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이 매우 많은 사람처럼 보였다. 교과서에서도 풍문으로도 들어본 적 없는 민족의 뿌리와 신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남자. 탁성에 파장 깊은 목소리는 빠르게 내달렸지만, 여성 방청객이 많았던어느 날의 분위기와 맞지 않았다. 투박하고 투쟁적이었다고나 할까?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끝마치지 못한 남자에게 다가가 시간을 드릴 테니 못다 한 뒷얘기를 해
미주 한인 사회에서 지식인의 멘토로 불렸던 노부부가 있었다. 정신과 전문의로 UC데이비스 의과대학에서 35년간 교수로 근무했던 故 김익창 박사와, 데이비스 고등학교에서 25년간 교사로 일했던 그레이스 김(한국명 전경자·86)씨다.
부부는 평생 소외받는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힘썼고 그들의 권익을 위해 싸웠다. 53년을 함께하는 동안 그들은 최고의
◇exhibition
王이 사랑한 보물: 독일 드레스덴박물관연합 명품전
일정 11월 26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독일 드레스덴을 18세기 유럽 바로크 예술의 중심지로 이끌었던 폴란드의 ‘강건왕’ 아우구스투스. 그가 수집한 예술품 중 130점을 총 3부로 구성해 전시한다. 제1부에선 아우구스투스의 군복과 태양 가면, 사냥 도구 등 그의 권력을 상징하는 유
셋째 주 월요일, 코엑스에서 공연하는 클래식 티켓이 생겼다.
클래식에 무식한 필자는 실은 그동안 몇 번 참석해 보았던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이 연상되어 갈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지루할지 모른다는 전제로 공연 좋아하는 후배에게 연락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해서 동행해 같이 가게 되었다.
공연을 좋아하는 후배가 즐거워하니 필자도 따라서 마음이 즐거워졌고 팸플릿의
어렸을 적 TV에서 본 사람이 맞나 싶다. 기억 속 그는 리듬을 타는 정도의 율동과 함께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노래를 불렀다. 옆집 오빠면 딱 좋을 것 같았던 그가 오십이 넘어 대중 앞에 다시 나타났다. 중후한 매력을 내심 기대했지만 흥폭발은 기본이고 재치 넘치는 입담을 막기가 어려울 정도다. 1980년대 중반 ‘볼리비아發 염소 창법’으로 아이돌 인기를 구
를 보면, 수많은 공자의 제자가 나오지만 그중 재여(宰予)만큼 특이한 인물은 없다. 를 읽어보면 공자가 제자에 대해 험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나의 예외가 있는데, 그게 바로 ‘후목분장(朽木糞牆)’의 일화에 나오는 예다. 재여가 낮잠을 자자, “썩은 나무는 조각을 할 수 없고, 썩은 담장에는 칠을 할 수 없다”와 같은 심한 말로 나무라는 장면이 나온다.
여에스더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으로 TV에도 많이 나오는 유명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라서 까다롭고 위엄이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만나보면 전혀 위압감이 없고 소탈하고 발랄한 소녀 같다. 게다가 인품도 훌륭해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참 괜찮은 여성이다.
지금도 그런데 서울대 의대 시절에는 얼마나 인기가 많았을까? 그런 그녀를 목소리로 사로잡은 이가 바로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을 우리나라 진경산수(眞景山水)의 시발(始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관념의 이입(移入) 없이 자연스럽게 펼쳐 보이자’는 화풍은 특히 중국의 관념적이고 과장된 그것에 비해 스케일이 적고 다소 초라해 보일지라도, 우리의 풍광을 소박한 그대로, 진솔하게 그림으로 남기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누구나 노후에 작물을 기르며 텃밭을 가꾸고 싶은 작은 소망이 하나씩 있다. 밥상 위에 놓을 야채 몇 가지가 추가되는 것만으로도 좋고, 주변에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면 더 좋다. 여기에 약간의 용돈까지 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현 불가능한 꿈은 아니다. 그렇다고 집을 등지고 시골로 내려가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잘만 하면 직업으로 삼을 수도 있다.
“라디오코리아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989년 2월 1일, LA의 한인들은 눈물을 흘렸다. 라디오를 틀었는데 한국어가 나오고 한국 노래가 나왔던 거다.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말이다. 그렇게 수많은 한인들을 울렸던 목소리는 지금도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어김없이 흘러나온다. 28년 동안, 그가 마이크를 놓았던 날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저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