. 해외 각지에서 모은 병, 뚜껑, 올림픽 스페셜 에디션 등 그 나라마다의 매력을 담은 콜라를 만난다는 게 흥미롭다. 곳곳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이색적인 사진을 남기거나 콜라를 활용한 음료도 즐길 수 있다.
경기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76-40 (입장료 성인 4000원, 변동 가능)
세계 어린이들의 동심을 담은 ‘세계인형박물관’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공수한 1000여 점의 전통 인형을 전시한다. 박물관 입장과 동시에 작은 목각 인형 하나를 선물로 받는데, 관람을 마친 뒤 나만의 인형으로 꾸며볼 수 있다. 소정의 금액을 지불하면 프랑스의 마리오네트, 러시아의 마트료시카 등을 직접 만들 수 있다.
경기 파주시 헤이리마을길 76-100 (입장료 성인 5000원)
내 손으로 연주하는 ‘세계민속악기박물관’
120여 개국의 민속악기, 음반, 민속품 등 2000여 점의 소장품을 감상할 수 있다. 아시아, 중동, 아메리카, 유럽 등 문화권별로 나뉘어 전시돼 있는데, 곳곳에서 각국 현지에서도 보기 힘든 유물급 악기들이 눈에 띈다. 몇몇 악기들은 만져보고 두드리며 직접 연주도 해볼 수 있다. 11월까지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레인스틱(빗소리가 나는 라틴아메리카 악기)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고, 8월 29일에는 볼리비아 음악 특별공연이 열린다.
경기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63-26 (입장료 성인 5000원)
사진 이지혜 기자, 각 사 제공
주식투자 한 번쯤 안 해본 사람도 드물 것이다. 한때 직장인들 사이에서 주식투자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주식이 올라 용돈이 생기면 저녁에 술도 한잔 사고 호기도 부렸다. 증권회사 직원들이 인기도 좋아 최고의 신랑감으로 꼽히기도 했다. 객장에 나가면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했다. 시세판이 붉게 타오르면 평소에 주식에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 객장을 찾게 되고 분위기에 휩쓸리곤 했다. 그래서 주식 격언에 “아기 업은 엄마들이 보이면 객장을 떠나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이미 과열되어 오를 만큼 오른 상태라는 주의경보였다.
시대가 바뀌어 지금은 증권회사 객장도 없어졌다. 정보통신기기의 발달로 컴퓨터나 핸드폰으로도 언제 어디서나 주식을 사고팔 수 있어서다. 시뻘겋게 타오르던 전광판도 새파랗게 질리던 전광판도, 그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던 투자자의 탄성과 탄식의 모습도 볼 수 없다. 개인의 손안으로 옮겨져 각자 매진할 뿐 예전의 왁자지껄하던 객장의 모습은 이제 추억이 되어버렸다. 객장은 특히 은퇴자들의 쉼터요, 놀이터이기도 했다.
나도 한때 주식으로 희비를 맛본 경험이 있다. 주식투자 바람이 한참 불었을 때의 이야기다. 대출이자가 저렴해 주식이 오르면 그 이자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용돈도 벌고 가족들 맛있는 음식도 사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컸다. 대출받았던 돈을 갚아야 할 때 잠시 그 돈으로 주식투자를 했다.
주식 공부를 한 것도 아니어서, 매스컴이나 증권회사 직원의 추천을 받아 투자했다. 산 주식이 오르락내리락하기를 반복했다. 오른 날은 세상 다 가진 기분이었다가 내린 날은 다운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이거다 싶어 선투자한 것이 화를 키웠다. 소 떼를 몰고 H회사 회장이 노구에 삼팔선을 넘는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였다. 이때다 싶었다. H건설이 남북 화해 무드를 타고 성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거의 몰아넣었다. 결과는 참패였다. 그 후 H건설은 감자가 결정되어 투자 금액이 반토막 나버렸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주식을 공부할 수 있는 시간도 여건도 안 되어 전문가에게 맡겨보기로 했다. 당시 두 경제신문 하단을 장식하는 투자 전문가에게 적지 않은 수수료를 주고 회원가입을 했다. 주는 정보를 따라 사라면 사고, 팔라면 팔았다. 전문가의 정보이니 최소한 손해는 안 보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또 실패였다. 1년여를 버텨도 주식은 떨어져 계속 손실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도 맡겨봤으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락장에서는 전문가도 별수 없었다. 오죽하면 원숭이에게 원반을 돌려 찍게 한 종목과 전문가 추천 종목의 결과에서 원숭이가 찍은 종목이 더 많은 수익을 냈다고 하지 않는가? 결국 회원탈퇴를 했다.
그 후 포기 상태로 종목을 바꿔 보유하고 있었다. 이미 손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서 빠져나오면 만회할 길이 없어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를 몇 년째, 갑자기 객장이 붐비기 시작했고 시세판도 다시 붉게 타올랐다. 본격적인 상승장이 시작되었다. 세계 경기도 호황이었고 우리나라 사정도 덩달아 좋아졌다. 1년 안 되어 손해를 만회하고도 많은 수익이 났다. 그때 사건이 발생했다. 내 주식을 관리해주던 증권회사 담당 직원이 급한 일이 있다고 돈 일부를 빌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통장에 돈이 뻔히 있으니 없다고 할 수도 없고 빌려주고 몇 달 만에 돌려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 또 부탁을 했다. 돈 많은 사람이 많았을 텐데 왜 하필 나에게 자꾸 빌려달라 하는지 기분이 좀 언짢았다. 안 되겠다 싶어 며칠 뒤 급하게 돈이 쓸 데가 있다며 손실이 있는 종목까지 몽땅 팔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완전히 정리한 뒤 주식시장을 나왔다. 그러고는 다시는 주식시장에 가지 않았다.
주식 격언이 생각난다. “마지막에 남는 돈이 내 돈이다.” 아무런 지식도 없이 달려들었다가 정신적으로 스트레스 받고 힘들었다. 큰 교훈이었다. 그때 나오지 않았으면 손실을 만회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우량주였던 S증권 주식은 아직도 당시의 반값에 거래되고 있다.
등산의 바이블로 통하는 미국의 등산 도서 ‘마운티니어링’(mountaineering)의 부제는 ‘산에 자유가 있다’이다. 이 제목을 빌려 필자는 ‘트레킹에 자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트레킹은 등산보다 난이도가 낮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배낭 하나 메고 훌쩍 떠나 아름다운 자연과 교감하며 걸을 때, 얼마나 자유로운가. 트레킹을 즐기려면 그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트레킹이 등산과 다른 점, 건강에 좋은 이유, 철학자들의 트레킹 예찬론, 시니어들이 즐길 때 주의해야 할 점 등을 알아보자.
코로나19 사태가 몰고 온 언택트 시대에 트레킹 인구는 늘어나고 있다. 비교적 감염 걱정 없이 자연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트레킹은 느리고 고지식한 여행이다. 일반 여행은 차를 타고 여러 관광지를 찍고 다니지만, 트레킹은 온전히 두 발로 길을 여행한다. 속도가 느리기에 길에서 만난 새와 나무, 풀 한 포기와도 친구가 된다. 자연과 호흡하며 걷다 보면 느린 속도에 적응되고,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걸 느낄 수 있다. 치유는 트레킹이 은밀하게 건네는 선물이다.
느린 여행, 트레킹의 매혹에 빠지다
트레킹의 사전적 정의는 다소 애매하다. 백과사전에는 ‘목적지가 없는 도보여행 또는 산과 들과 바람 따라 떠나는 사색 여행’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목적지 없이 바람 따라 떠나는’ 트레킹은 없다. 트레킹은 목적이 뚜렷할수록 좋다. 그래서 필자는 나름대로 트레킹에 대한 정의를 내려봤다.
일반적으로 등산은 산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행위를 말한다. 반면 트레킹은 정상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정상을 대신하는 새로운 목적을 찾아야 한다. 산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이런 이유로 트레킹의 영역은 무한히 확장된다. 개인 취향에 따라 꽃길, 물길, 단풍길, 눈길, 강길, 섬길, 문학예술, 유적답사 등 다양한 목적과 테마를 잡을 수 있다. 그래서 트레킹은 육체적 행위이며 상상력이 강조되는 정신적 행위다.
트레킹은 걷기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 유산은 인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꾸준히 걸으면 누구나 건강해질 수 있다. ‘동의보감’에는 “좋은 약을 먹는 것보다 좋은 음식이 낫고, 음식을 먹는 것보다 걷기가 더 낫다”고 쓰여 있다. 우리 선조들은 걷기의 위대함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걷기가 각종 암과 성인병을 예방하고 치유한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인간은 걸으면서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존재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의 발을 다양한 교통수단이 대신하고 있다. 프랑스의 작가 다비드 르 브르통은 자신의 저서 ‘걷기 예찬’을 통해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고 주장했다. 걷기를 통해 느끼는 행복한 감정은 인간 존재의 정체성을 깨닫는 과정이다.
걷기를 삶의 모토로 삼고 불꽃처럼 살다 간 사람은 19세기 철학자 니체다. 그는 우울증을 걷기로 치유했다. 스위스 엥가딘 고원의 실스마리아(Sils Maria) 마을에 방을 얻어 지내며 호수를 걸었다. 이곳에서 역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탄생했다는 건 널리 알려졌다. 니체는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며 대부분의 작품을 걸으면서 완성했다. “앉아서 지내는 삶은 성령을 거스르는 진정한 죄악이다. 걷기를 통해 나오는 생각만이 어떤 가치를 지닌다”는 말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어디 니체뿐인가. 칸트, 루소, 디킨스 등 많은 철학자와 예술가가 걷기를 예찬했다.
시니어 트레커들이 주의해야 할 점
필자는 모험적 트레킹을 즐긴다. 모험은 인간의 피를 뜨겁게 하는 힘이 있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를 위해 노력하고, 마침내 목표를 이뤘을 때의 느끼는 희열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모험의 목표는 거창할 필요가 없다. 체력과 능력에 맞게 정하면 된다. 북한산 또는 지리산을 가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백운대나 천왕봉에 오르는 걸 목표로 하면 된다. 북한산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제주 올레길 완주는 더없이 훌륭한 목표다.
몇 년 전 필자는 오랫동안 꿈꿨던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다녀왔다. 포터 없이 홀로 히말라야를 자유롭게 걷자는 목표를 세웠다. 어깨를 짓누르는 짐의 무게와 고산병에 시달리며 죽을 고비도 넘겼지만, 끝내 목표를 달성했다. 이른 아침 맑은 공기를 마시며 병풍처럼 둘러싼 설산을 향해 걸어갈 때 느꼈던 행복함과 충만함은 아직도 깊게 남아 있다. 히말라야 산속 어느 로지에서 만난 5명은 공교롭게도 모두 혼자 온 트레커들이었다. 한국, 미국, 독일, 러시아, 이스라엘 등 국적도 다양했다. 트레킹을 좋아해 세상 구석구석 떠도는 자유로운 영혼들과 밤새 수다를 떨었다. 나는 한국의 제주 올레길을 추천했고, 그들에게 알래스카, 아이슬란드, 러시아 등의 알려지지 않은 코스를 알려줬다. 10년 후에 알래스카에서 만나자는 우리의 두루뭉술한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까.
시니어들이 트레킹을 즐길 때 주의할 점이 있다. 체력과 건강을 항상 점검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고는 무리하고 얕잡아볼 때 나온다. 자연 앞에서는 겸손하고 솔직해야 한다. 관절이 안 좋으면 스틱을 사용해 무릎이 받는 하중을 줄이는 게 필수다. 스틱은 관절이 받는 하중의 30%를 줄여준다. 트레킹 코스는 무리하게 짜지 말고 여유롭게 움직이는 게 좋다. 걸을 때는 되도록 술을 마시지 말자. 술은 과음을 부르는 법이고, 취하면 사고가 일어나기 쉽다. 술은 걷기를 마치고 마시는 걸 원칙으로 정하자. 트레킹에는 등급이 없다. 걷기를 통해 행복을 즐기는 자가 최고의 트레커다.
지구 한 바퀴의 거리는 약 4만 ㎞다. 하루에 11㎞ 정도를 1년쯤 걸으면 약 4000㎞다. 10년쯤 걸으면 지구 한 바퀴 거리다. 그 과정에서 얻는 건강과 반짝반짝 빛나는 사유는 보너스다. 그렇게 꾸준하게 걷다가 하늘이 부르면 미련 없이 떠나자. 나의 묘비명은 이렇게 쓰이면 좋겠다. ‘열심히 걷는 모습이 아름다웠던 사람’.
진우석 시인이 되다 만 여행작가, 걷기 달인으로 통한다. 학창 시절 지리산 종주를 시작으로 20년 넘게 걸었다. 저서로 ‘대한민국 트레킹 바이블’, ‘해외 트레킹 바이블’ 등이 있다. 현재 (사)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 두발로학교 교장을 맡고 있다.
전세계가 매운맛에 빠졌다. 한국의 매운맛이 전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지만, 소스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에도 존재한다. 한국 요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운맛이 있는가 하면 외국의 또 다른 매운맛도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지 않았고 해외로 드나드는 하늘길이 거의 막혔을 정도로 왕래가 없는 상황. 외국에 나가지 않더라도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듯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핫소스들이 있어 소개한다.
◇타바스코 소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핫소스는 타바스코 소스다. 이름만 들으면 멕시코나 코스타리카 같은 중남미 지역이 떠오르지만 우리가 접하는 제품은 1868년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매킬레니 사(社) 창업주인 의 에드먼드 매킬레니는 잘 익은 고추에 식초와 소금을 넣고 참나무통에 3년 동안 숙성 시켜 만든 소스를 ‘프티 앙스 소스’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했는데, 이후 미국 원주민 말로 ‘뜨겁고 온화한 토양’이라는 뜻의 타바스코로 이름을 바꿨다.
타바스코 하면 병에 붙은 다이아몬드 모양의 라벨 역시 하나의 상징이 됐다. 오뚜기를 통해 1987년 처음 우리나라에 수입됐으며 2018년 150주년을 맞아 함영준 오뚜기 회장과 토니 시몬스 CEO가 참석한 가운데 가로수길에서 ‘타바스코 글로벌 키친 이벤트 인 서울’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피자에 타바스코 소스를 뿌려 먹는 것은 굉장히 흔한 모습이 됐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타바스코 소스 하면 떠오르는 요리는 바로 피자다. 처음 미국에선 생굴과 함께 먹기 위한 소스로 인기를 끌었다. 맛과 향이 강한 탓에 보통 완성된 요리 위에 뿌려 입맛을 돋우는 데 좋다.
◇마라 소스
2019년 전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화젯거리였던 외식 트렌드라고 하면 마라(麻辣)를 꼽을 수 있다. 영화에서 마라륭샤를 먹는 장면들이 나오고 중국 여행이나 유학을 다녀온 학생들을 중심으로 ‘혈중마라농도’, ‘마라역세권’ 등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이후 마라전문점이 생겨나고 다양한 제품에 적용되는 등 유행을 넘어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마라 소스는 우리나라의 매운맛과는 다른 얼얼한 풍미가 매력이다. 마라는 중국에서 매운맛을 즐기는 쓰촨 지역의 소스로 육두구, 정향, 후추, 팔각 등 자극적인 향신료가 다양하게 들어간다. 그중 핵심은 화조유로 산초 열매에서 추출한 기름이다. 화조유는 얼얼한 맛을 극대화시킨다.
마라는 소스에 다양한 재료를 넣고 끓인 마라탕과 민물 가재를 마라소스로 볶은 마라룽샤, 야채와 마라 소스를 볶은 마라샹궈 등 다양한 방법으로 즐길 수 있다. 뿌려먹는 소스와 다르게 요리 전체의 풍미를 마라의 매력으로 만들어낸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마라 소스라 하면 ‘이금기 훠궈 마라탕 소스’를 꼽을 수 있다. 굴소스를 처음 개발한 이금기는 국내에 주로 중화권 소스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마라 소스 역시 정통 중국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간편 소스 형태로 출시해 휴대 및 보관이 편리하다.
◇스리라차 소스
인터넷의 발달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인해 미국, 유럽의 음식을 제외한 제3세계 국가들의 요리들을 국내에서도 즐길 수 있게 됐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태국과 베트남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요리다. 특히 베트남 쌀국수는 이제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도다. 동남아시아 요리 전문점에 가면 꼭 볼 수 있는 소스가 있는데 바로 스리라차 소스다.
스리라차 소스의 기원은 태국인데 미얀마 출신 노동자들이 시라차(Si Racha)로 이주해 만들었다는 설과 시라차 마을 출신 여성이 방콕으로 이주해 만들었다는 설이다. 스리라차 역시 타바스코처럼 음식위에 뿌려 사용되는 경우가 많으며 동서양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어울리는 것이 특징이다. 스리라차 소스는 다양한 브랜드에서 생산되고 있어 각자 자신에게 맞는 브랜드의 스리라차 소스를 찾는 것이 좋다.
◇촐룰라 핫소스
우리나라만큼 맵부심을 가진 멕시코의 대표 핫소스도 최근 국내 수입 식품관에서 찾을 수 있다. 멕시코의 대표적인 핫소스인 촐룰라는 아르볼고추와 삐낀고추를 향신료와 조화시킨 핫소스로 촐룰라라는 이름은 멕시코의 가장 오래된 도시의 이름을 따왔다. 멕시코와 인접한 미국의 레스토랑에서도 만나볼 수 있으며 신맛은 거의 없다. 멕시코 음식인 나초나 타코 또는 햄버거나 피자 등 다양한 요리에 곁들어 먹을 수 있다.
박종서(74) 관장은 우리나라 자동차 디자인 1세대로 이 분야의 선구자이자 산증인이다. 예술 관련 잡지와 도록들이 꽂혀 있는 책장, 박 관장이 직접 만든 모자이크 작품과 다양한 소품들, 도자기들이 정갈하게 진열된 공간에서 잔잔한 피아노 선율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옆자리에는 세 살짜리 고양이 금이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먼저 2019 디자인코리아 ‘디자이너 명예의 전당’ 헌정 대상자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대상자로 선정됐을 때 쑥스러웠다. 후배들이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추천을 못하게 했는데 일방적으로 받게 됐다. 나는 명예의 전당에 올라갈 정도로 인품이 있지도 않다. 옛날에 많은 가르침을 주신 은사님이 계신데, 그분의 영광을 위해 승낙했다.
코로나19로 미술관이 휴관 중인데 어떻게 지내시나요?
생활은 식칼과 똑같다. 한쪽에는 날카로운 면이 있고 한쪽에는 무딘 면도 있다. 삶은 내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제일 행복하다. 어려서 구석진 곳에 있으면 너무 편안했다. 그래서 책상 밑, 어머니의 재봉틀 발판 속, 장롱과 벽 사이로 들어가 있곤 했다. 어른이 되어 등산할 때도 바위틈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지금도 그렇다. 이 미술관을 지을 때 건축가에게 “유리로 만들어서 한눈에 다 보이면 안 된다. 내가 숨을 공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말했고 그런 공간을 확보했다. 저녁 식사 후에는 혼자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그날 일을 기록한다. 어제는 잎이 삐죽삐죽한 씀바귀를 스케치한 다음 마시던 커피를 이용해 잎사귀를 채색했다. 이런 시간들이 가장 행복하다.
관장님에게 디자인은 어떤 의미인가요?
음악은 심금을 울리고 감동을 준다. 사람을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한다. 그런데 디자인은 절대 사람을 울게 하지는 못한다. 감정적으로 음악만 못하다. 다만, 소유한 사람이 오래 소장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채워줘야 한다. 디자인은 항상 보편적인 개념을 존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비행기는 비행기다워야 하고, 자동차는 자동차다워야 한다. 자동차 디자이너는 자동차가 갖는 보편적 개념과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 무조건 새로운 게 디자인은 아니라는 뜻이다.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요?
안목이다. 공부를 잘한다고 훌륭한 디자이너가 될 수는 없다. 스킬은 배울 수 있지만, 창의력은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안목을 키우려면 흙, 나무, 종이 등 기본 물질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이것은 학습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대학에서 디자인 공부를 한다는 것은 10년 후나 20년 후에는 못 쓰는 지식을 배우고 있다는 뜻이다. 이를 지식의 반감기라고 하는데, 디자인은 90%가 없어진다. 지식이 반감되지 않으려면 내 손으로 만든 기억이 있어야 한다. 나는 무언가를 만들 때 어린 시절 진흙을 가지고 놀던 기억을 떠올린다. 진흙이 얼마나 미끄러운지, 어떻게 해야 갈라지지 않는지, 머리가 아니라 손이 기억하는 것들을 디자인에 적용한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이 남다르신데요. 자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자연은 인간보다 먼저 존재했고, 먼저 진화했다. 우리가 오늘날 겪는 시행착오는 이미 생태계가 오래전에 겪은 시행착오에 불과하다. 인간은 자연을 못 따라간다. 황금분할 1:1.61803은 암기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자연에서 뛰어놀았던 아이들 머릿속에 이미 다 들어가 있다. 유명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그렇다. 그냥 척척 했는데, 재보면 황금분할이다. 특별한 툴이나 연장이 필요 없다. 무엇을 만들고자 할 때는 주변에 있는 것들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도구를 구하러 다니는 동안, 초기의 생각이 변질되고 왜곡되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하면 거짓일기처럼 된다.
자동차 디자인의 장인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디자이너는 월급이 아니라 명예와 사명감으로 살아간다. 윗사람이나 상대 부서 등 타인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모델이 있어야 하고, 논리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공부하지 않으면 논리는 빈약해진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도둑맞은 내 생각을 찾아오기 위해서다. 독서를 하다 보면 내가 생각한 것들이 이미 글과 디자인으로 표현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는 바로 움직여야 한다.
아들 박찬휘 씨도 현재 아우디 디자인 파트에서 일하고 있지요?
아들은 페라리, 벤츠를 거쳐 현재 아우디에서 일하고 있다. 2022년에 나올 자동차 프로젝트명이 아들 이름을 딴 ‘CHAN22’라고 한다.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명예롭게 근무한다. 이곳을 마지막 직장으로 생각하고 싶다”고 말한다. 아들을 키울 때 자연을 많이 접하게 했다. 내가 커다란 종이에 그림을 그릴 때 같이 그렸다. 그런데 아들은 자기가 그린 그림들을 모두 버렸다. 내가 그것을 모아 유학 준비를 하는 아들에게 “이게 네 진짜 그림”이라며 건네줬다. 덕분에 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다. 아들은 이제 진실한 그림이 무엇인지 알고, 내게 많이 감사해한다. 자동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많이 부딪친다. 언젠가 내가 티뷰론을 실험적으로 다시 만들어보고 싶다고 하니, “은퇴 후 졸작들을 만들더라, 아빠도 그 꼴이 되고 싶으시냐, 하지 말라”고 했다.(웃음)
자동차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요?
자동차는 비행기가 될 수 없다. 비행기처럼 날아가는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동차는 그럴 수 없다. 미래에는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이 나와야 한다. 쓸데없는 것,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떼어내는 디자인을 해야 한다.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는 디자인 명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을 강조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 장식이 많아지고 허세가 넘친다. 지금 우리나라 차들이 그렇다. 대기업은 이제 소비자에게 판매만 할 것이 아니라 잘못된 인식에 대한 계몽적 마케팅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전기자동차부터 수소자동차, 자율주행자동차까지 자동차의 미래 트렌드가 많이 바뀔 것으로 예측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차의 형태가 지금과 같은 이유는 앞쪽에 엔진과 미션이 들어가고 뒤쪽에 트렁크가 있기 때문이다. 전기자동차라면 앞쪽이 텅 비어도 되니, 현재의 자동차 모습일 필요가 없다. 앞으로 고밀도 사회(high density society)가 도래하면 크기도 지금처럼 클 필요가 없다. 현재 패키지 레이아웃(package layout)은 가솔린 자동차 위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미래에는 모양과 디자인이 모두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테슬라도 그대로 하고 있다. 이게 급선무인데 관념에 묶여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 그게 제일 안타깝다. 소재도 철판으로만 한정하고 있는데 달라져야 한다. 카본 파이버는 철판보다 30배나 더 가볍다. 현재 쏘나타의 무게는 1톤에 가깝다. 카본 파이버로 바꾸면 200㎏ 정도밖에 안 된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나는 평생 메모를 습관화했다. 신입사원 시절 일본 출장을 갔다. 비행기 옆자리에 한 할아버지가 앉았다. 나는 멍하니 앉아서 가는데 그분은 뭔가를 계속 쓰고 있었다. “기록할 게 많은 일을 하시나보다” 했다. 나에 관해 물어봐서 신입사원이라고 했더니 “평소에 메모를 많이 해라. 윗사람이 지시하면 그것을 적어라. 상사가 묻기 전에 보고해라. 윗사람이 물어보는데 내가 ‘아차’ 한다면 이미 회사생활은 끝난 것”이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그 어르신은 일본 스미토모상사 그룹의 회장이었다. 그때부터 메모를 생활화했고 그 내용을 모아 책도 출간했다. 요즘 세대는 휴대전화나 컴퓨터에 기록한다지만, 우리 세대는 바로바로 손으로 쓰면서 생각도 정리하니까 더 좋은 것 같다.
좌우명이 있으신가요?
취미로 1990년대 초부터 스케이트를 탔다. 빙상 500m 쇼트트랙 전국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취미이지만 하나를 하더라도 기초만큼은 제일 탄탄한 사람이 돼야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정확한 자세와 아름다운 폼은 기본이 튼튼해야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코치에게 지도를 받았다. 스케이트를 타다 넘어지는 건 자세가 흔들렸거나 승부욕이 넘쳤다는 의미다. 뭐든지 기본을 먼저 갖춰야 한다. 기본 원리를 모르는 상태에서 테크닉부터 터득하려고 하니까 무너지는 거다.
아직도 열정적으로 일하고 계신데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뭔가 일을 벌이면 사람들은 “당신 나이가 몇 살인데 그래?” 한다. 대부분 그 말을 들으면 포기한다. 만약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생각날 때 바로 시작해야 한다. ‘포니정’으로 불렸던 정세영 회장은 “결론은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한다. 단점일 수도 있지만, 생각을 오래하면 하지 않을 구실을 찾게 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다.
노년을 준비하는 노하우가 있다면요?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산에 가면 작은 꽃, 작은 버섯, 이름 없는 가랑잎을 보면서 재미를 느낀다. 벌레 먹어 썩은 나무가 있으면 가져와서 그 흔적을 입체적으로 만들곤 하는데, 벌레가 그린 그림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남들이 보면 정신 나갔다고 할 수도 있다. 자연은 그 나름대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만 누구에게나 다 보이는 건 아니다. 보고자 하는 사람, 뜻이 있는 사람에게만 보여주고 길을 열어준다. 즐거운 일, 사랑할 일이 구석구석에 많다.
우리 연배 사람들은 우리나라 경제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을 하는 화물차처럼 중요한 존재다. 그런데 노인들을 홀대한다. 이런 풍토는 바뀌면 좋겠다. 나이 들면 하찮고 소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찾길 바란다. 남을 배려할 줄도 알아야 한다.
버킷리스트가 있으신가요?
첫 번째로 이탈리아 스승을 기념하는 작품을 만들려고 한다. 페라리 자동차를 만든 명인 스칼리에티는 나의 스승이다. 14세 때 기름 1ℓ를 넣은 오토바이를 타고 모데나에서 베로나까지 100㎞ 구간을 갔다고 한다. 집에 돌아올 때는 적정 속도와 연료 소모량을 계산해, 오토바이를 개조한 다음 소량의 연료만으로 오는 데 성공했다. 지난달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1950년대 벨로솔렉스 오토바이를 주문했다. 미술관 아래 밭 근처에 있던 밤나무가 죽었다. 지름이 1m 정도 되는 큰 나무였다. 그 나무와 오토바이를 결합한 작품으로 스승에게 보답하는 오마주 작업을 준비 중이다.
두번째는 책을 출간하려고 한다. 10년 전 ‘꼴, 좋다! 자연에서 배우는 디자인’이라는 책을 펴냈다. 강의 교재로 썼던 내용을 쉽게 풀어쓴 것으로, 모든 형태는 자연을 따른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지금 두 가지 책을 구상 중이다. ‘꼴, 좋다’와 같은 내용의 글을 새로 써서 큰 사이즈로 낼 계획이다.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 스승에게 들은 자동차와 카로체리아(carrozzeria)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소개할 생각이다. 카로체리아는 디자인 능력을 갖춘 소량 주문제작 방식의 자동차 회사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집 뒤에 있는 500평(1652㎡) 규모의 정원을 영국의 채리티 가든(Charity Garden)처럼 만들고 싶다. 자선 정원으로 운영해 입장료를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해 사용하고 싶다. 이 사업은 아내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미술관을 통해 이미 사회에 기여하고 계신데요. 사재를 들여 지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미술관을 통해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었다. 꼭 자동차와 관련된 꿈이 아니어도 좋다. 과학자가 될 수도 있고 미술가가 될 수도 있다. 그 꿈을 이곳에서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현재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교수로 있는 김상배 박사의 경우가 그렇다. 그가 연세대 공대를 졸업하고 뭘 할지 몰라 고민할 때 내가 “천장에서도 떨어지지 않는 도마뱀을 가지고 연구해봐라” 했다. 이후 스탠퍼드대학에 들어가더니 졸업작품으로 유리벽을 타고 오르는 로봇을 만들어 미국에서 올해의 과학자에 선정되었다. 많은 분이 여기를 자유롭게 방문하시길 바란다. 예약하면 전문가가 해주는 설명도 들을 수 있다. 다이아몬드는 장식품에 불과하지만 동일한 탄소 성분으로 이루어진 흑연 연필은 꿈을 그릴 수 있다. 연필로 꿈을 그리듯 이곳이 모두의 꿈을 그릴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 연필의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소망도 커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와 ㈔한국방역협회는 19일 ‘시니어 구직자 취업활성화’를 위한 업무 협약식을 진행했다.
이번 협약을 통해 '구직자 맞춤 방역전문가 직무훈련 개발' 및 '훈련 진행을 통한 인력 양성', '방역전문 인력의 현장 취업 지원' 등을 상호 협력하게 된다.
어르신 일자리 일자리를 발굴하고 시니어 맞춤 교육을 추진하는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는 ‘방역전문가 훈련’을 통해 포스트코로나 시대 수요가 증대되는 방역분야에서 시니어 일자리의 기회를 확대하고자 한다.
‘방역전문가 훈련’은 만 50세 이상 서울 거주 구직자라면 누구나 지원이 가능한 무료 교육과정이며, 7월 6~7일 교육을 실시한다. 훈련 내용은 재취업의 자세 방역전문가의 이해, 방역·소독 실무, 위생해충의 생태 및 방제, 소독장비의 종류 및 사용법이다.
훈련과정 중 현장실습을 통해 실제 소독 장비를 다뤄볼 기회를 제공하고, 수료 후에는 구직상담, 구인정보 제공, 사후관리를 통해 시니어 구직자의 취업을 지원한다.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 희유 센터장은 “㈔한국방역협회의 전문성과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에 어르신 구직자가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며 “서울시고령자취업알선센터와 연계하여 방역전문가를 양성하고 어르신 구직자 일자리 시장을 확대 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방역협회 홍원수 회장은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와의 협약을 통해 대내외적으로 방역의 활성화가 필요한 시국에 부족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자 한다"며 "현장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양 기관이 협력하여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훈련 참여를 희망하는 구직자는 전화 또는 홈페이지에서 신청 가능하다.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 홈페이지 교육신청 게시판을 통해 보다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훈련 일정은 코로나19 확산방지 및 예방조치로 변경될 수 있다.
근 반세기가 지나도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 되면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다.
가을 잎 찬바람에 흩어져 날리면 캠퍼스 잔디 위엔 또다시 황금 물결
잊을 수 없는 얼굴 얼굴 얼굴 얼굴들 루루루루루 꽃이 지네 루루루루루 가을이 지네
‘날이 갈수록’이다. 이 노래를 부른 기라성 같은 가수는 많은데 정작 작곡·작사자는 잘 모른다. 어떤 이는 ‘몇 미터 앞에 두고’, ‘안돼요 안돼’ 등을 부른 트로트 가수 김상배의 자작곡으로 알고 있다. 가수 김상배가 ‘가요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를 때면 TV 화면 밑으로 ‘작곡·작사·노래 김상배’라는 자막이 뜨기 때문이다.
웃픈 현실이다. 이 노래의 원작자인 김상배 씨가 50여 년 만에 인터뷰에 응했다.
그동안 그가 얼굴 없는 작사·작곡가로 발표한 노래는 70여 곡이나 된다. 공전의 히트곡 ‘날이 갈수록’은 1971년 가을에 만들어졌다. 대학교 2년을 마치고 입대한 김상배 씨가 휴가를 얻어 오랜만에 방문한 교정에서 뒹구는 낙엽을 보며 즉흥적으로 만든 노래다.
이 노래는 신촌 대학가를 중심으로 운동가요처럼 불리다가 마침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영화를 만들고 있던 故 하길종 감독 귀에까지 들어갔다. 영화 주제곡을 찾지 못하고 있던 하 감독은 대학가에서 불리던 이 노래를 듣고 원작자 김상배 씨를 수소문해 만났다.
이후 ‘날이 갈수록’이 ‘바보들의 행진’ 주제곡으로 선정되면서 김상배 씨는 영화 각색에도 참여하고 음반 크레디트에도 작사·작곡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 기타도 배우고 피아노도 배웠지. 근데 음악을 하겠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집에 있던 기타며 피아노를 다 때려 부수더라고. 그래서 할 수 없이 대학은 그나마 국문학과로 입학한 거야. 그런데 거기 들어가서 희곡 쓰고 연출한다며 또 난리치고 다녔지.”
연세대학교 국문학과를 전공으로 택했지만 그는 몰래 음대 작곡학과 강좌를 들었다. 그리고 이때 한 학기 동안 도강한 ‘작곡에 대한 이해’를 밑천 삼아 틈틈이 노래를 만들었다. 당시 작곡에 대한 강의를 한 교수도 그가 도강한다는 걸 알았다. 처음에는 뭐라 하더니 학기가 끝날 때쯤에는 포기하고 오히려 그의 열정을 칭찬했더란다.
집안의 반대로 그의 음악적 재능은 더 이상 뻗어나가지 못했지만 음악적 재능 못지않은 문학적 능력만큼은 제대로 발휘했다. 대학생활 내내 희곡 창작에 빠져 지낼 만큼 연극에 미쳐 살았다. 학교 수업 때문이라고 하면 아버지도 더 이상 어찌하지 못했다. 그저 연극에 빠져 사는 아들을 못마땅해하는 것밖에 없었다.
“국문학과를 다니면서 연극반 동아리 활동을 했어. 희곡 쓰고 연출하고… 당시 동아리 후배였던 마광수도 함께 활동했지. 1974년 가을이었어. 내가 ‘어느 애꾸의 죽음’이라는 창작극을 쓰고 무대에 올리기 위해 연습을 한창 하고 있을 때였어. 공연 하루 전날 갑자기 서대문경찰서에서 형사들이 들이닥쳐 연극반 학생들을 끌고 간 거야. 내가 ‘박정희 대통령이 죽을 것이다’ 그런 말을 했다는 거지. 아니 그럼 사람이 안 죽어? 신이야? 그냥 그런 차원에서 말을 한 건데 우리가 무대에 올리기 위해 연습하던 작품이 마음에 안 들었던 거지.”
문학적 상상력과 음악적 재능을 뽐내던 청년
1970년대는 박정희 정권에 대한 어떤 비판도 허락되지 않던 시절이다. 동네 저잣거리에서 막걸리 한잔하면서 안주 삼아 통치자에 대해 비판 한마디라도 하면 긴급조치 아래 구속 수감되던 서슬 퍼런 통치의 시대였다.
유명 대학교의 연극 공연 등 주요 행사는 보안과 형사들이 눈을 치켜뜨고 감시를 했다. 희곡 작가였던 김상배 씨도 당연히 사찰 대상이었다. 그때 경찰서에 잡혀간 그는 감금된 상태에서 죽도록 매를 맞으며 회유당했고 그렇게 일주일을 넘긴 뒤 각서를 쓰고 겨우 나왔다. 각서 내용은 딱 두 가지였다. 첫째, 다시는 희곡 나부랭이 같은 글을 쓰지 않겠다. 둘째, 이곳에서 고문받았다는 사실을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악마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음악과 문학을 아우르는 재능을 갖고 있던 청년 김상배는 그렇게 스스로 가슴속에 대못을 쳤다. 당연히 그 해 연세대학교 연극반 공연은 없었다.
긴급조치까지 내리며 철권통치를 휘두르던 시절, 그 정도의 수난을 당하고 풀려날 수 있었던 건 아버지가 애달프게 뛰어다닌 덕분이었다. 금융권에서 영향력이 있었던 아버지는 아들을 빼내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부탁을 했단다. 그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풀려난 지 한참 지나서였다.
청년 김상배의 젊은 시절은 그렇게 시들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집에서 그토록 원하는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직장에 입사했다. 대학 동기였던 정몽헌 씨가 같이 일해보자며 현대그룹에 들어올 것을 권유한 이유도 있었다.
현대그룹에 입사한 그는 조선, 건설 등의 분야에서 현대맨으로 20년을 살았다. 더 이상 미디어에 얼굴을 드러낼 일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못 느꼈다. 그래도 틈틈이 곡을 써서 음반을 내기도 하고 가수들에게도 줬다.
정주영 회장과의 에피소드
현대그룹에서 일할 때 정주영 회장과의 에피소드도 있었다. 어느 날 정 회장이 갑자기 그를 불렀다고 한다. 그가 회장실에 들어서자마자 정 회장은 못마땅한 목소리로 “너 요즘 돈이 궁하냐?” 하며 크게 꾸짖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그는 영문을 몰라 되물었다. 전후사정은 이랬다. 정 회장이 어느 날 한 술집 입구에 ‘날이 갈수록’ 김상배 출연이라는 홍보 플래카드가 크게 걸려 있는 걸 보고는 그를 불러 밤무대에 나가지 말라고 야단을 쳤던 것이다. 그도 깜짝 놀라 술집을 찾아가 “‘날이 갈수록’ 원작자는 나다. 나는 가수 김상배가 아니니 현수막을 내려 달라. 회사에서 쫓겨나게 생겼다”라고 사정을 하고서야 플래카드를 철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정 회장에게 야단을 맞아서가 아니라 현대에서 일할 때는 도무지 틈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가슴속에 불타오르는 창작욕은 어찌할 수 없어 술 한잔 거나하게 걸친 날이면 기타를 붙잡고 코드를 잡으며 간간이 노래를 만들었다.
‘창작’만이 나의 오아시스였다
1978년에 가수 이동원이 부른 ‘가버린 날들’, 1981년 대학가요제에서 단국대학교 밴드 스물하나가 불렀던 ‘스물한 살의 비망록’은 그가 회사생활 틈틈이 작업했던 곡들이다. 특히 스물하나가 불렀던 노래는 대학가요제 입상을 거쳐 가수 이택림도 불렀고, 2003년에는 자전거를 탄 풍경이 리메이크하는 등 가수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버지의 반대로 소위 딴따라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지만 가끔 곡을 만들어 가수들에게 줬다. 그들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녹음실에서 음반작업을 할 때는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창작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곤 했다.
‘날이 갈수록’이라는 주옥같은 곡을 만든 그가 문화계나 방송계에서 일한 게 아니라 현대그룹에서 샐러리맨의 꽃인 임원자리에까지 앉았다니 약간의 배신감(?)이 든다. 또 그렇게 바쁜 생활을 하면서도 창작의 불꽃은 대단했구나 하는 경외감도 밀려온다.
‘날이 갈수록’은 어떤 과정 속에서 탄생한 걸까?
“이 노래는 내 첫 사랑에 대한 자기고백 같은 노래야. 대학교 2년 다니고 휴학한 후 군대를 갔어. 마음속엔 요즘 말로 썸 탔던 여학생을 품고 있었지. 그런데 휴가를 나와 보니 그 여학생이 다른 남학생과 사귀고 있더라고. 허탈했지. 마침 그때가 가을이었는데 연세대 백양로에 흩어진 낙엽처럼 인생이 그리 허무할 수 없더군. 시간이 지나면 이 풋풋한 첫사랑도 잊힐 테고,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면 일만 하다 인생이 그냥 그렇게 흘러가려나 하는 생각들? 그게 배경이 됐지.”
1995년 현대그룹에서 이사로 퇴직한 후에는 콘텐츠 비즈니스 사업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일을 하는 동안 이전만큼 창작에 대한 의욕이 생기질 않았다.
“비즈니스로 접근하니까 더 안 써지는 거야. 안 되겠다 싶어서 일을 접고 창작자로 살겠다고 다짐했어.”
2012년 그는 다시 창작에 매달렸고 신인상 공모전에도 도전했다. 몇 차례의 도전 끝에 2015년 종합예술잡지인 한국문학예술이 공모한 시나리오 부문에 ‘까떼리나’(나비의 꿈)가 당선됐다. 그의 나이 67세 때였다. 그는 당선소감에 “40년 공백을 깨고 태어난 졸작을 뽑아주시어 인생 이모작 등단의 길을 열어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께 감사합니다”라고 썼다.
1974년 타의에 의해 발표되지 못했던 ‘어느 애꾸의 죽음’ 이후 절필을 선언하고 40년 만에 다시 창작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끝까지 창작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창작인으로 돌아와 자유로움을 누리고 있다는 김상배 씨. 한때 좌절됐던 꿈을 다시 찾기 위해 72세 나이에 열정을 불태우는 그의 모습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이 수사가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김상배 씨는 요즘…
김상배 씨는 최근 앨범 녹음을 준비하고 있다. 오랫동안 가까이 지내온 후배들의 재능이 아까워 더 늦기 전에 함께 앨범 작업을 해보려 구슬땀을 흘리는 중이다. 1980년도에 포크 남성듀엣으로 활동했던 ‘나이테’ 멤버 구명회 씨와 박시몬 씨가 그들이다.
‘나이테’는 1980년에 가수 윤형주의 기획으로 앨범을 발표한 뒤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가끔 LP판 수집가들에 의해 두 사람이 소환되기도 하는데 ‘나이테’는 현재 발매 앨범만 등록돼 있고 가수 이름은 없어 이들이 과연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이 40여 년 만에 다시 기타를 들었다. 두 사람은 미국에서 거주하다가 몇 년 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종적을 찾을 수 없었던 이유다.
미국에서도 두 사람은 버지니아 주 근처에서 가까이 거주하며 함께 찬양 사역을 하는 등 피우지 못한 음악의 꿈을 잊지 않았다. 최근 김상배 씨가 작사·작곡한 ‘망각’과 ‘인사동 그림자’ 등의 노래로 앨범 작업을 하고 있다. ‘나이테’ 멤버인 구명회 씨는 개그맨 故 구봉서 씨의 큰아들이다.
구명회 씨 역시 음악적 재능을 아버지 반대로 펼치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공통점 때문일까? 김상배 씨와 구명회 씨는 오랜 시간 ‘형 먼저 아우 먼저’를 외치며 각별하게 지낸다. 두 사람이 준비하는 앨범에 올드 팬들의 격려가 필요해 보인다.
신비롭게 반짝이는 커다란 눈, 한 올 한 올 물결치는 생생한 털, 만지고 싶게 만드는 보송보송한 발. 누굴까? 바로 고양이를 설명하는 글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발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반려동물 양육가구는 전체 26.4%에 해당하는 591만 가구이며, 보유인구는 1000만을 훌쩍 넘어섰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와 동물 숫자가 증가함에 따라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사는 문화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애완동물 등록제가 시행되고, 애완동물을 위한 금융상품이 나오고 테마파크가 조성되는 등 동물복지를 위한 정책이 이어지고 있다. 반려동물이 좀 더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들도 증가해 ‘펫코노미’(petconomy) 역시 급성장을 하고 있다.
최근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을 위한 박람회인 ‘2020 서울캣쇼’가 5월 29일부터 31일까지 3일간 킨텍스 제1전시장 3홀에서 열렸다. 오랜만에 열린 전시에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들은 부스를 꼼꼼하게 둘러보며 정보를 얻었다. 관람객들은 발열 체크와 방명록 작성 후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입장을 했으며, 사전등록을 하면 무료 관람이 가능했다.
(주)미래전람이 주최한 이번 쇼에는 식품첨가물이나 방부제를 넣지 않은 휴먼 그레이드 등급의 사료, 치아 건강과 영양소까지 생각해 만든 간식, 반려인의 감성과 실용성을 고려해 제작한 캣 타워, 운동기구와 정수기 등을 판매하는 150여 개 업체가 참여했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펫팸족’(petfamily)들에게 반가운 행사였다.
고양이 관련 세미나도 열렸다. 29일에는 ‘집사라면 꼭 알아야 할 고양이 증상 체크하기’(한국고양이수의사회 회장 김지헌 수의사), ‘당신이 문득 길고양이와 마주친다면’(유기묘 보호단체 (사)나비야사랑해의 유주연 대표)이라는 주제로 강연이 있었고, 30일에는 ‘반려묘 질환, 아깽이부터 노령묘까지’(월드펫동물종합병원 대표원장 차진원 수의사), ‘소중한 우리 고양이, 아무거나 먹이지 마세요’(한국고양이수의사회이사 조우재 연구소장)라는 제목으로 강의가 펼쳐졌다.
이날 한 관람객은 “전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강의를 통해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저렴한 가격에 물품을 살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주)미래전람에서 진행하는 애완동물 관련 전시는 앞으로 부산 벡스코(9월 11~13일), 서울 세텍(10월 9~11일), 수원 컨벤션센터(11월 27~29일)에서 더 열릴 예정이다. 이외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킨텍스 제2전시관 9홀에서 열리는 ‘프리미엄 펫쇼’(한국애견협회 주관)도 있다. 200여 개 업체가 참여하는 대규모 펫 박람회로, 반려동물을 위한 정보와 아이템을 만날 수 있다. 더불어 도그쇼, 반려견 스포츠 이벤트, 반려견 스타일리스트 경연대회 등도 치러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