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을 살아갈 때 우리는 슬픔을 겪는다. 그런데 그 슬픔이 극에 달한 절절함은 이별(離別)할 때 나타난다.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시로는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강엄(江淹)의 ‘별부(別賦)’를 최고로 친다.
암담하여라… 혼(魂)이 다 녹아나는 건, 오직 이별 외에 또 다른 것이 또 있을까! … 고로, 이별이란 정서(情緖)는 하나이지만, 이별하는 사연은 만 가지라네… 봄풀이 푸르게 싹을 틔우고, 봄물이 맑은 물결 일으킬 때에, 사랑하는 임을 남포(南浦)로 보내면, 그 가슴 찢어지는 아픔을 어떻게 하리오! … 이처럼 이별의 상황은 일정치 않고, 이별의 이치도 갖가지이나, 이별에는 반드시 원망(怨望)이 있고, 그 원망은 반드시 가슴에 사무치게 되네…
(黯然銷魂者, 唯別而已矣! … 故別雖一緒, 事乃萬族... 春草碧色, 春水淥波。送君南浦, 傷如之何! … 是以別方不定,別理千名。有別必怨, 有怨必盈…)
이별의 아픔이 얼마나 절절한지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혼마저 다 녹아내린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이별의 아픔 중 사랑하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의 절절함이 가장 돋보이는 시는 조선시대 천재 여류시인인 이옥봉의 ‘몽혼(夢魂)’이다.
近來安否問如何(근래안부문여하)
요즈음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月到紗窓妾恨多(월도사창첩한다)
달빛 드는 사창에 소첩의 한이 더욱 서립니다.
若使夢魂行有跡(약사몽혼행유적)
꿈에라도 넋이 오간 흔적 만일 남는다면,
門前石路半成沙(문전석로반성사)
문 앞 돌길이 반은 모래가 되었을 거예요.
이옥봉은 조선시대 선조 때 충청도 옥천(沃川)군수를 지낸 이봉(李逢)의 첩에게서 태어나, 승지(承旨)를 지낸 조원(趙瑗)의 소실이 된 여인이다. 조원을 사모하여 소실을 자청하였는데, 조원은 이옥봉을 받아들이며 어릴 적부터 시명(詩名)을 날리던 이옥봉에게 다시는 시를 짓지 말라는 조건을 달았다. 그러나 얼마 후 조원 집안의 산지기가 칠석날 밤에 술을 한잔하고 돌아오다가 억울하게 소를 훔친 누명을 쓰게 되어 하옥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아낙이 옥봉에게 소장을 써달라고 간청하자 옥봉은 아낙을 불쌍히 여겨 ‘위인송원(爲人訟寃)’이란 시를 지어 파주목사에게 보낸다.
洗面盆爲鏡(세면분위경)
얼굴을 씻는 동이로 거울을 삼고
梳頭水作油(소두수작유)
머리 빗을 때 물로 머릿기름 삼는 신세입니다.
妾身非織女(첩신비직녀)
이 몸이 직녀가 아닐진대
郎豈是牽牛(낭기시견우)
제 낭군이 어찌 견우가 되오리까?
칠석(七夕)날 일어난 사건이므로, 견우(牽牛)와 직녀(織女)의 고사를 인용해 견우가 아닌 사람이 어떻게 소를 끌고 갔겠는가라고 쓴 기막힌 시다. 이 시를 접한 파주목사는 기이하게 여겨 산지기를 방면하지만, 결국 이 사건은 구설수에 오르게 된다. 일종의 필화(筆禍)사건인 셈인데, 불같이 화가 난 조원은 이옥봉을 쫓아내게 되고 이후 이옥봉이 버림받은 뒤 지은 시가 바로 ‘몽혼’이다. ‘자술(自述)’이라고도 불리는 이 시는 참으로 절절하다. 달빛이 창을 비추는 밤, 버림받은 여인의 한이 서린 그리움은 더욱 깊다.
>>하태형(河泰亨) 전 현대경제연구원장
서울대 경영대 졸업, 뉴욕주립대 경제학박사. 수원대 금융공학대학원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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