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CF 스타였던 CEO가 있었다. 바로 신홍순 컬처마케팅그룹(CMG) 고문이 그 사람이다. 당시 LG패션 사장이었던 신 고문은 멜빵에 컬러풀한 셔츠를 입고 “패션으로 기억되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말로 사람들의 시선을 휘어잡았다. 20여 년 동안 패션 업계에 몸담았던 경력, 재즈와 클래식 마니아이자 전문 공연 기획자, 미술 컬렉터, 패션
교량이 무너지는 사고는 외국에서도 종종 있었지만 성수대교는 전 세계 교량사고 역사에서 늘 주요사례로 언급된다. 국내 건설인에게는 영원히 불명예스러운 기억이다. 성수대교 사고조사위원으로도 참여했던 원로 토목공학자 김문겸 연세대 교수(대한토목학회장)에게 그날의 참사에 대해 물어 본다.글 유충현 기자 lamuziq@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
평범한 도서관이 지루해졌다면 여행 관련 도서가 있는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 ‘진선북카페’ 그리고 만화책이 가득한 편안한 쉼터 ‘놀숲’, ‘청춘문화싸롱’을 둘러보자.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 서가의 빈틈에서 발견하는 여행의 시작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
“일상에 영감을 주고(Inspiring), 광범위한 주
1960년대 당시 유행하던 음악 중에는 미국 팝송같이 많지는 않았지만 샹송이나 칸초네, 그리고 라틴음악도 있었다. 필자가 샹송을 처음 접한 것은 1962년 9월쯤이었나, 당시 대한무역진흥공사 이사로 근무하시던 선친과 명동 국립극장(현 예술극장)에서 샹송가수 이베트 지로의 공연을 본 것이었다.
그녀는 당시 그녀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시인의 혼’, ‘
#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K씨. 그녀에게는 세 딸이 있다. 첫째는 의사, 둘째는 법조인, 셋째는 교수를 꿈꾸는 재원이었다. 첫째 딸은 꿈을 이뤄 동료와 결혼했고, 둘째와 셋째 딸은 사법시험 준비와 박사과정이어서 결혼에 급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K씨는 김희경 팀장이 추천하는 남성을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했다.
몇 년 후, K씨의 두 딸은 각각 변호
한류와 케이팝 등의 여파로 문화의 힘을 실감하는 요즘. 30여 년을 문화체육관광부에 몸담았던 신현웅(辛鉉雄·72) 웅진재단 이사장은 세종대왕을 떠올려 보곤 한다. 훈민정음 창제와 더불어, ‘종묘제례악’을 작곡할 만큼 언어와 음악의 힘을 바탕으로 정치를 펼친 세종의 선견지명에 감탄하던 그에게 는 단연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한 책이었다.
글 이지혜 기자
Interveiw 의 저자 이금형 교수
고졸 순경 출신으로 겪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35세에 방송통신대에 들어가 6년 만에 졸업하고, 40대에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석사 학위, 50대에는 박사 학위까지 받으며 만학의 열정을 불태운 저자 이금형. 특유의 긍정 에너지와 노력으로 여성 최초로 치안감 자리에 오른 그녀가 말하는 워킹맘을 위한 현실적인 지침과
요즘 결혼하는 세대들은 맞벌이가 많지만 지금의 40~50대만 해도 외벌이가 대부분이었다. 직장을 다니던 신부들도 결혼 후에는 가사와 출산, 육아 등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게 당시의 세태였다. 30여 년 전만 해도 외벌이 남편들은 월급봉투에 가득 현금을 담아 아내에게 갖다주는 뿌듯함과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누릴 수 있었다. 봉투째로 넘기는 남편도 있었지만
사극이나 역사소설에 종종 나오는 역병(疫病, plague)은 어떤 병일까? 어떤 소설에는 조선시대 한 산골마을에 역병이 돌아 삼분의 일이 넘는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는 얘기도 나오고, 다른 소설에서는 호환마마를 ‘역병’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역병을 마을에서 몰아내기 위해 병자의 시신을 불태우고, 굿을 하기도 하였다.
황석영의 장편대하소설 에도 이
왕년의 챔피언 친구 강칠과 종구가 과거의 오해를 풀어나가는 데 필요한 한 마디 ‘미안해’. 까칠한 여배우 서정을 10년째 짝사랑해온 매니저 태영의 용기 있는 한 마디 ‘사랑해’.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의 딸 은유와 마주해야 했던 형사 명환이 서로의 상처를 감싸 안으며 건넨 한 마디 ‘고마워’. 평범하지만 값진 세 마디를 통해 얻게 된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