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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수무책으로 커지는 마음" 배우 이아현의 뮤지컬 도전기
- ‘아가사’ 배우 이아현 출간하는 작품마다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는 1926년 돌연 실종된다. 뮤지컬 ‘아가사’는 아가사 크리스티가 실종된 실화를 바탕으로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11일간의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작품이다. 꾸준한 드라마 활동으로 대중에게 사랑받았던 배우 이아현이 오랜 시간 ‘아가사’의 곁을 돌본 하녀 ‘베스’ 역할을 맡아 뮤지컬에 도전한다. 어느덧 데뷔 28년 차에 50대를 눈앞에 둔 배우 이아현의 뮤지컬 도전기를 들어봤다. 뮤지컬이 처음인데, 출연하게 된 계기는? 뮤지컬이 처음은 아니고 데뷔 초반에 ‘넌센스’라는 작품을 했어요. 그 후 뮤지컬은 관람만 좋아하고 제가 범접할 수 없는 분야라고 여기고 있었죠. 그런데 관람을 하면 할수록 그 무대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속수무책으로 커지더라고요. 마침 우연치 않게 ‘아가사’ 역을 맡은 백은혜 배우의 회사 대표님께서 제안해줘 바로 콜했죠! 뮤지컬 ‘아가사’를 선택한 이유는? 뮤지컬 ‘아가사’ 재연 때, 당시 주인공이던 배우 이혜경 씨 친분으로 공연을 관람했어요. 그때 내용도 재밌었고 개인적으로 넘버 멜로디들이 무척 와 닿았죠. 관람한 수많은 작품 중에서 유독 마음에 새겨졌던 작품인데, 마침 제안이 들어왔어요. 제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답니다. 맡은 배역에 대해 설명한다면? 이 작품은 1926년 12월, 추리소설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가 사라진 이야기를 바탕으로 창작된 뮤지컬이에요. 그래서 실존 인물과 가상의 인물이 섞여 있죠. 주인공 아가사가 현실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도록 그 원인을 제공하는 6명의 캐릭터가 있어요. 이들 중 ‘베스’라는 역을 맡았어요. 베스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실존했던 유모인데, 조건 없이 따뜻하기만 했던 건 아니더라고요. 그 적정선을 어떻게 잡아야 스토리가 잘 흘러갈지 고민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번 ‘아가사’는 연기만큼 군무가 많아요. 사실 제가 몸치여서… 다른 출연자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연습 과정에서 어려움은? 저는 급속 암기에 익숙해요. 그래서 지나간 장면은 털어버리죠. 드라마는 이미 찍은 장면의 대사를 다 잊어도 되거든요. 그런데 무대는 절대 털어버리면 안 되잖아요. 제 버릇이 무섭더라고요. 지나간 장면들의 대사와 동선을 계속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게 어려워요. 심지어 이번 극에는 안무가 엄청 많아서 무지무지 걱정하고 있답니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은? 첫 대본 연습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항상 객석에서 올려다보던 배우들과 리얼타임으로 마주 앉아 대본을 읽은 순간이거든요. 관객들이 작품을 통해 느꼈으면 하는 바는? 전 그저 관객분들께서 공연을 보시는 동안은 세상만사 잊고, 그 시간만큼은 알차고 재미있게 보내시길 바라요. 관객분들이 온전히 극에 집중하실 수 있게, 모든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온 에너지를 바쳐서 만들고 있답니다. 긍정의 눈으로, 긍정의 에너지를 받고 가시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작품 활동 계획은? 지금은 뮤지컬 ‘아가사’만 생각하고 있어요. 혼자 엉뚱한 방향으로 춤추며 가거나 느닷없이 머릿속이 백지가 돼 대사나 가사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당분간 다른 생각은 안 하고 싶어요. 뮤지컬 '아가사' 일정 10월 31일까지 장소 유니플렉스 1관 대극장 연출 김지호 출연 이아현, 임강희, 백은혜, 이정화, 김재범, 김경수 등
- 2021-09-01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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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하! 내가 지금 화를 내고 있구나!
- 내가 가진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의 목록을 죽 적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좋은 습관보다 나쁜 습관의 개수가 더 많았다. 내가 오죽잖은 인간인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습관 따라 성격이 만들어지고, 성격 따라 운명이 정해진다 했던가. 좋은 습관이 좋은 삶을 가져온다는 기본을 뻔히 알면서도 실족한다. 좋은 습관은 몸에 붙이기 어려운 반면, 나쁜 습관은 나도 모르게 도둑처럼 스며들어 따개비처럼 들러붙는 게 아닌가. 나쁜 습관 중에 최고봉은 분노의 감정을 처리하지 못해 스스로 고통을 불러들이는 멍청한 짓을 반복하는 버릇이다. 평소 지인들은 나를 따뜻하고 다정해 화를 모르는 사람이라 하지만 그거 오진이다. 내 생각에 천국이란 분노가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이다. 그래 나름 마음을 다스려 분노를 관리함으로써 천국 건설에 이바지하려 하지만 자주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나는 남들에게 웬만해선 크게 화를 내지 않는 편이다. 이견으로 충돌해도,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넘겨버린다. 알고 보면 사람은 누구나 꽤나 이상하고 꽤나 이기적이고 꽤나 애처로운 존재이니, 가급적 보듬어 내 상처를 줄이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화를 품고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흔하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속에선 화가 부글거리는 것이다. 가족 앞에선 더 좀팽이가 된다.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에 전전긍긍이 많다. 천하무적 분노의 화신인 아버지는 여차하면 화를 앞세우는 분이다. 화를 생산하는 장기 하나를 몸 안에 가지고 있는 양 작은 일에도 쉽게 격분하는 캐릭터다.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아 분노의 번갯불을 내리칠 때는 정말이지 죽을 맛이다. 때로 대거리를 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고령의 아버지에게 그럴 수는 없는 일. 끝내 참아내지만 안에서 들끓는 화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서 괴로움을 겪는다. 참는 척할 뿐, 이미 나 역시 분노의 정상에 올라선 당장의 실정을 알기에 고통스럽다. 결국은 고통이 겹이다. 꾹 참아내는 고통과, 속에서 올라오는 분노가 가져다주는 고통이 이중으로 겹친다. 참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분노할 것 없이 감정의 평정을 유지하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 난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일상에서 올라오는 크고 작은 분노의 감정을 능히 해치울 묘안이 내게 있을 리 없다. 다만 내가 모자란 인간이라는 걸 자각하는 것으로 나 자신과 협상한다. 문제의 원인이 내게도 있음을 자인하는 거다. 그 왜 있잖은가? ‘내 탓이오!’ 상대의 분노에 맞서기보다 까짓것 대범하게 받아들여 나의 분노를 허공으로 날려버리지 못한 내 탓! 나는 절집에 관한 책 두 권을 낸 바 있는데, 취재를 위해 돌아다닌 절이 많은 편이다. 궁금한 건 도(道)며 해탈이 무엇인지, 어떻게 마음을 닦아야 걸림이 없어지는지, 뭐 그런 거였다. 도를 말하는 승려들의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고매하고 오묘한 언어로 도를 말하는 방식인데, 너무 관념적이고 어려워 귀에 맺히는 게 별로 없었다. 다른 하나는 아주 쉬운 말로 도를 말하는 방식이다. 나에겐 후자가 구미에 맞았고, 믿음이 갔으며, 소낙비처럼 시원해 두고두고 반추하는 맛이 났다. 이를테면 첩첩산중 암자에서 만난 어떤 노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승려는 한마디로 웨이터라고. 남에게 서비스를 하는 게 본분이며, 완벽한 서비스 맨을 일컬어 도인이라 하는 것이야!” 쉽고 시원하지 않은가? ‘도란 중생의 똥을 치워주는 데에 있다.’ 일찍이 원효도 그렇게 가르쳤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의 원효 버전이다. 모름지기 남에게 나를 아낌없이 쏟으라는 충고들이다. 이타(利他)의 바다에서 살면 수행자이건 중생이건 통한 자라는 메시지다. 나는 이런 언설이 좋다. 내게 쓸모가 커서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 인색해질 때, 나쁜 습관의 노예로 헤맬 때, 분노를 통제하지 못할 때 이 말씀들을 새기면 힘이 된다. 문제의 원인이 알고 보면 비좁은 나의 이기심에 있다는 걸 깨우쳐주기 때문이다. 관계의 불화나 분노로 야기되는 고통이 결국은 그릇 작은 내 탓임을 인정하면 뜻밖에도 환하게 밝아지는 것들이 많다. 그러나 매사 내 탓으로 돌리고 초연하게 처신하기가 어렵다. 따지고 보면 내 탓이 아님이 자명해 앙앙불락 괴로워지는 경우도 있고, 내 탓임이 분명할지라도 그런 줄을 모르거나 외면한 채 날뛰는 경우는 더 많기 때문이다. 결국은 도돌이표처럼 돌아가 악습과 분노의 처리에 무능한 모습을 드러내기 십상이다. 무엇으로 대책을 삼아야 하나. 정토회 법륜 스님의 얘기에 귀 기울일 만하다. 요점은 이렇다. 명철하고 재미있고 화통한 이 스님에 따르면, 사람의 몸에 붙은 습관과 성격은 고치기 어렵다. 화 역시 습성이 되면 뜯어내기 힘들다. 화가 솟구칠 때마다 전기충격기로 한 번씩 몸을 지지는 충격요법이 가장 확실한 대책이지만 그건 고문이라 잔혹하다. 그렇다면 화가 붙은 대로 태연하게 사는 게 답인데, 이 경우엔 과보(果報)를 감수해야 한다고 한다. 화를 떼어내려고 고통을 겪느니 그냥 놔두고, 대신 창의적으로 살아 인생을 보완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법륜 스님이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다. 화가 치솟아 뚜껑이 열릴 때면 아하, 지금 내가 화를 내고 있구나, 그렇게 자신을 주시해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화를 내는지도 모르는 채 무의식적으로 화를 내는 우행에서 벗어나라는 충고다. 아하, 내가 지금 화를 내고 있구나, 또렷이 인식하기를 거듭하다 보면 참회와 각성이 일어나면서 서서히 화의 규모를 줄여나갈 수 있고, 언젠가는 분노 처리에 유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방법은 상당한 효험이 있다. 내가 사용해본 경험으로는 약발이 ‘짱’이다.
- 2021-09-0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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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 그녀의 이름은 김순자입니다
- 영화표를 받아든 김 씨는 빠른 말소리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표를 사려는 오십대 여자 셋이 보였다. 카드를 꺼내고 지갑을 뒤적이며 네가 사네, 내가 내네 하면서 부산을 떨고 있었다. ‘웬 젊은이들이’ 김 씨는 여자들을 보자 이 공간의 냄새가 달라지고 자신의 연령대가 내려가는 착각이 들었다. 십여 년 전이었다면 영역을 침범당한 느낌이 들고 혹여 영감들 가슴에 바람이 들면 어쩌나 하는 괜한 걱정을 했을 수도 있다. 김 씨는 요건 몰랐지 하는 기분으로 중년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한 사람당 삼천 원이고, 쿠폰에 도장을 다 받으면 나중에 공짜로 한 편 더 볼 수 있다우.” 김 씨는 일곱 개의 도장이 찍힌 쿠폰을 내밀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참 고우시네요.” “호호, 이제 뭐…… 오 년 전이면 모를까.” 김 씨는 좋아서 입을 다물 줄 모르며 볼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어르신’이란 호칭 대신에 ‘할머니’라고 불렀다면 이렇게까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른이건 아이건 왜 호칭에 민감한지. ‘할머니, 할아버지’란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인데 사람의 심리가 요상하여 ‘나이가 들어’ 라는 앞의 말에 신경 쓰기보다는 ‘늙은 사람’이란 뒤의 말에 민감해진다. 앞에 붙여진 ‘나이가 들어’라는 다섯 글자에는 사람들 제각각의 얼마나 많은 의미와 사연이 담겨 있던가? 김 씨는 아등바등하지 않고 탐욕스럽거나 심술궂지 않게 나이 들기를 원하면서도 할머니란 호칭이 꺼려지는 자신이 우습다고 느껴졌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 화장실 간다고 자리를 뜨는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김 씨는 요의가 느껴지지 않는데도 화장실을 다녀왔다. 간 김에 거울 한 번 들여다보고 하나뿐인 꽃분홍 립스틱으로 입술도 덧칠하고 나왔다. 상영관으로 들어가려는데 좀 전에 만난 여자들이 상영 시간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벽에 붙어있는 공책만 한 인쇄물은 멀리서 보기엔 힘들었다. 노년층을 위한 서비스 차원에서 마련된 영화관이다 보니 상영작 포스터도 없고 상영관은 하나뿐이고 테이블이 세 개 놓인 대기실 한쪽엔 천 원짜리 믹스 커피를 파는 간이매점이 고작이었다. 그 중 한 여자가 안경을 고쳐 쓰며 용지에 코가 닿도록 얼굴을 내밀었고 김 씨는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몇 년 전에 노안 수술을 한 김 씨 눈엔 웬만한 글씨는 잘 보이고 고가의 보청기 덕분에 청력도 좋지만, 좋아서 오히려 불편할 때도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웬만한 것은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라고 시력과 청력이 나빠지는 것이라지만, 잘 안 보이고 잘 안 들린다는 이유로 젊은이들로부터 괄시받고 싶진 않았다. 오메가 쓰리와 은행잎 제제를 매일 챙겨 먹고 영어 공부도 30분씩 했다. 휴대폰을 켜면 바로 영어 단어 앱이 떴고, 건강 보조 식품 챙겨 먹는 시간도 휴대폰의 알람이 꼬박꼬박 알려주었다. 치매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한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휴대폰을 소유하게 되었을 땐 신인류의 일원이 된 것처럼 기뻤다. 설레는 김 씨를 위해 처음에는 휴대폰 사용법을 부드러운 말씨로 설명해 주던 아들이 반복적으로 물었더니 나중엔 짜증을 냈다. 아들의 구박을 감수한 덕분에 이젠 인터넷을 통한 물건 구입과 영화 예매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다. 한때는 지인들이 보내주는 동영상이며 좋은 글귀를 친구들한테 퍼 나르기도 했으나 글대로 실천도 못하면서 누군가에게 읽으라고 강요하듯 보내는 일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부터는 그만두었다. 망측한 사진을 받고 놀라서 휴대폰을 던져버린 적은 있지만, 적어도 김 씨가 자식한테 잘못 전달하는 실수를 저지르진 않았다. 하지만 새벽에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노인들 사이에 떠다니는 가짜 뉴스를 구분하지 못하고 그대로 믿고 흥분하기도 했다. 태극기 부대에 참석한 경험도 있는데 정치적 신념이 확실해서라기보다는 군중 심리와 함께 이 나이에도 정치에 관심이 있는 깨인 노인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지금 상영할 건 이거예요.” 김 씨가 손가락으로 용지를 짚으며 말하기가 무섭게 일행 중 한 명이 톡 튀어들었다. “아닌데…… 요거네요.” 김 씨 얼굴이 붉어졌다. “나 좀 봐, 참.” 계면쩍은 김 씨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사람들이 들고나느라 문 주변이 번잡했다. 상영관 입구로 밀려나는 와중에도 김 씨는 오지랖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안으로 들어간 김 씨는 실내 전체를 훑어보다가 특정 위치에 잠시 시선을 던지곤 미소를 지었다. 등받이를 손으로 잡으며 자신이 선호하는 G7 자리를 향해 한 계단씩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뉴스에서 G7이란 단어를 가끔 들어서 익숙한 탓도 있고 근사해 보이기도 해서 그 자리를 고집하는 김 씨를 위해 카운터에서는 표를 따로 빼서 보관해두곤 했다. 전에 발을 헛디뎌서 계단을 구른 영감이 있었다. 김 씨는 그 장면을 보고 눈을 돌렸던 기억을 떠올렸다. ‘남들도 내가 넘어지면 자신을 보는 것처럼 민망해하겠지.’ G7 바로 앞자리엔 박 씨가 앉아 있었다. 김 씨는 박 씨를 실버 영화 카페 모임에서 알게 되었다. 소위 M.C커플이다. 산행을 같이 다니는 연인들도 M.C커플이라고 부르고 콜라텍에서 만난 인연들은 C.C커플로, 복지관에서 만난 연인들은 B.C커플로 불린다. 박 씨는 말수가 적었지만 영화 얘기만 나오면 술술 말을 잘 이어갔다. 놀라울 정도로 웬만한 영화 제목과 주인공 이름들을 기억하는 편이었다. 김 씨는 영화 얘기를 들을수록 박 씨의 매력에 빠져들었는데 젊어서부터 영화는 혼자 본다는 말 때문에 그가 더욱 근사해 보이는지도 몰랐다. 김 씨는 알은 체를 하지 않고 자리에 앉으면서 부러 큰 소리로 음, 음 거리며 목청을 가다듬었다. 박 씨가 뒤를 돌아보며 고개만 까딱했다. 김 씨는 답례를 하면서도 입이 무거운 박 씨가 야속했다. ‘어서 오시게, 라고 한마디 하면 입술이 부르트나.’ 김 씨는 입을 샐쭉거렸다. 아직 영화 상영 전이었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김 씨가 고개를 돌렸다. 통로 건너편에서 자리 때문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서 있는 여자는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고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있는 노인은 굳이 빈자리도 많은데 여기에 앉아야겠냐며 버텼다. ‘저러니까 젊은이들이 질색하지.’ 김 씨는 중얼댔고 주변 사람들도 웅성거렸다. 여자는 투덜거리며 뒷자리로 갔고, 카운터에 말해서 쫓아내세요, 란 누군가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소란을 잠재우듯 실내가 어두워지자마자 광고 없이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 제목과 함께 1936년 작품이란 숫자가 떴다. “어머, 이상하다. 2008년에 만든 줄 알았는데.” “게다가 흑백이야. 웬 구닥다리?” “86년 전 영화네. 우리 아버지가 저 때 태어나셨거든.” “말도 안 돼. 같은 제목의 영화가 또 있었나? 그냥 갈까? 냄새도 퀴퀴하고……” 김 씨가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보자 여자들의 수다가 잦아들었다. 좀 전에 보았던 일행들이 막 들어와 앉은 참이다. 오래전 같았으면 따끔하게 한마디 했을 김 씨였다. ‘니들도 실수할 때가 있지.’ 김 씨는 미소를 지었다. 화면이 바뀌었고, 여자들은 다시 조잘대기 시작했다. “미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래. 그냥 보자.” “그래, 감독도 유명한 사람이네.” “쉬, 쉬.” 영화의 첫 장면은 미국의 어느 대저택의 거실이었다. 보석으로 치장한 젊어 보이는 여자가 등장했다. 김 씨 눈에는 여주인공의 나이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 얼굴 구분도 힘들지만, 나이 추측도 쉽지 않았다. 사람들의 실제 나이는 김 씨가 추측한 숫자에 10 정도를 더해야 했다. 여주인공은 파티장도 아닌데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김 씨 평생에 입어본 적은 고사하고 사진에서만 보았던 옷이다. 부러우면서도 이런 감정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게 놀라웠다. 뒤이어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가 퇴근해서 집으로 들어오는 장면이 이어졌다. 남자는 거실로 들어와서 여자를 꼭 안아주었다. 종일 남편을 기다리느라 수고했다고. 김 씨는 정해진 팔자란 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김 씨 남편은 며칠씩 집을 비우다 돌아와도 첫마디가 개밥 줬어? 였다. 김 씨는 아내가 아니라 밥솥이었고 세탁기였고 청소기였다. 외국 영화를 볼 때 김 씨는 긴장이 되었다. 자막이 서 너 줄일 땐 마지막 문장의 꼬리를 놓치기도 하고 사람의 이름을 읽는 중에 화면이 넘어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은 왜 그리 이름이 길고 호칭 방법도 가지가지인지. 여주인공은 남자의 뺨에 입술을 비벼대고 손바닥으로 가슴을 더듬었다. 김 씨의 눈에 남자는 아버지뻘로 보였지만 여자의 행동이나 자막으로 미루어보아서는 남편 같았다. ‘아니, 저런 도둑놈이 있나, 곱빼기 띠동갑도 넘겠네.’ 예나 지금이나 지팡이 토막을 가운데 달고 다니는 인간들이 젊은이를 밝히는 건 변함없지만, 김 씨가 보기에도 못생기고 잘생긴 걸 떠나서 싱싱하다는 점만으로도 모두 예뻐 보였다. 심지어 다섯 살 아래인 여자도 김 씨 눈엔 젊어 보였다. 흥분했던 김 씨는 이내 인정 모드로 태도를 바꾸었다. 변덕을 부리고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여자 주인공을 보면서 김 씨는 혀를 찼다. ‘젊고 얼굴 반반하면 저렇다니까.’ 김 씨는 며느리를 떠올렸다.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인데 아무리 예쁘게 봐주려 해도 콕 박힌 미운털이 빠지지 않는 애였다. 좀 산다는 집에서 자란 며느리는 액세서리 수집이 취미였다. 두 달에 한 번꼴로 시댁에 올 때마다 몸에 치장하고 있는 액세서리가 바뀌었다. 눈썰미가 없는 사람이라도 금방 알아볼 정도로 색상이며 디자인이 확확 달라졌다. 며느리를 떠보느라 나도 네가 한 것 좀 차 보자, 고 했더니 어머, 사람들이 웃어요, 라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며느리가 미워 보이는 이유가 말을 얄밉게 하는 탓도 있지만 자신의 삐딱한 시선도 섞여 있다는 걸 김 씨는 안다. 남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자기 돈으로 갖고 싶은 걸 사는 행위를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주인공과 비교해 보니 며느리가 그다지 변덕 부리는 애도 아니고, 딱히 지 남편이건 시댁에 못 하는 편도 아니었다. 김 씨는 며느리의 미운털이 다름 아닌 질투라는 생각에 새삼 부끄러웠다. 그것도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같은 여자라는 이유로. 며느리는 여자의 촉으로 벌써 눈치 챘을 게다. ‘앞으로 며느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스크린의 영상이 유럽을 항해하는 크루즈 내부로 바뀌었다. 은퇴한 남편이 아내와 긴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한국 여자들은 보리죽 한 숟갈도 자식 입에 넣어주느라 배곯고 쪼그라져 있을 때 서양 여자들은 양장을 빼입고 삐딱 구두 신고 파티에 가거나 세계 일주를 했다니. 여자의 일생에서 가장 화려하다는 날에도 김 씨는 고작 빌려 입은 단색의 한복에 면사포만 쓰고 혼례를 치렀다. 김 씨는 자신보다 먼저 태어난 서양 여자들에 비해 고루하게 살았다. 육지와 바다를 오가면서 장기 여행을 하는 사이에 여주인공은 서 너 명의 남자들과 사랑 행각에 빠졌다. 여자는 쉽게 남자를 만나서 사랑했다가 헤어지길 반복했다. ‘지 멋대로군, 착한 남편이 딱하네, 결혼 전에 많은 여자를 만나보지.’ 흥분지수가 높아진 김 씨는 자세를 바꾸다가 자신의 과거가 떠올랐다. ‘하긴, 선봐서 한 달 만에 식을 올린 나는 어떻고.’ 그러고 보니 그런 도박이 없었다. 어처구니없는 결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어이없는 일들이 다반사였는데 죄다 그러려니로 통했다. 어쩜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일들이 몇 십 년 후엔 또 이상한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김 씨가 젊어서 여주인공처럼 했다면 돌팔매질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김 씨가 영화에 집중할 만하면 뒤에서 소곤대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것을 엿듣는 재미가 있었다. 뒷좌석의 한 여자가 또 말을 꺼냈다. “안 봐도 비디오다. 나가자.” “나갈까?” “그래, 질 떨어진다.” “아냐, 노벨상 받은 작품이라잖아, 뭔가 있을 거야.” 한 여자가 일행을 달랬다. 김 씨 뒤에서 들려오는 수다 소리뿐 아니라 여기저기서 콜록거리는 소리, 가래 끓는 소리, 카톡 소리, 사부작사부작 사탕 껍질 벗기는 소리 따위가 영화 중반이 넘어가도록 줄지 않았다. 심지어 전화벨 소리도 울렸다. 늴리리아 늴리리…… 맨 앞줄에 있던, 환갑이 넘어 보이는 남자가 손에 쥔 휴대폰을 끊거나 벨소리를 줄일 생각은 안 하고 느그적 느그적 걸어 나갔다. 남자를 따라서 사람들 고개도 돌아갔다. “걷지 말고 좀 뛰요.” 영화 시작 전에 큰 소리로 면박을 주었던 동일한 목소리였다. 사람들이 키득거렸다. 속이 후련해진 김 씨는 중얼거렸다. ‘어여 가야 해, 어여.’ 김 씨는 다시 영화에 몰두하면서 좀 전과는 다른 생각도 했다. ‘하기는, 한 번뿐인 인생인데 뭘 따져, 몸뚱이 아꼈다 뭐 하게, 못 노는 것들이 바보지.’ 여주인공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김 씨는 어느새 주인공 편이 되어있었다. 뭐랄까, 김 씨는 노년기로 접어들면서 양가적 감정이 늘어났다. 어떤 상황이 옳고 그르다고 말하기 애매할 때가 있다. 편 가르는 행위가 불편해지면서 교집합 부분이 넓어지고 있다. 기억력은 물론 얼굴도, 몸도 전보다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그로 인해 생기는 서운한 감정과 소외감도 자주 들지만 다른 한편으론 삶을 대하는 태도가 느긋해졌다고 할까. 듣는 이에 따라서는 이율배반적이라고 하겠지만, 신체 중에서 가장 불결하게 여기는 부위가 신성한 부분이자 최고의 성감대인 인간 자체가 모순덩어리 아닌가. 여주인공이 마지막으로 외도한 상대는 연하의 남자였다. 남자의 어머니가 아들의 상대를 이혼녀이고 연상이라는 이유로 반대하여 둘을 강제로 갈라놓는 장면이었다. ‘딱, 나구먼.’ 김 씨는 아들이 자신보다 연상인 여자를 데려왔던 적을 떠올렸다. ‘그렇게까지 반대할 것도 없었는데.’ 허리가 꼬부라져도 연애 상대는 어릴수록 좋다는 영감들이 김 씨 눈에는 철없어 보였다. 박 씨 속을 떠보기 위해 왜 두 살 연상인 자신을 만나느냐고 물었더니, 같이 나이 들어가는 마당에 거기서 거기라고, 나이만 적다고 젊은 거고, 나이가 많다고 늙은 거냐고 반문하던 박 씨의 말이 떠올랐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젊은이들이 상대를 고를 때 이혼, 사별, 동거, 비혼 따위를 따지는 일이 별 의미가 없어보였고, 잘 생긴 사람보다는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사람에게 호감이 갔다. 이는 박 씨가 끌린 이유이기도 한데 김 씨 눈엔 박 씨의 딱딱한 말투마저도 매력으로 느껴졌다. 영화는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역사물을 주로 보던 김 씨에게 로맨스 영화는 피로를 씻어주는 꿀물 같았다. 일부러 로맨스물을 외면해오던 김 씨의 마음을 열게 한 계기는 박 씨다. 로맨스를 주제로 한 영화 내용을 들려줄 때 소도둑처럼 생긴 박 씨의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사랑이 뭔지 제대로 아는 듯 보였다. 김 씨는 영화에 푹 빠져있었다. 남자 주인공이 본부인과 이혼을 하고 새로 만난 애인에게 돌아오는 장면이었다. 남자가 탄 보트가 애인이 사는 섬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김 씨는 다가올 장면을 앞질러 상상하면서 잘했다, 잘했어, 란 말을 연발했다. 한 사람과 애정도 없이 의무적으로 평생을 산다는 건 미련한 짓이지만, 남편이 살아있다면 아직도 그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결혼 생활 내내 남편은 명령하고 김 씨는 복종하고 따르는 식이었다. 김 씨는 담뱃재가 떨어지기 전에 재떨이를 남편의 턱밑에 갖다 대고, 남편이 밥을 먹는 내내 생선 가시만 발라야 했다. 남편은 다리에 깁스를 한 김 씨에게 2충에 올라가서 부채를 가져오라고 호통 친 적도 있었다. 혼자면 외롭기나 하지, 둘이면 외로우면서도 괴롭다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김 씨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이라도 하고 싶은 대로 채워가고 싶었다. 스크린 속의 여자가 남자에게 다가가서 안겼다. 남편과 사는 동안 포옹은 언감생심이었다. 지 기분 내키면 아무 때나 김 씨를 자빠뜨렸다. 전혀 달갑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손끝조차 스치지 않고도 20년을 더 살아냈다. 김 씨는 남편이 매일 만지는 문고리나 수저만도 못했다. 김 씨는 남자의 품이 얼마나 따뜻할지에 대해 상상했다. 어릴 적 포근한 엄마의 품이나 듬직한 아들의 품과는 다른 느낌일 게다. 박 씨의 품에 안겨 지난날을 위로받고 싶었다. 활활 타오르기 위해 이성을 만나는 젊은이들과는 달리, 같이 사그라들기 위해 상대를 만나고 싶었다. 반찬이 김치 하나일망정 마주 앉아 식사하고, 약 먹을 때 물이라도 떠다 주고, 피곤한 발을 얹고 잠들 수 있는 사이를 원했다. 노년의 로맨스를 망측하다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인간은 죽어야만 성애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을. 영화를 보면서 박 씨가 꽃다발을 들고 걸어오는 상상을 했다. 저…… 순자 씨, 김 씨는 맘 가는 대로 달려가는 자신의 생각이 주책이라고 느꼈다. 거의 움직임이 없이 앉아 있는 박 씨의 뒤통수를 쳐다보고 있자니 갑자기 그가 고개를 홱 돌릴 것만 같았다. 머리숱이 인제의 자작나무숲처럼 듬성하지만 박 씨의 뒤태는 늘 정갈했다. ‘저 영감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보나.’ 김 씨는 그뿐 아니라 영화관 내의 모든 노인들 감상평이 궁금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도 전에 뒷좌석의 여자들이 서둘러 일어났다. “내용이 끝까지 예상을 벗어나질 않네.” 김 씨는 영화를 보면서 주변 사람을 떠올리고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연애 감정의 불씨를 키우는 계기도 되었건만 중년 여자들은 빤하다고 했다. 김 씨의 귀에는 이 영화를 끝까지 앉아서 보는 사람들 수준이 빤하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러게, 사람들 일어나기 전에 얼른 가자.” “예의 지키다가는 어느 세월에 나갈지 몰라.” 중년 여성 셋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김 씨가 영화의 여운을 즐길 겨를도 없이 불이 켜졌고 사람들은 일어나기 시작했다. 화면은 일어나는 사람들 때문에 거의 가려졌다. ‘모두 가스 불을 안 끄고 나와서 서둘러 가는 게지.’ 김 씨는 중얼거리며 박 씨가 일어날 때까지 애꿎은 가방만 뒤적거렸다. 박 씨가 일어나더니 김 씨를 보며 말했다. “안 가요?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그러죠.” 김 씨는 순순히 박 씨의 뒤를 따라갔다. 문을 나서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1층으로 내려갈 때까지도 둘은 데면데면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서야 김 씨는 박 씨 옆으로 다가가서 물었다. “아직도 사람 많은 곳에서 나란히 걷는 게 어색해요?” 박 씨가 타박하듯 답했다. “뭘, 어색하긴.” 백 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정류장이 있었지만 김 씨는 길이 들지 않은 구두 때문에 멀게 느껴졌다. 박 씨를 만날 때만 신는 검정 단화를 신고 있었다. 김 씨가 가지고 있는 두 켤레의 구두 중 동절기용이었다. 평소엔 운동화를 주로 신고, 화장도 하지 않았다. 박 씨는 김 씨를 재촉하지 않고 보조를 맞춰 걸었다. 김 씨가 영화 본 소감을 물었더니 박 씨는 그 당시엔 획기적인 일이었겠다고, 시대의 변화를 다시 한 번 실감한다고 답했다. 주인공에 관한 얘기 끝에 ‘나이 듦’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늙는 게 두렵지 않아요?” 김 씨가 박 씨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두려워해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공평하게 찾아오는 걸 그냥 받아들여야지 않겠소. 늙는 걸 두려워할 게 아니라 추하게 늙는 걸 경계해야지.” 김 씨는 늘 교과서적으로 말하는 박 씨가 야속하면서도 궁금해서 또 물었다. “그럼 아름답게 늙는 게 뭔데요?” “내가 정답도 아니고 뭘 묻소?” “그래도 생각을 듣고 싶어요.” “뭐 별거 있소? 그냥 다 덜어내는 거지. 감정도 덜어내고 그런 거 아니겠소?” “덜어낸다는 말은 줄인다는 말과 어감이 다르네요. 뭔가 내가 덜 쓴 만큼 남이 쓸 기회를 주는 느낌이 드네요. 여하튼 자신이 가진 것이나 감정에 너무 휘둘리지 말자는 거지요, 너무 기뻐하지도, 너무 슬퍼하지도, 너무 노하지도 말자는 얘기죠, 태봉씨?” 김 씨가 슬쩍 박 씨의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그렇지만 마지막까지도 덜어내지 말아야 할 감정이 있지.” 김 씨가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이거요?” 박 씨는 5년 전 아내와 아들을 한꺼번에 잃었다. ‘아내와 아들이 죽기 전에 사랑한단 표현을 많이 해주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는 걸까.’ 겉으로는 담담해보이지만, 평온한 얼굴 아래 숨겨져 있을 부단한 노고에 대해 김 씨는 생각했다. 젊어서 한 성질 했다는데, 어떻게 변할 수 있었는지, 주름 하나하나에 새겨진 사연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버스는 금방 왔다. 박 씨가 손을 내밀어 김 씨 먼저 타라는 신호를 했다. 차에 오르는 김 씨는 뒤따라오는 박 씨에게 힘들어하는 동작을 들키지 않으려고 손잡이를 잡고 부지런히 발을 놀려서 계단을 다 올라왔으나 자신도 모르게 나온 에구, 소리로 허사가 되어버렸다.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구나 질투의 감정은 젊은 사람 못지않게 여전하지만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쓸 뿐이다. 내부의 앞쪽 노약자 좌석은 젊은이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한 청년이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지만 김 씨는 못 들은 척하고 뒤로 갔다. 둘은 맨 뒷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출발했고 속력이 나면서 덜컹대기 시작했다. 운전까지 과격한 탓에 엉덩이가 공중으로 떴다가 내려앉았다. 김 씨는 워메, 하면서 박 씨의 손을 잡았다. 꼬리뼈에 충격이 느껴졌다. 박 씨는 기사에게 소리쳤다. “거 운전 좀 살살 하소.” 덕분에 둘은 착 달라붙게 되었고 김 씨가 손을 놓으려 하자 박 씨가 더 세게 쥐었다. 박 씨의 손이 야들야들하고 따뜻했다. 빼려던 손을 박 씨의 손에 맡긴 채 김 씨는 얼굴을 창으로 돌렸다. 박 씨가 물었다. “뭐 볼 거 있소?” “나뭇잎들이 제법 물들었네요.” 김 씨는 생각했다. 나뭇잎 색이 변하는 걸 앞으로 몇 번 더 볼 수 있을까를. “같이 좀 봅시다.” 박 씨가 고개를 돌리면서 김 씨의 머리카락에 뺨이 닿도록 얼굴을 바짝 내밀었다. 김 씨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도 박 씨의 행동에 의도가 있기를 바랐다. 네댓 정류장을 지나서 내릴 때가 된 두 사람은 출입문으로 걸어 나갔다. 박 씨가 왼쪽 기계에, 김 씨는 오른쪽 기계에 카드를 태그 한 후 출입구를 막은 채 서 있었다. 여학생이 박 씨와 손잡이를 잡고 있는 팔 사이로 손목을 내밀어 태그를 시도했다. 연이어서 실패한 학생을 보고 김 씨는 카드를 가운데로 대요, 라고 말했지만 학생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또 손목을 갖다 댔다. 기계음이 들렸고 그제야 김 씨는 학생 손목에 차고 있던 검은 물건이 요즘 광고에 나오는 뭐시기란 걸 알았다. ‘또 오지랖을.’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김 씨는 자신이 하루살이만도 못한 3초의 뇌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영화관으로 오던 버스 안의 상황이 떠올랐다. 김 씨의 앞좌석에 앉아 있는 청년이 입고 있는 티셔츠에 시선이 갔다. 큼직한 흰색 라벨이 옷의 바깥쪽에 붙어있었다. 김 씨는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옷을 뒤집어 입었네요, 라고 속삭이듯 말했고 청년은 아, 이거요, 요즘 유행이에요, 라며 목 뒤의 라벨을 만지작거렸다. 박 씨 앞을 지나쳐서 쏜살같이 내리는 여학생의 귀에 무선 이어폰이 꽂혀있었다. 두 사람도 손잡이를 잡고 발 앞을 살피면서 내렸다. 여학생이 내리는 속도의 다섯 배는 족히 걸렸다. 내리기가 무섭게 문이 닫히기도 전에 버스는 출발했다. 왠지 버려진 기분이 들었다. ‘니들도 답답하지. 당사자는 오죽하겠냐.’ 김 씨는 버스 기사가 야속했으나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갑자기 한 줄기의 센 바람이 지나갔다. 나뭇잎이 몇 점 떨어졌다. 김 씨가 옷깃을 여미자 박 씨가 자신이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풀었다. 목에 걸어주려고 박 씨가 손을 뻗자 김 씨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이런 맛에 데이트하는 거 아니요?” “그게 아니라……” 김 씨는 머플러를 목에 늘어뜨린 채 눈을 내리떴다. “갑시다, 순자씨.” 박 씨가 뒤를 돌아 걷기 시작했다. 김 씨는 뒤따라가며 웃음이 나왔고, 목덜미가 자꾸 간지러웠다. 박 씨가 몇 미터도 안 가서 주변을 둘러보더니 골목으로 들어갔다. 코너의 편의점을 끼고 꺾어 들어서자마자 생선구이집이 보였다. 김 씨는 갈치구이가 먹고 싶다고 박 씨에게 지나가듯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입구부터 고소한 생선 굽는 냄새가 폴폴 풍겼다. 홀에는 사람들이 왁자지껄했다. 김 씨는 음식 맛을 보기도 전에 행복감에 폭 빠졌다. 빈자리는 입구 근처밖에 없었다. 박 씨는 김 씨에게 안쪽 자리에 앉도록 권하고 물도 따라주었다. 수저도 놓아주려고 하자 김 씨가 손을 저으며 막았다. “아, 제가 하지요.” “선심을 쓰면 좀 받으세요.” 박 씨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황송해서 그렇죠.” 대접받는 게 어색한 김 씨가 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남자는 주고 싶고 여자는 받고 싶은 게 연애의 재미 아닙니까?” “그래도 받기만 하는 건 좀 그래요.” 직원이 주문을 받아 가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메뉴라고 해봐야 갈치구이와 갈치조림 두 가지였다. 정갈한 밥상이 차려질 때까지 김 씨는 머플러를 만지작거리다 박 씨의 눈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태봉씨, 여긴 자주 오셨던 곳인가요?” “오긴 누가 와요.” 박 씨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깐 미안했어요. 받는 게 익숙하지가 않아서요.” “그렇다면 할 말이 없지만……” 박 씨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막상 잘 안 되네요.” 둘이 대화하는 사이에 기름이 차르르 흐르는 갈치구이가 나왔다. 박 씨는 왼손으로 갈치 토막을 잡고 오른손에 든 젓가락으로 잔가시가 있는 양쪽 끝을 바깥으로 당겼다. 가운데 뼈 위에 숟가락을 밀어 넣으면서 살을 들어 올렸다. 살덩어리가 부서지지 않고 네모로 분리되었다. 김 씨는 능숙한 손놀림을 신기한 듯 쳐다보면서 박 씨가 발라 준 생선살을 수없이 먹었을 과거의 여인에 대해 생각했다. 밥 먹을 생각은 안 하고 손만 쳐다보고 있자 박 씨가 한마디 했다. “가시 바르는 거 처음 봅니까? 밥 좀 떠보세요, 순자 씨.” 김 씨는 얼떨결에 수저로 밥을 떴다. 박 씨가 뽀얀 쌀밥 위에 생선살을 얹었다. 김 씨가 당황하여 수저를 빼려다가 주춤했다. “또 그러시네.” “남의 밥에 반찬을 얹어주기만 하고 받아먹어 본 적이 없어서 그럽니다.” 말하는 도중에 삼십여 년 전 한정식 식당에서 며느리를 처음 만났던 때가 불쑥 떠오를 게 뭐람, 시어머니 가까이에 있는 음식에 젓가락을 댈 엄두도 못 내는 며느리를 위해 아들이 갈비 한 점을 옮겨 주던 모습이 박 씨의 행동을 보자 떠올랐다. 그때의 섭섭함이 지금에서야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박 씨가 김 씨의 표정을 살폈다. “지금 감동 먹은 거요?” “네. 제대로 먹었지요.” “밥도 많이 먹어요, 순자 씨.” 김 씨는 사람대접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박 씨의 자상함과 배려는 몸에 밴 습관 같았다. 또한 세상의 소란함과 서두름으로부터 흔들림이 적어 보였다. 팔십 가까이 살아온 눈으로 알아볼 수 있다.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남편은 김 씨를 백 번도 더 울렸다. 김 씨는 밥을 먹는 중간에 국이나 물을 자주 마셨고 물을 마시다가 사레가 들려 당황했다. 그리 맵지도 않은 도라지 초무침을 먹으면서 기침도 더러 했다. 박 씨가 김 씨에게 티슈를 내밀기도 하고 직원에게 따뜻한 물도 달라고 했다. 김 씨는 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따뜻한 물로 입가심을 했다. 여태껏 먹어본 밥 중에 제일 달았다. 박 씨는 김 씨를 보며 흐뭇해했다. 데이트다운 데이트가 네 번째인 김 씨의 눈에 박 씨의 모든 점이 좋아 보였다. 김 씨는 나중에 콩깍지가 벗어지더라도 절대 실망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나이 들어서 이성을 만날 때는 다른 건 다 맘에 안 들어도 한 가지 맘에 드는 점에 집중해야 한다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김 씨는 박 씨와 헤어져서 집에 돌아왔다. 김 씨는 박 씨가 자신의 어깨에 오도카니 앉아 지켜보는 느낌이 들었다. 어깨를 손으로 문질러보았다. 웃음이 났다. 옷도 벗지 않고 며느리에게 전화부터 했다. “너 좋아하는 약식하고 식혜 해 놓을 테니 내일 와서 가져가거라.” “꺄악.” 김 씨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괴성 때문에 고막이 터지는 줄 알았다. 이렇게 좋아하다니, 김 씨는 자신이 얼마나 박한 시어머니인가를 생각하다가 바빠서 글피에 갈게요, 라고 이어진 며느리의 말 때문에 좋다는 건지 아닌지 헷갈렸다. 한마디 하려다가 말았다. 전화를 끊고 개운치 않은 이유를 생각해보니 시어머니 행세, 연장자 행세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자기 입으로 박 씨에게 되물었던 말이 생각났다. 너무 기뻐하지도, 너무 슬퍼하지도, 너무 노하지도 말자. 며느리도 나름의 스케줄이 있는 건데. 박 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날엔 상념에 잠기게 된다. 김 씨는 아무리 잘 살았어도 마무리가 부실하면 인생 전체가 망가지는 느낌이 들고 잘 못살아왔어도 끝이 좋으면 지나온 생이 보상받는 느낌이리라. 인생 마무리를 아름답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고 그 간절함의 가운데 박 씨가 있었다. 왜냐하면 김 씨의 이름을 불러 준 사람은 박 씨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있긴 있었다. 내과, 정형외과, 통증의학과 간호사들이 불러 주는 이름은 달갑지 않았다. * 영화 제목은 ‘공작부인’이며, 원제는 남자 주인공 이름인 ‘Dorthworth’다. •수상소감 - 우수상 단편소설 박상희 “저의 허당끼가 소설을 쓰는 모티프가 되기도” 나이가 지천명을 넘어가면서 아직 오지 않은 시절에 대한 호기심과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자세를 고민하면서 써 놓았던 몇 편의 소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이번 공모전의 주제와 어울리는 한 편을 골라서 응모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작품은 저의 허당끼로 인해 소재를 얻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꼼꼼하지 못해서 영화감독이나 제작년도를 확인하지 않고 영화관에 간 실수가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8년에 만들어진 「공작부인」을 보고 싶었는데 그만 1936년에 제작된, 같은 타이틀의 다른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한 편의 소설을 썼고, 수상까지 하게 되어 기쁩니다. 저의 허당끼는 소설을 쓰는데 모티프가 되기도 합니다. 기존의 저명한 작가들은 글 쓰는 작업을 습관처럼 매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을 따라해 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던 터에 선배가 제안을 해왔습니다. 하루에 단편 소설 한 편을 읽든가, 필사를 하든가, 소설 한 장 분량을 쓰든가, 써 놓은 소설을 수정하든가, 매일 이 네 가지 중, 한 가지라도 해내기로. 지키지 못할 경우는 밥을 사기로 했습니다. 올해 초부터 선배는 하루도 빠짐없이 약속을 지켜왔는데 저는 밥 사러 몇 번을 선배 동네로 가야했습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사의 밑그림이나 순서를 고려하지 않고 정해진 시간 안에 쓰는데 만 급급했습니다. 부모님 댁을 방문하거나 여행을 가면서도 노트북을 들고 갔습니다. 그날의 날씨나 기분에 따라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을 쓰기도 하고, 어떤 날은 소설의 중간 토막부터 써내려가기도 했습니다. 구성을 해놓고 소설을 써나가는 방식이 바람직하지만 소설의 줄거리, 캐릭터, 작가의도가 정해질 때까지 기다리다보면 소설은 시작도 못 한 상태에서 두세 달이 그냥 가버리기도 합니다. 지금은 첫 문장을 쓰다가, 중간 중간에 몇 줄씩 쓰기도 하고 결론의 한 문장부터 쓰기도 하는 등 규칙 없이 쓰고 있습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안 쓰는 것보다는 나은 듯해서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제가 엉덩이를 들썩거리면서 소설을 놓아버릴까 말까 고민을 반복할 때도 선배는 꾸준했습니다. 덕분에 저도 이제는 하루라도 소설과 관계된 읽기나 쓰기나 수정을 하지 않고 지나가면 꺼림칙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선배와의 다짐이 이제 효과를 발휘하는 듯합니다. 목표를 거창하게 잡으면 얼마 가기도 전에 지쳐버리지만, 실천할 수 있을 정도로만 정하니 꾸역꾸역 앞을 향해 나가기는 합니다. 다이어트 할 때 일주일에 1킬로그램 또는 한 달에 4킬로그램 감량을 목표로 하지 않고, 매일 200그램씩 빼겠다는 덜 부담스러운 목표를 설정하는 것과 같은 저만의 방식입니다. 다른 분들도 그렇겠지만 그래도 글이 안 써지면 딴 짓을 합니다. 제 취향이 아닌 영화도 보고, 딸을 앞세워 젊은이들이 모이는 라이브 카페에 가기도 하고, 부모님과 조카들까지 모아 놓고 마음 알아채기 게임을 하기도 합니다. 막힌 골목이나 민예품이 전시되어 있는 재미있는 장소를 찾아다니기도 합니다. 펜션 주인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기절할 각오하고 패러글라이딩에 도전도 해봤습니다. TV를 보거나 버스타고 차창 밖을 바라보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휴대폰에 단어 나열식으로 메모를 하거나 사진을 찍어놓습니다. 기록 당시에는 이해되었던 내용들을 한참 후에 찾아보면 어떤 의도로 저장해 두었는지 암호 해독 수준이 되기도 하고, 메모해 둔 제 글씨체를 읽을 수 없는 어이없는 경우도 생깁니다. 글을 쓰면서 세상을 의심하고 낯설게 보는 점이 가장 어렵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세상을 거꾸로 바라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여태껏 보편타당하다고 여겼던 점들이 문제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글이 쓸수록 더 어렵게 느껴지지만,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 수상으로 인해 격려가 되었습니다.
- 2021-08-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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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같은 가짜’ 한사랑산악회, 힙한 중년의 매력
- 최근 ‘한사랑산악회’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한사랑산악회는 진짜 산악회가 아니라 2019년 만들어진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한 코너다. 김민수, 이창호, 이용주, 정재형 4명의 30대 개그맨들이 각각 산악회에 소속돼 있는 50대 중년 김영남, 이택조, 배용길, 정광용을 연기한다. 이들은 주변에 꼭 한 명쯤은 있을 것 같은 아저씨의 모습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배까지 끌어 올린 바지, 가죽 케이스를 씌운 스마트폰, 귀 뒤까지 싹싹 씻는 약수터 세수 등 완벽한 고증도 묘미다. 실제로 개그맨 정재형과 김민수는 실감 나는 연기를 위해 “한사랑산악회 속 캐릭터는 아버지를 모델 삼아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한사랑산악회로 들여다본 중년 회장 김영남 씨는 항상 ‘열정’을 외치는 기운 넘치는 경상도 아저씨다. 사투리 영향으로 시옷 발음이 상당히 새는 게 특징이다. 리더십, 꼰대 기질, 급한 성격, 큰 목소리까지 두루 갖췄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회원들과 마찰을 빚고 분위기를 망치기도 한다. 하지만 정이 많고 회장으로서의 리더십이 출중해 회원들의 신뢰를 받고 있다. 부회장 이택조 씨는 육두문자를 입에 달고 살 정도로 거친 말투를 사용한다. 능청스럽고 언제나 술에 취한 듯 흥이 많고 자기만의 유머에 자부심이 있다. 위생 개념이 철저해서 약수터 세수를 즐기는데, 매번 얼굴은 물론 귀 뒤까지 거칠게 씻으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종종 영남 회장과 대립해 욕을 하기도 하지만 속은 다정하다. 회원 배용길 씨는 1970년대에 미국에서 살다 귀국해 영어가 유창하며 ‘엘비스프레슬리’라는 엘피(LP) 바를 운영하고 있다. 잡학 다식에 온화한 성품으로 모임의 중재자 역할을 한다. 정광용 씨는 배재고등학교 물리 교사다. 조용하고 느릿한 말투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 별명이 제물포(‘쟤 때문에 물리 포기’의 줄임말)다. 당뇨 때문에 집안에서 단 음식을 못 먹게 하는지라 밖에서 달달한 주전부리를 보면 행동이 상당히 재빨라진다. 술을 마시면 다소 거칠어지기도 한다. 한사랑산악회의 영상을 본 누리꾼들은 “아빠한테 보여줬는데 친구 중에 진짜 저런 사람이 있다면서 엄청 웃더라”, “광용 쌤 진짜 학교에서 인기 없고 학생들이 쉽게 보는 선생님 같아서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하다” 등 현실에 있을 법한 자세한 캐릭터 설정에 호평했다. ‘꼰대’ 싫어하는 젊은 세대를 홀리다 한사랑산악회 구성원은 모두 50대다. 젊은 세대가 보기에 이들은 시끄럽고, 막무가내다. 조금 촌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시청자의 80%는 20~30대다. 이들의 영상은 가뿐하게 100만 조회 수를 넘긴다. 한사랑산악회의 콘텐츠가 ‘꼰대’를 싫어하는 젊은 세대를 50대 아저씨에 열광하게끔 해 세대 간의 이해와 소통을 돕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누리꾼들은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통화하고 수다 떠는 아저씨를 보면 사실 짜증 나고 싫었다. 그런데 한사랑산악회를 보고 난 뒤로는 그런 어르신들을 보면 왠지 귀여워 보인다”, “아버지 세대를 불편해하던 젊은 세대의 시선이 따뜻하게 바뀌는 신기한 현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이 같은 현상을 “세대 공감의 일환”이라고 정의했다. 또 “최근 복고풍이 새롭게 유행하는 현상을 뜻하는 ‘뉴트로’의 개념으로도 접근할 수 있다”며 최근 불어온 뉴트로 열풍과 일맥상통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를 들면 젊은 세대는 한사랑산악회의 패션이 마냥 촌스럽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원색의 조합과 과감한 디자인의 믹스매치를 ‘힙하다’며 개성으로 보기도 한다”며 “어디서나 볼 법한 촘촘한 캐릭터 설정으로 가짜지만 진짜 같은 모습에 재미를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 2021-08-24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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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60 마음에 핀 청춘의 꽃, 팬덤 문화로 활짝 피다
- ‘뒷방 늙은이’를 거부하는 시니어들이 있다. 젊은 층 못지않게 인터넷과 스마트폰 활용에 익숙하고, 자신을 위한 소비에도 적극적이다. 이들이 ‘덕질’에 뛰어들며 새로운 ‘엄마·삼촌 팬’ 문화를 만들고 있다. 시작은 MZ세대와 비슷했지만 남다른 재력과 소비력으로 차원이 다른 덕질을 보여주는 ‘오팔 세대’를 들여다봤다. 요즘 어른들은 뭔가 다르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로 남은 인생을 수용하는, 그저 나이 들어버린 존재가 아니다. ‘노(NO)노(老)’를 외치며 활발한 사회활동과 네트워킹으로 정체성을 찾고 젊은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한다. 이들은 바로 오팔 세대다. 오팔(OPAL, Old People with Active Lives) 세대는 베이비부머를 대표하는 1958년 개띠 ‘58’과 발음이 같고, 은퇴 이후에도 삶을 즐기며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5060세대의 다채로운 행보가 다양한 색을 담고 있는 보석 ‘오팔'과 닮았다는 의미다. “너네만 덕질하니? 엄마도 삼촌도 한다” 최근 오팔 세대 사이에서 ‘덕질’이 화제다. 젊은 세대의 전유물 같았던 덕질이 전 세대로 퍼지고 있다. 덕질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해 그와 관련된 것을 모으거나 찾아보는 행위를 이르는 말이다. 분야는 연예인, 게임, 만화, 음식, 반려동물 등 매우 다양하다. 오팔 세대의 덕질은 MZ세대 못지않다. ‘내 가수’가 출연하는 TV 프로그램은 무조건 본방 사수다. 관련 기사도 부지런히 확인한다. 음원 결제도 서슴지 않는다. 신한카드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연령대별 음악·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 증가율은 20~40대가 71%인 데 비해 5060세대는 101%로 크게 늘었다. 오팔 세대는 MZ세대 덕질의 필수인 ‘스밍 총공, ‘조공’, ‘기부 서포트’, ‘굿즈 구매’ 같은 문화를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스밍 총공은 좋아하는 가수의 음원 순위를 올리고자 특정 시간에 일제히 해당 곡을 듣는 것을 말한다. 조공은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선물을 보내는 행위다. 기부 서포트는 스타와 팬덤 이름으로 기부하는 활동을 일컫는다. 굿즈는 사진과 DVD, 각종 소품 등 연예인이나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상품이다. “이것이 어른의 덕질이다” 바야흐로 트로트 르네상스다. 2019년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미스트롯’ 흥행을 계기로 그동안 ‘고리타분한 음악’으로 치부돼 비주류로 밀려났던 트로트가 오팔 세대 덕에 가요계에서 다시 급부상했다. 그 중심에는 미스트롯 우승자 송가인이 있다. 그의 팬클럽 ‘어게인’은 오팔 세대만의 팬 문화를 만들었다. ‘이것이 진정한 어른의 덕질’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들은 MZ세대 팬들과는 다르다. 팬카페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드러내며 댓글을 단다. 온라인에서 처음 만났지만 익명성 뒤로 숨지 않고 서로 예의를 지키고 싶어서다. 송가인이 한참 어린 딸이나 손녀뻘이라도 ‘가인 님’, ‘가인 씨’라고 부른다. 말도 잘 놓지 않는다. 송가인의 SNS에는 “송가인 님 덕에 힘을 얻고 있어요”와 같은 존칭 문장이 주를 이루는 반면, 아이돌 SNS에서는 “언니 보고 벽 부수다가 우리 집 원룸 됐어”, “오빠는 경마장 가지 마. 말이 안 나오니까”와 같은 요즘 유행하는 ‘주접 댓글’을 볼 수 있다. 남다른 조공 문화도 눈에 띈다. ‘건강이 최고’라 생각하는 오팔 세대 팬들은 송가인에게 홍삼, 참치회, 산낙지 같은 건강식품을 박스째로 선물한다. 브랜드 의류나 액세서리보다는 몸을 챙겨주려는 마음이 돋보인다. 미스트롯 흥행을 디딤돌 삼아 2020년 출격한 ‘미스터트롯’은 ‘엄마 부대’라는 새로운 광풍을 일으켰다. 임영웅의 팬클럽 ‘영웅시대’는 6월 16일 임영웅의 생일을 기념하며 ‘착한 덕질’의 표본을 보여줬다. 전국적으로 선풍기 100대 기부, 취약아동 생계비 지원, 저소득 어르신 무릎인공관절 수술 지원 등 릴레이 나눔 캠페인을 이어갔다. 또 서울부터 부산까지 팬클럽·지역연합이 모여 전국 곳곳에 있는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역에 릴레이 광고를 진행했다. 전국의 영웅시대가 서울 지하철역 생일 전광판 광고를 보러 지방에서 올라오기도 했다. 구매 대란 만든 삼촌 팬 오팔 세대는 ‘뒷방 늙은이’를 거부한다.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활동을 즐긴다. 무엇보다 자신을 위한 소비에 아낌이 없다. 덕질도 이런 활동 중 하나다. 오팔 세대는 소비 력이 남다르다. 최근 브레이브걸스에 빠진 ‘삼촌 팬’들이 이를 제대로 보여준다. 해체를 앞두던 브레이브걸스(민영, 유정, 은지, 유나)가 올해 초 역주행을 하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보통 역주행은 반짝인기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들은 인기를 계속 이어가며 대세로 떠올랐고, 광고계에서도 블루칩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브레이브걸스의 잠재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삼촌 팬의 활약이 컸다. 통 큰 팬 일화도 끝없이 나온다. 한 팬은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 캐릭터 꼬부기를 닮아 ‘꼬북좌’라는 별명을 가진 유정의 꼬북칩 광고 계약을 기원하며, 과자회사 주식을 3000만 원어치 매수했다. 주방용품 브랜드 해피콜은 브레이브걸스를 내세운 마케팅을 시도해 ‘쁘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해피콜에 따르면, 프로모션을 시작한 5월 24일부터 일주일간 자체 온라인몰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400% 늘었다. 해피콜 자체는 물론, 주방용품 시장 전체로도 기록적인 수치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반응이다. 브레이브걸스 삼촌 팬들은 일단 제품을 구매하고 본다. 멤버가 사용하는 제품은 일단 산 뒤 해당 업체에 ‘여성만 쓸 수 있는 거냐’고 나중에 문의하는 식이다. 이처럼 브레이브걸스가 광고하는 상품은 삼촌 팬 덕에 매출이 2~4배 이상 늘며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덕질의 순기능 덕질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분석도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발표한 ‘트로트 열풍으로 보는 오팔 세대의 부상과 팬덤 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있는 오팔 세대에게 덕질은 잃어버린 나의 정체성을 찾고 위안을 얻는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오팔 세대는 덕질을 시작하고 인생이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지난 4월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는 임영웅의 ‘찐팬’ 68세 홍경옥 씨가 소개됐다. 그의 방에는 응원봉과 포스터, 그립 톡, 머그잔, 가방, 우산 등 임영웅 굿즈가 300개 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생활용품 굿즈도 임영웅 얼굴에 작은 상처라도 날까 전혀 쓰지 않고 모셔두고 있다. 홍 씨가 이토록 임영웅에게 빠져든 데는 이유가 있었다. 힘든 시절을 보내며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던 때, 임영웅의 사연과 노래가 큰 위로로 다가와서다. 홍 씨의 남편은 임영웅이 아내의 웃음을 되찾아준 고마운 존재라고 밝혔다. 덕질은 세대 간 격차를 좁혀주기도 한다. 엄마의 늦은 덕질을 본 자녀들은 얼떨떨한 기분을 느끼지만, 점차 부모의 취미 생활을 응원하는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27세 정소라 씨는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지만, 이제는 콘서트 티케팅을 도와드리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 탓에 미뤄졌던 미스터트롯 콘서트가 또 취소됐다. 기다린 지 1년이 넘었다. 예약 대기까지 걸어놓으며 부모님께 공연을 보여드리려 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렇듯 많은 자녀가 부모의 취미 생활에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미스터트롯 출신 가수의 팬카페에서는 부모를 대신해 티케팅과 스밍을 하고 있다는 자녀들의 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오팔 세대도 공연 티케팅 같은 적극적인 덕질로 자녀 세대와 더욱 가까워질 지름길을 찾고 있다. 자녀들이 아이돌에 빠지거나 그들만의 세계에 몰두하는 현상을 이제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임영웅 팬클럽 영웅시대의 ‘좋은날’ 회원은 유튜브 채널 ‘니나노 텔레비전’에서 “처음 하는 덕질이라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딸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더니 처음에는 딸이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딸이 음원 다운로드와 사이트 가입 등을 도와주면서 엄마 마음을 알게 됐다며 이해해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오팔 세대가 뒤흔든 팬덤 경제 오팔 세대는 새로운 덕질 문화를 만들며 팬덤 경제를 활성화하고 있다. 황선경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코로나19로 오팔 세대의 온라인 소비가 급증하는 등 디지털에 상당히 익숙한 세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베이비부머를 필두로 하는 오팔 세대의 거대한 규모와 높은 소비력 덕에 은퇴 후 라이프스타일에 주목한 상품이나 서비스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며 “이들의 문화나 행태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팔 세대 덕질의 주요 동기는 ‘젊음’과 ‘향수’, 두 가지 키워드로 꼽을 수 있다. 젊게 살고 싶은 욕구가 소비와 여가 활동의 주요 동기가 돼 MZ세대의 전유물이던 덕질을 모방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경제 성장기 동안 억제됐던 문화 향유 욕구가 은퇴 이후 불이 붙으며 과거의 문화, 가치, 감성을 담은 콘텐츠를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 유통업계는 이런 트렌드에 주목해 친필 사인 양주잔, 실크 스카프, 돋보기 목걸이등 오팔 세대 맞춤 굿즈를 출시하고 있다. 강좌와 학습, 여가 활동이 확산되고 삶의 단계 변화에 따른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교류의 장으로 동호회를 비롯한 커뮤니티도 활성화되고 있다. 초고속 성장을 이끈 세대로서 배워야 산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오팔 세대는 팬덤 문화에도 빠르게 정착했다. 서툴렀던 스마트폰 사용이나 온라인 세상에서 서로 도우며 디지털 기반 덕질의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모습이다. 새로운 덕질 문화를 만들고 있는 오팔 세대가 MZ세대를 넘어설 신소비 세력으로 등장하면서 팬덤의 경제적 파급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은퇴 후 시간과 경제적 여유를 기반으로 젊고 활동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어 주 소비층으로 재조명받고 있는 오팔 세대. 이들이 만드는 팬덤 경제가 시니어 비즈니스 시장에서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2021-08-2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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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땐 그랬지’와 새로운 노년의 해석…광복절 연휴 TOP3
- 지난달 6일 ‘대체공휴일법’ 공포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서 16일 월요일이 첫 번째 대체공휴일이 되면서 시민들에게 ‘광복절 연휴’를 선물했다. 코로나 시국에도 문화생활을 즐기고픈 시니어에게 안전하게,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전시와 극장을 소개한다. 추억을 되새기고 새로운 해석에 감탄하다 보면 찾아오는 즐거움은 덤이다. 자녀와 함께 자전거 타고, ‘라떼는 말이야’ 전시도 즐기고 ‘환승 지옥’에 출근길 가장 혼잡한 지하철역으로 악명 높은 신도림역에 새로운 문화공간이 생겼다. ‘신도림 문화공간 다락(多樂)’이 지난 2일 신도림역 2번 출구 앞 자전거주차장 2층 공간에 둥지를 틀었다. 다락의 개관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라떼는 말이야’ 전시회에는 1970~1980년대를 살아온 시니어라면 반가울 법한 물건들이 가득하다. 당시 사용하던 생활용품, 포스터, 옛날 오락실 게임기, 만화책 등 70여 점의 소품이 시니어 관객 뿐만 아니라 MZ세대의 눈길을 잡아 끈다. 이성우 구로구 문화예술팀장은 “요즘 인기인 ‘뉴트로(New+Retro)’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를 통해서 시니어가 추억을 되새길 수 있고, 젊은 세대와의 유대감이 형성되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자녀와 함께 방문하는 시니어 관람객이 많다”며 “어머니가 자녀 세대에게 생소할 수 있는 물건의 사용법을 설명해 주면 굉장히 흥미로워 하더라”고 덧붙였다. 오는 12월 31일까지 ‘라떼는 말이야’ 특별 전시가 열리는 다락은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말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한다.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은 휴관한다. 관람은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입장 제한 15명으로 운영되며, 관람료는 무료다. MZ세대가 제안하는 ‘건강한’ 노년을 일러스트로 꽃다발을 안고 다정하게 기대 서있는 노부부. 수박껍질을 뒤집어 쓴 채 나란히 앉아 족욕을 즐기는 노부부. 건강한 노년의 삶을 주제로 한 전시 ‘구딩 노부부처럼 나이들기 - 당신과 함께여서 더 건강합니다’의 노부부는 어딘가 다르고, 조금 특별하다. ‘노부부’가 주는 고정관념의 틀을 깬 일러스트 ‘구딩 노부부 시리즈’는 MZ세대 일러스트 작가 긴숨의 작품이다. 긴숨 작가는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디자인 연수를 받던 중 마주친 영국의 노부부들을 접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벙거지 모자를 쓴 할머니, 에코백을 맨 할아버지를 그리며 설레고 기다려지는 노년의 일상을 꿈꿨다. 캐릭터 이름인 ‘구딩(Good+ing) 노부부’는 ‘좋다’는 의미의 영단어 ‘Good’과 현재 진행형을 만드는 어미 ‘ing’이 더해 만들어졌다. 항상 좋은 일과 멋진 순간이 계속되길 바라는 작가의 바람이 담겨있다. 구딩 노부부는 서울 종로구 서촌의 ‘건강책방 일일호일(日日好日)’에서 8월 22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구딩 노부부 시리즈의 대표 작품 33점, 건강책방 일일호일과 협력한 3점의 신작이 젊은 세대보다 더 젊게 살아가는 건강한 부부를 통해 노년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제시한다. 일일호일 김민정 책방지기는 “외롭고 병든 노년이 아닌, 젊고 활력 있는 일상을 살아가는 구딩 노부부의 삶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건강한 노년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행사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철저한 방역 속에 진행돼 안전하게 관람할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맞춰 입장 시간과 정원을 달리 적용하고 있다. 전시 기간 내 현장 방문을 통해 별도 예약 없이 무료 관람이 가능하지만, 수용 인원에 따라 현장 대기가 발생할 수 있다. 일일호일은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 정오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한다. 굿바이 서울극장, 영화로 남기는 마지막 인사 1979년부터 약 40년 간 시민들의 문화 생활을 책임져 왔던 서울극장이 폐업을 앞두고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서울극장은 지난 11일부터 ‘고맙습니다 상영회’를 진행 중이다. 영업 마지막 날인 31일까지 3주 동안 평일 하루 100명, 주말과 공휴일엔 하루 200명에게 선착순으로 무료 영화 관람 티켓을 제공한다. 당일 영화에 한해 원하는 시간대의 영화로 예매가 가능하며, 하루에 1인 2매까지 예매할 수 있다. 서울극장을 운영한 합동영화사는 1964년 영화 ‘주유천하’를 시작으로 247편의 한국영화를 제작했다. ‘빠삐용’(1973), ‘미션’(1986) 등 100여 편의 외화를 수입하고 배급해오기도 했다. 서울극장의 설립자인 고(故) 곽정환 합동영화사 회장이 1978년 종로 세기극장을 인수했고, 이듬해 스크린 한 개를 건 서울극장이 문을 열었다. 스크린 하나로 시작해 상영관을 11개까지 늘린 서울극장은 피카디리와 단성사, 대한극장 등과 함께 종로3가를 1980~1990년대의 한국 영화 흥행의 중심지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대기업 멀티플렉스의 확장과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의 약진, 코로나19로 인한 관객 수 급감 등, 영화 산업 생태계를 덮친 변화의 파도를 버티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번 상영회에서는 고(故) 곽정환 회장이 연출하고 고은아 합동영화사 현 회장이 출연한 ‘쥐띠부인’(1972)이 서울극장의 역사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특별 상영된다. 그동안 서울극장의 기획전에서 누락된 명작 영화들도 다시 상영한다.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폭스캐처’(2014), ‘걸어도 걸어도’(2008),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JTBC 음악 예능 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의 모티브가 됐던 ‘서칭 포 슈가맨’(2011) 등의 영화가 준비돼 있다. 이 외에도 현재 상영 중인 ‘모가디슈’, ‘휴먼 보이스’, 지난해 칸영화제 공식 선정작 ‘러브 어페어: 우리가 말하는 것, 우리가 하는 것’ 등 하반기 개봉 예정작 4편을 프리미어(정식 개봉 전 특별 상영)로 만나볼 수 있다. 당일 무료 선착순 인원이 마감돼도 일반 상영작은 6000원으로 관람할 수 있다. 특별상영작인 ‘쥐띠부인’과 프리미어 상영작, 정상 개봉작은 정상가에 관람 가능하다.
- 2021-08-13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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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타버스, 시니어 플랫폼으로 가능할까?
- 메타버스 관련 소식이 쏟아지고 있다. 메타버스는 현실같이 구현된 가상 세계를 뜻하는 말이다. 1992년 출간된 닐 스티븐슨의 공상과학 소설 ‘스노 크래시’ 속 가상 세계 명칭인 ‘메타버스’에서 유래했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는가. 메타버스는 이미 추억 속 인물을 재현하는 기술,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 기술 등으로 우리 생활에 파고들고 있다. 희망과 긍정을 노래했던 혼성 그룹 ‘거북이’가 오랜만에 무대에서 뭉쳤다. 드라마 ‘이태원클라쓰’의 OST인 가호의 ‘시작’을 편곡했다. 신나는 노래인데도 무대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심지어 함께 무대를 꾸미는 멤버들도 터질 것 같은 울음을 꾹 참은 채 노래를 부른다. 가족들도 지켜보며 눈물을 훔치는 가운데 웃고 있는 이는 단 한 사람, ‘터틀맨’뿐이다. 지난해 말 CJ ENM 음악 채널 엠넷의 특집방송 ‘AI음악프로젝트 다시 한번’에 방영된 풍경이다. 이 프로그램의 다른 에피소드에선 전설적인 가수 김현식이 박진영의 ‘너의 뒤에서’를 불렀다. 2008년경 터틀맨은 사망했다. 김현식은 1990년에 사망했고, ‘너의 뒤에서’는 1994년 발매됐다. 어떻게 이런 무대가 가능한 것일까. 답은 메타버스 기술에 있다. 엠넷은 음성 복원 기술을 활용했다. AI가 터틀맨과 김현식의 목소리를 학습하고 분석한 뒤 각각의 목소리로 새롭게 노래를 불렀다. 또 터틀맨과 김현식의 생전 영상도 학습하고 분석해 몸짓과 표정까지 자연스럽게 구현해냈다. 메타버스가 시니어에게 미치는 영역 메타버스는 가상 세계이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구현될 수 있다. 한 명의 가상 인물일 수도 있고, 새로운 세계일 수도 있다. 그래서 아직 통일되고 명확하게 정의돼 있지는 못하다. 그래도 지금까지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메타버스를 정리하면, 메타버스에는 실제와 비슷한 세계인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실제 공간에 가상현실을 겹쳐 영상으로 만드는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 기술이 있다. 여기에 두 기술을 결합한 혼합현실(MR, Mixed Reality)과 확장현실(XR, eXtended Reality)까지 모두 포함해 실제와 구분하기 어렵도록 사실적으로 구현한 가상 세계가 메타버스다. AI로 구현된 터틀맨과 김현식 무대의 청중에는 가족들도 있었다. 가족들은 눈물을 훔치며 지켜봤다. 비록 만질 순 없지만 사랑했던 이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들에게는 치유의 시간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살다 보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게 된다. 이별 후 오랜 시간이 흘러서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누군가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다. 메타버스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그리움을 덜어낼 수 있는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현실 세계에서 다양한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메타버스에서 일어나는 일도 다양하다. 메타버스는 공간 제약이 없어 오히려 현실보다 더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쉽게 외출할 수 없는 요즘,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손쉽게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제페토’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을 이용하면 지금은 갈 수 없는 유럽으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단순 체험뿐 아니라 교육과 훈련에 적용해 차원 높은 체험 프로그램도 제공할 수 있다. 이를테면 초보 파일럿이 가상 세계에서 비행 훈련을 할 수 있게 도와 사고 위험 없이 비행 숙련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2019년 SK텔레콤은 5세대 이동통신(5G) 기술을 이용해 부천에 있는 축구 꿈나무가 런던에 있는 손흥민으로부터 직접 축구 코칭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처럼 메타버스는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 다른 산업과 연계할 수 있는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메타버스 타고 헬스케어 진입 정치, 경제, 과학, 예술 등 실제 세계를 구성하는 분야는 셀 수 없이 많다. 실제 세계가 다양하다면 메타버스도 마찬가지다. 시니어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메타버스 분야는 바로 의료다. 메타버스를 이용한 헬스케어 서비스들이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메타버스 헬스케어는 뇌파와 시선 분석을 통한 치매 진단부터, 가상 공간에서 치매 예방 훈련 프로그램과 재활 치료까지 도우며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엠넷 방송이 디지털 휴먼을 소환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해줬다면, 메타버스 헬스케어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현실의 시간을 늘리고, 시니어의 젊음을 되찾는 데 도움을 준다. AI 기반 헬스케어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는 ‘룩시드랩스’가 대표적이다. 룩시드랩스는 가상현실 기기를 이용해 가상현실 콘텐츠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정신질환 여부를 판단하고, 노년층의 치매 위험 정도를 파악해 이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4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사람의 뇌파 관련 데이터를 모았다. 뇌파 변화, 동공 크기 변화, 시선 처리 속도 등의 데이터베이스로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사람을 판별한다. 룩시드랩스는 축적된 데이터를 토대로 인지 건강을 관리해주는 개인 트레이너 ‘루시’를 선보였다. 루시 사용자는 매일 가상현실 헤드셋을 쓰고 인지 능력을 테스트한다. 뇌파 센서 6개와 시선 추적 카메라를 활용해 전문적인 두뇌훈련시스템을 제공받는다. 사용자는 가상 공간에서 박스를 이용해 공간을 구성하거나, 컨트롤러로 드래곤을 처치하는 등 다양한 게임을 할 수 있다. 사용자가 가상현실 게임을 하는 동안 클라우드 서비스가 뇌파와 안구 운동을 분석한다. 분석된 내용은 이해하기 쉬운 보고서 형태로 제공되며, 태블릿이나 모바일 기기로 가족, 의사와 공유할 수 있다. 메타버스로 기분도 up 몸도 up KT도 두뇌 개발 및 건강 관리를 할 수 있는 체험 공간 서비스를 출시했다. 바로 ‘리얼큐브’다. 놀이를 위한 공간과 평평한 벽면이 있다면 집에서도 메타버스에 빠져들 수 있다. 리얼큐브 이용자는 콘텐츠 체험용 매트 위에서 벽면에 투사된 가상 공간을 바라보고 노화 방지를 위한 콘텐츠들을 체험할 수 있다. 동작인식 센서가 어르신들의 손짓이나 몸동작을 인식해 특별한 기기 없이도 게임을 조작할 수 있다. 비눗방울 맞혀서 터뜨리는 게임, 몸짓으로 리듬에 맞춰 분리수거하는 게임, 숫자 연산 게임 등이 있다. 공이나 막대기 같은 부자재를 이용할 수 있어 두뇌와 신체를 동시에 활성화할 수 있다. 리얼큐브는 전국 시니어 기관과 복지시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일부 치매안심센터에서는 치매 예방과 증상 완화에 이미 리얼큐브를 활용하고 있다. 강남구 시니어플라자, 대구 중구 노인복지관, 용산구 치매안심센터, 동대문구 치매안심센터에서 리얼큐브 콘텐츠를 활용해 체육대회도 열었다. 대구 중구 노인복지관에서 리얼큐브 프로그램을 체험한 어르신은 “생각이 밝아지는 것 같다. 숫자를 계산하지 못했는데 프로그램 체험 뒤 분별력이 생겼다”며 “기분이 좋아지고 운동도 된다”는 체험 소감을 밝혔다. KT 관계자는 “리얼큐브를 비롯한 메타버스 콘텐츠를 계속 확대하고,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진행 중”이라며 “이미 협업한 복지기관 외에도 다른 기관에서 요청하면 KT 메타버스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처음 만나는 메타버스가 시니어들에게는 낯설고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메타버스는 몸을 제대로 움직이기 어려운 시니어들에게 매력적인 도구다. 오랜 삶과 연륜을 바탕으로 메타버스를 더 풍부하게 만들 가능성도 높다. 엄청난 영향력과 파급력을 몰고 올 메타버스에 올라탄 시니어들에게 메타버스는 어떤 공간으로 어떤 기회를 열어줄까. 제페토로 메타버스 맛보기 구글 플레이스토어나 아이폰 앱스토어에서 ‘제페토’ 앱을 검색한다. 설치 후 앱을 실행한다. 그리고 ‘캐릭터 만들기’ 버튼을 눌러 가상 세계에서 나를 닮은 사람을 만든다. 먼저 생년월일을 입력하는데, 생년월일은 자신이 먼저 밝히지 않는 한 제페토 세계에서 다른 이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전화번호나 이메일로 가입하거나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트위터 같은 SNS와 연동해 가입할 수도 있다. 아이폰 사용자는 애플 계정으로 가입할 수 있다. 셀카를 직접 찍거나 스마트폰 사진첩에서 사진을 선택하면 사진 속 모습을 비슷하게 본뜬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 마땅한 사진이 없거나 사진 찍는 게 번거롭다면 표준화된 캐릭터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런 다음 닉네임을 짓는다. 닉네임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제페토 내에서는 ‘코인’과 ‘젬’이 화폐처럼 통용된다. 코인과 젬으로 내 캐릭터에게 입히는 옷과 액세서리를 구입할 수 있다. 처음 시작할 때 주는 8500 코인으로 옷을 살 수 있다. 코인을 다 썼을 때는 출석 후 미션 수행을 통해 코인을 추가로 받으면 된다. 제페토에 푹 빠져 이렇게 받는 코인으로는 부족할 경우 현금결제로 코인과 젬을 얻는 방법도 있다. 코인과 젬으로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입었다면 제페토 월드로 놀러 가보자. 유령의 집이나 벚꽃공원처럼 테마가 있는 맵이 있고, 경복궁과 독도, 한강공원처럼 랜드마크를 본뜬 곳도 있다. 제페토 월드에서는 뉴욕과 몰디브, 베네치아 등 세계적인 관광 명소도 방문할 수 있다.
- 2021-08-06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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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셧다운제 소용없어” 게임에 빠진 자녀, 부모가 바로잡아야
- 셧다운제에 대한 논란이 최근 더욱 거세지고 있다. 청소년들의 게임 과몰입을 예방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지만 부모들이 오히려 폐지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규제 실효성이 떨어져 게임 중독 예방 효과가 적어서다. 셧다운제는 청소년 게임 이용 시간을 제한하는 제도로, 만 16세 미만 청소년이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인터넷 게임에 접속하는 것을 차단한다. 이 제도는 지난 2011년 청소년의 수면권과 건강권을 보호하고, 게임 이용을 둘러싼 부모·자녀 간 갈등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했다. ‘초통령 게임’ 마인크래프트가 19금? 최근 셧다운제 폐지론에 불이 붙은 이유는 ‘초통령 게임’으로 부르는 마인크래프트에 '19금 딱지'가 붙으면서다. 이로 인해 게임 산업에 대한 한국 정부의 규제가 전 세계에서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마인크래프트는 레고 같은 블록을 쌓아 이용자가 원하는 대로 공간을 꾸미는 게임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며 코딩을 익힐 수 있어 프로그래밍 교보재로도 사용한다. 또 청와대가 어린이날 행사에 교육 목적으로도 쓸 만큼 활용도가 높다. 하지만 마인크래프트 운영사인 마이크로소프트(MS)는 게임 셧다운제를 피하고자 한국에서만 미성년자 계정 등록을 막았다. 마인크래프트는 만 12세 이용가로, 셧다운제에 맞춰 청소년의 게임 시간을 제한하려면 한국 전용 서버를 따로 구축해야 한다. MS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서버를 구축하기보다 청소년 이용자를 포기했다. 청소년 자녀 둔 시니어들, “셧다운제 폐지해도 상관없어” 이에 정치권과 해당 업계를 중심으로 셧다운제 폐지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들조차 실효성이 없다고 폐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50세 A 씨는 “마음만 먹으면 청소년들이 부모의 ID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서 게임을 할 수 있다”며 “우리 아들도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하면서 내 주민등록번호를 외운 것 같다”고 말했다. 49세 B씨는 “인터넷 게임에 중독되는 원인은 다양한데, 시간대를 지정해 PC게임 이용을 금지하는 방법이 근본적인 대안은 아니다”며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으로도 게임을 더 많이 하는데, PC게임만 해당하는 규제는 의미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대로 하려면 로그인할 때마다 부모 핸드폰으로 인증을 받도록 하는 등 더 치밀한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셧다운제는 청소년 게임 사용률 감소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청소년의 게임사용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겹쳐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국내 초·중·고등학생 중 게임 비사용자군 비율은 20.1%로 2019년 22.9%, 2018년 23.1%에 이어 3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반면 과몰입군 0.3%, 과몰입위험군 1.6%, 게임선용군 20.6%, 일반사용자군 57.4% 등 일반 이용자 비중이 커졌다. ‘브레이크’ 없는 청소년 게임 중독, 먼저 부모가 바로잡아야 청소년은 성인보다 눈앞에 보이는 유혹을 뿌리치거나 중독된 행동을 조절·중단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이런 특성 때문에 청소년일수록 게임에 빠질 우려가 크다. 초기에 부모와 자녀가 협의해서 게임 이용에 대한 가족 규칙을 정하는 게 합리적이다. 중장년 부모가 일방적으로 게임을 못 하게 하거나 몰래 게임을 한 아이를 혼내는 식으로 대처하면 오히려 더 엇나갈 가능성이 커진다. 게임 몰입을 직접적으로 나무랄 것이 아니라 자녀가 어려움에 처해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또 부모가 서로 ‘네 탓’이라며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금물이다. 자녀가 스스로 게임 캐릭터를 삭제하거나 조금씩 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기다려 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대체 활동을 자녀와 함께 찾아, 게임을 대체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는 방법을 잘 모를수록 게임에 쉽게 빠져들 가능성도 커진다. 다만 정서적 변화와 정신질환 동반 등 게임 중독 정도에 따라 심한 증세를 보인다면 전문가 상담이나 약물치료를 고려해야 한다. 자녀의 게임 중독 진단법 시니어가 자신의 자녀나 주변 학생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이용해 중독 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 각 항목별로 ‘전혀아님(0점)’, ‘가끔(1점)’, ‘자주(2점)’, ‘항상(3점)’으로 나눠 점수를 매기고, 총 합계가 10점 이상이면 인터넷 게임장애 고위험군에 해당한다. 이 경우 전문가 상담을 통해 정확하게 진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1. 전에 했던 게임이 계속 생각나거나, 게임할 생각에 몰두했다. 2. 게임을 하지 않으면 초조하거나 불안하거나 슬프다. 3. 게임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4. 게임 시간을 조절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5. 게임으로 예전의 다른 취미 생활이나 오락 활동에 흥미가 줄었다. 6. 사회적·심리적 문제에도 계속해서 게임을 과하게 한다. 7. 가족, 치료자, 또는 그 외의 사람에게 게임 시간을 속인 적 있다. 8.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거나 회피하려 게임을 한다. 9. 과도한 게임으로 중요한 인간관계나 일, 교육, 경력의 기회 등을 위태롭게 하거나 잃은 적이 있다. (출처 중독포럼)
- 2021-07-2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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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만의 춤을 추는 삶
- 기쁠 때는 노래의 멜로디가 들리고, 슬플 때는 노래의 가사가 들린다는 말이 있다. 음악을 듣는 건 어떤 마음을 느끼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1980~90년대 포크밴드 ‘동물원’의 멤버로 활약했던 가수 김창기는 서정적인 노랫말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 그가 기타를 세심하게 매만지던 손으로 초크 대신 펜을 들고 음악과 삶에 관한 얘기를 독자에게 들려주고자 한다. “처음엔 아무것도 없었죠. 천천히 빛나는 꿈밖에는. 두려움은 마음에 묻어두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어요. 세상의 풍파 속에서 나는 음악을 듣고, 눈을 감고 리듬을 느껴요. 음악은 내 마음을 사로잡아요. 이 얼마나 멋진 느낌인가요? 믿음이 현실이 된다는 것. 나의 열정을 현실로 만들고, 나의 춤을 추고 나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 위의 가사만 봐도 한 춤꾼의 애환과 열정이 느껴진다. 이 곡은 아이린 카라가 부른 ‘Flashdance What a Feeling’으로 1983년 개봉한 영화 ‘플래시댄스’의 주제곡으로 유명하다. 이 영화는 철공소에서 일하며 발레리나의 꿈을 꾸던 소녀가 역경을 딛고 일어나 자신의 꿈을 성취한다는 이야기다. 결말은 뻔히 보이지만, 제니퍼 빌스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멋진 춤과 노래는 혼을 쏙 빼놓는 한 편의 뮤직비디오 같았다. 시련을 딛고 꿈을 이룬 소녀처럼 영화는 대성공을 거둔다. 700만 달러로 제작해 2억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영화의 서사나 캐릭터는 미흡했지만 제니퍼 빌스라는 신선한 흑인 여배우를 주연으로 내세웠다. 그녀는 이 영화를 계기로 스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영상미를 돋보이게 했던 OST는 당시 빌보드 차트 상위권을 휩쓸었다. 신선한 배우, 화려한 연출, 신나는 음악. 이 삼박자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제작진의 열정이 만든 성공이라고 할까? 삶의 알맹이 ‘열정’의 정의는 사랑만큼이나 다양하다. 비슷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열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열렬히 사랑하고, 매우 중요하다고 스스로 판단한 어떤 활동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열중하는 마음. 열정적인 활동은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강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내가 좋아하고, 스스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고 선택한 일을 할 때 열정적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긍정적이고, 명확한 동기와 남다른 열정을 가졌기에 필요한 지식을 더 잘 습득한다. 그들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긍정적 사고방식’(Mindset)을 기본값으로 가진다. 긍정적일수록 일에 몰입이 더 쉽고, 어려움이 있어도 해결책을 잘 찾는다. 잘 해결할수록 자신감도 커진다. 물론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위기를 극복하고 끝내 성취와 발전을 이루어내는 것. 고통과 기쁨이 공존하는 것. 그것이 열정의 기본값이다. 열정은 삶에서 도움닫기 역할을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모난 돌부리처럼 발목을 잡을 때도 있다. 전자를 ‘조화로운 열정’이라 부르고, 후자를 ‘강박적인 열정’이라 한다. 조화로운 열정은 기쁨과 보람, 자신감 같은 긍정적 감정을 삶에 불어넣고, 동시에 전체적인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나아가 한층 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반면 강박적인 열정은 집착의 성격을 가진 것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일중독으로 인해 가정이나 윤리 등에 소홀하거나 피해까지 주는 경우를 말한다. 조화로운 열정은 삶의 만족으로 이어진다. 조화로운 열정을 지닌 사람은 결코 스스로나 남에게 열정을 강요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행동한다. 삶의 단계마다 놓인 문제를 스스로 판단해서 해결한다. 잘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은 과몰입을 막고, 삶의 다른 부분도 돌보는 여유를 준다. 이들은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노년에도 조화로운 열정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호기심과 열정을 갖추고 배우기 위해 노력하면 어떨까? 이를 통해 스스로 존재의 가치를 깨닫고, 삶 속에서 자신감을 찾자. 나만의 시간을 통해 스스로 성찰하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자.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좋은 삶의 자세를 배우기 위해 열정적인 삶을 살 때, 우리는 비로소 맑은 정신과 더불어 삶 속에서 꽉 찬 알맹이를 쥘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멋진 느낌인가? 나의 열정을 현실로 만들고, 나의 춤을 추고 나의 삶을 산다는 것!” Flashdance What a Feeling - Irene Cara 아이린 카라는 특이한 이력을 지닌 가수다. 배우로서 1980년에 개봉한 영화 ‘페임’에서 가수 지망생을 맡아 연기한 적도 있다. 동시에 이 영화의 OST를 불렀는데 당시에 인기가 상당했다. 이후 영화 ‘플래시댄스’의 주제곡 ‘Flashdance What a Feeling’도 그녀가 불렀고, 이 곡은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다. 이 곡의 프로듀서 조르조 모로더는 1988년 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잡고’를 쓴 작곡가로 유명하다. 카라는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하고, 8인조 그룹으로 활동했지만 빛을 발하지는 못했다. 가수로서 재능은 부족했지만 열정은 가득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 2021-07-0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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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위 피해 실내로…7월의 문화 소식
- ● Exhibition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일정 8월 8일까지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환경보호가 전 세계의 과제로 당면한 가운데,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전시가 열렸다. 모든 생태계의 집인 지구, 인간이 거주하는 건축물, 새와 곤충의 서식지 등 세 개의 집을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해 그 안에서 벌어진 참혹한 환경오염을 이야기한다. 이상 기후로 집단 고사한 침엽수, 아사한 동물, 남·북극의 해빙 등 죽어가는 지구의 모습을 실제 고사목과 박제 동물, 영상 등으로 선보이며, 아파트를 짓고 부수는 과정에서 생산 및 폐기되는 사물을 작품으로 재해석한다. 전시실뿐 아니라 마당, 로비, 건물 외벽 등 여러 곳을 전시 장소로 활용해 미술관 전체를 인간을 둘러싼 환경처럼 보이도록 했으며, 특히 옥상에는 서식지를 잃은 새와 곤충의 보금자리를 설치해 전시 일정과 무관하게 올가을까지 남겨둔다. 기후위기에 대한 전시지만 그 자체가 탄소 배출 행위라는 모순을 고려해, 전시 준비 과정에서도 폐기물과 에너지 사용을 최대한 줄이고 재사용과 재활용을 생활화했다. 배우 박진희가 국문 오디오 가이드 녹음에 참여해 진심 어린 목소리로 인류가 직면한 현실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나무 인형의 비밀 - 체코 마리오네트 일정 8월 29일까지 장소 서울역사박물관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지구 반대편 국가 체코의 전통문화를 생생하게 즐길 수 있는 전시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 체코의 흐루딤인형극박물관과 협력해 마련된 이번 전시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체코 인형극을 중심으로 156점의 인형과 무대 배경, 실황 영상 등을 다채롭게 선보인다. 18세기 유랑극단에서 출발한 체코 인형극은 라디오나 TV가 없던 시절 도시 간 소식을 전달하며 민족의식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전시는 이 같은 기원을 시작으로 인형극 부흥기를 맞은 20세기 초중반, 다양한 인형극장이 탄생한 20세기 후반까지 인형극의 발전을 연대기적 구성으로 살펴본다. 또한 단순히 역사를 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오감을 만족시키는 체험존을 마련해 전시장을 찾은 어린이들의 흥미를 유발한다. 체코에서 직접 공수해온 마리오네트 인형과 손가락 인형, 음향 장비 등을 통해 인형극을 재현해볼 수 있으며, 유랑극단이 타고 다니던 마차에 들어가 가까이 감상할 수 있다. 가족 단위로 방문하기 좋아 여름방학이 시작된 손주와 함께 방문하면 더 즐거운 추억을 남길 수 있다. ● Book ◇영혼을 품다, 히말라야 (박경이 저·도트북)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 용감하게 오르는 이들이 있다. 바로 고산 등반가다. 이들은 동상에 걸려 손가락을 자르고, 때로는 목숨을 위협받으면서도 정상을 향해 나아간다. 그 모습을 보면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산을 오르는 이유가 궁금해질 때도 있다. ‘왜 산을 오르는가?’ 어쩌면 산을 사랑하는 모든 산악인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 여성 산악가 박경이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자신의 삶으로 대신한다. 에세이 ‘영혼을 품다, 히말라야’는 고산 등반가의 삶과 철학을 저자가 ‘죽음의 지대’ 히말라야 고산에 직접 오르며 만난 이들의 이야기로 현장감 넘치게 풀어낸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극한의 자연환경에서 자기 존재의 참된 의미를 사유하고, 자신을 포함해 편견과 차별이란 또 다른 산을 넘어야 했던 세계 여러 여성 산악인의 고충을 담담히 반추한다. 책은 단순히 감상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산 등반을 떠나려는 이들에게 필요한 내용을 흥미롭게 알려준다. 셰르파와 루트 개척, 베이스캠프 생활 등 기본 상식부터 트레킹 준비물, 고산병 극복 방법 등 실전에 필요한 정보까지 한데 담아 등반 의욕을 고취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죽으러 산에 가지는 않지만 죽을 걸 알면서도 산을 오른다”는 많은 고산 등반가의 마음을 대변한다. 관중도 심판도 없지만 반칙하지 않고 정직하게 산을 오르는 이들의 삶을 간접 체험하다 보면 서문에서 던졌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이 풀린다. 등산의 진정한 묘미는 정상이란 결과보다 자신을 믿으며 한 발씩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인생이란 산을 탈 때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말이다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 (나태주 엮·앤드) ‘풀꽃시인’ 나태주가 한국 시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역작을 갈무리해 엮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국민 시 ‘엄마야 누나야’부터 조지훈의 희귀 시 ‘병에게’까지 총 125편이 담겼다. ◇킵 샤프 (산제이 굽타 저·니들북) 나이가 들어도 인지 기능을 총명하게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을 소개한다. 뇌에 관한 오해와 진실, 구체적인 12주 프로그램을 통해 막연하게 느껴지는 뇌 건강 영역을 실용적으로 접근한다. ◇바람이 내 등을 떠미네 (한기봉 저·디오네) 평생 세상을 뾰족하게 바라보았던 언론인 출신 저자가 평범한 중년으로 돌아와 세상살이의 단상을 덤덤하게 풀어놓는다. 짧지만 강렬한 60여 개의 글이 또래 독자에게 위로를 전한다. ● Stage ◇마리 앙투아네트 일정 7월 13일~10월 3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연출 로버트 요한슨 출연 김소현, 김소향, 김연지, 정유지, 민우혁, 이석훈, 이창섭, 도영 등 18세기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뮤지컬로 다시 돌아온다. 올 7월 막을 올리는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한때 고귀한 신분이었지만, 각종 오명 속에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그녀의 삶을 통해 진실과 정의의 의미를 조명한다. 사회의 부조리를 타파하고자 혁명을 선도했던 인물 마그리드 아르노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되는 오리지널 버전과 달리, 한국 버전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에 비중을 실어 두 여인의 삶을 더욱 극적으로 대비시킨다. 특히 당대 부의 상징이었던 파리 베르사유 궁전과 빈민가 마레지구를 무대 위에 재현해 계급 간 갈등 구조를 명확히 그려낸다.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로코코 시대의 화려한 귀부인 드레스와 다채로운 가발도 재미를 높이는 포인트. 목걸이 사건, 바렌 도주 사건, 단두대 처형 등 대중에게 친숙한 사건을 위주로 재해석해 공감대를 더한다. ◇렁스 일정 9월 5일까지 장소 아트원씨어터 2관 연출 박소영 출연 이동하, 성두섭, 오의식, 이진희, 류현경, 정인지 등 매 순간 선한 의도로 행동하기 위해 고민하는 한 연인이 사랑, 환경, 출산 등의 주제로 치열하게 토론하며 ‘좋은 사람’의 정의를 찾아나가는 이야기다. 환경을 위해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여자와 아이를 낳아 좋은 부모가 돼야 한다는 남자의 정답 없는 갈등이 진정한 ‘선’(善)의 의미를 묻는다. 특별한 장치 없이 두 배우의 대화로만 이어지는 전개가 몰입도를 높인다. ◇비틀쥬스 일정 8월 7일까지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출 알렉스 팀버스 출연 유준상, 정성화, 홍나현, 장민제, 김지우, 유리아 등 팀 버튼 감독의 영화를 뮤지컬화한 작품으로, 2019년 현지 초연 이후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라이선스 공연이다. 황당한 사고로 유령이 된 부부가 자신의 신혼집에 이사 온 한 가족을 쫓아내기 위해 장난꾸러기 유령 ‘비틀쥬스’와 합세해 벌어지는 이야기다. 공중부양을 하는 캐릭터와 시시각각 변하는 무대 등 마술 같은 연출이 놀이공원에 온 듯한 짜릿함을 선사한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 2021-07-02 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