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어느 여성 국회의원이 발언 중에 비정규직 급식 요원을 ‘밥 하는 아줌마’로 비하했다고, 매스컴의 공격을 받고 발언자가 당사자들인 급식요원 앞에서 공개 사과하고 곤욕을 치룬 일이 있었다.
옛날 우리 모두가 못 살던 시절, 서울의 웬만한 중산층 가정이면 거의 대부분 ‘밥하는 아줌마’인 가정부를 집에 두고 살았다. 다만 한 식구라도 먹는 입을 줄이
취기가 오른 탓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피아노 선제공격이 먹혔다. 임수정이 바로 옆에서 노래하고 내가 피아노 반주를 했다. 이슬 같은 여자 임수정과 참이슬을 마주하고 흥이 돋는 밤을 보냈다.
“무작정 당신이 좋아요~ 이대로 옆에 있어주세요~” 이 노래가 TV에서 흘러나올 때 나는 가사 그대로 무작정 임수정이 좋아 죽었었다. 이 노래가 하루에도 몇 번씩
이어령(李御寧·83) 전 문화부장관은 언제나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지는 분이다. 이 시대의 멘토, 아무도 따를 수 없는 기억장치, 외장하드다. 어제 만났더라도 오늘 다시 만나면 새롭고 신선한 이야기가 샘솟는다. 그사이 언제 이런 걸 새로 길어 올렸을까 싶을 정도로 그에게는 늘 말이 차고 넘친다. 스스로 ‘아직도 비어 있는 두레박’, ‘여전히 늘 목이
“오늘도 일하러 가세요? 점심이나 간단히?”
“점심 같이 먹자. 내가 살게. 나이 들어갈수록 지갑을 자주 열어야 한대. 먹고 싶은 음식 있으면 미리 생각해두렴.”
“네~ 12시에 제가 차 가지고 모시러 갈게요. 310동 도로에서 뵈어요.”
그렇게 만나 함께 낙엽 쌓인 율동공원을 산책하며 가을날 오후를 즐겼다.
K와의 인연은 2년 전쯤 양평군립미술관에서 열
멀티플렉스가 생기기 전만 해도 다양한 작품이 상영관에 걸렸다. 규모가 크건 작건 작품성이 입소문을 타면 영화관 속으로 관객이 파도처럼 빨려 들어갔다. 멀티플렉스라... 동네 구석구석 들어와 영화 보는 횟수를 늘렸지만 작고 소박한 영화가 설 자리를 빼앗고 말았다. 다양한 영화를 만들고 싶고 또 보고 싶은 사람이 갈 곳 없는 지금의 현실. 그런데 이 척박한 영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함박웃음을 웃으며 맞아주었다.
둘째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팔이 아파서 병원에 다닌다고 필자가 카톡에 근황을 올렸더니 갓김치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반찬을 준비하여 울산에서 서울로 택배를 보내왔다는 것이다.
무엇을 준비하여 보내야 할 지 몰라 평소 시어머니가 즐겨 만들어 준 음식을 생각하며 둘째 며느리는 인터넷에서 래시
졸업 이후 처음이다. 성당도 군부대도 있었지 아마? 큰길 맞은편엔 한때 어머니가 다니셨던 신발공장도 있었고. 지하철 역세권으로 탈바꿈한 지 이미 오래전이라니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 이젠 사라졌을 옛날 우리 집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면 대문 앞에서 찻길까지 그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서 아주 오랜만의 등교를 해보리라.
부산 지하철 2호선 문현역 2번 출구
시골에 내려가 살기를 원하는가? 그러나 시골에 거처를 마련할 실력이 여의치 않은가? 빈손인가? 걱정 마시라. 찾다 보면 뾰족한 수가 생긴다. 일테면, 재각(齋閣)지기로 들어앉으면 된다. 전국 도처에 산재하는 재실, 재각, 고택의 대부분이 비어 있다. 임대료도 의무적 노역도 거의 없는 조건으로 입주할 수 있다. 물론 소정의 면접은 치러야겠지만 당신이 남파된
영화산업의 메카, 영화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곳. 재봉틀 하나로 ‘할리우드’를 정복한 한국 아줌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바네사 리(48·한국명 이미경). 그녀의 할리우드 정복기는 어떤 영화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공식 타이틀은 ‘패브리케이터(Fabricator)’. 특수효과 및 미술, 의상, 분장 등을 총칭하는 ‘FX’ 분야에 속해 있는 전문직이다.
한 시대를 풍미하고 아스라이 손 흔들며 사라졌던 대형 가수가 있었다. 화려한 드레스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와 198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던 가수, 바로 김연자(金蓮子·58)다. 오랜 시간 일본에서 ‘엔카(えんか)의 여왕’으로 군림하던 그녀. 한국으로 돌아와 조용히 활동하는가 싶더니 8년 만에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트로트도 엔카도 아닌 강렬한 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