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모님처럼 늙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은 자신들의 뼈와 진을 녹여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소진되어 버렸다. 아무 준비 없이 맞이한 노년은 무료한 일상과 건강을 잃어버린 신체 때문에 고통스러워 보였다. 이런 부모님을 보면서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는 말을 습관처럼 되뇌었다.
그러다가 나도 늙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건
책은 빌리고 안 갖다줘도 범법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책을 여러사람이
쉽게 빌리고 쉽게 사고 애착이 없는 분들도 있지만 어린시절부터 책에 대한
애착이 많았다. 빌려줘도 꼭 받아서 찾아오는 편이었다.
한국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백과사전,종이신문 조간석간신문을
정독을 하는 선생님이셨던 아버님의 영향으로 계속 책을 모아두고 이동할 때 어린시절 썼던
일기장도 수
전철은 필자의 아지트다. 특히 순환선 2호선이다. 당뇨 시작할 때 필자는 모르고 피곤한가보다 하고 다닌 곳이 있다.
십년이상 운동 때문에 알게 된 모임의 한분이
모임하면서 교육받고 자격증 취득하여 피부관리마사지실을 개업한 시니어분이 있었다.
그 곳은 피로감이 밀려올 때 하소연도 하면서
거기서 모임하게 되니 모임시간보다 두 시간 전에 가서
마사지를 받으면
활발한 성격인 필자는 낚시를 좋아하지 않았다. 장비를 늘어놓고 하염없이 물을 바라보며 기다림의 미학을 즐겨야만 하는 낚시는 필자의 성질에 맞지 않았다.
정적인 우리 남편은 취미가 식물 가꾸기와 낚시이다.
한창 젊었을 때 남편이 낚시를 즐기니 어쩔 수 없이 몇 번 낚시터 동행을 하기도 했다.
낚시터는 대부분 경치가 좋은 곳에 있어 꼭 물고기를 잡는 목적이
예전 마당 넓은 친정집에는 책이 많았다. 어머니는 유난히 책 읽는 걸 밝혀서 사랑방 한쪽 면에 책장을 세우고 벽면 가득 책을 채웠다. 그 당시 우스갯소리로 졸부들이 집안을 번쩍거리는 모양의 전집을 한 번 꺼내 읽지도 않으면서 과시하듯 진열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정말 책을 좋아해서 사들였고 그래서 지금도 누구와 이야기해도 지지 않을 만큼의 지식을
서재의 책을 어떻게 관리하고 정리하고 있는지의 원고를 쓰기위해 집안 이곳저곳에 보관하고 있는 책들을 살펴보았다.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은 책상 위에 있고 바로 그 옆의 작은 책장에 최근에 구입하거니 선물 받은 책들이 있다. 대학 다닐 때 보던 책과 대학 겸임교수하면서 교재와 참고자료로 이용하던 책들은 추억의 편린으로 안방에 보관한다. 취미생활이나 실용적으로
오산중고 뒤편 운동장은 필자 세 자매의 아지트였다. 노을빛이 이루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필자는 서울 변두리의 용산구 보광동에서 태어나 스무 살까지 그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들은 모두 다 보광동에 묻어 두게 되었는데, 그 보광동의 중심에 오산중고가 우뚝 서 있다. 오산중고에 오랜 세월 가보지 않아
서울 50+재단이 초청장을 보내주어 지난 금요일 주한미국 용산별관에서 개최되는 [앙코르 50+ 포럼]에 참가하여 주거공유에 관한 유익한 정보를 공유하고 많은 얘기도 들을수 있었다.
포럼의 발표자는 New York Foundation for Senior Citizen(뉴욕시니어재단) CEO 린다 호프만이었고 1968년 설립된 이 재단은 뉴욕시 5자치구의 시
1983년이 되었다. 외국이지만 아이들에게 우리의 설을 느끼게 해 주려고 정성들여 녹두전도 부치고 삼색 나물도 무치고 내 식으로 설음식을 만들었다. 아이들도 신이 나서 만두를 빚었고, 전을 부치는 곁에서 호호 불어가며 먹고 떠들어대었다. 온 식구가 모이는 떠들썩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오붓한 설날 분위기는 부러움 없는 즐거운 풍경이었다. 만두 속이 터져라 꼭
나이가 들어가면서, 상장, 졸업장, 수료증, 자격증 등이 따로따로 있는 것이 거추장스럽고 보관해 두기에 왠지 불편해서 요즘은 40장짜리 파일에다가 모두 다 모아서 보관해두고 있다. 필자의 인생 전부가 담긴 이 파일을 한장 한장 넘겨 볼 때가 있는데 맨 첫 장이 성경암송대회 상장이고, 두 번째 장이 바로 ‘교회 주일학교 졸업장’이다. 어릴 적, 언제부터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