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참여하는 시민, 도시사진전
- 각자 사는 지역사회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배움이 될수도 있고, 취미생활이나 봉사활동 등에 참여하면서 보람과 함께 주민의식을 느낄수 있는 기회도 된다. 서울시청엘 가면 시민청이 있다. 그곳에서 시민작가들이 해마다 도시사진전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시대를 담는 최고의 사진작가와 함께 하는 도시사진 멘토링 워크숍이라는 이름아래 과거에서 현재까지 다양한 서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작업이다. 매년 1회씩 진행하는데 올해가 4회째다. 도시사진전은 공지를 통해 모집을 하는데 서류선발이다. 물론 사진실력이 있는 사진작가들도 있고, 대부분 취미로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알고보면 모두 숨은 실력자들이어서 선의의 배움이 될수 있어서 좋다. 또한 무엇보다도 내가 사는 서울을 사랑하는 마음과 관심이 우선이다. 그리고 이 사회에 조금이나마 내 작은 힘이 도움이 되고 싶다면 참여해 볼만한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3회에 걸쳐 서울의 역사를 찾아보는데 집중했다. 필자가 참여한 4회째인 올해는 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4개월 동안 재개발이 되면 마지막이 될 , , , 을 탐사촬영을 했다. 멘토링 워크숍은 출사전에 먼저 시민청 강의실에서 사진을 통한 수업이 의미있다. 실력있는 멘토작가님의 강의와 사진이야기가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했고 렌즈를 통해 그 마음을 담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땀흘리는 열정의 하루를 보내고 나서 함께했던 시민작가들과 포장마차에 모여 사진토론에 열올리며 막걸리 한 잔 나누던 시간도 잊을 수가 없다. 기록의 방법은 다양하다. 평소에 대부분 아름다운 풍경이나 독특한 이미지 사진을 담느라 바빴던 시간이었다면 이번엔 다르다. 렌즈 저편 대상과의 관계형성이 따뜻이 흐르는 시간을 경험할 것이다. 프레임 속에는 느리게 흘러가는 삶이 있었다. 그리고 수십년을 살아왔지만 비로소 함께 나누는 마음으로 나만의 서울을 여행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도 생기는 것이다. 멘토작가인 성남훈 사진작가는 말한다.“요즘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사랑한다. 이제 더 이상 자신만을 위해 사진이미지가 소비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러한 의미의 사진의 기록성과 공공성을 담보하는 사진행위의 전형이 서울시가 마련한 도시사진전이라 생각한다. 참가자 스스로 서울 역사의 한 모습을 아카이브하는 의미로운 사진의 공공의 장이 많이 열렸으면 한다.” 뜨겁던 한낮에, 비 내리던 주말에도 카메라를 들고 그 골목을 누비고 그 비탈길을 오르내리던 4개월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들이 모여 지금 시민청 활짝라운지에서 서울시민들에게 전시되고 있다. 시민작가들의 땀과 애정이 담긴 다양한 시선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민으로서 이런 의미를 되새기고 공감과 소통에 참여했다는 것이 스스로 뜻깊다. 이번 기회로 비로소 필자가 살고 있는 서울 하늘아래 모든 사물들이 더욱 애틋해졌고 새삼스럽게도 서울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다. 기회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듯이 의외로 삶의 마음가짐도 조금 달라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타성에 젖은 듯 무심히 지내왔던 시간들을 추스르고 다시금 활기를 얻기도 한다. 도시는 언제나 변하고 있다. 서울을 기록하는 도시사진 멘토링 워크샵은 내년에도 계속된다.
- 2017-07-19 17:22
-
- 유필화 성균관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행복한 인생 2막의 비결은 ‘공부력’
- 100세 시대의 행복경영 비결은 무엇일까.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 인생을 살아낼 새로운 설계와 순서는 어떻게 세워야 할까. 유필화(63) 성균관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마케팅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쌓아온 경영학계의 구루다. 뿐만 아니라 를 비롯해 , 그리고 최근작 에 이르기까지 인문학 고전을 경영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작업을 시도해왔다. ‘100세 시대, 고전에서 배우는 인생 경영 지혜’를 듣고 싶은 생각에 인터뷰를 청했다. 대방동에 위치한 유 교수 서재의 섬돌엔 검정고무신 두 켤레가 정겹게 놓여 있었다. 유 교수는 부인(이기향 한성대 의류학과 교수)이 아침에 인터뷰 복장 코디는 물론 간식을 손수 준비해놓고 갔다며 미소를 지었다. 신혼 때부터 지금껏 수십 년간 변함없이 싸준 부인의 도시락 내조력을 들려주는 그의 얼굴에 일순 사랑과 감사가 환하게 번졌다. 인생은 60부터란 말도 있는데요. 교수님께선 예순을 기점으로 달라진 것이 있는지요. “나눔과 베풂의 봉사활동이 내 삶의 비중에서 늘어났습니다. 60이 넘고부터는 경력과 일에 관련되지 않더라도 의미 있는 일에 에너지, 시간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이게 사실은 두 여인의 영향 덕분입니다. 어머님도 생전에 ‘늘 베풀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아내도 같은 말을 하는 겁니다. 덕분에 전혀 만나볼 수 없는 사람을 알게 되고, 접하지 않았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기업과 경영 문제에만 쏟던 관심을 기업 바깥의 세계로 돌리게 돼 좀 더 크고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 계층의 다양한 사람을 알게 돼 세상을 보는 균형감각이 키워지는 부수효과도 있더군요.” 사회봉사가 행복을 증진시킨다는 것은 개인의 단순한 느낌이나 추정이 아니라 이론적으로 근거가 있다. 코넬대학의 행복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남을 돕는 사람은 자긍심을 고양시키고 자신의 삶을 통제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사람과 이타적인 사람 간에는 정신이 노쇠해가는 속도에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봉사활동은 더욱 건강한 정신자세를 지니게 하고, 이는 다시 건강과 삶의 만족을 증진시키는 ‘행복의 선순환’을 일으킨다는 게 연구의 골자다. 봉사는 이타적 행위일 뿐 아니라 이기적 행동이기도 하다. 인생 2막에선 성공보다는 행복이란 단어가 한결 실감 있게 다가온다고 다들 말씀하시더군요. 교수님께서는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시는지요. “‘행복이란 마음이 편한 것, 마음의 평정과 평온을 찾는 것’이라고 봅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사회에서 부러워하는 기업인을 만나보면 ‘성공하면 뭐해’ 하며 자조하는 경우도 많고요. 어쩌면 남이 부러워하는 정상에 오르는 것은 울 일이 많다는 것과 동의어라고나 할까요. ‘살아 있는 게 축복이고 숨 쉴 수 있는 게 기적’이라는 마음을 갖고, 일상을 감사히 받아들일 줄 아는 삶의 태도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조건의 충족이 아니라 그 수행 과정에 행복이 존재하지요.” 매일 참선과 명상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서재에 명상실까지 두고 있으시지요. “마음의 평화를 위한 제 수행 방법은 참선과 300배입니다. 1997년부터 해왔으니, 20년 가까이 해온 셈이네요. 가끔 40~50분씩 참선하고 300번 절하고 나면 마음과 몸이 깨끗해집니다. 현재에 몰입하고 집중함으로써 잡념을 없애버리는 것이지요. 명상을 하면 집중력, 몰입력이 높아져요. 건강한 긴장력이 생산된다고나 할까요. 삶을 객관적으로 제3자화, 관찰하는 것을 습관으로 하면 자기에 대한 지독한 애착과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줏대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지도 않고요. 참선을 하다 보면 나를 특별한 존재로 보기보다는 수많은 중생 중 하나로 담담히 관찰할 수 있게 됩니다. 대부분의 불행과 불만은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대우받으려고 하는 집착 때문에 생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유 교수에게 이순(耳順)(공자가 60을 가리켜 한 말)의 나이에 문자 그대로 이순(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어떤 말을 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가볍게 손사래를 치며 “칭찬, 아부의 말에 흔들리지 않을 자신은 있는데 비난, 싫은 말에는 그리 편하지 않고 신경이 쓰인다. 아직 이순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고 고백한다. 교수님은 위기의 시대를 이기는 단 하나의 질문으로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꼽으신 바 있지요. 인생 경영에서 과감하게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자만심입니다. ‘왕년에’와 ‘내가 누군데’가 자만심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말입니다. 장군은 은퇴 후 모임에도 군복 입고 훈장 달고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를 알아달라는 의미이지요. 그래봤자 남들은 ‘그래서(so what)?’예요. 버려야 채울 수 있고, 낮춰야 올라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켜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자신감이요. 우리 세대는 산업혁명, 민주화를 달성한 세대 아닙니까. 열심히 살아온 것이지, 결코 헛산 것이 아니지요. 사회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살아왔다는 자부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젊은이에는 부족한 경륜이나 직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당당하고 늠름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자만심과 자부심,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큰 차이가 있다. 유 교수는 “나만 옳고 다른 사람은 시원치 않다고 깔아뭉개는 마음이 자만심이라면, 스스로는 물론이고 상대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것은 자부심”이라고 구분했다. 자만심은 남을 무시하지만 자부심은 남을 포용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버드대학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으시고, 독일 빌레펠트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서양통이신데 동양고전에 심취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요. “동양이 서양보다 한결 깊고 차원이 높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병법서를 예로 들어볼까요. 과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을 비교해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서양에서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고, 어떻게 이기느냐 거기에만 관심을 둡니다. 반면 동양은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무력으로 싸우지 않고 지략으로 이길 방법을 모색하지요. 서양에선 지략이나 책략보다 전략, 전술에 관심을 두고요. 서양의 병서가 단지 전략서인 데 반해 동양의 병서를 정치사상서의 반열에 올릴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시대를 이끈 리더들의 공통점은 뭘까요. “공부력입니다. 위기의 순간에도 평생 학습의 끈을 놓지 않은 것입니다. 독서이든, 대화를 통해서든 늘 배우려는 자세를 가졌습니다. 살아 있는 한 멈추지 않고 끈질기게 배우려고 하는 학습력이 이들의 공통점입니다. 이는 동서양의 리더가 다르지 않습니다.” 리더들의 경쟁력이 공부력이란 사실은 인생 경영 지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린다 그래튼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저서 에서 공부력을 변형자산이라 명명해 강조한다. 변형자산이란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래튼 교수는 “돈 등 유형자산 못지않게 필요한 무형자산이 공부력”이라며 “학교 졸업, 취업, 은퇴라는 3단계 벽이 무너진 오늘날, 100년 인생의 풍요로움은 평생공부에 달려 있다”고 단언한다. 요컨대 100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선 미분의 인생관에서 적분의 인생관으로 발상전환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인생 전반기의 실력과 경력에 얹혀 후반전을 영위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전반전에 종언을 고하고 유연성과 개방성을 갖고 부단히 노력하라, 그렇게 공부력을 쌓는 것이 100세 시대의 생존비결이라는 진단과 처방이었다. 역사는 리더십의 스승이란 말을 강조하십니다. 역사적 인물 중 평생학습의 롤 모델로 누구를 꼽으시는지요. “중국의 황제 당태종을 꼽고 싶습니다. 평생학습은 자기경영이 바탕인데요. 당태종은 죽는 날까지도 겸허한 태도를 잃지 않았지요. 그의 자기경영원칙은 경청, 자기경계, 자기절제, 긴장감 지속, 겸허한 태도 및 신중한 언어 구사 등 다섯 가지로 정리됩니다. 다만 집권 말년에 고구려 원정 등 쓸데없는 전쟁을 만류하는 신하들의 충언을 듣지 않은 것이 결정적 실수였지요. 아무리 뛰어난 군주라도 최초의 긴장감을 20년 이상 지속시키기는 어려웠다고나 할까요.” 당태종의 자기경영 비결 중 겸허한 태도 및 신중한 언어구사가 눈에 띄는군요. 이는 오늘날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소통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나서고자 하는 마음, 참견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본인은 경륜이지만, 상대에겐 편견이고, 본인은 조언이지만 상대에겐 잔소리일 수 있습니다. 저는 어떤 말을 하기 전에 세 가지 기준을 돌아봅니다. 먼저 내 의도입니다. 상대를 위하는 것인가, 내 능력 자랑을 위해서인가 성찰해봅니다. 즉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 능력을 드러내 잘난 척하려고 하는 것인가를 검토해봅니다. 다른 사람이 다 보는 상황이어서 불편하거나 부끄럽게 느끼지는 않을지를 살핍니다. 끝으로 내가 말하는 방식이 그 사람이 받아들이기 쉬운 것인지를 고려해봅니다.” 그는 “나이는 말 그대로 숫자에 불과할 뿐인데 연장자라고 말을 다짜고짜 낮추며 하대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며 무엇을 말하는가보다 ‘어떻게 말하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같은 겸양의 태도를 평생친구인 헤르만 지몬 교수를 통해 체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헤르만 지몬 교수는 ‘유럽의 피터 드러커’로 불리는 독일의 경영학자다. “일국의 대통령에서부터 차 나르는 직원에 이르기까지 차별 없이 존중하고, 즐겁게 대화를 하는 지몬 교수에게서 학문적 열정뿐 아니라 리더의 소양까지 배울 수 있었다”는 술회다. 행복한 인생 2막을 위한 교수님의 ‘인생 경영 비법’을 듣고 싶습니다. “가족, 친구, 자신과 잘 지내는 것이지요. 가족, 친구와 잘 지내려면 있는 모습 그대로를 수용하고 포용하는 게 필요해요. 또 나이 들수록 중요한 게 자신과 잘 지내는 것인데요. 저는 최고의 방법으로 독서를 꼽고 싶습니다. 인생에 독서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새로운 것을 접할 때의 호기심, 혼자서 경험할 수 없거나 알 수 없는 내용을 알게 됐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그러기 위해선 지치지 않는 호기심과 건강이 필수이지요.” 그에게는 독특한 독서 버릇이 있다. 책 앞날개에 독서를 시작한 날짜, 독서를 마친 날짜, 책 구입 장소 등을 메모해놓는 일이다. 나중에 이 메모를 보면 책 내용은 물론 책을 읽게 된 동기, 시공간의 배경에 대한 추억까지 함께 떠올라 즐겁다고 한다. 또 세 종류의 책을 동시다발로 읽어나가는 독서 습관도 있다. 인생의 버킷 리스트가 있으신지요. “없습니다(답변의 속도는 30초도 안 될 정도로 빨랐다). 평소에 열심히 살고 아무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고 싶은 게 제 신조라고나 할까요. 안 되면 그만이지요. 무엇인가를 바라고, 해야 된다고 마음먹는 순간 괴로워요. 그것을 해야 한다고 마음먹는 순간 족쇄가 되기 때문이죠. 저는 그저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다 간 사람으로 기억되고 그렇게 자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유 교수와 인터뷰를 하며 ‘인생 경영의 최고 비법은 공부력’이고 “궁극적 공부력은 마음 경영과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세 인생 시대, 무한성장 시대인 오늘날이야말로 자기성찰력이 최고의 인생 덕목이자 경쟁력이 아닐까. ‘유필화’란 이름 석 자의 문패가 달린 파란 대문 집을 나와 돌아오는 길에 그의 시집 를 다시 펼쳐보았다. 그는 ‘나의 묘비명’이라는 시에서 ‘인간 유필화’를 이렇게 관조한다. ‘그는 입버릇처럼 자주 수행을 얘기했고 꾸준히 좌선도 하였지만, 생각만큼 행동이 안 따르는 자신의 한계를 늘 절감했다. 그는 물욕과 애욕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했으며 자만심도 결코 떨쳐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장년 이후 눈에 띄게 화를 내는 일이 적어진 것에 대해서는 은근히 흐뭇해했다. (중략) 그는 자신의 숱한 약점, 단점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수시로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태도였다. 그의 이름은 유필화였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 2017-06-23 11:29
-
- 그날 왜 늦은 줄 아세요?
-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 마음만 동동 구르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셔요. 이루어질 수 없는 첫사랑 그 쓸쓸함에 대한 이야기를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보내주셨습니다.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 누님. 이렇게 불러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이젠 누니~임 하고 소리 높여 불러도 대답 없을 당신에게 띄웁니다. 생각해보면 내가 참 바보 같았습니다.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누님 앞에 서라면 아마도 그때 그 시절처럼 한없이 작아질 것입니다. 누님 결혼식 날, 축시를 읽어주기로 약속해놓고선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축시를 읽어드리지 못했습니다. 기억나세요? 내가 막 예식장에 도착했을 때 누님은 차를 타고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차 안에서 내게 손을 흔들어줬습니다. 그날 내가 왜 늦은 줄 아세요?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기억인데 이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날은 정말 누님이 미웠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가 고등학교 시절입니다. 내 여동생의 S 언니가 되면서입니다(그 시절엔 S 언니 동생이 유행이었습니다). 동생의 언니이니 당연히 나한테는 누님이 된 것입니다. 누님과 내 나이 차이는 딱 한 살입니다. 누님이 생겼으니 공연히 즐겁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습니다. 동생을 통해 말로만 듣던 누님을 만난 것은 훨씬 나중 일입니다. 마침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누님과 친척이었는데 조카뻘이었습니다. 그러니 동생으로 인해 누님을 얻고 누님으로 인해 조카를 하나 얻은 셈입니다. 어느 날 친구를 앞세워 누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갔으나 부끄러움이 많았던 나는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선 다음에 만나면 이런저런 말을 해야지 하면서도 그 말들을 지금까지 하지 못했습니다. 대학시험에 낙방하고 실의에 빠져 외가 근처에 있던 직지사에 들어가 한 학기 동안 머문 적이 있습니다. 그때 누님 꿈을 생전 처음으로 꾸었습니다. 글쎄요. 나 혼자 간직하고 싶었던 꿈이었지만 지금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누님이 나한테 키스를 해주었습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누님이 나한테 해주셨습니다. 그 황홀한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깨어보니 허망하게도 꿈이었습니다. 계속 그런 꿈을 꾸고 싶었습니다. 그날의 꿈이 아쉬워 그 꿈을 꾸었을 때의 환경에 맞춰 여러 번 잠을 자보기도 했습니다만 그 후로는 한 번도 그런 꿈을 꾸지 못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누님은 영문과를, 나는 의예과를 다니던 시절이라 만나는 일이 잦았습니다.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참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가깝게 지내면서도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입 밖에 내지도 못했습니다. 누님을 만나고 나면 즐거움만큼 아쉬움도 컸습니다. 꿈같은 대학 시절을 보내고 내가 모교 병원에서 인턴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누님은 결혼을 한다며 내게 축시를 부탁했습니다. 나는 기꺼이 승낙했고 당일 낭송하기 위해 축시를 하나 지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뭐라고 썼는지 지금은 기억에 없습니다. 시를 쓰고 그림도 그려 시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림에 눈물이 떨어져 번져버렸습니다. 축시를 쓰면서 왜 눈물이 났을까요?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은 너무나 명쾌히 그 이유를 압니다. 내가 사랑한 누나를 다른 사람이 채갔기 때문입니다. 누나를 채간 사람에 대한 분함과 그 사람을 따라간 누님에 대한 서운함이 범벅이 되어 눈물로 떨어졌습니다(나이답지 않게 참 바보 같았네요). 예식시간에 맞춰 예식장에 충분히 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우물쭈물하다 시간이 늦어버렸습니다. 핑곗거리는 충분했습니다. “환자가 많아서 그랬습니다”라는 핑계입니다. 그러나 기실 환자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분노와 서운함이 밀려와 무의식적으로 시간을 맞추지 못한 것입니다. 그 분노와 서운함을 직면하기 어려웠습니다. 생각하면 그 뿌리는 깁니다. 내가 대학시험에 낙방해 직지사에서 한 학기 동안 칩거하면서 제일 많이 생각한 사람은 누님입니다. 공부하는 시간보다 누님을 상상하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그냥 보고 싶다는 수준이 아니라 결혼까지 하고 싶을 만큼 많은 시간을 누님과 함께하는 상상 속에서 보냈습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항상 얼굴을 붉혔습니다. 속마음을 누군가에게 들킨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언제나 얼굴을 붉혔습니다. 결혼을 할 수도 있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항상 나를 통제하는 나만의 도덕적 기준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기준이지만 그땐 정말 바보스러웠습니다. 그 기준은 누님하고 어떻게 결혼할 생각을 하느냐는 자문이었습니다. 죄의식이었습니다. 참 바보스러웠지요. 누님은 내 혈연적 누님이 아니잖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님과의 결혼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생각에 얽매였습니다. 누님하고의 결혼이라니…. 그런 불순한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말하자면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해선 안 된다는 마음이 서로 상충하는 양가감정에 시달렸던 것입니다. 한 학기 동안 가슴앓이만 하다 내려왔습니다. 이런 깊은 사연이 있습니다. 결혼식 날 예식장에 늦게 도착한 것이 꼭 환자 때문만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인턴 과정을 마친 뒤 정신과 레지던트 과정 수련을 받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내가 갓 결혼해 신혼생활을 시작했을 때입니다. 그 뒤 20여 년 동안 나는 누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첫아들이 개혼할 때 누님에게 청첩장을 보냈습니다. 아들 결혼식을 준비하다 불현듯 누님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예식장에서 누님을 20여 년 만에 만났습니다. 반가워서 잡은 손을 한참 놓지 않았습니다. 그날 나는 누님 손을 처음 잡아봤습니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옛날 생각이 나서 혼자 웃었습니다. 이젠 누님을 채간 분에 대한 분노도 누님에 대한 서운함도 내려놓은 지 오래돼서 그런지 그날은 그냥 미소를 짓게 하는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날은 정말 반가웠습니다. 바보스러웠던 내 모습을 생각하면서 누님 손을 오래 잡고 있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군가가 그리운 사람이 있다면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또 세월이 많이 흘렀지요. 인편에 누님이 아프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다시 옛날 생각이 밀려오면서 누님이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전화를 드렸지요. “누님 나 대구 갈 일이 있는데 누님 집에 들려도 돼요?” “오지 마.” 내 기대와는 다른 답변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누님은 아파서 누운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고 했습니다. 체중이 35kg밖에 안 나간다니 그 모습을 상상하기 싫었습니다. “대신 전화 자주 해.” 나는 그래서 매일 전화를 했고 옛날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다가 네팔로 봉사를 떠났습니다. 네팔에 가 있는 동안 나는 누님이 돌아가시지나 않을까 내내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네팔 봉사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곧바로 누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벨이 한참을 울리는데도 누님은 받질 않았습니다. 불길한 예감에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러곤 전화를 걸 용기가 나지 않아 한동안 걸지 않았습니다. 누님의 부음을 들은 것은 그 후 한참 지나서였습니다. 나는 또 바보짓을 했구나 싶었습니다. 두려워도 참고 전화를 걸어볼걸. 자책하고 또 자책했습니다. 전화를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지금도 내가 그런 바보입니다.
- 2017-06-15 10:53
-
- 늙음을 더디게 하는 비결
- 미래 학자 한 분이 2045년쯤이면 사람은 죽지 않는다는 예측을 하였으나,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늙기 마련이고 궁극에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젊음을 유지하면서 건강하고 즐거운 인생이 되기를 갈망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불로장생을 추구해왔으며 근래에도 그러한 노력은 계속되고 미래에도 이어질 것이다. 인간의 로망이기 때문이다. 구글 창시자 한 분은 거대 자금을 투자하여 죽음을 극복하겠다는 공언까지 했다. 역사적으로는 진시황이 그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바, 먹으면 늙지 않는 불로초를 찾는데 온갖 힘을 쏟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신하들을 조선 땅에 보내 불로초를 찾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런데도 진시황은 4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늙지 않을 수야 없지만, 더디게 늙는 방법은 있지 않을까? 필자의 유소년 시절엔 나이가 환갑에 가까우면 남자는 사랑채에 나앉아 노인 행세를 하였다. 오늘날은 노인으로 불리는 자체도 싫어하지만, 예전엔 그 반대였다. 늙은이 행세가 수명을 단축하였는지 모른다. 장수의 기준점이 60살이었기에 회갑잔치를 성대히 치렀다. 지리산 산골 마을이었던 고향에서는 논밭 농사를 지으며 살았고 부모의 나이가 환갑에 가까워져 오면 일을 그만 두게 하여 편히 쉬게 했다. 그것을 효도로 여겼고 필자의 삼 형제도 환갑 잔치를 치른 아버지가 더는 일을 하지 않도록 하였다. 옆집에는 아버지와 동년배였던 두 아들을 둔 어른 한 분이 살았다. 부지런한 둘째는 결혼과 함께 신접살림을 차려 따로 살게 되었고 게으른 큰아들과 함께 농사일하며 지냈다. 그 어른은 큰아들이 게으른 탓에 환갑이 지난 나이에도 집안 일을 도맡아 했다. 뒷산에서 무거운 땔감을 하여 지게에 지고 오기도 하고 논밭 농사를 직접 지었다. 그분은 동갑내기였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10년을 더 사셨다. 타고난 운명도 있겠지만, 계속하여 몸을 움직였기 때문에 오래도록 건강을 유지하였지 싶다. 부모님을 편하게 모시려 일을 그만 두게 한 일이 효도가 아니라 더 빨리 늙게 한 불효를 저지른 결과를 초래하였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농사일에 손을 놓은 아버지는 집안 일이나 농사일 외에는 한가한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소일거리가 없었던 시절이라 나날이 무료(無聊)했음이 틀림없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무료한 날을 보내게 되어 마음과 몸이 함께 쉬이 늙어 간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필자의 경험을 예로 주변의 아는 사람들에게 부모님이 집안일을 거들려 할 때는 말리지 말라고 일러 준다. 오히려 간단한 일거리를 만들어 주고 뒷방 늙은이 취급을 하지 않기를 권유한다. 이제는 부모 세대를 이어 우리 스스로가 같은 위치에 서게 되었다. 인생 2막을 활기차게 살려는 시니어들이 늘고 있으나 전체에 차지하는 비율은 낮은 편이다. 뒷방 늙은이가 되어 자식에게 짐이 되는 삶이 아니라 당당하게 살아가려는 자세가 절실하다. 취미가 없다면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취미를 만들 필요가 있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좋아하는 소일거리나 취미활동으로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더디게 늙는 비결이다.
- 2017-05-24 09:37
-
- 그해 5월의 풍금소리
- 해마다 5월이면 줄줄이 이어지는 행사가 많아 분주한 느낌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지나고 한숨 돌릴 즈음이면 스승의 날이 이어진다. 이날이 되면 의례적으로 하게 되는 일일 명예교사 일을 빠뜨릴 수 없었는데, 그해 아들의 5학년 교실을 생각하면 자동적으로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그날, 약속된 시간이 되어 아들 녀석의 학교로 갔는데 교실 복도에 다다르자 왁자지껄 우당탕 개구쟁이들이 장난치는 소리가 교실 밖까지 들렸다. 필자는 담임선생님을 잠깐 만나 일일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뒤 수업 시작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도무지 멈추지 않았다. 그때 이 소란을 잠재우려는 듯 선생님께서는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풍금 앞에 앉으셨다. ‘갑자기 음악을 들려주시려는 걸까?’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데 이내 마치 파도소리 같은 반주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각자 자기 자리에 앉아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던 이곳에 세상 사람들 하나 둘 모여들더니 어느 밤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위섬과 흰 파도라네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다시 태어나지 못해도 너를 사랑해~ 이제는 갈매기도 떠나고 아무도 없지만 나는 이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마치 아기새가 어미새 앞에서 먹이를 받아먹으려 입을 크게 벌리듯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듯한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창밖으로 보이던 싱그러운 오월의 하늘도 마냥 푸르렀다. 아이들의 노래는 가슴이 시원하도록 온 교실 안에 울려 퍼졌다. 조금은 쓸쓸한 가사였지만 아이들이 노래 부르자 예쁘고 유쾌한 노래가 되었다.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날의 수업은 더없이 흐뭇하고 즐거웠다. 인간적인 풍모가 느껴지는, 흰머리 희끗희끗했던 그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에게 교과서에 나오는 노래 외에도 특별한 장르의 음악 또는 민중적이거나 대중성이 짙은 여러 노래들을 가르쳐줘서 필자도 아들에게서 종종 그런 노래들을 듣곤 했다. 그 선생님은 해맑은 얼굴로 필자에게 이런 말도 했다. “제 나이가 쉰셋이에요, 요즘은 아이들이나 부모님들이 나이 많은 선생은 싫어한다는데 나는 아이들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아무래도 얼마 동안은 더 하려고 해요.” 회갑이 지나고 또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순진무구함을 끝까지 간직할 것 같은 그 선생님은 그 후 인천의 어느 섬에 있는 학교로 옮겼고 중학생이 된 아들이 그 섬으로 한 번 찾아갔던 적이 있다. 요즘에도 이렇게 참 좋은 선생님들이 있을 텐데 김영란법 대상이 되어 일단 생각을 해보고 찾아봐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고단한 인생길에서 단비처럼 가끔 기억나는 스승들이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고마운 마음도 그리운 마음도 조심하고 계산해봐야 하는 현실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오래오래 아이들과 지내야 할 참 좋은 선생님이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해마다 이맘때만 되면 생각이 난다. 여전히 풍금소리 울리며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여생을 멋지게 보내고 계시리라 믿는다. 마음과 영혼에 기쁨과 감사가 넘치고 욕심에서 해방되어 한껏 즐기는 자유로운 영혼이 참 아름다운 사람. 나이 듦과는 무관한 그 해맑음이 떠오르는 날이다.
- 2017-05-24 09:23
-
- 꽃의 언어는 아름다워라
- 근래 탄생 100년 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가 줄지어 열리고 있다. 미술 애호가들은 우리나라 현대미술 거장들이 걸어온 길을 작품을 통해 가깝게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생겨 행복하기만 하다. 김환기(金煥基, 1913~1974), 박수근(朴壽根, 1914~1965), 유영국(劉永國, 1916~2002), 이중섭(李仲燮, 1916~1956), 장욱진(張旭鎭, 1917~1990) 그리고 박고석(朴古石, 1917~2002) 등이 그들이다. 그중 가장 최근에 열린 고 박고석 화가의 뜻깊은 전시회를 찾아 나섰다. ‘산(山)의 화가’로 잘 알려진 박고석 화백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였다. 격정의 한 시대를 살아온 거장이 당시의 시대상을 캔버스에 어떻게 옮겼을까 자못 궁금했다. 박고석 화백의 그림은 무엇보다 힘이 넘치는 굵은 터치가 특징이다. 아울러 흰 구름과 푸른 하늘 그리고 그 아래 자리한 검은 산의 풍광에서 작가만의 특별함을 엿볼 수 있었다. 그를 ‘산의 화가’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겠다.[그림 1] 그의 힘 있는 필치에 익숙한 애호가들이 보기엔 분위기가 사뭇 다른 작품도 눈에 띄었다. 1951년 피란 시절 부산 범일동의 풍경을 화폭에 담은 작품이다. 그 시대의 어두울 수밖에 없었던 모습이 여과 없이 필자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반추상적 터치로 그려낸 등장인물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다. 참으로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그림이다.[그림 2] 전시장을 나오는데 문득 같은 시기 역시 부산에서 작품활동을 한 김환기 화백의 1952년 작품 가 떠올랐다.[그림 3] 김환기 화백은 박고석 화백의 에 비하면 아주 다른 세상을 화폭에 담았다. 캔버스에 등장하는 꽃수레 주인이나, 근처에서 무엇인가를 팔고 있는 여인의 표정에서 기다림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화폭 중앙에 자리 잡은 꽃수레는 화사하고 다양한 꽃들로 가득하다. 주변의 인물상과 달리 수레 안의 꽃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아랑곳하지 않은 채 화려하고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듯하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피란생활’ 와중에도 누군가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또 누군가는 고생하는 어머니에게 꽃을 사서 선물했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아련한 마음과 함께 화가 김환기의 시심(詩心)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화폭에 담긴 과거의 시대상에서 삶의 깊이와 폭을 다시금 느낀다. 특히 시공간을 초월해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꽃의 아름다운 언어에 대해 생각해본다.
- 2017-05-23 08:38
-
- 노을빛 치마에 새긴 가족사랑
- 명칭이 항상 헛갈리는 곳! 은평한옥역사박물관이 맞는지 아니면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이 제대로 된 이름인지? 여러분은 어떻게들 알고 계시는지요? 오늘은 작심하고 그를 만나러 왔다. 그러나 그를 만나려면 삼가야 할 순서가 있다는 생각이다. 먼저 싸리문을 열고나 보자. 조선의 3대로를 아시는가? 큰길을 따라 서발, 북발, 남발의 삼발로가 조직되었으니 그중 한양에서 의주까지의 서로(서발)는 기발(말을 타고 이동)에 해당되는데, 바로 이곳 박물관 인근을 경유했던 것이다(구파발, 지명의 유래). 때문에 입구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조선의 역참제도에 대한 내용은 빼놓을 수 없을 터이다. 유리판 아래로 생생한 발굴 현장을 재현해놓은 김자근동 묘를 스릴 있게 체험하는 잔재미도 느껴보며(현재 유적 발굴 과정에 있는 서울 은평구 이말산에서 발굴됨), 세종의 6남 금성대군(단종 복위에 가담했다가 32세의 나이로 죽임을 당함)을 모신 사당인 금성당(실제는 은평뉴타운 우물골 소재) 코너에선 무속신앙, 즉 샤머니즘에 잠시 빠져보기도 한다. 2층의 한옥 상설전시관으로 오르다 보면 계단길 벽면으로 전국의 한옥촌을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으며, 한복체험 코너에선 끼리끼리 방문 인증샷도 남길 수 있다. 멀리서 온 객을 위한 대접이 이만하면 융숭한 편이다. 자, 이제 헛기침 한번 해볼 차례다. 그가 버선발로 반겨줄지 모를 일이다. 노을빛 치마에 새긴 가족사랑 슬하에 자식 아홉을 두었던 그, 그러나 그중에 여섯이 그만 병사하고 마는데 자식을 먼저 보내는 어버이의 그 마음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어디 그뿐인가? “누리령 산봉우리는 바위가 우뚝우뚝, 나그네 뿌린 눈물로 언제나 젖어 있네. 월남리로 고개 돌려 월출산을 보지 말게, 봉우리 봉우리마다 어쩌면 그리도 도봉산 같을까.” 유배길에 전남 영암의 월출산을 바라보며 두고 온 집과 가족을 그렸을 그의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 있는 시다. 그러나 그는 지금 가는 이 길이 무려 18년간이나 지속되리라고 짐작조차 했을까? 참으로 헛헛한 독백이 아닐 수 없다. “주인 없는 초당엔 적막만이 가득하고, 처마 끝에 방울방울 낙수지어 반기는가?”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 친구와 함께 초당에 들린 적이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길을 더듬어 그를 만나러 갔던 그 길, 한적한 초당 대청에 걸터앉아 낙수에 손 비비며 그가 만들었다는 연못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던 기억이 오버랩된다. 부부간의 애틋함, 자식을 향한 아비의 마음은 옛사람이라고 다를 리 없고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뺄셈은 전혀 아니라는 생각이다. 유배생활을 하던 그는 부인이 보내온 치맛자락을 재단하여 두 아들과 그 후손들이 간직하도록 아비의 당부를 글로 표현한 서첩을 만드는데 그중 3첩이 남아 있다(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또 남은 천으로는 시집가는 딸에게 매화나무 가지 위에 두 마리 새가 앉아 있는 '매화병제도'를 그려줌으로써 다복한 가정을 꾸미고 집안이 번창하기를 기원했다. 바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내가 강진에서 수년간 유배 중일 때, 부인 홍씨가 해진 여섯 폭 비단 치마를 보내왔다. 세월이 오래 흘러 붉은색이 퇴색되었다. 네 첩의 글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보내고, 남은 천으로 작게 장정하여 딸아이에게 보낸다.” 짐작하셨겠지만 오늘 필자가 만나러 온 분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다. 하피첩, 은평에 오다 은 노을 하, 치마 피, 엮을 첩의 의미로 부인이 시집올 때 입고 온 붉은 치마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색이 바랬음을 은유한 것으로 지어미에 대한 지아비로서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리 넓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좁지도 않은 기획전시실, 그 공간의 범위로는 감히 재단할 수 없는 선생의 마음과 정신은 결국 오랜 유배생활을 이겨내고 고향(남양주시 능내리)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고, 만년에도 저술을 놓지 않았던 선생은 회혼일(결혼 60주년 기념일)에 그만 세상을 떠난다. 생의 마직막엔 곁을 지켜준 부인이 있었으니 선생의 임종은 외롭지 않았으리라. , , 등 다산 사상의 핵심은 사회 현실을 바탕으로 제도와 법을 맞도록 바꾸자는 것이 그 골자로 정치 및 행정체제, 형률제도, 경제제도, 생산기술, 군사제도 등 제반 영역을 포괄하는 것이다. 선생이 저술한 책은 모두 503권이라고 한다. 인고의 세월 동안, 그리고 말년에도 평생 붓을 놓지 않았던 선생! 나는 어떤 남편이고 어떤 아버지인가?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본 기획전은 6월 11일까지 이어지며 문의는 은평역사한옥박물관으로 하면 된다.
- 2017-05-22 15:47
-
-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 지난 주말 불꽃 같은 뮤지컬 한 편을 보았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 지킬박사와 하이드이다. 불꽃 같았다고 표현한 건 필자 개인적인 의견으로 무대가 새빨간 조명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받은 느낌이다. 블루스퀘어에서의 이번 공연은 월드투어로 브로드웨이 유명 뮤지컬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국내 공연계에서는 전례가 없는 한국과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의 공동 제작으로 우리나라 크리에이브 팀이 주축이 되어 브로드웨이 배우들을 캐스팅했고 국내 공연 후 세계진출을 목표로 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외국 배우가 다른 언어로 하는 뮤지컬이라 몰입할 수 있을지 좀 걱정이 되었지만, 무대 양옆의 스크린에 번역되는 대사가 있어 문제없이 그들의 열연에 빠질 수 있었다. 필자는 뮤지컬을 매우 좋아한다. 바로 눈앞에서 노래와 연기가 펼쳐지는 생동감이 가슴을 뛰게 하고 때로는 필자 자신이 무대에 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 즐겁다. 오늘은 좌석이 무대에서 다섯 번째 줄이어서 배우들의 표정도 잘 알아볼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잊지 못할 장면으로 한 사람의 배우가 선한 모습의 지킬을 표현하며 연기하다가 갑자기 머리를 풀고 포악한 눈빛으로 변하며 하이드로 노래할 때 전율이 느껴졌다. 순식간에 어떻게 저리 서로 다른 인격체를 표현하는지 지킬과 하이드를 연기하는 배우의 역량이 정말 놀랍고 감탄스러웠다. 단지 묶고 있던 머리를 풀어헤쳤을 뿐인데 선과 악이 교차하는 연기가 매우 카리스마 있고 자연스러웠다. 수시로 머리를 묶었다가 풀어헤치는 동작으로 한 사람 안의 두 인격을 훌륭하게 표현해 낸 장면이 가장 멋지고 놀라운 연기로 머리에 남았다. 어렸을 때 처음 이 이야기를 소설로 읽고 정말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착한 마음과 악한 마음을 동시에 가진 남자의 변하는 과정이 재미있으면서도 오싹했었다. 뮤지컬의 첫 장면은 병원 이사회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고 지킬박사가 자신의 연구를 실험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에서 선과 악을 분리해 악을 없애는 연구가 완성단계라며 실험할 대상을 찾겠다는데 이사회 전원의 반대에 부딪힌다. 유능한 의사이자 과학자인 헨리 지킬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 때문에 인간의 정신을 분리하여 정신병 환자를 치료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에 들어가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으나 세인트 주드 병원 이사회 의결에서 전원 반대로 무산된다. 변호사인 친구가 낙담한 그를 위로하려고 웨스트 엔드의 한 클럽으로 데리고 간다. 선한 감성의 지킬은 술에 취한 사람들에게 학대받는 루시에게 친구가 필요하면 찾아오라며 명함을 준다. 지킬박사는 이사회의 반대로 실험을 할 수 없게 되자 사랑하는 약혼녀 엠마와도 멀리하며 연구를 거듭해 성공단계에 이르고 자신이 직접 실험대상이 되기로 한다. . 실험을 통해 자신의 성질과는 정반대인 무서운 범죄를 저지르는 하이드로 변신하는 데 성공하고 이사회 의결에서 반대했던 사람들을 차례차례 죽이고 만다. 계속되는 실험으로 선한 지킬 본연의 마음이 점점 사라지고 악한 하이드에게 지배당하는 걸 느끼며 괴로워한다. 잠재해 있던 하이드를 통제하지 못하게 된 그는 친구에게 부탁해 자신이 하이드로 변할 때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결국, 행복해야 할 엠마와의 결혼식에서 하이드가 튀어나와 친구의 칼에 죽임을 당한다는 비극적인 이야기다. 사람의 마음에 선과 악이 공존할 수 있지만 이렇게 분리되고 통제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면 참으로 무서운 일일 것이다. 천사 같은 엠마와 정열적인 루시와의 비교도 재미있었는데 두 캐릭터가 서로 다른 이미지로 각자의 서로 다른 매력을 보여주었다. 맑고 고운 음색의 엠마와 강렬한 느낌의 루시의 열연이 관객을 즐겁게 하고 박수도 많이 받았다. 특히 두 인격의 연기를 멋지게 해낸 지킬박사와 하이드 역의 카일 딘 매시 라는 배우에게 찬사를 보낸다. 뮤지컬이 끝났는데도 지킬이 실험에 대한 결의를 다지며 부르던 유명한 노래 ‘지금 이 순간’ (this is the moment) 멜로디의 여운이 길게 귓가에 남았다.
- 2017-05-22 10:47
-
- 혈세 낭비 현장
- 제19대 대통령 선거일이 눈앞에 다가왔고 유권자들을 위한 후보자 정보와 선거 안내문이 전체 유권자에게 우송되고 있다. 우송된 그 우편물이 개봉되지도 않은 채로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모습을 더러 본다. 방송이나 유세 현장 또는 다른 정보망을 통하여 후보자를 잘 파악하고 있게 되어 유인물을 읽을 필요성이나 아예 관심이 없어서 그대로 버리는 경우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 싶다. 유인물을 만들고 우송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도 적지만은 않다. 귀중한 국민의 세금이 낭비되는 현장의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 돈 얼마나 된다고?”라고 할 수도 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 했다. 세금이 쓰일 중차대한 일들이 사방에 널려있다. 우리는 지금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국내외적 여러 가지 상황이 만만치 않다. 경제는 눈에 띌 정도로 저성장에 머물고 있어 나라 재정인 조세의 규모에 따르지 못한다.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복지 정책의 수준과 다양성, 욕구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나 그 실행에 들 세금 마련이 쉽지만은 않은 현재이고 미래 또한 더 난국으로 예측된다. 한두 푼의 세금도 아끼고 적절한 곳에 쓰여야 하지 않을까? 개봉도 되지 않은 채로 버려지는 선거유인물 봉투를 보며 안타까워하는 국민이 비록 나만일까? 그런 현상이 선거 유인물에 국한될까? 모두의 생각을 모아볼 필요성이 있지 싶다. 개인의 경우도 수입이 줄어들 경우엔 지출 관리를 통하여 효율을 높여야 하듯 정부정책이나 사업의 실행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특히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은 더 그렇다. 어려운 국면에서 내는 세금은 그야말로 혈세이기에 말이다. 예산으로 책정되어 있으므로 불필요한데도 애써 집행하려는 현상들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도 있다. 법률에 의한 집행이나 한편으로 보면 필요하지 않은 비용 낭비 측면도 있다. 한 푼의 세금이라도 적재적소에 쓰고 낭비되지 않게 사용하려는 마음과 실천이 절실한 시대를 살고 있다.
- 2017-05-02 10:40
-
- 꽃
- 모임에서 친구들과의 수다 중에 한 친구가 남편이 꽃바구니를 사 들고 들어온 이야기를 했다. 5명의 친구들 반응은 반반으로 갈렸는데 두 명은 “어머, 좋았겠다.”였고 필자를 포함한 3명은 “아유~난 꽃 선물은 싫어,”였다. 필자를 포함 싫다고 한 사람들은 꽃바구니 선물 받은 친구가 부러워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는 정말 꽃을 선물 받으면 반갑지 않다. 꽃보다는 케이크이나 초콜릿이 더 반가우니 이런 필자자신이 참으로 낭만적이지 못하고 팍팍한 것 같아 속이 상하기도 하다. 그러나 처음 꽃다발이나 꽃바구니를 받을 땐 싱싱하고 예쁘던 것이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서 시들거리다가 마침내 꽃잎도 축 늘어지고 색도 변하면서 쓰레기통에 버려져야 하게 되는 것이 안타깝고 불쌍하게 생각되는 게 내가 꽃 선물을 반가워하지 못하는 큰 이유 중 하나랄 수 있다. 예뻤던 꽃이 추하게 변하여 내다 버리는 것도 일이었고 사람에게 비교해 보면 어리고 젊을 때 한창 예쁘다가 나이 들어 늙으면 이렇게 보기 싫어지는 게 서글프게도 닮아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기도 한 것이다. 아름다운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꽃은 무언가 사람에게 보는 것만으로 위로 해 주는 힘이 있기도 하고 우울한 기분을 사라지게도 한다. 동양의학 이론으로는 꽃 중의 여왕 장미는 갱년기 여성의 심리적 육체적 불안감을 달래주는 효과가 있으며 특히 장미의 향기는 심신의 피로에서 회복시켜준다고 한다. 장미의 향은 꽃보다 잎에서 더 많이 나오기 때문에 꽃꽂이를 할 때 잎을 너무 많이 쳐내지 말라는 말도 있다. 그리고 잎과 꽃의 습기 조절 작용이 활발해 건조해지기 쉬운 실내공기의 적정 습도를 지켜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휴식공간인 침실에는 숙면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꽃이 좋은데 안개꽃이나 아이리스가 있으며 이런 꽃은 긴장을 완화시켜주고 편안한 기분이 들게 해 준다고 한다. 고혈압 환자에게는 프리지어처럼 맑고 상쾌한 향기가 나는 꽃이 좋으며 향기가 교감신경에 직접 작용해 흥분된 신경을 억제하고 혈압을 정상적인 수치로 되돌려 주는 효과가 있는 꽃이라고 한다. 흰색 분홍색 국화는 두통 어지러움에 도움이 되며 노란색 국화는 식욕을 증진시키고 심신을 편안하게 달래주기도 한단다. 이렇게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몸에 좋은 효과도 볼 수 있게 해주는 꽃을 왜 반갑게만 생각할 수 없는 것일까? 낭만을 사랑하던 시절과 다르게 꽃값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웬만한 일에 축하한다고 3만 원이나 5만 원 하는 꽃다발이나 꽃바구니를 준비하기가 쉽진 않다. 꽃을 기르는 분들에겐 죄송한 말이지만 꽃값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다. 무식하게 말한다면 먹을 수도 없는 것이 그냥 잠깐 보고 즐기려고 사기엔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인데 나도 원래 이렇게 무식하게 꽃을 돈으로 생각하는 여자는 아니었다. 친구에게 멋지게 포장한 꽃다발 선물하는 것도 좋아했고 때때로 남대문시장 꽃가게에서 작은 꽃망울의 예쁜 꽃들을 한 아름 사 신문지에 싸 와서 항아리에 꽂으며 즐거웠던 적도 있었는데 나이 들면서 예쁜 호르몬이 다 없어졌는지 이렇게 투박해져 버렸다. 요즘은 축하할 일이 생기면 꽃보다 케이크를 사 들고 간다. 이렇게 감정이 무뎌져 버린 내가 안타깝고 아쉽기는 하다. 낭만을 사랑하던 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
- 2017-04-04 15:27