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명품도시 한양 보물 100선
일정 8월 7일까지 장소 서울역사박물관
대동여지도, 용비어천가, 청진동 출토 항아리 등 한양을 대표하는 보물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명품도시 한양 보물 100선’은 서울역사박물관 개관 20주년을 기념한 특별 전시다. 보물 15건, 유형문화재 25건을 포함한 유물 1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전시는 조선시대 한양 사대부와 기술관, 장인들이 생산한 소장품을 지도·서화·고문서·전적·공예 5가지 분야로 나눠 소개했다.
먼저 지도 부문에는 보물로 지정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필사본인 ‘동여도’가 함께 전시돼 있다. 두 작품이 동시에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동여지도’와 ‘동여도’를 펼쳐 연결하면 가로 4m, 세로 7m에 이른다.
서화 부문에서는 궁중 화원이 그린 흥선대원군의 초상화와 문서를 담당하는 관직인 사자관 한호의 글씨가 담긴 ‘석봉한호해서첩’을 볼 수 있다. 사대부가 한양의 명소를 그린 산수화, 풍속과 놀이를 볼 수 있는 풍속화, 국가의 행사나 사적 모임을 그린 기록화 등도 소개됐다.
고문서 부문에서는 한성부가 발급한 토지 매매 문서인 한성부 입안이 공개됐다. 전적 부문에서는 조선시대 세종 때 목판본으로 제작된 ‘용비어천가’를 비롯해 경자자로 인쇄된 조선 최초의 ‘자치통감강목’, 초주갑인자로 인쇄된 ‘자치통감’ 등의 보물을 만날 수 있다. 공예 부문에는 청진동 출토 백자 항아리와 대장경궤 등의 목가구가 전시돼 있다.
◇장-미셸 오토니엘 : 정원과 정원
일정 8월 7일까지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덕수궁 정원
장-미셸 오토니엘은 ‘유리구슬 조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대표적 현대미술가다. 오토니엘의 이번 개인전 ‘정원과 정원’은 2011년 프랑스 퐁피두센터 전시 이후 최대 규모다. 지난해 파리 프티 팔레에서 개최한 전시보다 규모가 크다.
오토니엘은 이번 전시에서 유리와 스테인리스 스틸, 금박 등으로 환상적인 이미지를 연출했으며 풍부한 의미를 담아냈다. 또한 작가는 미술관 밖의 공간에서 대중의 삶과 자연, 역사와 건축의 만남을 시도해오고 있다. 이에 ‘정원과 정원’ 전시 역시 다양한 공간에서 열린다. 서울시립미술관과 야외조각공원, 그리고 덕수궁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Book
◇당신의 마지막 이사를 도와드립니다(김석중·김영사)
저자 김석중은 우리나라 1호 유품정리사로 통한다. 일본에서 우연한 기회로 유품 정리 일을 배워온 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유품정리사 사업을 시작했다. 어느덧 15년째 죽음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저자는 책을 통해 경험과 소회를 풀어냈다.
그는 고독사나 자살 현장처럼 물건을 보는 게 힘들다거나, 고인을 떠나보낸 상실감에 마음 아파서 유품 정리를 하지 못하는 유족들을 대신해 고인의 흔적을 정리한다. 최근에는 가족에게 의지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생전 유품 정리 점검 문의, 사후 유품 정리 예약도 늘고 있다고 전한다.
그는 유품을 정리할 때 ‘주인과 함께 천국으로 이사를 보낸다’는 마음으로 예의를 다해 물건을 소중히 다룬다고 한다. 감정이 개입하지 않도록 조심하지만, 감정 조절이 어려운 순간도 많다. 아들을 위해 짜다 만 어머니의 스웨터, 한 청년이 남긴 여행용 캐리어, 태어난 지 100일 만에 하늘나라로 간 아기의 유모차까지. 그는 일을 하다 말고 주저앉아 펑펑 울 때도 있다고 한다.
반대로 저자는 가족 간에 분쟁이 생기거나 고인의 존엄이 지켜지지 않는 등, 준비되지 못한 죽음의 현장도 마주했다. 이에 그는 죽음을 생각해보고, 가족들과 죽음 이후에 대해 얘기해볼 것을 당부한다.
◇절대지식 치매 백과사전(홍경환·스마트비즈니스)
10년 동안 알츠하이머를 앓는 아버지를 간호해온 저자는 치매 가족들과 교류하면서 ‘눈높이 치매 교육’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특히 그는 치매 환자는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가족들이 치매에 대한 상식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1일 1페이지 법의 역사(이염, 권필·시대의창)
‘법의 역사’에 관한 207가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한국사와 세계사, 동서양을 넘나들며 역사의 주요 사건과 법적 주목 지점을 대중적으로 풀어냈다. ‘민주주의를 위한 피, 땀, 눈물의 집결체’라고 할 수 있는 법을 재밌게 이해할 수 있다.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마리야 이바시키나·책읽는곰)
책에 소개된 17개국의 71개 단어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나타낸다. 영어 ‘히라이스’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에 대한 그리움을, 네덜란드어 ‘헤젤리흐’는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주는 고양감을 의미한다.
●Stage
◇햄릿
일정 7월 13일 ~ 8월 13일
장소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연출 손진책
출연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유인촌, 윤석화, 손봉숙, 권성덕, 박건형, 강필석, 박지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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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연극 ‘햄릿’이 한층 젊어져 돌아온다. 연극계의 대배우들과 젊고 유망한 배우들이 함께하며 축제와도 같은 무대를 펼칠 예정이다. 이번 ‘햄릿’에는 한국 연극계의 원로 9명(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유인촌, 윤석화, 손봉숙, 권성덕)이 출연한다. 이들은 2016년 이해랑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 공연 ‘햄릿’ 무대에 오른 주역들이다.
선배 라인의 배우들은 이전 공연과 달리 주연 자리에서 물러나 클로디어스부터 유령, 무덤파기, 배우 1~4 등 작품 곳곳에서 조연과 앙상블로 참여한다. 햄릿, 오필리어, 레어티즈, 호레이쇼 등은 강필석, 박지연, 박건형, 김수현, 김명기, 이호철 등 젊은 배우들이 연기한다. 선후배가 화합하며 만들 무대가 기대를 모은다.
‘햄릿’은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10월 이해랑 선생의 연출로 대구에서 초연된 이래 현재까지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연극이다.
◇킹키부츠
일정 7월 20일 ~ 10월 23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제리 미첼
출연 이석훈, 김성규, 신재범, 최재림, 강홍석, 서경수, 김지우, 김환희, 나하나, 고창석 등
‘올여름, 더 뜨겁게 킹키하라!’ ‘드랙퀸’(여장남자 가수)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인기를 끌었던 화려한 뮤지컬 ‘킹키부츠’가 돌아온다. ‘킹키부츠’는 폐업 위기에 처한 수제화 공장이 남자가 신는 80cm 길이의 부츠인 ‘킹키부츠’를 만들어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이다. 2014년 국내 무대에 상륙한 후 2016년, 2018년, 2020년 무대에 오르며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이번이 다섯 번째 시즌으로 이석훈, 김성규, 최재림, 강홍석 등 기존 배우들이 다시 돌아와 기대를 더한다.
◇쓰릴 미
일정 7월 12일 ~ 10월 9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연출 이대웅
출연 이주순, 최재웅, 박상혁, 황휘, 윤재호, 김진욱
류정한, 김무열, 지창욱, 강하늘 등 많은 배우들이 거쳐간 뮤지컬 ‘쓰릴 미’가 올해 15주년을 맞았다. ‘쓰릴 미’는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뜨렸던 전대미문의 유괴 살인 사건을 다뤘다. 심리 게임을 방불케 하는 인물 간의 감정 묘사와 한 대의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음악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아온 ‘쓰릴 미’는 소극장 뮤지컬의 신화로 불린다. 올해도 지난해에 이어 2007년 초연 극장이었던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을 올린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미국은퇴자협회(AARP)는 영화 ‘기생충’,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 등을 일컬으며 세계 시장 속 한국 문화의 인기와 성공에 대해 언급했다. 아울러 ‘어른들을 위한 TV’(TV for Grownups) 코너에 아래의 한국 작품 10선을 소개했다. 해당 작품들은 넥플리스 또는 애플TV 스트리밍 서비스로 시청 가능하다.
[1] 오징어 게임(Squid Game)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이들이 목숨을 걸고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한국 시니어들이 어린 시절 했을 법한 구슬치기, 설탕뽑기, 줄다리기 등을 게임의 소재로 삼아 해외에서도 패러디를 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2] 응답하라 1988(Reply 1988)
1988년 서울 쌍문동을 배경으로 다섯 명의 친구와 가족들의 일화를 그린 가슴 따뜻한 코미디 물로, 한국 중장년들의 추억을 회상케 한다. 미국 드라마 ‘원더 이어스’, ‘골드버그’처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선호한다면 추천한다.
[3] 스카이 캐슬(Sky Castle)
공개 당시 한국 케이블 TV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으로, 한국 상류층의 교육열과 물질주의 세계를 묘사한다. 자녀를 최고의 명문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부당한 전략을 이용하는 등 물불 가리지 않는 부모들의 행태를 풍자한다.
[4] 파친코(Pachinko)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꼽힌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한 거대한 가족 서사를 그린다. 영화 ‘미나리’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이 출연해 기대를 모았다. 고국을 떠나 생존과 번영을 꿈꾸는 한인 이민 가족 4대의 삶을 비춘다.
[5] 사랑의 불시착(Crash Landing on You)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중장년에게 추천하는 드라마다.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한 재벌2세 사업가 윤세리(손예진 분)와,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북한의 특급 장교 리정혁(현빈 분)의 로맨스를 다룬다.
[6] 킹덤(Kingdom)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한국 드라마로, 시즌 3까지 이어오며 양질의 한국산 좀비물로 손꼽히고 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불가사의한 역병과 싸워야하는 세자 이창(주지훈 분)과 그를 왕좌에서 끌어내리려는 잠재적 음모 등을 다룬 정치 좀비 스릴러다.
[7] 사이코지만 괜찮아(It’s Okay to Not Be Okay)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처럼 어두운 주제를 다룬 기발한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한다면 볼 만하다. 정신병원에서 일하는 간병인 문강태(김수현 분)와 반사회적 성격 장애를 가진 인기 동화 작가 고문영(서예지 분) 등 각자의 트라우마를 지닌 이들이 정서적 치유를 해나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8] 빈센조(Vincenzo)
드라마 ‘베터 콜 사울’과 같은 법률 장르를 좋아한다면 추천한다. 조직에서 배신당한 뒤 한국으로 오게 된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송중기 분)가 또 한국의 베테랑 변호사(전여빈 분)와 함께 악당들을 일망타진하는 이야기다.
[9] 슬기로운 의사생활(Hospital Playlist)
‘그레이 아나토미’나 ‘댓 씽 유 두’ 같은 장르를 좋아하는 이라면 재미있게 볼 만한 의학, 밴드 소재 결합 드라마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가슴 뭉클한 감동 스토리와 더불어 1999년 의대 입학 동기인 주인공들이 직접 연주하는 밴드 음악까지 감상할 수 있다.
[10] 푸른 바다의 전설(The Legend of the Blue Sea)
한국 최초의 야담집인 ‘어우야담’에 나오는 인어 전설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 수백 년에 걸쳐 평행하게 일어나는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멸종직전인 지구상 마지막 인어 심청(전지현 분)과 멘사 출신 천재 사기꾼 허준재(이민호 분)의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을 그린다.
기쁠 때는 노래의 멜로디가 들리고, 슬플 때는 노래의 가사가 들린다는 말이 있다. 음악을 듣는 건 어떤 마음을 느끼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1980~90년대 포크 밴드 ‘동물원’의 멤버로 활약했던 가수 김창기는 서정적인 노랫말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 그가 기타를 세심하게 매만지던 손으로 초크 대신 펜을 들고 음악과 삶에 관한 얘기를 독자에게 들려주고자 한다.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를 들어보렴.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대한민국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낭만’에 대해서 말하려고 했을 때, 1순위로 떠오르는 가수가 있다면 바로 ‘최백호’가 아닐까? 한국의 대표적인 낭만 가객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의 곡 ‘낭만에 대하여’는 여전히 대중에게 각인되고 있다. 요새도 애창곡으로 주저 없이 이 노래를 꼽는 중년들이 많을 것이다. 가수 본인 역시 이 곡을 자신의 인생곡으로 꼽았다.
당시 그는 설거지하는 아내를 보며 어딘가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을 자신의 첫사랑을 떠올리고 곡을 썼다고 한다. 그가 제일 처음으로 떠올린 가사가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였다. 우연히 김수현 작가도 이 가사 한 줄에 반해서 그의 노래를 KBS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에 삽입했는데, 그것이 선풍적인 인기의 촉매제가 됐다. 단 한 줄의 가사는 시작을 만들었고, 그 시작의 한 줄은 그에게 또 다른 인기를 안겨다줬다. 한마디로 낭만과 낭만의 만남이라고 해야 할까?
주인공의 놀이
얼마 전 오랜만에 친구와 소주를 한잔 마셨는데, 괴로운 일이 있던 친구가 2차를 가자며 졸랐다. 2차는 젊은 시절의 추억에 젖을 수 있는 음악이 흐르는 곳에서 맛있는 술을 음미하자고 했다. 술 대신 노래에 취하고 싶다는 친구는 “오늘의 기분은 낭만적인 노래로 잊고 싶어!”라고 말했다. 친구의 말 때문에 집에 가고 싶었던 마음을 고스란히 접고, 그날은 함께 근사한 음악을 듣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려다 그냥 비를 맞으며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흥얼거렸다. 고된 하루의 끝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 색소폰 소리로 달래고 있을 때, 새빨간 립스틱의 마담이 유혹적인 저음으로 “사장님 참 멋져요!”라고 속삭인다면 어떨까? 친구가 원하는 낭만은 그런 것일까? 겉은 구질구질해 보이는 50대 후반이어도 속은 아직도 멋있고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느끼고 싶은.
낭만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일종의 방파제다. 일상은 종종 무의미하고, 삶은 식은 돼지 간처럼 퍽퍽하다. 하지만 누구나 삶을 잘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가혹한 현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낭만을 이용한다. 본인 주위를 둘러싼 것들을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파악할 때 경험하는 감미로운 분위기와 기분이 바로 ‘낭만’이다. 객관적 논리에서 조금 벗어나 느끼고 싶은 대로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을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만들 때 낭만을 느끼게 된다.
낭만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하나는 바로 ‘주인공 서사’다. 불만스러운 삶을 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서사다. 물론 현실을 외면하거나 왜곡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정도의 자기기만으로 현실감을 잃지 않을 만큼 부풀려진 삶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을 영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 삶의 무료함을 달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발적인 놀이’다. 모두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 빈틈을 채워주는 자신만의 놀이가 낭만이다. 자발적인 놀이는 재미와 더불어 자부심을 가져다준다. 모두에게 인정받을 필요 없는, 오롯이 자신을 위한 놀이다. 또한 호기심, 창의력 등을 바탕으로 공부하고 노력할수록 낭만의 재미는 더욱 커진다.
삶은 놀이가 필요하다. 니체는 놀이에 열중하는 진지함을 발견할 때 비로소 성숙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낭만과 같은 자발적인 놀이는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더 나아가 조금 더 성숙한 어른으로 거듭날 기회를 우리에게 부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낭만에 열중한다는 건 그만큼 삶을 잘 가꾸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가끔은 잊었던 낭만을 즐길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다.
낭만에 대하여 - 최백호
색소폰 연주자 에이스 캐논(Ace Cannon)의 ‘로라’(Laura)가 흘러나오는 다방에 자주 갔던 최백호의 경험이 담겨 있는 곡이다. 심금을 울리는 가사와 애절하고 허스키한 그의 목소리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실제로 당시 35만 장의 판매 기록을 세우면서 그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당시엔 40대 가수가 큰 히트를 기록하기 어려웠던 만큼 그 의미가 더욱 컸다. 사실 이 곡은 발매 당시엔 인기가 없었다. 하루에 평균 한 장도 안 팔리던 앨범이었는데, 작가 김수현의 KBS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에 출연한 장용이 이 곡을 부르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최백호는 ‘낭만 전도사’란 별명이 생겼다.
숨 고르기가 필요할 때다. 막연하게 이 시절이 지나가기만 기다리고 있기에는 투명한 햇빛이 너무 눈부시다. 팍팍한 일상에 느낌이 있는 시간이 언제였나. 마음을 채우고 자신을 살펴주는 일을 잠깐 잊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 지도 중심부에 자리 잡은 교육의 도시 청주, 수도권은 물론이고 전국 어디서든 교통과 지리적 접근성이 좋아 하루쯤 후딱 달려가 볼 수 있는 예쁘고 단아한 도시, 무심한 듯 알찬 쉼과 여유로움이 가능하다.
도시지만 시끌벅적하지 않아서 좋다. 한가한 한낮이라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귀하게 시간을 누려야 하지 않을까.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 과천, 덕수궁, 청주 이렇게 네 곳에 있다. 한때 연초제조창이었던 넓은 부지를 2018년 12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으로 오픈했다. 예전의 담배공장이 그 모습을 뒤로하고 이렇게나 멋진 미술관으로 탈바꿈하다니 놀라울 수밖에. 국내 최초의 수장형 미술관이다.
총 5개 층으로 구성된 전시관을 보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주말엔 현장에서 수시 입장도 가능하지만 인원 제한이 있다. 그렇지만 여기선 기다리는 시간도 즐거움이다. 모던한 미술관 앞의 넓은 잔디광장을 거닐거나, 벤치에 앉아 바람과 햇살의 평온함을 누리는 것도 이곳에서는 특별하다. 잔디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에게 미술관은 재미있는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미술관 옆으로 이어진 건물에 핫한 초대형 베이커리 카페가 있어서 잔디광장을 내다보며 느긋하게 맛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소통하는 수장고,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미술관은 5층 기획전시실, 4층 특별 수장고(미술은행 소장품), 3층 개방 수장고 및 라키비움, 보존처리실, 2층 보이는 수장고 및 관람객 쉼터, 1층 로비 및 수장고, 프로젝트 영상, 아트존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미술관의 소장품을 보관하는 비밀스러운 공간인 수장고, 그곳에 관람객이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도록 공개하여 ‘개방’과 ‘소통’을 위한 ‘열린’ 미술관을 지향한다. 덕분에 백남준, 이중섭, 배병우, 김세중, 니키 드 생팔 등 뛰어난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엄청난 예술 작품들의 위용에 압도되어 처음에는 마구 흥분된다. 미술관을 충분히 둘러보고 나면 상상력을 자극받고 알 수 없는 위로와 풍성함으로 뿌듯해진다. 평일 한낮에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도심에 이렇듯 품격 있는 미술관을 품고 있는 청주 시민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입장료가 무려 무료다.)
미술관 바로 옆으로 나가면 1960~70년대 한국 산업화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는 옛 청주 연초제조창의 담뱃잎 보관 창고였던 7개 동이 시민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한 동부창고다. 그 시절 청주와 인근에 사는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졌던 청주의 대표적 산업체였다. 이제는 보존 가치가 높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시민들에게 열려 있는 문화 공간이다. 그 뒤편의 미로처럼 경사진 골목으로 올라가면 드라마 촬영지로 SNS에서 유명세를 치렀던 청주의 마지막 달동네 벽화마을 수암골이다.
그들과 함께한 역사, 무심천과 상당산성
청주를 감싸고 있는 상당산성으로 가는 길에 도심을 동서로 구분하는 예쁜 물길 무심천에서 문득 브레이크를 밟는다. ‘마음을 비운다’는 뜻의 무심천은 봄이면 벚꽃이 눈부시고, 시민들의 산책로이자 휴식처이기도 하다. 언젠가 이곳 출신인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속에서 청주 무심천을 건너는 풍경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청주를 품고 있는 상당산성 앞에 서면 길게 이어지는 성벽과 함께 계절의 푸르름에 가슴이 뻥 뚫린다. 백제 시대 방어 시설로 처음 축성되어 조선 시대에 개축된 상당산성은 면적 12.6ha, 둘레 4,400m, 높이 4.7m, 사적 제212호다.
산성마다 나름의 역사나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이 길은 과거 영호남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목이었다고 한다. 역시 드라마 ‘태왕사신기’가 자연스러웠던 풍경이다. 그 견고한 성벽길을 걸어보자. 완만한 4km 순환형 둘레길이어서 아이를 데리고 천천히 걸어도 좋고, 가벼운 트레킹 코스로도 더할 나위 없다. 이 길을 걸으며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풍경이 청주를 알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분명 도심 속의 산길인데도 확실히 도심을 벗어났다는 기분이 든다. 걷기에 따라 1~2시간 정도 길이다. 지난 4월엔 이달의 추천길로 선정되었다.
자연 속으로, 운보의 집
이제 나들이하듯 가까운 근교로 잠깐 나가본다. 청주 시내에서 자동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운보의 집’이 있다. 동양화가 운보 김기창 화백은 어릴 적 장티푸스로 인한 고열로 청각을 상실했지만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화가로서의 역량을 나타냈다. 특히 아내 박래현 화가와의 러브스토리는 전설적이다.
운보의 집이 위치한 청원구 내수읍은 김기창 화백 어머님의 고향이다. 마음의 고향 같은 이곳에 정착하여 노후를 보냈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품 활동에 전념했던 곳이다. 전통 한옥으로 안채와 행랑채, 비단잉어가 노니는 연못에 정자와 돌담이 운치 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미국 대사관 건물이었던 곳이기도 하다.
아내 우향 박래현 화가의 작품이 함께 전시된 산 아래 운보미술관은 규모가 제법 크다. 미술관을 둘러싼 야외 정원의 조각 작품이나 수석은 자연 속에서 품격을 더한다. 멋스러운 문화예술 공간이다. 부부인 듯 점잖은 커플이 뒷짐 지고 작품에 몰두하는 모습을 본다. 두 분의 뒷모습이 여유롭고 아름답다. 그들을 앞지르기 조심스러워 그림 앞에서 한참씩 걸음을 멈추곤 했다. 비로소 주변을 바라보고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예술가의 작품에서 따뜻한 위로를 선물받는 기분이다.
100년 전의 옛 청주역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는 청주에 청주역이 있었다. 청주시청 부근의 옛 청주역이 ‘옛 청주역사공원’으로 복원된 것이다. 도심 속의 일반적인 공원이 아닌 철도공원이다. 기차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설렘이 생긴다. 교육도시 청주답게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기차역으로 달려오는 풍경이 와락 연상된다.
아담한 역사(驛舍)가 자그마한 옛날 국민학교를 연상케 한다. 민트 색감의 창틀이 옛 느낌을 더한다. 주변 풍경마저 옛 건물들로 즐비하다. 문이 닫힌 시간에 들렀기에 청주의 역사와 과거의 모습이 전시된 내부는 보지 못했지만 옛 청주역의 바깥 풍경만으로도 시간여행을 한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역 광장에 서니 추억의 흑백 필름이 휙휙 지나간다. 어쩐지 가슴 뭉클하는 순간이다.
고품격의 전시, 청주고인쇄박물관
문화도시 청주다. 예향(藝鄕)이라 할 만큼 문화자원이 풍부하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많다. 또한 20년 넘도록 비엔날레를 개최하고 있다. 숲으로 둘러싸인 고인쇄박물관을 빠뜨릴 수 없다. 1377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간행한 고장이다. 독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78년이나 앞섰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기억해야 할 긍지다.
청주고인쇄박물관, 흥덕사지, 금속활자 전수교육관을 순서대로 돌아보면 된다. 본관의 1, 2, 3관과 쉼터, 홍보영상실. 귀중한 소장 자료가 전시되어 있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위대한 역사의 순간을 느껴볼 수 있다. 금속활자부터 목활자까지 변천사와 ‘직지심체요절’이 지니는 깊은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고려 공민왕 시절에 세워진 직지의 요람인 흥덕사, 인쇄 문화의 이해를 높이는 금속활자 전수교육관이 함께 있어서 차례대로 둘러보며 직지의 위상을 비로소 깨닫는 시간은 소중하다. (2001년 9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아직도 둘러볼 곳이 많은 청주다. 미호천변의 성곽 정북동 토성은 요즘 일몰 때 멋진 실루엣을 찍기 위해 사진가들이 찾아든다. 템플스테이와 석가모니 진신사리로 유명한 사찰 용화사, 역대 대통령들의 여름 휴가지이자 대청호반의 산책로 청남대, 로하스 해피로드 대청호 오백리길,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 마무리와 안질 치료를 위해 머물렀다는 초정행궁(椒井行宮), 청주 역사의 산증인 성안길, 청주만의 맛집 삼겹살거리, 사람 냄새 물씬한 전통시장 육거리시장, 점점 핫해지는 감성 가득한 운리단길… 곳곳이 감성 넘치는 핫 스폿이다.
잠깐 두리번거리면 보물찾기처럼 다가갈 곳이 나타났다. 시종일관 흥미롭고 은근히 끌렸다. 마음도 말랑해지고 행복지수도 높아진다. 기댈 곳 없어 혼자 우두커니 서성일 때 어쩌다 하루쯤 떠났다가 결핍을 채우고 흐뭇하게 돌아올 수 있다. 이곳 청주 출신 도종환 시인이 그의 시 ‘동행’에서 말했듯 ‘먼 길 가다 만난 나무처럼 / 지친 몸 기대게 해줄 푸른 그늘 있다면’ 그럴 때 떠올려보는 곳, 맑은 고을 청주.
청춘의 덫 (김수현 저·솔출판사)
한국 드라마의 거장 김수현 작가의 대표작 '청춘의 덫' 대본집. 작가만의 섬세하고 긴장감 있는 대사를 있는 그대로 살려 작중 인물의 심리를 보다 깊고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최고의 당뇨 밥상 (마켓온오프 저·리스컴)
한 상 차림, 브런치, 샐러드 등 맛있게 먹으면서 당뇨를 관리할 수 있는 여러 메뉴를 소개한다. 생활 속 당뇨 관리법과 당뇨에 대한 오해 등 관련 정보도 꼼꼼하게 실었다.
시민과학자, 새를 관찰하다 (조병범 저·자연과 생태)
평범한 직장인의 새 관찰기. 출근길에 우연히 본 흰뺨검둥오리 가족에게 마음을 뺏긴 이후 '시민과학자'가 됐다. 새 100여 종에 관한 기록이 저자만의 개성 있는 언어로 담겨있다.
장에 가자 (정영신 저·이숲)
사진작가 정영신이 34년간 전국의 시골 장터를 다니며 취재한 내용을 담는다. 역사, 위인, 특산물 등 7가지 주제를 통해 전국 22개 장터와 각 지역 문화유적을 돌아본다.
애도의 문장들 (김이경 저·서해문집)
5년 전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한 저자가 아버지를 애도하고 기리는 과정을 풀어나간다. 저자는 '죽음 공부'를 통해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담담하게 해소해나간다.
스토리가 있는 풍경 수채화 (한은미 저·아이콘북스)
흔한 자연 풍경 대신 개성 있고 인상적인 집을 소재로 한 수채화를 소개한다. 혼자서도 쉽게 그릴 수 있도록 스케치부터 마무리까지 전 과정에 대한 노하우를 자세히 전달한다.
한강변의 노른자위 땅 ‘마용성’(마포·용산·성동) 중 한 곳인 성동구. 그리고 성동구의 중심지가 된 ‘성수동’. 서울숲공원과 최고급 주상복합단지 호재에 강남 접근성까지 갖춘 성수동 상권의 성장 가능성은 여전히 높을까.
서울 성동구 성수동은 작은 골목에 공장들과 자동차공업사들이 들어선 준공업지역이다. 하지만 서울숲공원이 인접한 데다 강남 접근성이 좋고 지하철 2호선(뚝섬역·성수역)과 분당선(서울숲역)이 지나는 더블역세권이라는 장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 최고급 주상복합건물의 등장과 기존 수제화거리, 카페거리, 갈비골목으로 몰리는 수요를 등에 업고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요인만 있는 건 아니다. 아파트 층수를 35층으로 제한한 정부 규제와 치솟는 임대료는 꼼꼼하게 따져봐야 할 부분이다. 또 새로운 상권이 기존 상권을 몰아내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부작용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높다지만 실제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 성수동을 찾아봤다.
예술과 문화가 있는 ‘성수동’
1970년대부터 주택단지가 형성된 성수동은 현재 도로 폭과 주차 등이 열악한 편이지만 동서남북으로 골목이 정돈돼 실용적이며 편안한 느낌을 준다. 교육재단 등이 공익문화사업에 기여하고 있으며 혁신을 거듭하는 창의적인 젊은이들의 사회적기업이 정착했다. 유명 영화사와 스튜디오, 갤러리, 디자인, 공방 등 문화공간이 들어오면서 예술적 가치를 품었다. 길을 따라 상권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며 지역 전체(Sector)가 예술문화지역(Zone)로 변모하는 형태라 다른 지역과 확연히 구별된다.
특히 서울숲공원은 면적 43만 ㎡에서 60만 ㎡로 40% 정도 확장될 전망이라 주목할 만하다. 서울시는 삼표레미콘 공장 부지에 중랑천 둔치와 이어지는 수변문화공원을 조성하고 인근에 위치한 승마장터와 뚝섬유수지는 생태숲 등 자연녹지로 꾸밀 예정이다. 삼표레미콘 공장 이전이 2022년 6월까지 진행되는 만큼 가능한 구역부터 단계적으로 확충할 계획이다. 또 이 지역은 압구정 청담동 등 강남 업무 중심지를 마주하고 있다. 또 지하철을 이용하면 분당선 서울숲역에서 5정거장 거리에 선릉역이 있고 2호선 뚝섬역이나 성수역에서 5~6정거장 거리에 잠실역이 있어 앞으로 더욱 진화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성수동=부촌’으로 거듭나다
성공한 사업가나 연예인 등 유명인이 꼬마빌딩이나 아파트를 사들이는 것도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미스지콜렉션의 패션디자이너 지춘희와 가수 지코, 배우 권상우, 이시영 등이 성수동에 위치한 빌딩을 매입했다. 분양가가 40억 원이 넘어 화제가 된 갤러리아포레는 배우 김수현과 유아인, 가수 지드래곤 등이 거주하고, 204㎡가 33억 원 정도 하는 트리마제에는 가수 써니와 김재중, 김희철 등 유명 연예인이 살고 있어 ‘성수동=부촌’ 이미지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최고급 주상복합단지의 등장은 확실한 호재로 나타났다. 한강이 보이는 지상 45층, 230가구 규모의 갤러리아포레와 지상 47층, 76가구 규모의 트리마제는 현재 서울시의 일반 주거지역이 35층으로 제한된 상황에서 오히려 혜택을 본 경우다. 갤러리아포레와 트리마제뿐만이 아니다. 앞으로 지상 49층, 280가구 규모의 아크로서울포레스트가 2021년 입주를 시작한다. 또 지상 49층, 340가구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와 5성급 호텔 1개 동을 짓고 있다. 초고층은 아니지만 지상 20층, 292가구 규모로 재건축할 예정인 장미아파트도 지역 발전에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지식산업센터와 동반성장 중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면서 상업시설도 덩달아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시가 성수동 일대를 지식산업센터 등 정보기술(IT) 산업개발진흥지구로 지정하면서 첨단산업을 비롯해 스타트업 기업들의 입주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덕분에 인근 뚝섬 상업시설과 성수지구 전략정비사업 등의 개발호재도 갖춰 성수동의 가치가 높아질 전망이다.
현재 성수동에는 코오롱디지털타워, 한라시그마밸리 등이 있으며 앞으로 프리미엄 첨단 지식산업센터 ‘성수동 선명스퀘어’가 들어설 예정이다. 지식산업센터는 IT 관련 산업을 기반으로 한 일종의 아파트형 공장이다. 일반적으로 지식산업센터 한 곳이 들어서면 최고 1000명 이상의 임직원이 상주하게 돼 인근 상권에 호재로 작용한다.
임대료 상승이 가파른 이유는?
다만 성수동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가치를 판단하고 접근해야 한다. 이 지역이 임대료 상승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주택이나 상가의 임대인은 월세를 더 올려주겠다는 임차인들의 제안에 스스로 차임을 올렸고, 뜬다는 지역을 잘 아는 건물의 매입자는 소위 뜬 지역의 임대료 기준을 그대로 적용했다. 게다가 주변 임대인들도 덩달아 임대료를 높게 책정하는 비정상적이고 복잡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시설비, 영업비 등 권리금도 문제다. 테이크아웃, 커피, 디저트, 공방 등을 차린 임차인들은 나중에 권리금 등이 상승해 큰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어 가격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성수동은 젠트리피케이션 부작용을 앓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본래 낙후된 지역에 새로운 문화 또는 상권이 생기며 지역 경기가 활성화되는 현상인데, 이로 인해 지역의 임대료가 상승하면서 기존 자영업자들의 ‘둥지 내몰림’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수제화거리 떠나는 ‘구두 장인’
성수동의 수제화거리는 과거엔 외부인의 왕래가 뜸한 지역이었지만 현재는 많은 사람이 오가는 핫플레이스로 변신했다. 교통편도 좋고 먹거리도 두루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 지역은 임대료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기존 점포의 이탈을 초래하고 있다. 보증금과 월세, 특히 권리금이 오르면서 몇몇 수제화 점포가 부담을 견디지 못해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가고 있는 상황.
A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아직은 수제화 점포가 많이 남아 있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면 부담에 치인 점포들이 빠져나가 수제화거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수제화거리는 5년 전, 33㎡ 기준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100만 원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120만 원 수준으로 상승했다. 특히 권리금이 많이 올랐다. 5년 전에는 1500만 원 수준이었는데 현재는 4000만 원 정도가 보통이고 많게는 5000만~7000만 원 하는 곳도 있다.
폐공장으로 번진 ‘권리금’ 진통
카페거리도 마찬가지다. 이 지역의 카페는 폐공장과 창고였기 때문에
5년 전만 해도 권리금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곳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B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아주 가끔 권리금이 없는 곳이 나오긴 하지만 곧바로 임차인이 나타나기 때문에 구하기가 어렵다”며 “보증금과 임대료도 수제화거리처럼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이 오른 상태”라고 말했다.
카페거리는 젊은 예술가들이 문을 닫은 공장이나 창고를 활용해 만든 새로운 공간이다. 대표적으로 대림창고가 꼽힌다. 공연과 전시회를 여는 등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고 있는 공간이다. 이외에도 폐공장과 창고를 활용한 색다른 카페가 많아 외부인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다.
상가정보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성수동 카페거리 일평균 유동인구는 9만6492명으로 월평균 약 300만 명이 성수동 카페거리를 찾는다. 같은 시기 카페거리의 평균 매출은 3113만 원. 유사 업종 11월 평균 매출 2155만 원에 비해 958만 원가량 더 많은 셈이다.
수요 몰리자 갈비골목도 ‘시끌’
갈비골목도 임대료 상승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 갈비골목은 1980년대부터 인기를 끈 먹자골목이다. 한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기도 했지만 서울숲공원과 최고급 주상복합단지가 들어서면서 다시 몰리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미국에서 넘어온 커피전문점 블루보틀 1호점과 아모레퍼시픽의 체험공간인 ‘아모레성수’가 들어서면서 20~30대 수요까지 끌어안았다.
하지만 이곳 역시 수제화거리나 카페거리와 다르지 않았다. C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지난해 59㎡ 갈비가게 점포가 보증금 6000만 원에 월세 500만 원 수준이었는데 요즘엔 물건이 별로 없다”며 “게다가 권리금은 내부 시설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많게는 1억 원을 호가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성수동은 몇 년 전부터 뜨는 상권으로 소문이 나서 보증금과 월세, 권리금이 많이 올랐다. 확실히 예전보다는 더 큰 부담을 안고 들어가야 할 지역이다. 하지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여전히 성수동의 전망을 밝게 보고 있다.
양지영 R&C 연구소장은 “성수동은 여전히 성장 가능성을 품고 있는 상권”이라며 “일시적인 가격 상승 등의 요인이 있지만 지식산업센터와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 등이 계속 들어서면서 나타나는 유동인구 증가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말 저녁, 나른하게 소파에 기대어 드라마를 보다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저 배우가 엄청 즐기고 있구나! 한참 나이 어린 배역에게 ‘아버지’나 ‘오빠’를 연발했다. 심심하면 욕설에 머리채를 끄잡는데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명희야, 원혁이 번호 땄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106부작의 마지막 대사도 그녀 몫이었다. 지금까지 드라마 속에서 무던하게 녹아 있던 그녀. 이번만은 달랐다. 지난 3월 종영한 KBS2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에서 귀여운(?) 치매 환자 박금병 역으로 사랑받은 배우 정재순(鄭在順·72)을 두고 하는 소리다.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그녀를 마주보는 순간 멈칫했다.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블랑쉬가 나른하면서도 우아하게 무대로 걸어오는 모습이 연상됐기 때문이다. 팔랑팔랑 손을 흔들면서 명희 뒤만 졸졸 쫓아다니던 박병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사진 촬영을 하는 내내 정숙하고 단아한 모습을 잃지 않는 배우 정재순. 캐릭터 변신이라고 생각할 만큼 남다른 연기를 보여줬던 ‘하나뿐인 내편’이 그녀 인생에 있어 대단한 도전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맨 처음 배역과 관련해 얘기를 들었을 때 극중에서 치매가 그렇게 큰 소재는 아니었어요. 그냥 약간 병세가 있다 하는 정도였죠. 그동안 치매 앓는 역은 안 해봤는데 어떡하지? 그래도 이 나이 먹어서 한 번쯤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모르겠다! 해보자! 그랬던 거죠.”
새 드라마를 시작하면 늘 하던 대로 마음먹었을 뿐인데 시청자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치매 증상이 심해져 극중 손주며느리 도란(유이 역)을 친구 ‘명희’로, 그의 아버지(최수종 역)를 ‘강기사 오빠’로 부르면 부를수록, 며느리(차화연 역)와 둘째 손주며느리(윤진이 역)에게 욕을 하면 할수록,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제가 극중에서 욕할 때 사람들이 참 찰지다고 그러대요? 제가 나쁜 년, 첩년 하고 말할 때요. 저도 상상 못했고 작가님도 이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야기 전개를 하다 보니 여건이 잘 맞아떨어진 거죠. 그런데 자꾸 촬영 분량이 많아지더라고요.(웃음)”
말 그대로 배우 정재순의 재발견이었다. 올해로 데뷔 51년 차. 지적이고 차가운 이미지로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거목과도 같은 중견배우였다. 긴 세월 각인되어온 이미지를 깨고 새로운 캐릭터를 완성해냈으니 박금병이 더욱 사랑받았던 것은 아닐까. 정재순은 딴생각 안 하고 배역을 즐겼다고 했다.
“재미있었어요. 왜냐하면 치매 환자라는 배역 설정 때문에 오만 가지를 다 해봤거든요. 그동안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연기도 해보고요. 배우로서도 찾기 힘든 캐릭터였어요. 카타르시스도 느꼈고요. 특히 머리끄덩이를 있는 대로 낚아채잖아요.(웃음)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었는데 하다 보니까 요령이 생기더군요. 치매 증세가 나올 때 특히 나쁜 사람들에게 바른 소리도 마음껏 하고 말이죠.”
극중 박금병의 인기는 인터넷을 치면 확인된다. 정재순의 이름을 검색창에 치면 드라마에서 착장한 귀걸이며 사용한 안경테, 옷 등의 브랜드를 알 수 있을 정도.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젊은 시절을 주로 기억하는 치매이다 보니 빨간 립스틱에 화려한 색감의 옷도 입고, 짧은 점퍼에 토끼 머리띠는 물론 시니어에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미니크로스백도 수차례 바꿔 멨다. 70을 훌쩍 넘긴 나이에 후배 연기자들에게 애교 부리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했다.
“도무지 모르겠어요. ‘하나뿐인 내편’에 출연하면서 귀엽다, 예쁘다는 말을 평생 들어도 차고 넘칠 만큼 들었어요. 귀엽대요. 제가요. 저는 원래 재미없는 사람인데요.(웃음) 배우는 정말 좋은 직업이에요. 순간순간 다른 인생을 살기 때문에 내 삶에도 도움이 되고요.”
그렇다고 그녀가 박금병 같은 강한 캐릭터 연기를 처음 해본 것은 아니다. KBS1 드라마 ‘하늘만큼 땅만큼’에서는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한 새엄마 역할을 했고, SBS 드라마 ‘그래 그런거야’에서는 배우 송승환과 연상연하 부부로 연기한 적 있다. 스스로 놀랄 정도로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 중 박금병이 인기나 화제성에서 단연 으뜸이다. 그녀는 최근 드라마와 캐릭터의 인기에 힘입어 KBS2 예능 프로그램인 ‘해피투게더’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예능 프로그램에는 살면서 처음 나가봤어요. 우리 집안에 예능 PD가 있는데 출연 제의가 와도 안 나간다고 했거든요. 매니저 등쌀에 못 이겨 결국 나갔네요. 유재석 씨가 능력자더라고요. 나같이 재미없는 사람 앉혀놓고 잘 이끌더군요. 그날 ‘해피투게더’가 자체 최고 시청률을 찍었다 하더라고요.”
데뷔 51년 차, 나를 돌아보다
스타 탄생 비화에 종종 등장하는 스토리. 정재순도 친구 따라 탤런트 시험에 응시했다가 얼떨결에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1968년 TBC
8기 공채 탤런트로 합격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미술대학교 지원도 못하게 했는데 탤런트를 하겠다니, 부모님은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지원군이 정재순 옆에 있었다. “저는 그때 대학 재수를 하면서 군대 간 남자친구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반대가 심해서 집에서 쫓겨나기도 했는데 당시 남자친구였던 제 남편의 부모님이 제가 탤런트 된 걸 너무 좋아하셨어요. 밀어줬다기보다는 ‘괜찮다’ 이 정도요? 그때 시어머니께서 하셨던 말씀이 기억나요. ‘시댁에서 바람날 여자는 안방에 앉혀놔도 막을 수 없다.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힘과 용기를 내 방송사에 갔는데 세상에 아유…. 막상 닥쳐보니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끼도 없더라고요.”
간단히 말해 얼굴이 예뻐서 합격한 케이스였다.
“괜찮은 여자 탤런트가 들어왔다고 방송사에 소문은 났는데 연기를 시켜도 뭘 할 줄도 모르고 꿔다놓은 보릿자루였거든요. 야외 촬영은 너무 싫었어요. 스튜디오 촬영은 얼마든지 했고요. 사람들이 와서 지켜보고 있으면 불편하고 힘들었는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까 박금병이 같은 역할도 하고. 약간 뻔뻔해졌다고나 할까?”
어찌어찌 하다 보니 세월이 그렇게 갔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연기자는 생각도 안 해본 직업이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뭘 잘 모르고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는 것 같아요. 그냥 군대 간 남자친구를 기다리면서 방송사를 다니던 시절도 있었어요.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흐른 거죠. 51년 동안 인정받을 만한 작품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는 너무 아쉬워요. 이번에 ‘하나뿐인 내편’은 기억에 남겠죠.”
기다림이 만들어 준 또 다른 이름 화가
남들이 기억하는 작품이 많은 것보다 오랜 시간 기복 없이 꾸준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만나온 것 자체가 더 대단한 결과가 아닐까?
“그렇죠. 감사한 일이죠. 그런데 연기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제가 선택하는 게 아니고 선택받는 직업이잖아요. 매년 꾸준하게 몇 작품씩 들어와야 하는데 들쭉날쭉했어요. 그래서 그 기다림의 시간을 채우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중고등학교 시절 그림대회에 나가 상도 많이 받아왔지만 부모님 반대로 포기해야만 했다. 결혼하고 나서도 그림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물감을 사 모으기도 했다.
“집에서 혼자 수채화를 그리다가 본격적으로 공부해볼 생각을 했어요. 처음에는 어린 시절의 은사를 찾아가서 배웠는데 체계적으로 공부해보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책도 찾아보고 공부도 하면서 미술공모전이 있으면 열심히 작품을 냈습니다. 미술계 유명한 공모전에는 거의 다 출품했던 것 같아요. 1991년에 첫 개인전을 할 때까지 응모했죠.”
그녀의 첫 개인전은 당대 히트작이었던 MBC 주말연속극 ‘배반의 장미’의 촬영 장소로도 쓰였다.
“극중에서 제 배역은 속 썩이는 남편을 둔 재벌가 며느리였어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캐릭터였는데 ‘배반의 장미’를 집필하신 김수현 선생님이 제가 전부터 그림을 그린다는 걸 알고 계셨어요. 극이 끝날 때쯤, 전시회가 있다는 걸 아시고 전시회 신(scene)을 만들어주셨어요. 그 드라마에 나왔던 전시회 장면은 제 개인전 모습이었어요. 정말 감사했죠. 어느 연기자가 그런 배려를 받을 수 있겠어요.”
화가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어느새 그녀는 미술계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기자로서의 삶과 화가로서의 삶은 그 성격이 판이했다.
“저는 연기와 그림을 병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림은 혼자서 작업해도 되지만 드라마는 40~50명이 같이 어우러져서 일하잖아요. 1996년도에 네 번째 전시회를 할 때 ‘나는 누구인가,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어요. 그때 한꺼번에 세 작품을 소화하는 중에 전시 스케줄까지 잡혔었거든요. 그 뒤 5년간은 드라마에만 집중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리고 다시 개인전을 연건 12년 만이었죠.”
요즘은 그림 활동을 안 하다시피 하니 화가 정재순이라는 말이 참으로 어색하다. 그래도 마음이 힘들던 시절에 자신을 위로해줬던 것은 그림이었다고 말했다.
“우리 시니어도 시간이 많다고 무료하게 지낼 게 아니라 취미 활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훨씬 좋을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자기를 위해서도 주변 사람을 위해서도 좋더라고요. 드라마를 하면서 힘든 게 얼마나 많았겠어요. 그래도 그 힘든 세월 동안 그림이 있었으니까 많이 위로를 받은 거죠. 그리고 또 드라마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도 보여드리고 있잖아요. 저는 행복한 사람이에요.”
그림은 항상 마음 깊은 곳에 있지만 혼자 하는 작업이다 보니 자꾸 소홀해지는 것을 느낀다. 긴장감도 떨어지고 말이다.
“옛날같이 체력이 안 따라줘요. 예전에는 드라마와 그림을 같이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쉽지 않아요. 저는 비구상화를 그려요. 마음이 캔버스에 드러나는 작업이기 때문에 어떤 것을 담아낼지 고민이 없으면 절대 그림을 그릴 수 없어요. 뭘 그릴까 계속해서 고민을 해도 작품이 나올까 말까예요. 누구도 함께할 수 없죠. 하지만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고민하고 스트레스받는 건 굉장히 행복하고 자유스러운 거예요.”
박금병이 때문에 김장도 못했다
한참을 드라마와 그림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여자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슬쩍 흘러갔다.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고 일을 하면서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고. 나긋하게 깔리던 목소리의 톤이 높아졌다.
“작년 말에 박금병이 역 하느라고 처음으로 김장을 못했어요. 살면서 거른 적이 없거든요. 매년 수산시장에서 젓갈이며 생선이며 사서 온 정성을 다해 담갔는데, 사이다처럼 톡 쏘는 맛이 별미인데 참 아쉽네. 이번에 대사도 많고 스케줄도 빡빡했거든요. 그런데 김장을 안 하니까 여기저기서 주셔서 김치가 되게 많아요. 그래도 박금병이도 잘되고 드라마도 잘돼서 좋습니다.”
인터뷰 초반에는 몰랐는데 살림이며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녀에게서 발랄한 목소리의 박금병이 느껴졌다. 이제 드라마도 끝났으니 다시 정재순으로 돌아올 시간. 가발을 벗고 단장을 했는데 영 어색하다며 머리를 매만진다.
“생각해보니 정식으로 할머니 역할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엄마였다가 자연스럽게 할머니가 되는 역은 많았는데. 거기다가 치매 환자 연기까지 했잖아요.”
매일이 새로운 연기자
제대로 연기했다는 만족감을 준 배역을 묻자 주저 없이 “이거. 박금병!”이라고 대답하는 정재순.
“저는 연기자를 그냥 직업이라고 생각했어요. 연기자로서 다른 삶을 연기할 때 충실하게 살려내려고 노력했어요. 직업 정신으로요.(웃음) 부족함도 많고 잘 모르니까 새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항상 새로웠던 거죠. 연기자로서의 욕심을 좀 부려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워요. 우선 성격 강한 박금병이랑 헤어졌으니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주어진 역할은 뭐든지 최선을 다하자는 게 제 원칙이니까 또 열심히 해야겠죠.”
앞으로 배우로서 바람이 있다면 카리스마 넘치는 회장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100세 시대잖아요. 시니어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치매 연기 같은 거 말고. 힘과 용기와 아름다움과 즐거운 취미활동 같은 것들을 전달해줄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화가로서 시간이 허락되면 내년쯤 전시회를 가져볼까 해요. 전시회 열면 초대할게요.”
인터뷰를 마치고 정재순이 곧바로 향한 곳은 ‘하나뿐인 내편’의 종방연 현장이었다. 플래시 세례 속을 ‘강기사 오빠’인 최수종 팔짱을 끼고 걷는 정재순을 인터넷 뉴스로 접했다. 데뷔 51년 만에 인생 배역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도 영원할 수 있었던 그녀만의 힘, 주어진 일에 대한 감사와 사랑이었다.
오디오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은 진공관 오디오를 위한 기술적 에세이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저자 오디오 장인 서병익은 13살에 처음 광석라디오를 제작하며 오디오 세계를 접했다. 그는 오디오 업계에서 직업인으로서의 삶을 보낸 후,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건 서병익오디오를 설립하여 오디오를 만들고 있다. 그의 오디오 제작 지론은 ‘대를 이어 물려줄 오디오를 제작한다’였다.
오디오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알려진 이름이었던 서병익이 대중에게도 알려질 수 있었던 계기는 드라마 를 통해서였다. 드라마에서 김수현이 연기한 도민준은 LP카페를 단골로 다니는 빈티지 마니아였다. 그리고 그의 방에 있었던 오디오 시스템이 바로 서병익오디오의 앰프와 스피커들이었다. 이후로도 서병익오디오의 오디오는 , , 등 여러 드라마와 영화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셀러브리티적인 면을 차치하고라도 서병익오디오가 국내 하이파이 오디오 업계에서 갖는 위치는 독자적이다. KT120 같은 새로운 진공관을 채용한 앰프, RIAA(미국레코드협회)가 표준을 제시한 1955년보다 이전에 나온 모노 음반들을 제대로 재생할 수 있는 포노앰프 등등의 특별한 모델들은 회로에서부터 자신만의 노하우로 설계가 가능하기에 만들 수 있는 서병익식 오디오의 기술적 강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철저한 기술인으로서 오디오에 대해 말한다는 점에서 자연인 서병익의 강점이 있다.
보다 좋은 소리, 좋은 음악과 함께 하길
기술집약적인 오디오 세계에서 어떤 사실은 기술자들끼리의 노하우로, 어떤 사실은 엉뚱하게 변형된 낭만적 풍문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출판사 필요한책(대표 유정훈)은 때로는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지만 때로는 황당하고 엉뚱한 수업료를 내게 만드는 오디오의 화두들에 대하여 제대로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침 오디오 장인 서병익 저자는 그러한 내용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동시에 사람들이 제대로 된 오디오의 원리와 결과를 알게 되어 보다 좋은 소리, 좋은 음악과 함께 하길 갈망하고 있다. 은 바로 그 목적을 위해 만들게 됐다.
필요한책에서 만든 은 50여 년 동안 오디오와 접했던 기술인의 입장에서 그동안 잘못 알려진 정보들을 바로잡고 더 나은 소리와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한 결과물이다. 그래서 다소 어려울 수도 있는 내용을 풀기 위해 에세이 형식을 취했으며 오디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자연스럽게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주제들을 위주로 구성했다. 그리고 주로 진공관 오디오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전반적인 오디오의 사정도 알 수 있게끔 돕는 책으로서 만들어졌다.
어렸을 적 TV에서 본 사람이 맞나 싶다. 기억 속 그는 리듬을 타는 정도의 율동과 함께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노래를 불렀다. 옆집 오빠면 딱 좋을 것 같았던 그가 오십이 넘어 대중 앞에 다시 나타났다. 중후한 매력을 내심 기대했지만 흥폭발은 기본이고 재치 넘치는 입담을 막기가 어려울 정도다. 1980년대 중반 ‘볼리비아發 염소 창법’으로 아이돌 인기를 구가했던 가수 임병수(林炳秀·57)를 만났다. 보다 더한 실제 상황 정글생활 달인 이야기도 있으니 기대하시라!
시대를 대표하던 아이콘, 다시 돌아오다
1980년대 중반 ‘아이스크림 사랑’, ‘사랑이란 말은 너무너무 흔해’ 등으로 소녀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가수 임병수. 그는 요즘 말로 강제 소환됐다는 표현으로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 잊혔던 그의 노래가 톱스타의 입을 타고 방송 전파를 탄 것. 제2의 전성기로 갈 기회가 찾아왔다.
“참 그게 운명인 것 같아요. (SBS)에서 배우 김수현씨가 제 노래 ‘약속’을 불렀어요. 그리고 (tvN)에서는 덕선이(혜리 분)와 동룡이(이동휘 분)가 ‘아이스크림 사랑’을 불렀어요. 이게 뭐지? 제 노래와 이름이 다시 나오니까요. 그때쯤 제 새 노래가 나오면 괜찮겠다고 생각은 했죠.”
밝은 웃음으로 마주한 임병수였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임병수의 목소리는 여전히 신선하고 특별했다. 타고난 음색에 볼리비아 교포 출신이라는 이국적 색채를 덧입히니 궁금증을 넘어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말 그대로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임병수가 딱 아이돌 스타였다.
“확 뜰 거라는 생각은 전혀 안 했죠. 가수 될 거라는 생각도, 되고 싶지도 않았어요. 깜짝 놀랐어요. 내가 노래를 좋아하고 큰 무대에 한 번 서면 좋겠다. 그렇게 막연한 꿈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여기까지 왔어요. 무명가수들한테 항상 미안한 이야기지만 저는 얼떨결에 가수가 된 거예요.”
아버지, 막내아들을 가수로 만들다
임병수가 아메리카 대륙을 떠나 고국에서 가수가 된 데에는 아버지의 강력한 추진력이 뒤따랐다.
“우리 아버지의 행복이 제가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는 거였어요. 사람들이 ‘막내, 노래 잘하네요’라고 하면 아주 좋아하시고요. 저도 음악을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축제 때 공연했던 뮤지컬 에서 주인공을 맡기도 했었거든요. 아버지는 그냥 제가 TV에 나오고 사람들이 손뼉 쳐주는 것까지만 생각하시고 한국으로 저를 보내신 것 같아요.”
뉴욕에서 대학 생활을 하고 있던 임병수에게 아버지는 LA에 사는 지인이 조만간 한국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 사람과 함께 한국으로 가서 가수가 되라는 것이 아버지의 권유였다. 임병수는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날아갔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했던가. 우여곡절 끝에 한국으로 들어왔고 임병수는 한 시대를 제대로 풍미한 가수가 됐다. 대단한 의지라기보다는 운명처럼 빨려 들어갔다. 딱 3년, 임병수의 쇼 타임. 조금은 짧았지만 말이다. 화려한 시간도 잠시. 대중 앞에 서는 시간이 줄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빠르게 변했다.
“84년, 85년, 86년에 제일 반짝거렸던 거죠. 그러니까 1집, 2집, 3집. ‘약속’, ‘아이스크림 사랑’, ‘난 어지러워요’로 활동했어요. 바쁘고 스케줄도 너무 많았는데 3년이 애매하게 그냥 지나갔어요. 왜 이렇게 됐을까 생각은 했죠. 연말 시상식을 보다가 문득 ‘내가 저기 있어야 하는데…’ 살짝 그런 생각도 했어요. 괴로웠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어요. 약간의 혼란스러움 정도였어요.”
그래도 스스로 질문을 던지곤 했다. 내가 계속 노래를 해야 하나? 그만둘까?
“내 기타랑 모든 카세트테이프, 레코드판 등등 음악이랑 관계되는 모든 것을 태우고 지나간 거 다 잊어버리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작 태워본 적은 없어요. 상상만 해봤죠(웃음).”
혹 생각처럼 모든 것을 태웠더라면 다시 사 모으기에 바빴을 거라고. 시대의 아이콘으로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인기 스타였지만 마음을 추스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단다.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다 인기가 떨어지면 순간 우울증에 걸리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연예인들이 있잖아요.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굉장히 편안하게 상황을 받아들인 것 같아요. 물론 몇 년은 이게 뭐지 했지만 죽을 만큼 괴롭지는 않았어요.”
눈에 띄는 활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꾸준하게 음반을 발표했고 본업인 가수로서의 삶과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사이 결혼도 했고, 장성한 딸이 있으며,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다양한 일을 접하며 살았다고. 지난 7월에는 ‘이름’이라는 신곡을 발표해 활발하게 팬들과 만나고 있다.
“10년 만에 신곡을 냈어요. 나름대로 많이 뛰어다니고 있어요. 트로트의 색깔이 있는 노래예요. 그런데 정통 트로트는 제가 아무리 불러도 그 맛이 안 나요. 트로트 같기는 한데 ‘어, 임병수가 부르니까 그냥 발라든데?’ 그런 분위기가 되는 것 같아요.”
나이와 인기를 좇아서 색깔을 바꾼 것 아니냐는 말들이 들리지만, 임병수의 생각은 다르다.
“10명보다는 100명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도 괜찮은 거 같아요. 진짜 나만의 색깔로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부를 기회가 생기는 거잖아요. 신곡도 부르고 제 히트곡도 부르려고요. 그리고 저는 또 라틴 음악으로 메들리도 준비해놓았습니다. 아무래도 그쪽 노래는 제가 부르는 게 훨씬 나을 거니까요(웃음).”
불모지 볼리비아를 개척하다
문득 이야기하다 보니 하고많은 나라 중에 왜 볼리비아로 이민을 갔는지 궁금해졌다. 외국을 나가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 볼리비아에서 날아온 청년은 신기할 따름이었다. 외국에서 왔다고 하니 부자려니 지레짐작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부모님이 모두 황해도 분들이셨어요. 우리 아버지 생각에 대한민국은 좁으니까 좀 넓은 나라로 가자, 그렇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에 이민 신청을 했는데 볼리비아에서 먼저 연락이 왔대요. 그때는 볼리비아가 한국보다 더 잘살았어요. 제가 다섯 살이던 1965년도에 볼리비아로 떠났습니다. 부모님과 7남 3녀, 12명의 가족이 모두요.”
한국에서 떠날 때만 해도 부모님이 목욕탕과 생선 냉동 창고를 운영해 집안은 넉넉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북 출신으로 전쟁을 겪은 부모님이 전쟁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은 생각을 한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떠난 임병수의 집안은 한국에서 볼리비아로 간 첫 이민 가족. 우리 교포들 사이에서는 조상으로 불린다. 그래서 한국 사람이 볼리비아로 이민을 가면 임병수의 집으로 인사를 하러 가기도 한다.
“전쟁의 두려움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모험을 좋아하셨어요. 말 한마디도 못하는 상태로 볼리비아에 가셨는데 그때 아버지가 쉰다섯이셨어요. 당시 500달러 정도를 가지고 가셨답니다.”
이민 떠난 그곳은 말 그대로 정글이었다
아버지를 따라간 볼리비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정글만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리 가족은 산속으로 들어가 제재소를 했어요. 카라나비라는 지역이었어요. 한 5~6년은 산에서 살았어요. 화장실도 없고, 신발도 없었어요. 집도 그냥 원두막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벽도 없었고요. 뱀도 지나가고 개미도 지나가고 각종 생명체가 주변을 지나다녔어요. 내가 다섯 살 때부터 살았는데 열 살 무렵까지 있었어요.”
맨발로 다니는 게 익숙했던 어린 시절. 한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어린 임병수에게 선물로 신발을 안겼지만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잘사는 교포 출신일 줄만 알았는데 타잔의 삶을 살았다고 고백했다.
“타잔한테 신발 한 번 줘봐요.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신발을 신고 나가도 학교에서는 벗고 돌아다니다가 집에 들어올 때쯤 다시 신고 집으로 들어갔어요. 혼날까봐요. 지금도 불편해요(웃음).”
(SBS)이 우스워 보이지 않냐며 넌지시 물었다.
“웃기죠(웃음). 냇가에 다이너마이트 하나 던져 터뜨려서 물고기는 그냥 건져 올리기만 하면 됐어요. 새도 잡아서 불에다 구워 먹고요. 에이, 저는 5년 동안 정글에서 살았잖아요. 가끔 이야기할 때마다 사람들이 저를 신기한 듯 바라봐요. 방송은 아무리 힘들어 보여도 주위에 카메라 있고 사람들도 있고 일단 조명도 있잖아요.”
정글 삶에 대한 얘기는 끝이 없었다. 키가 큰 아보카도 나무를 타고 올라가 열매를 따먹던 일, 뱀이 몸 주위를 지나간 사건, 개미 밥으로 개구리를 던져준 일 등 상상할 수 없는 정글 이야기가 무용담처럼 펼쳐졌다. 이야기할 때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한지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몸으로 표현하면서 이해를 도왔다.
“하여튼 좋았어요. 아쉬운 게 있다면 그때 너무 어렸다는 거죠. 우리 형들은 재밌었다고 해요. 즐긴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힘들어도 재밌었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알아요? 사람이 사람 만나는 거요. 밤에 산길 가고 있는데 빨간 불빛이 보여요. 얼마나 무서워요. 담배 피우면서 일(?) 보고 있는 거예요.”
혹시나 에서 섭외가 온다면 갈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한다.
“가면 본능적으로 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못할 것도 같아요. 그때는 벌레 같은 거 손으로 막 잡고 그랬는데 이제는 무섭거든요(웃음).”
프로레슬링 선수들 의상실을 열다
5년이 흘러 12명의 대가족은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로 떠났다. 볼리비아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스포츠는 바로 프로레슬링. 이곳에서 임병수의 가족은 레슬링 선수의 옷을 만드는 의상실을 열었다.
“볼리비아에서는 레슬링 선수들이 니트 옷감으로 된 선수복을 입어요. 우리 누나들이 옷을 잘 만든다는 소문이 나서 선수들이 옷을 맞추러 많이 왔어요.”
정글에서 내려와 도시로 이주했으나 고단한 삶은 계속됐다.
“이런 거 보면 누나들 울겠다. 왜냐면 누나들이 고생 많이 했거든요. 그러다가 의상실이 잘되니까 아버지가 여덟째 형을 독일로 보내서 섬유 기계를 사오라고 하셨어요. 섬유 관련 사업에 필요한 것인데 볼리비아에 처음으로 들어온 기계였어요.”
정글을 벗어났지만, 여전히 화장실은 없었고 방도 작아서 잠을 잘 때면 식구들이 몸을 바짝 붙이고 칼잠을 자야 했다. 누나들은 재단이 끝나면 탁상 위에 요를 깔고 잠을 청했다. 그렇게 가족들이 매달려 열심히 사업을 일궜다. 가업이 생긴 것이다. 임병수의 집에서 만들어진 원단은 인접 국가인 아르헨티나, 칠레로 팔려나갔다.
“볼리비아에서 얼마나 놀랐겠어요. 한국 사람이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마침 그러다 볼리비아에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국가적인 제압도 있고 탄압받는 느낌? 경제 사정이 안 좋아지니까 외국 사람들을 반기지 않게 됐죠. 지금은 가업은 다 접고 각자 다른 나라에서 다른 일 하고 살아요. 저만 지금 한국에 있고요. 큰형님 세 분은 돌아가셨습니다.”
형님과 누나들은 가끔 보고 싶은 정도다. 이젠 가족이 다 떨어져 살기 때문에 다 같이 모이는 일은 더 기대하지 않는다.
“오래전에 부모님 금혼식 때 10형제들이 모두 모였어요. 농담 반 진담 반이지만 사진을 찍는 데 한 시간 걸렸다니까요. 사진을 찍으려 하면 한 명이 화장실 가고, 화장실에서 돌아오면 누가 또 잠깐 넥타이를 고쳐 매고 그래서요.”
어렸을 때 정글에서 살았던 추억 때문일까? 기회가 되면 볼리비아 나무를 수입해 사업을 해보고 싶은데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대신 조카가 추진하고 있는 커피 사업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저는 되게 밝게 보이잖아요. 나쁜 것은 옆으로 밀어놓고 좋은 생각만 하려고 해요. 내가 여기 혼자 있어도 잘 버텨온 힘이에요. 이런저런 고민이 있어도 결국은 늘 음악 생각뿐이에요. 10곡, 15곡 발표할 필요 없잖아요. 한 곡 내고 노래 부르고 다시 또 만들면 되죠. 음악은 계속할 거니까요.”
그의 노래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평생이 나그네 인생이다. 예전에 수줍었던 모습에 힘이 들어가고 더 밝아진 이유는 마음 깊이 숨겨놓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노래를 향한 열정 때문이다.
꾸미는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걸 좋아하는 편이다. TV 드라마도 너무 만든 이야기가 들어 있어나 판타지물보다는 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즉 작가 김수현식 드라마를 좋아한다.
글도 단순하고 꾸밈없는 글을 좋아한다. 흔히들 기가 막힌 경치를 보면 한 장의 그림엽서 같다고들 하는데, 필자는 이런 표현도 별로다. 엽서 한 장으로 어찌 광대한 풍경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냥 ‘말로 표현 할 수 없다’ 정도가 좋다.
사람도 자연스런 사람을 좋아하는데 예를 들면 조영남씨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 반대로 남편은 그런 나를 보고 미친 ×만 좋아한다고 흉을 본다. 또 솔직하고 담백한 말을 좋아해서 솔직하지 않은 사람과는 대화를 즐기지 않는다. 뭔가 감추고 있는 듯한 사람과의 대화는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아들이 어렸을 때 잠깐 알고 지내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돈을 많이 벌고 아들은 미국에 남기고 부부만 역이민을 온 아들 친구 부모가 있다. 그 부부는 가끔 우리에게 전화해서 식사나 하자고 하는데 몇 번 만나보니 자기네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지 않고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때운다. 도대체 우릴 왜 만나자고 했는지 모를 정도다. 그러면서도 우리 이야기엔 경청을 한다.
지난번에도 만나자고 전화를 해와 아들 체면을 봐서 웬만하면 나가자고 했지만 남편은 칼같이 끊고 거절을 했다. 우리 나이에 싫은 사람 만날 일 없다며…. 보수적이면서 반듯한 남편은 자신과 성향이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남편이 필자를 이야기할 때는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표현한다.
필자는 숫자에 대한 기억력이 좋아 아직까지도 아들네를 포함한 온가족의 주민번호, 통장번호도 등 별의별 것들을 다 기억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깜빡깜빡하는 병이 있어 돌아서면 잘 잊는다. 물 먹으러 가다가 안경 벗어놓고 못 찾고, 신발 신다가 꼭 쓰고 나가야 할 선글라스는 잊어버리고 나가는 등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런 건망증이 늙어서 생긴 게 아니라 초년 시절부터 그랬다. 이 병 때문에 평생 동안 잃어버린 물건도 많다.
어릴 때부터 구박도 많이 받았다. 신은 하나를 주면서 다른 하나는 빼앗아가는 것 같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맞나보다. 깜빡병 때문에 남편한테 잔소리도 많이 듣고 구박도 많이 받는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집 도우미 이모가 “아저씨, 언니 너무 구박하면 내가 장애인센터에 ‘장애인 학대’로 신고할 거예요”라고 말할 정도다(나는 10여 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그 후유증으로 장애인이 되었다).
혹시라도 애인이 그랬다면 다~ 용서가 될 텐데 말이다. 세상의 모든 애인은 애처롭고, 모든 아내는 억척스럽다는 말이 있는데 난 애인이 아니고 아내다. 그렇게 심한 구박(?)을 받고도 건재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