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뮤지컬 오리지널 <캣츠>를 보고
- 유명 뮤지컬 를 볼 기회가 생겼다. 우리나라 배우 무대가 아니라 오리지널 팀이 내한해 공연하는 뮤지컬이다. 우리나라 배우들의 연기도 좋지만, 본고장의 연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으니 내한공연 팀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설레었다. 2014년 웨스트엔드를 시작으로 2015년 시드니, 파리, 2016년 브로드웨이, 2017년 유럽 투어를 끝내고 우리나라에서 하는 공연이다.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으로 가는 발걸음이 즐거웠다. 워낙 유명한 작품인 데다 극 중 주제가 ‘메모리’는 늘 애잔하게 필자의 가슴을 울린다. 좌석도 무대와 가까운 VIP 자리였지만 필자는 젤리클석이 따로 있는 줄 몰랐다. 젤리클은 고양이 종류의 이름인데 뮤지컬 에서 특별하게 무대 맨 앞쪽과 통로 쪽에 마련한 좌석에 같은 이름을 붙였다. 젤리클석이 관람하기에 좋다는 건 뮤지컬이 시작되면서 알게 되었다. 막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무대에서는 수많은 고양이 눈동자가 반짝였다. 어떤 모습으로 첫 무대가 시작될지 기대감으로 가슴이 뛰었는데 갑자기 관객들이 웅성거리면서 뒤편을 돌아봤다. 의 출연진이 객석 뒤에서 뛰어나와 옆 통로를 지나 무대로 올랐기 때문이다. 출연진은 지나가다가 통로 쪽 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잠시 멈추어 머리도 쓰다듬고 악수도 했다. 관객과 이런 교류가 있어 젤리클석이 특별하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 주로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인사를 건넸는데 아이들은 먼 훗날까지 그 순간을 아름답게 기억하게 될 것이다. (에 등장하는 주인공 중 한 고양이) 화려하게 치장한 여러 고양이가 소개되고 춤과 무용이 시작되었다. 고양이와 너무 흡사하게 꾸민 분장에도 놀랐지만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한 그들의 몸짓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실제로 이 뮤지컬 지휘자는 배우들을 혹독하게 연습시키기로 유명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뮤지컬 는 고양이의 눈으로 본 이 세상의 고양이들 이야기다. 1년에 한 번 젤리클 고양이를 뽑는 축제가 있는데 젤리클 고양이로 선택되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젤리클 고양이가 된다고 한다. 막이 오르면서 부자 고양이, 도둑 고양이, 늙은 광대 고양이 등 30여 마리의 고양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춤과 노래를 펼친다. 각각의 고양이 이름은 너무 길고 어려워 기억하지 못하지만,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메모리’를 부르는 고양이 이름은 ‘그리자벨라’다. 한때 가장 아름다웠던 ‘그리자벨라‘는 고양이 세상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왔는데 아름답던 모습은 사라지고 초라해져서 다른 고양이들로부터 냉대를 받는다. 화려했던 젊은 날을 회상하며 부르는 1막의 ‘그리자벨라’와 2막의 ‘메모리’는 특히 필자의 마음을 울렸다. 사람에게도 환하게 빛나는 청춘이 있다. 나이 들면 그 빛이 사라지듯 아름답던 필자의 젊은 날과 ‘그리자벨라’의 젊은 날이 오버랩되는 듯해서 슬픈 감정이 들었다.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온 ‘그리자벨라’가 과거의 영광, 아름다움, 지나간 세월에 대해 노래하자 고양이들은 ‘그리자벨라’를 올해의 젤리클로 뽑아 천상으로 올라가게 한다는 이야기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아름다웠고 배우들의 연기도 매우 훌륭했다. 이번 공연에서도 필자는 양옆의 스크린에 나오는 자막을 읽으랴 무대를 보랴 눈이 바빴지만, 손뼉도 치고 몸을 흔들기도 하며 정말 즐겁고 신나게 관람했다. 자리가 통로 쪽이 아니어서 지나가며 인사하는 고양이들과 직접 눈을 맞추지 못한 점이 아쉬웠지만 멋진 뮤지컬 한 편으로 하루를 아름답게 보낼 수 있어서 감사했다.
- 2017-09-08 13:04
-
- ’가마골소극장’ 셋방살이 극장 미래를 여는 극장으로 우뚝 솟다
- 한 극장이 오랜 세월 명맥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지금까지 힘없는 연극인들은 도시 개발, 상권 확장에 쉽게 자리를 내줘야 했다. 기억 속으로 사라진 극장만도 헤아릴 수 없는 요즘, 부산의 가마골소극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소극장의 옛 추억을 간직한 시니어 세대와 무대를 지키고 싶은 젊은 연극인의 꿈이 담겨 있는 공간 가마골 소극장에 다녀왔다. 오늘도 내일도 극장문은 활짝 열린다 지난 7월 7일, 부산시 기장군 일광면. 조용했던 마을에 풍악이 울리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낯익은 배우가 박자에 맞춰 덩실덩실 춤추고 모두의 얼굴은 상기돼 기쁜 모습이었다. 한산했던 시골 동네에 부산 연극의 중심이던 가마골소극장이 들어섰다. 6층짜리 화려한 건물 안에는 공연장을 비롯해 주점, 카페 등 연극인과 시민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으로 채워졌다. 1986년 부산 광장동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가마골소극장은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산실을 담당하던 곳이다. 연희단거리패의 활동 무대가 부산에서 서울로 옮겨졌을 때도 꾸준히 실험연극을 비롯해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면서 시민의 사랑을 받았다. 중앙동과 광안리, 다시 광복동을 거쳐서 거제리로 무대를 옮겨 다니면서도 다수 공연의 매진 행렬과 최대 유료객석 점유율을 기록한 내실 있는 극장이었다. 그러나 시대 기류에 못 이겨 폐관이 기로에 서기도 했다. 결국 길고 길었던 셋방살이 30년에 종지부를 찍고 100년 길이 남을 극장으로 기장군에 세워졌다. 역사와 추억을 품다 “현재 부산 기장군에 신축 중인 6층짜리 가마골소극장의 건물 1층은 포장마차로, 2층은 카페 오아시스로 꾸밀 생각이라고 한다. 위층은 극장과 극단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될 것….”(2017년 7월호 브라보가 만난 사람, 연극연출가 이윤택 인터뷰 中) 가마골소극장에 관한 계획은 작년 7월 연희단거리패의 꼭두쇠 이윤택 인터뷰를 통해 본지에 소개된 바 있다. 막연한 계획이 아니었다는 것을 극장 건립을 통해 보여준 것. 1층에는 목로주점 양산박이 있다. 이윤택이 신문기자이던 시절 한 시인을 돕기 위해 부산일보 기자 네 명과 함께 출자해 부산시 광복동 입구에 차렸다던 ‘양산박’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2층은 부산 국제시장 근처에 있던 클래식 음악 카페 오아시스의 향수가 묻어나는 곳으로 꾸몄다. 이윤택이 20대이던 시절 당시 돈 80원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음악 듣고 시 쓰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곳이 바로 카페 오아시스였다고. 그때처럼 LP판은 아니지만 지금의 카페 오아시스도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 천장에는 지금까지 연희단거리패가 공연했던 작품의 포스터가 촘촘하게 붙어 있다. 극단과 극장의 세월을 가늠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각종 문화 콘서트, 세미나, 북콘서트를 통해 시민과 교류하는 만남의 장소로 이용할 계획이다. 2층에는 가마골소극장과 연희단거리패를 대표하는 여배우이자 연출가였던 故 이윤주의 기념관과 북카페 ‘책굽는 가마’가 함께 자리했다. 2015년 투병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꽃같이 사라진 배우이자 연출가 이윤주를 기리는 이윤주기념관에서는 그녀 연극생활의 시작과 끝을 만날 수 있다. 가마골소극장의 대표로서 서울보다는 부산 연극무대를 지켜왔던 이윤주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신비한 몸짓과 목소리를 가졌던 배우이자 연극쟁이였다. 아동극 연출과 연극 에서 배우를 마지막으로 영영 사라진 그녀를 잠시나마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북카페 ‘책굽는 가마’에는 연희단거리패가 지금까지 출판했던 도서와 연희단거리패 연극 200선을 구비해놓고 판매도 한다. 조용히 책을 읽고 차를 마시기에 좋다. 3층과 4층이 바로 가마골소극장이다. 120석 규모의 극장은 작은 무대이지만 높이와 경사각이 깊어 무대가 답답해 보이지 않는 장점이 있다. 5층과 6층은 배우들의 숙소와 연희단거리패의 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아카이브도 마련돼 있다. 배우와 스태프가 직접 만들고 운영까지 하는 곳 가마골소극장에는 남다른 시스템이 있다. 바로 극단의 모든 구성원이 운영 주체다. 1층과 2층의 주점과 카페에서 일하는 종업원들도 배우들과 스태프다. 분장을 하고 커피를 만들거나 서빙을 하고, 셔틀버스를 운행한 배우가 곧바로 무대에 올라가기도 한다. 극장의 무대, 조명, 음향, 객석 등 사람들이 오가는 곳곳에도 극단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이 서려 있다. 연희단거리패 조명감독 겸 가마골소극장 대표인 조인곤씨는 “가마골소극장은 연희단거리패와 극단가마골, 가마골소극장의 역사 저장창고라고 생각한다”며 “시간이 지나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역사적 유물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기장에는 미역도 있고 멸치도 있고 해수욕장도 있다. 그리고 가마골소극장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라!
- 2017-09-05 10:58
-
- 모차르트의 징슈필 오페라 <마술피리>
- 어느 새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진 기온 때문에 겉옷을 집어들게 되었지만, 한낮에 내리쬐는 태양은 아직 그 위력을 잃지 않았다. 가을의 풍요로운 수확을 위해 쨍쨍한 햇볕은 꼭 필요한 고마운 존재이니 덥다고 불평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뜨거운 햇볕을 양산으로 가리고 오후 3시 공연인 오페라를 보러 예술의전당에 갔다. 천재 작곡가라 불리는 모차르트의 대표 오페라 를 관람했다. 는 1993년 오페라 하우스 개관 이래 예술의전당이 가장 많이 제작했던 오페라 작품이다. 지난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총 9차례나 토월극장 무대에 올려 매년 매진기록과 함께 가족 오페라라는 공식을 세우며 사랑을 받아왔다고 한다. 2015~2016년에는 의 작품성을 관객들이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기획해 큰 감동을 주었다는데 이번 공연에선 ‘우리 가족 첫 오페라’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어린이들도 재미있고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도록 모든 대사를 한국어로 준비했다. 또 누구든 쉽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징슈필(Singspiel)을 통해 극의 재미를 느끼도록 했다. ‘징슈필’이란 연극처럼 중간에 대사가 들어 있는 독일어 노래극이다. 필자는 공연 내내 무대를 보랴 양옆에 마련된 자막을 보랴 눈이 매우 분주했다. 도로가 한가로운 시간에 출발했기 때문에 예술의전당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20여 분 정도 일찍 자리에 앉았는데 무대 저편에서 리허설 중인지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악기도 조율하고 하모니도 맞추어보는 듯했다. 뮤지컬이나 오페라, 연극 등을 감상할 때는 항상 조용한 분위기에서 막이 오르길 기다렸는데 이번처럼 리허설을 보게 된 것은 흔한 일이 아니어서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아졌다. 마침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초등학생 자녀를 동반한 가족이 많아 공연 시작 전의 객석도 약간 소란스러웠다. 공연을 자주 다녀봤지만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라서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와글와글 떠드는 소리와 무대 뒤에서 연습하는 소리가 뒤섞여 소음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잘 어우러지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인터미션 15분에 거의 세 시간이나 되는 긴 공연의 막이 올랐다. 무대는 어린 관객을 생각해서인지 머리에 풍선을 단 세 어린이가 등장하면서 동화적인 장면으로 시작되었다. 작품의 배경은 고대 이집트 제국의 신전 부근. 현자 ‘자라스트로’가 지배하는 지혜의 세계와 밤의 여왕이 지배하는 어둠의 세계가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커다란 뱀에게 쫓기던 ‘파미노’ 왕자를 밤의 여왕을 모시는 시녀 세 명이 구해준다. 밤의 여왕은 납치된 딸을 구해달라며 초상화 한 장을 보여주는데 바로 ‘타미나’ 공주였다. ‘타미나’의 아름다운 모습을 본 왕자는 꼭 공주를 구하겠다며 길을 나선다. 그때 밤의 여왕은 위험할 때 도움이 될 것이라며 마술피리를 왕자에게 준다. 왕자는 나쁜 ‘자라스트로’에게서 공주를 구하려 하지만 ‘자라스트로’는 현명한 사람이다. 사악한 밤의 여왕인 어머니로부터 공주를 보호하려고 데려온 것이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왕자와 공주가 만나 사랑을 이룬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독특한 ‘밤의 여왕 아리아’를 들을 수 있는 즐거운 오페라다. 매우 고음으로 부르는 ‘아아아~’는 모든 성악가가 어려워하는 부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수미의 밤의 여왕 아리아가 유명하다. 출연진의 노래도 멋지고 무대장치도 환상적이어서 동화 속 꿈나라에 다녀온 듯 재미있었다. 특히 ‘파파게노’와 ‘파파게나’의 ‘파파파’하는 경쾌한 이중창이 오페라가 끝난 후에도 귓가에 계속 들려오는 듯했다. 아이들이 많아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우리 손주들 생각을 하니 이해가 됐다. 여섯 살인 우리 손녀도 내년쯤이면 오페라 공연장에 데리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아 흐뭇하다.
- 2017-09-05 10:23
-
- 추억 속 영화관
- 필자는 한 달에 한 번 친한 친구와 셋이서 영화를 보고 있다. 가능한 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개봉작을 선택해서 보고 있으며 아직 못 봤어도 시작한 지 오래된 영화는 그냥 넘긴다. 영화 값도 비싸져서 조조를 보려고 아침 9시에 약속한 적도 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저런 할인카드를 동원하면 영화표를 거의 반값에 살 수 있어 굳이 조조를 보지 않아도 된다. 필자가 활동 중인 블로거 협회에서는 한 달에 한 번 회의도 할 겸 문화의 날로 잡아 명보극장을 통째로 빌려 모임을 하고 있다. 명보극장은 필자가 젊었을 때 개봉영화를 보러 자주 갔던 곳으로 원로 영화배우 신영균씨가 주인이었는데 지금은 신영균씨가 서울시에 시니어를 위한 공간으로 써달라고 기부했다고 한다. 시니어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추억의 명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생겨 반갑고 감사하다. 이번에는 오전 10시, 이전의 명동 코스모스빌딩 영화관 앞에서 만났다. 신용카드를 활용해서 세 명이 1만2000원에 티켓을 샀다고 우리는 희희낙락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한 사람당 8000원씩 들었고 주말에는 9000원도 내고 영화를 봤기 때문에 항상 억울한 생각이 들었는데 올해부터는 우리도 질세라 젊은 아이들처럼 제휴카드, 할인카드를 활용해 반값에 영화를 보면서 아주 뿌듯해한다. 역시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제맛이다. 그런데 요즘 극장은 모두 멀티 관이 되어 한 극장에서 여러 영화를 골라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상영관 화면도 작아졌다. 큰 화면과 넓은 객석이 있어야 극장이라는 느낌이 있는데 처음 멀티 관에서 영화를 봤을 때는 무척 생소했다. 화면도 좁고 객석도 얼마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적응이 되어 그러려니 한다. 다만 우리가 젊었을 때처럼 와이드스크린을 가진 대형 영화관이 그립다. 예전에는 충무로의 대한극장이 가장 큰 화면을 가진 제일 좋은 극장이었다. 여고 시절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이면 학교 전교생이 단체로 영화를 보러 갔다. 대한극장의 큰 화면과 넓은 객석에서 빼곡히 앉아 보았던 나 , 등 수많은 대작 명화를 감상하면서 멋지고 안타까운 내용에 가슴도 많이 졸였다. 또 중후하고 멋진 찰톤 헤스톤이나 잘생긴 로미오 ‘레오나르도 화이트’와 줄리엣 역의 ‘올리비아 핫세’를 동경하기도 했다. 개봉관으로 을지로의 스카라와 명보극장도 많이 찾은 영화관이다. 근처의 국도극장은 한국영화만 상영하는 국산영화 전용 개봉관이었다. 이라는 영화가 개봉됐을 때 그 일대가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로 가득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광화문에 있었던 비슷한 이름의 국제극장은 외국 영화만 상영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명동성당 근처의 중앙극장도 추억이 많은 곳인데 지금은 문을 닫아 안타깝다. 종로의 서울극장, 단성사, 피카디리극장도 필자가 좋아했던 극장이다. 영화 표를 사고 영화가 시작할 때까지 남은 시간을 보내던 피카디리극장 앞 ‘사루비아 다방’에 대한 전설도 남아 있다. 한국 영화를 찍은 감독들이 영화 개봉 날 자신들의 영화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러 오는지 이 ‘사루비아 다방’ 2층 유리창 가에 앉아 마음 졸이며 내다보았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일류 개봉관도 있었지만 이류, 삼류 영화관도 많았다. 영화 보는 걸 좋아했던 필자는 여중․여고 시절부터 학생 관람불가 영화를 삼류극장에서 보곤 했다. 선도부 선생님께 걸릴까봐 조마조마하면서도 무척이나 많이 보러 다녔던 기억이 있다. 일류극장보다는 삼류극장들이 학생인 줄 알면서도 통과시켜주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생각나는 곳은 대한극장 건너편 골목에 있던 아테네극장이다. 이곳에서 당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클리프 리처드의 영화를 본 건 정말 신나고 즐거운 추억이다. 라는 영화의 감미로운 주제곡이 흐르고 기타와 함께 여행하는 내용의 영화를 보며 열광했던 그 시간들이 생각난다. 요즘은 복합 멀티 관의 작은 상영관에서 영화를 보고 있지만, 와이드스크린의 시원한 화면으로 명작을 관람하던 그 시절이 무척 그립다.
- 2017-07-27 15:25
-
- 추천하고 싶은 뮤지컬 <올 댓 재즈>
- 무대로부터 번져나오는 자욱한 연기가 객석까지 흐르고 있다. 그 모습이 어쩐지 몽환적인 느낌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숨죽이고 무대를 바라보았다. 뮤지컬이 시작되기 직전 소극장은 불이 꺼지고 칠흑 같은 어둠에 싸였다. 얼마 뒤 갑자기 신나는 음악이 울리면서 조명이 한두 개씩 켜지더니 관객들도 모르는 사이에 객석 통로에 와 있던 출연자들이 춤을 시작한다. 무대가 아닌 객석 통로에서 홀로 조명을 받으며 한 명씩 춤을 춘다. 색다른 장면이어서 놀랐고, 바로 옆에서 춤을 추는 배우를 보니 필자도 뮤지컬의 한 장면에 동참한 듯한 느낌이어서 덩달아 신이 나고 즐거웠다. 여기저기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조명이 비추면 자기만의 멋진 춤을 추었다. 올 댓 재즈, 오늘 관람할 뮤지컬의 제목이다. 모처럼 일요일 오후 3시 공연을 보게 되었다. 햇살은 눈부셨고 대학로 거리엔 젊은 청춘들의 향연이 벌어진 듯 활기가 넘쳤다.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남녀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참새처럼 재잘댔다. 그들이 예뻐 보였다. 필자도 저런 때가 있었지, 추억에 잠겨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대학로엔 소극장이 정말 많다. 다닥다닥 붙은 곳도 있고 한 집 건너 자리한 소극장엔 다양한 작품이 공연 중이다. 밝고 활기찬 인파에 섞여 공연장을 찾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고 공연히 기분이 좋아 입가엔 미소가 피어올랐다. 공연장엔 젊은이뿐 아니라 필자처럼 지긋한 나이의 관객도 꽤 보인다. 재즈는 어른들도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장르라는 생각이 든다. 는 국내 최초 재즈 음악과 춤으로 이루어진 창작 뮤지컬인데 영화 를 기반으로 했다고 한다. 내용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랑 이야기다. 방송국 다큐 PD인 수연은 세계적인 안무가 대니얼 류의 인터뷰를 하기 위해 뉴욕 출장을 간다. 안무가 대니얼은 인터뷰를 안 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런데 수연과의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실은 수연과 대니얼은 5년 전 헤어진 연인 사이다. 이유도 모른 채 이별을 맞았던 수연은 대니얼을 만나자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대니얼 옆에는 엘리라는 멋진 여자가 있고 전혀 춤을 추지 않는 그는 데이빗이라는 댄서와 함께하고 있어 무언가 비밀이 있음을 직감한다. 5년 전 사고로 춤을 출 수 없게 된 대니얼이 수연에게 부담될까봐 알리지 않고 그녀 곁을 떠났던 것이다. 이유를 전혀 몰랐던 수연 역시 춤을 그만두고 기자가 되었다. 마음으로는 수연을 사랑하는데 그의 옆에는 그를 사랑하는 엘리가 있다. 또한 춤추지 못하는 대니얼 대신 춤을 추는 데이빗은 엘리를 사랑한다. 인생은 왜 이리 꼬이기만 하는 걸까? 엇갈린 운명 앞에 아파하는 네 남녀의 사랑이 애절한 재즈 음악과 강렬한 춤으로 화려하게 무대에 펼쳐진다. 무대 위의 재즈 걸과 재즈 보이들의 춤이 너무 멋졌다. 어쩌면 저렇게 날씬하고 예쁜 몸으로 춤을 출까. 눈을 뗄 수가 없다. 노래는 필자가 좋아하는 ‘플라이 미 투 더 문’과 ‘싱싱싱’ 그리고 ‘뉴욕 뉴욕‘이 울려 퍼져 필자도 모르게 어깨를 흔들었다. 함께 손뼉도 치고 소리도 지르며 즐길 수 있었던 멋진 창작 뮤지컬이었다. 우울하다거나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뮤지컬 한 편으로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추천하고 싶다.
- 2017-07-21 09:49
-
- 7월의 추천 전시, 도서, 영화, 공연
- ◇ exhibition 보그 라이크 어 페인팅: 사진과 명화 이야기 일정 10월 7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창간 125주년을 맞은 잡지 의 아카이브에서 엄선한 이미지들로 패션 사진과 명화의 관계를 재조명한다. 세계 3대 패션 사진작가로 불리는 파울로 로베르시, 피터 린드버그, 어빙 펜 등의 작품들을 통해 고흐, 달리, 클림트 등의 명화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전시했다. 사진의 대상이나 구성, 기술은 피카소의 입체파 회화에서 앤디 워홀의 팝 아트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장르를 아우른다. 특별 섹션으로 마련한 ‘보그 코리아’에서는 전통 수묵화의 절제미와 여백이 드러나는 패션 이미지들을 소개한다. 김영태의 편지들: 문인교신전 일정 7월 12일까지 장소 영인문학관 초개 김영태 시인의 서거 10주기를 맞아, 그가 생전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았다. 아울러 시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이들의 자료까지 대여받아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했다. 문인들의 편지인 데다가, 두 사람 간 주고받은 편지가 모두 남아 있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그 의미와 특별함을 더한다. 특히 마종기 시인과 주고받은 편지는 160통에 달한다. 안수길, 어효선, 김구용, 박재삼 등 작고한 문인들의 편지뿐만 아니라 초개 선생이 직접 그린 이병주, 최인훈, 최인호 등의 캐리커처까지 만날 수 있다. ◇ book 인생의 재발견(바버라 브래들리 해거티 저·스몰빅인사이트) 탐사 전문기자로 30년간 지낸 저자가 중년을 둘러싼 8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직접 파헤친다. 심리학, 생물학, 사회학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인터뷰와 상실을 경험한 이들의 사례를 통해 중년 이후 삶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전문가와 함께 준비하는 스마트 라이프 디자인(삼성생명 은퇴연구소·미래의창) 연금, 재테크, 상속 문제에서부터 건강, 여가, 관계, 자기계발에 이르기까지 노후 대비에 관련한 전반적인 정보를 담았다. 중장년은 물론 2030세대에게도 도움이 되는 전문가의 현실적인 조언이 실려 있다. ◇ movie 플립(Flipped) 를 연출한 롭 라이너 감독이 2010년 미국에서 발표했던 영화로, 네티즌의 성원에 힘입어 국내 개봉을 확정지었다. 공식 개봉 전부터 네이버에서 영화 평점 10점 만점의 9.45점을 기록하는 등 호평을 얻었다. 포스터 속 ‘누구나 일생에 한 번 무지개처럼 찬란한 사람을 만난단다’라는 문구는 영화 속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하는 대사로 애틋한 감성이 묻어난다. 개봉 7월 13일 장르 로맨스 감독 롭 라이너 출연 매들린 캐롤, 캘런 맥오리피, 존 마호니 등 프란츠(Frantz) 상실을 경험한 독일 여자와 비밀을 간직한 프랑스 남자 사이의 거짓과 진실, 용서와 사랑이라는 미묘한 감정을 그렸다. 프랑스와 독일이 겪은 전쟁의 아픔을 실질적으로 담아내는 등 리얼리즘에 초점을 둔 작품이다.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섬세하고 깊이 있게 표현한 여주인공 폴라 비어는 이 영화로 2016 베니스영화제 신인여우상을 받았다. 흑백과 파스텔 톤으로 담아낸 영상은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개봉 7월 20일 장르 드라마 감독 프랑수아 오종 출연 피에르 니네이, 폴라 비어 등 ◇ stage 김씨네 편의점 캐나다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미스터 김’의 인생 후반전과 가족의 모습을 그렸다. 자신의 인생 이야기가 자식을 통해 이어지길 바라는 부모 세대, 그리고 그런 부모와는 다른 정체성으로 살고자 하는 자녀 세대의 갈등을 유쾌하게 풀어나간다. 장소 백성희장민호극장 일정 7월 13~23일 연출 오세혁 출연 장용철, 최현미, 이화정 등 나폴레옹 나폴레옹과 그의 연인 조제핀, 노련한 정치가 탈레랑, 세 사람을 주축으로 한 나폴레옹의 웅장한 여정이 펼쳐진다. 객석과 무대에 40문의 대포가 설치될 ‘워털루 전투’, 다비드의 명화 ‘나폴레옹의 대관식’ 등 역사적 사건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장소 샤롯데씨어터 일정 7월 15일~10월 22일 연출 리처드 오조니언 출연 임태경, 한지상 등 캣츠 화려한 무대와 음악으로 남녀노소에게 사랑받는 뮤지컬 의 오리지널 팀이 내한한다. 이번 공연은 더욱 역동적인 군무와 더불어 의상의 색깔이나 패턴, 헤어스타일 등이 업그레이드돼 이전 공연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장소 국립극장 해오름 일정 7월 11일~9월 10일 출연 맷 안토누치, 애덤 배일리, 로라 에밋 등 1945 동아연극상에 빛나는 작가 배삼식이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1945년 해방 직후, 위안소를 탈출한 명숙과 미즈코의 역경을 통해 요동치는 시대 속 민족의식과 생존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들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장소 명동예술극장 일정 7월 5~30일 연출 류주연 출연 박윤희, 김정은, 성여진 등
- 2017-07-07 14:55
-
- 모멸감이 불러온 파국, <여교사>
- 김태용 감독 작품이다. 계약직 교사 효주 역으로 김하늘, 이사장 딸 혜영 역에 유인영, 남학생 재하 역으로 이원근이 주연으로 나온다. 스릴이 넘치고 심리전이 돋보이는 공포 영화다. 요즘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흙수저와 금수저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점도 흥미롭다. 효주는 계약직 교사로 정교사 자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이사장 딸 혜영이 정교사 자리를 치고 들어오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얼굴 예쁘고 몸매 좋고 성격까지 사근사근한 혜영은 학교 선배인 효주에게 다가서려 하지만, 속이 뒤집어져 불편한 효주는 혜영에게 못되게 군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체육관 뒤편에서 무용특기생 고교 3년인 재하와 혜영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현장을 목격한다. 혜영의 약점을 손에 쥔 효주는 혜영을 굴복시키고 재하마저 빼앗는다. 따로 발레 과외까지 시키며 재하를 자신의 남자로 만든다. 그러나 재하가 콩쿠르에 나간 날 객석에 혜영이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재하는 혜영을 계속 만나고 있었다. 재하가 효주를 여자로 대한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혜영의 사주이기도 했다. 둘 다 한 남자를 상대로 불륜을 저지른 것이므로 비긴 셈이다. 이겼다고 생각했던 효주는 반대로 코너에 몰리게 된다. 그래도 혜영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려 했으나 혜영은 이미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했다며 더 이상 약점이 될 수 없다고 한다. 효주는 혜영의 입김으로 재임용 명단에서도 제외된다. 결국 효주는 혜영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용서를 빈다. 혜영은 다시 승자가 되어 효주를 가지고 논다. 어차피 교직 생활을 오래할 생각도 없었고 곧 약혼해서 미국으로 갈 계획이었던 혜영은 재하는 미국 가기 전까지의 심심풀이 상대였다고 말한다. 혜영은 집에 찾아온 효주에게 이것저것 시키며 부려먹는다. 차 좀 끓이라고 시켜놓고 소파에 길게 누워 승자의 행복을 느끼고 있을 때 효주는 끓는 물을 그대로 혜영의 얼굴에 붓는다. 마침 재하가 왔다가 이 광경을 보고 경악한다. 효주는 학교에 가서 여유를 즐긴다. 경찰차가 학교에 들이닥친다. 마지막 효주의 행동만 빼면 이 영화는 남자를 사이에 둔 여자의 질투, 가진 자에 대한 질투, 그리고 너무나 위험한 제자와의 불륜 등으로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주는 심리극이다. 그래서 재미있다. 남교사와 여자 제자 간의 불륜은 종종 기사에도 등장하지만, 여교사와 남자 제자 간의 불륜은 드문 예다. 옛날 같으면 사회적인 지탄 및 혹평을 받았을 만한 소재이지만, 요즘은 세상이 변해서 이 정도의 영화 스토리는 무난하다. 우리 시니어들은 고등학생 시절 모두 까까머리였다. 이상하게도 기를 죽게 만드는 머리였다. 그런 모습으로 여교사와의 사랑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두발 자유화, 교복 자유화가 됐다. 영양 상태도 좋아 고등학생도 꽤 남성적인 매력을 보인다. 여교사들과 나이 차이는 있지만 서로가 매력적인 상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2017-05-26 14:14
-
- [문화공감] 전주국제영화제, ‘이보다 더 영화에 집중할 수 없다’
-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 규모의 영화제는 꽤 많다. 그중 한국의 3대 국제영화제라 일컬어지며 가장 먼저 개최되는 영화제가 바로 4월 말(4.27~5.6)에 열린 전주국제영화제다. 올해로 18회째를 맞은 전주국제영화제는 전주한옥마을의 인기와 더불어 영화보기 좋은 영화제로 입소문 나고 있다. 해가 갈수록 뜨거운 관심을 얻고 있는 전주국제영화제 현장을 다녀왔다. 영화보고 먹기 좋은 여행지, 전주 전주한옥마을이 급부상한 이유에서일까? 첫 방문이었지만 영화를 즐기는 것이 생각보다 쉬웠다. 여행객이 늘어서인지 게스트하우스, 민박, 굿스테이로 지정된 호텔 등 적당한 가격의 숙박업소가 눈에 쉽게 띄고 접근이 쉬웠다. 취재를 위해 묵었던 ‘J’ 게스트하우스에서도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시 쉬다 영화를 보러 가고, 들어오고 하는 모습이 여느 영화제보다 편하게 느껴졌다. 상영관이 몰려 있는 영화의 거리에서 거의 모든 영화제 행사가 진행되는 것도 좋은 환경. 상영관에서 또 다른 곳으로 이동이 편리해 연이어 영화를 보기 좋다. 부산국제영화제처럼 바다를 배경으로 이벤트가 열리고 북적거리기보다 적당히 시원한 날씨에 즐기기 좋은 영화제다. 이번 영화제에는 정우성, 주지훈, 수애, 하지원 등이 방문해 그 어느 해보다 뜨거웠다. 그런데 전주 하면 맛있는 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영화도 영화이지만 손맛 좋기로 유명한 전주 맛집을 가보지 않는다면 영화제를 제대로 느꼈다고 말할 수 없다. 영화제에 참여했던 한 영화 관계자는 SNS에 매일같이 영화가 아닌 음식 사진을 올릴 정도로 전주의 맛에 흠뻑 빠져 있었다. 관객과 소통하고 전주를 알리다 영화의 거리에서 진행된 각종 부대행사에도 많은 인파가 몰렸다. 공예체험과 아트마켓으로 운영된 전주아트마켓과 드라이플라워, 캘리그래피 등 무료체험 행사는 시민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포토존, 버스킹존 등도 운영해 영화를 기다리는 관람객과 소통했다. 한편, 전주영화제작소 앞 주차장에서는 전주시민미디어센터와 협업하여 미니 FM을 진행했다. 누구든 미니 FM을 들을 수 있도록 라디오 부스 앞에 파라솔과 의자를 설치한 것도 인상 깊었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 2017’ 선정작이었던 이창재 감독의 ‘N프로젝트’ 실제 제목 공개에도 귀추가 주목됐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는 매년 영화제가 선정한 3명의 감독에게 제작비를 지원하는 전주국제영화제 메인 프로그램이다. 영화 공개 전까지 로 불렸던 영화의 제목은 로 확정, 관객 앞에 나왔다. 이 작품은 지난 2002년 16대 대선 당시 정당 최초로 국민경선제를 실시해 정계에 파란을 일으킨 새천년민주당의 대선 후보 선출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안희정 충남지사, 유시민 작가 등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회고를 들려준다. 한국의 3대 영화제로 자리를 굳히다 사람들은 조심스러워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렸던 1996년은 박광수, 여균동, 정지영, 강제규 감독 등의 출현으로 한국 영화가 조금씩 인기를 얻고 있었던 때이지만 국제 규모의 영화제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과연 성공할까?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달랐다. 영화 스타와의 근거리 만남, 다양한 문화에 대한 갈망이 제2도시 부산을 들끓게 했다. 이듬해 부천에서는 장르영화, B급영화, 마니아영화 등을 중심으로 상영하는 부천판타스틱영화제가, 그리고 2000년에는 새로운 대안영화를 소개하고 제시하는 전주국제영화제가 생겨났다. 물론 이외 지역에서도 다양한 콘셉트의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예산 규모면에서 30억원이 넘는 영화제로는 부산과 부천, 전주 세 영화제를 꼽는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특히 어느 해보다 발전한 모습으로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전체 영화 상영 543회 차 중 279회가 매진됐다. 객석점유율은 80.4%, 총관객 수는 7만9107명이었다. 작년 222회 매진 기록을 훨씬 웃도는 수치였다. 전주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크고 작은 영화제가 많이 준비돼 있다. 영화제는 젊은이의 전유물이 아니란 것을 우리 독자들이 알았으면 한다. 과거 세대 감독의 회고전도 있고, 향수 깊은 영화를 큰 스크린에서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영화제 현장이다. 내년 봄 혹시 전주에 가는 독자가 있다면 전주국제영화제에도 들러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즐기다 가는 건 어떨까.
- 2017-05-24 09:27
-
- 인종차별의 부당함과 역사를 배우다
- 명보아트시네마에서 고전영화로 감상했다. 1992년 작품이다. 존 G. 에이빌드슨 감독 작품으로 PK 역에 스티븐 도프, 피트 역에 모건 프리먼, 가이 위처(PK 아역) 등이 나온다. 영화는 악명 높은 아파르헤이트(흑백분리정책)으로 잘 알려졌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역사를 공부할 수 있게 해준다. 17세기에 종교 탄압을 피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몰려든 유럽인들을 가리켜 ‘아프리카너’라고 부른다고 한다. 백인이 전 국민의 13% 수준으로 나머지 원주민들을 지배하며 차별 대우를 했으니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먼저 정착한 아프리카너와 새로 식민지를 개척하려 나선 백인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많았다. 영화의 시작은 한 농장이었다. PK는 영국계 아프리카너다. 어머니로부터 영국에 대해 배우고 보모로부터 아프리카를 배우며 자란다. 그런데 아버지는 코끼리에 밟혀 죽고 농사일에 서툰 어머니는 큰 가뭄을 맞아 기르던 소가 죽는 등 고난을 맞는다. 독일계 학교에 들어간 어린 PK는 영국을 미워하는 독일계 학생들에게 각종 핍박을 받는다. 그 후 어머니의 장례식 때 고향에 왔다가 줄루족 주술사에게 ‘코끼리에게도 맞서는 용기’를 배운다. 할아버지에게 간 PK는 할아버지 친구 독일인 박사에게 피아노 등 여러 가지를 배우며 성장한다.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자 독일인 박사는 수용소에 수감되지만, 인텔리로 대우받으며 여전히 PK를 지도한다. PK는 흑인 피트(모건 프리먼 분)에게 복싱도 배운다. 덕분에 고교 챔피언이 되고, 흑인 거주 집단에 들어가 흑인 기드온과 시합을 가져 이긴다. PK의 승리는 값진 것이었다. 가뭄이 곧 죽음을 뜻하는 아프리카에서 구세주 같은 비를 만든다고 해서 전설의 레인 메이커로 추앙받게 된다. 그리고 PK는 성장 과정에서 받은 인종 차별에 대항해 흑인들을 대신해 앞으로 나선다. 야학을 열고 옥스퍼드 전액 장학금도 포기한다. 이 영화에서 볼 만한 장면은 수용소 흑인들의 대합창이다. PK의 지휘로 각 부족들이 화음을 만들어내는 장면이 감동적이다. 흑인들이 노예로 북중남미 아메리카 대륙으로 끌려가서도 아프리카 음악은 그들과 함께 숨 쉬었다. 흑인들의 음악은 이런 과정을 통해 전 세계 음악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젊고 잘생기고 심지가 굳은 이런 PK에게 사랑 얘기가 빠질 수 없다. 고교 챔피언 복싱 경기가 열리는 날 객석에 앉은 한 소녀 마리아를 보고 그는 한눈에 반한다.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소녀다. 서양에서는 이런 여자를 프레클 페이스라 하여 미인으로 친다.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것처럼 PK는 마리아의 집 벽을 타고 몰래 들어가 마리아를 만나 사랑을 확인한다. 그러나 마리아는 인종차별주의의 주축인 국민당 장관의 외동딸이다. 둘의 사랑이 순탄치 않음이 예상되지만 그녀는 소신 있는 여성, PK를 도와 흑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현장에서 경찰의 곤봉에 맞아 즉사한다. 아프리카너들은 흑인들이 죄가 많아 피부가 검다고 생각한다. 13%에 불과한 백인들이 나머지 다수의 흑인들을 차별하며 지배하자 배워야 평등해지고 깨우칠 수 있다며 야학이 시작됐고, 여기서 배운 흑인들이 다시 교사가 되어 다른 흑인들을 가르친다. 영화 제목처럼 한 방울의 물이 대지를 적시듯 파워를 보여준다. 충무로에 있는 명보아트시네마는 매일 3~4편의 고전영화를 상영한다. 60세 이상은 입장료 3000원이고 조조는 2000원이다. 날 잡아 며칠간 시간투자를 하면 흘러간 명화들을 감상할 수 있다.
- 2017-02-27 14:08
-
- [문화공감] 연극 <씻금>
- ‘굿’은 슬픔과 맞닿아 있다. 죽음 혹은 아픔이 전제하고, 한(恨)이 깔려 있으며 원한풀이로 이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작년 말 30스튜디오(서울 종로구 창경궁로)의 개관 작품으로 선보인 은 진도의 씻김굿을 연극무대로 옮긴 것이다. 개인의 슬픔을 넘어 한국의 역사, 풀리지 않는 현실 속 한국의 이야기가 한판 굿으로 관객과 어우러졌다. ‘순례의 삶에 한국 근·현대사를 담다 무대는 진도 바다 바위 언덕. 동네 아낙이 바위 주위를 돌며 섭(홍합) 채취를 하고 있고, 높은 바위에 앉은 남자는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주인공 순례는 어기적거리며 무대를 돌아다닌다. 들어오는 관객과 무대 위 남자와 여자의 행동에도 간섭하며 연신 싱글벙글이다. 객석의 불이 꺼지고 본격적인 극이 시작되면 무대를 돌아다니던 순례는 바위 위 남자와 대화를 나누더니 “나, 간다” 한마디 남기고 바다에 몸을 던진다. 수난의 시대를 온몸으로 이겨내며 살아온 순례의 죽음으로 산 자와 죽은 자가 통하는 세계를 열어 영혼을 달래는 ‘씻금’의 시간이 마련된다. 영혼이 된 순례는 굿을 통해 뭍으로 올라오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남도 민요와 함께 풀어낸다. 육자배기, 흥그레타령, 닭노래, 진도아리랑 등 진도 지역에서 내려오는 노랫가락을 통해 우리의 아픈 이야기 또한 발견하게 된다. 순례의 삶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거울이다. 순례는 시어머니가 낳은 어린 시동생들 보살피느라 정작 내 아이는 입히지도 먹이지도 공부시키지도 못한 것이 아쉽다. 그나마 제대로 키운 장남은 IMF로 잘 다니던 한국은행에서 실직하고 증권에 손을 댔다가 망해 결국 자살을 택했다. 순례의 가정사와 함께 진도 앞바다에서 생을 달리한 넋들도 등장한다. 정신대를 피해 나이 많고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갔던 여자의 영혼, 빚을 이겨내지 못해 바닷물에 빠진 연인이 등장해 씻김을 받는다. 구천을 떠돌아 거지꼴이 된 순례의 장남도 돌아와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로 깨끗하게 치유받고 저승 갈 채비를 서두른다. 마지막으로 뭍으로 올라오지 못한 세월호의 영령들까지 달래기에 이른다. 수난의 역사이자 지금의 시대는 ‘씻김’과 ‘길닦음’이라는 제의를 통해 삶과 죽음, 개인과 역사, 극 전체와 관객이 서로 화해하고 보듬으며 화합한다. ‘관객과 배우가 함께 어우러지다 이 연극은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더욱 빛나는 작품이 된다. 마치 굿판을 구경하듯, 길거리 공연을 보거나 시위에 참가한 듯 어깨를 들썩이고 함께 어우러져야 제대로 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관객의 참여를 돕기 위해 무대 뒤 스크린을 적극 활용한다. 배우들이 부르는 남도소리 전곡을 스크린에 띄우고 관객이 따라 부르는 시간도 갖는다. 공연 전부터 순례로 등장하는 배우 김미숙이 무대를 걸어 다니면서 관객에게 툭툭 말을 건네는 것 또한 관객들과 함께 공연을 이뤄간다는 의미다. 특히 연극이 끝나고 나면 실제 굿이 끝나고 음식을 나눠 먹듯 배우들은 막걸리와 떡, 고기 등을 무대에 내온다. 관객과 배우가 함께 어우러져 준비한 음식을 나눠 먹는다. 그 어떤 연극보다 더 쉽게 배우에게 다가가 사진 찍기를 권하고 덕담을 나누는 연극이 바로 이다. 또한 배우들이 정성스레 만든 ‘넋발(씻김굿에 쓰이는 종이 도구로 망자의 혼을 표현한 것)’을 관객에게 기념으로 나눠준다. 연극을 보고 나왔다는 느낌보다는 함께 공연을 하고 나온 느낌으로 극장을 나서게 된다. 굿극 은 2010년 국립남도국악원의 제안으로 진도 씻김굿을 무대 형식으로 제작하게 되면서 시작됐다. 이때 연극학자인 서연호가 굿을 연극화했다 해서 ‘굿극’이라는 개념이 부여됐다. 공연의 맥은 잠시 끊겼다가 작년 말 대본 집필과 연출을 맡았던 이윤택이 국립국악원의 양해를 얻어 자신의 극단인 연희단거리패에서 제작하게 돼 다시 관객들 곁으로 돌아왔다. ‘진도 마지막 당골, 고(故) 채정례의 삶 녹아들다 씻김굿이란 서남해안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행해지는 넋 굿이다. 살아생전의 좋지 못했던 기억과 마음 깊은 곳의 앙금을 깨끗이 씻어내 망자가 수월하게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돕는다. 굿극 은 진도씻김굿의 마지막 당골(세습무당)인 채정례(1925~2013)와 악사 함인천 부부의 실제 삶을 줄거리로 삼았다. 살아생전 채정례 선생은 씻김굿의 전체 무가와 장단을 당시 남도국악원의 모든 단원에게 전수해 후세에 남겼다. 굿에 사용되는 종이 무구(巫具)인 지전(紙錢)과 고깔, 넋 등의 제작 과정 또한 단원들에게 지도했다고. 국립남도국악원은 제작 초기 진도의 큰 당골인 채정례를 주목했다. 실제 진도에서 부부가 짝을 이루어 세습무계의 전통을 이으면서 원형을 고수한 원로는 채정례 당골과 남편인 함인천이 유일했다. 큰무당이 가지는 위대한 포용력과 함께 여러 당골들 사이에서도 그녀는 오랜 연륜과 탁월한 기예로 존경받아왔다. 씻김굿은 죽은 이를 위한 천도의례이지만, 채정례 당골의 씻김굿 현장은 죽은 이를 위한 자리인 동시에 산 자들의 슬픔까지 걷어내는 자리였다.
- 2017-01-31 08: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