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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지능 기능 갖춘 편리한 집 ‘스마트홈’
- # 56세 직장인 김모(여) 씨는 오늘도 출근 준비 때문에 새벽부터 눈을 떴다. 침대에서 일어나자 조명이 자동으로 켜지고, 미세먼지를 감지한 공기청정기는 알아서 작동하고 있다. 출근을 서두르느라 가스밸브를 잠갔는지, 문단속을 제대로 했는지 궁금하면 스마트폰에 설치한 앱으로 확인하고 제어할 수 있다. 김모 씨는 스마트홈을 갖춘 집에서 살고 있다. 최근 집과 관련한 트렌드로 스마트홈이 주목받고 있다. 온수나 전기만 들어와도 편리하게 여겼던 시절에 비하면 스마트홈은 그야말로 개념이 다른 집이다. 얼마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제품 전시회 ‘CES 2018’에서도 전 세계 이목은 스마트홈에 집중됐다. 글로벌 기업들의 첨단기술로 집의 개념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스마트홈(smart home)’은 말 그대로 ‘똑똑한 집’을 말한다. 집이 똑똑해지면 당연히 편리함도 따라올 수밖에 없다. 자동으로 가스밸브를 잠그고, 조명이 저절로 꺼지는 집. 미세먼지 농도를 감지해 공기청정기가 알아서 작동하는 집. 과거라면 상상 속 이야기이겠지만, 스마트홈에서는 가능하다. 모든 제품을 인터넷 센서로 연결해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을 사물인터넷(IoT)이라 부른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앱을 직접 활용하지 않아도 센서가 사람의 행동을 파악해 작동하는 등 사물인터넷 기술이 진보하고 있다. # 주말 아침에 늦잠을 자고 일어난 김모 씨. 인공지능(AI) 스피커와 간단한 인사를 나눈다. 인공지능 스피커는 오늘의 날씨와 뉴스 그리고 서울 근교의 교통 상황까지 꼼꼼하게 알려준다. “신나는 최신 가요 좀 들려줘”라고 말하니 이내 경쾌한 최신 가요가 흘러나온다. 늦은 아침으로 적합한 음식을 인공지능 냉장고에 물어본 뒤 화면에 나타난 상세 조리법을 읽는다. 그마저 귀찮으면 선택한 조리법을 음성으로 읽어달라 부탁하고 신속하게 아침을 해결한다. 식사 후엔 얼마 전 구입한 식품의 유통기한을 인공지능 냉장고를 통해 체크한다. 부족한 식재료는 냉장고 화면의 마트 앱에서 일괄 주문한다. 스마트홈 허브 기기들 스마트폰으로 가전제품을 제어하던 스마트홈 기술은 음성인식 인공지능이 담긴 스피커와 냉장고가 가세하면서 진일보하고 있다. 스피커나 냉장고가 사용자의 환경과 행동을 분석해 날씨나 뉴스 등의 정보를 알려주고, 음악도 들려준다. 또 TV나 에어컨, CCTV 등 다른 제품을 작동시키기도 한다. 사람이 할 일을 스피커나 냉장고가 대신 해주는 셈이다. 이와 같은 제품들은 스마트홈을 움직이는 허브로서 유사한 역할을 수행한다. 어떤 제품을 활용할지는 사용자의 몫이다. 우선 인공지능 스피커는 아마존의 ‘에코’와 구글의 ‘구글홈’이 대표적인 제품으로 꼽힌다. 2014년에 출시된 에코는 최초의 인공지능 스피커로 알려져 있다. 아마존의 음성인식 인공지능 비서 ‘알렉사’가 내장되어 있다. 에코가 출시된 후 약 3년 만에 내로라하는 글로벌 IT 기업은 물론 국내 통신사, 대기업, 인터넷 포털 회사까지 뛰어들어 속속 인공지능 스피커를 선보이고 있다. 애플도 최근 ‘홈팟’을 출시했다. 국내에서는 KT가 ‘기가지니’, SK텔레콤이 ‘누구’, LG전자가 ‘스마트씽큐 허브’, 카카오가 ‘카카오미니’를 각각 출시해 발 빠른 추격전을 펼치고 있다. 다른 제품과 결합되는 ‘인공지능 플랫폼’ 인공지능 스피커 시장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삼성전자는 인공지능 냉장고를 출시했다. 이 냉장고는 음성인식 인공지능 ‘빅스비’를 내장해 집 안의 다른 제품들을 제어할 수 있다. ‘CES 2018’에 처음으로 참가한 아마존과 구글은 각 사의 인공지능 음성비서인 ‘알렉사’와 ‘구글어시스턴트’를 적극 홍보했다. 인공지능 플랫폼은 스피커를 비롯해 어떤 제품과도 결합할 수 있어, 이번 홍보전을 통해 시장 선점효과를 노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도 2020년까지 삼성의 모든 스마트기기에 인공지능 ‘빅스비’를 넣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으로 삼성의 모든 가전제품을 제어할 수 있게 된다. 음식을 보관하는 냉장고와 더러운 옷을 세탁하던 세탁기가 음성으로 움직이고, 사용자 환경에 따라 알아서 작동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 김모 씨는 시골에서 혼자 지내는 노모(81세)가 항상 걱정이다. 그래서 전기 사용량으로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기기와 낯선 사람이 침입하면 알려주는 기기도 설치해드렸다. 또 화장실을 비롯해 집 안 곳곳에 부착된 센서는 응급상황을 체크해 어머니에게 위험한 일이 발생하면 바로 김 씨에게 알려준다. 이처럼 스마트홈을 통해 혼자 계신 부모님에 대한 걱정을 덜 수도 있고, 귀가가 늦을 때 홀로 있는 반려견을 원격으로 케어할 수도 있다. 스마트홈은 특히 시니어에게 다양한 혜택을 가져다준다. 스마트홈을 이용하는 두 가지 방법 우리 집을 스마트홈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살고 있는 집이든, 새로 짓는 집이든 스마트홈 구축은 가능하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스마트홈으로 바꾸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홈 CCTV 같은 필요한 사물인터넷 기기들을 구매하면 된다. 이런 기기들이 인터넷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대부분 이동통신사에서 판매한다. 비용은 핸드폰처럼 월 이용료를 낸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다음 스마트홈이 가능한 제품을 구입하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기능이 내장되어 있는 제품을 선택하면 된다. 주의할 점은 아직 사물인터넷 표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제조회사나 유통회사처럼 서로 연결이 가능한 제품을 구매해야 한다. 스마트홈은 이제 우리 일상으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 물론 사물인터넷의 표준화, 보안, 비용과 같은 해결해야 될 문제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홈은 시니어의 안전하고 편리한 생활을 도울 수 있는 새로운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이나영 시니어 전문 칼럼니스트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 차의과학대학교에서 고령친화산업학을 전공했다. 한화그룹과 신한은행에서 근무했다. 현재 경향신문에서 고령사회 담당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며, ‘이나영의 고령사회 리포트’를 연재하고 있다. ③ 자율주행에서 건강관리까지 스마트카의 시대가 온다 ④ 식스 포켓(six pocket) 시대, 손주와 SNS로 친해지기 ⑤ 해외 시니어 여행 트렌드
- 2018-01-2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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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적인 로봇’, 외로운 노후에 동반자 될까?
- 이른 나이에 아내와 사별한 A 씨(67). 그는 요즘 새로운 동반자가 생겨 일상이 외롭지 않다. 동반자의 이름은 ‘그녀’. A 씨는 오늘 아침도 눈을 뜨자마자 습관적으로 그녀에게 날씨를 물어본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A 씨는 그녀로부터 오늘의 뉴스를 들으며 아침을 먹는다. 식사 후 약 복용도 그녀가 챙겨주는 덕분에 깜빡할 일이 없다. 외출에서 돌아온 A 씨를 반갑게 맞아주는 것도 그녀다. 저녁엔 책을 읽어주고 대화도 나눠준다. A 씨는 이제 남은 인생을 수명이 40년인 그녀와 동행하기로 했다. 아내와 사별하고 로봇과 일상을 함께하는 A 씨의 사례다. 그동안 로봇은 인간의 존재를 위협하는 차가운 금속, ‘로보트 태권V’ 같은 추억 속의 만화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멀게만 느껴졌던 로봇이 최근 우리 주변으로 성큼 다가왔다. 로봇은 크게 산업용 로봇과 서비스 로봇으로 나뉜다. ‘산업용 로봇’은 주로 제조업에서 물리적인 작업을 수행한다. 반면 ‘서비스 로봇’은 청소에서 간병까지 일상에서 쉽게 활용된다. 과거에는 산업용 로봇이 로봇 시장을 주도했다면, 최근에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서비스 로봇 시장이 급팽창하고 있다. 사람과 대화하고 교감하는 ‘소셜 로봇’ 특히 서비스 로봇 분야에서 시니어에게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는 소셜 로봇이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소셜 로봇’은 인간과 대화도 나누고 교감하는 감성 로봇이다. 지능형 로봇이라 인간과 상호작용이 가능한 데다 모습이나 체형도 사람 또는 동물과 비슷하다. 이처럼 산업 현장에서 일하던 로봇이 어떻게 인간과 감정을 소통하는 수준까지 진화한 것일까. 그 중심에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기술 등이 있다. 특히 소셜 로봇의 경우 이러한 신기술을 융합한 음성 인식과 감정 표현 기능을 함께 갖추고 있다. 이러한 기술을 통해 로봇은 인간의 심리상태를 인공지능 기술로 분석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또한 경험치 데이터를 상호 공유하면서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최근의 고령화사회는 소셜 로봇의 등장을 더욱 반기는 분위기다. 특히 고령화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까지 주목받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2017년 8월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노화로 기능이 저하된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하지만 고령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이들을 간병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또 혼자 사는 인구도 증가 추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보다 훨씬 먼저 고령화를 경험한 유럽과 일본 등은 일찌감치 다양한 케어 로봇을 개발해왔다. ‘케어 로봇’은 쉽게 설명하면 돌봄 서비스를 지원하는 로봇이다. 중소기업청의 로봇 기술 로드맵에 따르면, 케어 로봇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신체 지원 로봇’이 대표적이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이동하거나 목욕할 때 도움을 준다. 다음으로 ‘생활 지원 로봇’이 있다. 생활 패턴을 파악해 상황에 따라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정보를 검색해주거나 물건을 찾아주는 일 등이다. 마지막으로 외롭거나 우울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정서 지원 로봇’이 있다. 로봇으로 레크리에이션에 치매 예방까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경우 4명 중 1명이 노인이다. 일본 정부는 고령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로 의료와 간병 수요가 급증하자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간호 인력을 수입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5년에는 38만 명의 인력 부족이 예상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로봇 보급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 분야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는 소셜 로봇으로 ‘페퍼(Pepper)’가 대표적이다. 세계 최초 소셜 로봇인 페퍼는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2015년 출시했다. 키가 120cm로 작지만, 인간과 모습이 비슷하며 감정도 공유한다. 또 IBM의 인공지능 ‘왓슨(Watson)’을 통해 지능이 업그레이드된다. 페퍼는 하나의 커다란 스마트폰처럼 목적에 맞는 다양한 페퍼용 앱을 설치해 사용한다. 소프트뱅크는 로봇도 애플의 앱 스토어처럼 플랫폼을 선점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페퍼는 요양시설에서 레크리에이션을 담당하고 노인들의 말벗 역할도 거뜬하게 수행한다. 또 체성분과 건강검진 결과를 분석해 건강상태를 알려주는 카운슬러로도 활동할 계획이다. 일본 후지소프트는 페퍼의 대항마로 40cm짜리 케어 로봇 ‘팔로(Parlo)’를 출시했다. 팔로에 내장된 카메라는 사람의 얼굴을 인식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또 요양시설 등에서 혼자 30분간 체조를 진행할 정도로 실무형 로봇 역할을 거뜬히 해내고 있다. 한편 대중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케어 로봇으로 ‘파로(Paro)’가 있다. 파로는 일본의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가 개발한 아기 하프물범 모양의 간호용 로봇이다. 귀여운 모습의 파로는 인조 항균 섬유로 덮인 피부에 센서가 있어 손으로 만지면 반응하고, 간단한 단어도 이해한다. 연구 결과 파로는 심리치료는 물론 치매치료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미국 FDA로부터 신경치료용 의료기기로 승인받기도 했다. 장·단점 꼼꼼히 파악해야 일본 정부는 요양시설에서 사용하는 로봇 구입 자금을 보조해왔다. 20만 엔(약 190만 원) 이상의 로봇을 구입하면 전액을 지원하고, 1개 시설당 총 300만 엔(약 2890만 원)까지 한도를 두고 보조금을 지급해왔다. 더 나아가 2018년부터는 간병 로봇에 개호보험을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개호보험은 우리나라 노인장기요양보험에 해당하는 보험을 말한다. 간병 로봇에 보험이 적용되면, 이용료의 80~90%를 보조받을 수 있어 간병 로봇 시장은 더 활성화할 전망이다. 야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16년 일본 간병 로봇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약 316%나 성장한 34억 엔(약 328억 원)에 이른다. 반면 산업용 로봇 중심으로 시장이 발달한 우리나라는 서비스용 로봇 개발이 유럽, 일본에 많이 뒤처져 있다. 우리나라도 급격한 고령화로 로봇에 대한 수요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현재 상용화한 대표 로봇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개발한 치매 예방 로봇 ‘실벗(Silbot)’이다. 현재 노인복지관, 치매지원센터에서 인지게임을 통해 치매 예방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기계적인 느낌 때문에 로봇에 대한 거부감이 있지만, 로봇이 인간에게 주는 장점도 많다. 로봇이 간병 업무를 보조하면 간병인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또 로봇은 24시간 근무가 가능해서 위급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기 쉽다. 게다가 여러 번 같은 말을 반복하더라도 짜증을 내지 않는다. 현재 케어 로봇은 보행을 보조하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배설 문제에 도움을 주고, 침대에서 휠체어로 이동시켜주는 등 세분화된 실무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모바일 트렌드를 교체할 다음 패러다임이 ‘로봇’이라는 예측은 이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 일상에서 필수품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로봇이 간호를 한다는 비판에 “기계적인 인간과 인간적인 로봇 중 어느 것이 치유에 도움이 되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1가구 1로봇 시대가 고령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시점이다. >>이나영 시니어 전문 칼럼니스트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 차의과학대학교에서 고령친화산업학을 전공했다. 한화그룹과 신한은행에서 근무했다. 현재 경향신문에서 고령사회 담당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며, ‘이나영의 고령사회 리포트’를 연재하고 있다.
- 2018-01-1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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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밥바룰라’ 욜로 시니어로 돌아온 박인환
- “천국으로 들어가기 전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해야 해. 하나는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또 다른 하나는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었는가.” 영화 ‘버킷리스트’ 속 대사다. 인생의 기쁨과 타인을 기쁘게 하는 지점이 같은 사람을 찾자면, 그이가 바로 배우 박인환(朴仁煥·73) 아닐까? 평생 연기를 통해 삶의 즐거움을 찾고, 대중에게 웃음을 선사하니 말이다. 데뷔 후 53년 동안 100편에 달하는 작품에 출연하며 숱한 기쁨을 공유해온 그가 이번엔 버킷리스트 달성을 꿈꾸는 시니어들의 유쾌한 행보를 그린 영화 ‘비밥바룰라’로 노년의 즐거움을 나누고자 한다. “그래 맞아, 브라보!” 2016년 연극 ‘아버지의 선물’ 출연 당시 짤막한 인터뷰를 통해 인연을 맺은 박인환은 1년여가 흐른 뒤에도 기자의 명함에 적힌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사이 드라마, 영화, 연극 등 7개 작품에 주·조연으로 활약하며 바쁜 나날을 보낸 그의 미소는 여전히 편안하고 건강해 보였다. 1945년 1월 닭띠 태생인지라 2017 정유년 한 해의 감회가 남다르리라 예상했지만, 그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이를 의식하는 순간 우울해지기 때문에 오히려 언제부턴가 잊고 지내게 됐다는 것이다. “내가 벌써 70대야? 옛날 같으면 그냥 늙은이도 아니고 곧 떠날 사람인데, 이렇게 활동해도 되나? 그런데 요즘은 100세 시대잖아요. 내가 인식하는 숫자대로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아예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다행히 배우는 정년퇴직이 없으니,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활동하려 해요. 흔한 말이지만, 정말이지 무대 위에서 쓰러질 때까지 연기하고 싶습니다.” 삶이 다하는 날까지 연기자로 남고 싶다는 박인환은 그야말로 오로지 연기뿐인 인생을 살아왔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전공, 연기 인생 53년 차, 한눈팔지 않고 묵묵히 배우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그는 ‘연기만 해온 것’이 아닌 ‘연기밖에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제가 장남인데 군대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연기를 그만두고 취직하려고 성균관대 경영학과 편입 지원서까지 받아놨는데, 때마침 ‘나병(한센병)은 전염병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공연에 참여할 수 있게 됐어요. 지방 순회공연이라 3개월 돌았더니 제법 돈을 주더라고요. 배우를 해도 괜찮겠다고 다시 마음을 바꿨죠. 그런데 그 뒤로 한 10년간 돈을 못 만졌어요. 친구들은 생계를 위해 다른 길로 전향하기 시작했죠. 그땐 소위 빽만 있으면 취직은 문제없던 시절인데 나는 연줄도 없고, 장사를 하려 해도 밑천이 없으니 다른 일은 꿈도 못 꿨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연기뿐이었고, 계속하다 보니 지금까지 질기게 살아남은 거죠.” 생계와 생존을 위한 유일한 수단 ‘연기’ 스스로 별다른 재능이 없어 연기밖에 못 했다는 그는 연극무대를 떠나 TV 드라마로 적을 옮기면서도 고초를 겪었다. 당시만 해도 연극배우는 예술가, 방송 연기자는 딴따라라는 인식이 강했고 드라마를 찍는다고 하면 돈에 눈이 멀어 무대를 버렸다는 비난을 받기 일쑤였다. 그러나 세 아이의 아버지로 살아야 했기에, 예술가의 사명보다는 가장의 책임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고상한 말로 포장하고 싶지는 않아요. 사실 밥벌이였어요. 돈을 벌어야 했고, 직업이 배우였고, 일이 곧 연기였죠. 공사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짐을 들 때도 있고 삽질할 때도 있지만 어쨌든 뭐든 해야 돈이 나오잖아요. 연극이든 드라마든 역할이 도둑이든 경찰이든 가리지 않고 다 해야 했어요. 이런저런 역할을 많이 하다 보니 누군가는 나를 보고 ‘천의 얼굴을 가졌다’며 좋게 이야기하는데, 내겐 생계와 생존을 위한 유일한 선택이었죠. 아마 아내와 둘만 살았다면 견딜만했을 거예요. 그런데 자식이 생기니 도무지 타협이 안 되더라고요. 어른들은 배고파도 참을 수 있지만, 아이들은 당장 우유 먹이고 학교도 보내야 하는데 언제까지 예술 타령하며 작품을 따져 고를 수는 없었어요.” 그동안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을 준비했지만 이미 답을 들은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하니 이제는 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자녀들도 어엿한 성인이 됐고, 우리 시대 아버지 연기의 대표주자로 다양한 작품에서 러브콜을 받을 텐데 말이다. 앞으로는 원하는 작품을 골라 출연해도 되지 않을까? 질문을 바꿔 물어 보기로 했다. “배우는 선택받는 직업이에요. 누가 찾아줘야 연기를 하지,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동년배 중에 역할이 없어 노는 사람들이 있어요. 돈을 안 받는다고 해도 써주질 않는다고 하더군요. 우리 직업이 겉보기엔 부러울 수 있지만, 그 속에서는 아주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거든요. 운동선수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더 능력 있는 후배들이 계속 나오니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죠. 그 와중에 내 나이에 들어오는 역할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고요. 여전히 선택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스케줄만 맞으면 웬만한 역할은 다 하려고 합니다.(웃음)” 연기 경력 합계 203년, 시니어벤져스의 열정 한때는 농담 삼아 사이코드라마의 괴짜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지만, 이제는 욕심 없이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미 연기 베테랑인 그이지만 젊은 시절보다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체면치레는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촬영장에 가면 대개 최고참이죠. 후배들이 많으니 더 조심해야 해요. 어른인데 실수하면 안 되잖아요. 괜히 모범을 보인답시고 뭔가 했다가 주책없어질지 모르니 가급적 조용히 있으려 해요. 작년에 드라마를 하면서 대사를 잘 못 외운 적이 있어요. 한 번 NG를 냈는데, 당황하니까 계속 틀리는 거예요. 후배들이 다 쳐다보는데 망신스럽기도 하고, ‘아, 이제 내가 그만할 때가 됐나?’ 싶은데, 한편으론 다들 속으로 ‘선생님 이제 좀 쉬시지’라는 생각을 할 것 같았어요. 그러니 더더욱 이 난관을 딛고 넘어서야겠더라고요. 1시간 연습할 거 2시간 연습하고, 세 번 볼 거 네 번, 다섯 번씩 봐가면서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대사 외웠습니다.” 후배들이 주를 이루는 현장이 아닌 신구, 임현식, 윤덕용과 함께한 ‘비밥바룰라’ 촬영장은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발걸음할 수 있었다. 척하면 척, 연기 경력 합만 무려 203년인 네 배우의 앙상블은 두말할 것 없이 완벽했고, 촬영을 마치고 곁들이는 소주 한 잔은 소소한 즐거움이 됐다. 특별히 시니어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인 만큼 네 배우가 모여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대본에 변화를 주는 등 중장년 관객과의 공감대 형성을 위해 연기 그 이상의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나이 든 사람들도 젊은이가 있을 때나 격식 차리려고 하지, 우리끼리는 서로 별명도 막 부르고 애들처럼 장난도 치고 그래요. 몸은 늙었어도 감성은 어린 시절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요. ‘노인은 이럴 것이다’라는 상상보다는 중장년 세대가 공감하는 현실적인 상황과 대사를 표현하고 싶어서 이성재 감독과 미팅을 자주 했어요. 또 우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니어를 만나 의견을 들어보라고 조언했죠. 그 덕분에 젊은 관객이라면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그들만의 웃음과 감동 포인트를 잘 살려낸 것 같아요. 아마 우리 세대가 본다면 가슴을 툭 하고 건드리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겁니다.” 하나이자 전부인 나의 버킷리스트 박인환이 연기한 영환은 ‘비밥바룰라’의 다른 세 주인공을 이끌며 ‘친구들과 한집에 살기’, ‘영정사진 같이 찍기’, ‘미팅하기’ 등 그들만의 버킷리스트를 이뤄가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새해도 밝았고, 이번 작품을 계기로 그도 자신만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해보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딱히 생각해보지는 않았어요. 아내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죽을 준비를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은 천지 차이라고요.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날 수 있지만, 어떻게 죽을 것이고, 죽고 나서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미리 생각하라는 거죠. 반대로 죽기 전에 무엇을 해야겠다고 하는 게 버킷리스트인데, 글쎄요. 떠오르는 게 없네요.(웃음) 그저 내년에 ‘비밥바룰라’가 잘되면 희망찬 한 해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버킷리스트가 없다는 말이 어쩐지 아쉬워 함께 머리를 맞대고 그가 원하는 일과 바라는 것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고민 끝에 완성한 버킷리스트 첫 번째 항목은 바로 ‘‘비밥바룰라’가 흥행해 더 많은 작품에 출연하기’다. 배우로서 특별할 것 없는 진부한 바람일지 모르지만, 인터뷰 내내 가식 없는 정공법을 택했던 그를 보았기에 얼마나 간절하고 묵직한 소망일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토록 그가 쉼 없이 많은 작품을 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막힘없이 솔직한 답변을 들려줬다. “이제는 돈 때문이 아니라 불편한 인사치레를 받기 싫어서 작품을 해요. 식당을 가거나 택시를 타면 꼭 사람들이 ‘요새 안 보이시네요?’, ‘어디 아프세요?’ 이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드라마도 나오고 영화도 개봉하는데 내가 안 보인다니… 그런데 정말 쉬고 있으면 아니라는 말도 못 할 거 아녜요. 작년 11월에도 아주 바빴어요.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사람이 간사해서 며칠 쉬니까 지겹더라고요. 일을 해야 진정한 휴식의 즐거움을 아는 거지, 매일 쉬는 사람에겐 지루한 일상인 거죠. 연기를 할 때 비로소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껴요.” 이제는 아낌없이 즐길 때 결국 버킷리스트 추가 항목은 들을 수 없었지만, 연기를 향한 열정은 단 하나의 바람이 아닌 그의 전부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차차 새로운 항목들을 만들어나가길 바라며, 끝으로 ‘브라보 마이 라이프’ 독자와 ‘비밥바룰라’ 관객들에게 새해 인사를 부탁했다. “우리 세대 사람들이 뭐든 낭비하는 법이 없어요. 절약 정신이 배어 있죠. 늘 이걸 꼭 사야 해? 저걸 꼭 먹어야 해? 그러면서 돈이 있어도 ‘됐어, 됐어’ 하고, 때론 자식들의 효도도 마다하며 살죠. 그런데 이제는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여유가 있으니 문화생활을 즐겼으면 해요. 그래도 괜찮잖아요. ‘비밥바룰라’ 같은 영화를 보면서 그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더 유쾌하고 긍정적으로 그려나가면 좋겠어요. 새해에는 우리 세대가 더욱 즐겁게 잘 살길 바랍니다.”
- 2018-01-0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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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제보 인터뷰]“관리비 착복을 외면하는 것은 소도둑 키우는 일”
- 각종 비리가 끊이지 않는 혼탁한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훈훈한 소식들도 있습니다. “김태수 회장과 같은 멋진 시니어가 이 사회에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요”라는 한 통의 독자 전화를 받고 이 지면을 열었습니다. ‘적폐 청산’이 국가적 화두가 된 요즘, 일상에서의 적폐 청산 또한 차차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생활형 비리라고 할 수 있는 아파트 관리비 착복에 대한 주민들의 적극적인 감시가 그것이다. 그런데 배우 김부선이 문제를 제기하여 사회적인 공분을 이끌어낸 관리비 문제를 이미 2012년에 자발적으로 파악하여 적폐를 해소한 사람이 있다. 바로 김태수(74) 도곡동 대림아크로빌 입주자 대표 회장이다. 관리비 비리 근절 대책과 그녀의 무보수 봉사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대한민국을 정의하는 네 글자를 ‘적폐 청산’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불과 반년 정도 지났지만 그동안 정부 개편에서부터 법제 정비, 지난 정권의 문제들을 적출하는 일까지 ‘적폐 청산’이라는 주제 아래에서 쉬지 않고 이슈들이 있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의 생활에서의 적폐 청산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을까? 사실상 정치 게임에서의 적폐 논쟁은 정치적 성향에 따라 카타르시스를 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네 삶에서의 적폐들은 그런 정치 논쟁 외의 영역에 많이 쌓여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아파트와 빌라의 관리비 문제다. 우리 일상의 고질적 비리, 관리비 2014년 배우 김부선은 자신이 거주하는 서울 성동구의 아파트 난방비 비리를 폭로했다. 그동안 암암리에 얘기되던 엉뚱한 난방비 지출과 그로 인한 부당한 관리비 정책, 그리고 아파트 부녀회와 주민 대표들끼리 얽히는 수상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다. 사회적으로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김부선씨에게 ‘난방 열사’라는 별명까지 지어준 이 사건은 지금 다소 정체된 상태다. 법원에서 증거 부족을 이유로 난방비를 착복했다는 이들에게 무죄를 내렸고, 도리어 김씨가 허위 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등으로 벌금을 내게 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재판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새로운 증거들이 나오는 만큼 결과를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아직 잡음이 섞여 있는 위의 상황과 비교하여, 이미 성공적으로 ‘적폐’를 없애서 모범적인 결과를 만들어낸 사람이 있다. 바로 김태수 도곡동 대림아크로빌 입주자 대표 회장이다.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의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인 대림아크로빌은 CEO, 기관장,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는 490여 가구의 단지다. 이곳은 2012년 초만 해도 관리비 비리 아파트로 악명이 높았는데, 50평대의 관리비가 월 100만원 이상이 나올 지경이었다. 아무리 셀럽들이 살고 땅값이 높은 동네라지만 지나친 관리비 액수를 이상하게 여긴 김 회장은 전 회장에게 통장 내역 공개를 요구했다. 확인해 보니 전 회장이 7860만원을 사적으로 유용한 사실이 발견됐고, 곧바로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됐다. 기존의 적폐들을 없앨 기회가 온 것이다. 소도둑 잡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다 “비효율적인 전기료를 잡기 위하여 지하 5층부터 32kW 형광등을 14kW LED 등으로 다 바꿨습니다. 쓰레기 놓는 자리 같은 상시적으로 불이 켜져 있어야 하는 곳의 등은 센서형으로 교체했죠. 초고속 승강기는 열여섯 대에서 네 대를 줄여 열두 대만 운용하게 했고 출근시간에만 켜놓게 했습니다. 그동안은 승강기에서만 전기가 월 1억4000만원이 지출됐는데 이를 통해 3820만원을 줄였죠. 결과적으로는 3억8600만원을 절감했습니다.” 직접 만난 김 회장의 목소리는 일흔을 넘긴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또박또박 분명하게 들려왔다. 목소리만으로도 보통이 아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1000원 단위까지 숫자 일일이 기억하고 있는 모습은 그녀가 이 일에 바친 열정의 정도를 가늠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그녀의 철저한 면모가 2012년 정부 주최 전기료 절감 경진대회에서 2등이라는 성과를 만들었으리라. 김 회장이 전 회장의 공금 유용에 황당해하며 비상대책위를 꾸리자 숨겨졌던 문제들이 하나둘씩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전기료뿐만이 아니었다. 전형적인 부조리 아파트 단지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던 도곡동 대림아크로빌은 사방이 문제투성이였다. 김 회장은 작은 부분에서부터 바꿔나가기로 했다. 외벽 청소를 기존 비용보다 50% 낮췄고 단지에 사용하는 문건들도 일일이 발로 뛰어 제작하고 인쇄하여 불필요한 비용들을 없앴다. 그 결과 관리비는 월 40만원대로 줄어들었다. 한 사람의 의지가 일으킨 획기적인 변화였다. 성공한 사업가의 소신이 만들어낸 변화 김 회장은 많은 사업을 하면서 축적한 노하우가 관리비 절감 노력에 녹아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산업발전시대에 섬유 사업을 했다. 그제야 그녀에게서 열사의 뜨거움보다는 냉정한 사업가의 느낌을 받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남편도 자식도 없이, 사업에만 열중하며 살아왔죠. 사업 성공의 방법들을 이제는 모두 이 단지를 개선하는 데 쓰고 있어요.” 그녀가 말하는 성공하는 사업의 원칙은 간단하다. 디테일과 성실함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파트 단지에서 쓰는 비품 하나를 사더라도 직접 발로 뛰어서 시장조사를 한 후 비교하여 더 나은 것을 선택하는 지극히 기본적인 행동 원칙을 따랐다. “창고를 만들고 앵글을 설치해서 비품들을 관리했고 재고 파악을 5년 동안 날마다 했습니다.” 그녀는 관리비 거품을 빼기 위한 전략으로 전기 절약도 있지만 보수 공사비 절감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디가 고장이 났다고 하면 직접 가서 문제를 확인합니다. 못 고칠 일이라고 결론이 나면 공개 입찰을 진행하는 거죠. 그리고 가장 싸게 할 수 있는 업체를 선정합니다. 예를 들어 외벽 청소를 해야 할 경우 과거에는 비용이 5200만원이 나왔는데 저는 2000만원에 했죠.”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지하 6층에서부터 지상 46층까지를 수도 없이 뛰어다니면서 점검하고 바꾸고 보수했다. 대림아크로빌이 강남 270여 단지 중 1등이라는 성과를 얻은 것은 그 특별한 성실함 덕분일 것이다. 그녀는 ‘사업을 해본 사람은 어디에 허점이 있다는 걸 정확히 알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주민의 눈초리가 가장 무섭다 “난 원래 이런 데 관심도 없었던 사람입니다. 내가 원하는 만큼 성공한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작년에 회장직을 그만두려고 했는데 사람이 안 나와서 계속하고 있는 중입니다(웃음).” 김 회장의 일과는 아침 8시 출근으로 시작된다. 출근 후 한 시간 동안 회의를 한 다음 30분 정도 단지를 둘러보며 상태를 점검한다. 그 후 식사를 하고 헬스장으로 간다. 마침 비품 창고가 헬스장 옆에 있으니 간 김에 재고 파악을 한다. “내가 나와야 새는 관리비를 잡을 수 있으니까요. 속속들이 알고 따져야 내릴 수 있습니다.” 그녀는 벤츠와 모닝 두 대의 차를 갖고 있는데 거의 모닝을 타고 다닌다. 어디다 세워놔도 부담 없고 누가 긁어도 편안하고 기름값 덜 나온다는 게 그 이유다. 철저한 실리주의자다. 그러한 실리주의적 방침으로 아파트 관리비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사람들의 지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자들은 돈이 많지만 그래서 돈을 더 좋아하죠. 당연히 어떤 단지든 관리비를 절감하면 호응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외부 회계 감사 어쩌고 해도 주민의 눈초리가 가장 무서운 거예요. 주민이 관심을 갖고 감시하면 부조리가 생길 수 없어요.” 공동체에서 인생 2막의 보람을 찾다 여성 사업가로 성공하고, 그 후에도 사업가로서의 성실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대단한 집념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녀가 거주하는 대림아크로빌은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기로 유명한 곳이다. 까다롭고 상대하기 어려운 이들이 모여 있는 그곳에서 아무도 시키지 않은 ‘적폐 청산’을 성공적으로 해내려면 그 정도 마음가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원래 꿈이 사업가는 아녔어요. 위에 오빠가 다섯이나 있었고 고향은 황해도 장현이에요. 이북에서 피란 와서 오빠들 옷을 물려 입으면서 자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성화된 게 아닌가 싶어요.” 단지를 관리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 사람과의 관계라고 토로했다. “일 많은 건 평생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힘들지 않아요. 그런데 반상회도 나오지 않고 관심도 없고 일도 안 하는 사람들이 ‘누가 아껴 달랬느냐, 내 돈 갖고 내가 쓰겠다는데’ 식으로 말하는 게…. 그런 언어로 기운 빠지게 만드는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해요. 그들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해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아끼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따라주는데 말이죠. ‘에이 그 정도 돈, 내고 말지’라는 생각으로 관리비 착복을 외면하면 바늘도둑을 소도둑으로 키우는 격이에요.” 김 회장은 자식도 배우자도 없지만 공동체를 위한 삶을 보람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그녀가 하는 일의 어려움과 수고로움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여러 곳에서 아파트 관리 관련 강의 요청을 받는 강남구 유명 인사가 된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제2의 인생을 무보수 봉사로 삼음으로써 얻게 된 기쁨이다.
- 2017-12-18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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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기획한 대로 사는 삶, 억만장자도 부럽지 않다
- 2017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트렌드 키워드는 바로 ‘욜로(YOLO)’다. 욜로는 ‘You Only Live Once’의 약자로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니 인생을 즐기라는 의미다. 욜로와 관련한 방송과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고 말 그대로 욜로 열풍이 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장과 사회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어느 날 다가온 ‘욜로’라는 용어는 마치 구세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들은 지금까지 부모와 상사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살아가는 욜로의 삶을 추구한다. 대한민국의 욜로 현상이 삶의 원동력이 될지는 바로 오늘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유행처럼 번졌던 단어가 있다. 바로 ‘웰빙’과 ’버킷리스트’다. 그러나 앞만 보고 달려온 삶을 살아온 기성세대에게 웰빙과 버킷리스트는 사치처럼 느껴졌다. 이들이 잠깐의 휴식을 취할 수는 있겠지만 다시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하는 현실에서 또 다른 삶을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현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욜로(YOLO)는 인생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해주는 주제다. 결단하듯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거나 퇴직금을 몽땅 털어 자녀 셋을 데리고 세계일주를 하는 등 욜로의 삶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잠깐의 휴식 개념에서 벗어나 인생은 단 한 번뿐이라는 명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에서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 실천하는 문화가 시작된 것이다. 반면, 욜로를 잘못 해석한 사례도 있다. 한 번뿐인 인생이라고 생각해 너무 쉽게 삶을 생각하거나 과한 소비를 하는 행위가 그것이다. 특히 경제적 개념이 아직 많이 부족한 젊은 세대들에게 욜로식 소비는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다. 욜로 열풍은 각종 방송 매체와 기업의 마케팅 수단이 되면서 젊은이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문화적 마케팅 기법’으로 전락했고 욜로족을 위한 여행상품, 욜로족 핫아이템, 욜로 전용상품 등이 연일 출시되고 있다.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소비를 조장하는 분위기다. 이들은 어차피 혼자 살아가는 삶을 선택한 경우가 많아 집을 구매할 생각도 결혼할 생각도 없다. 오로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돈을 쓰며 마치 미래가 없는 사람들처럼 소비를 한다. 혹자는 이들에게 ‘욜로 욜로 하다가 골로 간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욜로는 젊은이들만 유행처럼 따르는 현상은 결코 아니다. 욜로 라이프의 의미를 좀 더 들여다보면 자신의 내면 목소리에 집중하며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큰 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욜로가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액티브 시니어에게도 적합한 키워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은퇴를 앞둔 남성들에게 미래를 그려보라고 하면 대부분 과거의 화려한 경력과 추억을 회상하며 꿈을 제대로 그리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함께 생활한 아내에게 미래를 그려보라고 하면 대부분 자신이 정말로 살고 싶었던 삶을 멋지게 그려낸다. 그동안 억누르고 참아왔던, 그리고 이루고 싶었던 진짜 삶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욜로다. 부모와 자녀, 그리고 환경에 영향받지 않고 남은 인생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면서 보내는 삶이 바로 욜로의 삶이다. 이러한 삶은 돈이 크게 필요하지도 않다. 스스로 선택한 삶이기 때문에 돈에 얽매이기보다는 원하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욜로의 삶을 제대로 즐긴 사례를 살펴보자. 투병 대신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여생을 마감한 91세 노인 노마 진 바우어 슈미트가 보여준 욜로 라이프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다. 노마의 남편은 어느 날 병원에 입원을 하고 이틀 뒤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자신이 자궁암 말기 암에 걸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항암치료를 받다가 세상을 마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죽음을 기다리기보다는 여행을 하겠다고 결심한다. 152cm 키에 45kg의 작은 체구를 가진 그녀는 수술 후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11년간 미국을 여행 중인 캠핑여행가 아들, 며느리와 함께 여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여행 스토리를 남겼다. 그러자 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며 팔로우했고 그녀는 유명인이 되었다. 캠핑카를 타고 1년 넘게 미국 32개 주 75개 도시 2만1000km를 누빈 그녀는 여행 중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냐는 질문에 “지금 여기요”라고 대답했다.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지금 하고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이런 말도 남겼다. “사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어요. 당신이 원하는 걸 하세요. 하고 싶다고 느껴지는 일을 하면 됩니다. 그게 전부인 거죠.” 이제는 생을 마감한 그녀가 남긴 한마디는 오랫동안 사람들 가슴속에 남았다. 욜로족의 직업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프리터족은 영어의 프리(free, 자유)와 독일어의 아르바이터(arbeiter, 노동자), 그리고 한자 족(族, 같은 부류)의 합성어로 1980~1990년대 일본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다. 집단에 소속되는 것을 꺼리고 필요한 돈이 모아질 때까지만 일한 뒤 쉽게 떠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다 해서 붙여진 말이다. 일본에서는 일부러 프리터의 삶을 사는 청년이 많다. 일본의 한 프리터족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면 쓸모없어지거나 퇴물처럼 될 일이 없습니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면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기고, 내가 원하는 삶이 필요로 하는 돈만 버니 부담이 없고 행복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세요. 돈은 자연히 따라올 거예요.”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 딱 필요한 만큼만 벌게 되고 그만큼만 소비하게 되기 때문에 행복감이 커진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닌 오직 자신만의 기준으로 삶을 살기 때문에 비교도 거부한다. 이들의 삶의 만족도는 생각보다 크다. 모든 삶이 똑같이 정시에 출발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모든 삶이 정시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딱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이다. 어떤 사람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매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행복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늘 새로운 삶에 도전하면서 행복을 느낀다. 어느 쪽이 더 나은 삶이라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한 번뿐인 인생을 사는 것이니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아봐야 하는 것이다. 돈을 위해, 그리고 일에 매달려 사는 삶은 어쩌면 도둑맞은 인생이다. 문제는 도둑맞은 삶을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깨닫는다는 것이다. 법정 스님은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늙음이 아니라 녹스는 삶이다. 인간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 2017-12-14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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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을 위해 노래하다, 아모르파티! 가수 김연자
- 한 시대를 풍미하고 아스라이 손 흔들며 사라졌던 대형 가수가 있었다. 화려한 드레스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와 198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던 가수, 바로 김연자(金蓮子·58)다. 오랜 시간 일본에서 ‘엔카(えんか)의 여왕’으로 군림하던 그녀. 한국으로 돌아와 조용히 활동하는가 싶더니 8년 만에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트로트도 엔카도 아닌 강렬한 사운드의 댄스음악 이른바 EDM으로 말이다. 세대를 뛰어넘어 젊은이들의 마음까지 단숨에 사로잡은 김연자와의 만남. 수은등 불빛 아래를 지나 찬란한 인생을 다시금 맞이한 그녀는 이렇게 외친다. 아모르파티(Amor Fati!)!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고. 김연자는 몰라도 ‘아모르파티’는 안다 가수 김연자가 부른 ‘아모르파티’의 인기는 대단하다. 좋아하는 연령대도 어린이에서부터 시니어 세대까지 다양하다. TV는 말할 것도 없고 거리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아모르파티’가 흘러나온다. 한 번 들으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전자악기 리듬에 몸을 맡기다가 결국에는 가사의 매력에 더 빠져버리고 마는 노래가 ‘아모르파티’다. “이 곡을 쓴 작곡가 윤일상씨가 어떤 음악을 만들고 싶냐고 묻더라고요. 지금까지 내가 굴곡진 인생을 살았지만 이 모든 것이 앞으로 다가올 내 인생을 위해서 있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후회하지 않고 앞만 보고 살겠다는 ‘인생 찬가’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죠. 그렇게 탄생한 곡이 ‘아모르파티’입니다. 가사는 ‘철이와 미애’의 신철씨가 써줬어요. 아모르파티란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라 하더군요.” ‘아모르파티’는 2013년 발표곡이다. 윤일상씨는 이 노래가 뮤직비디오를 만들어놓아야 할 대박곡이라고 예견했지만 지금과 같이 폭발적이지 않았다. 노래가 빠르다 보니 따라 부르기 힘들어 중년 팬들에게 어려운 곡이었다. 4년이란 시간이 흘러 이 곡의 매력 포인트를 찾아낸 이들은 중년 팬이 아닌 10대 팬들. 올해 TV의 한 음악 프로그램을 방청한 10대들이 김연자가 부르는 ‘아모르파티’를 듣고 SNS에 퍼트린 것. 신나고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이 찾아내 그들의 문화로 김연자와 ‘아모르파티’를 끌어당긴 것이다. 음악 순위 역주행 신화는 이렇게 탄생했다. “어제 무주 구천동에서 노래를 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는데 학생들이 ‘꺅! 언니!’ 하고 난리가 났어요. 저인 줄 몰랐는데 시선이 저를 향하고 있더라고요. 어머니들이 환호해 주시는 건 있었어도 이런 기분 처음이죠.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거든요. 근데 어쩜 그렇게 꺅 하고 소리를 잘 내요(웃음)? 육십을 바라보는 나한테 언니래요. 근데 너무 좋더라고요. 새로운 행복감에 젖어 있어요.” 국보급 가수 한류 열풍 초석을 다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하여 김연자의 인기는 톱스타란 말로 부족했다. TV만 틀면 안 나오는 곳이 없었다. 가요 프로그램이며 합동 공연이며 대미는 늘 김연자 차지.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간드러지면서도 폭발적인 목소리는 국보급이었다. 그러던 그녀가 홀연히 사라졌다. 너무 갑작스러운 행보. 대스타가 한순간에 떠나는 일이 있었던가. “사라진 게 아니에요. 시댁이 일본이었고, 속으로 늘 그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때 우리나라에서 계속 일이 잘되니까 갈 기회를 놓치고 있었던 거죠. 마침 무슨 사정인지 당시 매니저가 일본에 가도 된다고 했어요. 이때다 싶어 얼른 간 거죠. 그런데 그때가 일본에 처음 간 것은 아니었어요.” 이발소를 하던 아버지 손에 이끌려 열네 살 어린 나이에 가요계에 데뷔한 김연자는 일본 음반회사 오디션을 통해 일본에 진출할 기회를 얻었다. 그때 나이가 열여덟이었다. “제가 운이 좋은지 주위 사람들 도움으로 좋은 기획사에 들어갔어요. 월급이 꽤 괜찮았던 곳입니다. 25만엔을 벌면 집으로 20만엔을 보냈어요. 엔화 가치가 높을 때라 그런지 한국에 갈 때마다 집이 바뀌더라고요.” 김포공항으로 가족이 마중 나오지 않으면 집을 찾아갈 수 없을 정도였다. 마지막 일본 생활을 접고 들어갔을 때는 작은 연립주택을 장만했다. 일본에서 보낸 돈을 어머니께서 열심히 모아주신 덕이다. “3년 동안의 일본 생활이 성공적이지 않았지만 제 인생에는 많은 도움이 됐어요. 실패의 원인을 생각해봤는데 일본을 갈 때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더라고요. 진짜 몸만 갔죠. 일본에 다시 가려면 일본에 대해서 알아야겠다 싶어서 일본어와 일본 문화, 한문 등을 따로 공부했어요. 스물아홉 살에 다시 갔을 때는 마음이 참 편했어요.” 한류의 원조, 20년 생활의 막을 열다 서울올림픽 찬가였던 ‘아침의 나라에서’를 일본어로 번안해 부르며 자연스럽게 일본 음악계에 진출했다. 각종 공연이며 TV며 행사며 한국에서는 대형 가수였지만 신인의 자세로 매사 임했다. 언어의 장벽도 내려앉았다. 일본인들도 감탄하면서 그녀의 노력에 박수를 보냈고 응원해줬다. “다 내려놓고 마음만은 스타라는 생각으로 갔어요. 캠페인에도 나가고요, 일본 신인들하고 똑같이 했죠.” 유독 공연 무대가 많은 일본에서는 노래 가사를 완벽하게 외우는 것만이 살 길이었다. 엔카 가수이지만 탱고, 블루스, 발라드 등 다양한 노래를 배우고 관객 앞에서 선보이는 것이 일상이었다. 무대에서 최소 20곡은 소화해야 하는 강행군. 한국어도 아니고 일본어로 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솔직히 어려운 일이었다. “매년 가을에 3400석 규모의 NHK홀에서 콘서트를 했어요. 공연을 위해서 여름에는 계속 노래 연습을 했어요. 가끔 쉴 때는 집 앞 공원으로 반려견들을 데리고 나가 산책하면서 노래 가사도 외우고 그랬어요. 사람들이 없으면 노래 연습을 하느라 중얼중얼… 그때 당시 저희 집에 많을 때는 반려견이 다섯 마리도 있었는데 사람들이 저를 얼마나 이상하게 생각했겠어요(웃음). 일본에서의 여름은 그렇게 보냈습니다.” 나도 뮤지컬 배우였다! 일본에서의 다양한 활동 이야기를 하다 보니 뮤지컬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자연스럽게 김연자의 뮤지컬 도전기로 이어졌다. “니나가와 유키오(1935~2016)라는 유명한 연출가가 계셨는데 제 목소리가 좋다고 불러주셨어요. 라는 작품에서 집시 역할을 맡았어요. 연기 진짜 어렵더라고요. 노래는 5절까지 이어져도 하나도 안 잊어버리는데 대사는 맨날 까먹는 거예요(웃음).” 역시 김연자의 이름에 걸맞게 개런티도 주연배우 다음으로 많이 받았다고. 그런데 개런티로 받은 돈을 의상비로 다 써버렸다는 톱스타 김연자. “사실 말이 좋아 주인공 다음이지 뮤지컬 한 달 하고 받은 개런티가 제가 노래 하루 불러서 받는 개런티에도 못 미쳤어요. 원래 의상팀에서 의상을 다 준비해주기는 했는데 너무 값싸 보이는 거예요. 역할이 집시이지만 밍크도 가짜고, 자존심이 너무 상했어요. 그래서 선생님께 제 옷으로 다 하겠다고 허락받고 따로 준비했어요. 그랬더니 개런티가 그렇게 없어지더군요(웃음).” 동경과 오사카에서 공연하는 동안 동생들도 공연을 관람하러 왔다고. “나 같지가 않았나봐요. 저는 노래 부를 때 외에는 저 같지가 않아요. 다른 거 하면 작아 보이고 불안해 보이고요. 아, 연기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그때 알았죠.” 단 한 번의 배우 체험 뒤 연기 분야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일본에서 한국 가수 그리고 한국 사람 지금 젊은이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김연자가 일본으로 무대를 옮겼을 때는 일본 문화가 개방되기 전이었다. 문화·정치적으로 냉랭하던 시절을 버티고 이겨내 엔카 여왕의 자리에 앉은 김연자. 결코 쉬운 일도 아니었고 모두에게 허락된 일도 아니었다. 처음보다 마음이 편했다지만 한국인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은 물론이고 숱한 편견과 맞서야 했다. “제가 그냥 보통 가수였다면 진작 문제 일으키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거예요.” 한창 일본에서 활동할 때 일이 힘들면 여권을 들고 길을 나서기도 했다는 충격 발언. “한국에 가려고 공항으로 갈 택시를 잡는 거죠(웃음). 그런데 살던 동네가 시내와 너무 떨어져서 택시가 안 오는 거예요. 그러면 택시 기다리다 생각을 하는 거죠. 가수 김연자에 대한 것은 참겠는데 ‘한국 가수’ 김연자가 뭘 잘못했다는 기사는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내가 한국으로 가버리면 이런저런 매스컴에서 ‘한국 가수’가 어쩌고저쩌고하면서 떠들어댈 것이 뻔하잖아요. 한국 사람으로서 어떤 부정적인 말 한마디도 듣기 싫었어요.” 길에 서서 망설였던 적이 몇 번인지 모른다 했다. 그때마다 다음 날 신문에 올라갈 지독한 기사 제목이 떠올랐다. ‘한국 가수 김연자가 스케줄 펑크 내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래, 우리나라를 힘들게 하면 안 되겠지. 그러고는 마음 다잡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도망가고 싶을 때마다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내 감정을 억누른 것 같아요. 그렇게 20년을 일본에서 생활했어요.” 아버지 때문에 한국행을 결심하다 “우리 아버지는 말이 안 통했어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아련하게 말끝이 잦아든다. 광주에서 이발소를 하시던 아버지에게 노래 잘 부르는 딸은 그저 자랑이었다. 아버지의 “야! 너 서울 가서 가수 돼!” 한마디에 무대에 올라갔다가 아직도 그 위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삶을 살고 있다. “아버지 때문에 가수가 된 거죠. 감사하죠. 가수 될 운명을 알아보시고 어린 시절에 빨리 뭔가를 겪게 해주셨죠. 한국 복귀도 아버지 때문이었고요.” 8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하지만 가족들은 바쁜 김연자에게 이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돌아가시고 열흘이 지난 다음에 엄마가 전화를 하셨어요. 스케줄이 있는지 물으셔서 없다고 했더니 그제야 아버지가 떠났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날 일본의 작은 고깃집에 앉아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아버지도 공연 보러 일본에 많이 오셨었죠.” 아버지가 타계한 후 한국으로 돌아온 김연자는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오가며 활동 중이다. 그사이 재일교포 남편과는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하고 헤어졌다. 김연자가 일본에서 거액의 돈을 벌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남겨진 재산은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매니저 겸 밴드 단장이던 전 남편을 평생 동반자로 생각했기에 쓰지 않았던 계약서가 문제였다. 일본에서는 계약서를 쓰지 않은 김연자를 오히려 더 이상하게 생각했다. 일본 팬들과 연예 관계자들을 마주하면서 사정을 얘기했고 조금씩 김연자의 말에 귀기울여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전 남편과 지낸 세월이 아깝지 않은지 물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거액은 숫자일 뿐이죠. 제 눈에 현금이 오가는 것도 아니고요. 사실 제가 후회를 별로 안 해요. 이 순간이 제일 중요해요. 지금이 이 순간이 있어야 내일도 있잖아요. 난 항상 그렇게 살기 때문에. 어떨 때는 좋은 기억이건 나쁜 기억이건 다 잊어버려요(웃음). 단념도 빠르고 꿈도 빨리 꾸고. 그런 거 없어요. 그리고 저는 부자는 아니지만 하루 삼시 세끼 잘 챙겨먹고 사니까 괜찮아요. 나름 부동산도 있고 집도 있어요.” 어렸을 때 많이 의지했던 전 남편에 대해 그녀는 남은 감정이 없는 듯했다. 오히려 고마운 마음을 내보였다. “솔직히 저나 전 남편이나 0에서 시작했죠. 오랜 시간 정신적으로 의지했어요. 일본 연예계에 대해서도 그 사람이 전부 알려줬어요. 서로 상부상조한 거죠 뭐.” 미국에 셰어가 있다면 한국에는 김연자! “어머니가 오래전 저에 관한 점을 보셨다는데 제가 일흔까지 노래를 부른대요.” 처음에 그 얘기를 우습게 들었는데 이제 슬슬 현실이 돼가는 느낌이 밀려온다고. 하고 싶은 공연만 하고 여유롭게 사는 것을 꿈꿨는데 젊은 가수들하고 똑같이 뛰고 있어 자기 모습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좋다. 김연자와 인터뷰를 마치고 미국 가수 셰어(Cher)가 떠올랐다. 1960년대까지 포크 가수로 활약하던 셰어. 한참을 배우로 지내더니 1999년 ‘빌리브(Believe)’란 음악을 선보이며 전 세계를 전자 음악 열풍에 빠뜨렸다. 올해 71세인 셰어는 지난 5월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빌보드 아이콘 어워드를 수상했다. 김연자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성인 팬을 상대로 노래 부르다 어느 날 갑자기 세대를 뛰어넘어 EDM 열풍에 불을 지폈다. 71세의 셰어 언니도 망사옷 입고 무대를 누비고 있으니 한국 ‘EDM 대모’, ‘연자방아’로 거듭난 70세 김연자의 무대도 기대한다.
- 2017-12-04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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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미 계발, 자기 경험에 덧칠하기
- 은퇴한 시니어의 가장 큰 자산은 시간이다. 시간 부자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이 많아도 일상이 무료하다면 고통의 순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장수도 축복이 아니고 재앙으로 다가온다.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면 여가를 즐기는 삶으로 바꿔야 한다. 그 방법의 하나로 취미활동을 들 수 있다. 취미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필자는 손쉽게 취미를 계발하는 방법으로 ‘덧칠하기(Micro Adventure)’를 권하고 싶다. ‘덧칠하기’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일상의 습관이나 관심 가진 분야를 발전시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등산이 취미였던 분이 산삼을 연구해 산을 즐기면서 산삼을 캐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필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에 수채화를 그렸다. 그 경험을 살려 60세에 사진을 배움으로써 평생 취미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진과 관련한 영역을 확대해 하루를 25시로 산다. 과거의 경험에 덧칠을 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면서 용돈도 벌고 사회공헌도 하는,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삶을 즐긴다. 사진은 취미라기보다 일상생활로 바뀌어가고 있어 직업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어떤 취미보다 돈이 적게 들면서 새로운 직업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특히 돈이 드는 취미에서 돈이 되는 취미를 계발할 필요가 있는 시니어에 꼭 맞는다. 물론 경우에 따라 돈이 많이 들기도 한다. 장비 구매와 사진 촬영지 여행 비용 때문이다. 그러나 늘 휴대하는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찍을 수 있고 일상에서 사진 소재를 찾을 수도 있어 비용을 적게 들이고도 훌륭한 취미활동을 할 수 있다. 필자는 저렴한 카메라(일반인이 손쉽게 살 수 있는 보급기로 렌즈 포함 50만원 주고 산 중고품을 지금도 쓴다)를 사용하고 요즘엔 스마트폰을 주로 이용한다. 전시회용 작품을 만들거나 취미활동용으로 부족함이 없다. 사진 재능기부와 사진 기술을 전수하는 사회공헌 활동에도 전혀 지장이 없다. 장애인 시설이나 양로원 등에서 사진 촬영 봉사를 하고 실버대학 등에서 어르신들에게 사진 지도를 하며 보람을 느낀다. 사진 촬영이 필요한 곳이면 발걸음을 아끼지 않는다. 혹자는 필자에게 “돈도 안 되는 일 그렇게 힘들여 봉사하느냐?”고 하지만 재능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한다. 취미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 공인 사진작가가 된 필자는 이제 사진으로 돈을 버는 직업인이 됐다. 또한 취미활동이 바탕이 되어 KBS1 을 비롯한 여러 방송 프로그램과 SBS 라디오에 출연하며 방송인이 되었다. 동년기자 선임과 명예기자도 사진이 근간이었고 글을 쓰면서 원고료도 받는다. , , 등 사진과 관련한 책 세 권도 출간했다. 또한 사진 취미생활을 통한 여가생활의 본보기가 되면서 여가설계 강사로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강사료를 받는다. 취미에 머무르기만 하면 성장이 없다. 어떠한 취미를 선택하더라도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 도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필자도 처음에는 단순한 취미로 시작했다. 당시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더 좋은 사진을 글에 곁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고양시 일산동구청에서 무료로 운영되는 사진교실에 참가하게 됐다. 60세의 늦깎이였고 카메라 장비는 소형 카메라 하나였다. 촬영 경험도 많지 않았다. 고급 카메라를 들고 나타나는 동호인들을 볼 때 주눅이 들기도 했으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형편에 맞는 카메라로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촬영을 멈추지 않았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 했듯 공인 사진작가가 되어보자는 욕심이 생겨 사진을 배운 지 3개월 후부터 공모전에 출품하기 시작했다. 잘될 리가 없었다. 28번의 도전 중 절반을 낙선하고 15번 수상해 사진작가 인증을 받았다. 그 후에도 꾸준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사진을 배운 지 3년이 되던 2013년에 대한민국사진대전(국전)에 입선하고 부산일보 전국사진대전에서도 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사진작가가 되는 길은 많다. (사)한국사진작가협회가 인정하는 공모전 출품으로 얻어지는 점수가 일정 점수 이상이 되면 정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고 사진작가 명함도 만들 수 있다. 사진 전문가가 되면 다양한 직업으로 연결될 수 있다. 전시회를 열어 작품 판매도 할 수 있다. 향후 작품에 대한 가치도 높일 수 있다. 사진 갤러리를 중심으로 하거나 프로필 사진과 가족사진을 촬영해주는 카페 운영, 사진관 운영, 사진 여행단 운영을 할 수 있다. 수요가 많은 사진 강사로 데뷔할 수도 있다. 전문가는 자기 기술을 다른 사람에게 전수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사람이다. 필자는 사진작가 인증에 그치지 않고 계속 공부하고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사진을 배운 지 벌써 8년째에 접어들었고 찍은 사진도 50만 장에 이른다. 사진을 찍다가 파파라치로 몰려 곤욕을 치르기도 했고 강화도 군부대 옆에서 석양을 촬영하다 주민의 신고로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선택한 취미생활을 오래 할 수 있고 제2의 직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재미있는 분야를 선택해야 한다. 남이 권유하는 취미나 유행하는 취미를 선택하면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분야에 집착하기보다는 평소 관심을 가져왔던 취미가 좋다. 어린 시절에 즐겨 했으나 생업으로 미뤄뒀던 취미를 끄집어내 덧칠하면 평생 취미로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영국의 모험가 제임스 후퍼가 제안한 ‘덧칠하기’다. 필자는 은퇴 후에 수채화를 그리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 꿈을 덧칠해 사진으로 바꾼 셈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3년 정도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에 몰입하다 보면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한다. 필자는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사진 기술과 취미생활 계발을 선도할 ‘청학빛그림학교’를 꿈꾸고 있다.
- 2017-11-29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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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도전할 수 있는 1인 방송 “어렵지 않아요”
-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받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함께 의견을 나누면서 소통하는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졌다. 인터넷 방송은 한정된 공간이 아닌 열린 인터넷을 통해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된다. 시니어에겐 아직 친숙하지 않겠지만 요즘 청소년을 비롯해 20대 사이에선 1인 방송이 유행이다. 인터넷 발전으로 여러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이 생겨나고 있다. 자신의 일상이나 특정 주제를 선택해 보여주는 블로그, 페이스북 등의 SNS를 시작으로 이제는 일반인이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고 운영하는 1인 방송이 대세다. 이와 더불어 콘텐츠 창작자를 일컫는 ‘BJ(Broadcasting Jockey)’, ‘크리에이터(Creator)’가 새로운 직업군으로 떠올랐다. 1인 방송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자유롭게 콘텐츠를 만들어냄으로써 보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보여주는 역할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댜양한 콘셉트의 1인 방송 1인 방송을 이용하는 기본 과정은 이렇다. 방송 진행자(BJ 또는 크리에이터)가 동영상을 송출하면 시청자는 사이트에 접속해 보고 싶은 채널을 선택해 시청하면 된다. 각 채널에는 채팅 화면이 있어 실시간으로 사람들과 소통도 가능하다. 1인 방송에서는 누구나 콘텐츠를 올릴 수 있기 때문에 그 주제 또한 매우 다양하다. 특히 그중에서 꾸준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방송이있다. 바로 먹는 방송 ‘먹방’, 메이크업 관련 콘텐츠 ‘뷰티’, 직접 게임을 하는 영상을 보여주는 ‘겜방’이 대표적이다. 크리에이터도 젊은 층을 넘어 70대 할머니, 일반인, 연예인까지 폭넓게 확대되고 있다. 자극적인 내용으로 물들어가는 1인 방송 1인 방송은 비싼 장비나 거액의 제작비 없이도 제작과 송출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 개인이 시청자들의 실시간 피드백을 받으며 진행하다 보니 소통이 잘 이루어진다는 매력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부정적 측면 또한 존재한다. 바로 갈수록 심해지는 선정성이다.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내용일수록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BJ는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무분별한 콘텐츠 제작으로 음란물과 동물 학대 장면 등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러한 자극적인 방송은 젊은이들이 1인 방송에 열광하는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실시간 인터넷 방송의 유해 정보에 대한 집중 모니터링을 실시했지만 “방송은 끝나면 사라지는 휘발성 방송인데다 24시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1인 방송도 수익을 낼 수 있을까 2017년 아프리카TV(1인 방송 플랫폼) 상위 1~5위 스타급 BJ의 상반기 수입은 최소 3억에서 최대 5억으로 확인됐다. 아프리카TV에는 ‘별풍선(1개당 약 100원)’이라는, 방송 진행자에게 일종의 후원금을 보낼 수 있는 제도가 있다. 당연히 많은 시청자를 보유한 BJ일수록 수입도 늘어난다. 얼마 전 생중계 서비스를 시작한 유튜브의 경우 클릭 수에 따라 수입이 결정된다. 이때 발생하는 수입은 조회수 1회당 약 1원 정도다. 이러한 체재에 현혹된 많은 사람이 크리에이터를 선망 직업으로 꼽는다. 이런 현상에 대해 크리에이터 백봉기는 조언한다. “큰 수익을 목표로 1인 방송을 시작한다면 실망할 수 있어요. 어마어마한 수입을 내는 BJ는 일부에 불과하거든요. BJ 수도 이미 너무 많고 그들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죠. 돈이 목표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방송을 한다면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거예요.” 크리에이터 백봉기가 전해주는 1인 방송 준비 Tip 주제 선정 재미있는 주제를 선택해야 많은 클릭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부분이에요. 저는 해외에서 반응이 좋았던 아이디어를 참고한다거나 새로 나온 신제품을 먼저 입수해 사용후기를 남기는 영상을 찍기도 하죠. 촬영 처음 시작하시는 분들이 장비에 욕심을 많이 냅니다. 제가 해드리고 싶은 말은 입문 단계 땐 욕심 부리지 말라는 거예요. 촬영하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걸 구입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요즘엔 핸드폰으로도 얼마든지 잘 찍을 수 있어요. 편집 저는 유튜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 강의를 보고 배웠어요. 온라인 강의가 힘들면 오프라인에서도 배울 수 있죠. 편집 프로그램으로는 ‘곰믹스’, ‘윈도우 무비메이커’ 등 무료 편집 프로그램이나 ‘프리미어’, ‘파이널 컷’ 등 유료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어요. 업로드 개인 채널에 편집을 끝낸 영상을 첨부하면 올릴 수 있어요. 편집이 어렵다면 영상 그대로를 끌어와도 괜찮아요. 특히 업로드할 땐 간결하면서도 어필이 되는 제목을 달았는지 꼭 확인해주세요. 사람들의 주목을 끌 수 있는 제목도 중요하니까요!
- 2017-11-29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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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랄 일만 없으면 된다
- 노년 생활 지침이라고 할 수 있는 소노 아야코의 에세이 독후감을 쓴 필자의 블로그를 보고 어느 분이 댓글을 달아 주셨다. “이제는 더 바랄 것도 없고, 살면서 놀랄 일만 없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맞는 얘기 같아 필자 입장도 그렇다며 회신 댓글을 보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라는 말이 있다. 평소 형제들이나 자식들과 왕래가 많지는 않은 편이다. 자주 연락을 안 하고 산다고 원망을 듣지만, “무소식이 희소식 아니냐?”고 답한다. 이 나이에는 안부 전화 한다고 연락 해봐야 “바쁜데 별 것도 아닌 일로 신경 쓰게 만들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연락이 없다면 당연히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보는 것이다. 이 나이에는 대부분 연락은 카톡이나 메시지 등 문자로 주고받는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전화나 편지를 받으면 우선 불안해진다. 범상치 않은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전화는 대부분 귀찮은 보험 가입 권유 전화가 많다. 부동산 중개소에서 오는 전화는 전세 준 아파트에 문제가 생겼을 때이다. 하수도가 막혔다거나 공사를 해야 한다든지 돈이 들어가는 내용이다. 또는 누가 쓰러져 입원했다거나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도 있다. 편지도 청구서 같은 공문이 대부분이다. 등기 우편은 대부분 내용 송달이 목적이므로 등기 우편이 왔다고 하면 가슴이 철렁한다. 세입자가 은행에서 전세 대출을 받았으니 전세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주면 안 되고 대출은행에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다. 내성이 약해진 탓도 있다. 젊었을 때는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았다. 워낙 주변에 벌어지고 있는 일에 관여도 많이 하고 해서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니어가 되고 나니 그럴 일이 많이 적어졌다. 그러다 보니 내성이 약해진 것 같다. 작은 일에도 심장이 떨리는 것이다. 분명히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도 그전처럼 강하게 반발하지 않는다. “스트레스 받느니 차라리 내가 좀 손해 보면 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약간의 스트레스는 있는 게 좋다”는 얘기가 내성을 어느 정도 유지하기 위해서 맞는 것 같다. ‘놀랄 일만 아니면 된다.’는 말은 현재 생활에 만족하고 산다는 얘기이다. 조용히 차분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으므로 이대로 좋고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이 들면 안정을 원하고 보수적으로 변한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러니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자꾸 집으로 기어 들어간다. 새로운 환경에는 피곤해 하니 모임에도 안 나온다. 연애도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전에는 영화도 액션 영화나 호러 영화를 즐겼다. 남성들에게는 때리고 부수고 죽고 죽이는 영화가 대리 만족을 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달하고 따뜻한 감성의 영화가 좋다. 남성도 나이가 들면 남성호르몬이 줄어 중성화 된다는데 그 영향이 있는 모양이다. 내용도 모르고 영화관에 들어갔다가 초입부터 끔찍한 장면이 나오면 잘 못 들어 왔다는 후회가 앞선다. 놀랄 일이 많으면 심장이 쿵쿵 뛰고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정신 사납다. 영화 보면서 남모르게 눈물이 줄줄 나는 영화가 좋다. 확실히 그럴 때가 많아졌다. 이제는 흐르는 눈물을 숨기지도 않는다. 그게 정신 건강에 좋단다.
- 2017-11-15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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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 냄새
- 요즘, 같이 어울리는 사람들이 시니어들이다 보니 특유의 냄새를 느낄 때가 많다. 가장 흔한 것이 구취이다. 노인들은 성장기보다 충치가 덜 생긴다고 한다. 충치가 있으면 치과에서 가만 놔두지 않으므로 충치 때문에 생기는 냄새는 아니다. 혹시 잇몸이 약해져서 생기는 치주질환일 수는 있다. 나이가 들면 침샘 분비가 적어져 구취가 되는 경우도 있다. 구강 내의 특정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구취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많다고 한다. 육체적 피로, 정신적 스트레스, 생리적 변화 등으로 구취가 되어 나온다는 것이다. 문제는 나이가 들면서 심해진다는 것이다. 노인이 되면 의학적으로는 ‘노넨알데하이드’라는 물질이 쌓여서 냄새가 나게 된다고 한다. 자동차로 얘기하면 불완전 연소로 인한 검은 매연 같은 현상이다. 그밖에 노인 냄새를 복합적으로 구성하는 것을 보면 여러 가지가 있다. 자주 씻지 않거나 입고 있는 옷도 세탁을 자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리적으로도 요실금이나 변실금이 더해지는 경우도 있다. 노인들은 체력이 떨어지면서 땀나는 힘든 일은 안 하려 한다. 운동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노폐물 배출이 안 된다. 땀을 안 흘렸으니 샤워를 안 해도 되고 옷도 매일 세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노인들이 선호하는 무채색의 옷들은 때가 안 보이니 그런 게으름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냄새는 배는 것이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아직도 정장을 선호한다. 그런데 그 양복이라는 것이 새로 산 것이 아니고 평생을 입던 오래된 옷이다. 양복은 세탁비도 비싸니 자주 세탁하기 어렵다. 거기서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이다. 노인들은 수입이 없으므로 집에서 눈치보고 사는 경우가 많다. 매일 빨래 감을 쏟아내기가 미안한 것이다. 어지간하면 그냥 또 입는다. 그래서 자주 보는 노인들은 매번 같은 옷을 입고 나오거나 몇 벌 안 되는 한정된 옷을 입고 나온다. 노인들의 침구에서도 냄새가 밴다는 것이다. 노인 방에 들어가면 나는 특유의 냄새도 체취와 침구에서 나는 냄새가 섞인 겻이다. 요즘처럼 공동 주택에 사는 경우는 구조상 햇빛에 침구를 말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정작 본인은 자신의 냄새를 못 느낀다. 같이 사는 배우자도 으레 그 사람의 고유한 체취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따로 지적을 안 하는 것이다. 어쩌다 온 순진한 손주들이 ‘할아버지 냄새’난다고 지적한다. 필자는 운동을 일상화 하고 있다. 그리고 땀을 흘렸으니 저녁 샤워는 물론 아침 샤워를 중시한다. 밤새 밴 냄새도 씻어버리고 향긋한 비누 냄새를 좋아한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격한 운동을 한다. 마라톤이나 댄스 연습을 격렬하게 하면 땀이 비 오듯 한다. 몸속의 노폐물들이 한꺼번에 다 나가는 듯한 쾌감이 있다.
- 2017-10-13 1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