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을 하루 앞두고 장애 학생들의 모습을 취재하기 위하여 지난 7일 구로구 고척로에 있는 에덴장애인종합복지관을 찾아갔다. 이 복지관은 지역 내 장애인에게 필요한 재활과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재활서비스 기관이다. 서울시 등에서 행정적으로 지원을 받고 있다. 학생들은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하여 학습능력을 향상한다. 전문가나 자원봉사자 등을 초빙해서 강의도 듣고 놀이를 한다.
복지관에서는 정월 대보름을 맞이하여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했다. 교실에는 13세에서 33세까지의 학생 15명이 다음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프로그램을 진행할 자원봉사 선생님이 들어와서 학생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고 시간계획을 이야기했다. 학생들은 밝은 표정이었다. 선생님은 학생들의 수준에 맞추어서 즐겁고 유익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선생님들은 우선 새에 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었다. 사진으로 새를 보여 주면서 설명했다. 우리나라에 있는 새들의 종류별 특징을 알려주었다. 텃새인 까치와 참새, 직박구리에 대한 이야기, 여름 철새인 제비와 뻐꾸기에 관한 이야기, 겨울철새인 천둥오리와 검은독수리 등에 대하여 쉽게 설명했다. 설명을 해주고 질문을 하면 학생들은 열심히 대답했다. 학생들은 특히 예쁜 새들의 사진을 보며 즐거운 표정이었다.
나뭇가지를 보고 꽃눈과 잎눈을 구분해 주었다. 지금 대부분 나무와 풀들은 새순이 나오고 있다. 그 형태를 보고 꽃눈과 잎눈을 설명했다. 목련, 개나리, 철쭉 등의 새 가지를 보고 꽃눈과 잎눈을 구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모두 잎보다 꽃이 먼저 나오는 종류이다.
나무 소품을 이용해서 꽃나무도 만들었다. 학생들의 창의력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준비한 것이다. 학생들이 직접 만들도록 했다. 목공풀을 이용하여 나무줄기를 붙이고 가지를 만들고 잎을 만들고 꽃과 열매를 만들어서 꽃나무를 완성했다. 학생들은 이야기를 해주면 빈틈없이 실행했다. 여학생들이 더 아기자기하게 만들었다. 완성된 다음에는 학생들이 꽃 밑에 자기 이름을 쓰도록 했다. 이름을 제대로 못 쓰는 학생은 선생님과 함께 썼다. 정성껏 꽃나무를 만들어서 본인들이 가지고 갔다.
단체 윷놀이를 재미있게 진행하였다. 학생들은 특별히 더 즐거운 표정이었다. 두 줄로 서서 청백 팀으로 나누어 게임을 했다. 너무 진지하게들 참여했다. 높은 점수가 나올 때는 손뼉을 쳤다. 자원봉사 선생님은 내일이 정월 대보름이라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우리의 전통놀이인 윷놀이에 관해서 설명해 주었다.
이번 프로그램은 한 시간 계획이었으나 20분 정도 더 진행됐다. 모두 너무 즐거운 모습이었다. 학생들은 프로그램이 끝나자 모두 아쉬운 모습이었다. 학생들이 계속 사회적응 훈련에 열심히 참여해서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올해 겨울은 유난히 포근하다. 서울 날씨가 지난 1월 23일에는 영상 10도, 1월 24일 8도, 1월 25일 9도, 1월 26일 11도, 1월 27일 7도, 1월 28일 9도, 1월 29일 10도, 1월 30일 10도, 1월 31일 7도까지 올라갔다. 이로 인해 새순과 봄꽃이 옛날과 비교하면 일찍 나오고 일찍 핀다. 초봄 같은 포근함으로 인해 봄꽃들이 계절을 착각한 것이다.
꽃이 일찍 피게 되면 벌이나 나비 같은 수분 매개의 곤충 활동 시기가 어긋나 부분적으로는 식물 수분이 어려워진다. 그리고 일찍 핀 꽃은 봄철에 다시 꽃을 피우지 못한다.
꽃이 일찍 피면 보는 사람들은 즐겁고 신기하지만, 식물의 생태계에는 혼란이 온다. 식물의 정상적인 생육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이다.
지난 1월 28일과 29일에 서울의 안양천을 방문하여 고척교와 오금교 주변의 식물을 관찰했다.
봄까치꽃(또는 큰개불알꽃)이 일찍 꽃이 핀 것을 볼 수 있었으며 꽃다지도 노란 꽃을 피우고 꽃봉오리를 내놓고 있었다.
봄에 가장 일찍 꽃이 피는 목련과 개나리는 벌써 꽃봉오리가 달려 있어 곧 꽃이 필 기세다. 늦은 봄에 피는 장미꽃도 꽃봉오리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봄동배추, 영산홍, 수호초도 꽃을 피워낼 준비를 하고 있다. 더욱이 산수유는 지난해 달렸던 빨간 열매가 그대로 달려있는 나무에 새 꽃봉오리가 나오고 있었다.
소나무도 꽃을 피우려고 하고 있었고 명자나무 가지에도 꽃눈이 나온 상태다. 사철나무도 새순이 일찍 나오고 있었다. 코스모스, 망초, 맥문동, 소리쟁이, 토끼풀, 쑥 등도 새순으로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렇게 지난해보다 10일 내외 정도는 일찍 싹이 트고 꽃눈이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찍 싹이 나고 일찍 꽃이 피어서 정상적으로 자란다면 문제 될, 게 없다. 꽃과 싹이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하는 것이 매년 조금씩 증가하기 때문에 문제다.
지구온난화에 대비한 식물의 효율적인 육종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 식물학 차원에서 향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무궁화가 우리나라 꽃이라는 노래도 있고 애국가 가사에도 들어있지만 법적으로 나라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우리나라 최고훈장 명칭이 무궁화 대훈장, 국기의 깃봉은 무궁화 봉우리 모양 등 국화(國花)가 무궁화임을 전제하는 규정들은 다수 존재하는데도 나라꽃으로 지정받지 못한 이유를 자료를 통해 알아봤다.
무궁화를 국화로 법제화해야 한다는 측 주장은 무궁화는 1000년 이상을 우리 겨레와 함께한 꽃으로 일제강점기에는 민족혼의 꽃이라고 말살 정책을 폈다는 것이다. 애국가 가사에도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 들어가 있다. 많은 독립운동가가 무궁화의 수호·보급을 위해 헌신하는 등 무궁화는 한민족을 상징하는 역사성이 있는 꽃이다. 국화로 지정하여 국가의 정체성을 대표하고 내부적으로 국민의 단합을 도모하자는 뜻으로 법제화를 찬성한다.
무궁화를 국화로 법제화하는데 반대하는 논거는 무궁화는 황해도 이북에서 잘 자라지 않는 지역적 제한성이 있어 남북통일 후에 말썽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또한 무궁화는 교잡이 쉬워 국내에 도입된 무궁화의 품종이 다종다양한 관계로 어떤 품종을 국화로 해야 할지 법제화가 쉽지 않다. 인도 원산의 외래종이며 병충해에 취약하고 개화 기간이 7~9월로 짧다는 등의 이유가 열거되어 있다.
외국의 입법례를 보더라도 헌법·법령·관습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는 국기·국가(國歌)의 경우와 달리, 연방법으로 장미를 법제화한 미국 외의 대다수 국가가 국화에 관한 법령상의 근거 없이 관습에 따르고 있다는 점도 법제화를 서두르지 않는 큰 이유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이미 대다수 국민들이 무궁화가 나라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우수한 품종을 정해서 국화로 인정하면 될 것이다. 무궁화를 대대적으로 피우는 금강 자연휴양림에 있는 무궁화동산에 가보면 놀랄 만큼 무궁화가 싱싱하게 잘 피어있다. 무궁화 가꾸기 팻말을 읽어보니 무궁화는 햇볕과 거름을 좋아해서 일반 나무보다 50% 정도 비료나 거름을 많이 줘야 한다는 재배법이 있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가지치기와 가지고르기를 자주 하여 꽃눈이 많이 생기게 하고 무궁화는 새싹이 나올 때 진딧물이 많이 생기므로 디프테렉스나 메타시록스 등 살충제 1000배액(물 1000cc에 살충제 1cc)을 골고루 뿌려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무궁화즙은 무좀, 설사, 눈병, 생리 불순, 위장병 등의 여러 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설이 있지만 현재는 무궁화의 성분 분석이 없는 상태다. 그만큼 무궁화에 대한 국화로서의 대접이 소홀하다. 무궁화 뿌리나 줄기, 나아가 잎이나 꽃의 성분을 분석하여 효용 가치를 더 발견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를 우리가 모르면 누가 알아주겠는가? 무궁화가 국화가 된다면 무궁화 가꾸는 방법을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어 어릴 적부터 교육하면 될 일이다. 애국가 가사처럼 무궁화강산을 만들고 외국인을 초청한다면 새로운 관광자원이 될 것이다.
신나는 올드팝과 함께 즐거운 춤사위가 봄바람을 타고 흐른다. 나도 모르게 흔들어댈 수밖에 없는 마력(魔力)에 빠지는 순간! 길가를 지나는 사람도, 서서 구경하는 사람도 손끝, 발끝, 엉덩이, 어깨, 허리를 도무지 주체하지 못한다. 힘찬 함성과 웃음소리의 발원? 바로 라인댄스! 라인댄스!
날씨가 흐리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서울지하철 3호선 매봉역에서 내려 양재천까지 걷는데 하늘색이 신경 쓰였다. 꽃눈이 소복하게 쌓였던 4월 어느 날, 양재천 벚꽃길에서 시니어를 주축으로 한 댄스 연합팀이 라인댄스 공연을 한다기에 찾아갔다. 한국댄스스포츠협회 라인댄스분과 이미경 이사를 중심으로 모인 연합팀으로 강남시니어플라자, 의왕국민체육센터와 라인댄스 지도자 동아리 등이 한데 어울렸다. 이미경 이사는 라인댄스를 알리는 것과 함께 춤을 추고 배우는 제자들과 시니어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다양한 무대를 찾아 공연 기회를 잡는다고.
라인댄스란 말 그대로 사람들이 줄을 맞춰 같은 방향을 향해 추는 춤이다. 지나간 시간을 더듬어보시라.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배우 김수로의 꼭짓점 댄스가 기억나는가? 여러 명이 줄을 서서 사방을 돌아가며 추는 군무가 라인댄스라고 생각하면 쉽다. 춤 종류에 구애받지 않고 같은 동작을 함께하는 춤이기에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이날은 20여 명의 라인댄서들이 모여 올드팝은 물론 트로트 가락에 몸을 맡기면서 멋진 무대를 선사했다. 젊음이 넘치는 춤사위는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잡아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박수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특히 웨스턴부츠에 카우보이 조끼를 입고 등장한 강남시니어플라자의 시니어 댄서들의 활약이 눈부셨다. 50대 70대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세련된 율동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함께 만드는 기분 좋은 에너지
라인댄스는 오래전부터 미국의 카우보이들이 즐기던 춤의 한 방식이다. 율동만 같으면 되기 때문에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게 큰 장점이라고 이미경 이사는 말한다.
“카우보이들이 술집에서 한잔 먹고 다 같이 포크댄스처럼 췄던 게 라인댄스의 시작이에요. 지금은 모든 장르의 음악을 다 라인댄스로 엮을 수 있어요. 스포츠댄스, 모던댄스, 삼바, 맘보, 힙합, 펑키, 재즈 모든 음악이 라인댄스로 가능해요.”
시니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몸이 소화해낼 수 있을 만큼만 안무를 짜서 보급하기 때문이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제대로 만든 춤을 추니 성취감에 협동심은 배가된다. 좋은 에너지가 그대로 전해지는 이유가 따로 있겠는가. 춤을 추는 댄서들의 얼굴이 웃음꽃으로 만발했다.
우리 모두 건강한 춤을 춥시다!
이미경 이사는 라인댄스를 한국에 들여온 장본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수로의 꼭짓점 댄스가 인기가 있었지만 월드컵 특수에 맞물려 이벤트로 끝났다. 우연이었을까. 2002년 이후 미국에서 라인댄스를 추는 이들이 늘더니 몇 년 지나지 않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야 말았다. 미국 전역으로 라인댄스가 퍼져나가던 시절, 마침 이미경 이사도 라인댄스를 접할 기회가 생겼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영어교사였던 사람이 춤이라니. 하지만 라인댄스는 달랐다. 지금의 삶이 춤과 함께하는 인생으로 바뀐 걸 보면 말이다.
“집안 분위기도 그랬고 저는 정서적으로 춤과 무관한 삶을 살았어요. 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정말 우연한 기회에 라인댄스를 알게 됐어요. 그때가 2005년 무렵이었는데 미국에서 라인댄스 붐이 일었어요. 그때 제가 눈이 번쩍 뜨이더라고요. 열심히 배우고 알아가다 보니 미국 YMCA에서 강의도 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2008년도에 한국에 왔는데 라인댄스를 아는 사람들이 정말 없더라고요. 남녀노소에게 이 좋은 춤을 알리려고 노력 많이 했습니다. 요즘 시니어 사이에서는 라인댄스가 제대로 인기예요. 문화센터 대기자도 많고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라인댄스를 배우고 건강해지셨으면 좋겠어요.”
화려한 의상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남녀 구분은 더더군다나 없다. 함께 춤을 추는 사람들의 정서와 공감대를 맞춰 춤을 춘다면 라인댄스 아래에서 우리 모두 나이를 잊은 그대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mini interview
힘든 일을 잊게 해줘요! 방인순(69)
학교 졸업한 뒤 가정생활밖에 안 했어요. 어려서는 한국무용을 했어요. 나이가 들면서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도 내 나이에 맞는 운동이 뭐 없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과격한 건 할 수가 없잖아요. 문화센터에 기웃거리다 라인댄스가 저랑 굉장히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건 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들 할 수 있는 그런 춤이더라고요. 한 시간, 두 시간을 해도 관절에 무리가 없어요. 우리 나이에 가장 적합한 운동인 거 같아요. 음악 한 곡 분량이 보통 3분 내지 4분이잖아요. 간결한 동작을 계속 반복하는데 전혀 힘들지 않아요. 아직 라인댄스를 모르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당연히 친구들에게도 많이 전파를 했어요. 줄을 만들어서 같이 신나게 추면 돼요. 최근에 집에 힘든 일이 좀 있어서 쉬다 나왔는데 진짜 활력소더라고요. 춤을 추다 보면 힘든 일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라인댄스 매력에 푸욱~ 박난규(67)
은퇴하고 나서 강남시니어플라자에서 올드팝을 배우고 있었는데 같은 반 회원이 라인댄스가 좋다고 해서 하게 됐어요. 운동도 되고 아주 좋은 거 같아요. 배운 지 2년 반 정도 됐는데 아직 병아리 수준입니다. 8~9년 되신 분들도 있거든요. 사실 저는 학교 다닐 때 탁구선수였어요. 춤은 춰본 적이 없어 걱정했는데 선생님도 친절하시고 올드팝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아요. 3개월 배우고 난 뒤에 두 번째 등록을 했는데 선생님이 강남시니어플라자 개관공연을 한다고 공연팀을 만들자 해서 참여했어요. 라인댄스는 나이 든 사람들에게 좋은 춤 같아요. 삶의 활력이 된다고나 할까요? 저는 라인댄스가 여자와 남자가 붙잡고 추는 춤이 아니어서 좋은 거 같아요. 제가 사실 땀이 많이 납니다. 그래서 같이 맞대고 추는 춤은 좀 부담스럽더라고요. 제게는 라인댄스가 딱 취향에 맞고 좋은 거 같습니다. 아주 깨끗해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마음만 동동 구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셔요. 이번 호에는 시인 장석주님이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경기도 북부에 있는 파주 교하로 거처를 옮겨 첫겨울을 맞았어요. 교하의 평평한 들을 덮은 한해살이 초본식물이 서리를 맞고 시들어 헐거워진 무릎을 꺾으며 가을이 끝나고, 곧 겨울이 닥쳤지요. 지구의 자전축이 태양에서 먼 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북반구에 햇빛이 약해지고 동절기가 온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올겨울은 유난히 눈도 잦고 한파도 자주 몰아쳤어요. 한파경보와 폭설주의보에 귀를 기울이며 겨우내 실내에 갇혀 겨울을 납니다. 기온이 영하 20℃ 이하로 떨어지는 혹한이 이어질 때 한강 하구 일대는 북극의 바다처럼 얼음덩이로 뒤덮였어요. 강가에서 건물 잔해처럼 나뒹구는 얼음덩이들이 펼치는 낯선 풍경을 하염없이 보다가 돌아오는 날도 있습니다. 노숙자가 동사했다는 비보가 전해진 날 한뎃잠을 자다가 얼어 죽은 길고양이도 드물지 않았지요. 고라니나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이 언 땅에서 먹잇감을 찾지 못해 인가까지 내려옵니다. 이래저래 겨울은 네 발로 움직이는 동물이나 두 다리로 걷는 사람에게 두루 견디기 힘든 시련과 역경의 계절이지요.
사람이나 동물만 이 혹한을 견딘다고 생각하지만 풀과 나무도 한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묵묵하게 겨울을 납니다. 나무는 어떻게 이 겨울을 견디고 살아남는 걸까요? 나무의 내부는 많은 수분이 있어 얼 수도 있을 텐데, 나무가 영하 20℃의 추위에도 얼지 않고 겨울을 난다는 게 신기하지요. 낮이 점점 짧아지면서 빛이 약해지는 신호를 받고 나무들은 월동 채비를 해요. 활엽수는 잎을 다 떨궈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하지요. 그리고 “세포벽의 투과성이 극적으로 증가해서 순수한 물은 흘러나오고 세포 안에 남은 당, 단백질, 산이 농축”된다고 해요(호프 자런, ‘랩 걸’). 아무 불순물이 없는 순수한 물은 얼지 않지요. 부동액이 얼지 않는 이치가 그것이지요. 살아 있는 유기체 거의 모두가 그렇듯이 나무 내부는 물로 채워진 상자이지만 그 액체가 순수한 상태여서 얼음 분자가 결정을 형성하지 못한다지요.
식물의 씨앗이 보여주는 기다림은 탄성이 나올 정도예요. 가을로 접어들며 초목들은 수백 개에서 수만 개의 씨앗을 제 발치께에 떨어뜨리는데, 씨앗은 단단한 껍질로 둘러싸여 배아가 함부로 자라지 못하는 구조이지요. “씨앗 안의 배아는 자라기 시작하면 일단 허리를 굽히고 기다리던 자세를 곧게 펴서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형태를 정식으로 띠기 시작한다. 복숭아씨, 혹은 참깨씨나 겨자씨, 호두씨 등을 둘러싼 딱딱한 껍질은 이런 팽창을 방지하려고 존재한다”(호프 자런, ‘랩 걸’). 씨앗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부터 배아는 딱딱한 껍질 속에서 긴 기다림을 시작하지요. 운이 좋으면 1년 만에 싹을 틔워 식물의 한 생애를 펼치지만 많은 씨앗들이 기회를 엿보다가 사라지지요. 중국의 토탄 늪지에서 나온 어떤 연꽃 씨앗의 배아는 2000년 만에 과학자의 도움으로 껍질이 벗겨지자 싹을 틔워 놀라게 했습니다. 연꽃 씨앗은 싹을 틔우려고 무려 2000년을 기다렸던 셈이지요.
씨앗은 껍질을 깨야만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을 수가 있지요. 씨앗은 생의 순환을 겪기 위해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저 울울창창한 숲은 작은 씨앗의 기다림에서 시작된 것이지요. 초목들은 지구상에서 공룡이 멸종하고 지구가 몇 번이나 빙하기를 거치는 동안에도 죽지 않고 살아서 도처에 숲을 이루며 번성했어요. 그 번성이 작은 씨앗의 분투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요. 아름드리 떡갈나무도 배아에서 싹을 틔워 자라난 결과일 뿐이지요. 그러나 무수한 씨앗들은 운이 나빠 싹을 틔울 단 한 번의 기회를 잡지 못한 채 죽음을 맞아 사라지지요. 우리도 기다림 속에서 도약의 기회를 엿본다는 점에서 씨앗과 별반 다를 바가 없지요.
식물이 환경에 순응하며 인고와 복종과 침묵으로 일관하는 걸로 알지만 식물만큼 자기 숙명과 싸우는 존재는 드물지요. 붙박이로 자라는 식물이 침묵 속에서 싸움을 펼치는 까닭에 그 격렬함을 미처 눈치 채지 못할 뿐이죠. 식물은 땅속으로 뿌리를 뻗고 물과 자양분을 끌어다 줄기로 퍼 나르지요. 지금 이 순간에도 매화나무는 혹한을 견디며 꽃눈을 두툼하게 키우고, 튤립 같은 구근 식물은 땅속뿌리에서 싹을 틔울 준비가 한창이지요. 매운 추위라야 봄꽃이 더 화사하게 피어나는 법이지요. 화사한 봄꽃들이 혹한과 싸워 이긴 승리의 전리품이 아니라면 무어란 말인가요!
우리는 식물이 환경에 맞서 싸우는 저 용기와 지혜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현호색, 복수초, 양지꽃, 노루귀, 산달래, 변산바람꽃, 개불알꽃, 제비꽃, 패랭이꽃, 민들레 같은 야생 풀꽃조차 한자리에 붙박인 채 저를 짓누르는 숙명과 맞서지요. 그렇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동백, 모란, 작약, 산수유, 풍년화, 목련, 영산홍, 개나리, 진달래, 매화나무, 벚나무, 살구나무, 앵두나무, 배나무같이 가지를 뻗어 꽃을 피우는 초목도 맹추위 속에서 꽃 피울 준비를 하고 있어요. 가만히 들어봐요. 초목이 속삭이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요. 헤르만 헤세는 ‘봄의 말’에서 그 말을 받아 적었어요. “어린애들은 알고 있다. 봄이 말하는 것을.//살아라, 자라라, 꽃피라, 희망하라, 기뻐하라, 새싹을 내밀라.//몸을 던지고, 삶을 두려워하지 말라!” 어느덧 입춘 지나고 우수입니다! 기세등등하던 겨울은 물러나고 곧 누리에 봄이 오겠지요!
파주 교하에서 첫겨울을 나며 오래 소식이 끊긴 당신을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 젊은 날의 혼돈과 기쁨은 아득히 멀어졌습니다. 당신이 뿌리를 내리고 사는 곳은 따뜻한가요?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잘 살기를 바랍니다. 생명을 가진 유기체의 살아냄은 태반은 기다림으로 이루어집니다. 기다림은 침묵과 혼돈을 견디는 인고의 시간이지요. 독일 철학자 니체가 “춤추는 별 하나를 탄생시키기 위해 사람은 자신들 속에 혼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말할 때의 그 혼돈! 기다림이라는 씨앗 속의 배아인 혼돈이 체념의 내성(耐性)을 만듭니다. 하지만 당신, 잊지 말아요. 생명은 춤추는 별이 그러하듯이 불가능한 필연으로서 꿋꿋하게 제 앞의 불확실함을, 제 안의 혼돈을 견디며 살아남음의 영광을 취한다는 것을. 삶의 광휘는 오직 혼돈을 견딘 결과로서 눈부십니다. 당신의 처지가 나쁘다면 좋은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꿋꿋하게 기다리기를, 부디 불행에 꺾이지 말고 끝까지 견디고 잘 살기를 바라요. 잘 있어요, 당신.
>>장석주 시인
스스로 산책자 겸 문장 노동자라 일컫는다. 매일 사과 한 알을 먹고 산책하며 침묵과 고요, 단순한 것과 느린 것, 바다와 대숲을 좋아한다. ‘마흔의 서재’, ‘철학자의 사물들’, ‘일요일의 인문학’,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베이비부머를 위한 변명’ 외 여러 권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