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에 살던 서울 광진구에 있던 아파트를 올 3월에 팔았다. 6월 4일 잔금 수령 일 등도 관계인들 요청으로 5월 말로 당겨 처리하였다. 현직에 있을 때 계약관계 일들, 법률적인 일들을 오래 처리한 경험이 있어 임차인과의 관계, 새 매입자 또는 매입자가 물색한 새 임차인과의 관계 등 복잡한 4자 관계에서 금전 정산일 들도 모두 정리하고 열심히 처리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또 하나의 도전을 시작했다. 도전은 곧 살아 있음의 표현이고 그치지 않는 꿈의 실천이다. 최근 나는 연극배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서울시가 지원해 운영되는 영등포50플러스센터에서 공연한 ‘어화둥둥 아.우.성’의 극중 인물 변사또 역으로 뽑혀 대사를 외우고 연기 연습을 해 무대에 섰다. 이번 공연 참여로 나는 연극배우라는 이름표도
한때 TV는 ‘바보상자’라고 불리곤 했다. 한창 공부해야 할 학생들이 드라마나 시리즈 프로그램 등에 빠져 하염없이 TV 앞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또, TV를 보느라 독서 등을 통해 생각하고 상상할 기회를 빼앗겨버려 사고력 발달을 저해한다는 뜻이 담겨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어쩌면 ‘바보상자’라는 말도 구시대적인 용어가 아닐까 싶다.
요즘 초
나는 우연한 기회로 강사 일을 시작했다. 은퇴 후 경로당 봉사를 시작했는데, 많은 사람 앞에서 말을 잘 못해 한국언어문화원에서 스피치를 배웠다. 몇 개월 후 어느 정도 발성 훈련이 된 듯해 대통령기쟁탈 웅변대회 출전해보자 하고 나갔다가 특등을 했다. 그러자 자신감이 생겼고 2년 뒤에 출전한 대회에서는 대상을 받았다. 그 후 우연히 시니어파트너즈 강사 과정이
올해 여름휴가에 펜션을 예약해 두었다며 동해안 바닷가와 설악의 계곡에서 보내자는 아들네의 전화를 받았다. 즐거운 제의다. 이제 아기들도 웬만큼 자라서 저희끼리 놀러 가도 될 텐데 엄마를 생각해 같이 가자는 아들이 있어 행복하다. 냉큼 가겠다고 답하고 여행 준비에 나섰다. 딸만 있는 친구들이 들으면 또 눈치 없다고 핀잔할 것이지만 나는 모른 체 따라나서기
단톡방이 신호를 보냈다. 평소처럼 느긋하게 보리라 생각하며 하던 일을 마쳤다. 은퇴 후 인생이모작을 위한 수업을 함께 들었던 사람들이 만든 방이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자기 이름으로 자신의 장례일정을 안내하는 문구였다. 순간 장난하는 건가? 아직 60대 초반.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장난이라면 아주 실감나게 한 것이고 아니라면? 갑자기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무등산 자락에 가면 ‘생오지문예창작촌’을 만날 수 있다. 소설가 문순태(文淳太·80) 씨가 추구하는 문학의 열정을 증명하는 이곳 주변의 도로명은 생오지길. 원래는 만월2구라 불렸다고 한다. 그 이름을 바꾼 것이 바로 문 작가다. 그가 어린 시절 이곳을 생오지라고 불렀던 기억을 되살려 문학의 집을 만들어 생오지라고 이름 붙인 것이 지금에
올해 55세의 처가 친척 조카인 P는 등산을 갔다가 심장에 고통을 느꼈다. 함께 간 일행이 119에 급히 연락해서 헬기가 왔지만,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숨을 거뒀다. 심장마비인데 시간이 많이 지체된 까닭이다.
방송에 소개된 80대의 현직 사장님이 있었다. 쉼 없이 운동을 해서 무척 건강한 분이었다. 이 분이 산에 오를 때 배낭 속에 꼭 명함을 챙기
50여 년 전 가족을 따라 우연히 전라도 나주에 왔다가 한국 학자로 살게 된 베르너 사세(Werner Sasse·78) 전 한양대학교 석좌교수. 월인천강지곡, 농가월령가, 동국세시기 등은 그의 이름에 따라붙는 한국 고대 언어 연구를 위한 목록들이다. 서독인 최초로 한국학 박사학위를 받고 독일에서 한국학과를 개설해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정년퇴직 후에는 아예 한
111년 만에 서울이 낮 온도 39.6℃를 찍어 온통 난리가 났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심리적 마지노선인 임계점을 뚫은 탓이다. 시내는 한낮 태양열에 아스팔트가 달아오르고 습도와 어울려 숨을 턱턱 막고 있었다. 110세 된 사람이 없으니 모두가 처음 겪는 더위임이 틀림없다. 샤워로 몸을 식히려 해도 미지근한 물로 바뀌어 돌아서면 다시 더웠다. 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