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캠핑하기 알맞은 시기다. 캠핑의 꽃은 단연 바비큐! 같은 고기라도 야외에서 불을 피워 구운 고기는 더 맛있게 느껴진다. 찌르르르 산벌레 울음소리, 타닥타닥 피어오르는 모닥불, 살랑살랑 불어오는 은은한 바람이 천연조미료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캠핑의 낭만을 경험할 수 있는 곳, ‘모노캠프’를 찾아갔다.
자연이 빠지면 진짜 캠핑이 아니다
경기도 용인에 자리 잡은 모노캠프는 인근에 고기리유원지와 고기리계곡, 광교산 등이 있어 자연과 벗 삼아 캠핑 바비큐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주변 경관도 볼거리이지만, 모노캠프 안으로 들어서면 또 다른 풍경을 만나게 된다. ‘개굴개굴’ 개구리 울음소리가 맞이하는 연못과 가지런히 쌓여 있는 참나무 장작, 캠핑 천막을 두른 야외 테이블까지, 마치 숲속의 아지트를 발견한 듯하다.
저녁 시간에 가면 야외 정원에 모닥불이 빨갛게 피어오르고 연못 분수에 조명이 들어와 별빛처럼 반짝인다. 일반적인 식당은 실내 테이블에서 고기를 먹고, 야외로 나와 커피나 차를 마시는 게 대부분인데, 이곳은 그 반대라 생각하면 된다. 고기는 야외 테이블에서, 디저트는 실내에서 즐길 수 있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아요
한때 캠핑 스타일의 바비큐를 모방한 맛집들이 유행했다. “캠핑 도구로 꾸민 실내에서 간이의자 몇 개 놓고 고기 구워 먹는다고 해서 캠핑 분위기가 나는 것은 아니다.” 모노캠프 주인장의 이야기다. 가게를 운영하기 이전에도, 또 현재까지(아마 앞으로도 계속) 캠핑을 사랑하는 주인장은 자신이 느끼는 캠핑의 매력을 공유하기 위해 공을 쏟았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소리’다. 바람소리, 물소리, 음악소리 이 세 가지는 꼭 넣고 싶었다고 한다. 본래 이곳은 라이브카페였는데, 정원을 개조하며 연못 분수를 만들었다. 그렇게 바람소리와 어우러진 물소리를 낼 수 있었고, 연못 안 개구리 울음소리도 덤으로 얻었다. 또 가요 대신 잔잔한 재즈와 팝 음악이 흘러나오도록 했다. 식사 중 음악이 거슬리지 않게 ‘리스닝(listening, 듣는 것)’이 아닌 ‘히어링(hearing, 들리는 것)’을 의도한 것이라고.
분위기를 사는 힐링 맛집
강릉에서 올라와 2주에 한 번꼴로 모노캠프를 찾는다는 단골은 “이곳은 고기가 아닌 분위기를 사는 맛집이다. 번거롭게 캠핑을 떠나지 않고도 캠핑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게 매력이다”라고 설명했다. 대부분 고기와 야채, 소시지, 새우 등을 함께 구워 먹을 수 있는 세트 메뉴(캠핑 훈연 바비큐 세트 4인 6만9000원, 와규 프리미엄 꽃등심 세트 4인 9만9000원)를 주문한다.
구이용 메뉴 못지않게 손님들의 반응이 뜨거운 것은 바로 ‘라면(2000원)’. 캠핑을 가본 사람이라면 야외에서 끓여 먹는 라면 맛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해, 라면은 끓여서 내지 않고 봉지라면과 달걀, 양은냄비,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준다. 직접 끓여 먹으라는 것인데, 분위기 덕분인지 수고스럽기보다는 흥미롭게 느껴진다. 캠핑에서 빠질 수 없는 것 또 하나, 시원한 맥주가 아닐까? 이곳에서는 얼음이 든 양동이에 소주, 맥주, 음료 등을 한꺼번에 담아와 먹을 수 있다. 이 또한 독특한 풍경이다. 야외에서의 시간이 아쉽게 느껴진다면, 실내로 자리를 옮겨보자. 다양한 카페 메뉴는 물론, 주류와 안주까지 마련돼 있어 1차를 마치고 가장 빠르게 2차를 즐길 수 있다.
최근 한밤중에 우리 아파트 뒤편 동네에 화재가 났다. 드라마를 보던 중이었는데 베란다 밖으로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확성기가 요란해서 무슨 일인가 내다보았더니 바로 우리 집 건너편 숲 너머로 시뻘건 불길이 치솟고 연기가 퍼지고 있었다. 그 동네로 들어가는 길은 구불거리고 좁아서 평소에도 차 두 대가 만나면 한쪽이 비켜줘야 하는 곳이었다.
드라마에 심취해 있어서 몰랐는데 그 좁은 길에 어느새 출동한 대여섯 대의 소방차와 경찰차가 요란한 사이렌과 함께 경광등을 번쩍이고 있다. 새까만 밤길에 빨갛고 파란 경광등이 선명했다. 우리 집까지 번져오지는 않겠지만 바로 코앞에서 시뻘건 불길이 타오르니 섬뜩하기도 했고 무서웠다. 그래도 필자는 그 와중에도 기자 정신을 발휘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이 동네는 예전엔 무허가 집이 즐비했던 산동네였다. 이제는 무허가 집이라 해도 말끔하게 단장하고 옆 텃밭을 가꾸는 등 목가적이고 아늑한 풍경이어서 가끔은 일부러 산책하러 가기도 했다. 아직 옛 정취가 남아 있어 담장마다 넝쿨 꽃을 늘어뜨리고 집 앞을 꽃 화분으로 장식한 소박한 집들이 보기에 정겨운 곳이다.
이렇게 깨끗하고 소박한 마을이지만,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의 못살던 시절을 표현할 때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언젠가 인기 드라마를 보다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풍경이 나왔는데 바로 이 동네였다. 덩달아 우리 아파트도 한 컷 찍히기도 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알고 보니 주인공의 가난한 시절을 찍기 위해 이 동네에서 촬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도 못사는 동네를 촬영할 때 이곳을 찾는다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그런데 유난히 이 동네는 불이 자주 난다. 웽웽 사이렌 소리가 울려 내다보면 연기와 함께 시뻘건 불길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번 불은 재빠른 소방차의 대응으로 금세 불길이 잡혔다. 인명피해가 있었다는 말은 없어서 다행이지만 몇십 년 보아오던 무성한 숲의 나무들이 불타는 광경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불조심은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오늘의 화재도 누군가의 실수로 일어났을 것이다. 불이란 사소한 데서도 일어날 수 있으니 각자가 평소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른 최근 고령사회로 접어들어 시니어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니어는 젊은 사람보다 기억력과 행동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불은 정말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깜빡 잊는 바람에 큰일로 번질 수 있는 일이 많아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며칠 전에는 우리 아파트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8층에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이 가스 불에 올려놓은 냄비를 잊고 마당에 나와 친구분과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아랫집에서 연기가 올라와 위층에 사는 사람이 관리실과 소방서에 연락해 출동했는데 정작 마당에서 놀고 계시던 할머니는 까맣게 몰랐단다. 다행히 불이 나지는 않았지만 실내엔 연기가 가득했고 타는 냄새가 심각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생기면 자신뿐 아니라 이웃에게도 큰 피해를 주게 된다. 많은 분이 할머니에게 조심하시라는 이야기를 했고 할머니도 미안한 마음에 무척 놀라셨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생판 남의 일만은 아니다. 필자도 가끔 가스레인지에 음식을 올려놓고 다른 일을 하다가 타는 냄새가 날 때쯤 겨우 알아차렸던 일이 있기도 했으니 말이다.
우리 아파트는 각 집마다 외출 시 가스와 전열기구 점검하라는 빨간색 경고 스티커를 배부했다. 필자는 스티커를 현관문 안쪽에 붙여놓고 나갈 때마다 한 번씩 더 점검을 한다. 나만 조심해서 될 일이 아닌 이런 사고가 노인이 늘어가는 세상에서는 더 자주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럴수록 서로가 더 조심해야 할 것이다. 백번을 말해도 부족하지 않을 불조심!!이다.
필자의 엄마는 여행을 좋아하신다. 그런 엄마 덕에 여기저기 많이도 다녔다.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엄마는 참 바빴다. 네 명의 아이들에게 예쁜 옷 찾아 입히고 머리 빗기면서 3단 찬합 가득 김밥을 싸야 했고 그 와중에 화장도 해야 했으니 출발도 하기 전에 엄마 목소리가 커지기 일쑤였다. 4형제 중 누구 하나가 엄마 주먹맛을 본 후에야 우리는 집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엄마는 현관 앞에서 뒷짐 진 채 서 있던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아버지는 가만 웃기만 할 뿐이었다. 아이들 데리고 힘든데 왜 그렇게 열심히 돌아다녔냐고 물으니 자식들이 넓은 세상 많이 보길 원했다고 하셨다.
“수덕사에선 너 때문에 살아났어.”
아버지가 이야기를 꺼내셨다. 필자가 일곱 살 무렵이었는데 자다가 한밤중에 깨어 머리가 아프다고 우는 바람에 가족들이 연탄가스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열 번도 더 들었다. 여행 중에 일어난 가장 큰 사고여서 여행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단골로 나왔다. 자연농원에서 찍은 사진을 앞에 놓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도망치듯이 한국을 떠난 이야기가 펼쳐졌다. 주차장을 배경으로 찍은 가족사진을 보니 그 당시 우울한 집안 사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우리는 누가 더 못생기게 나왔는지를 보며 깔깔댔다. 식탁에 앉아 여행에 관한 이야기보따리가 한 번 풀리면 수다가 멈출 줄 몰랐다.
엄마와 단둘이 일본 여행
오랜만에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몇 달 전에 봤을 때보다 등이 굽고, 키가 한 뼘이나 작아져 있었다. 80세가 넘은 티가 확 났다. 관광버스를 타고 남해에 다녀오셨단다. 엄마는 오랜만에 버스 타는 일이 얼마나 좋았던지 도착해서도 버스에서 내리기 싫었다고 했다. 버스 타는 게 그렇게 좋냐고 퉁명스럽게 내뱉곤 미안한 마음에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랑 둘이 여행 갈래?”
“좋~지.”
엄마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혼자 인천공항까지 올 수 있냐고 물으니 나를 어떻게 보고 그런 말을 하냐며 나보다 먼저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일본은 몇 번 다녀와 별로라는 엄마는 미야자키를 맘에 들어 했다. 태평양 푸른 바다가 인상적인 우도신궁에서 소원을 빌고, 시원한 소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노천 온천도 즐겼다. 회전초밥집에 가서 싱싱한 초밥을 먹은 뒤에는 동물원 구경을 했다. 아주 가까이서 기린과 눈이 마주친 엄마는 깜짝 놀라 뒷걸음치더니 쪼그리고 앉아서 비둘기 모이를 주는 재미에 푹 빠졌다. 엄마는 행복해 보였다.
저녁이 되자 가방에서 주섬주섬 초록색 표지의 낡은 수첩을 꺼냈다. 엄마가 메모를 열심히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여행 수첩이 따로 있는지는 처음 알았다.
“뭐라고 쓸 건데?”
엄마 옆으로 바짝 다가갔다.
“별거 없어. 며칠에 뭘 했고 뭘 먹었나 정도 쓰는 거야. 쓸 때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나중에 읽어보면 정말 재밌어.”
엄마는 수첩에 ‘산본 광장동 공항버스 정류장 오전 6시, 일본 공항 11시 30분 도착’, ‘쇼핑몰 구경하고 7시 회전초밥 저녁식사’와 같은 사소한 일정들을 적어 내려갔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니 여행의 기억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기록한다는 엄마의 수첩을 들여다보았다. 중국 여행, 싱가포르 여행, 캐나다 여행, 제주 여행, 울릉도 여행. 수첩엔 여행의 기록이 끝이 없었다. 대부분 아버지와 둘이서 한 여행이었다. 지금은 걷는 게 편치 않아 엄마와 함께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건강이 안타까웠다. 그 많은 여행 중에 필자가 동행한 여행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결혼해서 내 자식, 내 식구 돌보느라 엄마, 아버지를 잊고 살았던 모양이다.
“엄마, 언제부터 이런 걸 쓰고 있었던 거야? 너무 멋진걸.”
필자의 칭찬에 엄마는 신이 났다. 수첩에 기록해놓은 여행지를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그때의 기억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밴쿠버에 사는 큰딸 집에서 보낸 두 달 동안의 기록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 집에서 먹은 삼시 세끼, 교회 가서 헌금하라고 사위가 쥐어준 빳빳한 달러, 주변 지인들의 식사 초대, 블루베리 따러 갔던 일 등이 세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엄마는 딸이 생각날 때마다 그 수첩을 펼쳐보았다고 말했다. 자식을 그리워하는 부모의 마음이 느껴져 코끝이 시큰해졌다.
필자는 부모님과 자주 만나 식사를 하고 간단한 드라이브를 즐기긴 했지만, 잠깐 만나고 헤어졌기 때문에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러다가 여행 와서 엄마와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엄마를 참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느라 관광은 뒷전이 되어버렸지만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엄마와의 여행은, 여행이 목적이기보다는 함께하는 시간이 곧 여행이란 걸 깨닫게 해주었다.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행복의 최고 활동은 여행이라 하였다. 사람은 뭔가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할 때 행복감을 느끼는데, 여행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새 옷을 산 얘기는 몇 년째 할 수 없지만, 몇 년 전 다녀온 여행에 대해서는 지금 이야기해도 즐겁다. 새로운 곳에 가서 맛있는 거 먹고 같이 간 사람들과 말하고 노는 것도 즐겁지만, 여행은 다녀와서도 말할 거리가 있기 때문에 행복감이 높아진다.
행복하지 않은 인생은 재미없다.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을 텐데 여행을 통해 행복감을 높일 수 있다면 당장 가방을 싸야 하지 않을까? 요즘은 가족이라도 각자 자신의 삶을 사느라 서로를 돌아볼 새가 없다. 한집에 살아도 한상에 둘러 밥 먹는 일이 뜸해지니 별 할 말도 없다. 이럴 때 가족여행을 다녀온다면, 여행지에서 새로운 것을 즐기는 재미는 물론이려니와 다녀와서도 식탁 위 대화가 풍성해질 것이다. 엄마가 쾌활하고 건강하게 사는 건 여행을 즐기기 때문인 것 같다.
필자는 엄마가 건강한 심장과 다리로 여행하고 살면서 행복한 감정을 늘 간직할 수 있기를 빈다.
여기저기 꽃이 만발한 봄날이다. 가고 싶은 데 있으면 얘기해보라는 필자의 말에 엄마는 미리 준비라도 해둔 듯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참 멋지던데” 하신다.
아름다운 동반자
감독; 제임스 아이보리
주연; 조안 우드워드, 폴 뉴먼
제작연도; 1990년
상영시간; 126분
명망 있는 변호사 월터 브리지(폴 뉴먼)는 한여름에도 조끼와 넥타이를 갖춘 정장 차림을 고집하고, 행진곡풍 음악만 들으며, 극장에 가면 잠을 자고, 태풍이 시속 75마일로 불어와 모두 지하실로 대피하는 상황에서도 꿈쩍하지 않고 풀코스 정식을 마치는 고지식한 인물이다. 젊은 여성과 재혼한, 자유분방한 정신과 의사 친구 알렉스 사우어(사이먼 캘로우)는 성적 농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브리지에게 “정열이라는 단어를 알아?”라고 다그친다. 20년을 근속한 노처녀 여비서는 무심하다고 원망한다.
브리지의 아내 인디아(조안 우드워드)는 남편 의견이 곧 내 의견이라 여기며 남편 그늘 아래서 곱게 살아왔다. 주변 친구들의 진보적 의견과 자식들의 자기주장에 소외감과 혼란을 느끼며 정신과 상담을 받아볼까 생각해보지만, 브리지는 “나한테 얘기하면 되오”라며 일축한다.
장녀 루스(카이라 세드윅)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배우가 되겠다며 뉴욕으로 떠난다. 차녀 캐롤린(마가렛 웰시)은 대학도 마치지 않고 배관공 아들과 결혼한다고 난리를 피우더니 이제는 도저히 못 살겠다며 툭하면 친정을 찾는다. 아들 더글라스(로버트 숀 레오나드)는 어머니의 보살핌을 끔찍하게 싫어하며 남몰래 누드집을 본다.
전 세계 중·상류층 가정에서 누구나 겪을 것 같은 이야기 는 에반 S. 코넬l의 소설 (1959)와 (1969)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브리지 부인과 브리지의 입장에서 본 가정생활을 그린, 100여 편의 삽화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두 소설을 통합하여 1930년대 말 미국 캔자스 시의 상류 가정사를 안정적으로, 재치 있게 시나리오화한 이는 ‘인도의 찰스 디킨스’로 불리는 루스 프라워 자브발라다. 에피소드 중심의 산만하고 지루한 이야기로 전락시키지 않고, 유머 감각과 인물 성격을 잘 살려낸 점이 돋보인다.
는 브리지 부인의 세상 인식, 남편과 자식을 대하는 생각의 변화와 자각을 조심스럽게 그린 온건한 영화다. 일상과 감정 묘사가 섬세해서 쉽게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브리지는 아내를 사랑하지만 고지식하고 완고한 성격 탓에, 아내가 그토록 원하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지 못한다. 심장에 이상을 느낀 그는 만일에 대비하기 위해, 아내를 은행 금고로 데려가 보험증과 증권 서류를 설명해준다. 물질적 기반보다는 남편과의 정신적 교류를 원했던 인디아는, 결혼 전 시를 읊어주었던 남편을 상기시키며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나요?”라고 묻는다. “사랑하니까 은행 금고까지 데려오지 않았소”라고 말하는 브리지. “그럼 가끔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세요”라고 아내가 말하자 그는 “나는 변호사지 시인이 아니요”라고 답한다. “보상받지 못하는 사랑은 싫어요”라고 말하며 이혼하겠다고 앙탈을 부리던 인디아는 남편의 뜨거운 키스에 그만 모처럼의 용기를 잃는다.
자식들은 엄격한 아버지보다 어린아이같이 순진한 어머니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러나 어머니가 의존적인 삶을 살아와 시대에 뒤떨어진 보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엇이든 참견하고 돌봐주려 하자 불편해한다.
남편과 다투고 친정으로 쫓겨온 둘째 딸에게 “여자가 참아야 한다”고 말하는 인디아는 “어머니처럼 당하고 살지 않겠어요”라며 쏘아붙이는 딸의 말에 상처 입고는 기껏 “핫초콜릿 타줄게”라는 말밖에 하지 못한다. 보이스카우트가 된 아들은 “어머니에게 감사 키스를 해드려라”는 단장의 말에 머뭇거리고, 아들로부터 키스를 받지 못한 인디아에게 브리지가 대신 키스를 해준다.
인디아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왜 사는지 모르겠다”며 끝내 자살을 택한 친구 그레이스 바론(블리드 대너)이다. 은행가 남편의 앞날을 위태롭게 만들 정도로 파격적이고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그레이스에게 인디아는 “나도 인생이 무언지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 그러나 잘 모르겠어. 그러나 우리는 많은 혜택을 받았으니 그걸 생각해봐”라고 말한다. 그레이스의 죽음에 오열하는 인디아를 브리지는 이렇게 달래준다. “그녀 남편은 무엇이든 해주려 했지만 그녀는 언제나 주변 사람을 힘들게 했소. 그녀가 남편이나 아이들을 생각이나 했는가?” 자아가 뚜렷한 아내를 둔 보통 남편 바론의 심경을 대변해준 셈이다.
세상 모든 것이 변해도 사랑, 존경, 인격은 바뀌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브리지. 뭔가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혼자서는 남편 그늘과 자식들에게로 향한 맹목적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인디아. 부모의 품안에서 벗어나는 것을 그토록 갈망했지만 세상이 녹록지 않음을 알고 결국 부모 곁으로 돌아오는 자식들.
브리지 가족의 옛날 흑백 기록 필름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여, 가족사와 이후 이야기를 자막으로 처리하면서 끝나는 는, 이상적인 혈연 공동체를 희구한다. 이상의 구심점은 결국 아내와 어머니라는 것. 거친 세상을 휘젓고 다녔어도 마음 내키면 언제나 돌아와 쉴 수 있는 아내와 어머니의 품. 그래서 그 아내와 어머니는 세상의 세파를 맞받지 않고 순결한 상태로 머물러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아내와 어머니를 지켜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속삭인다. 여권 운운하는 입장에서는 성에 안 차는 영화이겠지만, 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난 속에서도 장수 프로로 자리 잡았던 것처럼 도 그런 맥락에서 보면 크게 비난할 거리가 없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 같은 주제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눈이 몹시 내리던 날, 인디아는 외출을 위해 차고에서 자동차에 시동을 건다. 시동이 걸리지 않아 밖으로 나오려 하지만 차고 문이 자동차 문을 꽉 막아 밖으로 나올 수가 없다. 배기가스가 가득 차 호흡이 곤란해지자 도움을 청하는 그녀의 음성은 너무나 가냘프다. 차창 위로는 눈만 가득 쌓인다. 혼자서는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없는 아내와 어머니를 상징하는 듯하다. 브리지가 시간 맞춰 와준 덕분에 인디아는 무사했지만 화가 난 브리지는 그 자동차를 폐기처분시킨다.
불안이 없지 않지만 남편과 아이들 속에서 행복한 노년을 맞이한, 세파를 모르는 귀여운 어머니상을 연기한 조안 우드워드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폴 뉴먼의 아내인 조안 우드워드는 에서처럼 아까운 배우 인생을 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녀의 연기력이 나무랄 데 없는데,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영화 출연이 뜸했기 때문이다. 1958년에 결혼한 두 사람은 폴 뉴먼이 200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금슬 좋은 부부로 살았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감독 제임스 아이보리는 미국 출신이지만, 인도인 제작자 이스마일 머천트와 인도인과 결혼한 독일 출신 작가 루스 프라워 자발라와의 협업으로, 300만 달러 내외 제작비로 품격 높은 작품들을 내놓은 것으로 유명했다.
인도의 거장 사타야지트 레이와 프랑스 고전 영화계를 대표하는 장 르누아르의 영향을 받은 초창기 작품들은 영국과 인도를 배경으로 한 이질적 문화 충돌을 다뤘다. (1965), (1970), (1893)이 이에 속한다.
고전문학 작품을 우아한 시대극으로 재창조하는 데 남다른 열정과 재능도 발휘했다. 헨리 제임스의 소설이 원작인 (1970)와 (1984)와 (2000),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 소설이 원작인 (1985)과 (1987)와 (1992), 일본계 영국인 이시구로의 소설을 각색한 (1993), 가 그러하다.
예술가를 꿈꾸는 현대 뉴욕 젊은이들 이야기인 (1989), 여성 편력을 중심으로 한 피카소 일대기 (1996), 미국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의 파리 대사 시절을 그린 (1995), 다이앤 존슨의 베스트셀러가 원작인 (2003)도 삼인방의 필모그래피에서 처지지 않는 작품들이다.
이태문 일본 통신원 gounsege@gmail.com
정년퇴직 이후의 삶, 제2의 인생을 어떻게 하면 알차게 즐길 수 있을까? 아마도 누구나 한번쯤 고민하며 그 실마리를 찾으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릴 것이다. 하지만 나이 들어 새로운 취미를 만드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의욕과 체력이 따라주는 젊은 시절부터 ‘취미의 씨’를 뿌려두는 게 중요하다. 취미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그 비결을 물으면 “젊었을 때 했던 취미생활을 다시 시작했다”고 대답하는 분들이 꽤 된다.
그러나 새로운 취미에 도전하는 걸 방해하는 건 의욕도 체력도 아니고 ‘오래 계속하는 것’이라는 선입견일지도 모르겠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기회이자 타이밍’이니 남은 삶에 지금까지 맛본 적 없는 ‘재미’와 ‘보람’을 선물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자기 삶의 ‘애호가’일 것이다.
일본 시니어들의 취미
일본에서는 고령자가 계속할 수 있는 취미로 주식, 등산, 워킹, 낚시, 독서, 자수, 골프, 볼링, 시쓰기, 체스, 데생, 원예, 역사, 장기, 분재, 서예, 유화, 과자만들기, 수묵화, 시계수집, 게이트볼, 꽃꽂이 등을 꼽는다. 크게 몸을 움직이는 취미, 머리를 쓰는 취미, 손동작이 필요한 취미 등으로 나눌 수 있겠다. 이러한 취미는 운동 부족을 해소해주고, 치매 예방에도 좋다. 또한 같은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과의 교류도 넓혀주고 쓸쓸한 노후의 고독도 피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60대 남녀의 인기 취미 순위
350개 이상의 취미를 소개하는 일본의 ‘취미찾기닷컴’이 조사한 인기 순위를 잠깐 살펴보자. 먼저 60대 남성은 혼자 하는 여행, 사이클링, 오토바이, 재택근무, 사진, 전자공작(PIC), 절과 신사 순례, 주식, 워킹 순으로 조사됐다. 60대 여성의 경우는 혼자 하는 여행, 재택근무, 온천 순례, 절과 신사 순례, 워킹, 자수, 양궁, 등산, 심리학 순으로 인기가 있었다. 참고로 50대 남성의 취미로 사격, 50대 여성의 취미로 소설쓰기, 기타, 퍼즐 맞추기 등이 눈에 띄었다.
내 꿈을 찾아라~ 인생은 60부터
일본의 주쿄(中京) TV는 매주 일요일 아침 5시 45분부터 을 방송하고 있다. ‘아라칸’은 Around Kanreki의 줄임말로 칸레키는 우리말로 환갑을 의미한다. 이 프로그램은 환갑 전후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꿈에 도전해 제2의 인생을 즐길 수 있는 힌트를 제안하고 있다. 이 방송에서 소개된 이색 취미 몇 가지를 소개해보겠다.
2015년 12월 6일 방송에서는 빙상 위의 컬링(curling)이 아닌 날씨와 관계없이 체육관에서 즐길 수 있는 ‘커롤링(curolling)’이 소개됐다. 20여 년 전 나고야에서 시작된 이래 경기 인구 40만 명을 자랑하는 인기 스포츠로 체력보다는 두뇌게임이라는 점에서 ‘마루 위의 체스’라고도 불린다.
2016년 1월 10일에는 미술 취미로 ‘어탁(魚拓)’이 소개됐다. 낚시를 좋아하지 않아도 누구든 즐길 수 있는 ‘어탁’은 기존의 수묵(水墨) 중심이 아니라 색채와 구도 등을 바꿔가며 다양한 느낌을 줄 수 있다. 꼭 물고기가 아니어도 되며 모든 사물의 본을 떠서 작품으로 만드는 ‘탁화(拓畵)’라는 장르가 새롭게 소개됐다.
그다음 주인 1월 17일에는 카우보이 복장으로 차려입고 컨트리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컨트리 댄스가, 3월 13일에는 1960~1970년대에 붐이 일어나 일렉트릭 기타에 빠졌던 세대들이 밴드를 결성해 제2의 청춘을 만끽하는 모습이, 4월 17일에는 실제 동물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력적인 리얼 양털 퀼트 아트가, 8월 7일에는 다양한 무늬가 특징인 넥타이를 재활용해 가방과 인형 등을 만드는 리폼이 소개됐다. 이 밖에 9월 4일에는 경이로운 종이접기의 세계, 9월 11일에는 걸리버 여행기를 방불케 하는 미니어처의 세계, 10월 9일에는 종이를 오려내 그림을 만드는 ‘키리에(切り絵)’, 10월 23일에는 실제로 사람을 태우고 증기를 뿜으며 달리는 철도 모형 등이 소개됐다. 2017년에 들어와서는 우쿨렐레와 돌하우스(미니어처 장난감 집), 천사의 소리 핸드벨 음악, 볼펜 그림의 세계 등이 전파를 탔다.
이색(異色) 취미보다는 다양한 취미
인구가 많아지고 평균수명이 계속 늘어나면서 취미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과거 이색적이라는 이유로 주목을 끌던 취미들은 최근 덕후(마니아, 광)들이 등장하며 주류와 당당하게 어깨를 겨루고 있다. 그만큼 취미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 셈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 역시 새로운 취미에 도전해 개척하는 자세일 것이다. 전문가들은 고령자들에게 무리하게 몸을 움직이기보다는 치매 예방 차원에서 손가락과 뇌를 자주 사용할 수 있는 주산, 바둑, 장기, 손글씨, 그림, 색칠하기, 민요, 노래방, 꽃꽂이 등을 권한다. 간단한 요리를 만들게 하거나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시키는 것도 좋다.
몸 푸는 기분으로 이런 취미는 어떨까?
사단법인 일본 화살불기 레크레이션협회는 폐활량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물론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취미로 화살불기를 권한다. 실제로 전국의 화살불기 교실에는 60~70대 회원들이 많은데 90세가 넘은 고령자도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수집이 취미인 사람들은 모으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수집한 물건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취미활동을 확대해보는 것도 좋겠다. 예를 들어 도자기 수집을 하는 사람이 도예 교실을 다니며 직접 만들어보거나,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바리스타 자격증에 도전해 실력을 인정받는 것은 어떨까? 또 인물과 동물, 자연 풍경 등 사진 찍기를 즐기는 사람은 독거노인의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등 자신의 취미와 능력을 사회에 환원하는 재능기부 나눔을 실천해보는 것도 좋다.
이처럼 좀 더 관심을 갖고 주변을 살펴보면, 의외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취미들이 많다. 먼저 발품을 팔아 정보를 찾아보고 자신에게 ‘안성맞춤’인 취미를 선택해보자.
슬슬 발동을 걸어보자
지난 2014년 5월에 구성된 댄스 그룹 ‘TGK48’은 일본 기후 현 다지미 시의 고령자들이 만든 그룹이다. 그룹명은 일본의 인기 여성 아이돌 그룹 AKB48의 이름에서 힌트를 얻어 ‘다지미, 겐키(건강), 고레샤(고령자)’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었다.
‘노래하고 춤추고 먹고 마시고’를 기치로 내걸고 2016년 8월 60대 42명, 70대 21명, 80대 1명 등 총 64명(남성은 5명)으로 구성된 ‘TGK48’은 힙합도 소화하는 본격 댄스 그룹으로 공공시설을 빌려 일주일에 한 번씩 두 시간가량 연습을 하며 구슬땀을 흘린다. 최근 춤을 잘 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크고 작은 행사와 스포츠 대회에 출연,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고 있다. 강사 레슨비 등 연간 100만엔가량의 운영비는 다지미 시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고령자의 의료비와 개호비 등의 삭감과 관련해 길게 내다본 다지미 시의 획기적인 투자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2016년 3월 16일자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TGK48’ 멤버 35명의 체력을 측정한 결과 전 항목에 걸쳐 동세대의 일반인들을 훨씬 뛰어넘는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깜빡이는 빛을 보고 도약하는 데 걸리는 ‘전신 반응속도’는 무려 0.3초대로 20대 수준으로 나타났다. 5초간 빠르게 스텝을 밟는 ‘서서 스텝핑’의 평균 횟수도 60대 멤버가 40.1회, 70대 멤버가 37.7회를 기록해 젊은이 못지않은 결과를 보여줬다. 이들의 체력을 측정한 기후대학교 교육학부의 가스가 히카루 교수는 “힙합은 빠른 템포의 음악에 몸의 움직임을 맞추는 춤으로 신경에 좋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때 “칼질하러 가자”고 하면 그날은 ‘경양식집에 가서 돈가스 먹는 날’이었다. 요즘은 도시락 반찬이나 분식 정도로 생각하는 음식이 돼버렸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좋은 날 귀하게 먹던 고급 외식 메뉴였다. 멋스럽게 차려입고 나가 돈가스를 썰며 기분을 내던 그 시절의 추억을 재현한 맛집 ‘모단걸응접실’을 찾아갔다.
‘모단걸응접실’은 그 이름에서부터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조선 후기 ‘모단걸’이라 불렸던 신여성들이 서양문물을 즐기던 고급 살롱을 모티브로 했다. 가게 입구에는 ‘우린 내일 큰일을 할 거잖아요. 오늘 꼭 만나요. 그때 먹었던 음식과 술을 준비할게요. 기다릴게요’라는 문구가 보인다.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이 메시지를 읽고, 지하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비밀스러운 아지트로 향하는 듯한 오묘한 기분마저 든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강렬한 청록색 벽과 체스 무늬 바닥, 고풍스러운 샹들리에, 그리고 앤티크한 소파와 테이블이 앙상블을 이룬다. 예스럽지만 세련된 경양식집 특유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공간이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더불어 테이블마다 놓인 와인 잔과 포크·나이프·스푼이 돈가스의 품위를 더한다. 왕돈가스를 비롯해 함박스테이크나 비후가스 등 메인 메뉴를 주문하면 식전 빵과 수프가 나온다. “빵으로 드릴까요? 밥으로 드릴까요?”라는 정겨운 멘트는 들을 수 없지만, 빵과 밥 모두 즐길 수 있다(밥은 메인 메뉴와 함께 제공). 후춧가루를 톡톡 뿌려 나온 따뜻한 수프에 빵을 곁들여 먹어도 좋지만, 이곳에서는 더 특별하게 즐길 수 있다. 채 썬 양배추에 마요네즈와 케첩을 버무려 만든 옛날식 샐러드, 일명 사라다가 함께 나오기 때문이다. 모닝빵을 반으로 갈라 사라다로 속을 채우면 추억의 사라다빵으로 즐길 수 있다.
메인 메뉴 옛날 왕돈가스(9500원)는 김치와 단무지가 함께 차려진다. 최신식 패밀리레스토랑에서는 보기 힘든 경양식집만의 독특한 구성이다. 케첩 뿌린 반달 모양 감자튀김과 흰쌀밥은 돈가스와 한 그릇에 담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투박한 차림에 더욱 정감이 간다. 새로운 조리법을 쓰는 것보다는 추억의 맛에 초점을 맞췄다. 돈가스 1인분에는 국내산 최상급 돼지 등심 250g이 사용된다. 질 좋은 재료로 만든 든든한 돈가스 한 접시는 예나 지금이나 훌륭한 외식 메뉴로 사랑받고 있다.
돈가스와 함께 경양식 대표 메뉴로 손꼽히는 오리지널 함박스테이크(1만2000원)를 찾는 이들도 많다. 진한 갈색 데미글라스 소스 위에 노란 반숙 달걀을 덮은 도톰한 함박스테이크가 입맛과 눈길을 사로잡는다.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가 함께 나오는 모단걸 세트(4만8000원)와 모단보이 세트(3만6000원)는 샐러드와 음료까지 즐길 수 있는 실속 구성이다. 음료 대신 1만2000원만 추가하면 와인 1병으로 변경할 수 있다. 분위기를 내고 싶은 날, 와인 한잔하며 여유롭게 식사하는 것은 어떨까? 식사보다는 알코올 위주로 즐기고 싶다면 바(bar) 자리를 추천한다. 높은 바 의자에 앉으면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와인을 비롯한 맥주, 보드카, 위스키, 칵테일 등 다양한 주류를 판매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가게 된다면 치즈 왕돈가스(1만1000원), 카르보나라 함박파스타(1만9000원), 고르곤졸라 버섯 크림 떡볶이(1만6000원) 등 퓨전 메뉴를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주소 (샤로수길점) 서울시 관악구 관악로 14길 11 (가로수길점) 서울 강남구 신사동 539-1
모단걸응접실은 샤로수길점과 가로수길점 두 곳에서 운영 중이며, 실내 인테리어와 분위기, 메뉴는 동일하다.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 봄은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평일에 휴가를 내서 정선으로 새벽에 출발했습니다.
정선 삼척탄좌 폐허에 피어난 꽃을 보기위해서...
원주 치악산을 지나면서 엷은 주황의 여명이 부드럽고 잔잔한 색으로 고속도로 위로 펼쳐집니다.
제천을 지나고 동강을 가로질러 정선으로 가는 길은 참 아름답습니다.
산비탈에 그대로 남아있는 눈과 나목들이 겨울분위기를 한껏 살립니다.
이제 연탄은 구경하기도 힘들지만 한편으로는 아직도 연탄이 필요한 이웃이 많은 현실이기도 합니다.
모든 시니어들에게 연탄에 대한 사연이 많을 것입니다.
필자는 어릴 때 연탄가스 중독으로 며칠 간 혼수상태로 거의 세상 뜰뻔 한 적도 있습니다.
탄광에서 일했던 수많은 광부들의 사연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이제 가동이 멈추고 사람들이 다 떠나 텅 빈 자리, 그 검고 어둡고 추운 공간에 꽃이 피었습니다.
평생을 해외에 다니면서 예술 작품을 모은 이가 있습니다.
그가 평생 모은 예술품을 정선 삼척탄좌 폐허 건물에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서 디자인을 입혀 감동적인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시켰습니다.
저는 ‘삼탄 아트마인’을 둘러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국가나 지방 자치단체의 지원 하나 없이 그렇게 큰 시설을 운영한다는 것은
사명감이나 이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전시작품도 좋고 멋진 숙박 공간, 레스토랑, 음향과 조명을 잘 갖춘 공연장도 있고 주변에 멋진 자연을 함께 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근처에 하이원리조트도 있고 한 시간 안에 동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그곳에서 ‘태양의 후예’를 촬영해서 그나마 좀 알려지긴 했고 그 덕분에 중국관광객도 많이 왔지만 작금의 사드사태로 이제는 방문하는 중국관광객도 거의 없습니다.
대표님과 몇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겨울을 나는 것이 너무 힘겨워 보입니다.
문체부에서 이곳을 한국관광 100선으로 선정했다는 것은 참 의미 있는 일이긴 합니다.
그러나 작금의 사태에서 보듯 국가예산, 즉 국민세금은 엉뚱한 곳으로 다 새나가고 정작 사재를 털어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런 곳에는 운영비 한 푼도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 앞에 절망합니다.
필자는 이렇게 멋진 문화공간이 계속 살아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작은 희망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은 상황에 따라 모든 것을 전사하여 기록하는 기능이 있다. 물은 그 결정체가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
지난 추석에 서울공대 대학원 졸업반인 조카로부터 책을 한 권 선물로 받았다.
한 번 집에 다니려 왔을 때 물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내가 마침 읽어 보려고 했던 책을 이심전심으로 보내온 것이다. 부인이 한국인인 일본인 저자 에모토 마사루가 지은 책으로 이 책의 대부분은 물의 결정을 찍은 사진으로 되어 있다.
현대는 경제마찰, 종교, 환경, 전쟁, 인종 문제 등으로 인한 혼돈의 시대다.
조화가 아닌 분열로 가기 때문이다. 이를 하나로 통합할 수는 있는 것은 물이다.
그래서 동양에서도 상선약수라는 말이 나온 것을 보면 우연의 일치인가?
인간이 수정란 단계 99%, 성인 70%, 노인 50%가 물로 되어있는 존재다.
물은 피처럼 끊임없이 순환해야 하며 멈추면 죽는다. 따라서 물은 생명력의 원천으로 에너지를 운반하고 수많은 정보를 전사하고 기억한다.
물은 21 세기를 대표하는 이슈중 하나라 생각되어 에모토 마사루의 저서 의 내용을 중심으로 물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우주는 무엇으로 되어 있을까?
우주는 물로서 이루어져 있고 소우주인 인간도 물이다. 따라서 드라마는 물이 비추어 낸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물은 정화작용 외 만물을 생성하고 키우는 작용을 하며 이는 진동에 의해 주파수를 타고 나타난다. 물은 사물의 주파수를 감지하고 전사한다. 인간의 몸도 다양한 주파수로 이루어진 하나의 우주다.
물은 정화작용을 할 뿐 아니라 만물을 생성하고 키우는 역할을 한다.
인간도 물이다. 인간의 모든 역사는 물이 전사하고 만들어 낸 것이다.
물은 글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감사 합니다.’ 라는 말은 각국이 서로 달라도
같은 결정체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세상의 모든 존재 삼라만상은 진동하며 고유한 주파수를 갖고 있다.
이러한 진동의 측정단위는 헤르츠인데 인간은 15헤르츠에서 2만 헤르츠의 진동 만 들을 수 있다. 그런데 물은 다양한 물체의 주파수를 전사하여 어떤 형태를 보여준다.
인간의 몸은 다양한 주파수로 이루어진 하나의 우주다. 즉 대우주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대자연 우주는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주파수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완전히 똑 같은 주파수는 서로 공명한다. 낮은 주파수도 공명하면 높아져서 사랑을 이룰 수가 있다. 높은 주파수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끌리기 때문이다.
자연계 대부분의 생물은 한 가지 주파수만을 갖고 있으나 인간은 다양한 주파수와 공명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의지에 따라 사랑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기에 행복한 삶을 살수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화원 선생님의 저서 웰다잉이 많이 생각났다. 화원 선생은 백상논단의 공동필진의 일원이면서 우리나라 선비학회 회장으로 필자가 속한 말경회의 거석이다. 그도 삶의 목적은 삶의 주파수 레벨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그의 저서 에서 역설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2. 물은 다른 차원으로 가는 입구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 즉 물의 비중이 가장 커지는 것은 물의 온도가 4도C 일 때이며 얼음이 물에 뜨는 이유다. 아무리 추워도 호수 아래 온도가 4도C를 유지하고 있어 모든 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물은 지구 마그마가 식는 과정에 수소원자를 만나서 물이 생겨났다는 설과 프랭크 박사의 소혜성설 즉 물과 얼음이 외계에서 왔다는 설로 그 기원을 요약할 수 있다. 인간은 불과 2백만 년 전에 출현했으며 물은 지구상의 미네랄과 합성하여 38억 년 전에 생명체를 탄생시켰으며 땅위로 출현한 것은 산소가스와 오존층이 만들어진 4억2천만 년 전이다.
물이 가진 생명의 정보를 해독하는 방법 중 하나가 결정을 관찰하는 것이다.
물은 사랑 감사를 나타내는 결정체는 장엄한 광채이며 물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그 형태를 바꾼다.
3. 의식이 모든 것을 바꾼다
신은 인간에게 창조력을 주시고 그 힘을 사용하는 것은 자유의지에 맡겼다. 20세기가 석유 쟁탈전이었다면 21세기는 물의 쟁탈전으로 시작될 것이다. 현재 확인된 원소는 108가지이며 인간은 약 90개의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고등생물 일수록 원소의 수가 늘어난다.
초조한 감정은 수은과 파동이 같고, 분노는 납, 근심불안은 카드늄, 망설임은 철과 관계가 깊으며 스트레스는 아연(Zn) 과 관계가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태양계 행성의 수는 9개며 여기에 12를 곱하면 108이 된다. 즉 주기율표를 보면 행성과 대응하는 원소를 찾을 수 있다.
물은 마음의 거울이며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준다.
외과 수술은 파괴된 파동을 강렬한 파동으로 치료하는 행위이다. 상반되는 두 감정이 같은 파형을 갖는다. 프랑스 루르드의 샘물은 감사의 물이므로 원한이 많은 사람이 마시면 좋아진다. 물의 원소가 H2O라면 H는 감사이고 O는 사랑이다. 사랑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에너지라면 감사는 수동적인 에너지다. 사랑과 감사는 양과 음의 관계에 있다.
4. 한 순간에 세상이 달라질 수 있을까?
한 순간의 생각에 따라 세상은 달라 질 수도 있다. 따라서 항상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로 살아야 한다. 사람 안에 우주의 정보가 들어있고 세포 하나에도 우주의 정보가 들어 있어 세계는 한 순간에 바뀔 수 있다.
세계는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고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지각하는 것이 물이다.
가또 승려의 기도전과 기도 후에 물의 변화가 이를 이야기 해준다.
일이 반복되면 형태의 장이 만들어 지고 여기에 공명하면 똑 같은 현상이 계속 일어난다. (영국 셀 드레이크 박사의 이론)
생명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작용으로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의식이 주위의 사물에 영향을 미친다. 신으로부터 받은 창조력을 발휘하면 엄청난 변화를 도무할 수 있다.
5. 미소는 잔물결이 되어
물은 우주로부터 날아서 지구로 왔다가 또 다른 우주로 날아간다.
역사가 반복된다면 수천, 수만 년 후 물이 계속 지구로 날아온다면 지구는 노아의 대홍수와 같은 대 재난을 다시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화학물질로 오염된 물을 초음파로 분해 후에 오염된 것과 정 반대의 파동을 통과시켜 정화시킨다면
체내의 유해물질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수중 다이옥신을 초음파로 분해하다는 기사 즉 주파수 200 킬로헤르츠 초음파를 물속으로 보내면 기포가 생겨 다이옥신을 분해한다.
물의 결정 사진을 5도C 이하에서 찍는 것을 상온에서도 찍을 수 있다면 물과의 관계를 밝히는데 한 단계 더 진 일보하게 될 것이다.
혼, 윤회, 영의 존재는 물을 연구하다보면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혼은 물을 타고 왔다가 물을 타고 떠난다. 저 우주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안고.
사랑과 감사는 자연의 섭리요 이는 물속에 있다.
6. 물에 대한 에필로그
21세기가 물의 시대라면 물의 단순한 기능 이외 물에 대한 연구가 더 본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어쩌면 물을 통하여 우리는 인간에 대하여 보다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고 과학의 역사를 새로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의 결정과 전사를 알면 우리는 인간 연구에 한 발짝 더 근접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한 삶을 위해 좋은 물에 대한 많은 관심과 연구가 많이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
대표 원로배우 이순재가 연기 인생 60주년을 맞아 아서 밀러의 대표작 을 올린다. 이번 작품은 중견배우 손숙이 파트너로 나서고, 그의 제자들이 뜻을 함께한 데 더욱 의미가 있다. 공연 시간만 약 3시간에 달하는 데다가, 주인공 윌리 로먼의 대사가 580마디에 이르는 등 이순재의 어깨가 무겁다. 그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연습실에 가장 먼저 도착해 대본을 연구하고, 누구보다 빨리 대사를 암기하는 등 책임감 넘치는 모습으로 현장 스태프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됐다고 한다. 60년이 지나도 꺼지지 않는 배우 이순재의 연기 열정과 그칠 줄 모르는 연기자의 고뇌와 노력에 대해 들어봤다.
연기 인생 60주년을 맞이하는 소감, 기념 공연으로 을 선택하게 된 계기
그동안 40주년, 50주년일 때도 그랬지만 햇수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아요. 그것을 계기로 연극을 해본 적도 없고, 그렇게 하려 했어도 지금과 같은 무대를 마련하기는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나는 내 생일 날짜도 잘 모르고 지나갈 정도로 그런 것에 무심한 편인데 오히려 일이 커져서 송구스럽고 부담스럽지요. 그러나 막상 60주년이라는 말이 붙으니 마땅한 작품이 없더라고요. 나를 위해 일부러 쓴 작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노역이 앞에 나오는 작품도 드무니까요. 그러던 중에 이 떠올랐죠. 세월이 갈수록 새로운 의미와 의도를 발견하는 게 고전 아니겠어요. 그동안 원작을 그대로 살린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원작에 충실해 보자고 했습니다. 작품이 지닌 심오한 철학적 내용이나 깊이를 담기 위해서는 원작을 살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이 올해가 처음은 아닌데, 그동안에 변화가 있었다면?
1978년도에 처음 이 작품을 했었죠. 고 김의경 연출이 맡을 때였는데, 그 당시에 나에겐 큰 역할이라 조심스럽게 맡았던 거였어요. 그때 해보니 아주 좋은 작품이더군요. 원작은 1940년대 작품인데 당시엔 미처 잘 이해 못 한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 개발 후에 오는 도시 공해, 환경 문제 등에 대해 우리나라는 생각하지 않을 때라 생소할 수밖에요. 가스흡입에 대한 문제가 나오는데 그 시절 우리는 연탄을 땠으니…. 그런 문학적·상징적 표현에 대한 해석이 잘 안 됐고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어요. 예를 들어 1막 끄트머리에 “달이 아파트 사이로 간다”는 대사가 나오거든요. 나는 그저 기분 좋게 보았던 달인데 알고 보니 그 달의 영역이 축소됐다는 건 세일즈맨 자신의 사회적 영역이 축소된 것에 비유한 비탄이었던 셈이죠.
그러고 나서 2000년도에 드라마 이 끝나고 한 3개월 정도 공백기가 있었는데 한참 연극을 안 했을 시기라 연극 한번 했으면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마침 제안 들어온 작품이 또 이었어요. 그땐 윤소정씨가 파트너였죠. 확실히 처음 할 때보다 더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 뒤에 김명곤 전 장관이 연출한 라고 해서 한국버전으로 했을 때, 그리고 이번에 60주년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하게 됐죠. 오래된 작품이지만 이야기가 한국적이고 가족 중심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에 오랜 세월 공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4번째 연기하는 윌리 로먼, 이번 무대에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다. 그리고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연극은 일단 무대에 올라가면 배우가 다 감당해야 해요. 나중에 끝나고 연출에게 야단맞더라도 그 순간에 중단할 수가 없으니까요. 편집도 없고, 올려놓으면 끝날 때까지는 배우의 몫인 거죠. 특히 이번 작품은 배우가 표현해야 할 디테일이 아주 많습니다. 과거와 현실을 넘나들며 극의 의도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상당히 힘이 필요한 작품이죠. 해외의 한 배우가 40대에 이 역할을 맡고 “나는 젊어서 이 역할이 안 되겠다”고 했더니 연출이 “이 작품은 힘이 들어서 나이 먹으면 못한다”고 했다는 거예요. 그만큼 격렬한 역할이기 때문에 40~50대 정도 돼야 소화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런 부분이 힘들 수 있지만, 아무래도 젊을 때보다 나이 먹어서 하니 그 정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건 장점이에요. 힘은 떨어지지만 이제야 겨우 이해할 수 있는 부분과 마음에 와 닿는 게 많아져서 다시 한번 해보자 결심했어요. 이제 작품의 갖고 있는 의미나 상징성, 작가의 의도 등은 거의 이해했고 이제는 그것을 어떻게 더 원숙하고 정밀하게 표현해내느냐가 관건입니다.
작품 속 아버지 윌리 로먼과 아버지 이순재의 닮은 점
잘나가고 떵떵거리는 아버지도 있지만 가족에 대한 의무감과 심리적인 어려움은 모든 아버지가 공통으로 느낄 거예요. 배우는 정년이 없다고 다르게 보는 이들도 있지만,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똑같아요. 나 역시 돈 못 버는 배우였고, 바쁘게 일하느라 아이들과 시간 못 보내고, 밤낮으로 돌아다니니까 집사람과 여행도 제대로 못 해보고. 또, 배우라는 명성은 있지만 배역이 없어서 그러지 못하는 친구들을 보면 얼마나 가족에게 면목 없어 하는지…. 다른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이 직종을 택했던 자존심과 의지가 있는데 뜻대로 안 됐을 때의 회의감이나 허탈감이 들겠죠. 가장으로서의 경제적 조건이 위축됐을 때의 고민이 왜 없겠어요. 은 그런 모습을 아주 적나라하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극 속 상황은 경제공황으로 밀어닥친 여파이지만, 사실 이 아버지는 세대 차이에서도 밀려요. 새로운 세대로부터 밀려 나가는 그런 필연적인 상황에서 느끼는 위기의식, 우리 사회에도 이러한 고통을 느끼는 아버지들이 많을 겁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조건은 앞으로도 달라지기 어렵고, 그런 면에서 시대를 초월한 공감대를 느낄 수 있어요.
원로배우로서의 사명감
아들 역을 맡은 배우들은 다 내가 가르친 제자들이에요. 나는 이론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은 아닙니다.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경험을 통한 하나의 실습과정일 뿐이라 생각해요. 연기라는 것은 이론도 필요하지만 작품의 주제, 사회적 메시지, 자기 역할에 대한 이해부터 시작해야 하거든요. 다행스러운 건 다양한 매체와 수단이 발달해서 젊은 친구들의 그런 이해력은 더 좋아졌어요. 그렇다고 그게 다가 아니고, 자신이 이해한 것을 표현해야 하는 게 우리 일이니까. 그건 훈련을 통해 터득할 수밖에 없고, 그런 과정을 통해 자기 역할에 확신을 해야 할 수 있어요. 그런 이야기를 제자와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함께 경험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남다른 연기 열정에 대해 배우 손숙이 “이런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는데, 그에 대해 답한다면?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죠. 싫은 일을 하면 이렇게 견딜 수 있을까요? 처음부터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고, 그 과정에서 실질적인 어려움도 많이 있었지만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밀고 나갈 수 있었던 힘이 바로 거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실 우리 일이라는 게 끝이 없어요. 예술적 창조애가 어디 끝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느 시대의 어느 거목이라 하면, 그저 거목이 있었을 뿐이지 그게 완성과 끝은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도전하고 개발하고 창조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아무리 막장 드라마 할아버지라도 이 할아버지 저 할아버지 다 다르지 않겠어요? 연기를 달리하겠다는 의지와 발견, 그런 창조적 활동이 재미있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지금껏 열정적으로 할 수 있었던 거지,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라면 재미없잖아요. 그게 우리 직업의 장점이자 생명력이라고 생각해요.
“이번이 마지막 이라 생각하고 임했다”고 했는데, 그 의미와 60주년 이후 배우 이순재의 모습
각오라면 각오이겠고,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나이도 있고 하니 언제까지 현재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물론 배우는 누군가가 불러줘야 하지만, 스스로 판단하는 기준도 있어요. 바로 암기력입니다. 대사를 못 외워서 후배나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치면 미안하잖아요. 그러면 그때는 내가 그만두어야겠다 생각해야죠. 물론 어느 정점이나 연령에서 ‘이제 끝이 왔구나’라고 판단하고 나태해지면 정말 그걸로 끝나버리는 겁니다. 그런 한계를 두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가 바탕이 돼야겠죠. 나뿐만 아니라 신구, 박근형 이런 친구들이 건재한 이유는 그런 점에서 자기 관리와 개발을 끊임없이 하기 때문이에요. 이번 연극 중 윌리 로먼이 아들에게 “봐라. 사람이 해서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말이다”라는 대사가 있어요. 인간의 능력이라는 게 물론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영역은 돌파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욕심을 부리지 않는 선에서 자기 확신을 두고 최선을 다하는 게 현재의 노력이라 생각해요.
△ 배우 이순재 연기 인생 60주년 기념 공연
12월 13~22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박병수 연출, 이순재ㆍ손숙ㆍ이문수ㆍ맹봉학ㆍ김기훈 등 출연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는 어느 문화권에서나 사용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바디 랭귀지를 같은 의미로 이해되지는 않는다. 이민 초기 일상의 아주 작은 것들에게조차 적응하는 과정에 있을 때다. 알고 있었던 정보와 현실의 차이는 엄청났다. 남들이 모두 해냈다고 필자에게도 쉬운 길이 될 수는 없다. 마치 여자들의 해산의 고통처럼 고통의 몫은 저마다 다르다.
생존하려고 선택한 세탁업을 위해 필요한 기능을 익히느라 언어는 어떻게 극복했는지 기억할 수도 없다. 한국인 특유의 빠른 눈치와 주위 상황을 종합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사건들을 짐작해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필자가 한 옷수선에서 아주 쉽고 기초적인 작업인데도 실수를 했다. 그때만 해도 필자가 아직 기술이 부족해 작업이 깔끔하지 못했는데 아주 기본적인 것마저 소홀히 처리한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맡은 일에 온 정성을 쏟았던 필자였기에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엉뚱한 실수였다. 손님은 실수의 증거품인 바지를 들고 왔다. 화가 나서 곧 폭발할 듯한 얼굴로 말도 없이 잘못된 옷을 필자 앞으로 들이밀었다. 필자는 순간 ‘이럴 수가… 이 쉬운 작업을!’ 하는 자책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무안했다. 먼저 손님에게 진정으로 사과하면서 고쳐주겠다는 약속의 말을 했어야 했는데 필자의 말도 안 되는 실수에 어이가 없어서 그만 피식하고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한국인들은 어색하거나 무안할 때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습관이 있다. 특히 필자가 그랬다. 아주 고약한 버릇이었다. 종종 그런 태도가 지나치다고 주위 사람들이 충고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무안할 때 싱거운 웃음을 흘리는 습관이 그날도 나와버린 것이다. 그러자 손님은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너는 이게 장난으로 보이니? 나는 무척 불편하고 화가 나는 일인데?”라고 말했다. 평소 필자의 작은 실수에도 관대하게 대해줬던 손님이었다. 필자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감정 표현에 정확한 미국인이 필자의 웃음을, 그 복잡한 바디 랭귀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싶어 많이 후회가 됐다.
그날 밤 필자는 잠이 오지 않았다. 뒤척거리며 고민해도 그 손님에게 내 입장을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한국인의 바디 랭귀지를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영어 실력이 뛰어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시도라도 해보자 하면서 종이와 펜을 들었다. 내 안에 저장된 영어 단어와 사전을 동원하고 대학 입시 때 머릿속에 암기해두었던 구문까지 사용했다. 끙끙거리며 작성한 필자의 첫 영문 편지였다. 문장이 문법적으로 맞았는지, 단어의 사용이 적절하였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단지 손님이 영문 편지를 통해 필자를 이해했고, 그 뒤로 더 친밀해졌다. 옷을 정성껏 다시 고쳐 편지와 함께 전달함으로써 첫 시련을 극복한 필자는 더 이상은 그런 실수가 거듭되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를 단속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설픈 문장의 편지보다는 손님이 받은 손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필요했다. 불필요한 걸음을 하면서 소모했을 자동차 가스비를 필자가 부담하거나 처음 받았던 수선료를 돌려줬어야 했다. 거래상의 실수인데 시장의 생리로 대처하지 못하고 감상적인 글을 써서 해결하려 했다니… 필자의 대응 방식이 세련되지 못하고 너무 촌스러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필자에게는 따뜻하고 정겨운 기억 속 한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