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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좋은 봄날, 전주한옥마을에 사람들이 그득하다. 내로라하는 관광 명소답다. 지난 한 해에 찾아온 관광객이 자그마치 1500만여 명이었다니 말 다했다. 한나절의 눈요기와 입요기만으로도 전주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 먼 길 마다 않고 달려오는 이들이 많다. 한때 상혼에 치우쳤다는 핀잔도 들었다. 그러나 문화공간과 체험 프로그램이 늘어 균형이 잡혔다. 바야흐로 문화 요소를 결여한 관광지는 찬밥 신세로 추락하기 쉬운 시대다. 사실 전주한옥마을엔 전주의 역사와 문화가 달걀노른자처럼 박혀 있다. 겉은 상업의 성황으로 요란하지만, 속엔 역사 유산의 광량이 깃들어 찬연하다.
경기전(慶基殿)으로 들어선다. 이곳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1335~1408)의 어진(御眞, 임금의 초상화)을 봉안한 공간이다. 이성계의 아들 태종 이방원이 1410년에 지었다. 천하를 호령한 절대 권력자를 그린 어진은 단순한 추모의 수단이 아니었다. 임금 그 자체로 간주됐다. 어진이 있는 곳엔 임금이 머문 것과 맞먹는 수준의 위상이 부여됐다. 왕실의 영속을 기원하는 성역이었다. 따라서 경기전의 규모부터 웅장하다. 우람한 나무들과 대밭이 있는 정원은 운동장처럼 널찍하다. 경기전의 핵심은 공간 중앙부에 조성된 정전(正殿) 구역이다. 홍살문으로 들어가 외삼문(外三門)과 내삼문(內三門)을 통과하자 본전인 정전에 닿는다.
경기전은 한마디로 왕실 사당이다. 태조의 넋을 기리는 제례가 거행되었던 곳으로 신성불가침 영역이다. 정전으로 이어지는 외삼문과 내삼문을 혼령이 드나드는 문, 즉 신문(神門)이라 불렀다. 이 문들엔 기둥으로 분할한 세 개의 통로가 있다. 중앙에 있는 통로는 아무나 다닐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혼령이 출입하는 신도(神道)니까. 바깥쪽 두 통로는 인도(人道)로 쓰였다. 예교(禮敎)를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삼았던 시대의 종묘에 적용된 법식이 이렇게 엄격했다. 통로 끝엔 정전이 있고, 정전 한가운데 감실을 만들어 태조의 어진을 모셨다. 감실 안엔 부용향을 담은 향 주머니를 넣어 냄새와 습기와 해충을 잡았다. 화재를 막아주는 벽사(辟邪) 용도로 설치한 두 가지 장치도 위트가 있어 눈길을 끈다. 하나는 지붕 아래 붉은 풍판에 조각한 상서로운 동물, 거북 두 마리. 다른 하나는 마당에 가지런히 놓인 6개의 무쇠솥인데, 이건 방화수를 담는 용기로 ‘드므’라 부른다. 지붕을 타고 내려온 화마(火魔)가 솥을 채운 물에 비친 자신의 살벌한 모습에 놀라 스스로 달아나게끔 설치한 구조물이라 하니 재미있다.
뭐니 뭐니 해도 관심 가는 건 태조 어진이다. 세조 때의 문신 신숙주가 쓴 ‘영모록’에 따르면 태조 어진은 무려 26점이나 됐다. 말을 탄 초상도 있었단다. 그러나 현존하는 건 경기전에 남은 어진이 유일하다. 이 어진은 원래부터 경기전에 있었던 원본이 오래되어 낡고 해지자 1872년에 원본 그대로 베껴 그린 작품이다. 당대의 우뚝한 화가 8명이 합작해 그렸다. 이렇게 부활한 태조 어진의 진본은 현재 경기전 후원의 어진박물관에 소장됐고, 정전엔 복제본을 봉안했다. 망가진 원본은 항아리에 담아 정전 뒤편에 묻었다지.
조선의 왕들은 하나같이 하늘에 맞먹을 지존으로 섬김을 받았다. 그러나 조선을 세운 태조를 능가할 만한 공경의 대상은 아예 존재할 수 없었다. 태조의 어진 봉안처만 해도 여러 곳이었다. 서울 문소전, 평양 영숭전, 개성 목청전, 경주 집경전, 전주 경기전 등에 각각 어진을 두었다. 그런데 오직 전주의 어진만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전주를 ‘조선의 발원지’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주는 전주 이씨 이성계의 본향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조선의 뿌리가 전주에 박혀 있다는 얘기, 이거 빈말이 아니다.
어진에 드러나는 태조의 모습을 볼까. 그의 실제 키가 180cm에 달했다던가. 초상을 척 봐도 기골이 장대하다. 청색 곤룡포를 입고 바위처럼 묵직하게 앉아 정면을 응시한 틀거지에 포스가 넘친다. 혁명 군주다운 도도한 기상을 테마로 삼아 초상을 그린 것 같다. 곤룡포와 용상엔 용틀임하는 금빛 용들을 연쇄적으로 집어넣어 군왕의 위엄을 돋우었다. 능란하게 휘저은 붓놀림의 자취도 볼 만하다. 색조를 달리한 배색으로 얼굴에 음영을 넣어 살짝 입체감을 살렸다. 오른쪽 눈썹 위에 묘사한 사마귀는 이 어진이 리얼리티에 충실한 그림임을 알게 한다.
풍남문에 걸렸던 순교자들의 머리
경기전 건너편엔 ‘호남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서양식 건물’이라는 전동성당이 있다. 경기전 답사를 마친 사람들의 발길은 대부분 자연스럽게 전동성당으로 이어진다. 저만치서 바라보이는 돔 부위만으로도 아름다워 자력에 끌린 양 성당 정문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렇게 해서 성당과 마주하기에 이르면 이젠 심취하게 마련이다. 전동성당의 완벽한 건축미에 반해서. 성당의 고고한 내면성이 느껴져서. 건축가 김광현에 따르면 전동성당은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롱샹 성당이나 독일 뒤렌에 있는 성 안나 성당보다 ‘훨씬 영성적’이다.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에 불과한 나로서는 감히 영성까지 운운하기 어렵지만, 유려한 건축미에 서린 깊고 따뜻하고 순수한 기운에 몸과 마음이 씻겨 내려가는 듯하다.
전동성당의 외벽은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을 배합해 쌓았다. 1908년에 착공, 23년에 걸친 공사로 완성했으니 100여 년 세월이 내려앉은 건물이다. 그러나 세련된 건축 메커니즘과 정교한 디자인이 빼어나 고색을 느끼긴 어렵다. 이 성당이 야기하는 미감은 정면 중앙에 높이 솟은 종탑부와 양쪽 계단 탑의 돔에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성당 내부도 화려하고 장엄하다. 궁륭형 천장의 곡선이 흘러내린 아래편 좌우에 펼쳐진 감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은 어머니의 체온처럼 따사롭다. 성당을 떠받친 기둥 행렬, 수평 또는 수직으로 펼쳐진 벽돌 벽들, 신비감과 안락감을 풍기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등도 빼어나다.
전동성당의 정체성은 무엇보다 순교의 피와 얼이 배어 있는 터에 세운 성소라는 데 있다.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이 신유박해 때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것. 전동성당 코앞엔 풍남문이 있다. 전주의 역사성을 웅변하는 성문으로 반월형 옹성(甕城)이다. 원래 전주성엔 동서남북으로 4대문이 있었지만 풍남문만 남았다. 전주성은 고려 말 1389년에 전라관찰사 최유경이 주도해 지었다. 그는 전주성에서 우거진 축성 솜씨로 숭례문(남대문)을 축조하기도 했다. 그런데 전동성당과 풍남문은 불행한 역사를 공유했다. 효수를 당한 윤지충과 권상연의 머리가 풍남문에 걸렸던 게 아닌가. 한편 순교 터에 전동성당을 지을 때엔 풍남문의 허물어진 성벽 돌들이 성당의 주춧돌로 쓰였다. 굳센 신앙은 세상의 잔인함에 패하지 않는 법. 순교자들의 영혼은 성벽 돌에 얹혀 마침내 전동성당을 이루었다. 성당 사방으로 크리스털처럼 투명한 햇살이 쏟아진다. 천지가 유독 환하다.
나종우 전주문화원 원장
일찍부터 ‘너와 나는 하나’라는 인식이 있었다
“전주시는 흔히 말하는 대로 ‘맛과 멋의 고장’이다. 고유한 음식 문화와 예술의 발달로 형성된 멋을 빼놓고 전주를 이야기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맛과 멋’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과거의 경제적 여유에 그 근원이 있다. 전주는 농산물이 풍성하게 쏟아지는 농업지대였다.”
나종우 전주문화원 원장의 얘기다. 먹거리 풍부한 곡창지대였던 데에서 전주의 문화와 정서가 토착화됐다는 뜻이다. 전주는 한국 최초로 유네스코에 의해 ‘음식 창의도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전통으로 이어진 문화와 예술의 파워 역시 타 도시를 능가한다. 나 원장의 얘기는 전주 사람들의 ‘포용력’에 관한 역사적 근거를 제시하는 쪽으로 이어진다. 그는 원광대 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전주 사람들은 외지인을 격의 없이 품는다. 예부터 ‘더불어 함께’라는 의식을 가지고 삶을 영위하는 풍토가 여실했다. 이는 전주만이 아니라 호남권의 보편적 경향이었다. 가령 고창읍성을 축조할 때 전라도 곳곳에서 사람들이 달려와 힘을 보탰다. 장보고가 완도에 청해진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너와 나는 하나’라는 인식. 거기에서 나온 포용력. 이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과거 전통사회에선 양반들의 지배 문화가 횡행했다. 호남권의 서민 문화는 어떠했다고 보나?
“전라도에선 서민 문화가 발달했다. 예컨대 호남엔 농부들이 일하다가 모여 쉬는 모정(茅亭)이 매우 흔했다. 이는 사대부들이 즐긴 누각 문화가 발달했던 영남권과 다른 양상이다. 임진왜란에 뛰어들어 나라를 지켜낸 서민 출신 의병이 유독 많은 곳도 호남이다. 일찍이 발동한 서민 문화가 민중의식의 싹을 틔웠고, 그게 동학혁명 같은 민권운동으로, 나아가 민주의식으로 발화했다. 전주 특유의 ‘포용력’엔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이 깔려 있다.”
세상은 이기적인 경쟁과 과욕이 만연해 삭막하다. 전주라고 예외일까?
“현대의 한국 사회는 정치적인 힘에 좌우되며 돌아간다. 전주엔 좌절감에 가까운 정치적 소외감이라는 게 있다. 넉넉한 전통적 정서와 자긍심이 흔들릴 정도로. 그래서 문화의 힘, 문화원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우리 문화원은 지역의 뿌리와 자존심을 회복하는 데 쓸모 있는 책자들을 다수 발간했다. 전통문화를 현대적 매력으로 승화할 수 있는 콘텐츠 발굴에도 나서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이 실로 많다. 한옥마을의 역사에서 놓칠 수 없는 대목이 있다면?
“항일의식의 발현으로 한옥마을이 형성된 배경을 알면 좋겠다. 일제강점기 때 전주엔 일본인이 대거 유입돼 집을 짓고 살았다. 전주가 통째 일본인 땅으로 바뀔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전주의 뜻있는 부자들이 나서서 한옥 다수를 지으며 대응했다. 이렇듯 전주를 지키자는 민의의 힘으로 형성된 게 한옥마을이다.”
경기전 내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4대 사고(史庫)의 하나인 전주사고가 있다. 임진왜란 때 소실을 모면하고 유일하게 실록을 보존한 사고다. 전주의 선비와 머슴들이 필사적으로 실록을 지켜낸 덕분이었다. 나 원장은 이 역시 전주의 빛나는 역사 대목으로 꼽았다.
온 가족이 모이는 설 연휴. 집안에만 있기 보다는 전국 곳곳에서 진행하는 축제와 행사를 살펴보고 신명나게 즐겨보는 것 어떨까?
2024년 제28회 설맞이 작은문화축전
장소 국립전주박물관 일원
일정 2월 9~12일
설 연휴 기간 국립전주박물관이 준비한 문화 축전을 만나보자. 전통민속놀이마당, 소망부적찍기, 공예품만들기 등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2024 운현궁 설맞이 민속한마당
장소 운현궁 일원
일정 2월 9~12일
설날을 맞아 운현궁 일원에서 흥겨운 민속한마당이 펼쳐진다. 전통놀이마당, 공예체험마당 등을 비롯해 떡국 나눔 행사도 마련했다.
제11회 양주눈꽃축제 눈썰매장
장소 장흥자연휴양림
일정 2월 18일까지
양주시 장흥자연휴양림에서 온 가족이 눈썰매를 즐겨보자. 가족이 함께 타는 ‘줄줄이 썰매’와 동심을 일깨우는 얼음썰매장도 운영한다.
추억의 그때 그 놀이-청춘 여행 8892
장소 한국민속촌
일정 3월 10일까지
한국민속촌에서 만나는 겨울 한정 축제다. ‘청춘 소개팅’, ‘대학입학 학력고사’ 등 중장년 세대의 추억을 소환할 프로그램들로 풍성하다.
근하신뇽! 새해도 9.81파크와 함께해용
장소 9.81파크 제주
일정 2월 13일까지
9.81파크 제주가 청룡의 해를 기념해 기획한 특별 행사다. 설 연휴 동안은 방문객 중 용띠 고객에게 특별한 선물도 제공할 예정이다.
독자 여러분, 가족과 함께 풍성하고 즐거운 설 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이모코그가 디지털 치료기기 기업 최초로 보건복지부의 ‘혁신형 의료기기 기업’ 인증을 받았다.
이번 인증으로 이모코그는 혁신형 의료기기 기업 인증 표지를 사용할 수 있으며, 의료기기 연구·개발, 해외시장 진출 지원 등 혁신 기업에 대한 다양한 정책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혁신형 의료기기 기업 인증’은 ‘의료기기산업 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에 따라 연구개발 역량과 실적이 우수한 기업을 인증하고 지원해 국내 의료기기 산업 육성 및 활성화를 위한 제도다.
이모코그는 ‘혁신 도약형 기업’으로 인증 받았으며 인증 효력은 지정일로부터 3년 간 유지된다.
혁신형 의료기기 기업으로 선정된 업체는 인증 표지를 사용할 수 있으며 정부 지원 사업 우대와 함께 정부 정책 금융 활용 우대, 우수 기업 포상, 첨단 복합단지 기술 서비스 이용 시 수수료 감면, 해외 의료기관·기업과의 공동 연구 및 해외 임상 시험 지원 등의 지원 혜택을 받게 된다.
노유헌 이모코그 대표는 “이번 인증과 정책 지원을 바탕으로 해외 진출을 가속화할 예정”이라며 “한국 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도 혁신적 기술력을 인정받고 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이모코그는 2021년 설립된 바이오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 기업이다. 치매 예방부터 진단·치료까지 전주기에 걸친 치매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2022년 9월에는 국내 경도인지장애 분야 확증 임상 계획을 승인 받았으며, 2022년 독일에 자사를 설립해 해외 임상 및 글로벌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럽 뿐 아니라 미국, 일본 등으로 진출하기 위해 시리즈B투자 유치에 주력하고 있다.
기부자들은 나서길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좀 도와달라’고 내미는 손길에 곤란해지기 일쑤여서다. ‘붕어빵 아저씨’ 김남수(67) 씨는 인터뷰를 마다하는 법이 없다. 모두를 도울 수는 없지만, 본인을 보고 한 사람이라도 더 기부에 동참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얼굴을 팔겠다는 각오다. 그는 오늘도 외친다. “붕어빵 장수도 기부합니다!”
‘붕어빵 아저씨’는 불특정 다수가 될 수 있지만, 전라북도 익산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익산에서 ‘붕어빵 아저씨’는 한 사람을 가리킨다. 바로 김남수 씨다.
김 씨의 또 다른 이름은 ‘기부 천사’다. 10여 년 전 익산에 터를 잡은 그는 하루에 1만 원씩, 1년 365일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어머니께 배운 작은 기부론
김남수 씨의 일터는 원광대학교병원 정문 맞은편에 있는 ‘쿠키 붕어빵’이다. 쿠키와 빵 사이 절묘한 맛의 조화를 이룬 붕어빵 맛집을 운영 중이다. “우리 집 붕어빵 정말 맛있어요. 겉은 쿠키처럼 바삭하고 속은 빵처럼 부드럽거든요. 붕어빵 하나를 팔아도 나만의 맛을 만들고 싶어서 직접 반죽을 개발했어요. 배합 노하우가 담긴 반죽을 써요.”
붕어빵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는 태도에서 과거 김 씨를 엿볼 수 있다. 한때 그는 레스토랑, 노래방 등 3개 업소를 동시에 운영할 정도로 여유 있는 사업가였다. 남부러울 것 없던 그의 삶은 1997년 IMF 외환위기와 함께 무너졌다. 극심한 불경기에 소비가 얼어붙으면서 매장은 헐값에 남의 손에 넘어갔고 재산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영세민(기초수급자) 신세가 된 건 순식간이었다.
김남수 씨는 전주 지하보도에서 노점을 하며 재기를 꿈꿨다. 계란빵과 오징어 다리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고, 익산으로 가면서 ‘쿠키 붕어빵’을 개발했다. 그즈음 유난히 베풀길 좋아했던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남을 참 많이 도우셨어요. 못사는데도 나눠 먹는 걸 좋아하셨지요. 불만이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어머니의 나눔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그래서 저도 베푸는 걸 좋아하나 봐요.”
지난해까지 김남수 씨가 익산시에 전달한 성금은 3000만 원이 넘는다. 2012년 인연을 맺은 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 있다. 강원도 산불 화재와 메르스 사태, 코로나19 확산 등 나라에 굵직한 일이 발생했을 때는 물론, 익산의 일에도 두 손을 걷어붙인다. 그의 익산 사랑은 시청 직원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신정아 익산시청 복지정책과 주무관은 “익산시를 정말 사랑하는 분”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무척 적극적이세요. 익산시에 일이 있으면 몸이 먼저 움직이시는 것 같아요. 성금이나 물품 기탁도 하시고, 홍보 문구를 제작해 오기도 하시죠. 지난해 ‘다이로움’이라고 밥차 발대식을 할 때는 붕어빵 기계를 가지고 오셔서 300개를 현장에서 구워주셨어요. 김남수 선생님은 기부가 생활이세요.”
정작 김남수 씨는 무엇을 얼마나 기부했는지 알지 못한다. 30여 년 전 전주 오목대 산동네에 사비 100만 원을 들여 난간을 설치한 일, 2004년부터 전주종합사회복지관에 기부해온 일 등을 머릿속 어딘가에 넣어두고 있을 뿐이다. “그동안 얼마를 기부했는지는 잘 모릅니다. 계산하지 않으니까요. 솔직히 나 혼자 한다고 해서 몇 푼이나 되겠어요? 결코 크지 않을 겁니다. 그저 붕어빵 장수도 기부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이 가지지 않아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요. 많은 사람이 동참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금액이 적으면 적은 대로 기부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살면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차원의 기쁨이에요.”
김남수 씨의 기부에는 기약이 없다. 언제까지 기부하겠다는 다짐도 하지 않는다. 1997년 별안간 거리로 내몰린 것처럼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보다 어려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행복을 안고 하루하루 살아가겠다고 했다. “연말에 365만 원을 들고 익산시청 가는 게 재밌어요. 정말 행복해요. 하지만 인생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약하지 않아요. 하루에 만 원씩 내놓지 못할 날이 내일이 될지 모레가 될지, 또 10년 후가 될지 20년 후가 될지 아무도 모르죠. 할 수 있는 날까지 할 생각입니다.”
팬덤에 관한 한 세대 차이나 문화 격차 문제는 잠시 넣어둬도 좋다. 시니어 팬덤은 K팝 아이돌 팬덤 문화까지 섭렵하며 시장에 넓게 손을 뻗치고 있다. 높은 경제 수준과 여유로운 시간으로 무장한 그들의 소비는 뭔가 다르다.
“좋다고 하길래 하루에 2포씩 먹고 있어요.”
2021년 2월 27일 방탄소년단(BTS) 정국의 한마디에 콤부차(차를 발효한 음료) 품절 대란이 빚어졌다. 개인방송 도중에 소개한 중소기업 티젠의 분말 형태 콤부차 한 달치 물량은 3일 만에 바닥 났다. 매출, 수출 모두 급증했다. 3월 첫 주 매출은 전주 대비 500% 증가했고, 수출도 전월 대비 800% 폭증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아미(BTS 팬덤)니까 가능한 일이지만, 아미만 가능한 일은 아니다. ‘영웅시대’로 대표되는 시니어 팬덤의 화력도 못지않다.
자동차부터 죽까지 트롯맨 뜨면 동난다
“시니어 팬덤은 소비 단위가 달라요. 자동차 같은 고관여 상품도 구매하죠. 범위도 넓습니다. 우리 삶 전반에 관련된 제품 소비가 이뤄지고 있어요.” 이현지 유진투자증권 미디어·엔터 애널리스트의 말처럼 시니어 팬덤의 소비는 단위와 범위 모두 남다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쌍용차(현 KG모빌리티)다. 2020년 존폐 위기에 선 쌍용차는 TV조선 예능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터트롯’ 1등 상품으로 ‘G4 렉스턴’을 제공하고 ‘진’(眞) 임영웅과 광고 계약을 맺으면서 기사회생했다.
‘임영웅 효과’는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년간 임영웅을 모델로 기용한 청호나이스는 실적이 꾸준히 개선됐고, 죽 브랜드 본죽은 CF 영상이 2000만 뷰를 넘기고 쇼핑백이 중고 거래되는 등 전에 없는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다. 임영웅이 시축과 공연에 나선 FC서울의 K리그1 6라운드 홈경기에는 올 시즌 최다 관중 4만 5007명이 들어서기도 했다.
콘서트는 말할 것도 없다. ‘임영웅 콘서트 IM HERO TOUR 2023 서울’은 대기자만 최다 60만 명에 달했고, 6일치 공연 티켓은 발매 즉시 매진됐다.
음반 판매량과 스트리밍 횟수는 오랜 K팝 팬인 이현지 애널리스트도 놀랄 정도다. “임영웅 씨는 정말 대단해요. 정규 1집이 100만 장 넘게 팔렸거든요. 100만 장을 판 아이돌이 있긴 하지만, 사실 글로벌을 포함한 거예요. 임영웅 씨는 100만 장을 국내에서만 판 셈인데, 이는 거의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스트리밍은 글로벌 K팝 팬들도 견제할 수준이고요.(웃음)”
이현지 애널리스트는 시니어 세대가 ‘몰입의 대상’을 제대로 찾았다고 분석했다. “시니어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요. 시간도 비교적 많고요. 그동안 쓰고 싶지 않아서 안 쓴 게 아니에요. 몰입할 대상이 없어서 못 썼던 거죠. 그런데 임영웅이라는 사람이 등장한 겁니다.”
이 몰입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비즈니스 성장 전략가 데이비드 미어먼 스콧은 말했다. “고객은 떠나도 팬은 떠나지 않는다.”
“인생은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로 이어지는 선이 아니라 점(點) 같은 찰나가 쭉 이어질 뿐이다.”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알프레드 아들러는 연결된 선처럼 보이는 삶이 사실은 수많은 점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 얽매이거나 미래를 두려워 말고, 현재를 살아가라는 의미다. 중장년에게 독서와 글쓰기는 삶에 점을 찍는 과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8년 ‘책의 해’ 지정 이후, 2020년부터 매년 특정 부문 계층별로 ‘책의 해’ 사업을 진행했다. 2023년은 ‘4050 책의 해’다. 이번 사업을 위해 출판, 독서, 도서관, 서점, 작가, 중장년 등 10개 단체가 모여 ‘2023년 4050 책의 해 추진단’을 꾸렸다.
‘4050 책의 해’는 ‘당신 꿈에 더 가까이’라는 슬로건으로 4050세대가 지난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를 담았다. 중장년이 자신을 위한 독서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4050 맞춤형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작가와 함께하는 행BOOK학교’, ‘도서관 중장년 독서 살롱’, ‘4050, 책에서 길을 묻다’, ‘책과 생일-4050 CEO가 주도하는 독서복지’, ‘4050 책 추천 영상 챌린지’, ‘4050 책 생태계 포럼’ 등이다.
허건 책읽는사회문화재단 간사는 “중장년이 책을 통해 불안을 해소하고, 자신의 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면서 “책 속에서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단편적으로 얻을 수도 있지만, 나아가 근본적인 삶의 철학과 방향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 인생 후반전을 맞이한 중장년에게 특히 독서가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읽고, 쓰고, 이야기 나누며
‘4050 책의 해’ 사업은 동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열리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더 많은 중장년이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책’을 매개체로 나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 프로그램 참여자인 김지영(58) 씨와 곽선미(49) 씨도 독서와 함께 반드시 ‘교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을 읽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글로 기록을 남기면서 불안을 해소하고 위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 미래문고에서 ‘작가와 함께하는 행BOOK학교’에 참여한 김지영 씨는 아들러의 문장을 인용하며 독서와 글쓰기가 삶에 점을 찍는 행위라고 했다. 그 점들을 기록하면 삶이 더 풍부해진단다. “삶에 쫓기다 보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잖아요. 그런데 하루하루 나의 경험을 아주 작더라도 점으로 찍어서 남긴다면, 그것이 내 삶의 흔적이 아닐까 해요. 우리는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은 나이잖아요. 수많은 책을 억지로 읽기보다 나와 맞는 책을 읽고, 감동한 내용을 짧게라도 기록해보세요.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나도 몰랐던 내 삶의 줄거리를 보게 됩니다.”
전주시립효자도서관에서 ‘도서관 중장년 독서 살롱’에 참가한 곽선미 씨 역시 독서를 기반으로 한 모임이 중장년의 경험을 풍부하게 만들어준다고 했다. 단순히 책을 읽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책에 담긴 내용을 사색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는 게 핵심이라고. “40대가 되면 그간 살아온 경험에서 얻는 지식이 있어요. 이제는 책을 양으로 읽기보다 질적으로 읽을 때인 것 같아요. 중장년의 경험이 그 질을 풍부하게 해줍니다. 책만 읽으면 지루할 수 있으니 책과 관련된 장소에 가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추천하는 책도 읽어보면서 즐겁기도 하고 위안을 얻기도 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정부가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을 지난 7월부터 추진하고 있다. 2025년 초고령사회 도래에 대비하고 노인의 지역사회 계속 거주를 위해 지역 내 다양한 의료·돌봄 서비스를 연계해 통합 지원하는 사업을 말한다.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은 문제인 정부 때부터 추진해온 ‘커뮤니티 케어 정책’의 일환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커뮤니티 케어 정책을 발표하고, 2019년 6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을 시행했다. 윤석열 정부는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으로 명칭을 바꿔 선도사업 시행에 나섰다.
커뮤니티 케어 정책이란?
커뮤니티 케어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커뮤니티 케어란 돌봄이 필요한 주민이 살던 곳에서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누리고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주거, 보건의료, 요양, 돌봄, 독립생활 등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지역주도형 사회서비스정책을 말한다. 이에 커뮤니티 케어는 ‘지역사회 통합 돌봄’이라고도 한다.
커뮤니티 케어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 가치를 기반으로 한다. 에이징 인 플레이스는 익숙한 거주지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2017년 노인실태조사 결과, 어르신 57.6%가 거동이 불편해도 살던 곳에서 여생을 마치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나 실상은 병원·시설에서 지내야 하는 상황이 많고, 불충분한 재가 서비스로 인해 가족에게 돌봄은 큰 부담으로 자리 잡은 상황이었다.
이에 정부는 초고령사회를 앞둔 시점에서 광범위한 돌봄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커뮤니티 케어 정책을 추진하게 됐다. 이미 일본·영국·스웨덴 등 복지 선진국은 지역사회 중심의 서비스 제공을 시행 중이었고, 한국도 이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정부는 2018년 11월 지역사회 통합돌봄 기본계획을 발표했고, 2019년 6월부터 2년간 16개 시군구에서 지역 자율형 통합돌봄 모형을 만들기 위해 선도사업을 추진했다. 또한 로드맵의 계획에 따르면 2025년까지 대대적인 제공 기반 확충을 하고, 2026년부터는 통합돌봄을 보편적으로 모든 국민이 누릴 수 있게 할 전망이다.
4대 중점 과제는 주거, 건강·의료, 요양·돌봄, 서비스 통합 제공이다. 이 가운데 주거 지원에는 어르신 맞춤형 케어안심주택, 집 수리 사업, 커뮤니티케어형 도시 재생 뉴딜 등이 포함된다. 건강 의료 부분에는 집중형 방문 건강 서비스, 방문 의료, 어르신 만성질환 전담 예방관리, 병원 ‘지역 연계실’ 운영 등이 있다.
노인·의료 돌봄 통합지원으로 변경
커뮤니티 케어 시행 5년, 전문가들은 거주 공간은 확충했지만, 의료 서비스 제공은 부족했다고 지적한다. 특히 전문 요양보호사, 간병인 등이 가정에 방문하는 ‘재택 돌봄’이 잘 시행되지 않았다고 꼽힌다. 재택 돌봄은 가족 돌봄 부담 경감, 요양 병원 및 시설 부족 문제 해소 등의 이점이 있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는 의료 서비스 강화에 중점을 둬 계획을 개편했다. 앞서 말한대로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노인·의료 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으로 명칭을 바꿨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시범사업 12개 지역을 선정했다. 광주광역시 서구·북구, 대전광역시 대덕구·유성구, 경기도 부천시·안산시, 충청북도 진천군, 충청남도 천안시, 전라북도 전주시, 전라남도 여수시, 경상북도 의성군, 경상남도 김해시다.
선정된 12개 지역은 오는 7월부터 2025년까지 3년간 75세 이상 노인들이 지역사회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의료·돌봄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체계를 구축한다. 또 읍면동 통합지원창구를 통해 대상자를 접수·발굴하고 시군구 지역사례회의를 운영해 지역사회 계속 거주에 필요한 주거지원 서비스, 방문의료·건강관리 서비스, 이동·식사 지원 등 다양한 사회서비스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지난 8월에는 ‘제3차 장기요양기본계획(2023~2027)’이 발표됐다. 집에서도 돌봄과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장기요양서비스를 강화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으로 일상을 혼자 수행하기 힘든 노인들의 신체활동 등의 지원을 위해 2008년 7월부터 시행됐다. 지난해 말 기준 수급자는 102만 명이었으나 2027년에는 145만 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기본 계획에 따르면, 2027년까지 돌봄 필요도가 높은 1·2등급 중증 수급자의 재가급여 월 한도액을 시설 입소자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인상한다. 올해 기준 1등급 수급자의 월 한도액은 재가급여 188만 5000원, 시설급여 245만 2500원이었는데, 단계적으로 두 급여를 동일하게 맞춘다는 계획이다.
또한 야간·주말, 일시적 돌봄 등이 필요할 때에 방문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시방문 서비스를 도입하고, 통합재가서비스를 확대한다. 통합재가서비스는 수급자의 서비스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해 한 기관이 재가급여를 포괄적으로 제공하는 것으로, 현행 방문요양 중심의 단일 급여 제공 기관을 다양한 재가급여를 복합 제공하는 기관으로 재편한다.
건강을 잃고서야 절절한 심정으로 세상과 자신을 돌아보는 게 사람이다. 위중한 병을 얻었을 때 인생의 유한함을, 시간의 소중함을 비로소 뼈저리게 절감하며 새롭게 눈을 뜬다. 함지애(58, ‘지애의 봄향기’ 대표)는 40대 때 폐암 1기 선고를 받고 투병을 했다. 용케 조기에 발견된 암인 데다 수술이 잘돼 예후가 좋았다. 천운으로 병마를 다스렸으니 정상적인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 듯싶었다. 하지만 얼마 뒤 폐암보다 무섭다는 폐섬유증(폐가 굳어지면서 심각한 호흡 장애를 불러일으키는 질환)이 다시 기습했단다. 어이하나? 어떻게 일어서야 하나? 폐섬유증 수술을 마친 함지애는 고심 끝에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인 김제로 내려갔다. 그건 요양을 위한 낙향이었지만 귀농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남은 인생을 덤으로 여기고, 이제 시골에서 제대로 한번 잘 살아보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는 점에선 당찬 투신이자 기꺼운 모험이었다.
서울에 살 때 그는 의류유통업을 했다. 중년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을 동대문 상가, 남대문 상가에서 뛰었다. 뛰더라도 그냥 뛴 게 아니라 경주마처럼 열렬한 질주를 했나? 그의 가게엔 자주 고객들이 줄을 섰다지. 아마도 그의 천성일 패기와 근성이 성과를 불러들였던 것 같다. 마침내 자수성가로 우뚝하게 일어선 이라는 소리를 듣기에 이르렀다. 몸에 중병이 찾아와 위세를 부리는 일이 없었다면 서울을 뜰 일이 없었으리라. 시골살이? 그건 그의 사전에 아예 없었다. 생각만으로도 시골 생활은 무섭고 싫었다고 한다. 그러나 병을 통과하면서 생각이 변했다. 삶의 방향이 확 바뀌었다. 이렇게 뜻밖에 찾아온 변곡점은 차라리 하나의 기쁜 선물이었다. 낙향 이후의 삶이 한결 새롭고 만족스럽다는 게 아닌가. 시골에 내려와 비로소 인생의 향긋한 열매를 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이왕 삶을 바꿀 거라면 다 내려놓고 가자!”
낙향 때 그의 머리에서 나부낀 기치가 그랬다. 인생을 레이스하는 데 쓸모가 큰 방편으로 여겼던 욕심과 경쟁심을 모두 내려놓기로 했다. 물질이든 행복이든 가급적 손아귀에 한가득 움켜쥐고자 했던 지난날의 타성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그는 생존의 정글에서 지친 노루가 쉴 만한 물가를 찾아가듯이 마음을 비우고 낙향했다. 사람이 마을을 비우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싶지만, 그는 절박한 심정으로 무가치한 것들을 종량제 봉투에 담아 내다 버렸다. 그게 병에서 벗어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유력한 길이라고 봤다. 함지애가 김제로 내려간 건 2012년. 초기 한동안은 요양에 전념했다.
“텃밭 농사로 거둔 깨끗한 채소류를 먹거나, 산야에서 약초를 얻어 섭취했다. 도시에 비할 수 없이 맑은 공기도 몸에 좋았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시골 생활이 주는 평온함이었다. 마음이 그토록 편안해지다니, 예상과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맛보며 안도했다. 건강도 좋아졌다. 빠른 속도로. 웃음을 달고 살다시피 했으며, 이웃들과 좋은 사이로 지냈다. 아, 시골에 오기를 잘했어. 좀 더 빨리 내려올걸!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유능한 강소농 모델로 떠올라
잃었던 건강을 어느 정도 되찾으면서 함지애는 슬슬 농사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 고즈넉한 생활은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일을 해야 성장한다는 게, ‘일에 대한 불타오르는 열정이 있어야 즐거울 수 있다’는 게 그가 인생에서 배운 일종의 공리다. 농사에 뛰어드는 방식은 다분히 조직적이었다. 여러 농업 교육기관을 통해 공부부터 충실히 하는 한편, 대담하게도 5000여 평의 전답까지 마련해 바닥을 다졌다.
“농토에 벼, 찹쌀, 보리, 콩 등을 재배했다. 농사 방법은 친환경 농업을 추구하기로 했다. 안전하고 깨끗한 농산물로 고추장, 된장, 청국장, 간장을 만들자는 게 기본 방향이었다.”
혼자서 5000평이나 되는 너른 전답에 농사를?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주로 위탁영농 방식으로 농사를 했다. 이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더라. 봄철의 논밭 갈이부터 가을철 수확까지 전 과정을 대행해주니까. 그런데 귀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교육이다. 사전에 부지런히 교육을 받아야 한다. 난 나름대로 열심히 농업을 공부했다. 건강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하면서 농사에 뛰어들었지만, 사실 초기 5~6년은 수련기였다. 거의 공부 기간이었다. 이때 다수의 농업 관련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어디서 어떤 교육을 받았나?
“전주에 있는 한국농수산대학 가공학과에 적을 두고 배웠다. 버섯과 화훼 공부도 병행했다. 김제에 있는 농업기술센터를 통해서도 배운 게 많았다. 전통장류, 조청, 꽃차 등에 관한 이론과 실재를 교육받았으니까. 이렇게 공부하며 농어촌체험지도사, 전통장류제조사, 꽃차 소믈리에, 천연발효식초 제조관리사 등 자격증 여러 개를 취득했다.”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판로 부문이다. 판로와 관련해서도 사전에 공부해둔 게 있었나?
“판로 문제야말로 농업 경제의 핵심이라는 걸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따라서 정보화 공부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덕분에 농사 시작과 동시에 SNS 마케팅을 위해 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농사의 출발은 식초 사업으로 열었다지?
“2018년에 식초 생산의 기반을 조성할 수 있었다. 작업장과 체험장을 지어 생산과 체험 교육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가공 분야 가운데 식초를 선택한 이유는?
“아까 말했지만 난 농업 관련 공부에 많은 시간을 썼다. 딴엔 제법 공부를 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어느 수준인지, 뭐 좀 실력을 갖고 있는지, 스스로 테스트할 필요가 있었다. 테스트 수단으로 식초 사업을 택한 건 식초가 사람 몸에 가장 좋은 식품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나의 건강을 위해서도, 남의 건강을 위해서도 식초만큼 좋은 게 없다고 봤으니까.”
촘촘한 사전 준비에 힘입어 식초 사업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특유의 현미식초를 만들어 특허 등록을 냈으며, 연잎식초라는 희귀한 제품을 만들어 역시 특허를 받았다. 스스로 설정한 테스트를 좋은 성적으로 통과한 셈이다. 이후 그는 식초의 이웃사촌인 술 만들기에 뛰어들었다. 전통주에 관한 공부를 미리 해둔 상황에서였다. 따라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일단 필이 꽂히면 냅다 덤벼들어 몰두하는 평소의 습성과 기량을 풀가동해 전통주 개발과 생산에 주력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과가 주어졌다. 각종 경연대회에 출품한 그의 술이 큰 상을 연달아 받으며 일약 알아보는 눈이 꽤 많은 실력자로 부상했다는 게 아닌가. 그는 2019년 충남도 농업기술원이 후원한 ‘우리 발효술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2021년엔 ‘대한민국 명주대상’ 경연에서 청주 부문 대상을, 2022년엔 광주MBC가 주관한 ‘우리 술 어워즈’에서 ‘왕중왕’상을 거머쥐었다. 전통주 초심자가 거둔 만만치 않은 성취였으니 이변이라 말 못 할 것도 없겠다. 이제 그는 술과 더불어 유능한 강소농의 모델로 떠올랐다.
투병 이후의 삶은 덤으로 주어진 것
“난 술에 미친 여자다.(웃음) 좋은 전통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양조엔 디테일한 기술력이 필수다. 누룩에서 발생하는 미생물 효모로 단맛과 신맛 등 풍미를 지닌 술을 빚어내기 위해선 반복적 실험이 선행돼야 한다. 술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도 쉽지 않다. 미치지 않고선 도달할 수 없는 게 양조다.”
어떤 술들을 만들고 있나? 가장 자부하는 술을 꼽는다면?
“현재 6종류의 술을 생산한다. 대표 상품은 ‘초야’(初夜)라는 청주다. 신혼 첫날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술에 담았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탁주인 ‘순애보’ 역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술이다.”
시중에 수많은 민속주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당신의 술은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있나?
“남들은 흔히 말한다. 여러 가지 꽃을 양조 재료로 삼은 꽃술은 함지애의 것이 뛰어나다고. 민속주를 만드는 이라면 누구나 ‘이게 바로 한국의 술이야!’라고 자신할 만한 술을 만들고자 노력할 텐데, 나 역시 그렇다. 그런데 술의 풍미 수준을 가르는 건 기술력보다 정성스러운 마음과 손길에 달렸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를테면 어머니가 어린 자식에게 먹일 음식을 만들 때처럼 사랑과 정성을 다하는 마음. 그게 좋은 양조의 비결이라 믿는다.”
양조란 창의적 감각이 요구되는 난해한 장르다. 자력으로 단기간에 일정한 성취를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궁금하다. 누군가에게 도제식 수업을 받은 적은 없었나?
“운 좋게도 좋은 스승들을 만났다. 명품 전통주 ‘호산춘’의 명인 이연호 선생님에게서 많은 걸 배웠다.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인 박록담 선생님을 통해서도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이 스승들 덕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사실 시골에 내려온 이후 나는 이렇다 할 실패나 착오를 겪지 않았다. 이건 순전히 좋은 인간관계가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좋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좋은 걸 배웠고, 배운 걸 토대로 일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일뿐만이 아니다. 삶의 질 자체가 아등바등 살았던 서울에서보다 훨씬 좋아졌다.”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로 일과 생활, 양면에서 선순환을 해왔다는 얘기다. 남의 가르침과 의견을 경청해 피드백으로 삼기. 이웃과 도타운 우정을 나누는 일에도 사업 이상의 정성을 쏟아 감흥을 누리기. 이쯤이면 결함 없는 생활이다. 인생의 중세시대라 할 만한 투병기는 어느덧 종료됐다. 여러 측면에서 서울에 살 때와 완연하게 변했다. 이제 그가 지닌 지배적인 감정은 만족감, 그 하나란다.
다만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유지되고 있는 양상이 있으니, 여전히 바쁘게 산다는 게 그렇다. 함지애가 만드는 건 식초와 전통주만이 아니다. 들에선 곡물을 생산하며 장류 사업도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대파에서 피어나는 보랏빛 꽃을 부재료로 가미한 이색 꽃두부도 생산한다. 마을 부녀회장을 맡기도 했던 그다. 김제 시내에 오픈 스튜디오를 두고 대표를 맡고 있는 ‘징게맹갱 우리술 협동조합’의 기지로 활용하고 있기도. 독거노인과 결손가정을 돌보는 자선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시내의 침체된 구역 일부를 놀이문화 공간으로 재생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일의 가짓수가 이토록 넘치다니. 그는 남몰래 비명을 지르는 건 아닐까? 일에 치여 부질없이 소비되는 뭔가가 있는 건 아닐까?
“투병 이후의 삶은 덤으로 주어진 거라고 생각하자 모든 게 감사하게 다가왔다. 희로애락은 여전하고 때로 눈물도 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걸 비로소 하고 있다는 실감으로 행복하다. 돈을 벌려고 바동거렸던 과거에서 벗어난 것만도 어딘가? 밝고 에너지 넘치는 본성을 회복한 건 또 어떻고? 욕심을 내려놓고, 짧고 굵게 살다 가면 된다는 생각이다.”
돈보다 소중한 가치를 가진 게 많다는 걸 알면서도 흔히들 까먹고 산다. ‘욕심에 휘둘리는 삶은 이제 싫어!’ 함지애의 드라마를 난 그런 외침으로 새겨두기로 했다.
함지애가 주는 귀농 Tip
•땅과 집을 마련하기 이전에 귀농 교육부터 충분히 하라. 지자체마다 운영하는 ‘1년 살아보기 프로그램’ 같은 걸 통해 농촌 생활을 미리 경험하는 것도 좋다. 그 과정에서 나의 숨겨진 역량을 발굴할 수 있으며, 과연 귀농을 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귀농 초기 3년 정도는 성공을 위한 수련기로 삼아 나를 알아가는 시간 내지는 농사의 방향을 모색하는 기간으로 활용하자. 농업의 경제 효과는 현명한 운영을 했을 경우에도 대체로 귀농 5년 이후에나 발생한다고 보면 된다.
•도시에서 쌓은 경륜이나 특기를 살려 재활용하라. 이를테면 꽃에 조예가 있다면 꽃차 사업에 도전하는 식으로.
•여성의 단독 귀농을 두려워하지 마라. 다만 남다른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귀농 초기엔 소득 발생이 전혀 없을 가능성이 많다. 예비비 확보가 필수다.
홈플러스는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협업해 ‘시니어마켓’을 열었다. 보건복지부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노인이 생산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3일 홈플러스는 온라인몰에 시니어마켓을 개설했다고 밝혔다. 노인 일자리 시장형 사업단에서 생산한 노인 생산품의 구매 촉진을 위해 마련됐다. 식품이나 일상용품 등 다양한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한다. 오는 16일까지 전 품목을 최대 50% 할인하고 1개만 구매해도 무료배송을 받을 수 있다.
홈플러스는 시니어마켓 입점 심사 절차를 일부 완화하고 수수료를 낮게 책정해 해당 상품의 판매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지역 시니어 기업에서 생산한 상품의 홍보 및 판로 개척에도 힘쓰고 있다.
이번 협업은 지난 4월 홈플러스가 보건복지부, 전주시와 노인 일자리 창출 및 노인 생산품 판로 개척을 위해 체결한 업무협약(MOU)의 일환이다. 9월에는 홈플러스 전주점에 비수도권 최초로 시니어 카페 ‘홈플러스 카페마을 1호점’을 오픈한 바 있다.
이 밖에도 홈플러스는 시니어가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전국 110여 개 문화센터에서 시니어 디지털 강좌와 실버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반 등 시니어 전용 강좌를 운영 중이다. 2011년에는 대형마트 업계 최초로 정년을 만 60세로 연장했다.
신건호 홈플러스 대외정책총괄은 “어르신들의 정성과 숙련된 기술로 생산한 상품의 원활한 판매를 돕고, 노인 생산품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홈플러스 온라인에 시니어마켓을 개설했다”며 “향후 고령친화산업에 대한 인식 개선 활동 및 상품 판로 확충을 지속해 ESG 경영 모범사례를 구축하는 데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팔복예술공장은 폐허를 딛고 일어선 복합문화공간이다. 쓸모를 잃고 버려진 폐공장을 도시재생사업으로 일으켜 세운 이색 예술 공간이다. 폐공장 시절은 길었다. 25년간이나 방치되었으니까. 그러니 형상이 오죽했겠는가? 무너지거나 으스러지거나 널브러진 것들이 태반이었다. 용케 남은 건물들도 금이 가거나 비가 샜다. 뒤숭숭하기가 흉가와 맞먹었다. 이렇게 공장의 한 생애가 종을 쳤다. 갈 길을 잃은 유령들의 비밀 집회소쯤으로 전락했다. 그런 와중에 전주시와 전주문화재단이 앰뷸런스를 타고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달려와 수혈을 하고 수술을 해 꺼진 숨을 되살렸다. 전주시 팔복동 제1일반산업단지 안에 있다.
팔복예술공장은 2년에 걸친 사전 작업과 공사,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한 시범운영을 거친 뒤 2018년에 개관했다. 이제 겨우 네 살배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알아주거나 알아보는 눈이 많다. 개관 첫해에만 6만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이젠 재생 문화 공간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헌것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는 대신, 헌것을 싹 갈아엎고 새뜻한 새것을 건설하는 대신, 헌것에 잔존하는 쓸모를 재료로 삼은 재생사업의 성과가 이렇게 대단하다. 폐허를 폐허로만 볼 일 아니다. 폐허 속에 역사와 인간사의 숨결이 서려 있다. 헌것을 헌것으로만 볼 일 아니다. 헌것 안에 새것 뺨치는 예술과 미감이 박혀 있다.
폐공장의 재생 설계를 주도한 총괄기획자는 건축가 황순우. 인천시의 근대건축물을 본때 있게 재생한 인천아트플랫폼으로 실력을 과시한 인물이다. 그는 팔복예술공장 설계에 나서기 전 한동안 뜸을 들였다. 폐공장이 지닌 역사성과 사회성, 의미와 가치를 충분히 숙고했던 셈이다. 그는 이런 요지의 얘기를 했다. “재생은 기억에서부터 온다고 봤다. 따라서 1년 동안 설계를 하지 않고 기억을 재생시키기 위한 작업부터 했다. 지역주민, 지역 예술가들과 수시로 만나 폐공장을 새롭게 읽어내는 작업부터 했다. 물리적인 작업은 맨 마지막에 했다.” 그는 단순한 형식적 구조 변경을 구사해 후루룩 단숨에 예술 공간을 설계하고 싶진 않았던 모양이다. 폐허에 남은 옛이야기를, 스러져가는 건물들이 간직한 기억을, 퇴락한 풍경의 이면에 감추어진 은유를 옹골차게 발굴해 공간 구축의 질료로 활용하고 싶었던 것이다.
팔복예술공장은 크게 보자면 본관에 해당하는 A동, 아동과 청소년의 예술 놀이터인 B동, 그리고 야외 공간으로 구성됐다. A동은 외벽에 붉은 칠을 해 도드라진다. 벽면 일부엔 통유리창을 냈고, 옥상 난간의 프레임도 산뜻하다. 낡을 대로 낡은 원래 건물의 취약한 구조를 부분적으로 보강해 기능성을 살린 공간이다. 로비엔 폐공장을 남기고 사라진 카세트테이프 생산업체 ‘썬전자’의 히스토리를 알려주는 아카이브 섹션이 있다. ‘썬전자’는 이곳에서 1979년에 공장 가동을 시작했으나 CD(Compact Disk)라는 신종 기록 매체에 밀려 1991년에 문을 닫았다. 공장의 이런 굴곡진 역사와 애환의 기억들을 예술로 재생함으로써 존재 증명을 하는 게 팔복예술공장이다.
공간 곳곳에 음미할 만한 서사 있어
A동 로비부터 시작되는 관람 동선을 따라가면 재래식 변기가 하나씩 놓인 화장실 4칸이 나온다. 많게는 500여 명에 이르렀던 ‘썬전자’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변기가 달랑 4개뿐이었다니. 과거 노동 환경이 얼마나 거칠었나를 변기들이 구슬픈 톤으로 비가를 읊어 웅변한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게 예술이고 예술인이다. 화장실 구역이 통째 전시 작품인 건 배설 욕구조차 참아가며 일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 노동자들의 비애와, 그럼에도 버릴 수 없는 희망을 표현한 작가들의 글과 벽화가 이곳에 난무하기 때문이다.
미술관들은 저마다 특유의 전시회를 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기획전을 펼침으로써 미술관의 독자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팔복예술공장도 마찬가지다.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 전시를 추구해왔다. 탄소중립 등 환경문제를 환기하는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대중의 관심을 산 전시회로는 ‘구스타프 클림트 레플리카전’을 꼽는다. 현재 2층 전시장에서는 ‘공존 : 호모 심비우스의 지혜’전이 진행되고 있다.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란 생물학자 최재천이 제기한 용어로 ‘공생하는 인간’을 의미한다. 불편을 조금만 감수하면 얼마든지 생태적 전환을 할 수 있다는 게 최재천의 생각이다. 이번 기획전은 결국 환경문제를 화두로 던지는 셈이다. 24개국 8팀 77명의 환경예술 작가들이 참여해 다양한 시각언어를 선보이고 있다.
몇몇 작품을 볼까? 손정은의 ‘강요’는 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명의 사체를 먹어치우는 인간의 탐욕을 힐난하는 설치 작품이다. 유리병에 닭의 실제 사체를 욱여넣은 작품도 있다. 엽기적이지만 통렬하다. 김순임은 대형마트에서 사온 식자재에서 채집한 씨앗이나 뿌리를 포장 용기에 심어 발아시킨 식물들의 정원을 보여주는 설치 작품 ‘홈플러스 농장 2002’를 전시했다. 김유정의 ‘소리 없는 산’도 식물 설치 작품. 뿌리가 없는 채로 공기 중의 수분과 양분만으로 생존하는 식물 수염틸란드시아에 뒤덮인 폐가전제품들을 산의 형상으로 조형했다. 문명 이전 혹은 이후의 공존과 상생의 이미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강현덕의 ‘아름다운 소멸’ 역시 인간과 자연의 상생을 이야기한다. 작가마다 선명한 환경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자연을 거침없이 해치우는 소비사회의 광기에 사려 깊은 거부권을 행사한다. 자연의 생존권을 침탈하는 일상의 풍속에 예리하거나 유려한 반론을 제기한다.
A동에서 컨테이너를 엮어 공중에 설치한 통로를 따르자 B동 2층에 닿는다. 이곳엔 아동들을 위한 ‘이팝나무 그림책도서관’과 청소년들이 예술을 주제로 맘껏 이벤트를 펼칠 수 있는 ‘꿈터 마루방’이 있다. 1층의 내부와 외부 역시 예술 놀이터다. 흥미로운 건 B동 구역에서 비로소 손질과 땜질을 거의 하지 않은 폐공장의 원형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낡고 삭아 추레한 폐건물을 그대로 놔둔 채 디자인 요소로 살려냈다. 따라서 이곳에선 과거로 잠시 회귀한 듯 감정적 동요를 느낄 수밖에 없다. 반짝이는 사물들로 채워진 세상의 이방과 이면이 여기에 있으니 말이다. 폐허란, 그 미련 없는 분위기란 차라리 하나의 유적이다. 새것과 날것으로는 좇아갈 수 없는 우수와 정취가 깊어 감정이입이 쉽다. 세월의 풍상에 누추하게 구겨진 저 오래된 사물이 뿜는 아련한 빛에 문득 직관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나여! 인간이여! 너의 몸을 스친 풍상은 한 조각 빛이라도 남겼더냐?
공간 전체를 한 바퀴 돌고 나자 커피 생각이 난다. 마침 A동에 카페가 있다. 여공(女工) 이미지를 조형한 대형 인형 ‘써니’를 심벌로 조성한 찻집이다. 조명구도 탁자 일부도 공장 시절의 용구를 활용해 만들었다. 이곳은 ‘썬전자’ 노동자들이 407일 동안 전개한 노조사수투쟁의 센터이기도 하다. 이렇듯 팔복예술공장 곳곳에 반추할 만한 기억이, 음미할 만한 서사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