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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잇값을 해야 나이대접받는다
- 경로석에서 나이 드신 분들이 서로 옥신각신하는 볼꼴 사나운 광경을 심심찮게 목격한다. 내가 나이를 더 먹었으니 경로석에 앉을 우선권이 있다는 논리가 싸움의 시작이다. 경로석은 정확히 말하면 노약자석이다. 임신을 한 아녀자나 나이는 젊지만 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사람도 앉을 권한이 있다. 경로석이 아니고 노약자석인데도 더러는 경로석으로만 알고 있다. 우리사회는 대화나 논쟁을 하다가 이론적으로 수세에 몰리면 ‘너 몇 살이야.’ 한술 더 떠서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어따 대고 두 눈 부릅뜨고 대들어.’ 라고 한다. 심한 말로는 너는 애비 어미도 없냐!’ 까지 나간다. 원래 언쟁의 본질은 사라지고 나이타령으로 넘어가면 아주 강한 심장을 가진 젊은이가 아니면 피하게 된다. 주위 많은 사람들이 우선은 보이지 않는 나이라는 벼슬을 인정하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젊은이에게 눈총을 쏴대기 때문이다. 원래 동물의 세계는 나이가 아니고 힘이 지배한다. 늙은 수사자는 새로운 젊은 사자를 힘으로 제압하지 못하면 대장이라는 자리에서 내려온다. 힘이 벼슬이지 오래 살아 늙었다는 것이 동물의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사람만이 부모를 공경하고 웃어른을 배려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나이가 통한다. 증자가 말하길 ‘朝廷莫如爵 조정막여작, 鄕黨莫如齒 향당막여치,輔世長民莫如德, 보세장민막여덕’ 이라고 했다. 이 말은 ‘조정에는 벼슬만한 것이 없고 시골 마을에서는 나이만한 것이 없고 세상을 돕고 백성을 잘 살게 하는 데는 덕(德)만한 것이 없다’라는 말이다. 나이도 벼슬처럼 인정받는 근거다. 수평적 평등사회가 아닌 나이를 매개로 하는 수직적 상하구조를 만드는데 나이가 힘을 발휘하였다. 우리는 처음 만나 통성명을 하고 나이를 물어 ‘그럼 선배님으로 모시겠습니다’하면 위계질서가 만들어진다. 삼강오륜에 장유유서(長幼有序)가 있는데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차례와 서열이 있다는 말이다. 이런 서열이 빨리 정해지면 오히려 펀하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은데 옥신각신 할 때 제일 연장자가 ‘그럼 이렇게 하지!’하고 정해주면 승복하는 근거로 아주 편하다. 자랄 때 형제간에 싸움을 하면 부모는 힘이 약한 동생 편을 드는데 이것이 잘못이란다. 형이 부모의 위력에 눌려 잠시 승복하는 것이지 속마음으로는 불만을 품고 승복하지 않는다. 부모가 없을 때 동생을 때린다. 형에게 우선권을 주어야 가정의 위계질서가 선다. 먹을 때도 형이 먼저고 좋은 것도 형이 먼저라는 것을 심어주면 자연히 형제간 분쟁은 없어지고 동생은 자신이 후순위라는 권력을 인정하고 기다린다. 대접을 받는 형은 승자의 아량으로 자기 먹을 것을 동생에게 스스로 양보하는 미덕을 보인다. 이것은 아직 미 성숙된 아이 때의 질서법이다. 이제는 민주주의 시대다. 모두가 성인이 되면 수직문화에서 수평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손자뻘 같은 놈을 교육측면에서 한 대 때리기라도 하면 폭행범인으로 바로 입건이 되는 세상이다. 나이라는 벼슬은 없어졌으니 덕으로 더 젊은 사람을 대해야 한다. 어느 모임에서도 저 사람은 나이가 많으니 우리의 리더인 회장으로 뽑아야 한다는 말은 점점 설득력이 없어져 가고 있다. 나잇값을 해야 나이대접을 받는 세상이다.
- 2018-08-16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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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요리연구가 문성희, 숨심과 밥심으로 존재와 마주하다
- ‘평화가 깃든 밥상’ 시리즈, ‘문성희의 쉽게 만드는 자연식 밥상’ 등을 통해 다양한 자연요리 레시피를 선보여 왔던 문성희(文聖姬·68). 그의 첫 에세이 ‘문성희의 밥과 숨’, 얼핏 소박하면서도 거대한 물음을 줄 것만 같은 제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읽는 내내 삶의 행복과 자유를 좇아 끊임없는 질문과 마주했다. 그러다 답은 결국 제목에서 찾고 만다. 문성희(존재로서의 한 인간), 밥, 숨. 존재 그 자체로서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건 단 세 가지라는 것을 말이다. 일과 관계, 거대한 문명의 소용돌이 안에 매몰돼 허우적거리던 30대. 기쁨보다 고민이 많았고, 기도로 달래보아도 좀처럼 행복하지 않았다. 소로의 ‘월든’을 읽고 책 속의 삶을 동경했으나, 자신과 딸아이의 생존이 걸쳐 있는 삶의 터전을 당장 놓아버릴 수 없었다. 내 마음의 주인이 내가 되지 못하는 불행 속, 자기주도적 삶을 위해서는 도시를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년을 둥둥 뜬 마음으로 보낸 뒤에야, 이윽고 중학생 딸의 손을 붙잡고 철마산 오두막으로 향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그토록 갈망하던 삶, 그는 과연 만족스러웠을까? “만족스럽다기보다는 기쁨과 희열이 대단했어요. 많은 것을 버리고 왔음에도 오히려 모든 게 가득 차 있었죠. 산에 와서 여러 실험을 했는데, 그중 하나가 세탁기 없이 살아보자는 거였어요.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더군요. 옷이 두 벌이면 된다는 거였죠. 벗으면 당장 빨아야 하니까.(웃음) 세탁기가 있으면 빨래를 계속 쌓아두게 되잖아요. 그렇게 문명에 의존하던 것들을 하나씩 덜어내면서 좀 더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었어요.” 생명을 살리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 그는 자신의 삶을 산에 들어오기 전과 후로 나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법을 몰라 한없이 흔들리고 나약했던 존재에서, 삶의 기술을 터득하고 무언가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음을 인지하게 된 것. 그러나 산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질 즈음, 또 다른 고민이 생겨났다. “자연에 살면서 하늘, 바람, 계곡이 있어 행복을 느꼈는데, 결국 이 또한 의존하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어떠한 대상에게서 오는 행복이라면, 문명에 기대는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도시든 시골이든 내 존재로서 행복해야 하는데 말이죠. 그때쯤 저처럼 살고 싶다며 찾아오는 분도 많았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다 행복을 찾아 산에서 살 수는 없는 거잖아요. 아, 그럼 도시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대안은 뭘까? 그걸 찾고 싶더라고요.” 산에 오르고 내리는 사이 변화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그도 한때 20여 년 요리학원 원장으로 살며 방송, 강연 등을 통해 감각적이고 화려한 요리를 가르쳤다. 그러나 오랜 경험 끝에 가장 훌륭한 요리는 재료 본연의 생명력으로 자연 그대로의 향과 맛을 느끼게 해주는 것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푸성귀와 생식을 먹으며 점차 몸 세포가 변하고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고, 비로소 생명을 살리는 음식에 몰두할 수 있었다. “우리의 영혼이 몸 안에 들어 있을 때 휴먼 빙(human-being), 즉 인간이고 삶이죠. 그것이 떠났을 때가 죽음인 건데, 일단 사람의 몸을 갖고 있을 때는 물질을 취하잖아요. 흔히 지수화풍(地水火風)이라고 하는데, 이걸 더 깊이 쪼개면 빛과 진동이죠. 실제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결합해 어떤 생명체가 된 거예요. 내가 마신 공기, 먹은 음식, 내 안의 사유 등과 어우러져 몸이 되고, 우리 영혼은 그 몸과 교감하는 거죠.” 그는 단순히 잘 먹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섭취하는 식재료에 대한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인간이 다른 생명 종과 차이 나는 건 생각하는 힘이 있다는 거예요. 그저 동물처럼 먹고 산다면 진화할 수 없다는 얘기죠. 더 본질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내가 먹는 이 낟알조차도 땅과 연결되고 물과 연결되고 또는 다른 생명과도 연결된다는 걸 인식해야죠. 또 음식이 지닌 에너지와 칼로리는 달라요. 패스트푸드나 가공음식은 영양을 보충해줄지는 모르지만 생명의 에너지는 전혀 담겨 있지 않죠.” 진정 깨달았다면 그대로 살 수 없다 책에서 문성희는 인생의 40년, 그러니까 절반 이상의 시간을 자신이 이번 생에 가지고 온 카르마(karma, 업)를 해결하는 데 보냈다고 술회한다. 아울러 부모가 남긴 유·무형의 빚을 갚고, 자신의 생존에 대한 의무와 자식을 키워야 하는 책무까지, 그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어야만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여러 사건이 있겠지만 모두 내가 감내해야 하는 카르마의 굴레죠. 사실 그건 카르마이기도 하지만 배움이기도 해요. 내가 사는 이 인생은 학습의 장이거든요. 삶을 통해서 성취하고, 성장하고, 배우고 결국 전인적인 존재가 되는 게 목표죠. 내 삶의 카르마, 즉 의무를 다했을 때 자유로울 수 있고요.” 이제는 카르마에서 벗어나 홀가분하다며 미소 짓는 그의 얼굴에 ‘자유’라는 두 글자가 아른거렸다. 자연스레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화제를 던졌다. 이에 그는 지천명(知天命)이 되고 나서야 진정한 자유를 알았다고 말했다. “질서를 벗어난 자유는 없더라고요.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잖아요.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혼자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걸 다 한다고 자유로운 건 아니거든요. 세상의 질서 안으로 들어가되, 그 속에서 얽매임을 느끼지 않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는 걸 깨달았어요.” 문성희가 나눈 인생의 깨달음에 감명하고, 동의하며 그와 같은 삶을 동경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실천이 어렵다고 털어놓는다. “내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원한다면 이렇게 한번 살아보라 말해요. 그럼 직장이 어떻고, 자식이 어떻고 이래저래 안 되는 이유를 대요. 그땐 기다리라고 얘기하죠. 정말 마음이 그렇게 살지 않으면 못 살겠다고 느껴질 때 선택하면 되거든요. 그렇지 않다는 건 지금의 삶이 그 사람에겐 최적이라는 거예요. 행동이 변하지 않는다는 건, 그저 ‘지식’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죠. 그 깨달음을 정말 이해하고, 통했을 때는 도저히 그대로 살 수가 없어요. 지식이 아니기 때문에 잊히지도 않죠. 그러면 삶의 형태가 자연스럽게 바뀌게 마련이에요.” 내가 있어야 우주도 존재한다 환경에 의존하지 않고, 상황에 얽매이지 않는 그는 종종 우주과학 영화를 보며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직접 가볼 수는 없지만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주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광활한 우주와 비교했을 때 인간은 티끌처럼 미미한 존재라 여긴다. 그러나 이에 문성희는 “극히 단순한 것과 극히 광활한 것은 일맥상통한다”며 이야기를 뒤집는다. “아무리 큰 우주라도 봐주는 관찰자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그 우주를 봐주는 게 바로 나잖아요. 내가 있어야 우주도 존재하는 거죠. 그러니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대단해요? 우주로서는 자기를 봐주는 인간이 너무나 고맙고 소중할 수 있죠. 내가 해와 달을 보고, 그들이 기뻐하는 걸 느낄 수 있을 때, 내 존재가 굉장히 고양되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우주 만물이 수없이 많지만, 내가 있음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내가 없으면 모든 게 다 사라진다는 것, 그걸 느끼는 내가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존재의 의미 아닐까요.”
- 2018-08-14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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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계치
- 111년 만에 서울이 낮 온도 39.6℃를 찍어 온통 난리가 났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심리적 마지노선인 임계점을 뚫은 탓이다. 시내는 한낮 태양열에 아스팔트가 달아오르고 습도와 어울려 숨을 턱턱 막고 있었다. 110세 된 사람이 없으니 모두가 처음 겪는 더위임이 틀림없다. 샤워로 몸을 식히려 해도 미지근한 물로 바뀌어 돌아서면 다시 더웠다. 누진제 때문에 에어컨이 있어도 계속 틀어놓을 수도 없고 적당적당히 틀며 버티고 있었다. 간밤엔 열대야로 밤에 두 번씩이나 깨는 바람에 잠도 설쳤다. 선풍기에 부채까지 동원해 찜통더위와 씨름을 하고 있지만, 일기예보에 의하면 당분간 비 소식은 없는 채 이 더위가 며칠간 계속될 거란 소식이다. 숨을 몰아쉬고 더위와 싸우고 있는 그 찰나에 핸드폰이 울렸다. 이름 뜬 것을 보니 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P란 친구의 전화였다. 내가 불러 식사 한번 한 이후 최근 몇 년 동안 통 연락도 없던 친구였다. 궁금하기도 했는데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야 오랜만이다. 잘 지내지? 별일은 없고?” 오랜만에 잠시 의례적인 안부를 묻고 그 친구는 자신의 이야기를 줄줄 쏟아내고 있었다. “큰일 하나 해결해서 시원하다”면서, 사실 그 친구와 나는 맏이로 동갑내기 딸을 하나씩 갖고 있다. 서른네 살로 적지 않은 나이라 부모로서는 큰 걱정거리였다. 그 집 딸은 해외에서 좋은데 취직하여 직장을 잡고 있고, 우리 딸은 국내에서 그런대로 괜찮은 직장에 다녀 결혼하지 않은 것 말고는 나무랄 데 없는 처지였다. 그런 딸애가 약혼했고 결혼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축하할 일이다. 그래서 “정말 축하한다. 잘 되었다”고 덕담을 건넸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일방적으로 자기 얘기만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윗감이 하버드대학교를 나왔는데 그 부모가 둘 다 하버드대학교 교수고, 몇 개 국어를 능통하게 하며 자신의 집과는 비교가 안 된다"는 거였다. 그뿐만 아니라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그렇게 몇 개 국어를 하는가 보다”라며 그칠 줄을 모른다. 3월에 선을 봤고 양부모들이 왔는데 그렇게 키가 크고 자신들과는 키 차이가 나고 8월에 약혼식을 하고 결혼은 내년에 하기로 했다는 둥, 냉면을 한 그릇 해야 하는 데 언제 냉면 한 그릇 먹자는 둥. 오랜만에 전화해 냉면 한 그릇 하고 싶은데 오늘이 어떤지 아니면 언제가 좋은지 날짜를 잡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불확실한 공약만 남발하고 있었다. 모처럼 연락이 와 오늘 냉면 한 그릇 먹자고 하면 열 일 제쳐놓고 나갈 준비가 되었는데 한 그릇 먹자는 얘기는 없고 공수표만 남발할 뿐이다. 마치 주체할 수 없는 자랑과 과시를 지금까지 용케 참았다가 임자를 만났다는 듯. 마침 다른 곳에서 전화가 걸려와 잠시 전화를 받는 사이에도 전화기 저쪽 일방적인 대화는 끊이질 않았다. "친구야 잠시 내가 전화 좀 받고, 아니 다음에 다시 통화하는 것이 어떨까?" 하고 양해를 구하고야 겨우 통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괜히 그런 전화는 안 받은 이만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전화했으면 차나 한잔 하자라던 지, 아니면 간단히 소식을 전하고 상대편의 안부를 묻던지. 그것도 아니면 “미안하다. 친구야 우리 애가 먼저 결혼하게 돼서. 네 딸은 훌륭하니 조금 있으면 아마 좋은 소식 있을 거야” 하면서 말이라도 한마디 하던지. 아주 쉬운 건데 이렇게 어렵게 풀고 있다. 아무리 좋아 죽겠는 일이라도 잠시만 처지 바꿔 생각해보면 금방 답이 나오는 일이다. 소통이란 건 특별한 게 아니다. 한 번 더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다. 밖은 더욱 콘크리트 열기로 타오르고 이날 내가 느끼는 체감온도는 111년 만에 최고라는 39.6℃를 훌쩍 뛰어넘은 것 같았다.
- 2018-08-1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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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위 속 나만의 납량특집
- 기온이 비현실적으로 올라가니 세상도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모든 사물이 흐느적거리고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카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주인공이 뜨거운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고백이 이해될 지경이다. 문득 카뮈가 겪었던 모로코의 더위가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부극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렇게 얼굴을 찡그렸던 건 바로 그 황야의 불쾌지수 때문이었으리라. 어디를 간다는 것도 엄두가 나질 않고 집에 있자니 전기료 걱정에 에어컨도 마음대로 켤 수 없다. 저잣거리에서 들리는 소문은 온통 흉흉하고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남쪽 바다는 바닷물 온도마저 30도를 넘어 양식 중이던 물고기가 떼로 죽어 나간다는 소식이다. 예전에는 이런 때가 되면 TV에서 납량특집도 많이 하더니만 요즘은 그것도 뜸하다. 하기야 사는 현실이 하루하루 납량특집이니 흥도 안 나리라. 그나마 요즘 마음속 납량특집 삼아 찾아보는 프로그램이 나영석 PD가 만드는 ‘꽃보다 할배’라는 여행 프로그램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필자는 이 프로가 처음 시작한 때부터 등장하는 할배들에게 감정 이입해가며 즐기다 보니 어느새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이번에 방영되는 베를린, 체코, 오스트리아 편을 보니 세월의 흐름이 완연히 느껴진다. 할배들의 기력이 여전만 못함이 드러나 마음이 짠하다. 이 프로그램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가 주는 재미다. 자신도 모르게 드러나는 갖가지 연출되지 않은 모습과 행동들로 멀게만 느껴지던 배우들의 삶이 우리네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드라마로 형성됐던 고정관념을 깨는 순간들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중 극 중 역할 때문이겠지만, 매우 날카롭고 깐깐해 보였던 박근형이 의외로 로맨티시스트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순재 할배는 ‘직진순재’라는 별명처럼 여행 초기 일행을 벗어나 항상 돌출행동을 하여 시청자들을 걱정시켰지만, 그것이 끊임없는 지적인 호기심 때문임이 밝혀지면서 나이를 잊고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언지 알게 해 주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는 앞장서서 일행을 이끌던 초기의 활달함이 많이 수그러들었다. 체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일행을 배려하는 마음이 원숙해진 이유도 있으리라. 가장 변화가 많은 문제가 있는 캐릭터는 바로 백일섭이다. 초기에는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시청자들에게 불편함을 주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불편한 몸 때문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그 불편함이 심해져 시청자들을 오히려 불편하게 한다. 두 번의 수술로 불어난 체중을 지탱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더하고 그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과장 행동이 안쓰럽다. 이번 여행의 백미는 무엇보다 김용건의 등장이다. 배우로서 몰랐던 그의 진면목이 만천하에 드러나 시청자를 즐겁게 했다. 그의 끊임없는 유머와 농담은 자칫 지루해질 가능성을 차단하고 여행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아울러 그의 시선은 드라마의 균형을 잡듯이 조용한 신구와 소외된 백일섭을 부축하고 견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의 윤활유로서 유머의 가치를 입증한다. 여행 파트너로 우리 식구들은 만장일치로 그를 선택했다. 프로가 방영되는 한 시간 반 동안 알프스 자락에 자리한 잘츠부르크의 풍광과 볼프강 호수, 그리고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촬영장소를 할배들과 함께 다니느라 더위를 잊었다. ‘그래 더 늦기 전에 우리 할배와 한번 다녀와야지.’ 나만의 즐거운 납량특집이었다.
- 2018-08-0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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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부가 된 이동필 前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 현재 한국 농업·농촌에 대해, 이동필(李桐弼·63)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간단하게 ‘전환기’라고 명명했다. 자신의 고향이자 농업 현장인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농부로 일하면서 느낀 솔직한 속내였다. 그러나 그는 전환기 속에서 맡은 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고자 한다. 장관 자리에서 물러난 후 스스로 돌아보는 ‘마음공부’ 뜨락에 씨앗을 뿌리고 일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농촌경제연구원에서 장관을 거쳐 귀향한 후 농부의 삶을 살아가는 그에게서 한국 농업과 농촌이 직면하게 된 현재와 미래의 활로에 대해 물어봤다. 경상북도 의성군은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마늘로 친숙한 도시다. 그리고 지난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특별하게 유명해진 지역이기도 하다. 전 국민의 관심을 모았던 컬링 종목의 스타들이 모두 의성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다. 의성은 컬링 종목의 스타들을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 컬링의 수도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아낌없는 지원도 이루어지고 있다. 30년 뒤면 사라질 수도 있는 도시 그러나 이처럼 사람들에게 알려진 의성의 대외 이미지와는 달리,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걱정이 많았다. 그는 인터뷰를 하던 중 서산대사의 시를 읊었다. ‘환향’이라는 제목의 시다. 삼십 년 만에 고향에 돌아오니 사람은 죽고 집은 부서지고 마을은 황폐화됐는데 청산은 말이 없고 봄 하늘은 지는데 어디서 두견새 우는 소리만 들리는구나 그야말로 막막하다. “이게 내 심정이에요.” 그의 먹먹한 기분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이었다. 그가 장관 퇴임 후 한 명의 농부가 되어 귀향한 의성군은 2016년 ‘중앙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30년 뒤 사라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었다. 그리고 그 자신도 그러한 현실을 체감하고 있었다. “고령화, 양극화, 그리고 예전 같은 공동체가 스러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죠. 연구소나 중앙부처에 있을 때는 망원경으로 세상을 봤지만 현장에서는 현미경 보듯 보이지요.” 장관, 농부가 되다 이 전 장관은 뼛속까지 농업인이다. 그의 경력을 보면 바로 드러나는 사실이다. 농촌지도자였던 아버지를 둔 그는 영남대학교 축산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와 미국 미주리주립대학교에서 농업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30여 년 넘게 근무하면서 농촌의 현실과 문제를 연구하고 대안을 내놓는 일을 했으며 2013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 입각해 역대 최장수인 3년 6개월의 시간을 지냈다. 그리고 2016년 9월 5일 퇴임한 다음 날 고향으로 돌아와 2500평(8264㎡)의 땅을 관리하는 농부가 되었다. “요즘은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동물들 밥 먹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해요. 온몸이 타박상과 상처투성이예요.(웃음) 며칠 전에는 경운기 사고가 나서 갈비뼈가 부러졌어요. 도처에 해야 할 일이죠. 옛날 방식으로 농사를 하면 힘만 들고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귀향할 때 나름 세운 ‘일이삼사 원칙’이 있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하루 두어 차례 텃밭을 돌보고, 삼시 세끼 어머니와 밥을 먹고, 사람들이 찾아오면 말동무가 된다’는 것이었다. 3년간 보리·콩·팥·참깨·마늘·양파·옥수수 등 온갖 농사를 다 지어봤다. 그 과정에서 사모님은 반대 안 했느냐고 묻자 퇴직한 그날 밤에 어찌 내려가느냐며 딱 하루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로는 함께 고생하면서 도와주고 있다 한다. “가끔 외롭고 답답할 때가 있는데 아내가 그걸 풀어줘요. 신세를 많이 지고 있죠.” 남는 농산물을 판매하는 수고로움은 모두 아내 이정숙 여사가 맡아서 하고 있다. 노모를 돌보고 남편 수발하고 농사일까지 거들며 집안 곳곳을 돌보는 1인 다역을 하고 있는 만큼 이 전 장관은 이런 아내를 인생 최고의 반려자라고 손꼽았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먼저 오래된 집을 손보면서 마당에 5평(16.5㎡)짜리 사랑채를 지어 사원재(思源齋)라 이름 붙였다. 농사일하며 이곳에서 책을 읽고 손님을 맞는다. 사원재라는 말은 조상과 부모, 그간 살아오며 도움을 줬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의리를 잊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는 또 40년이 다 된 부친의 생가 마당 한가운데에 작은 정자를 세우고 애일당(愛日堂)이라 이름 지었다. 노모가 황반변성 때문에 눈이 불편하신데 남은 날 하루하루 즐겁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뜻을 새겨 넣었다. 이 또한 안빈낙도(安貧樂道)가 아니겠는지. ‘故鄕創生’에 몰두하다 하지만 눈앞의 일을 두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종일 흙에 파묻혀 있다 들어오면 너무나 피곤해 바로 쓰러져 자는 현실. 그는 자신의 현재를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중 농가에 비유했다. “이 사람들은 농사를 짓는 게 세상 근본 이치란 주장을 했어요. 그런 주장을 갖고 등나라를 갔죠. 그 나라 임금이 너희들의 주장은 뭐냐 물어보니 첫째는 근면 검소해야 한다, 둘째로는 왕과 왕비도 직접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대답했어요. 왕이 그 말을 듣고는 첫 번째는 공감할 수 있는데 두 번째는 못하겠다며 거절했죠.(웃음) 이 사람들은 농업인들과 함께 일만 열심히 하다 보니 자기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했어요. 당시 유가들은, 실천보다 말로 사는 사람들이니까 자신들의 주장을 다 책으로 만들었죠. 나도 이렇게 농사일만 하다가는 정작 농촌의 살길에 대해 글을 써보겠다는 생각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마는 게 아닌가 걱정돼요.(웃음) 이제 좀 바꿔야겠어요.” 그렇다고 그가 다시 정치의 세계로 돌아올 것이라는 얘기인가 하면, 전혀 아니다. 이번 지방선거 때도 얘기들이 있었지만 그는 손사래를 쳤다. “밖에 나가면 말이 많아 거의 두문불출하고 있어요. 무슨 운동을 하거나 당을 같이 해보자며 찾아오는 이도 있지만, 차나 한잔 먹고 가라며 돌려보내요. 한 눈 팔지 않고 텃밭 일구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평생의 과업인 희망찬 농업, 활기찬 농촌을 만드는 생각을 하기에도 바쁩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집에는 신문도 TV도 없었고 라디오 하나만 틀어놓고 있었다. 외부 활동이라면 가끔씩 강의를 나가는 정도다. 요즘 그의 주된 관심사는 ‘지방소멸과 고향창생’, ‘청년창업과 귀농귀촌’ 그리고 ‘농협의 역할’ 등이다. ‘늙고 지친 고향을 어떻게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화두와 관련한 고민거리인 것이다. 극장 하나 없는 곳, 젊은이들에게 와서 살라 말할 수 있나 “지역발전이라 하면 흔히 돈 버는 얘기만 하는데, 그에 못지 않게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너그러운 마음과 역량을 갖춘 인재양성, 그리고 생활환경 및 복지 서비스의 질적 개선도 중요하다고 봐요. 의성만 해도 극장 하나 없어요. 그런데 말로만 여기 와서 살라고 권유할 순 없죠.” 사실 농업·농촌 발전을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많은 예산과 인력을 동원해 노력을 하고 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전 장관은 지역활성화를 위해 일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앙정부는 지방 분권과 지원체제 정비를 하고 지방에 도전할 기회를 준 후에 결과에 책임지도록 해야 해요. 지역의 특성과 농가를 유형별로 구분하여 맞춤형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자원의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거든요. 또한 조건불리지역 직불제도를 개선하여 개발 여건이 불리한 지역에 대해 지원을 차등화할 필요가 있어요.” 그는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의 조속한 시행과 함께 고향기부금제를 도입할 것을 적극 주문했다. “무역이득공유제의 대안으로 매년 1000억 원씩 10년간 모으는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는데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어요. 당시 한중 FTA 협약 비준을 전제로 여야가 합의한 약속입니다.” 아울러 지방의 역할을 강화하고 주민과 민간 부문의 참여를 촉진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농촌에 젊은 사람들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스마트팜이나 공동경영체 등을 통해 고부가가치 있는 농산물을 생산하고 가공, 유통, 체험관광 등과 결합한 6차산업으로 매력적인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농교류를 하고 귀농·귀촌을 통해 외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책임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지역 스스로 자기들의 문제와 가능성, 부존자원을 기초로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농가 유형별 육성정책 완성해야 이는 그가 장관 시절에 핵심적으로 추진한 과제 중에서 못 다 이룬 숙원과도 관계가 깊다. “농정의 새 틀을 짜고 싶었어요. 농업·농촌을 둘러 싼 대내외 여건이 다 바뀌어버린 지금은 그 변화에 걸맞게 정책 프레임도 달라져야 한다고 봤죠. 그중 하나가 농업경영체를 등록하고 이에 기초하여 농가 유형별 육성정책을 추진하는 일이었어요.” 그는 경영주가 65세 미만이면서 소득이 연 5000만 원 이상인 농가는 규모 있는 농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장기저리 융자와 컨설팅, 경영안정대책 등 맞춤형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계자가 없는 영세고령농가는 농업 경영에서 은퇴를 유도하여 사회안전망으로 커버하고, 나머지 중간 규모 농가는 가공, 유통, 관광 등을 결합한 6차산업화를 통해 추가적인 소득원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농가를 한데 묶어놓고 획일적인 정책을 추진하니 돈은 돈대로 쓰고 손에 잡히는 효과를 못 볼 수밖에요. 이웃인 성주는 참외 하나만 갖고도 잘살아요. 참외 주산지로서 품목이 특화되어 전후방 관련 산업이 발달하고 6차산업으로 수급까지 안정되니 가능한 거죠. 이처럼 지역 및 농가 유형별 육성정책을 완성해야 했는데, 끝장을 못 보고 나온 게 아쉬워요.” 지역의 농업·농촌 관련 사업이 중앙정부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니 천편일률적으로 획일화해 특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도 같은 문제다. 농촌 중심 활성화 사업을 보면 지역 여건이나 부존자원에 대한 고려없이 주민 의사나 참여도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건물이나 지어놓고 활용을 못해 심지어 전기세도 안 나온다는 얘기를 듣는다는 것이다. “지역이라는 공간 정책 위에 산업 정책을, 그 위에 사람을 대상으로 한 복지정책이 이루어져야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는데 제각기 따로 놀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사후관리는 안 되고 지자체는 책임 안 지려 하고…. 지역이 정책을 좀 더 주도하고 책임지도록 추진체계를 보강해야 해요.” 어쩌면 농협이 대안이 될 수도 그는 1·2·3차산업을 융복합해 농가에 높은 부가가치를 제공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6차산업을 주창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시아 몬순기후대의 영세소농이란 구조적 특징 때문이다. 여름에 고온다습한 기후 때문에 논농사에 특화하다 보니 계절별 유휴인력이 발생하게 되고, 유휴노동력을 생산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농외소득원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 것이다. 농업생산이란 1차산업과 가공이란 2차산업, 그리고 유통 및 관광서비스 등의 3차산업을 결합한 6차산업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그렇지만 현실은 생각처럼 간단치 않았다. 그는 지난해 수확한 팥 서 말과 양파 100kg을 팔 곳이 없었던 것이다. “콩 750kg은 다행히 인근 농협에 판매하였으나 시중보다 낮은 가격으로 넘겼어요. 오죽하면 농민들이 농협에 바라는 소망이 수확한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팔아달라는 것이겠어요. 농사짓는 것도 힘들지만 판매하는 것은 더 어렵습디다.” 정부는 농협 개혁을 통해 경제사업을 활성화하려고 애쓰고 있으나 아직도 체감하는 성과는 얻지 못하고, 대부분의 사업장들도 적자 신세를 면치 못하는 실정이다. 더구나 농업인의 고령화로 준조합원 수가 늘어나면서 신용사업에 매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은 농협 회원 중 농사를 짓지 않는 준조합원이 정조합원보다 30% 정도 많고, 농협 계통 매장의 농산물 책임판매율이 50%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농협이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2014년부터 개혁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농협은 정조합원이 준조합원보다 훨씬 더 많은데도 농산물 책임판매율은 25%에 불과해 농민들로부터 돈장사만 한다고 비판받는 거예요.” 그는 오랜 연구생활과 장관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감 없이 농협 유통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고령화로 인한 지방소멸 시대에 있어서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농협의 새로운 역할을 제시했다. “농협이 지역 단위의 6차산업을 주도해야 한다고 봐요. 경제사업의 수지개선을 위해서는 경영 능력을 향상하고 규모화, 전문화해야 합니다. 인근 지역과 품목을 생산하는 농협과의 통합 또는 사업을 연계하거나 연합사업단을 운영할 수도 있겠지요.” 어째서 농협일까? 그는 지금처럼 개별 농가가 따로따로 로컬푸드니 직거래니 하는 식으로 장사를 하면 비용절감을 고사하고 소비자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표준화, 규격화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개별 농가가 하기 힘든 그 작업을 농협이 해줬으면 하는 의견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농협은 농기계를 구비하고 영세농들의 영농을 대행할 수도 있습니다. 농촌지역의 교육, 의료, 복지 등 서비스 전달 체계로서 농협의 새로운 역할도 생각해볼 수 있겠죠. 그것이 농협이 살길이에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농협이 대체 뭐하는 곳이냐는 정체성 논란이 심화될 겁니다. 농협이 당면한 현안을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걱정을 덜어줄 수 있도록 스스로 혁신하고 노력해야 해요.” 귀농·귀촌, 국가 정책으로 시행해야 이 전 장관은 요즘 세상이 시끄럽다는데 다 잊고 산다고 했다. 해야 할 일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깨끗한 자연환경 속에서 씨 뿌리고 가꾸는 즐거움이 여간 아니라고 한다. 농업과 농촌에서 미래의 꿈을 키우는 젊은이들은 물론 은퇴 후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려는 사람들에게도 보람을 느끼는 새로운 삶이 가능함을 농촌이 가르쳐준다고 말했다. 지역의 균형발전은 물론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귀농·귀촌 정책은 어느 한 부처가 아니라 여러 부처가 협력해 국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의 농촌은 흡사 요양병원과 비슷해요. 우리 집 왼쪽으로 있는 집 세 채는 빈집이고, 오른쪽의 두 채는 독거노인이 살고 있어요. 소멸위험 지역에서 벗어나는 길은 외지 인구를 유입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러려면 이사비 몇 푼 보태주는 게 자랑이 아니라 이주자들이 필요한 것을 도와줘야죠. 여기서 태어나 20여 년 살았고, 지금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저도 적응이 쉽지 않은데 낯설고 물선 객지로 이사와서 얼마나 답답한 게 많겠어요? 지역을 찾아 온 외지인을 축복으로 여기고 따스하게 배려하는 너그러운 이웃이 있어야 이곳에 눌러 살고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답니다.” 그는 귀농·귀촌 통계확립과 관련 정책의 정비, 농촌지역에 대해 1가구 2주택에 추가적인 감세를 포함한 제도정비등과 함께 주민들의 귀농·귀촌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청복(淸福)을 위해 노력할 때 오로지 고향의 발전과 활기찬 농촌을 위한 생각에 둘러싸인 그에게서 못다한 책임감과 꺼지지 않은 열정이 보였다. 해야 할 일과 책임이 없다면 그렇게 힘들게 생활할 리가 없다. 그에게 견딤의 비법을 물었더니 정약용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산 정약용은 복을 열복(熱福)과 청복(淸福)으로 나눴어요. 열복은 출세해 권세를 누리는 것이고, 청복은 청빈한 삶을 통해 욕심과 번뇌를 지움으로써 얻는 복이죠. 다산은 열복보다는 청복을 얻기가 훨씬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제 인생을 돌아보면, 이미 열복은 과분하게 누린 셈이죠. 이제 마음을 내려놓고 이웃과 더불어 즐겁게 사는 복이 남았습니다.” 청복을 누려보겠다고 다짐했다는 말에서 그가 유독 마음가짐을 강조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더구나 그에게는 아직 풀어야 할 평생의 숙제, 희망찬 농업과 활기찬 농촌을 통해 국민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도전이 있다. 도전은 사람에게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준다. 그래서 마음의 가치를 알게 된 그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만들어내는 위대한 변화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향창생은 우리들 마음의 재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내가 살아갈 지역의 미래를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는 주민들의 염원이 행동으로 나타날 때 활력은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 2018-08-0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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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의 혼행
- 이전과 달리 요즘은 소위 적당한 시기라는 게 따로 없는 세상이다. 일 년 사시사철 계절과 상관없이 무엇이든 대부분 할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떠날 수 있다. 특히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여건을 가진 사람 중에 시니어가 있다. 은퇴 후의 시간적 여유로움과 공허함을 채워줄 가장 좋은 도구가 여행이다. 그동안 치열하게 사느라 미루어 두었던 세상 나들이를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즈음이 된 것이다. 연휴를 앞둔 언젠가 남편은 틈만 나면 인터넷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는 정년퇴직 후 재취업하여 아직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찾아온 연휴 기회를 유용하게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지금껏 세상을 돌아다니며 자유여행을 제법 즐겼다. 남편은 특유의 치밀한 계획성으로 최대의 유익을 얻을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막상 나는 여행이 그리 내키지 않았다. 유난히 그 무렵 피치 못할 일정이 몇 가지 있어서 고민하던 차였다. 기대에 부풀어 준비하는 그에게 이런 내 사정을 털어놨다. 그리고 요즘 트렌드인 이른바 ‘혼행’(혼자 여행)이란 걸 권해보았다. 그러자 별로 오래 생각하지도 않고 그는 쉽게 혼행을 받아들였다. 물론 그가 혼자서도 여행을 잘 해낼 사람이란 건 익히 알고 있지만 이렇게 흔쾌히 응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혼자 하는 여행으로 바뀌면서 그는 한결 가볍게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부부가 함께했던 여행은 인내심이 부족한 나 때문에 이동의 불편함이나 숙식 문제 등으로 경비가 더 나가게 마련인데, 이젠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숙소나 교통편도 본인만 편하면 되니 부담 없이 일정을 짜고 예약했다. 그렇게 그는 단출하게 꾸린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떠났다. 그런데 현지에 도착했으면 간단한 연락이라도 할 사람인데 하루 이틀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어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생존은 알고 지냅시다.’ 참다못해 내가 먼저 문자를 보냈다. 그제야 전화가 왔다. 혼자서 어찌나 신나게 다니는지 연락할 틈이 없었던 것이다.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화가 나기도 했다. 그날 이후 남편이 숙제처럼 여행지에서 보내오는 멋진 풍광의 사진이 밀려들었고, 현지인들과 섞여 어울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통화할 때면 한 톤 높아진 목소리로 혼행의 즐거움을 생생히 전해왔다. 아이들과 함께했던 가족여행이나 부부만의 자유여행에 이미 익숙한 그는 혼자 하는 여행 역시 문제없이 잘 즐기고 돌아왔다. 게다가 낭비 없이 보낸 초저가 알뜰 여행이었다. 혼자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한층 밝아진 남편의 안색에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동행자와 의견을 조율하거나 인솔해야 하는 부담을 털고 홀가분하게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진즉에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좀 더 일찍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도록 배려할 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난 1인 가구와 고령화 사회 영향으로 다양한 1인 문화 콘텐츠가 등장하고 있다. 날마다 진화하는 나 홀로 문화 중에 액티브 시니어들의 활력 넘치는 여행은 매우 긍정적인 반응이다. 이러한 효과를 높이려면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독립적인 시간 활용을 위해 홀로서기의 자신감을 키워두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노년의 문화는 매사 스스로 해결하며 살아나가려는 의지가 변수일 것이다.
- 2018-08-06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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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조건 30초를 고수해야 하는 이유
-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위해 지하철 역사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한 개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한 대밖에 없다. 장애인 시설 기준에 맞춰서 최소한으로 설치한 것 같다. 장애인 엘리베이터의 평소 이용자는 대부분 노인이다. 요즘엔 걷기 싫어하는 젊은 층도 많이 이용한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젊은 사람들이 긴 줄을 만들고 있다. 젊은 사람들 중간중간 노인들이 서 있는 모습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작 장애인들은 이용이 더 불편해졌다. 장애인 엘리베이터 앞을 지나가면서 안내문을 보니 ‘출입문이 닫히는 시간을 조정하여 운행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서 엘리베이터를 타 보았다. 궁금증은 곧 해소되었다. 엘리베이터 안쪽 조작 버튼 위에 ‘문 닫힘 시간 30초 후’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그제야 엘리베이터 문을 임의로 여닫을 수 없게 되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즉, 문이 열린 후 30초 동안 기다렸다가 문이 닫히도록 강제로 조정해 둔 것이었다. 달리 말하면 30초 동안 무조건 기다려야 한다. 우려하던 문제가 곧 발생했다. 거의 30초가 다 되어갈 때 어떤 할머니가 급히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문열림 버튼을 터치한 것이었다. 그때 안쪽에 서 있던 할아버지가 지나가는 말로 불만이 묻어나는 말을 내뱉으셨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에 문열림 버튼을 터치하면 또 30초 동안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30초 동안은 절대 열림 버튼에 손을 대면 안 되는 거였고 특히 조금 전의 할머니처럼 문이 닫히기 직전에 문열림 버튼을 누른 사람은 여러 사람들의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냥 기다리기에도 지루한데 급한 일이 있는 사람은 짜증이 날 수밖에 없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장애인 엘리베이터 벽을 둘러보면 더 갑갑해진다. 엘리베이터 이용자 준수사항, 엘리베이터 이용자 안전수칙, 안내문, 알림 등이 작고 빽빽한 글씨로 벽을 온통 도배하고 있다. 안전수칙 한 장을 읽는데도 최소한 5분은 소요될 것 같은데 한 두 장도 아니고 여러 장을 붙여두었다. 엘리베이터 타고 한 층 오르내리는데 무슨 준수사항, 안전수칙이 그렇게 많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들어차니 벽에 붙어있는 안내문이 보이지도 않는다. 이것은 혹시라도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 이용자에게 모든 문제를 뒤집어 씌우기 위한 엘리베이터 관리주체의 면피용 이라는 생각이 들자 화가 치밀었다. 도데체 무슨 내용인지 훓어보다가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안전 수칙 가운데는 ‘지정된 용도 이외에는 사용하지 마십시오’ 라는 문구가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것 이외에 다른 용도가 뭐가 있을 까 한참 생각해 보았으나 도저히 다른 용도를 찾아낼 수 없었다. 혹시 화장실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하니 웃음이 터져나왔다. 또 하나의 안내 문구에는 ‘교통약자가 우선 이용할 수 있도록 시민 여러분의 아름다운 배려가 필요’하다고 되어 있다. 아름답지 않은 배려는 뭐가 있을 까 생각하다가 갑자기 머리가 아파졌다. 그래서 승강기를 관리하는 부서에 연락해서 30초 설정이 왜 필요한지, 30초 동안 문을 닫지 못하도록 설정해 둔 이유를 물어보았다. 답변은 교통약자를 위한 조치이고 휠체어를 탄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들어가려 할 때 문이 빨리 닫히면 안 되기 때문에 설정해 둔 것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면 일반 엘리베이터처럼 문닫힘 기능은 살리되 기본대기 시간을 30초로 설정하고 그 시간 안에라도 닫힘 버튼을 누르면 닫힐 수 있도록 하면 두 가지 다 해결되는 것 아니냐고 건의해도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는다. 노약자를 위한 시설이라 무조건 30초를 고수해야 한다는 답변만 반복한다. 정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건의서를 공문으로 접수하라고 한다. 폭염이 지속되는 날씨에 이런 일로 앞뒤 꽉 막힌 엘리베이터 관리자와 통화하는 것이 힘들다. 필자와 비슷한 건의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장애인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노인들 간에 문 열림 버튼 문제로 다툼이 있는 것을 그 관리자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 시급히 개선하면 될 일을 공문으로 접수하라고 한다. 다시 한번 이런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서 장애인 엘리베이터를 타 보았다. 30초를 기다리면서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문이 닫히지 직전에 한 할머니가 급히 엘리베이터로 다가오셨다. 문이 닫힐까 불안했지만 열림 버튼을 눌러드리지 못했다. 내 옆에 험악한 인상의 할아버지가 급히 다가오는 할머니를 노려보고 계셨기 때문이다.
- 2018-08-0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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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알아야 할 위로의 언어
- 두 해 전 일이다.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큰 사고를 당해 입원을 했다.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며 병원을 두 차례 옮기기까지,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병원을 방문해 친구의 심적, 영적 회복을 도왔다. 상태가 많이 좋아져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자 사람들이 문병을 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는 내가 올 때가 가장 편하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다른 사람들은 문병 와서 환자와 대화를 나누는 방법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너무 진지하게 몸 상태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충고를 하는 친구, 보험 얘기를 하는 사람 등 각자 환자에게 필요한 이야기라 생각할 수 있지만, 환자는 이런 말들보다는 육체적 고통에 대한 위로가 무엇보다 필요한 상태다. 게다가 문병객들이 올 때마다 자신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몸 상태에 대해 반복해서 설명을 해야 하는 일도 힘들다. 환자의 재활 스케줄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고 아무 때나 방문하는 사람들 때문에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물론 정신없이 바쁜 일상 속에서 문병을 가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간혹 자기 시간에 맞춰 방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무리 바빠도 환자 상태와 스케줄을 고려해 방문하는 것이 예의다. 더구나 예후가 좋지 않은 병으로 인해 입원해 있는 환자를 만나러 갈 때는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아무 말도 안 하는 것도 위로 환자를 만났을 때 어떤 말도 위로가 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 낫다. 또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해”라고 말하지 말고 필요해 보이는 게 있으면 그냥 도움을 주는 것이 좋다. 환자 혹은 환자 가족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뭐가 필요한지 알게 된다.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를 위해 하루 반나절 정도 시간을 내서 대신 환자를 돌봐준다면 보호자가 그동안 처리하지 못한 일들을 정리할 수 있고, 몇 시간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환자에게 어린 자녀들이 있다면 돌봐주고 음식을 해주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캐시 피터슨(Cathy Peterson)은 말기암 진단을 받은 남편을 돌보는 과정과 남편의 죽음 이후 몇 해간의 삶을 기록한 책 ‘애도 수업’에서 바른 돌봄과 위로에 대한 값진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남편이 말기암 진단을 받은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자 사람들이 보인 첫 반응은 회피였다고 한다. 마주하게 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기 진단을 받은 환자만이 질병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은 오해다. 말기암 환자들도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 평범한 어느 날의 안부를 묻듯 “몸은 좀 어떤지”,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면서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다. 질병, 사별을 겪은 사람에게 말을 건넬 때는 당황스럽고 불편할 수 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 상황을 피하는 사람도 있다. 장례식장에 갔을 때 우리는 유족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한국의 장례 문화에서는 조문을 간다는 것 자체가 큰 위로다. 그러므로 애써 억지로 위로의 말을 건네기보다는 손만 잡아줘도 된다. 때로는 뻔한 위로의 말보다 그게 더 위안이 된다. 배려 없는 응원 되레 상처되기도 간혹 유족에게 건네는 형식적인 말들이 상처가 되기도 한다. “힘내세요”라는 말은 그럴듯한 위로처럼 들리지만 큰 의미는 없는 말이다. “좋은 곳에 갔을 거야”라는 말도 그렇다. 유족 입장에서 어디가 더 좋은 곳일지를 생각해본다면 그렇게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또 “이만하면 됐어.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도 위험하다. 사별한 사람은 충분한 애도를 했다고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죄책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하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의 가족에게 “이제 떠날 때가 된 거야”라고 말하면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이렇듯 격려와 위로를 하기 위해 하는 말이라도 상대에게는 아픈 데를 후벼파는 말이 되기도 한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라 해도 듣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이런저런 치료 방법들을 시도해봤는지, 자신이 추천한 의사에게 가봤는지 등을 물어보는 것은 마치 가족이 부주의해서 고인의 죽음을 불러온 듯한 인상을 주므로 절대 해서는 안 될 질문이다. 심지어 고인이 생전에 소유했던 물건을 어떻게 처리할 건지 묻는 사람도 있는데, 부디 가족들이 알아서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자. 어떤 말로 위로해야 할지 모른다면 솔직한 심정을 말하는 것이 좋다. “뭐라 위로드릴 말이 없습니다.” 어떠한 감동적인 말이나 문장보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함부로 교훈을 늘어놓거나 종교적인 언어로 유가족을 위로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차라리 아무 말 없이 곁에서 손잡아주는 것이 더 낫다. 한 해에 두 아이를 각각 백혈병과 뇌종양으로 잃은 부모가 있었다. 두 아이가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을 때 하루는 목사가 찾아와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만한 시험 외에는 주시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 아이의 부모는 큰 상처를 입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잘못한 일이 있는지 생각해보라”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종교적인 언어, 성경 구절 등을 부적절하게 인용해서 하는 위로는 가족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상실과 슬픔의 치유’의 저자 미셸과 앤더슨(Kenneth Mitchell and Herbert Anderson)은 이러한 위로를 ‘미성숙한 위로’라고 말한다. 말보다 마음을 전해야 사별자는 마음껏 슬픔을 표현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별자가 편하게 생각하고 신뢰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줘야 한다. 그리고 ‘말’이 아닌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애도의 과정에서는 남아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고 이끌어주려는 시도보다는 그냥 곁에서 묵묵히 함께하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어떤 위로보다 낫다. 사별자가 뭔가 말하고 싶어 하면 잘 들어주고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라는 표현 정도가 좋다. 남아 있는 가족에게 가장 좋은 위로는 고인에 대해 좋은 말을 해주고 추억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가족은 고인의 삶이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다거나 고인을 잊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애도 초기뿐 아니라 시간이 한참 지난 후라도, 고인이 가족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고인의 삶이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는지 등을 말해주는 것이 좋다. 특히 고인의 자녀에게는 아버지 혹은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다. 자녀들이 부모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게 되고 건강하게 추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위로의 말에는 이처럼 존중, 존엄, 긍휼이라는 참된 가치가 들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수밖에 없다. 그럴 때 내게 꼭 필요한 위로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말이 어떠해야 할지 가늠이 될 것이다. 사별자는 마음껏 슬픔을 표현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별자가 편하게 생각하고 신뢰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줘야 한다. 그리고 ‘말’이 아닌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윤득형 감리교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도미, Chicago Theological Seminary과 Claremont School of Theology에서 목회심리학과 영성상담학을 전공했다. 현재 각당복지재단에서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 회장, 의향서 본부장, 애도심리상담센터 센터장 등을 맡고 있으며, 감리교신학대학교와 숭실사이버대학에서 학생을 지도하고 있다. 저서로는 ‘슬픔학개론’이 있고, ‘애도수업’, ‘우리는 왜 죽어야 하나요’ 등을 번역했다.
- 2018-07-2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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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혼을 부르는 말, 행복을 키우는 말
- 결혼 30년 차 부부가 황혼이혼을 할 지경이 되어 저를 찾아왔습니다. 아내는 그동안 남편의 고약한 성격으로 인한 막말과 냉대를 참고 살아온 게 억울하다면서 남은 인생을 좀 더 자신을 위해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그동안 가족을 위해 회사에서 온갖 눈치 보며 열심히 살아왔는데 은퇴 후 힘 빠지고 경제력이 없어지니까 아내의 잔소리와 구박이 서럽고 헛살아온 것 같아 서글프다고 했습니다. 이들의 불행은 과연 아내가 주장하는 대로 성격차이일까요? 아니면 남편이 주장하는 대로 ‘남편을 돈벌어오는 기계로 여겨온’ 아내의 이기심 때문일까요? 답은 둘 다 아닙니다. 결혼에 대해 47년간 3000쌍을 연구해온 부부 관계의 세계 최고 전문가인 존 가트맨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이혼은 성격 차이나 부부 싸움의 내용과 무관하다고 합니다. 불행과 이혼의 가장 큰 원인은 서로 소통하는 방식, 즉 대화하는 방식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세 치 혀가 사람 잡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트맨 박사의 연구 결과와 상당히 일치하는 말입니다. 대화의 기본 3유형 가트맨 박사는 행복한 부부와 이혼하는 부부의 가장 큰 차이는 평소에 얼마나 서로 정서적 소통을 잘하는가, 갈등이 있을 때 얼마나 문제를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다루는가에 달렸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부부의 대화는 다음 3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서로 원수 되는 대화’, ‘멀어지는 대화’, 그리고 ‘다가가는 대화’입니다. ‘원수 되는 대화’란 상대의 말에 즉각 반박하거나 비웃는 말투입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여보, 오늘 미세먼지가 심하다는데 마스크 하고 나가세요”라고 말했을 때, 남편이 “잔소리 좀 그만해! 내가 알아서 할 테니”라고 말하는 것은 아내의 배려를 일축하고 반박하는 원수 되는 대화의 말투입니다. 이런 원수 되는 대화는 상대에게 분노와 적개심을 일으키게 하며 서로의 스트레스를 높임으로써 점점 언성이 높아지거나 대화를 중단하게 만듭니다. ‘멀어지는 대화’란 상대의 말과 상관없는 화제로 바꾸거나 무시하는 말투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아내에게 “어, 배고프다. 먹을 것 좀 없나?”라고 말하는데 아내가 “이번 주 조카 결혼식 가는 것 잊지 마세요”라며 전혀 상관없는 말을 하는 것이지요. 이런 멀어지는 대화는 말을 꺼낸 사람의 기분을 머쓱하게 만들며 정서적 거리감을 만듭니다. 놀랍게도 외도의 첫걸음은 멀어지는 대화에서 비롯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만큼 이런 사소한 대화 방식과 말투가 반복되고 누적될 때 그 영향은 참으로 고통스럽고 불행한 관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가가는 대화’란 어떤 것일까요? 상대의 말에 관심을 보이며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말투입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여보, 운동하러 나갈까?” 할 때, “좋지. 나도 운동하고 싶었는데”라며 호응하는 것입니다. 연구 결과 ‘다가가는 대화’는 스트레스를 낮추며 서로 한편이 된 것 같은 정서적 유대감을 키우는 효과가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혼을 초래하는 4가지 ‘독’ 갈등하는 부부들은 상대의 입장과 의견, 감정 등을 충분히 듣기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압도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말허리를 끊거나 자신의 입장을 밝히거나 조언을 하는 따위는 서로 말해봤자 상처만 받고 피곤함만 가중할 뿐입니다. 특히 다음과 같이 비난이 담기거나 방어적이거나 경멸적인 말은 이혼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이~ (비난) •당신은 지금까지 항상, 한 번도, 결코, 절대로, 늘… (비난) •난 아무 잘못 없는데 왜 만날 나보고 뭐라고 해? (방어) •우리 집은 너만 고치면 돼. (방어) •어쭈?! (경멸) •주제 파악이나 하시오! (경멸) •복에 겨운 줄 알아! (경멸) •눈을 흘기거나 피식 비웃음. (경멸) •침묵 (속으로는 ‘또 시작이군.’) (담쌓기) •침묵 (속으로는 ‘제발 그만 좀 해.’) (담쌓기) •침묵 (속으로는 ‘차라리 나가는 게 낫겠어.’) (담쌓기) 이렇게 비난, 방어, 경멸, 담쌓기의 방식을 사용하는 부부들은 결국 94% 이혼으로 끝난다고 합니다. 한 가지씩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비난은 상대의 성격과 인격에 문제가 있다는 투로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이 왜 만날….” 이렇게 말하는 것은 비난입니다. 방어는 책임 전가와 반격으로 “그러는 당신은 뭘 잘했는데?”, “당신도 그러면서 왜 나한테만 뭐라고 하는 거야?”라고 반박하는 태도입니다. 싸움의 불씨를 점점 확산시키지요. 경멸은 상대를 나보다 못나거나 어리거나 하인 취급하는 것입니다. “못생겼다”, “아는 게 없다”, “어쭈, 주제 파악 좀 하시지” 같은 조롱과 비웃음을 섞기도 하는데 이런 행동은 상대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끝으로 차라리 말 안 하는 게 상책이라 여길지 모르지만 담쌓기 또한 이혼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서로 눈 마주치지 않기, 말 안 하기, 전화기 꺼놓기, 늦게 들어오기, 각방 쓰기, 별거 등은 부부 사이에 감정적 거리감과 단절감을 증폭해 결국 이혼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독이 되는 말들은 부부 사이에 부정적 감정이 쌓이게 만들고 부정성을 키웁니다. 그러면 부부 사이에 감정적 조율이 되지 않고 서로 원망, 탓, 미움, 분노 등으로 더욱더 걷잡을 수 없이 관계가 나빠지고 감정적 거리감과 단절감에 휩싸여 절망과 불행감이 증폭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부부 사이에 공유하는 부정적 감정의 총량이 이혼을 결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부부가 그동안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아 재정 통장을 불리려고 애써온 만큼 서로에게 감사·배려·관심·호감·존중 등 관계의 ‘정서 통장’을 채우는 데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관계가 윤택하고 풍요로워집니다. 연구에 의하면,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는 부부들은 다툴 때도 긍정성이 부정성보다 다섯 배 더 많이 보이며, 평소에는 이보다 더 높은 긍정성을 쌓아둔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실제로 관계의 긍정성을 쌓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은 하루에 5~7분 정도로 충분하다니 해볼 만하지 않습니까? 행복한 부부의 소통 방식 그렇다면 행복한 부부들은 어떻게 소통을 할까요? 아니, 불행한 부부라도 어떻게 하면 관계를 다시 신혼 때처럼 다정하게 돌이킬 수 있을까요? 다음은 부부 사이에 긍정성을 높이는 대화 방식입니다. 먼저 말을 부드럽고 조용히, 천천히 하십시오. ‘너’ 또는 ‘당신’으로 시작하지 말고 ‘나’로 시작하는 ‘나-전달법’으로 느낌을 전하고, 욕구 표현을 긍정적으로 하십시오. •당신을 비난하려는 뜻이 아니고 내가 힘들어서 말하는 거예요. •나는 ~이 두렵고 걱정이 돼요. •내가 당신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그렇게 말하니까 야단맞는 기분이 들어. 좀 부드럽게 말해주면 좋겠어. •부드럽게 말하려 해도 잘 안되네. 다시 해볼게. 신뢰감과 친밀감 증진을 위한 처방 가트맨 박사는 오래도록 행복하고 안정적인 결혼을 하는 부부들은 열정이 아닌 우정지수가 높은 사람들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부부 사이에 우정지수를 높이려면 1)사랑의 지도, 2)호감과 존중, 3)다가가는 대화 등 3가지를 실천해보세요. ‘사랑의 지도’를 넓혀나간다 사랑의 지도란 서로의 내면세계를 잘 안다는 것입니다. 서로 무엇을 누구를 좋아하고 싫어하거나, 어떤 꿈을 지니고 있고, 어떤 상처와 프라이드를 지녔는지 관심을 갖고 물어봐주며 기억하는 것입니다. 배우자의 내면세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알고자 하는 것이 긍정성(우호감)을 쌓는 기초입니다. 예를 들어 배우자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친구를 가장 신뢰하는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경험은 무엇인지, 꼭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지, 요즘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일이 무엇인지 등 관심을 갖고 모르면 묻는 것입니다. 물론 따지듯 묻는 것이 아니라 애정 어린 관심과 호기심을 갖는다는 것이지요. 남녀의 차이를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뇌는 쉬는 방식이 다릅니다.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일부러 못 본 척, 모른 척하는 것은 남성의 뇌가 쉴 때는 전깃불이 나간 것처럼 거의 작동을 안 하기 때문이지요. 반면 여성의 뇌는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도 계속 활동을 합니다. 남자가 바쁘게 일할 때의 뇌 활동량과 맞먹을 정도로요. 따라서 남편에게 일을 시킬 땐 한 번에 한 가지씩 간단명료하게, 그러나 부드럽게 요청해야 합니다. 핵심은 비난이나 불평이 아니라 부탁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이 한 번도 설거지를 해주지 않냐?!”라고 말하는 것은 비난입니다. 부드럽게 ‘나-전달법’으로 요청해보십시오. “저녁 설거지만이라도 당신이 좀 해주면 내가 덜 피곤할 것 같아요”라고 말입니다. 같은 내용이지만 반응은 매우 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실천에도 진심으로 고마워하면 서로에게 긍정성이 쌓여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오게 됩니다. 서로의 장점을 찾아라 부부 사이가 나빠지면 서로를 ‘쓰레기’ 취급한다고 합니다. 함부로 대하고 막말을 하고 ‘다른 사람과 결혼할 걸~’ 하면서 후회하기도 하면서 남과 하향비교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선 자신의 장점을 50가지 찾은 후 배우자의 장점을 50가지만 찾아보십시오. 장점을 적다 보면 어느새 ‘소중한 보물’들을 간직한 배우자가 귀하고 고맙게 여겨지고 애틋한 마음이 생깁니다. 외도로 파탄이 나서 별거 중이던 부부에게 장점찾기를 과제로 줘 극적으로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저는 무수히 보았습니다(물론 이후의 상처 치유에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지요). 고마움을 자주 느끼고 표현하고, 배우자의 단점보다 긍정적인 면을 포착하는 습관을 지니세요. 다가가는 대화를 매일 조금씩 자주 하세요. 또 서로 예민한 부분을 감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가가는 대화(경청과 수용)를 하라 다가가는 대화의 한 예를 들면, 배우자가 스트레스를 엄청 받아서 말할 때 일단 불평과 불만을 잘 들어주는 것입니다. 배우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에 골몰하지 말고 먼저 상대의 말을 충분히 듣고 상대의 관점과 욕구를 이해합니다. 상대의 말을 듣고 감정을 확인한 뒤에는 다음과 같이 응답합니다. •“정말 힘들었겠네.” (화났겠네, 슬펐겠네, 억울했겠네 등의 감정 수용) •“당신 입장으로 보면 그럴 수 있겠네….” (관심을 표현하고 입장 수용) •“나 같아도 그런 상황이었다면 화가 났을 거야.” (공감) •“당신은 그 일에 대해 어떻게 하고 싶은데?” (의견 존중) •(배우자의 제안에 동의한다면) “정말 좋은 생각이네.” •(상대의 제안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런 방법도 있겠네. 또 다른 방법은 없을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지지와 협조) 대화 중 질문을 할 때는 따지거나 반박하기 위함이 아니라 정말 알고 싶어서 묻는 것이어야 합니다. 위협하지 말고 안전감을 증진하는 분위기가 중요합니다. 상대의 적이 아닌 동지가 되는 말이 좋습니다. ‘우리’라는 단어의 위력은 아주 큽니다! 사랑, 열정, 로맨스를 증진하는 방법 구애는 결혼 전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 후에도, 결혼한 지 오래되어도 구애를 계속해야 됩니다. 마치 씨앗을 뿌린 후에 계속 지켜보고 물을 주면서 가꾸듯 관심과 돌봄이 이어져야 관계도 성장하고 꽃이 핍니다. 배우자가 아직도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라는 말을 때때로 상기해줍니다. •“당신이 나한테 가장 사랑스럽고 매력적으로 보일 때는…”이라는 말을 해보세요. •상대가 나한테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시, 노래, 선물, 카드, 문자 등으로 표현하세요. •신체적, 언어적 사랑의 표현을 자주 하세요(어깨 주물러주기, 발 마사지, 간지럼 태우기 등). •사랑을 나눌 때 (특히 시작과 끝에) 둘만의 리추얼(ritual)을 만들어보세요(촛불, 와인, 아로마 등). •다양한 사랑 표현 방법을 찾고 시도해봅니다. 놀이, 선행, 여행, 추억 만들기, 상대의 부모형제에게 잘하기 등도 긍정적 감정을 쌓는 방법에 포함됩니다. 집도 애정을 갖고 가꾸고 돌봐야 망가지지 않듯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부부는 아침에 눈뜨면 먼저 깬 사람이 상대의 손이나 발을 약 20초 주물러줍니다. 아침에 서로 헤어지기 전에 6초간 포옹을 합니다. 왜 6초냐구요? 그래야 여자에게는 옥시토신, 남자에서는 바소프레신이라는 ‘연결 호르몬’이 나오기 때문이지요. 낮에 한두 번 간단한 문자로 고마움을 표현하고 저녁 때 만났을 때 “오늘 하루 어떻게 지냈어?”라고 물어주고 서로 위로해주고 공감해줍니다. 그리고 저녁에 뉴스를 보거나 잠들기 전에 아침에 늦게 일어난 사람이 30초 정도 어깨를 주물러줍니다. 하루 몇 분 정도만 노력을 들여도 ‘정서 통장’은 불어납니다. 이런 정서적 자산이야말로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 아닐까요? 여러분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기원드립니다.
- 2018-07-1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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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버 공간에서의 배려 절실
- SNS 마케팅 강의시간 중에 SNS의 여러 가지 특성과 장단점을 비교하게 되었다. SNS는 조금씩 다른 특성이 있고 개인 간의 소통이나 단체의 성격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한다. 한 번 발송하면 수정이 불가능한 카카오톡의 위험을 강조하면서 애인에게 보낼 문자를 아내에게 잘못 보냈을 때를 예로 들었다. 그러자 얼른 집에 가서 아내 휴대폰에서 자신이 보낸 카톡 내용을 지우면 된다고 한 수강생이 괴짜 아이디어를 내서 모두 폭소를 터트렸다. 그러나 단체 카톡 방에 잘못 올린 글은 회원들 휴대폰에서 다 지울 수 없어 때론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정치, 종교, 여성 이야기를 잘못 했다가는 매장되기가 쉽다. 지난 선거 때 그런 일이 생겼다. 필자가 회원으로 있는 대학교 동기 단체 카톡 방에서 정치 관련 논쟁이 격렬해지더니 급기야 욕설까지 했다. 지켜보면서도 참 불편했다. 그 논쟁에 끼어들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눈팅만 했다. 급기야 몇 명이 탈퇴하고 동기끼리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을 보면서 서로 대면하지 않고 문자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실감했다. 또 다른 단톡 방에는 특정 종교와 관련한 글을 매일 올리는 사람이 있다. 물론 다 좋은 내용이다. 그러나 단톡 방에는 무신론자부터 다양한 종교 신자들이 있다. 자기가 믿는 종교와 관련한 글을 계속 올리는 것은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데 정작 본인은 거룩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우리는 SNS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카카오톡, 밴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유튜브, 카페, 블로그 외에도 생소한 이름의 SNS가 많다. 개인 대화방도 있고 단체방도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 초대되는 일방적인 방도 있고 자신의 의지대로 가입하는 선택적인 방도 있다. 지인들과 정보를 주고받고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용도로 사용하지만 마케팅이나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통계를 보면 연령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소통 수단으로는 카카오톡, 밴드, 페이스북을 주로 사용한다. 문제는 이러한 SNS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의외로 많고 때로는 관계를 망가뜨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탈퇴하기 어려운 이유도 있어 버티고 있자니 예의 없는 회원들 때문에 무척 힘들다. 그래서 SNS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인 에티켓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그것들을 정리해본다. 먼저 프로필에는 본인 사진을 넣어야 한다. 프로필에 아예 사진을 넣지 않는 사람도 있다. 본인의 근황을 노출하고 싶지 않은가보다 하고 짐작은 되지만 얼굴 실루엣만 있는 그래픽을 보면 뭔가 숨기는 것 같아 친밀감이 사라진다. 꽃 사진이나 개, 고양이 등 동물 사진을 넣는 사람도 있는데 역시 호감이 가지 않는다. 대면하지 못하는 사이버 공간에서 원활히 소통 하려면 상대의 얼굴 정도는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본인 얼굴이 노출되면 좀 더 예의를 갖출 가능성도 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르겠고 나이도 짐작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야간이나 새벽 시간대에 글을 올리는 것도 결례다. 단톡 방에서 사적 대화를 지켜보는 것도 괴롭다. 검증 안 된 가짜 뉴스를 퍼 나르는 것도 좋지 않은 습관이다. 정치적인 글이나 특정 종교와 관련한 글은 정말 불편하다. 끊임없이 그런 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편협하거나 타인과 소통이 어려운 성격처럼 보인다. 그래서 아예 그런 사람들이 올린 글은 내용을 확인하지 않게 된다. 괴이한 이모티콘을 남발하는 사람도 있다. 괴물의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거나 회전하면서 춤을 추기도 하고 폭파 장면이나 흉측한 동물도 등장한다. 이모티콘이 뜰 때마다 휴대폰이 징징거린다. SNS를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단톡 방 활동도 한다. 단톡 방에서 이모티콘이 남발되면 종일 휴대폰이 울려대고 정작 중요한 내용은 자꾸 위쪽으로 사라져버려 이중으로 불편하다. 본인 동의 없이 단톡 방에 초대하는 것도 실례라 생각한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같은 방에 있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과 강제로 한 공간에서 엮이는 것은 괴롭다. 탈퇴하면 되지만 그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누가 탈퇴하는지 알게 되어 있어 초대한 사람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면서 탈퇴하는 것도 신경 쓰이는 일이다. 결정적으로 괴로운 것은 교훈이나 삶의 지침이 되는 긴 글을 매일 올리는 사람들이다. 세상을 살면서 뭐가 교훈이 되는지 삶의 지침이 되는지 이제 다 알 만한 나이다.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글들은 때로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내용이다. 그 많은 지침을 다 지키는 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에 오히려 반발심도 생긴다. 이런 글을 매일 찾아 올리는 사람의 정성을 무시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이렇게 일방적인 행태를 보이는 사람은 오프라인에서도 타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일 가능성이 많다. SNS는 이제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온라인 공간의 관계망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이루어질 때 잘 유지될 수 있다.
- 2018-07-09 1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