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 어디서 났게?”
동생은 망고를 깎으면서 대단한 비밀이라도 들려주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의도를 알기 어려운 질문이어서 잠시 머뭇거리니까 동생이 그새를 못 참고 말을 이어갔다.
“요즘 우리 시어머니가 이상해.”
그 말에는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이 잔뜩 묻어 있었다.
동생의 시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참 좋다. 그 솜씨를 동네 노인정에서 발휘하니 점심 먹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으쓱해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게다가 나이가 들었어도 무너지지 않은 얼굴선 덕분에 70세가 넘은 할머니치고는 예쁘장한 외모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당신이 노인정에서 인기가 많다는 걸 자랑 삼아 얘기하기도 한단다.
그러던 어느 날 초인종이 울려 나가보니 대문 앞에 계란 한 판이 놓여 있더란다. 사람은 없고 계란만 덩그맣게 있길래 의아해하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마당까지 쫓아 나와서 한마디 하셨단다.
“노인정 영감이 놓고 갔나?”
그래놓고 당황한 기색으로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으셔서 “들어오시라 해서 차라도 한잔 대접하시지 그러셨어요” 했더니 “에이, 나이 들어서 주책이야” 하며 뛰어 들어가시더란다. 언제부터인지 시어머니가 아침 숟가락을 놓기 바쁘게 노인정으로 달려갔는데, 멜론이나 망고 등 시어머니가 평소에 돈 주고 사지 않을 과일들이 냉장고에 들어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며 동생은 깔깔 웃었다.
모두들 나이 들어가면서 꺼리고 외면하는 것들이 있다. 나잇값을 제대로 하지 못할까봐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일을 감추기에 급급하다. 잘못했다가는 ‘나이 들어 주책이야’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얼굴에 주름이 파이고 육체의 기능이 쇠락해도 감정은 여전히 살아 있다. 사랑은 숫자로 하는 게 아니라 느낌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니 청춘은 갔어도 가슴 뛰는 인생의 봄날을 여전히 기대하는 것 아닌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라는 소설을 통해 90세 노인에게 찾아온 첫사랑을 이야기한다. 평생을 창녀들과 함께 보내면서 이 세상에 순정한 여자는 없다고 생각하는 독신이자 신문사 칼럼니스트 사비오. 그는 90세 생일에 자기 자신에게 아름다운 밤을 선사하기 위해 선택한 14세 소녀에게 빠진다. 사랑의 열병은 그에게 낭만주의 문학작품을 들추게 하고, 연애편지 형식의 칼럼을 쓰도록 만든다. 사랑 때문에 죽는 것은 시적 방종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던 그가 사랑 때문에 죽는 일은 가능한 일일 뿐 아니라 자신도 사랑 때문에 죽어가고 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 고통의 달콤함을 무엇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말한다.
위대한 첫사랑이다. 90세 노인에게 찾아온 첫사랑을 주책없는 늙은이의 추태로만 볼 것인가? 아니다. 그 사랑은 죽음과 멀지 않은 노인에게 찾아온 마지막 열정이자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순정한 고백이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외로움과 고독에 익숙해진다는 의미다. 함께 산책하고 함께 여행하면서 맛있는 음식 먹고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축복이다. 동생은 시어머니와 영감님이 언제쯤 드러내놓고 주책을 부릴까 그때를 기다린다고 했다.
‘인구절벽’이 우리 경제를 조여오고 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저출산으로 한국전쟁 후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베이비붐 세대를 이어 경제를 주도할 ‘생산인구’가 부족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출산율은 1.25명에서 1.17명으로 크게 줄었다고 한다. 이처럼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듦으로써 정부의 세금 자원도 줄어 세금으로 이뤄지는 복지정책이 어렵게 되었다. 통계가 아니어도 저출산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장가, 시집갈 나이가 훨씬 지났음에도 결혼할 생각조차 않는 총각, 처녀들이 많다. 결혼 적령기가 지난 딸을 둔 친구가 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집을 늦게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가지 않겠다고 해서 그렇다. 딸의 논리 정연한 이유를 듣고 설득할 말을 잃었다고 실토한다. 혼자 살아도 행복하고 앞으로도 큰 문제 없을 것 같은데 왜 시집가서 남편을 섬기고 아이 낳는 고통까지 짊어져야 하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30대 중반이 지난 필자의 아들 녀석도 같은 부류에 속한다. 혼자 살기도 힘든데 벌어서 여자까지 먹여 살려야 하느냐고 묻는다. 또 지금의 이 고통을 후세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고차원적 변명도 한다. 이해가 전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설득을 해야 할까? 자식들 인생이니 알아서 살도록 나둬야 할까? 생각이 복잡해진다. 부모는 자식들이 새 가정을 만들어 오순도순 살아가기를 바란다. 세상을 살다 보면 분명 힘든 일도 생기고 일심동체라 일컫는 부부도 격한 싸움을 할 때가 있다. 부부싸움이 잦은 사람에게 “그렇게 싸울 바에야 아예 헤어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살려고 하니 싸우지 헤어지려면 뭐하러 싸워요!” 이해가 가는 말이다. 어떤 경우에도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난관도 견디어내기 마련이다. 그게 가족의 힘이고 그 힘은 결혼을 해야 생겨난다.
어느 철학자는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라고 하면서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편이 낫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결혼을 후회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통계를 아직 보지 못하였지만,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주변이나 친구들을 봐도 결혼을 후회한다고 말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와 같은 세대는 독신으로 사는 사람이 적었다. 다만, 형편이 어려워 결혼이 늦은 사람들은 있었다. 결혼을 후회하는 경우는 결혼 자체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불만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서 이혼을 해도 또 재혼을 하는 것 아닐까? 결혼 자체를 싫어한다면 재혼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기에 말이다. 배우자가 문제될 뿐인 것이다.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를 둔 자녀들은 결혼을 꺼리는 경우를 종종 본다. 부모의 결혼생활을 통해 미리 경험하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지지고 볶으며 싸우는 모습만 봐왔기 때문에 선뜻 결혼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부모의 책임도 크다.
우주의 법칙은 무엇인가? 한 마리의 작은 잠자리도 종족을 이어가기 위하여 가을 하늘을 날며 암수가 사랑을 나눈다. 한 그루의 꽃도 씨를 남긴다. 모든 동물도 새끼를 낳아 기른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고귀한 새 생명의 탄생은 우리가 해야 할 대자연의 기본 법칙이 아닐까? 또한 자신을 세상에 있게 한 부모에 대한 보답이다. 왜 자기를 낳아 이렇게 고생하게 만들었냐고 반문하면 딱히 할 말을 찾기 힘들다. 그러나 결혼해서 참기름이 쏟아지도록 행복하게 사는 부부가 얼마나 많은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서로를 의지하며 행복하게 사는 노부부들을 보면 부럽다. 그들은 분명 결혼은 안 하면 후회한다고 말할 것 같다. 70대까지 독신으로 살아온 한 시니어가 KBS 1TV ‘내 말 좀 들어봐!’라는 코너에 출연해 혼자 사는 외로움을 실토하며 꼭 결혼하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혼자’라는 용어가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오늘날 혼자 살겠다는 처녀, 총각들을 어찌하오리? 저출산율에서 벗어나는 고민을 함께해야 할 때다.
결혼생활은 사람의 수명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최근 황혼이혼이 증가하고 있다.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독신으로 혼자 산다면 계속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보다 행복할까? 나아가 이혼 후 다른 배우자를 만나서 재혼을 하면 짜릿한 행복감을 맛볼 수 있을까? 이혼과 재혼은 여명(餘命)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일까?
혼자 사는 사람들을 보면 처음부터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평생을 산 사람이 있고 결혼해서 부부가 함께 살다가 무슨 이유로 이혼을 하는 경우도 있고 부부 중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서 어쩔 수 없이 독신이 되는 경우도 있다. 사별이든 이혼이든 혼자 살다가 다른 배우자를 찾아서 재혼을 하는 사람도 있고 독신을 고집하며 계속 혼자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사람의 삶이 행복한 삶이었느냐 불행한 삶이었느냐는 다분히 주관적이어서 논외로 치고 이 중 누가 가장 오래 살았을까? 궁금한 사실에 대한 통계자료가 있다.
1921년 스탠포드대학의 심리학 교수 루이스 터먼 박사는 1910년 전후에 태어난 소년소녀 1500명을 선발해 무려 80년 동안(터먼 박사의 후배 연구자들에 의해 계속 이어졌다) 이들의 결혼과 이혼에 관련한 수명을 분석하였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남자와 여자가 달랐다고 한다.
결혼과 수명 사이의 관계를 살펴봤을 때 남자의 경우, 결혼하고 부부가 계속 같이 산 사람이 가장 오래 살았고 다음으로 아예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생을 마감한 사람이 그 뒤를 이었다. 다음으로 이혼하고 다시 재혼한 사람이 오래 살았고 맨 마지막이 이혼 후 독신으로 계속 산 사람이었다.
여자의 경우는 남자와 마찬가지로 결혼한 뒤 부부가 함께 해로한 사람이 가장 오래 살았고 다음으로 이혼 뒤 재혼하지 않고 혼자 독신으로 계속 산 여자가 이혼하지 않고 함께 산 사람과 비슷했다. 다음으로 아예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이 그 뒤를 이었고 가장 수명이 짧은 여성은 이혼 후 재혼한 여성이었다.
결혼 후 혼자가 된 홀아비는 일찍 죽지만 이혼하였거나 과부로 살아가는 여자는 오히려 재혼한 여자보다 오래 살았다는 통계는 일반인의 상식을 뒤집는 통계다. 부부가 함께 사는 것이 건강보조제를 먹는 것처럼 효과가 있다면 남녀에게 공평해야 할 텐데 남자에게는 적용되고 여자에게 적용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부부가 함께 살면 어떤 점이 좋을까? 우선 의학적인 면만으로 살펴보면 긴급한 사항이 닥칠 때 대신 119를 불러주고 아플 때 옆에서 간호해주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된다. 환자가 되어 말을 제대로 못할 때 의료진에게 병의 진행 상태를 대신 말해줄 수도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배우자는 스트레스 완충 역할을 한다. 직장에서 좋지 못한 일이 생겼을 때나 아이들이 말썽을 부릴 때 기타 사건사고가 생겼을 때도 배우자에게 털어놓으며 위로를 받기도 하고 공동으로 해결책을 강구하는 정신적 원군이 되는 것은 분명 결혼생활이 수명 연장에 좋은 점이다.
부부가 함께 살면 어떤 점이 불편할까? 서로 지향하는 인생관이 달라서 사사건건 트집만 잡고 바가지만 긁는 배우자라면 오히려 결혼생활이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수명이 단축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갓 결혼한 부부라면 남자는 원래 이런 동물인가? 여자는 본래 이런 성격인가? 하며 자신을 상대에게 맞추려는 노력을 한다. 더구나 젊을 때는 유연성이 높아 자신을 변화시키는 범위나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화성남자와 금성여자가 결혼해도 잘 맞추고 산다.
하지만 이미 부부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전 남편 전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의 행동이 몸속 깊이 박혀 있기 때문에 재혼한 지금의 상대와 비교를 하게 되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서는 강하게 반발한다. 재혼이란 평탄한 결혼생활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자식이 있는 경우에는 양육 문제나 재산분할 문제로 시끄러울 확률이 높다.
방송에서 보도되는 사건사고를 보면 재혼 후 새롭게 구성된 가족 내에서 성폭력도 일어나고 계모나 계부의 방임이나 유기 등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도 발생한다. 결국 행복하려고 한 재혼이 파멸에 이르고 만 것이다.
실제 이웃이나 친척, 친구들을 봐도 행복을 찾아 단행한 이혼이 해피엔드로 끝나는 경우는 보기 어렵다. 한쪽은 행복해도 다른 한쪽은 이혼한 것을 후회한다. 여자 혼자서 또는 남자 혼자서 살아가기가 뚜렷한 독신주의의 인생관이 있다 해도 녹녹하지 않은 세상이다. 그래서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찾아 결혼이나 재혼을 적극 권장하지만 재혼한 부부가 또다시 갈라설 확률은 높고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이혼을 하고 팔자를 고치면 노다지를 캘 것 같은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인생은 두 번 살 수 없다. 선배들이 살아온 삶의 추적같은 통계자료를 보면서 처신에 신중해야 한다.
주경중 감독 작품으로, 주연에 거장 조각가 황준혁 역으로 이성재, ‘나탈리’의 모델이며 오미란 역으로 박현진, 오미란의 남편 민우 역으로 김지훈이 나온다. 잘 알려진 배우는 아니지만 박현진의 미모가 빛나는 작품이다.
여인의 눈부신 나신을 조각한 작품 ‘나탈리’는 평단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전시회 마지막 날 평론가 장민우가 나타나 나탈리의 실제 모델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 조각상을 팔라고 하지만 황준혁은 거절한다. 그 대신 황준혁은 나탈리의 실제 모델 오미란과의 격정적인 사랑 얘기를 들려준다. 민우는 황준혁에게 그녀를 얼마나 알고 있으며 얼마나 사랑했냐고 따져 묻는다. 황준혁은 자신 있게 그녀를 사랑했다고 말하지만, 그녀의 남편이었던 민우는 믿지 않는다.
대학 교수인 황준혁은 제자 오미란이 제 발로 다가와 나체 모델이 되겠다고 해서 나탈리라는 작품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두 사람은 곧바로 격정적인 사랑에 빠졌으나 황준혁이 결혼을 원치 않는 독신주의자라서 오미란은 떠난다. 그 뒤 두 사람은 만나지 못했고 오미란은 병으로 죽는다. 민우는 오미란이 제 발로 황준혁에게 다가가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황준혁이 교수이자 저명한 조각가라는 위세를 이용해 오미란을 불러 유린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영화는 두 장면을 모두 보여준다. 오미란이 종강 기념으로 책에 사인을 해달라고 부탁하자, 황준혁은 오미란이 “너를 갖고 싶어”라는 글을 써달라 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민우는 오미란이 황준혁이 사인을 하며 “너를 갖고 싶어”라고 썼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오미란에 대해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관객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몇 해 전 청순한 이미지의 한 여자 배우가 자살한 일이 있다. 사람들 모두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이때 한 가수가 그녀가 생전에 자기를 사랑했다는 발언을 해서 매스컴에 오른 일이 있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녀의 이미지에 손상이 가는 언행은 자제했어야 한다고 본다.
남녀관계는 당사자들만 안다. 백년해로해서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남녀 간의 사랑은 끝까지 가는 확률보다 헤어지는 확률이 훨씬 많다. 둘의 추억은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한다. 특히 남자는 그래야 한다.
남자들의 성 경험담에는 과장이 많다. 사랑 이야기는 당사자들만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다. 누가 물어보더라도 함구하고 살아야 하는데 무용담 얘기하듯이 상대 여자에 대해 떠들고 다니는 남자들이 있다. 남자답지 못한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보수적이다. 함부로 하는 연애 이야기로 여자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기도 한다. 아무리 오래된 이야기라 해도, 설사 세상을 떠난 사람의 이야기라 해도 상대방의 이미지에 손상이 가는 언행은 삼가야 한다.
결혼을 하면 서로 사랑하고 관심을 갖기 때문에 건강에 이롭다는 것은 오랜 상식이다. 여러 조사 연구에서도 독신자보다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암, 치매, 폐렴 등과 같은 질병에 걸릴 확률이 낮고 평균수명도 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면 잔소리가 심한 배우자와 그렇지 않는 배우자 중 어느 편이 건강에 도움이 될까? 건강은 부부 금실과 비례할까? 미국은퇴자협회(AARP)는 10월호 회보에서 ‘배우자와 건강의 상관관계’라는 제목의 특집을 통해 이런 궁금증을 풀어줬다.
글 남진우 뉴욕주재기자 namjin@etoday.co.kr
1. 부부는 체질도 닮는다 오래 같이 산 부부는 외모만 닮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비슷해진다. 미시간대학 연구팀은 1500쌍의 노부부를 대상으로 한 혈액검사를 통해 신장 기능, 콜레스테롤 수치, 손의 악력, 우울증 등과 같은 건강 상태와 체질이 유사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브리티시콜롬비아대학과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연구 팀도 결혼한 지 40년이 넘은 미국인 부부 1700쌍을 대상으로 한 공동 조사에서 오래 같이 산 부부는 정신적, 신체적으로 서로 거울을 보는 것처럼 닮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 배우자의 우울증은 만성질환 요인
에든버러대학이 10만 쌍이 넘는 영국인 부부의 상담 및 검진 자료를 분석한 결과, 만성질환은 유전적 요인뿐 아니라 배우자 정신건강상태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면 배우자가 우울증이 있으면 만성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식사, 생활습관, 부부가 공유하는 환경도 만성질환과 연관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3. 부인의 잔소리는 보약
미시간주립대학은 2016년 발간한 연구보고서에서 부인의 바가지는 남편 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남편의 잔소리는 부인 건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부인의 잔소리는 귀에 거슬리지만 남편에게 보약과 같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남편이 잔소리하지 않고 잘해주면 부인의 당뇨병 위험이 낮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4. 긍정적 배우자는 만성질환의 백신
미시간대학이 노부부 2000쌍을 대상으로 4년간 조사 연구한 결과, 부부 중 한 사람이라도 사고가 낙관적이고 긍정적이면 비관적인 성향의 부부에 비해 당뇨나 관절염 같은 만성질환의 발생률이 낮고 기동성과 운동능력도 더 나은 것으로 나타났다.
5. 부부싸움 스타일에 따라 발생하는 질환도 다르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과 노스웨스턴대학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부부싸움을 할 때 목청을 높이는 부부는 심장병과 혈압 관련 질병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꾹 참는 스타일은 목과 척추질환 그리고 근육통으로 고생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6. 운동습관도 닮는다
존스홉킨스대학은 최근 연구 조사를 통해 부인이 운동량을 늘렸을 때 남편이 운동량을 늘릴 확률이 70%나 높아지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비해 남편이 운동량을 늘려 권장 운동량을 달성했을 때 부인이 이에 동참할 가능성은 40% 정도 높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7. 함께하는 다이어트는 역효과
다이어트는 부부가 함께하지 않는 것이 좋다. 콜로라도주립대학이 과체중 부부 50쌍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부부가 함께 다이어트를 할 경우 한 사람이 다이어트에 성공하면 다른 한 사람은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8. 나쁜 습관은 전염된다
배우자의 나쁜 습관은 배우자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맥길대학이 7만5000쌍의 부부를 대상으로 연구 조사한 6건의 국제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배우자가 제2형 당뇨병을 앓는 경우 상대 배우자가 당뇨병에 걸리는 비율이 26%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당뇨병전기의 위험성도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부부는 나쁜 식습관과 운동습관을 공유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우자가 당뇨병 진단을 받았을 경우 상대 배우자도 당뇨병 검사를 받거나 식습관을 점검해보는 것이 좋다.
9. 배우자 간병은 건강 저해 요인
배우자가 만성질환이나 중병을 앓으면 상대 배우자도 신체적,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뇌졸중의 경우 배우자의 건강에 장기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노스웨스턴대학의 셰릴 램피지 심리학 교수가 밝혔다. 뇌졸중을 앓는 배우자를 간병할 경우 첫해는 물론 이후 7년간 신체와 정신건강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
1957년생 장은숙은 1977년에 데뷔해 1995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자기애로 똘똘 뭉친 장은숙은 고독한 생활을 즐겼다. 고독했기에 행복했고 그래서 늙지 않는 것일까. 무엇보다 그녀의 가수 인생은 파란만장했지만 고독했기에 노래에 집중할 수 있었고 성공과 행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것. 시집 한 번 안 간 그녀는 요즘도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는 것이 편하고 재밌단다. 올해로 60세인 장은숙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최강 동안을 자랑하며 ‘함께 춤을 추어요’와 ‘당신의 첫사랑’ 등 여전히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몇 년 전 (KBS 1TV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무대에 오랜만에 나타난 장은숙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젊었을 때 보았던 장은숙의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세련되어졌고 농후한 맛까지 더해져 젊었을 때보다 훨씬 더 섹시해져서 나타난 것이다. 그녀의 나이가 60인데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최강 동안(童顔)이었다. 그때 TV를 보면서 장은숙의 미모와 목소리에 푹 빠져 팬이 되어버렸다. 그 후 유튜브로 그녀의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와 마주앉아 인터뷰를 하고 있으니 한량 이봉규는 정말 행운아다.
인터뷰를 마친 후 내가 내린 그녀의 최강 동안 비법은 고독이다. 그녀는 결혼한 적이 한 번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연애도 못해봤다. “남들은 결혼을 세 번씩도 하는데 난 이게 뭐냐?”고 페인트 모션(feint motion)까지 쓴다. 그런 엉성한 페인트 모션에 넘어갈 한량 이봉규가 아닌 걸 금방 눈치 챘는지,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는 것이 편하고 재밌다”고 자기 진단을 내린다.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과 살지 않는 바에야 혼자 사는 것이 편할 수 있다. 하기 싫은 것을 파트너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 그러다 보면 툭하면 싸우게 되고 스트레스는 가중된다. 그런 일상이 켜켜이 쌓인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버리면 어느새 늙어버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그런데 장은숙은 철저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왔다.
“싫은 사람은 아무리 비즈니스로 연결되어 있어도 만나지 않는다”는 고집불통적인 자기애(自己愛)가 최강 동안의 비법이 된 것이다. 고독하기에 자기만 사랑했고 그러다 보니 고독을 즐기는 선순환이 오늘의 장은숙을 만들었다. 물론 나름대로 젊어지려고 발버둥치는 노력도 병행했다. 15년째 경락 마사지를 받고 있고 운동은 늘 일상이다. 이런 노력도 결국 자기애의 일환이다. “70대가 되어도 최강 동안 소리를 듣고 싶다”는 그녀의 욕심은 무죄다.
“더 이상 예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없을 때는 다 팽개치고 화장도 안 하고 산에 파묻혀 전원생활을 즐기고 싶다”고 말하는 걸 보라. 얼마나 자기애가 강한지 알 수 있다. 아무리 고독을 즐기기로서니 나이 60인데 여태껏 제대로 된 연애를 못 해봤다는 그녀의 말이 믿기 어려워 파고들었다. “가끔 섹스하고 싶은 충동이 없냐?”는 이봉규의 도발에 그녀는 “솔직히 운동하고 일하는데 열정을 쏟다 보면 피곤해서 그런 생각이 나질 않는다”고 답변한다. 그러나 오히려 섹스 생각이 나는 게 두려워 일부러 운동과 일로 몸을 피곤하게 만드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운동과 일은 그녀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에너지 발산법이기에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가 나는 것이다.
그녀는 20대부터 요즘 유행하는 ‘혼술(혼자 마시는 술)’을 좋아했다. 지금도 집에서 혼술을 즐긴다. 어떨 때는 혼자 단골 바(bar)에서 새벽 두시까지 마신다. 언제부터인가 술 마시는 모임도 피곤해서 차단하고 혼자 마신다. “모임에 나가 말 상대하기도 피곤해서 싫고 차라리 편하게 집에서 마시는 것이 훨씬 즐겁다”는 그녀의 진단을 백퍼센트 이해한다.
한량인 나도 혼자 집에서 TV 보면서 막걸리를 마시곤 했다(지금은 띠동갑 마누라와 신혼생활에 푹 빠져 집에서 음악 틀어놓고 제대로 막걸리를 즐기고 있지만). 고독을 즐기고 혼자 술 마시는 것을 밥 먹듯 하는 그녀도 한 달에 한두 번은 대화가 통하는 멋진 남자와 한잔하고 싶을 때가 있다고 털어놓는다. 특히 공연이 끝나고 혼자 집에서 술 마시면 뭔가 허전함을 느낀단다.
오늘은 나와 ‘그루브’라는 라이브 카페에서 진토닉을 마시고 있다. 이미 1차로 주꾸미에 막걸리를 마신 후라서 취기가 슬슬 오르는지 “혼자 술 마시면 슬플 때도 있다”고 고백한다. “언젠가 남산에서 혼자 술 먹고 걸어서 집에 가는데 눈물이 났다”고 회상하는 그녀의 눈가가 촉촉하다. 그녀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고독에 지칠 때도 있는 것이 당연하다. 나의 피아노 반주에 장은숙이 노래를 뽑아댔다. 김정호의 ‘이름 모를 소녀’가 다시 태어난 느낌이다. 걸쭉한 허스키 보이스에 서구적인 마스크가 김정호의 노래를 지워버린다. 내친김에 앙코르, 삼코르, 사코르를 막 받는다. 토니베넷의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카펜터스의 ‘This Masquerade’를 재즈풍으로 너무나도 멋지게 불러젖힌다.
그녀가 아직 독신으로 살고 있는 것은 몇 번의 찬스를 놓쳤던 이유도 작용했다. 어린 시절부터 남동생과 친척 동생까지 키우고 뒷바라지하느라 젊었을 때는 마음의 여유조차 누릴 수 없는 시간들을 보냈다.
‘함께 춤을 추어요’와 ‘당신의 첫사랑’ 등 잇따른 히트로 스타가 되었을 때는 바빠서 정신이 없었고, 37세 때부터 시작된 일본 생활은 엄격하고 혹독했기에 연애가 여의치 않았다. 매일 6시 반에 기상해서 학교에서 일본어 배우고 노래와 춤까지 연습하느라 마치 군 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고 회상한다. 그녀가 결정적으로 찬스를 놓친 것은 일본 가기 전에 잠깐 사귀던 남자와 헤어지면서부터다. 마음의 상처를 받았기에 또 다른 사랑을 찾기가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혹독한 일본에서의 연습생 시절, 한국에 있던 그 남자는 장은숙과 연락도 잘 안 되고 이상한 헛소문(“아쿠자에 잡혀갔다”)까지 돌자 그녀를 잊고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를 달랠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바빴다. 그 뒤 몇 번의 기회가 더 있었지만 음양의 조화가 안 맞아 연애를 못했다.
“내가 어떤 남자를 좋아하면 그가 도망가고, 나에게 달려드는 남자는 내가 싫고, 남자에게 애교도 부릴 줄 모르는 성격이라 연애가 잘 성사되지 않았다”고 애써 핑계를 댄다. 이토록 매력 있는 여성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연애를 즐길 수 있었겠지만 자기애로 똘똘 뭉친 장은숙은 고독한 생활을 즐겼다. 고독했기에 행복했고 그래서 늙지 않는 것이다. 그녀의 가수 인생은 파란만장했지만 무엇보다 고독했기에 오히려 노래에 집중할 수 있었고 성공과 행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그녀는 1977년 동양방송(TBC)에서 주최한 대한민국 최초의 오디션프로그램인
에서 연말까지 승승장구한 끝에 우수상을 받고 데뷔했다. 이때 처음 받은 참가번호가 행운의 숫자인 ‘7번’이었는데 월말 결선에서도 7번을 받았고, 연말 결선에서도 7번을 받았다. 하늘이 그녀를 미리 점지했는지도 모른다.
어릴 때 국악을 배운 그녀는 가끔 절에 들어가서 연습을 하곤 했다. 연말에 우수상을 타고 나서도 득음을 위해 화곡동에 있는 절에 들어가서 2년간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래서인지 끈적끈적한 허스키 보이스는 어느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다. 1981년에는 코미디언 이주일과 이라는 영화의 주인공도 했다. 톱스타로서 승승장구하던 장은숙에게 해외 진출의 기회가 온 것은 1995년. 그녀는 일본 토라스레코드 사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장수(Chang Suu)’라는 예명으로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계은숙이 일본에서 한참 활동한 후여서 같은 이름의 은숙이라는 본명 대신 일본 기획사에서 지어준 ‘장수’라는 예명을 사용했다(2009년부터는 본명 장은숙으로 다시 바꿨다). 그녀는 데뷔 첫해 일본 유선대상에서 신인상을 받았고, 2000년 발표한 ‘운명의 주인공’으로 방송 및 각종 차트에서 12주 이상 1위를 차지하며 총 25만 장의, 당시로서는 상당한 앨범 판매 기록도 세웠다.
지금까지 그녀가 발표한 음반은 21장인데 이 중 14곡이나 유선방송(리퀘스트 차트) 1위에 올랐다. 지금은 2003년에 설립한 연예기획사 ‘오피스 장수’의 대표로서 후배 양성도 하고 있다. 요즘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바쁘게 생활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한국에서의 활동 비중을 점차 늘려나갈 예정이다.
나는 그녀의 노래 중 ‘당신의 첫사랑’을 가장 좋아한다. 예전에는 이 노래 가사의 의미도 제대로 모르고 불렀는데 지금은 감정이 달라 다른 분위기로 노래한다고 한다.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스무살 시절, 다섯 살 연상의 연대생 오빠와 신촌에서 막걸리 마시던 추억이 떠오른단다. 최강 동안이니만큼 이제는 다섯 살 이상 연하의 멋진 남자와 첫사랑 같은 싱그러운 사랑에 빠지면 좋겠다. 그런 날이 빨리 와서 ‘고독한 최강 동안’에서 ‘고독한’이라는 형용사를 빼고 다른 형용사가 붙기를 기대해본다.
지방 근무할 때 퇴근 후 무료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위해 어학원을 다녔는데 어학원에는 필자의 딸 나이와 버금가는 20대의 여성공무원이 같은 수강생이 있었다. 내친김에 실전경험을 쌓기 위한 개인교습도 받았는데 여성공무원과 단둘이 희망하여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같이 수업을 받으니 자연스럽게 많은 대화를 하면서 신상파악을 할 수 있었다. 예쁘고 활달하고 공무원이라는 신분도 마음에 들어 우리 회사 남자 직원과 짝을 맺어주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에 둔 우리 회사 남자 직원은 집을 떠나 독신으로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성실한 청년이었다. 처녀보다 나이도 2살 정도 많고 이래저래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우선 의사 타진을 양쪽에 했다. 여성은 나를 믿으니 단박에 만나보겠다고 OK 사인을 보내오는데 남자직원은 확실하게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기만 했다.
남자직원이 망설이는 이유가 여자에 비해 자신이 꿀린다고 생각하고 혹 여자에게 차이면 직속상사인 나를 보기가 민망해서 머뭇거리는 줄로만 짐작했다. 만나보고 싫으면 그만두면 되니 부담 갖지 말고 나를 믿고 만나보라고 안심시키면서 한쪽으로는 그만한 여성 만나기 어려우니 꼭 잘되었으면 좋겠다고 호기심이 들도록 충동질까지 했다.
직속상관인 내가 권하니 머뭇머뭇하면서 겨우 만나겠다는 승낙을 했다. 만나보면 대번에 마음이 변할 거라고 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말해 양쪽을 내 기준으로 저울질해보면 남자보다 여자가 인물이나 학벌 게다가 남들이 부러워하는 여성공무원으로 한수 위라고 생각 했다.
예전의 중매는 호젓한 다방에서 중매쟁이가 양쪽을 불러 앉혀놓고 인사시키고 중매쟁이가 먼저 일어나는 순서를 밟았다. 심지어 양가 부모님이 나오는 경우까지 있어서 집안에서도 선남선녀의 첫 만남은 큰 사건이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라하고 중매쟁이가 슬그머니 일어나서 나가면 그때부터 남녀가 말문이 터져 대화를 이어갔다. 주로 남자가 대화를 리드해 나갔는데 아주 숙맥 같은 남자는 수줍음을 많이 타서 말을 못해 여자가 리드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상대의 면전에 대고 박절하게 우리는 인연이 아닌 것 같다고 말은 못하고 다음 만날 약속을 하지 않으면 이것이 이별 통보였다.
요즘은 만나게 하는 방법도 아주 간편하다. 양쪽에 전화번호만 알려주고 이런 전화가 오면 그 사람이니 전화를 받고 약속장소와 시간을 서로 정해서 만나보라고 하면 소개자의 임무는 끝이다. 두 사람도 이런 과정을 거쳐 만났다.
다음날 여성에게 호감이 가느냐고 물어보니 좋다고 긍정적인 대답을 하는데 의외로 남자가 아직 결혼 할 마음이 없다고 발을 뺀다. 이친구가 자기 복을 발로 차는구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일 년 뒤 서로 다른 짝을 찾아 결혼을 했다.
결혼 후 남자 직원이 어렵게 내게 말했다. 필자가 중매를 설 때 이미 지금 결혼한 여자와 혼인하기로 서로 언약한 상태였다고 한다. 상사인 내가 중매를 하자 단칼에 거절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맞선자리에 까지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만나보니 지금 결혼하기로 약속한 아가씨보다 더 예쁘고 조건도 더 좋아서 마음이 순간 흔들렸다고 한다. 하지만 둘 사이에 철석같이 결혼을 맹서해놓고 조건에 쫓아 혼약을 파기하면 천벌을 받지 하는 생각에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잡고 용기를 내어 나에게 완곡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시했다고 했다.
만약에 서로 다른 짝을 찾았으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만약에는 없다. 두 사람이 맺어질 인연이 아니어서 맺어지지 못했고 서로의 좋은 인연을 쫓아 맺어졌다고 본다. 결혼은 우리 인생에서 큰 사건임에는 틀림없고 최고의 인연을 맺어졌다고 믿어야 마음이편하다. 거기서 자식이 태어나면 책임과 의무감이 있어야 한다.
요즘 사귀다가도 조금만 더 낳은 상대가 나타나면 쉽게 돌아서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사랑은 영원하지만 그 상대는 변한다는 괴변이 판친다. 결혼하고도 이혼을 쉽게 결정하고 자식의 장래보다 나의 행복이 우선이라는 무책임한 이유를 들면서 갈라선다. 수 십 년을 살고 저승길 떠날 몇 년을 못 참아 황혼이혼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의 부모세대는 얼굴도 모르고 시집와서도 참고 살았다. 무조건 참고 살라는 뜻이 아니라 처음부터 결혼상대를 신중히 선택하고 한번 선택했으면 서로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결혼해서 덕 보려는 이기심만 없애도 혼인생활이 파탄으로 치닫는 경우는 드물다.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하는 마음이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과 같이 행복한척하면 행복해진다. 행복이란 다분히 주관적 이여서 사람마다 행복의 느낌은 다 다르다. ‘날씬한 몸매에 독신에다 돈 많은 것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보다는 높은 자부심과 사교적 생활, 그리고 자제력이 내적 행복의 티켓이다.’ 이 말은 ‘어떤 사람이 행복하냐?’의 물음에 대해 심리학자들이 내린 결론 이라고 한다. 호프 대학의 심리학자 마이어스씨는 앞으로 행복해질 것으로 점칠 수 있는 네 가지 특성을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이 특성들은 자부심, 자제력, 낙천주의, 그리고 사교적 성격이라고 답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돈이 많거나 무슨 일에 성공을 하거나 좋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행복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일리노이대학의 심리학자 디너씨는 아주 바람직한 일자리를 얻거나 복권에 당첨되는 것과 같은 외적 상황은 단기적 행복감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라 했다. 새로 갓 차지하게 된 명성이나 돈에 사람들은 곧 시들해져 버리고 점차 행복의 강도가 사라진다는 말이다. 유명한 스타들이나 이름난 운동선수 또는 돈 많은 부자라고 해서 반드시 일반 사람들 보다 더 행복하지 않는 이유다.
심리학의 원조 격인 제임스라는 학자는 정서는 신체에서 나오는 피드백 때문이라고 했다. 즉 우리는 울기 때문에 슬프고 남을 때리기 때문에 성이 나며, 떨고 있기 때문에 무섭다는 것이다. ‘웃으면 복이 와요’. 라는 말도 있고 웃으면 웃을 일이 생긴다고도 한다. 행복해 지려면 이것이 행복한 일인가 하고 논리적으로 따지기 전에 행복하다고 느끼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적어도 행복한척이라도 해야 행복해 진다는 의미다.
표정과 정서사이에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연필을 입술로 물고 2분간 있으면 기분이 별로지만 연필을 이빨로 물고 2분간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연필을 입술로 물면 무뚝뚝한 근육이 활성화되고 이로 물게 되면 웃는 근육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소 짓는 표정을 몇 분간 유지하면 기쁨의 감정을 경험하게 되고 찡그린 얼굴을 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기쁜 감정을 느끼려면 웃기만 해도 기쁜 감정을 느낄 수가 있다.
시어머니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저주의 비법을 물으러간 며느리에게 한 달만 시어머니에게 지극정성을 기우리면 죽을 것이라고 비방을 일러주었다. 까짓 한 달 정도야 못하겠나 싶어 지극정성을 기우렸더니 시어머니도 감복하여 며느리에게 성심껏 잘해주고 며느리도 진정시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게 되어 제발 시어머니가 죽지말기를 바라게 되었다는 전설 같은 옛날이야기가 있다. 잘하는 척이라도 하게 되면 정말 잘하게 된다.
나이 들어 제2의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지상과제다. 나물먹고 물마시고 팔 베게 하고 누웠어도 만족할 줄 알면 행복이다. 소똥 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고 한다. 아시아에서 가난한 나라인 부탄이 국민 행복지수가 우리나라 보다 높다. 물질의 풍요만이 행복의 척도가 아니다. 행복한 척이라도 해야 행복해 지지 짜증만 내면서 행복해지길 바랄 수는 없다. 경제도 어려운데 나라마저 대통령 탄핵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지럽다. 가끔은 행복한척이라도 하면서 셀프힐링이라도 해야 숨통이 트일 것 같다.
아들이 뉴욕 변두리 지금의 집으로 이사한 지 10년 되었다. 이 동네는 단독주택 주거지로 중산층 마을이다. 1950년대에 조성되었으며 그 시절에는 두 블록만 건너가면 맑은 개울물이 졸졸졸 흐르는 시골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마을이었다. 지금 그 개울은 오버브룩이라는 이름으로 흔적만 남기고 있다
이웃들은 새집을 지어 입주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아들딸 낳아 길러 독립시키고 이제는 나이 지긋한 시니어가 되어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동네는 마을 공동체의 속성이 있다. 아들이 이사하고 며칠 되지 않아 앞집에 사는 로즈라는 이름의 80대 유태인 할머니를 만났다. 혼자 사는 할머니는 우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동네를 소개하면서 아들 옆집에는 잭이라는 아이리시 독거남이 산다고 알려줬다. 그 집 이름은 ‘보이스 클럽’이란다.
잭을 만나니 로즈의 집은 ‘칠드런스 하우스’라고 알려준다. 그 의미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로즈의 집은 6남매 자녀들이 근처에 살고 있어 자녀들은 물론 손자들, 증손자들까지 놀러와 늘 붐볐다. 때로는 이들이 한 달씩 로즈와 함께 살기도 한다. 그야말로 ‘자녀들의 집’이다. 잭은 70대 부인과 사별한 독신남으로 잭의 집은 늘 남자 친구들이 들이닥쳐 북적인다. 원래는 잭의 아버지 집이었는데 잭이 매입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남자들이 모여 담소도 하고 스포츠 게임도 보고 포커 게임도 하는 모양이다. 늘 왁자지껄 소란스럽다. 이 집 이름 역시 ‘남성 클럽’이 딱 맞다.
필자 며느리는 그 마을로 이사 갈 때 두 번째 아이를 가진 상태로 만삭이었다. 아이를 출산하는 날, 마침 로즈의 생일파티가 있어 동네가 붐볐다. 그 인연으로 로즈는 손녀의 생일을 꼬박꼬박 챙긴다. 생일이 같다는 인연이 그렇게 반갑고 좋은 모양이다. 로즈는 마을에 활기를 가져다준 새 에너지가 경이로웠는지도 모른다.
잭은 아들이 정원일을 하거나 바깥 청소를 하면 “장인이 해줄 텐데, 장인 기다리지?” 하며 아들을 놀린다. 그럴 때마다 아들은 민망해한다. 작년에 바깥사돈은 은퇴를 했다. 은퇴 후 처음으로 딸 집에서 한 달간 머무르며 아이들을 도와주었다. 이때 필자 아들이 바빠서 미루기만 했던 집 페인트도 장인이 해줬단다. 아마도 잭에게는 그 풍경이 낯설고, 가정을 이룬 자녀 집 페인트를 해주는 별난 내리사랑이 이해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필자의 아들을 만나면 종종 그렇게 장난을 쳤다. 잭은 세 자매를 두었는데 모두가 교사다. 그런데 딸과 손자들의 방문은 거의 없었다. 70대인데도 햇살이 깜짝쇼를 하는 봄에는 무개차를 타고 달리는 멋도 부린다. 집과 정원관리도 깔끔하고 완벽하게 해낸다. 어느 구석 하나 홀아비 티가 전혀 나지 않는다.
아들 집은 오래된 집이라 고장도 잘 나고 부품 구하기도 힘들다. 있는 것을 다시 사용해야 하니 쉽지가 않다. 이럴 때마다 잭은 친절하게 도와주는데 필자 아들에게 닦아라, 돌려라, 빼라, 밀어 넣어라 하며 수리를 도와준다. 본인 손은 절대로 대지 않는다. 이런 잭의 태도를 보면 바깥사돈이 신체 멀쩡하고 건강한 자녀 집 페인트를 대신 칠해준 게 이상스럽기도 했겠다.
필자도 종종 아들 집에 가서 손자들을 돌봐준다. 이웃들은 틀림없이 필자 아들 집을 ‘부모의 집’이라 이름 붙였을 것이다.
이규현(교육학 박사, 행정학 박사)
인간은 올 때도 혼자 왔고 갈 때도 홀로 갑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은 혼자 살 수 없는 가냘프고 나약한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남자를 만들어놓고 홀로 있는 것이 보기에도 안 좋고 불안해서 남자를 재운 뒤 그의 갈비뼈 하나를 취해서 여자를 만들어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남자로 만들어 서로 도우며 살아가라고 하시지 않고 여자를 만들어 남녀가 서로 도우며 의지하고 살아가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남녀의 성 역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동성끼리는 신이 바라는 종족 번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고 또 인간은 성적인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는 위대한 사랑과 배려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부부라는 이름으로 둘이 만나 살다 보면 어느 한쪽이 먼저 작별을 고하게 돼 있는 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한쪽 배우자가 떠나고 나면 남은 한 사람은 밀려오는 고독과 싸우며 살아야 합니다. 물론 고독감은 고령자만 느끼는 것이 아니고 일생 동안 느끼며 사는 것이지만 특히 고령자가 되었을 때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외톨이가 되었을 때 깊은 고독을 느낍니다. 배우자가 살아 있을 때도 고독은 있지만 혼자가 되었을 때 가장 큰 고독을 느끼는 것입니다. 식사를 같이할 사람, 잠을 같이 잘 사람이 없으면 인생은 혼자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누군가를 필요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흔히 노년이 되면 상실의 시기, 소멸의 시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고령이 되어도 상실이나 소멸이 되지 않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생리적 욕구입니다. 배가 고프면 음식이 먹고 싶고 졸리면 자고 싶고 성적 욕구가 생기면 해소하고 싶은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배가 고프거나 잠이 올 경우는 그것을 충족시키고 싶은 의사를 표명하지만 성적 욕구는 어느 누구도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니! 못합니다. 특히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사회가 더 두드러집니다. 유교사상이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서양사회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성적 표현이 고령자들이 해서는 안 되는 천박한 범주에 속합니다. 물론 서양사회에서도 과거에는 종교와 문화에 따라 엄격한 때가 있었지만 20세기에 들어와서부터는 급격히 달라졌습니다. 성은 종교적인 면에서만 봐서는 안 되고 인간 중심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 주된 주장이고 변화입니다. 성은 신이 인간에게 만인평등으로 주신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침해하거나 박탈할 수 없는 천부적 권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고령이 되었다고 제한하거나 규제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똑같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노인의 성을 빼고 노후를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노인의 기쁨, 만족의 가능성이 간과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살아 있다는 것은 단순히 숨을 쉬고 있는 생물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인간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살아 있는 한 가슴 속에서 성적 욕구가 꿈틀거리는 불가사의한 존재입니다. 그것은 살아 있음을 의미하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욕구입니다. 섹스를 통한 황홀감은 인간이 느끼는 오감 중 가장 강력한 쾌감입니다.
흔히 인간을 ‘성적 인간’이라고 합니다. ‘성적 인간’이란 따뜻한 감정으로 이성과 접촉하고, 이성과 성적 교류가 가능한 인간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따뜻함은 삶을 위한 마그마(magma)로서 젊은 시절엔 이성을 희구하고, 친구를 희구하며, 노후가 되어도 이성에 대한 따뜻한 눈길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성기 결합은 물론이거니와 그 이상으로 상대와 마음과 감정의 교류를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긴요한 것입니다. 상대와의 농밀한 마음의 교류, 그것이 있음으로써 섹스를 하는 것이 극상(極上)의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교류가 없는 섹스는 단순한 점막(粘膜) 마찰에 불과한 것입니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다(All is well that ends well).’ 셰익스피어가 한 말입니다. 과거의 삶이 아무리 고달팠든 화려했든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인간은 항상 현재가 중요합니다. 인간에게 있어 고독은 죽음 다음으로 두렵다고 합니다. 고독은 수명을 평균 8년이나 단축시킨다고 합니다. 나이와 관계없이 인간은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이 없는 인생은 죽은 인생이나 마찬가지이며 사랑의 향기가 없는 인생은 꽃이 없는 사막과 같다고 했습니다. 사랑은 인간의 주성분이며, 인간은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홀로 사는 이 세상에 내가 사랑할 사람이 아무도 없고, 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때, 인간은 허무해지고, 고독해지고 절망에 빠지는 것입니다. 서산마루에 걸려 있는 태양을 바라보며 이제 곧 지겠지 한탄만 하지 말고 저 아름다운 태양처럼 나도 인생 말년을 멋지게 장식하겠다고 도전하십시오. 멀리 보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은 70m 안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섹스는 만병통치약이며 최고의 보약입니다. 모든 시니어들의 건강과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이규현 현 용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객원교수이며 저자다. 용인대학교 사회교육원장, 도서관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