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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종 혈관질환 유발하는 ‘이상지질혈증’… 콜레스테롤이 문제
- 흔히 콜레스테롤은 지방 성분으로 성인병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콜레스테롤은 우리 몸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성분이다. 신체를 형성하는 기본 단위인 세포와 세포막을 구성하는 성분이 되고, 여러 장기의 상태를 유지하는 스테로이드 합성을 돕고, 음식물 소화와 흡수에 필요한 담즙산을 만드는 원료가 된다. 이상지질혈증은 우리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인 HDL콜레스테롤이 혈액 중에 너무 적거나 우리 몸에 해로운 LDL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이 너무 많아 콜레스테롤 수치에 이상이 생긴 상태를 이른다. 이상지질혈증은 각종 혈관질환을 유발한다. 뇌졸중이나 인지기능 저하를 일으키고 동맥경화증, 말초혈관질환, 췌장염 등의 원인이 된다. 또 협심증, 심근경색, 심장마비 등 관상동맥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키고 만성콩팥병과 발기부전을 초래하기도 한다. 고지혈증과 헷갈리기도 하는데, 고지혈증은 혈액에 총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이 많은 상태, 이상지질혈증은 LDL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이 많고 좋은 HDL 콜레스테롤이 적은 상태라는 점에서 다르다. 서민석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이상지질혈증은 지방 함량이 높은 서구화된 식습관과 운동 부족 등의 영향으로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며 “가족력이 있거나 비만, 당뇨병, 갑상선기능저하증 등과 같은 질환이 있을 때도 이상지질혈증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1년 이상지질혈증 환자는 146만7539명으로 2016년 62만4345명보다 5년간 약 2.4배 증가했다. 또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가 발표한 ‘2020 이상지질혈증 팩트 시트’에 따르면 진단 인구 대비 치료율은 66.6%, 지속치료율은 40.2%에 불과했다. 문제는 국내 이상지질혈증 환자 수는 계속해 증가하고 있지만, 치료를 끝까지 유지하는 환자는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이상지질혈증의 경우 증상이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고 당뇨나 고혈압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환자들이 많다. 서민석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이상지질혈증의 지속치료율이 40%밖에 되지 않는 것은 약물치료 후 검사결과가 정상이 되면 약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며 “부작용이 없다면 약물치료는 가급적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유산소 운동, 식단관리 등 적절한 관리를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지질혈증 치료의 기본은 생활습관 개선과 약물치료다. LDL콜레스테롤의 수치와 건강 상태를 고려해 생활습관 조절만 할 것인지, 약물치료를 해야 하는지 결정된다. 생활습관 개선을 위해 먼저 식단은 마가린, 라면, 튀긴 음식 등 트랜스지방의 섭취를 줄이고 채소 등 식이섬유질의 섭취를 늘려야 한다. 또 금연, 금주를 하고 하루 30분 이상의 유산소 운동, 정상 체중 유지가 기본이다. 유산소 운동을 1주일에 3회 이상, 6개월 지속하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5% 정도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상지질혈증은 무증상인 경우가 많고 고혈압과 당뇨에 비해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이상지질혈증은 고혈압이나 당뇨보다 조절은 잘 되는 편이다. 서민석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이상지질혈증은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환자가 스스로 질환을 인지하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다”며 “특히 당뇨병 또는 고혈압, 관상동맥질환의 가족력 등이 있거나 고령자, 흡연자의 경우는 정기적인 검진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 2024-04-1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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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에는 금연 성공해볼까? 금단증상 극복이 관건
- 2024년 갑진년(甲辰年) 청룡의 해가 밝았다. 청룡은 사신도 중 하나다. 사신(四神)은 동쪽의 청룡, 서쪽의 백호, 남쪽의 주작, 북쪽의 현무를 말한다. 이는 동서남북을 지키는 수호 동물로 벽사와 음양의 조화를 뜻하는 신령의 동물로 여겨져 왔다. 특히 일출이 시작되는 방향인 동쪽 수호신 청룡은 진취적인 에너지와 희망을 나타내고 용기와 도전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단 실제 갑진년은 2월 10일 설날(음력 1월 1일)을 기점으로 시작한다. 새해에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도전을 다짐한다. 가족의 건강을 빌고 결혼, 승진, 합격 등 소원 성취를 기원한다. 다이어트, 금주, 연애, 사업, 대인관계 등 자신의 처한 상황에 따라 소원도 제각각이다. 그중 금연은 많은 이들이 매년 도전 과제로 삼는 단골 메뉴다. 담배는 타르, 니코틴, 일산화탄소 등 수십 종 이상의 1급 발암 유발인자를 비롯해 7000가지가 넘는 유해물질을 포함한다. 흡연은 거의 모든 질환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폐질환은 물론 전 세계 사망 원인 1위인 암이 언급될 때도 빠지지 않는다. 뇌졸중으로 대표되는 뇌혈관질환을 비롯해 심혈관질환, 호흡기질환, 위장질환, 구강질환 등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다만 누구나 이러한 담배의 해로움을 알고 있지만, 중독성이 강해 본인 의지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려운 게 금연이다. 서민석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금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건강한 삶을 위한 가장 훌륭한 치료가 될 수 있다. 흡연은 본인의 건강뿐 아니라 주위 사람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새해에는 꼭 금연에 성공하길 바란다”면서 금연 성공을 위한 조언을 전했다. 금연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금연을 시작하게 되면 그 효과는 곧바로 나타난다. 금연 20분 후 심박동 수와 혈압이 줄어들고 12시간이 지나면 혈중 일산화탄소 농도가 정상으로 돌아온다. 2주 후에는 혈액순환이 개선되고 폐 기능이 좋아진다. 한 달이 지나면 숨이 덜 차고 기침이 줄며, 호흡기와 같은 상피세포에서 먼지나 이물질을 제거해주는 역할을 하는 섬모가 정상적인 역할을 하면서 기관지에 쌓여 있던 가래가 배출된다. 폐 감염의 위험 역시 감소한다. 금연의 효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뚜렷해진다. 1년이 지나면 심장혈관 질환 위험성이 흡연자 대비 절반으로 줄고, 2~5년 후 뇌졸중 위험은 비흡연자 수준으로 감소한다. 또 5년 후에는 구강, 인후, 식도, 방광암 위험이 절반으로 낮아진다. 금연 10년 후에는 폐암으로 사망할 확률이 절반으로 떨어지고 인두암과 췌장암의 위험이 감소한다. 서민석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담배 성분 중 하나인 니코틴은 의존성이 있어 금단증상으로 금연을 어렵게 만든다”며 “본인의 강한 의지도 중요하지만 혼자 금연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된다면 전문가와 상담을 통해 금연 치료를 받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금연 생활습관 길러야 하루아침에 바로 담배를 끊기는 쉽지 않다. 금연을 결심했다면 먼저 생활습관을 개선해 보도록 하자. 물은 자주 마시는 것이 좋다. 물은 몸속에 있는 니코틴과 타르 성분을 배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금연을 위한 식단을 짜는 것도 좋다. 검은콩과 등푸른생선, 당근, 양파 등은 금연에 도움을 주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검은콩은 이뇨 작용을 통해 체내의 니코틴 등 독소를 체외로 내보내는 역할을 하고, 등푸른생선은 흡연으로 수축된 혈관을 이완시켜 준다. 당근의 터핀 성분은 발암물질을 해독하는 데 도움을 주고, 양파의 퀘르세틴 성분은 체내에 쌓인 니코틴을 무해한 성분으로 바꿔주는 해독제 역할을 한다. 반대로 맛이 강하고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은 금연 식단으로 적절하지 않다. 돼지고기나 소고기 등 기름진 음식을 자제하고 술도 삼가는 것이 좋다. 또 각 시·군 보건소와 동네 의원 및 병원에서는 다양한 금연클리닉을 운영하고 개인 상담을 통해 맞춤형 금연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곳에서 약물이나 금연보조제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금연보조제는 크게 패치와 껌, 사탕, 약물 등으로 나뉜다. 패치형은 피부를 통해 몸속에 니코틴을 서서히 공급하는 금연보조제다. 다만 패치형은 평소 자신의 흡연량에 맞춘 니코틴 함량의 제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패치를 붙인 상태에서 흡연은 심한 어지럼과 두통을 유발할 수 있다. 혈관을 수축시키는 니코틴이 과도하게 체내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또 심근경색 등 심장질환을 앓고 있거나 의심된다면 패치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 니코틴 껌이나 사탕은 속쓰림에 주의해야 하고, 너무 빨리 씹으면 혈중 니코틴 농도가 급격하게 상승하기 때문에 한 개씩 천천히 씹어야 한다. 서민석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생활습관 개선으로 흡연을 피하는 환경을 만들고 전문 의료진 상담을 통해 꾸준히 도전하고 관리한다면 반드시 금연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2024년에는 금연과 함께 절주, 적절한 운동을 통해 건강 생활을 실천해 보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 2024-01-05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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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말연시 잦은 술자리 통풍 악화… ‘비만 남성’ 특히 조심
- 연말연시에는 회식과 모임이 늘어 술 마실 일이 잦아진다. 이때 과음과 과식은 누구에게나 좋지 않지만, 특히 통풍 환자들은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기름진 음식과 과음이 통풍의 악화 위험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통풍(痛風, gout)은 혈액 내 요산의 농도가 높아지면서 요산염 결정이 관절의 연골, 힘줄, 주위 조직에 침착되는 병이다. 요산은 음식이 간에서 대사되고 생기는 최종 분해 산물로, 쌓이면 결정체로 변해 염증을 유발한다. 통풍은 극심한 통증이 특징이다. 증상은 발가락, 손가락, 무릎 등에 잘 나타나고 심하게 붓고 빨갛게 변하며 손도 못 댈 정도로 심한 통증이 발생한다. 특히 요즘같이 찬 바람이 부는 겨울철에는 혈액 속 요산 침착이 활성화돼 염증이 심해져 증상이 더 악화된다. 김문영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통풍은 바람만 스쳐도 아프다는 표현처럼 여성의 출산과 비교할 정도의 극심한 통증을 동반한다”며 “초기에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발생 빈도가 늘어나고 만성 관절염으로 발전할 수 있어 꾸준한 치료를 통해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국내 통풍 환자 계속 늘어…비만 남성 특히 조심해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통풍으로 진료받은 환자 수는 매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2018년 43만 3984명에서 2022년 50만 8397명으로 환자 수가 늘었다. 2022년 기준 남성 환자는 여성 환자보다 12.8배 많았다. 이는 남성이 여성보다 단백질과 알코올 섭취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남성은 콩팥의 요산 제거 능력이 나이가 들수록 감소하는 반면, 여성은 폐경 이전까지 여성호르몬의 영향으로 요산 제거 능력이 유지된다. 특히 비만 남성은 통풍 고위험군으로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비만 자체가 체내 요산 생성을 증가시키고, 신장 기능은 나이가 들면서 점차 떨어져 요산 배설이 원활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서구화된 식습관, 스트레스와 잦은 회식으로 상대적으로 운동량이 적은 젊은 남성에게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김문영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첫 증상 후 통증이 있을 때만 치료하고 꾸준히 치료하지 않으면 통풍 결절이 울퉁불퉁 튀어나와 신발을 제대로 신지 못하는 때도 있다”며 “관절 손상 외에도 신장 기능 저하 등 치명적인 합병증을 초래할 수 있어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과음·과식 피하고 적정 체중 유지해야 통풍은 흔히 맥주를 많이 마시면 걸리는 병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주종과 무관하게 알코올이 들어간 모든 술은 통풍의 위험성을 높인다. 알코올은 콩팥에서 요산 배설을 억제해 혈중 요산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다만 맥주는 효모, 보리 등 퓨린 함량이 높은 성분이 들어가 다른 술보다 더 위험하다. 또한 음주량이 많을수록 통풍의 위험이 올라가 과도한 음주는 삼가는 것이 좋다. 통풍은 꾸준한 약물치료와 식이요법을 통한 생활습관 개선이 중요하다. 통풍 치료에는 통증을 완화하는 항염증제와 요산 배설을 촉진하는 의약품을 쓴다. 통풍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과음, 과식을 피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적정 체중을 유지해야 한다. 퓨린 함량이 많은 음식(내장, 고기, 치킨, 등푸른생선 등)의 섭취를 줄이고, 액상과당이 함유된 음료수나 가공식품은 피하는 것이 좋다. 반면 저지방이나 무지방 유제품, 곡류, 채소, 과일, 달걀, 해조류 등 지방이 적은 식품은 통풍 예방에 도움이 된다. 또한 충분한 수분 섭취는 소변으로 요산 배설에 도움을 줘 통풍에 효과가 있다. 김문영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조깅, 등산, 수영 등 적당히 땀을 흘릴 수 있는 유산소운동은 통풍 예방에 좋다”며 “무엇보다도 식단관리와 함께 요산 수치를 낮추는 꾸준한 약물치료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2023-12-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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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죽음 앞둔 환자의 마지막 준비
- 36세의 젊은 엄마가 하늘로 떠났다. 5살, 7살 두 딸 아이를 남겨두고. 9년 전 위를 송두리째 떼어내고 다 나은 줄 알았는데, 두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지내던 중 암이 재발됐고, 항암치료에 전념했지만 암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더 이상의 항암치료는 무의미하다는 말기 판정과 함께 우리 병원 호스피스로 의뢰됐다. 젊은 엄마는 남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하길 원했기에 상담 후 가정호스피스 서비스를 받기로 했다. 야속하게도 암은 계속 진행돼 몸은 하루하루 더욱 앙상하게 말라 갔고, 장폐색까지 진행되면서 나중엔 물만 마셔도 구토가 계속되자 가정호스피스팀은 소위 콧줄이라 부르는 배액관을 넣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콧줄을 달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아이들이 충격을 받을까 걱정했던 그는 콧줄을 거부하고 화장실에 숨어 몰래 구토를 하면서 마지막까지 아이들과 함께했다. 그리고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자 두 아이를 어린이집으로 보내면서 그 뒷모습에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119를 불러 응급실로 왔다. 응급실에서 만난 내게 자신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다했으니 더 이상 고통 없이 떠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반복되는 구토로 탈진해 있는 그에게 나는 미뤄왔던 콧줄을 바로 삽입했다. 그리고 배액장치를 통해 역류하는 소장액이 계속 바로바로 빠져나오자 비로소 그녀는 구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배액이 원활해지니 이제 조금씩 물과 음료도 마실 수 있게 됐다. 수액을 통해 탈수가 교정되고, 마약진통제를 통해 통증이 가라앉자 잠도 푹 잘 수 있게 됐고 조금씩 기력도 돌아왔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어린 두 아이들 생각에 그는 몸이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상태였는데도 수차례와 수술과 항암치료를 견뎌냈고, 그로 인해 몸은 너무나도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특히 배 안은 유착이 너무 심각해 심한 통증과 구토가 반복됐다. 콧줄과 배액장치에도 구토가 발생할 때가 있었고, 그런 불편감으로 입원 후에도 밤을 꼬박 새워야 하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콧줄의 위치를 섬세하게 조정해 배액장치가 아닌 주사기를 통해 소장액을 뽑아냈는데, 배액에 성공할 때면 그는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이제 살 것 같아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고통에서 자유로워지자 그는 표정이 밝아졌고 여유가 생긴 만큼 두고 온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왔다. 어느 날 그는 조심스레 내게 다시 집으로 갈 수 있냐고 물었다.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남아있다며 나를 바라보던 그의 차분하면서도 굳건한 눈빛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절대 아이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콧줄을 단 모습마저도 스스로 용납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가 집에서 지내기 위해서는 배액장치로도 해결되지 않는 구역질이 발생했을 때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고민 끝에 나는 그날부터 주사기를 통해 수동으로 소장액을 배액하는 법을 그녀를 간병하는 친정엄마에게 꼼꼼히 전수했다. 반복하는 연습과 교육으로 이제 구역질이 밀려올 때면 친정엄마 역시 능숙하게 그녀를 편안하게 만들어 줄 수 있었다. 준비는 다 끝났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때다. 약속된 퇴원 전날 밤 나는 그의 침대 곁으로 찾아가 설레임과 두려움에 잠들지 못하고 있는 그와 친정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난 2주간 참 잘 이겨내 줘서 고마워요. 입원하기 전까지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사실 집보다 병원이 훨씬 편하실 텐데, 다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시니 그 결정 속에 각오만큼이나 큰 두려움이 담겨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사실 그의 엄마는 화장실에서 숨어서 구토를 하고, 신음소리를 삼키며 고통을 참던 딸의 모습을 봐왔기에 다시 그 지옥같은 상황으로 돌아가게 될까봐 퇴원을 반대했지만 결국 딸의 결심을 꺾을 수 없었다. 나는 딸과 엄마의 손을 포개어 손에 쥐고 말을 이어갔다. “삶은 여행이라잖아요. 이제 집으로 여행을 떠나는 겁니다. 여행에는 늘 변수가 생기고, 자는 것도 먹는 것도 모든 것이 불편하겠지만 목적이 있으니 사람들은 고생을 감수하고 떠나는 거겠죠. 집에 가시게 되면 꼭 그 목적을 이루세요. 저희가 지켜드릴게요.” 그는 퇴원을 하고 3주 정도를 집에서 보냈다. 중간에 오한과 고열이 발생해 응급실로 실려온 적이 있었지만, 응급처치만 받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 ‘해야 할 일’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입원하지 않고 가정호스피스를 통해 해열제와 항생제를 투여하면서 다행히 발열은 안정됐다. 그리고 내가 가정호스피스팀과 함께 그의 집을 방문했던 어느 날 그는 아파트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거실 창가의 침대에 누워 나를 반겼다. 평소 차분한 그였지만 이날은 왠지 유난히 들떠 보였다. 친정엄마에게 선생님 좋아하시는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내려서 드리라고 계속 채근을 했고, 커피를 내가 다 마시자마자 수정과도 준비했다며 다시 엄마를 재촉했다. 어떻게 지내냐는 내 말에, 처음에는 콧줄을 달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 아이들이 충격을 받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다시 돌아온 엄마를 아이들은 반겼고, 심지어 이제는 절대 떠나지 말라며 아이들이 팔목에 수갑 같은 팔찌를 채워놓았다며 웃었다. 나는 그에게 미소로 화답하며 그 ‘해야 할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고 찬찬히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 그는 내게 말했다. “주문한 피아노 내일 집에 들어와요.” 퇴원 후 그는 바람에 날려갈 듯한 그 앙상한 몸으로 매일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동화책을 읽어주고, 작은 전자 피아노로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엄마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 전 꼭 한 번 건반 피아노의 맑은 소리로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내일이면 그게 현실이 될 것이기에 그는 들떠서 환히 웃고 있던 것이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그의 얼굴이었다. 그 환한 웃음을 남겨두고 일주일 뒤 새벽 그는 하늘나라로 부름을 받았다. 우리 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렸기에 나는 다음날 우리 호스피스 팀원들과 조문을 갔다. 그의 친정엄마는 우리 가정호스피스 간호사 선생님을 부둥켜안고 한참을 흐느끼며 울었다. 그 옆에서 고인의 남편도, 여동생도, 그리고 시부모님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다 함께 그에 대한 추억을 하나씩 꺼내 놓으며 나누다 보니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얼굴에 어느새 환한 웃음이 지어졌다. 비록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우리 모두가 함께 극복하고 새롭게 도전했던 시간들은 돌아보니 분명 해피엔딩이었다. 슬픔이 비극과 상처로 남지 않고 웃음과 위로로 추억되는 이 순간이 호스피스를 하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선물이고 보람이다. 장례식장을 떠나며 남편과 악수하며 말했다. “마지막까지 아이들 곁을 지켰던 엄마의 용기를 아이들이 커가면서 분명 깨닫게 될 거예요. 그 용기는 고스란히 남아 평생 아이들의 삶을 지탱해 줄 겁니다.”
- 2023-12-1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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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추기’ 여성 갱년기, 질병 도미노처럼 발생… 적절한 치료법은?
- 흔히 50세 전후 찾아오는 갱년기를 사추기(思秋期)로 부르곤 한다. 청소년기에 주로 나타나는 사춘기(思春期)에 빗댄 표현이다. 실제 이때는 사춘기처럼 신체, 정신, 환경적 변화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특히 여성은 이 시기 성호르몬 분비가 감소하면서 월경이 멈추고 생식 기능을 상실한다. 물론 남성 역시 갱년기를 겪는다. 다만 여성에 비해 치료가 필요한 경우는 드물고, 주로 성기능이 떨어지는 수준에 그친다. 이러한 변화의 가장 큰 원인은 폐경이다. 폐경은 마지막 월경 후 1년 이상 생리를 하지 않는 경우 진단된다. 난포 자극 호르몬(FSH) 검사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또 폐경 전 월경 주기의 규칙성이 사라지는 시기부터 실제 폐경에 이르기까지를 폐경 이행기라고 부르는데, 이 시기에는 빈발 또는 과다 월경과 함께 열성 홍조 등 혈관운동증상이 흔히 나타난다. 보통 45세에서 55세 여성의 75%가 폐경 증상을 호소하게 되는데, 이는 비교적 넓은 연령대의 여성들에서 폐경기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송희경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50세 전후 찾아오는 갱년기는 특히 여성에 있어 신체와 심리적으로 큰 변화를 동반하게 된다”며 “국내 여성의 기대수명이 2021년 기준 86.6세임을 감안하면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는 사추기의 건강관리에 앞으로의 따스한 30여 년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원인은 ‘폐경’…급격한 신체·심리적 변화, 질병 이어져 갱년기가 되면 먼저 월경이 불규칙해지고 양도 일정치 않게 되다가 결국 폐경에 이르게 된다. 주름살이 부쩍 늘고 질도 건조해진다. 신경이 예민해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쉽게 내고, 기억력과 집중력도 떨어진다. 또 자신감을 잃고 우울해지기 쉽다. 더불어 질병 발생이 도미노처럼 이어진다. 폐경 초기 여성의 75%는 열성 홍조와 야간 발한을 경험하고, 50대 중반엔 급격한 기분 변화, 기억력 감퇴, 성기능 장애 등을 겪다가 후반엔 골다공증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이유 없이 우울한 기분이 지속하기도 한다. 특히 이 시기는 자녀가 집을 떠나는 시기와 맞물려 더 심해진다. 질과 요로계도 영향을 받는다. 점막이 얇아지고 건조해지며 탄력성을 잃고 위축된다. 호르몬 부족 상태가 계속되면 질은 더욱 건조해져 성관계 시 통증이 생기고 손상을 받거나 감염되기 쉬운 상태가 돼 자연히 부부관계를 피하게 된다. 아울러 폐경 후에는 여성호르몬 감소로 요로 상피가 얇아지고 탄력성이 감소하며 방광을 지지하는 조직의 이완으로 방광 조절 능력이 떨어진다. 소변을 자주 보게 되고 밤에도 여러 번 일어나 화장실을 찾게 된다. 또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자신도 모르게 소변이 나오는 긴장성 요실금이 나타나고 요도염이나 방광염에 쉽게 노출된다. 골다공증도 조심해야 한다. 골다공증은 갱년기 증상 가운데 가장 심각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이다. 폐경 후 여성호르몬 결핍의 결과로 골의 교체 속도가 증가하고 골 흡수와 형성 사이의 불균형이 커지지는 것이 원인이다. 폐경 1년 전부터 골 소실이 급격히 증가하고 그 후 3년 동안 지속된다. 골 손실이 많이 일어나는 부위는 척추, 대퇴부, 골반부, 장골 등이다. 송희경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골다공증이 심하면 척추에 압박 골절이 생겨 요통이 생기고 신장이 줄어들거나 등이 굽기도 한다”며 “특히 전에는 미끄러지면 고작 멍이 들었을 정도도 골다공증이 심한 경우 대퇴부 골절이 발생하게 되는데, 사망률이 약 15%에 이를 정도로 치사율이 높다”고 경고했다. 적절한 여성호르몬 치료, 폐경 후 삶의 질 높여 여성 갱년기 치료는 주로 부족해진 여성호르몬을 보충하는 방법으로 진행한다. 초기 안면홍조, 발한, 수면장애 등은 먹는 호르몬 대체 요법으로 어느 정도 개선이 가능하다. 질 점막이 얇아지고 질이 좁아지며 건조해져 성생활에 불편을 느낀다면 여성호르몬 질정이나 크림을 주기적으로 사용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규칙적인 운동, 체중 조절, 뜨겁거나 자극적인 음식 피하기, 금연 등으로 안면홍조는 어느 정도 감소시킬 수 있다. 특히 운동으로 인한 근력 강화는 골밀도를 증가시켜 골밀도 감소에 의한 골절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걷기, 등산 등을 추천한다. 또 햇빛을 하루 10분 이상 쬐어주고 칼슘이 풍부한 식이를 통해 비타민 D와 칼슘의 부족량을 채워주는 것도 뼈 건강에 도움이 된다. 가족들의 도움도 필요하다. 미리 갱년기 증상에 대해 가족과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떨어지는 기억력은 냉장고에 메모지를 붙이는 등 보완하려고 노력하고, 요실금은 평소 케겔 운동으로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소변을 보다가 멈춘 듯 골반 근육을 10초간 수축, 10초간 이완하는 운동을 반복적으로 시행한다. 폐경 호르몬 요법의 시작은 그 시기가 중요하다. 폐경 후 10년 이내 또는 60세 미만에 시작해야 한다. △진단되지 않은 질출혈 △자궁내막암 같은 에스트로겐 의존성 악성 종양 △유방암 △활동성 혈전 색전증 △활동성 간 질환 또는 담낭 질환을 앓고 있지 않는 사람이 대상자가 될 수 있다.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호르몬 치료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유방암의 잠재적 위험성이 증가할 수 있다. 또 관상동맥질환이나 다른 질병과 관련된 사망이 폐경과 가까운 시점에 호르몬 치료를 시작할 땐 감소할 수 있지만, 60세 이상 또는 폐경 후 10년, 특히 20년 이상 지난 시점에서 호르몬 치료를 시작한 경우에는 관상동맥질환, 정맥혈전 색전증, 뇌졸중의 절대 위험도가 높아질 수 있다. 송희경 교수는 “호르몬 치료는 폐경기 여성의 삶의 질을 증가시키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적절한 시기에 시작하고 정기적인 검사와 전문가의 평가가 동반돼야 안전하게 시행할 수 있는 만큼 산부인과 전문의와 상담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2023-12-0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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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현실이 말기환자에게 따뜻하지만은 않은 이유
- “손에 돈을 쥐고 있으면 병원에서 문전박대 당하진 않을 거라고 믿었어요.” 어머니는 딸 앞으로 암보험, 실비보험 등 보험만 4개를 들었다고 했다. 40대 초반의 딸은 유방암으로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항암치료를 했지만 결국 말기 환자가 됐다. 주치의는 집 근처 호스피스를 알아보라고 했는데 모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남편과 이혼 후 홀로 키운 딸이고, 모녀가 함께 살 집 장만을 위해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여태껏 죽도록 일만 한 딸이었다. 그리고 딸은 오래된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암이 발견됐다. 집 근처 병원을 마다하고 서울의 유명한 대형병원을 찾아가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그날부터 담당 교수는 신이었고, 병원은 신전이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모녀는 살아남기 위한 갖은 고생 외엔 딱히 행복을 느낄 여유조차 없는 삶이었기에 딸의 암진단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건강보험이 되지 않는 새로운 항암치료를 대비해 여러 가지 보험을 들었다. 그 어떤 가능성도 놓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암의 진행은 멈추지 않았고, 임상시험 치료까지 참여했지만, 야속하게도 암세포가 척추까지 퍼져 딸은 하반신 마비가 진행됐다. 그러자 주치의는 치료 중단과 함께 퇴원을 요구했다. 대신 집 근처 호스피스를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모녀는 떠밀리다시피 퇴원을 했다. 딸은 평생 일해 장만한 그 오래된 아파트에서 눈을 감는 게 소원이었다. 그래서 호스피스는 가지 않고 집에서 지냈다. 일어나 걸을 수도 없는 딸을 보며 어머니는 매일 눈물을 흘렸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은 고열과 함께 오한으로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의식도 흐려지는 것 같아 놀란 어머니는 119를 불렀고 근처 병원으로 이송하려 하자 딸은 서울의 대형병원 환자라며 당장 그곳으로 가달라고 졸랐다. 응급실에는 4일을 머물렀다. 각종 검사가 다시 진행됐고, 요로감염이라며 항생제 처방과 함께 퇴원이 결정됐다. 하지만 너무 놀란 어머니는 입원을 원했다. 그러나 병실이 없다며 거절당했고 담당 교수는 끝내 얼굴조차 볼 수 없었고 대신 젊은 전공의는 왜 호스피스를 가지 않냐 재촉했다. 단 한 번도 거부나 주저함 없이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이제와서 버려진다고 생각하니 배신감이 밀려왔다. 문전박대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택시를 타고 그 병원을 떠나면서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겠다고 모녀는 다짐을 했다. 그렇게 한강변을 달리던 택시 차창 밖으로 다른 병원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도저히 다시 집으로 돌아갈 엄두가 안 나 입원을 부탁할 요량으로 택시를 돌려 무작정 그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다행히 그곳에는 호스피스 병동이 있었고 때마침 병실도 하나 비어 있어서 바로 입원을 할 수 있었다. 생각지도 않은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게 된 그 날의 상황을 나중에 모녀는 신의 인도라고 말했다. 마치 길을 잃은 나그네가 안식처를 만난 것처럼 그들은 그곳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일일이 그곳의 간호사와 자원봉사자 이름을 거론하며 그곳에서의 추억을 내게 풀어냈다. 그곳에서 2주가량을 쉰 후 딸은 다시 그 오래된 아파트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불안해하는 어머니에게 그곳 호스피스에서는 가정형 호스피스를 제안했다. 호스피스를 운영하는 집 근처 병원의 가정형 호스피스를 신청하면 집에서도 통증 조절과 영양수액 등 의료적 처치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줬고, 그렇게 이 모녀는 내게 연결됐다. 우리 병원 호스피스팀은 딸이 마지막 눈을 감을 때까지 정기적으로 딸이 평생을 바쳐 장만한 그 아파트를 방문했다. 우리가 방문할 때마다 어머니는 어김없이 딸이 우수사원이 되어 받은 상패를 꺼내 어루만지면서 그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를 말했다. 그리고 왜 억척스럽게 살아온 자신들에게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눈물을 쏟아냈다. 그 다음은 어김없이 자신들을 버린 서울의 대형병원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차라리 용기 있게 의미 있는 마지막 시간을 갖도록 일찍 안내했으면 증오가 덜 했을 텐데, 계속해서 새로운 치료를 제안하며 희망을 주었던 것들조차 이제 모두 원망스럽다고 했다. 여전히 상심과 원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녀를 보며 우리는 안타까웠다. 우리 호스피스팀은 후원회의 도움으로 두 모녀에게 바다가 보이는 멋진 호텔에서의 추억 여행을 선물했다. 그리고 얼마 후 딸은 그 오래된 허름한 아파트에서 어머니와 친척들 가운데 눈을 감았다.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어머니는 그 집이 너무 싫어 팔고 이사를 갔다고 했다. 나는 여전히 돈을 쥐고 있으면 병원에서 문전박대 당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는 어머니의 말이 떠오른다.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대형병원과 담당 교수로부터 버림받았다며 ‘배신자’라는 말을 입에서 놓지 않던 딸의 목소리도 귓가에 맴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지방에서 서울로 몰려드는 암환자가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병실이 없어 대형병원 옆에는 지방 환자들이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위해 수일에서 수주 간 머물다 가는 고시원 같은 환자방이란 게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대형병원은 전국에서 몰려오는 암환자로 호황을 누리며 수도권에 큰 규모의 분원들을 건립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로 서울로 몰려드는 환자 중에 완치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셀 수 없는 말기환자들도 함께 발생하고 있다. 대형병원들은 암센터를 키우고 분원도 새로 건립하면서 그 말기환자에게 일말의 따뜻함을 건넬 수 있는 작은 호스피스 병동을 만드는 것에는 왜 그리 야박한 것일까? 지금도 암환우 카페에 들어가면 말기진단 후 쫓겨나듯 퇴원하는 환자와 가족들의 서러움 담긴 글들이 끝없이 올라온다. 갑자기 다큐멘터리 일본영화 ‘엔딩 노트(Ending Note)’의 한 대사가 떠올랐다. 주인공은 69세의 말기위암환자다. 그는 선거에서 평생 지지했던 여당 대신 처음으로 야당에게 표를 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암 환자에게 따뜻하길” 병원과 의사들은 수술도 함암치료도 하지 않는 말기암환자들에게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 2023-10-2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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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의료 현장에서 만난 노년기의 우울과 사회적 고립
- 70대 중반 여성이 딸과 함께 진료실로 들어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지럼증과 피로, 불면, 식욕부진을 호소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다고 딸이 대신 말을 했다. 환자인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다. 의자에 앉아 넋이 나간 듯 멀거니 진료실 바닥만 내려다보신다. 그에 비해 딸은 약간 격앙돼 있다. 이런 어머니의 상태에 걱정이 큰 것 같다. 나의 첫 질문은 언제부터 이런 증상이 있었냐는 것이었다. 딸은 올해 초 그러니 거의 9개월이 다 되어 가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인즉슨 이미 다른 병원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질문으로 어떤 병원을 방문했고, 또 어떤 검사들을 받았냐고 물었다. 역시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고 딸이 대신 답을 한다. 어지럼증 때문에 머리 MRI(자기공명영상) 촬영도 했고, 혹시 암일까 걱정돼 위내시경에 복부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도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특성상 병이 진단됐건, 그렇지 않건 병원을 방문해 불편감을 호소하는 분에게는 무조건 약 처방이 나간다. 그러니 자연스레 그 다음 질문은 어떤 약들을 먹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역시나 동네 신경정신과 의원에서 불면증과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고 했다. 이제 어머니는 왜 1년여 전부터 이런 우울감과 더불어 온몸의 기운이 모두 빠져나가 버린 병을 겪게 되신 건지 천천히 파헤쳐야 한다. 고령화 사회에 들어선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어머니는 현재 그럼 누구랑 함께 지내고 있느냐는 것이다. 내내 높은 목소리로 답을 하던 딸이 잠시 침묵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혼자 지내신다고 했다. 작년 11월 남편과 사별한 후부터 쭉 혼자 지내오고 계신다고 말했다. 환자는 거의 20여 년간 뇌졸중으로 누워지내는 남편을 돌봐왔다. 작년 말 남편이 세상을 떠남과 동시에 이 세상에서 그의 역할 역시 사라져버렸다. 마치 20년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한 느낌이랄까. 아마도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심각한 것은 이제 자신의 숨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텅 빈 집이었다. 이제 환자의 목소리를 들을 차례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슨 일을 하시나요?” 환자는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혼자 지내면서 언제부턴가 식사를 차리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심지어 잠을 자는 것도 살기 위한 모든 것이 무의미해져 버린 것이다. 조심스레 따님에게 어머니를 모시고 살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딸은 당황해했다. 형제는 3남매지만 누구 하나 형편이 여의치 않아 홀로 남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기 어렵다고 했다. 급기야 딸이 말했다. “그냥 입원시켜 주시면 안 돼요?” 입원해서 MRI든 CT든 다시 모든 검사를 다 받더라도 반드시 원인을 찾고 싶다고 했다. 나는 구태여 불과 몇 달 전에 한 그 검사들을 다시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아마도 어머니의 가장 큰 고통은 외로움인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아마 딸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 수 개월간 여러 병원을 함께 다니면서 나와 같은 얘길 한 의사가 있었을 테니 말이다. 나는 다시 환자에게 시선을 돌려 질문을 했다. “그래서 식사는 어떻게 드시나요? 목 안으로 넘어가는 음식은 있으신가요?” “혼자 있는데 뭘 차려 먹습니까. (딸을 가리키며) 가끔 이 애가 와서 같이 먹을 때나 밥술이 넘어가지...” 자녀들이 다 독립해서 집을 떠나고 단 둘만 남은 노부부 중 먼저 한 명이 떠나면 나머지 한 명의 삶은 참 고독할 것이다. 그렇다고 자녀들이 와서 다시 돌보기도 쉽지 않다. 딸도 알고 있다. 선택지는 결국 노인요양시설이라는 것을. 그러나 차마 그러고 싶지 않아서 대학병원 진료실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왔을 것이다. 누굴 비난할 수도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맞아야 할 미래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거의 20여 년째 우리와 경제 수준이 비슷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자살률 특히, 노인 자살률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 노인 빈곤율 또한 독보적인 1위다. 우리는 젊은 날 자식들의 사교육과 재테크를 위한 주식, 부동산에 온통 시간을 보내면서 결국 우리가 늙었을 때 어떻게 지낼 지에 대해서는 어떤 관심과 공부 그리고 계획도 세우지 않는다. 다들 막연히 은퇴 후에는 여행이나 다녀야지 하는 뻔한 말뿐이다. 그래서 한국인의 노년은 참으로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것은 낮은 출산율만큼이나 노년기의 우울과 사회적 고립에 대한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을 병으로 치부하고 병원으로 달려오게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 2023-10-0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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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우 인천성모병원 의무원장, ‘치매극복의 날’ 국민포장 수상
- 정성우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의무원장(신경과 교수)이 지난 21일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16회 ‘치매극복의 날’ 기념행사에서 정부포상으로 국민포장을 받았다. 국민포장(國民褒章)은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 분야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이나 기관에 수여하는 상훈을 말한다. 정성우 의무원장은 “현장에서 다양한 치매환자를 치료하면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인천광역치매센터의 운영 가치를 지역사회 치매 예방과 인식 개선, 인간중심 돌봄 역량 강화에 두고 역량을 집중해 왔다”며 “앞으로도 임상과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통합적 관점에서 치매안심사회 구축에 맡은 바 소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치매극복의 날은 매년 9월 21일로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알츠하이머협회(ADI)가 가족과 사회의 치매환자 돌봄을 새롭게 인식하기 위해 지정한 기념일이다. 치매와 두통 등 뇌 질환 분야 권위자인 정성우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의무원장은 2019년 12월부터 인천광역시광역치매센터장을 맡아 2020년과 2021년 전국 광역치매센터 사업평가 1위, 우수사례 경진대회 2년 연속 최우수상 수상 등을 이끈 공로가 인정됐다. 또 전국에서 65세 미만 치매환자의 상병 비율이 가장 높은 인천 지역의 특성을 감안해 노인성 치매에 비해 사회적 인식과 지원이 부족한 65세 미만 치매환자와 가족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뇌건강학교)를 개발하고, 인간중심 치매돌봄 기법인 ‘휴머니튜드’ 도입에 앞장서는 등 치매극복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왔다. 아울러 정성우 의무원장은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신경과 교수로 25년 넘게 재직하면서 2018년 국내 최초 뇌병원 개원부터 현재까지 뇌병원 원장을 역임하는 등 치매를 포함한 뇌 질환 치료에매진하며 임상과 연구 영역을 아우르는 전문가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 2023-09-22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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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의사의 눈으로 바라본, 인생 전반 40년과 후반 40년
- #1동료와 담소를 나누는데 고등학생 두 자녀의 걱정이 크다. 고3 아들은 키가 훤칠해서 일찌감치 남자승무원이 되겠다고 진로를 정했다. 자신감이 있는지 열심히 놀러 다닌다고 했다. 반면 고1 딸은 하고 싶은 게 없다며 늘 시무룩하며 공부에 열심인데 성적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농담이겠지만 가끔 공부도 지치고, 장래 희망도 없고, 자기 적성이 뭔지 몰라 종종 죽고 싶다고 푸념을 한다고 한다. #2어느 날 진료실에 55세 남자 환자가 찾아왔다. 이유는 의욕이 없고 늘 피곤하다는 것이었다. 매년 회사에서 건강검진을 하는데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회사 임원으로 삶의 안정을 이룬 상태였지만,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고, 회사를 갈 의욕도 없다고 했다. 특히 1년 전 흔히 말하는 오십견이 오면서 정형외과 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는데, 그 이후로 피로감이 더욱 심해졌다고 했다. 인생을 먼저 살아본 노인들의 지혜를 모아 정리한 노년 연구들이 있다. 그리고 인간의 일생을 추적해서 행복과 건강에 대한 비결을 찾는 연구도 있다. 그런 과학적인 연구들뿐만 아니라 실존 철학자들은 인간 본질과 삶의 의미를 집요하게 탐구해 왔다. 이 모두를 통합해보면 인생은 두 단계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생존을 위해 집단 속에서 경쟁하는 인생 전반기와 나머지 하나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홀로 고뇌하는 삶의 후반기다. 하이데거는 인간이란 어떤 목적도 가치도 없이 세상에 던져지듯 태어난다고 말한다. 탄생의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가면서 자신의 존재 가치와 이유를 찾아야 하는 과업으로 일상을 살아간다. 일단은 안정적으로 살아남아야 의미를 일굴 기회를 가질 수 있기에 부모의 보호 아래서 자립의 훈련을 받는다. 학교란 안정적인 생존을 가르치는 훈련기관이며, 현대사회에서 적자생존의 경쟁은 성적을 통해 가름 짓는다. 타고난 신체로 도전해 볼 수 있는 진로를 찾은 동료의 아들은 마치 쉽게 생존할 수 있는 길을 찾은 냥 한시름 놓은 듯하다. 반면 아직 자기 진로를 정하지 못한 딸은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 상황에 몸과 마음이 모두 짓눌린 듯 보인다. 인생이 어디 호락호락할까. 당장 눈앞의 길이 풀리건, 막히건 막상 세상살이를 겪으면 매일이 불확실이고 생존이란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앞날의 불확실함이란 우리 인생 그 자체다. 은퇴를 5년 앞둔 중년 남성은 생존의 안정을 이뤘으나, 이제 노화에 대한 불안에 휘둘리는 듯하다. 오십견은 단순한 어깨의 통증을 넘어 그의 삶의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왔음을 깨닫게 했다. 은퇴 이후 삶에 대한 자각은 마치 어느 날 깨어보니 차가운 아침 공기에 계절의 변화를 느끼듯 미처 대비하지 못한 서운함일 것이다. 요즘 세상에는 생존 경쟁을 위한 정보와 기술들이 넘쳐난다. 현대인들은 자녀들의 대학 진학을 위한 사교육 정보부터 취업과 결혼, 출산, 육아, 부동산과 주식까지 경제적 안정과 우월한 사회적 지위를 삶의 성공이라 믿으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러나 아무리 생존 경쟁에서 성공을 거둬도 우리가 하루하루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삶의 덧없음을 메워주진 못한다. 죽음에 대한 사색은 물질적 성공보다는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결국 인생의 결말이란 언젠가 마주하게 될 자신의 죽음 앞에서 덤덤히 만족을 고백할지 아니면 공포에 몸부림칠지 둘로 나뉘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인생은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뉜다. 열심히 경쟁해 생존해야 하는 전반전과 그리고 삶의 의미를 위해 고독하게 자신과 마주해야 하는 실존의 후반전이다. 세상이 정해놓은 계단은 중년까지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도 삶의 후반전에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지혜를 나누지도, 깊이 있게 알려주지도 않는다. TV와 같은 대중매체도 늘 육아와 부동산, 재테크에 대한 프로그램은 넘치지만, 노년의 삶의 만족과 죽음에 대한 준비에 대해서는 부정하다는 듯 다루지를 않는다. 생존에 성공했다면 이제 어떤 의미를 남길지 자신만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 철학자들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실존이라고 말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군부독재시기까지 숱한 삶의 격변 속에서 생존이 우선 가치였던 대한민국 국민들의 삶에 결여된 것은 인생 후반기 삶의 의미를 일구며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실존의 문화다. 당신은 준비하고 있는가?
- 2023-07-31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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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식도암 할머니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화분
- 82세 할머니는 남편 사별 후 함께 살자는 자식들의 제안에도 혼자가 편하다며 20여 년을 따로 지내셨다. 남편은 3층 주택을 남겼는데, 1층과 2층은 세를 주고 할머니는 3층에서 살았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꽃을 키우는 것이었다. 1층 화단에는 여러 가지 꽃나무들이 심어있었고, 그것도 모자라 꽃화분들이 1층 대문 앞과 3층 현관까지 이르는 계단에 비단길처럼 쭉 이어져 있었다. 할머니의 일과는 화단과 화분을 가꾸는 것이었다. 그리고 낡은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벌과 나비가 찾아드는 화분을 바라보는 것이 행복이었다. 어느 날 음식이 삼켜지지 않고 자꾸 구토를 해 병원을 찾아간 그는 식도암 진단을 받았다. 나이도 있고, 암도 넓게 퍼져있어 수술과 항암치료를 포기했다. 그의 소원은 화분을 가꾸는 일상을 살다 세상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았다. 먹지 못해 살이 빠지고 기력이 없어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어려웠다. 암 진단 후 근처 사는 50대 후반 큰딸이 3층 집에 들어와 함께 살았는데, 그는 종일 딸에게 짜증을 냈다. 할머닌 왜 인생 말년에 자신에게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 죽진 않겠다고 가정형 호스피스를 신청한 그는 그의 집을 찾아간 내게 끝없이 하소연을 했다. 세상도 하늘도 모든 것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큰딸의 무력감도 컸다. 삶을 비관하며 누워 신음하고 짜증만 내는 어머니 옆에 있는 것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어떤 음식도 삼킬 수 없는 어머니를 두고 차마 밥을 넘기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너무 컸다. 딸은 간절하게 무엇이든 어머니에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대한민국 어디든 마지막 효도 여행이라도 가고 싶었다. 그러나 할머닌 딸의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그저 종일 침대에 누워 끙끙거릴 뿐이었다. 우리 가정 호스피스 팀이 그 댁을 방문한 날 딸은 우리와 대화하던 중 그동안의 속상함과 서러움에 복받쳐 왈칵 눈물을 쏟았다. 나는 간신히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온 할머니에게 소원이 있는지 물었다. 할머니는 단호하게 두 가지를 말했다. 얼음물 한 모금을 시원하게 삼켜보는 것과 1층부터 3층까지 가지런히 놓인 자식 같은 화분들을 다시 가꾸는 것이었다. 자녀들은 멋진 경관이 펼쳐진 곳으로 추억여행을 다녀오자고 했지만 그는 자신이 가꾼 화분들보다 더 어여쁜 것들은 세상에 없다고 했다. 남편과 사별하고, 분가한 자녀들이 가정을 이뤄 각자의 바쁜 삶을 사는 동안 할머니를 위로하고 삶의 의미가 되어 준 것은 화단과 화분들이었다. 1층부터 3층까지 이어진 화분들은 그의 시간들이었고 바로 자신이었다. 그래서 모든 제안과 도움을 거절당해 서운할 대로 서운한 딸에게 좀 힘들겠지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저 화분들과 꽃들이 바로 어머니의 분신이자 정체성이니 어머니를 대신해서 화분들을 열심히 가꾸면 어떻겠냐고. 그리고 1, 2층으로 내려가지 못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매일 화분들을 3층으로 옮겨 어머니가 현관에 의자를 두고 감상하도록 해드리자고 말이다. 그날 이후로 어머니는 영양수액을 달고 의자에 앉아 현관에서 매일 자신이 하나하나 가꿔왔던 화분들을 다시 바라볼 수 가 있었다. 그러다가 배에 복수가 차고 기력이 더 떨어지던 어느 날 호스피스 병동으로 입원을 했다. 병원에서도 병동 옥상에 있는 정원을 무척 좋아하셨다. 매일 휠체어를 타고 정원으로 올라가 벤치에 누워 꽃을 바라보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다. 어느 날 그는 간병을 위해 함께 병원에 들어온 딸에게 사방이 꽃과 나무로 둘러싸인 이곳이 천국 같다고 했다. 그 말에 딸은 다시 왈칵 눈물을 쏟았다. 두 주가 흘러 할머니는 이제 정원마저 갈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이 쇠해지고 종일 깨지 않고 잠만 주무셨다. 나는 지난 토요일 아침 회진을 돌며 작은 목소리로 따님에게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조용히 할머니를 보며 손을 잡아 드렸는데, 할머니께서는 언제부터 깨어 계셨던 걸까. 눈을 감은 채로 내 손을 자신의 얼굴로 가져가시더니 내 손에 입을 맞추셨다. 한동안 그렇게 내 손을 꼭 쥐고 놓지 않으셨다. 그 광경을 본 딸이 깜짝 놀라 “엄마!”하며 탄성을 내질렀고, 주변에 다른 환자 보호자들도 할머니의 침대 곁으로 몰려와 내 손에 입 맞추는 할머니를 보며 함께 전율했다. 그리고 사흘이 지나 오늘 새벽에 할머니는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유족들은 우리 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정하였기에 나는 오후에 호스피스 팀원들과 함께 조문을 갈 수 있었다. 따님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다른 가족들에게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우리 엄마한테 뽀뽀 받은 선생님이셔.”
- 2023-06-30 0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