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베리 익어가는 계절

입력 2025-07-16 08:00

[전원일기] 블루베리 덕에 시력도 좋아져

(어도비 스톡)
(어도비 스톡)


블루베리 익어가는 계절이다. 블루베리는 다산형인 듯하다. 꽃눈도 다닥다닥 무수히 맺히고, 꽃눈 하나에 열 송이가량 꽃이 피고, 꿀벌이 다녀간 꽃송이 모두 열매 맺곤 하니 말이다.

뒤늦게 몰래 숨어서 맺는 열매도 하나둘이 아니다. 아까운 마음에 너무 여러 개 남긴 꽃눈 앞에선 부끄러움이 고개를 든다. 불필요한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것부터 눈에 들어온다. 겉모양은 잘 뻗었지만 올해 열매 하나 매달지 못하는 도장지를 남기고 정작 결과지를 잘라낸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여러 차례 했다.

온 맘 다해 꽃눈을 솎아주었어도 벌님이 다녀갈 때마다 열매가 맺히면서 크기 또한 들쑥날쑥하다. 굵은 가지엔 서너 송이 정도 남기고, 가는 가지엔 한두 송이만 남기고, 나머지는 눈 딱 감고 솎아야 하는데 생각만큼 마음이 모질어지지 않는다.


(함인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함인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작아도 비싼 값 하는 이유

블루베리는 값비싼 과일이다. 500g이 커다란 수박 1통 가격과 맞먹거나 때론 더 비싸기도 하니 말이다. 요즘 젊은 엄마들, 수박 대신 블루베리를 덥석 집어 든다. 껍질째 먹으니 음식물 쓰레기도 안 나오고, 영양 만점인 슈퍼푸드라지 않나.

블루베리 효능은 이미 널리 알려진 것 같다. 로컬푸드 상점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블루베리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대요”라며 손자 손녀들 위해 기쁜 마음으로 산다고 하신다.

블루베리가 눈에 좋다는 건 상식인데, 내가 바로 ‘얼마나 좋은지’의 산증인이다. 농장에서는 상품성 떨어지는 열매를 모아 냉동실에 저장해두고 1년 내내 주스로 만들어 먹는다. 복숭아잼이나 사과잼 만들 때 블루베리를 조금 넣으면 향취가 더욱 깊어지는 걸 경험한 우리 집에선 블루베리에 사과나 복숭아를 넣고 요거트와 함께 갈아 먹기도 하고, 샐러드에 얹어 먹기도 한다.

12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블루베리를 꾸준히 장복한 결과 내 눈에 의미심장한 변화가 일어났다.

원래 어릴 때부터 눈이 나빠 안경 도수는 –6~-7디옵터(남자라면 사회복무요원으로 빠지는 시력이라고)를 기록한 데다, 양쪽 눈의 시력 차가 2디옵터 이상인 짝짝이 눈인 것도 모자라 난시까지 겹쳤다. 때문에 눈에 피로가 쉽게 찾아와 1시간 정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화면 위 글자가 서너 개로 보이곤 했다.

퇴임하기 1년 전 독서용 안경을 다시 맞추러 갔더니 양쪽 눈의 시력 차가 현격히 줄어들었고, 난시 축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보다 스스로 확실히 느낀 변화는 눈이 맑아지면서 눈의 피로를 거의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젠 컴퓨터 앞에 3시간을 앉아 있어도 화면 속 글자가 또렷이 보이고, 웬만한 책은 안경 벗고 맨눈으로 읽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퇴임하면 시냇물에 발 담그고 마음껏 책 읽는 것이 꿈이에요” 했더니 모두 “눈이 말을 안 들을 테니 꿈 깨세요”라고 했는데, 웬걸 블루베리 덕에 꿈을 이룬 여자가 되었다.

블루베리 농장의 주인장 또한 황반변성이 진행 중이었는데, 서울대병원에서 황반변성 진행이 멈추었으니 동네 안과에서 당뇨로 인한 안압 체크 정도만 하면 될 거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것도 무려 7년 전에.


(함인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함인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까다로운 수확 타이밍 잡기

블루베리 관련 책자를 보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토마토, 참외, 복숭아 등 대부분의 과일은 후숙 과정을 거치는 데 반해, 블루베리는 나무에 달려 있을 때만 익는 습성이 있다는 것이다. 토마토도 바나나도 파란 걸 따서 상온에 익혀 먹지 않던가. 물론 블루베리도 냉장고에서 새콤한 맛이 엷어지고 달콤한 맛이 깊어지는 걸 직접 체험했다는 의견도 있지만, 블루베리는 색깔만 변할 뿐 맛이 후숙되는 건 아니라는 의견이 정설이다.

내 경험으론 나무에서 90% 정도 익었을 때 딴 블루베리가 맛도 가장 좋고 탱글탱글한 식감도 그만이다. 100% 익은 블루베리는 식감도 떨어지고 배송 및 유통과정에서 물러버릴 수 있으며, 70% 정도 익은 블루베리는 신맛이 강하거나 풋내가 난다. 대형마트나 전통시장 등지에 출하하는 경우는 유통과정에서 일정한 기간 소요되는 것을 고려해 70% 정도 익은 블루베리를 수확할 가능성이 높다.

나무에서 알맞게 잘 익은 맛있는 블루베리를 사려면 로컬푸드 매장에 갈 것을 권유한다. 가격 경쟁력은 다소 약한 대신, 채소는 수확 후 24시간, 과일은 48시간 내 판매 규칙을 적용하는 만큼 신선도와 맛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블루베리가 비싼 이유 중 하나는 수확할 때 일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포도는 송이째 따지만, 블루베리는 한 알씩 따야 한다. 한꺼번에 같은 속도로 익지 않기 때문이다.

사과와 대추를 재배하는 이웃 안 씨 아저씨는 “쬐끄만한 것 한 알씩 따라고 하면 속이 터지고 문드러질껴. 난 억만금을 준대도 블루베리는 못 딸 것 같어” 한다.

블루베리 농사 초창기엔 동네 아주머님들을 알바로 모셨다. 과일 따는 경력은 모두 베테랑급이었는데, 복숭아 농장에만 다니던 분들이라 “과일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하면서 복숭아 따듯 익지도 않은 퍼런 블루베리를 따곤 했다.

다음 날로 초보 농부가 프로 농사꾼들을 해고하는 웃픈 일도 있었다. 물론 나무의 열매가 전체의 70%쯤 익었을 때, 블루베리 열매를 단 가지가 붉은색을 띠기 시작할 때, 이때가 수확 적기라고 책에 쓰여 있긴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책대로 되던가.

미국에선 블루베리 따기 경연대회가 있다고 들었는데, 숙련된 농부의 경우 하루에 45~50㎏을 거뜬히 딴다고 한다. 내 솜씨는 미국 선수의 절반 수준으로 하루에 20~25㎏을 따는데, 자랑하자면 선별기에서 고른 듯 블루베리 크기를 대중소로 구분하면서 낸 기록이다.


(함인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함인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갓 수확한 블루베리 보내는 마음

블루베리를 수확하면서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절실히 체감하기도 했다. 농사 초창기인 2012년엔 6월 20일 대학 학기말 시험이 시작될 때 열매도 함께 따기 시작해 8월 중순까지 끝물 수확을 했다. 한데 작년엔 6월 10일부터 배송을 시작해서 7월 15일경 수확을 모두 끝마쳤다. 불과 12년 사이에 수확 시기가 한 달이나 앞당겨졌으니,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안 느낄 도리가 없다.

그런가 하면 수확의 편의를 고려해 블루베리 품종을 선택할 때부터 일찍 열리는 조생종, 그다음 열리는 조중생종, 중생종을 거쳐 장마 후에 열리는 만생종까지 골고루 심었는데, 기후 변화 탓에 순서가 뒤죽박죽 뒤엉킨 것은 물론 조생종부터 만생종이 거의 시차를 두지 않고 한꺼번에 익는다.

아무리 커도 500원짜리 동전만 한 블루베리는 크기가 작은 탓에 한번 익기 시작하면 정신없이 빠르게 익어버린다. 부지깽이라도 세워놓고 일 시키고 싶은 때를 대비해 일손을 넉넉히 확보하는 것이 순리겠지만, 인건비 아깝지 않을 일손 구하는 일은 정말 하늘의 별 따기다.

수확한 블루베리는 출하하는데, 이때가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기도 하고 적당한 기쁨과 넉넉한 보람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 농장의 블루베리는 3년 전부터 단골손님을 위한 배송과 세종시 로컬푸드 매장에서의 판매를 병행하고 있다. 매해 이맘때면 국내산 생블루베리를 기다리는 단골손님들. 이미 알고 지내던 이들이 많으니 이름도 익숙하고, 그동안 쌓은 정이 있기에 각자의 사연 또한 친숙하다.

우리 단골 중에는 본인의 건강을 위해 생블루베리를 대량 주문해서 쟁여두고 먹는 분들도 있지만, 유독 선물용으로 주문하는 이들이 많다.

녹내장으로 고생하는 친정엄마 알뜰살뜰 챙기는 딸, 블루베리를 폭풍 흡인하는 손주를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할머니, 시댁 식구들에게 빠짐없이 인사 전하는 며느리, 이모·고모·삼촌·외삼촌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조카, 창립기념일 즈음해서 직원용 선물로 블루베리를 돌리는 건축사무소 사장님, 목사님·스님·신부님·수녀님께 특별한 마음을 전하는 신심 두터운 신도들, 스승과 오랜 인연을 이어가는 제자….

단골을 떠올리며 블루베리를 포장할 때면 이 블루베리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소중한 관계란 생각이 든다. 보내는 이의 정성스런 마음과 받는 이의 감사한 마음이 블루베리를 통해 아름답게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는다.

농사 초창기엔 배송 과정에서 실수도 잦았고 시행착오도 빈번히 겪었다. 택배사의 착오로 엉뚱한 곳에 배달된 경우도 종종 있었고, 받는 분이 해외여행 중이라 문 앞에서 며칠 기다리던 블루베리가 몽땅 상해버린 경우도 있었고, 주소를 문의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된 사연도 있다.

그 시절을 돌아보니 당시는 화도 나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지금은 슬며시 웃음이 난다.

참, 국내산 생블루베리는 6월 말부터 7월 초가 적기다. 이때가 수확량도 많고 맛도 알맞게 들어 블루베리의 풍미를 즐기기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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